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 하이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세계는 병들어 있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내려오던 ‘천강의 기운’이 소멸의 그림자를 드리운 이후, 만물은 생기를 잃고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흙은 메마르고, 강물은 흐름을 잃었으며, 드높던 산봉우리에는 기이한 균열이 생겨났다. 사람들은 이유 모를 병마에 시달렸고, 무림인들의 내공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절망의 그림자가 대지를 덮으려는 찰나, 오랜 침묵을 깨고 천신봉에서 신탁이 내려왔다.

「천하무신결을 개최하라. 천강의 심장을 다시 울릴 단 한 명의 무신을 찾아, 이 저무는 세계를 구원할지니.」

그리고 오늘, 천신봉의 정기가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땅에 만 년에 한 번 열린다는 천하무신결이 드디어 막을 올리려 하고 있었다.

장대하게 펼쳐진 천신봉 아래, 강진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앞에는 실로 아득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십만 인파가 산자락을 따라 운집해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로는 오색찬란한 무림 문파의 깃발들이 바람에 휘날리며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천신봉 정상은 신비로운 안개에 싸여 마치 다른 세계의 것처럼 보였다.

“사부님, 저것이…… 정말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까?”

강진의 목소리에는 경외와 함께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는 아직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은 젊은 무인으로, 그의 사부인 ‘운룡자(雲龍子)’를 따라 이 먼 길을 달려왔다. 운룡자는 강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럼.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이니라. 무림의 고수들이여, 명문가의 세력들이여, 혹은 천신만고 끝에 기연을 얻은 은둔 고수들이여. 이들은 모두 천강의 심장을 울릴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모여든 이들이지.”

운룡자의 눈빛은 강진과는 달리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운룡자의 희끗희끗한 수염이 바람에 살랑였다.

“천강의 기운이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의 활력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생명의 근원, 존재의 이치, 만물을 지탱하던 힘 그 자체가 소멸하는 것과 같으니라. 이를 막지 못하면, 이 세계는 서서히 숨을 거두고 사라질 것이다.”

강진은 고개를 숙였다. 최근 몇 년간, 그가 사는 벽촌에서도 매일같이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밭을 갈던 농부들이 이유 없이 쓰러지거나, 평생 메마르지 않던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고, 밤하늘의 별들이 예전보다 훨씬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저 자연의 변화라고만 생각했지만, 사부의 말을 들으니 그 모든 것이 이 천강의 기운 소멸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사부님, 그…… 천강의 심장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입니까?”

“천강의 심장은 이 세계의 핵이자, 생명의 근원. 오직 천신봉 정상에만 존재하는 고대의 유물이다. 오랜 옛날, 세상이 혼돈에 빠졌을 때 천신이 직접 내려와 박아 넣었다는 전설이 있지. 그 힘이 있기에 이 세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 심장이 병들어 버린 것이야.”

운룡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천하무신결은, 그 심장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다. 단순히 강함만을 겨루는 것이 아니다. 무학의 경지, 심성의 깊이,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계를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모두 시험받는 자리이니라.”

그때, 저 멀리서 웅장한 북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콰아앙! 콰앙! 거대한 소리가 산자락 전체를 뒤흔들자, 수십만 인파가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깃발의 펄럭임마저 멈춘 듯했다. 그 모든 시선이 천신봉의 정상으로 향했다.

천신봉 정상의 신비로운 안개가 걷히자, 거대한 비무대(比武臺)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비무대는 단순한 대지가 아니었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기이한 암석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암석 사이사이에는 붉게 빛나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비무대 주변으로는 거대한 수정 기둥들이 하늘을 꿰뚫을 듯이 솟아 있었고, 그 기둥들에서는 강력한 영력이 뿜어져 나와 주변 공간을 뒤틀었다.

“보아라, 진아. 저것이 바로 ‘운명지혈(運命之血)’ 비무대다. 저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 모든 참가자들은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게 되는 것이지.”

운룡자의 말에 강진은 다시금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무대 위에 홀로 서 있는 한 인물이었다. 온몸을 감싼 백색 도포, 허리에는 아무 장식 없는 검은 검을 차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뿜어내는 기운은 주변의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었다. 강진은 그 인물에게서 차가운 고요함과 동시에 폭풍 전야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그때, 비무대 주변의 수정 기둥들이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색찬란한 빛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그 빛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문자를 새겨 넣었다.

「천하무신결. 첫 번째 시련. ‘영기심원(靈氣心願)의 시험’.」

홀로그램이 사라지고, 비무대 중앙에 서 있던 백색 도포의 인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아래에 운집한 모든 인파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고 형언할 수 없는 시선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하의 운명을 걸고, 영혼의 각오를 증명하라.”

그 목소리가 천신봉 전체를 뒤흔들자, 강진의 가슴이 격렬하게 울렁였다. 그의 심장이 비명처럼 요동쳤다. 이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자신이 목격하고 있는 것이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니라는 것을. 이것은 이 세계의 생사를 결정할, 거대한 운명의 서막이었다.

그때였다.
수십만 인파 속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몇몇 인물들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세 개의 기운이 천신봉의 대기를 찢고 솟구쳐 올랐다.

서쪽에서는 마치 태양을 삼킨 듯한 붉은 기운이 용솟음쳤다. 강렬한 화염의 기운은 주변의 공기를 뒤틀고 땅바닥을 녹여내릴 듯했다. 동쪽에서는 푸른 번개가 하늘을 갈랐다. 번개의 기운은 날카롭고 거침없이 뻗어 나가며 모든 것을 베어버릴 듯한 예리함을 과시했다. 그리고 북쪽, 그림자처럼 음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마치 심연에서 기어 나온 듯 스멀스멀 대기를 잠식했다. 그 기운은 생명 있는 모든 것의 활력을 앗아가는 듯했다.

강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의 눈은 경악으로 가득 찼다.
세상은 아직 숨 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지든, 그들의 힘이 세계를 구원할지, 아니면 또 다른 파멸로 이끌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천하무신결의 첫 시련이 시작되려는 찰나였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