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역사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27화: 칠흑 속 한 줄기 빛

밤은 숨 막히게 차가웠다. 스산한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들어, 누더기를 걸친 사내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러들게 했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만은 굶주린 들짐승처럼 이글거렸다. 저 멀리, 거대한 성채처럼 우뚝 솟은 풍년곡창(豊年穀倉)이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곡창의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희망을 훔쳐내야 하는 밤.

“모두 제자리인가?”

낮게 깔린 강휘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퍼졌다. 그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다. 전장에서 수없이 들려오는 파공성(破空聲)처럼, 긴장감으로 팽팽하게 조여진 공기를 갈랐다. 서윤이 등 뒤의 활시위를 어루만지며 대답했다.

“달수와 별이는 서쪽 담장에 붙었다. 동쪽은 내가 맡는다. 휘발꾼들은 준비 완료.”

휘발꾼이라 불리는 이들은, 천룡 제국의 눈을 피해 간신히 모은 기름과 헝겊을 이용해 화염을 다루는 자들이었다. 이들이 제국의 곳간을 향해 움직이는 순간, 그들의 심장 또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으리라.

“좋다.” 강휘는 턱을 매만졌다. “계획대로, 감시탑의 등불이 꺼지는 동시에 진입한다. 서윤은 곡창 동쪽 구역의 순찰병을 처리하고, 휘발꾼들은 중앙 출입구 쪽을 교란해. 그 사이에 우리는 서쪽 창고로 들어간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강휘에게로 향했다. 그는 비록 여위었지만, 그가 내뿜는 결연한 의지는 주변의 모든 불안을 잠재우는 듯했다. 한때 제국의 수도에서 이름을 날리던 학자였던 강휘는, 이제 제국의 심장에 칼을 꽂으려는 새벽별의 수장이 되어 있었다.

“기억해라. 우리는 도적이 아니다. 우리는 굶주린 자들의 희망이다.”

그의 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도적, 희망. 그 간극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고뇌하고 싸워왔다. 하지만 제국의 탐욕으로 인해 백성들은 굶어 죽어가고, 수확의 대부분이 황실과 귀족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현실 앞에서, 그들의 선택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때, 저 멀리 감시탑의 등불 하나가 흔들리더니, 이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그라졌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신호음이 울렸다. 달수의 솜씨였다.

“움직여라!”

강휘의 명령이 떨어지자, 새벽별 대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움직였다. 흙먼지 흩날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듯, 모두가 그림자처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서윤은 활시위를 당겨 저 멀리 어둠 속에 선 감시병의 심장을 노렸다. ‘쉬익’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가 박히고, 몸을 가누지 못한 감시병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나 처리.” 서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엎드린 채 다음 목표를 물색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십여 년간 이어진 전쟁과 폭정으로 인해 해이해질 대로 해이해져 있었다. 그들의 훈련은 형식적이었고, 경계는 느슨했다. 그것이 바로 새벽별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그 사이, 휘발꾼들은 준비해 온 불붙은 헝겊 뭉치를 날려 곡창의 다른 쪽 벽에 붙였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어둠을 찢고 치솟았다.

“불이야!”

제국군 병사들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혼란은 순식간에 번졌다. 강휘와 그의 대원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서쪽 창고의 잠겨진 문으로 다가섰다. 달수가 능숙하게 빗장을 풀었고, 낡은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

퀘퀘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곡식 특유의 구수한 향이 뒤섞인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창고 안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거대한 쌀가마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려 죽어가는데, 이곳에는 썩어날 만큼의 양식이 쌓여 있는 것이다. 강휘의 주먹이 저절로 쥐어졌다.

“자, 어서 옮겨라!”

대원들이 재빨리 움직여 어깨에 짊어질 만한 작은 자루들에 쌀을 담기 시작했다. 묵직한 곡식의 무게는 지친 어깨에 오히려 활력을 불어넣는 듯했다. 이 쌀 한 톨, 한 톨이 곧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의 손길을 재촉했다.

“서둘러야 한다. 제국군이 곧 이곳으로 몰려올 거다!” 강휘는 주위를 살폈다. 예상대로,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는 창고 깊숙한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저 끝에, 다른 창고들과는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철문 하나가 보였다. 평범한 곡창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견고하게 잠긴 철문이었다.

“이곳에 뭐가 있기에….”

강휘는 호기심에 이끌려 철문으로 다가섰다. 투박한 자물쇠는 제국에서 가장 정교한 방식이었다. 보통의 자물쇠는 아니었다. 달수가 다가가 철문을 살폈다.

“이건… 보통 물건이 아닌데요. 아마 제국의 중요한 서류나 귀한 보물이 보관된 곳일 겁니다.”

달수의 말에 강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곡창에 보물이라니. 어쩌면 단순한 양식 그 이상을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망치나 쇠지렛대 없나? 자물쇠를 부숴라.”

강휘의 명령에 대원 하나가 달려와 쇠지렛대로 자물쇠를 부수기 시작했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부서지고, 달수가 조심스럽게 철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곡식이 아니라, 눈부신 금속의 빛이었다. 강휘와 대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창고 안에는 거대한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상자 뚜껑이 열린 곳에서는 번쩍이는 황금이 가득했다. 동전, 주괴, 보석 박힌 장신구들… 제국이 백성들의 피땀으로 착취한 부가, 썩어가는 양식과 함께 이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것은…!” 서윤이 뒤늦게 달려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강휘의 얼굴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 분노, 허탈감,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차가운 결의. 그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모두 멈춰라!”

강휘의 외침에 대원들은 일순 동작을 멈췄다. 그의 눈은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이 황금을 챙겨라. 쌀과 함께! 이것은 제국의 피가 아니라, 우리가 되찾아야 할 정당한 대가다!”

그때였다. 밖에서 제국군 병사들의 외침과 함께 철컥거리는 무기 소리가 창고 문 바로 앞까지 다가섰다.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거야?! 문을 부숴라!”

거친 발길질과 함께 낡은 창고 문이 ‘쾅!’ 하고 울렸다. 당장이라도 문이 부서져 들어올 듯했다. 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서렸다.

“젠장… 발각된 건가?!”

강휘는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쌀과 황금을 모두 챙겨 안전하게 철수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는 서윤을 돌아봤다.

“서윤! 쌀을 옮긴 대원들과 함께 먼저 철수해라. 최대한 많은 양을 가져가!”

“그럼 당신은요?” 서윤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

“나는… 시간을 끌겠다.” 강휘는 굳은 표정으로 허리춤의 단도를 움켜쥐었다. “이 황금을 놓칠 수는 없어. 이것은 우리 백성들의 희망을 살릴 씨앗이다!”

문이 ‘콰쾅!’ 소리를 내며 거의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금세라도 병사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강휘의 눈빛이 창고 깊숙한 곳의 황금을 향했다. 그리고 그 옆에 놓인, 또 다른 굳게 닫힌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 다른 상자들보다 훨씬 작고 섬세하게 만들어진, 은빛 장식이 박힌 상자였다. 무엇이 들어있을지는 모르지만, 왠지 모를 강한 이끌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건 뭐지…?’

그가 상자에 손을 뻗는 순간, 창고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모두 무기를 들어라! 반역자들을 잡아라!”

제국군 병사들이 창고 안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에는 번쩍이는 탐욕과 잔혹함이 가득했다. 강휘는 빠르게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황금이 아니라, 낡고 빛바랜 두루마리 하나가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재빨리 움켜쥐었다.

“강휘! 어서!” 서윤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강휘는 두루마리를 품에 안고, 제국군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비장한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과연 이 두루마리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는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밤은 깊어지고, 곡창은 피와 불길의 그림자로 물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