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현월산맥의 삭막한 봉우리들은 늘 그의 오랜 친구이자 가혹한 스승이었다. 스무 해 남짓한 생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청운에게도 오늘만큼은 숨 막히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발아래 부서지는 마른 나뭇가지 소리조차도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르는 듯했다. 정체된 경지를 타파할 유일한 해답이 될지도 모를 영물, 은비호를 쫓는 중이었다.

은비호는 영물 중에서도 특히 영악하고 민첩하기로 유명했다. 달빛을 머금은 듯한 은회색 털은 주위 풍경과 완벽하게 동화되었고, 그 움직임은 마치 바람의 속삭임 같았다. 한 번 놓치면 백 년을 기다려도 다시 잡기 어렵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청운은 사흘 밤낮을 먹지도, 잠들지도 않고 녀석의 희미한 기운을 쫓았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차갑게 빛났다.

축 늘어진 숲의 가장 깊은 곳, 태고의 적막만이 흐르는 음침한 계곡. 바닥에 깔린 이끼와 축축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드디어, 저 멀리 바위 뒤에서 희미한 은빛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드디어…!”

청운의 입술 사이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순간 몸을 움츠리고, 주위의 영기를 끌어모았다. 심장이 쿵, 쿵, 귓가를 울렸다. 이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피가 차게 식는 듯했다.

쉬이익!

그의 몸이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처럼 사라졌다. 그가 발을 디뎠던 자리는 마치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 청운이 익힌 가장 기초적인 신법(身法) 중 하나인 ‘잔월비영(殘月飛影)’이었다. 단순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으로 적의 혼란을 유도하는 비기였다.

은비호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렸다. 야수의 본능은 숨죽인 청운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녀석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며 주위를 훑었다. 그러나 청운은 그림자보다 더 깊은 그림자였다.

‘기다려라… 좀 더, 좀 더….’

청운은 자신의 호흡마저도 잊은 채, 완벽한 순간을 기다렸다. 은비호가 발톱으로 땅을 한 번 찍고, 긴장한 몸으로 주위를 맴돌 때였다. 바로 그때!

콰앙!

청운의 몸이 벼락처럼 튀어나왔다. 그의 손에는 미리 준비해둔 짧은 비수, ‘운철’이 들려 있었다. 운철은 일반적인 영기에는 반응하지 않지만, 특유의 단단함과 날카로움으로 영물을 사냥하는 데 특화된 무기였다.

은비호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지만, 청운의 움직임은 이미 한 수 앞서 있었다. 비수가 녀석의 옆구리를 스치며 털을 흩날렸다. 비록 치명상은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은비호의 움직임이 한순간 흐트러졌다.

“이젠 끝이다!”

청운은 놓치지 않았다. 비수가 지나간 자리에 그의 모든 영기가 실린 주먹이 날아들었다. ‘파군권(破軍拳)’! 비록 완성되지 않은 비기였지만, 그 안에 담긴 파괴력은 일개 영물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크아아앙!

은비호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몸체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청운의 눈에 만족감이 스쳤다. 마침내 해냈다.

그는 조심스럽게 은비호에게 다가가 심장 부근을 갈랐다. 그 속에서 영롱하게 빛나는 푸른빛의 영핵(靈核)을 꺼내자, 청운의 손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 영핵이야말로 그가 염원하던 경지 돌파의 열쇠였다.

그때였다. 영핵을 쥔 청운의 발밑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은비호의 마지막 몸부림인가 싶었지만, 진동은 점차 강해졌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지하에서 울리는 듯했다.

콰드득! 콰르르릉!

발밑의 흙과 바위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청운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은비호가 쓰러진 자리, 그 거대한 몸체가 만들어낸 작은 웅덩이 아래에서 어둠이 끓어오르는 듯한 균열이 벌어졌다. 그 균열 속으로 짙은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영핵의 빛과 흡사하면서도, 훨씬 더 깊고 오래된 기운을 담고 있었다.

청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이곳 현월산맥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뚫고 있다고 자부했다. 수많은 영물들을 사냥하고, 숨겨진 약초들을 채취하며 모든 길목을 익혔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균열이, 이런 기운이 숨겨져 있었다니?

균열은 점점 더 커지더니, 이내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틈을 만들었다. 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냉랭한 공기는 깊은 지하 세계의 존재를 암시했다. 단순한 동굴이 아니었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너무나도 고고하고, 너무나도 압도적이었다. 마치 태고의 신선들이 거닐던 자취 같았다.

“이것은… 대체…?”

청운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심장은 영핵을 얻었을 때보다 더 강렬하게 고동쳤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강력한 이끌림이 그를 사로잡았다. 정체된 경지를 타파하려 영물을 찾아 헤맸던 것도, 결국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곳에 숨겨진 비밀은 분명 그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었다.

청운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균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칠흑 같은 어둠이 그를 집어삼켰고, 이내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이끌려 끝없이 깊은 나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손에 쥔 은비호의 영핵이 섬광처럼 푸르게 빛나며, 어둠 속에서 유일한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낙하했을까? 그의 몸이 딱딱한 바닥에 착지했다. 고통은 없었다. 대신, 발아래 느껴지는 감촉은 그 어떤 바위나 흙과도 달랐다. 차갑고 매끄러우며, 어딘가 인공적인 느낌이었다.

청운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사방은 온통 어둠뿐이었다. 그는 손에 쥔 영핵을 높이 들었다. 푸른빛이 주위를 밝히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숨을 들이켰다.

그곳은 동굴이 아니었다. 거대한 통로였다.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이와 폭을 가진 통로는 온통 알 수 없는 재질의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양들 사이로는 마치 살아있는 듯한 영기가 흘러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면서도, 완벽하게 보존된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힘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웠다.

“선대 문명의 유적… 인가?”

청운의 입에서 저절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현월산맥 깊숙한 곳에 잊혀진 고대의 유적. 전설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신선들이 사라진 후 함께 잊힌 문명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텅 빈 통로에 울려 퍼졌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약한 영기는 그의 정체된 경지를 자극하는 듯했다. 통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지하의 심장부로 이어지는 듯한 아득한 길이었다.

수많은 미스터리와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청운의 심장은 두려움 대신 알 수 없는 흥분으로 가득 찼다. 이곳은 그에게 새로운 시작을 약속하는 듯했다. 어쩌면,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꿀 거대한 비밀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곳.

그는 굳건한 발걸음으로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