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서울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 지훈은 그곳에서 먼지 쌓인 책들과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친구 삼아 살고 있었다.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그를 기다린 건 지루한 회사 생활 아니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뿐이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때려치우고, 취미 삼아 모으던 고서적과 고물들을 뒤적이며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사람들은 그를 ‘은둔형 외톨이’라 불렀지만, 지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이 세상이 너무 평범해서, 그 안에 숨겨진 진짜 이야기를 발견하지 못하는 이들이 불쌍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비 오던 날이었다. 지훈은 동네 고물상에서 기묘한 상자를 발견했다. 나무로 된 상자는 칠이 다 벗겨져 있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것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그냥 오래된 잡동사니들이에요. 아무도 안 가져가서 처분하려던 참이었는데, 젊은 사람이 웬일로 관심이 많네.”라며 싸게 내주었다. 지훈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쩌면 이 상자 안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상자를 들고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온 그는 서둘러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가득했다. 깨진 도자기 조각들, 녹슨 숟가락, 오래된 성냥갑… 시시한 물건들 사이에서, 지훈의 손에 닿은 것은 작고 검은 조각이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파편. 그것은 매끄러운 흑요석 같았지만, 표면에는 마치 심장이 뛰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진동보다 더 기묘한 것은, 파편 위에 새겨진 문양이었다.

“이건… 대체 뭐지?”

지훈은 돋보기를 꺼내 들었다. 문양은 인간의 손으로 새겨졌다고는 믿기 힘든 정교함으로 얽혀 있었다. 선들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졌다. 그가 아는 어떤 문명이나 언어의 흔적과도 달랐다. 파편을 쥐자, 손안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소름 끼쳤다. 마치 수만 년 동안 차가운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무언가가 이제 막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그날 밤부터 지훈은 파편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잠도 자지 않고 파편을 관찰했다. 빛에 비춰보고, 손가락으로 문양을 따라 그려보았다. 파편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묘하게 빛을 흡수하고 반사했다. 그럴수록 지훈의 머릿속은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거대한 촉수, 비늘로 뒤덮인 그림자,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별이 없는 심해… 그것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그는 파편을 침대 옆에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희미한 속삭임이 귓가를 맴돌았다. 처음에는 그저 환청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속삭임은 점점 선명해졌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파도 소리 같기도, 바람 소리 같기도, 혹은 수천 마리의 벌레들이 동시에 울부짖는 소리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의 목을 조여왔다.

며칠 후, 지훈은 미쳐가는 자신을 느꼈다. 파편을 든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순간, 그의 눈앞에서 벽지의 무늬가 일렁거렸다. 벽이 물처럼 흐느적거렸다. 그리고 그 일렁임 너머로, 기괴한 그림자가 언뜻 보였다. 거미 같기도 하고, 해파리 같기도 한 형체였다. 지훈은 소스라치게 놀라 파편을 떨어뜨렸다. 그림자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미쳤나?”

그는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다시 주워 들었다. 파편은 여전히 차가웠고, 미세하게 진동했다. 지훈은 깨달았다. 이 파편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문(門)’이었다. 다른 세계로 통하는, 혹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문.

그는 파편을 든 채로 다시 벽을 응시했다.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흐느적거리던 벽 너머에서, 또다시 형체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더 선명했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색깔로 빛나는 수많은 눈을 가지고 있었다. 눈들은 지훈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그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지훈의 뇌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파편의 문양… 그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문’이었다. 존재를 드러내거나, 혹은 소환하는 주문. 그는 지난 며칠간 무의식적으로 문양을 따라 그리며, 그 주문을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지훈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파편을 꽉 쥐었다. 속삭임은 이제 그의 머릿속을 직접 관통하는 듯했다. 마치 수천의 목소리가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의 눈앞의 세상은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었다. 천장은 더 이상 천장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해체되고, 재구성되는 듯했다.

그는 창밖을 내다봤다. 익숙한 도시의 풍경이 마치 망원경으로 본 듯 왜곡되어 보였다. 건물들은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 있었고, 하늘에는 존재할 수 없는 색깔의 구름이 일렁였다. 그 구름 사이로, 거대한 촉수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너무나 거대해서, 도시 전체를 한 입에 삼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안 돼… 이건 아니야…”

지훈은 절규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그는 파편을 내던지려 했지만, 손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파편은 이제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 진동은 심장을 꿰뚫는 듯 강력했다.

그때, 파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붉은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빛 속에서, 그는 보았다. 우주의 끝, 시간의 시작과 끝이 없는 곳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가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지훈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발기는 듯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 존재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그저 ‘있을’ 뿐이었다. 지훈은 자신이 이 존재의 거대한 의식의 한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힘은, 사실 그가 아닌, 그 너머의 존재가 자신을 ‘발견하도록’ 이끄는 미끼였을 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할 수 없었다. 그의 이성은 거대한 어둠 속에 잠식당했다. 마지막으로 그의 의식을 스친 것은, 파편이 마치 자신의 심장처럼 박동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보았다… 이제 너는… 우리의 일부가 되리라…”

이후, 지훈은 발견되었다. 텅 빈 아파트 거실 한가운데서, 그는 넋이 나간 채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초점을 잃었고,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맴돌았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허공의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 너머의 어떤 것을 영원히 붙잡고 있는 것처럼.

그의 아파트 벽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그의 피로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은 지훈이 발견했던 파편 위의 문양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문양들 사이에는,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그의 눈동자를 닮은 그림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아무도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그가 다시는 ‘제정신’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저, 서울 변두리의 낡은 아파트에서, 또 한 명의 ‘미치광이’가 탄생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고물상에서 사라진 작은 흑요석 파편은, 분명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어둠 속을 부유하고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