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습한 기운이 지배하는 ‘망자의 심장’은 언제나 그랬듯 탐험가들의 신경을 옥죄었다. 축축한 공기, 미약하게 흔들리는 마나석 랜턴 빛에 비치는 기괴한 형상의 석상들,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 울리는 듯한 불길한 저음. 강태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벌써 사흘째, 식량은 바닥을 보이고 체력도 한계에 달해 있었다.
“태인 씨, 저기… 뭔가 이상해요.”
앞서 가던 서연이 멈춰서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탐지 수정이 붉은빛으로 격렬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일반적인 마력 반응과는 확연히 다른, 불규칙적이고 압도적인 파동이었다.
“또 뭐냐, 이번엔.” 태인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지난 사흘간 놈의 심술궂은 장난에 지쳐 있었다. 심연의 망령, 땅속을 기어 다니는 그림자 벌레 떼, 뼈로 이루어진 거인까지. 이 던전은 존재 자체가 악의적인 농담 같았다.
서연이 가리킨 곳은 거대한 홀의 중앙이었다. 둥근 천장까지 닿을 듯한 기둥들이 홀을 지탱하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닳아빠진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주변의 바닥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기이한 문양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래된 피가 응고된 듯한 짙은 붉은색, 그리고 그 위를 수없이 겹겹이 흐르는 검은 문자들이 마치 꿈틀거리는 뱀처럼 보였다.
“이건… 고대 문명인들의 기록 같아요.” 서연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녀는 역사와 고대 문명 연구에 조예가 깊었다. “제가 아는 어떤 기록과도 일치하지 않아요. 미지의 문양이에요. 하지만… 이 마력 파동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 같아요.”
그 순간, 홀의 사방에서 섬뜩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망자의 병사들이었다. 뼈와 낡은 철갑으로 이루어진 존재들은 칼과 방패를 들고 태인과 서연을 향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왔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렸지만, 수적 우위는 압도적이었다.
“젠장, 이런!” 태인은 이를 악물었다. 랜턴을 바닥에 던져 어둠 속을 밝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절망 그 자체였다. 최소 오십은 넘어 보이는 병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서연 씨, 저 제단 쪽으로!” 태인은 외치며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전문은 정면 돌파가 아니었다. 기동성과 빠른 판단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게 특기였다. 그러나 이처럼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는 그의 장점이 무의미해졌다.
척! 척! 척!
망자의 병사들의 발걸음이 울려 퍼질 때마다 홀 전체가 진동하는 듯했다. 태인은 가장 먼저 돌진해오는 병사의 턱 밑을 걷어차고, 방패 뒤로 숨은 다른 병사의 목을 단검으로 베어냈다. 낡은 뼈들이 부스러지는 소리가 귓가를 찢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한계가 있었다. 뒤에서 날아온 칼날이 그의 어깨를 스치며 살점을 찢었다.
“크윽!”
“태인 씨!” 서연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작은 단총을 들고 맹렬히 견제 사격을 하고 있었지만, 이 썩어가는 시체들은 머리를 날려버려도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점점 더 좁아지는 포위망. 태인은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제단 쪽으로 몸을 날렸다. 몇몇 병사들이 제단 위로 뛰어올라 그를 향해 창을 겨눴다. 살과 뼈가 뒤섞인 역겨운 악취가 코를 찔렀다.
절체절명의 순간, 태인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창날이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제단 중앙의 바닥에 박혔다. 동시에 그의 손바닥이 바닥의 기이한 문양 중 하나에 닿았다. 차가운 돌의 감촉. 그리고… 이질적인 무언가가 그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찌릿!
마치 수억 볼트의 전기가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태인의 눈앞에 섬광이 터져 나왔고, 제단에 새겨진 모든 문양이 일제히 붉은빛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거대하고 웅장한 기운이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뭐… 뭐야!” 서연이 경악하며 외쳤다.
망자의 병사들이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텅 빈 눈동자에 불안정한 붉은빛이 번뜩였다.
태인의 손바닥에서 시작된 붉은 문양의 빛은 그의 팔을 타고 어깨, 가슴, 그리고 온몸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마치 그의 심장이 아닌, 거대한 태고의 심장이 그의 가슴 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언어들이 그의 뇌리에 파고들었다.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소리 하나하나가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콰아아앙!
태인의 몸에서 붉고 검은 마력의 파동이 폭발했다. 원형으로 퍼져나간 파동은 가장 가까이 있던 망자의 병사들을 산산조각 냈다. 낡은 뼈와 철갑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홀 전체에 울려 퍼지던 불길한 울음소리가 일순간 정지했다. 나머지 병사들도 뒤로 물러서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태인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은 이제 그의 피부와 완벽하게 융합되어 있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전례 없는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리던 존재에게 물을 건넨 듯한, 아니, 그 이상의 만족감이었다.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깨어났다.
“태인 씨… 괜찮아요?” 서연이 조심스럽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녀의 눈빛은 경외감과 두려움으로 뒤섞여 있었다.
태인은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이전과는 다른 깊고 붉은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멀리 떨어진 망자의 병사들을 응시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고대의 언어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홀의 바닥에 새겨진 모든 문양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더니, 붉은빛의 사슬들이 땅속에서 솟아올랐다. 사슬들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망자의 병사들을 칭칭 감싸 쥐었다. 병사들이 발버둥 쳤지만, 사슬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곧 수십 명의 망자의 병사들이 홀 중앙에 묶인 채 꼼짝도 못 하게 되었다.
태인은 자신에게 이런 힘이 발현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다 우연히 건드린 고대의 봉인. 그것이 그의 몸속에서 잠들어 있던 마법의 문을 열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더 큰 재앙의 서막일까. 그의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는 너무나 거대하고, 동시에 너무나 위험해 보였다. 망자의 심장은 더 이상 단순한 던전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 속에서 고동치는 이 고대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발밑의 홀이 그의 심장 박동에 맞춰 낮게 울리는 듯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과거의 강태인이 아니었다. 그는 미지의 힘에 잠식당한 채, 망자의 심장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과연 이 힘은 그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그리고 이 힘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일까.
다음 순간, 홀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묶여버린 망자의 병사들이 아닌, 훨씬 더 거대하고 불길한 존재의 울부짖음이 홀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것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고대 신의 분노와도 같았다.
태인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더욱 붉게 타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