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은 짙고, 축축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하실 깊숙한 곳, 낡은 횃불 세 개가 희미한 오렌지색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불빛 아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고뇌와 절박함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황성 병사들이 서쪽 길목까지 막았어. 물자는커녕, 작은 쥐 한 마리도 드나들 수 없을 거야.”

먼저 입을 연 것은 한지아였다. 검은 천으로 감싼 머리칼 아래로 날카로운 눈매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단단함 대신 희미한 균열이 느껴졌다. 지아는 해방군의 핵심 전력이자, 이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그녀마저 흔들릴 지경이라는 건, 상황이 최악이라는 의미였다.

“제국의 압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북부 주둔군의 지원 병력이 합류한다면, 이 산골짜기마저 안전할 수 없을 겁니다. 탈출로를 찾아야 합니다. 혹은… 항복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김도윤이 냉정한 현실을 짚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한숨 섞인 말은 그 역시 절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도윤은 해방군의 군량이자, 가장 현실적인 판단을 내리는 두뇌였다. 그의 말은 언제나 뼈아픈 진실을 담고 있었다.

묵묵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휘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차분했다.

“항복은 없어. 그리고 탈출도 무의미해. 제국은 우리 모두를 끈질기게 쫓을 거야. 설령 몇 명이 살아남는다 해도, 다시 일어설 기회는 오지 않아.”

지아의 시선이 강휘에게 꽂혔다. “그럼 뭘 어쩌자는 거야? 자네의 ‘미래 지식’이라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아닌가? 이번엔 도저히 길이 보이지 않아.”

강휘는 가느다란 횃불의 불꽃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수많은 시간과 기억이 스쳐 지나가는 듯한 깊이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스물 중반의 청년이었지만, 그 눈빛은 천 년을 살아온 현자와 같았다.

“있어. 오히려 이번 기회가 우리가 판세를 뒤집을 유일한 순간이지.”

도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판세를 뒤집어? 강휘, 자네의 과거 예언들이 수차례 맞아떨어졌다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은 다르네. 제국은 성난 짐승처럼 날뛰고 있고, 우리는 사냥당하는 들쥐 신세야. 대체 무슨 수로?”

강휘는 바닥에 놓인 오래된 지도를 펼쳤다. 낡고 해져서 자세한 지형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주요 거점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 점을 짚었다.

“이곳. 황성 북동쪽에 위치한 제1곡창지대.”

지아와 도윤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미친 소리 마! 그곳은 제국에서 가장 삼엄한 곳 중 하나야! 곡창을 노리다니,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 지아가 날카롭게 반박했다.

“맞아. 평소라면 꿈도 못 꿀 일이지. 하지만 지금은 달라.” 강휘는 단호하게 말했다. “사흘 뒤 밤, 황성 병력의 절반이 북방 주둔군을 지원하기 위해 이동할 거야. 제1곡창지대를 지키던 정예 병력 상당수도 이때 함께 움직일 거다.”

도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북방 주둔군 지원? 그건… 우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정보인데. 자네는 그걸 어떻게…?”

강휘는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빛은 한층 더 깊어졌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지. 중요한 건, 그날 밤, 대규모 황실 연회가 열린다는 거야. 황제는 자신의 즉위 10주년을 기념해 성대한 잔치를 벌일 거고, 경비는 외곽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어.”

지아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강휘의 말에 담긴 가능성을 직감한 듯했다. “경비가 분산된다면… 뚫고 들어갈 틈이 생긴다는 건가?”

“정확해.” 강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이 아니야. 우리는 단순히 곡창을 노리는 게 아니야. 곡창은 미끼다. 우리가 노리는 건, 황제의 심장이다.”

장내에 숨죽인 침묵이 흘렀다. 황제의 심장을 노린다는 말은, 감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역모 중의 역모였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설마… 황제를 암살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도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암살은 아니야. 우리는 제국의 혼란을 노리는 거야. 제국은 정보로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이지. 그 정보의 핵심을 마비시키면, 아무리 거대한 괴물이라도 잠시 휘청거릴 수밖에 없어.” 강휘의 손가락이 다시 지도의 한 점, 황궁 내의 한 건물을 가리켰다. “황실 연회가 열리는 그날 밤, 황제는 반드시 자신의 친위대장 ‘칼릭스’에게 공로를 치하하며 특별한 술잔을 내릴 거야.”

“술잔? 그게 왜 중요하단 말인가?” 도윤이 의아해했다.

“그 술잔에는… 제국의 모든 병력 이동 경로와 주둔 정보를 담은 비밀 암호가 새겨져 있지. 칼릭스는 그걸 받자마자 비밀리에 파기할 테지만, 우린 그 전에 확보해야 해.” 강휘의 눈이 빛났다. “그 암호만 손에 넣으면, 제국의 병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우리는 그 정보를 활용해서 제국을 내부에서부터 교란시킬 거야. 그 혼란 속에서, 비로소 백성들이 봉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거다.”

지아는 강휘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점차 혼란에서 확신으로 바뀌어갔다. 그녀는 강휘가 과거에 겪었던 일들, 그리고 그로 인해 얻게 된 ‘미래 지식’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비록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강휘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믿어볼 만해.” 지아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 단단함을 되찾았다. “하지만 곡창은 어떻게 할 거야? 곡창을 공격한다는 소문만으로도 제국은 병력을 동원할 텐데.”

“우린 곡창을 공격하는 척만 할 거야.” 강휘가 섬뜩하리만치 냉정하게 말했다. “최소한의 병력으로 혼란을 야기하고, 제국의 시선을 곡창으로 돌리게 만드는 거지. 그 사이, 정예 요원들이 황성 깊숙이 침투해서 술잔을 확보하는 거다. 도윤, 자네는 곡창 쪽을 지휘해서 제국의 병력을 유인하고, 지아, 자네는 나와 함께 황성에 잠입한다.”

도윤은 한숨을 쉬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하지만… 자네가 그토록 확신한다면, 어쩌면….”

그의 말을 듣던 다른 해방군 병사들의 얼굴에도 희미한 희망과 함께 강렬한 결의가 떠올랐다. 모두가 죽을 각오를 하고 싸워왔지만, 이처럼 명확한 목표와 가능성을 제시받은 적은 없었다.

강휘는 지도의 위에 놓인 횃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불꽃이 그의 손가락을 스쳐 지나가는 듯 아슬아슬했다.

“이번 작전은 우리의 모든 것을 건 최후의 도박이다. 실패하면 모두가 죽고, 제국은 더욱 견고해질 거야. 하지만 성공한다면… 우리는 제국의 심장을 관통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강휘의 눈빛은 마치 다른 세상의 불꽃을 담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지아와 도윤, 그리고 다른 모든 해방군 전사들을 꿰뚫었다.

“우리에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망설일 시간도 없어.”

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좋아. 준비하자.”

어둠 속, 죽음의 기운과 함께 희망의 불씨가 춤추기 시작했다. 황궁의 그림자는 거대하고 견고했지만, 그들 앞에는 과거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한 남자의 강렬한 의지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의지는, 곧 거대한 불길이 되어 제국의 하늘을 태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흘 뒤 밤, 제국의 심장이 깨어날지, 아니면 다시 한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밤이 제국과 백성들의 운명을 영원히 바꿀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