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철 심장의 비명
증기도시 크로노폴리스의 밤은 언제나 자욱한 스모그와 함께 찾아왔다. 수만 개의 기계 심장이 뿜어내는 증기가 거대한 도시를 거대한 흰 연기 속으로 감추었고, 가스등의 희미한 불빛만이 뿌연 장막을 뚫고 흐릿하게 번졌다. 째깍거리는 시계추 소리, 증기 기관의 규칙적인 박동, 그리고 금속이 마찰하는 둔탁한 소음이 밤의 자장가처럼 도시를 감쌌다.
이 밤, 크로노폴리스의 가장 고귀한 심장이 멈춰 섰다.
대공학자 엘리엇 경의 저택은 시가지 북부, 거대한 철골 구조물 사이에서 고고하게 솟아 있었다. 그의 저택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수많은 보안 장치와 기계 장치로 둘러싸인 개인 작업실은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신성한 공간은 피와 절규로 물들어 있었다.
“빌어먹을…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건가!”
강 경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땀으로 축축한 그의 얼굴은 공포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의 앞에는 놋쇠와 구리로 이루어진 온갖 기계 부품들, 미완성된 자동 인형들의 뼈대, 그리고 복잡한 회로도가 널려 있는 작업대가 있었다. 그 한가운데, 엘리엇 경은 작업복 차림으로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놋쇠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핏자국은 낡은 양피지 위에 그려진 설계도를 끔찍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경찰들은 작업실 내부를 샅샅이 뒤졌지만, 그 누구도 범인이 어떻게 들어오고 나갔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방의 유일한 문은 안쪽에서 거대한 강철 빗장과 여러 개의 시계태엽 잠금장치로 단단히 걸려 있었다. 창문들은 이중 강화 유리로 되어 있었고, 역시 안쪽에서 묵직한 강철 빗장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벽은 틈 하나 없이 견고했고, 바닥과 천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밀실. 완벽한 밀실이었다.
“강 경감, 상황은 여전히 오리무중인가요?”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문가에서 들려왔다. 강 경감이 고개를 돌리자,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단정한 차림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은색 테의 외안경을 걸친 남자는 서리 같은 푸른색 눈동자로 이미 방 안의 모든 것을 훑어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옆에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단단한 가죽 수첩을 들고 서 있었다.
탐정, 하율. 그리고 그의 조수, 진아.
“하율 탐정님! 어서 오십시오. 정말 미치겠습니다. 이 방은… 이 방은 인간이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강 경감이 절규하듯 말했다. “문도, 창문도, 그 어떤 곳도 침입의 흔적이 없습니다. 피해자는 틀림없이 혼자 있었습니다. 대체 누가, 어떻게…!”
하율은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방 안의 복잡한 기계 소음 속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오히려 뚜렷했다. 그는 손에 든 작은 놋쇠 회중시계를 한번 흘끗 보더니, 이내 외안경을 고쳐 쓰며 엘리엇 경의 시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진아는 그의 뒤를 따르며 수첩을 펼쳤다.
“주변을 건드리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강 경감.” 하율의 목소리는 잔잔한 호수 같았지만, 그 안에는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듯한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 “이런 장인의 작업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시계와 같아서, 작은 먼지 하나라도 전체의 균형을 뒤흔들 수 있으니까요.”
“물론입니다!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요.” 강 경감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율은 시신 앞에 멈춰 서서 한동안 엘리엇 경의 얼굴을 응시했다. 죽음의 고통은 잠시, 그의 얼굴에는 깊은 번민과 함께 알 수 없는 의문이 서려 있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단검의 손잡이를, 그리고 그 손잡이에 새겨진 정교한 문양을 따라 움직였다.
“단검은 피해자의 소유입니까?”
“네. 작업실 한편에 장식되어 있던 것입니다. 엘리엇 경이 직접 설계했다고 알려진 고대 유물 모조품입니다.”
하율은 시선을 단검에서 떼어내 주변을 훑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놋쇠 파이프들의 복잡한 미로, 천장의 거대한 증기압 게이지, 벽에 걸린 수십 개의 톱니바퀴 모형, 그리고 작업대 위에 놓인 돋보기와 드라이버 세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지나쳤다. 진아는 하율의 시선이 머무는 곳마다 재빨리 메모를 남겼다.
“방의 모든 잠금장치를 확인했습니다. 외부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강철 빗장은 견고하고, 시계태엽 잠금장치는 정교해서 강제로 열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겁니다. 게다가 엘리엇 경은 살아생전에도 자신의 작업실 보안에 극도로 민감했죠.” 강 경감이 설명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율은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작업대 위, 엘리엇 경의 시신에서 불과 한 뼘 떨어진 곳에 놓인 작은 놋쇠 오토마톤의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완벽함이 오히려 의문스럽군요.”
“의문스럽다니요? 오히려 완벽하게 닫혀있다는 증거 아닙니까?” 강 경감이 반문했다.
하율은 대답 대신, 오토마톤의 어깨에 남아있는 미세한 흠집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흠집은 아주 작았지만, 그 주위로 얇게 쌓인 기름때가 살짝 지워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주 최근에 이곳을 건드린 것처럼.
“진아.”
“네, 탐정님.”
“이 오토마톤의 움직임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있습니까?”
진아는 재빨리 기록을 뒤졌다.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어젯밤입니다. 경비원이 순찰 중 작업실 안에서 엘리엇 경과 함께 오토마톤이 움직이는 것을 봤다고 합니다. 엘리엇 경의 새로운 걸작이라고 했습니다.”
하율은 고개를 끄덕였다. “강 경감, 혹시 엘리엇 경이 개발하던 새로운 장치 중에 ‘공기압을 이용한 원격 제어 시스템’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강 경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그건… 기밀 사항이지만, 그런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하율은 엘리엇 경의 시신에서 몇 발짝 떨어져 나와, 방 한가운데에 섰다.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숨 쉬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고개를 들어 방의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은 온통 놋쇠 파이프와 톱니바퀴, 그리고 수많은 증기압 게이지들로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거대한 시계의 내부처럼 보였다. 그 정교한 기계 장치들 사이에서, 무언가 미묘한 불협화음이 하율의 예민한 감각에 포착되었다.
“강 경감. 이 방은 겉보기엔 완벽한 밀실이지.” 하율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하지만, 완벽한 것은 언제나 어딘가에 허점을 숨기고 있기 마련이야.”
그는 다시 시선을 천장에서 바닥으로 내렸다. 그의 눈빛은 어느새 차갑고 날카로운 탐색광선으로 변해 있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인을 저지른단 말입니까?!” 강 경감이 반쯤 비명을 질렀다.
하율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것은 차갑고도 확신에 찬 미소였다.
“이 방은 완벽하게 닫혀 있었지만, 동시에 완벽하게 열려 있었어.”
그는 한 손을 들어올려, 엘리엇 경의 시신 옆에 꽂혀있는 놋쇠 단검을 가리켰다.
“살인자는… 우리 모두가 간과한 ‘제5의 문’을 이용했지.”
강 경감과 진아의 눈동자가 동시에 커졌다. 제5의 문? 그들은 방 안의 모든 것을 다시 훑었지만, 그 어떤 비상구도, 비밀 통로도 보이지 않았다.
하율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특정 지점에 꽂혀 있었다. 마치 그곳에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듯.
“자, 진아. 기록해 둬.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 방 자체가 흉기였어.**”
차가운 금속의 비명 소리가 아직도 이 방을 맴도는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