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지옥 문턱에서 얻은 두 번째 기회

차가운 빗줄기가 스산한 바람을 타고 뺨을 후려쳤다. 낡은 점퍼 깃을 바싹 세웠지만, 이미 체온은 바닥을 친 지 오래였다. 눈앞에 펼쳐진 도시의 야경은 화려하기 그지없었지만, 현우의 눈에는 그저 저를 조롱하는 빛의 잔치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 빛들 중 단 하나라도 저를 위한 것이 있었던가. 단 한 줌의 따스함이라도 제게 허락되었던가.

“하….”

메마른 한숨이 비 섞인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손에 쥐어진 소주병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쓰디쓴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폐부까지 얼얼하게 만들었지만, 취기는 쉬이 오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너무 깊이 가라앉아 어떤 감각도 저를 흔들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일지도 몰랐다.

현우는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낡은 다리 난간에 기댔다. 아래로는 검은 강물이 말없이 흐르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마지막 선택을 하는 곳. 저 또한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이 지점에 서 있었다. 모든 것을 잃었다. 아니, 모든 것을 빼앗겼다. 가장 믿었던 친구에게.

그 이름 석 자가 떠오르자마자, 심장이 끓어오르는 듯한 고통이 현우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준혁.*

그는 현우의 유일한 친구이자, 가장 강력한 동료였다. 피를 나눈 형제보다 더 굳건한 유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둘은 함께 밤낮없이 매달려 ‘천공의 씨앗’이라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현우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준혁의 뛰어난 사업 수완이 합쳐진다면, 분명 세상을 뒤흔들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확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천공의 씨앗’은 세상을 뒤흔들었지만, 그 성공의 과실은 오직 이준혁의 몫이었다.

“현우야,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어! 어서 빨리 계약서에 사인해. 자본금은 내가 끌어올게.”

수년 전, 그가 환하게 웃으며 내민 계약서에 현우는 의심 한 점 없이 서명했다. 그에게 ‘친구’는 비즈니스 서류의 깨알 같은 조항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지녔으니까.

그러나 그 가치는 철저하게 짓밟혔다.

준혁은 현우의 지분을 몰래 잠식했고,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을 빼돌려 자신의 이름으로 특허를 출원했다. 회사가 막대한 성공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그는 현우에게 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웠다. 치밀하게 조작된 장부와 증거들이 쏟아져 나왔고, 현우는 졸지에 동업자의 돈을 빼돌린 파렴치한 사기꾼으로 전락했다.

언론은 현우를 매도했고, 투자자들은 등을 돌렸다. 한때 촉망받던 젊은 사업가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모든 재산이 압류되고, 사회적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그가 애써 쌓아 올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언제나 따뜻한 미소와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던 친구, 이준혁이 있었다. 그는 현우를 향해 싸늘하게 비웃었다.

“세상은 원래 약육강식이야, 현우야. 네가 너무 순진했던 거지.”

그 말 한마디가 현우의 영혼을 갈가리 찢어놓았다.

“젠장….”

현우는 주먹으로 난간을 내려쳤다. 낡은 철골이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손바닥이 얼얼했지만, 마음속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복수. 오직 그 생각만이 현우를 오늘까지 지탱하게 한 유일한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복수마저도 무의미해졌다. 이미 이준혁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고, 현우는 너무 깊은 바닥에 처박혀 있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일 해가 뜬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삶의 끈이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현우는 힘없이 난간을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비틀거리는 몸이 중심을 잃고 다리 밖으로 기울어졌다. 차가운 강물이 저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끝나는 건가.’

마지막 순간, 귓가에 맴도는 것은 이준혁의 비웃음 소리였다.

그때였다.

쿵!

머리가 깨질 듯한 충격과 함께 온몸을 꿰뚫는듯한 날카로운 고통이 밀려들었다. 시야가 순간적으로 암전 되며 모든 감각이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뇌리를 스친 것은 저를 밀어내는 듯한 강렬한 빛의 폭발이었다. 차가운 강물이 아니라, 무언가 강력한 힘이 저를 덮쳐오는 느낌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현우는 본능적으로 그 빛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 * *

“크윽….”

찢어지는 듯한 두통에 현우는 무의식적으로 신음하며 눈을 떴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간신히 들어 올린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선 천장이었다. 하지만 낯설다고 하기엔 어딘가 익숙한, 하지만 동시에 아득히 먼 기억 속의 풍경이었다.

“병원…인가?”

현우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의 관절이 삐걱거리는 듯한 고통에 다시 풀썩 쓰러졌다.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가에 드리워진 낡은 체크무늬 커튼. 작은 나무 책상 위에는 빛바랜 전공 서적들이 쌓여 있었고, 꼬질꼬질한 컵라면 그릇이 뒹굴고 있었다. 벽에는… 현우가 한참 젊은 시절에 좋아했던 록밴드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포스터 아래, 작은 탁상시계가 놓여 있었다.

’20xx년 5월 15일.’

현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이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시계를 몇 번이고 다시 확인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날짜는 선명하게 ’20xx년 5월 15일’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은… 현우가 이준혁과 ‘천공의 씨앗’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하고, 첫 번째 투자 유치에 성공했던 바로 그날이었다. 모든 불행이 시작되기 *전*의 날짜.

창밖을 내다봤다. 낡은 옥탑방에서 보이던, 익숙한 대학가 풍경. 그 사이에 몇 년 전 없었던 높은 건물이 사라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도 확연히 달랐다.

꿈인가? 아니, 이 생생한 감각이, 이 두통과 근육통이 어찌 꿈일 수 있을까. 현우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손을 뻗어 탁상에 놓인 낡은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아직 액정 화면에 금이 가지 않은, 한참 구형 모델의 폰이었다.

화면을 켜자, 뜬금없이 오래된 벨소리가 울렸다. 액정에 표시된 이름은… [준혁].

현우는 마치 뜨거운 불에 데인 것처럼 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준혁. 그 이름이 다시금 심장을 조여왔다.

전화는 계속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준혁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명랑하고, 아무런 죄의식도 없는 순수한 친구의 목소리였다.

“현우야! 드디어 천공의 씨앗에 투자 유치 성공했다! 대박이야, 대박! 얼른 나와서 한잔 하자! 내가 쏜다!”

그의 목소리가 현우의 귓가에 박혔다. 이 명랑한 목소리 뒤에 숨겨진 악의를 현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준혁아.”

목소리가 갈라졌다. 준혁은 현우의 목소리를 눈치채지 못한 듯 들떠서 떠들어댔다.

“어, 현우야? 왜 목소리가 그래? 혹시 어제 내가 사준 싸구려 와인에 체했냐? 하하하! 야, 걱정 마. 이제 우리 대박 날 거니까, 앞으로는 비싼 것만 마시게 될 거라고!”

준혁의 말에 현우는 이를 악물었다. 비싼 것만 마시게 될 거라고? 그래, 너는 비싼 것을 실컷 마셨겠지. 내 인생을 짓밟고 올라서서.

전화기 너머의 준혁은 여전히 재잘거리고 있었다. 앞으로의 찬란한 미래에 대해, 둘의 성공에 대해. 그 모든 달콤한 말들이 현우에게는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다시 한번, 절망감과 함께 복수의 불길이 현우의 심장을 집어삼켰다.

**돌아왔다.**

정말 기적처럼, 지옥 문턱에서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현우는 손에 쥐어진 폰을 꽉 움켜쥐었다. 준혁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현우의 눈은 이미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고통과 절망으로 점철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에 선 한 남자.

이준혁.

“그래, 준혁아.” 현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놀랍도록 차분하고 단단했다. “그래야지. 내가 너한테 딱 맞는 비싼 와인, 제대로 대접해 줄게.”

그것은 단순한 와인이 아니었다. 피와 눈물로 얼룩진, 복수의 잔이었다.

과거의 현우는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미래를 알고 있었다. 이준혁의 흉계를 알고 있었고, 그의 약점도 알고 있었다.

눈을 감았다. 다시 뜨는 순간, 현우의 눈동자에는 더 이상 절망이나 혼란은 없었다. 오직 차가운 분노와 날카로운 결의만이 번뜩였다.

‘이준혁. 각오해라.’

‘이번에는 네가 지옥을 맛볼 차례다.’

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삐걱거리는 몸이었지만, 그의 내면은 강철처럼 단단해지고 있었다. 게임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니, 다시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현우가 반드시 승자가 될 터였다. 완벽하고 처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