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황량한 바람이 불어왔다. 재개발 현장의 흙먼지는 현우의 콧구멍을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마스크 안으로도 뚫고 들어오는 흙냄새와 폐허의 잔해 냄새는 그의 스물다섯 해 인생에서 가장 익숙한 배경 냄새가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고고학자의 꿈을 꾸던 어린 시절의 현우는, 지금의 자신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쓰러져가는 낡은 건물 잔해를 뒤지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야, 김현우! 거기 좀 빨리 파 봐! 늦게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잖아!”

현장 반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현우는 마른기침을 하며 삽날에 힘을 주었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흙이 진득하게 뭉쳐 있었다. 삽으로 몇 번이나 내리찍고 나서야 겨우 흙덩이가 떨어져 나갔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그는 묵묵히 제 할 일을 계속했다. 오늘치 일당이라도 벌어야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지 않을 터였다.

그가 맡은 구역은 한때 주점이었던 건물의 지하층이었다. 곰팡이 냄새와 퀴퀴한 술 냄새가 뒤섞인 곳. 한낮에도 어둠이 가득한 지하에서, 현우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삽질을 계속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삽날이 묵직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돌멩이인가 싶어 다시 힘을 주어 밀어봤지만,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삽을 내려놓고 손으로 흙을 헤치기 시작했다. 끈적한 진흙을 걷어내자, 시커먼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그냥 녹슨 철 조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손으로 만져보니 매끄러웠다. 진흙을 털어내자,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을 머금은 듯한 검은색 금속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인 남성 손바닥만 한 크기였다. 금속치고는 너무나 부드러운 감촉에, 현우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게 뭐야…?”

그는 조심스럽게 금속판을 들어 올렸다. 묵직했다. 진흙을 대충 닦아내자,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한 도형과는 전혀 다른, 고대 문양으로 보이는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느 시대의 것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단지,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듯한 깊이와 신비함이 느껴질 뿐이었다.

그때였다. 금속판을 쥔 손바닥에서부터 미세한 진동이 울려왔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이면서도 강렬한 진동이었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환각인가?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건가?

그는 두 눈을 비볐다. 그러나 진동은 멈추지 않았고, 심지어는 금속판에서 미약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그것을 정확히 인지하기란 불가능했지만, 분명 무언가 변하고 있었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는 금속판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그러나 차마 놓을 수 없었다. 마치 자석처럼 그의 손에 들러붙은 듯한 기분이었다.

“뭐, 뭐야 이거…”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는 혹시나 저주받은 유물이라도 건드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금속판을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일당이고 뭐고,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야! 김현우! 일 안 하고 뭐 하냐!”

반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현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둠 속에서 저편의 빛을 등진 채 서 있는 반장의 모습이 꼭 악마처럼 보였다. 그는 서둘러 다시 삽을 들고 흙을 파기 시작했다. 손바닥 안에서 금속판이 여전히 미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감각이었다.

***

집으로 돌아온 현우는 씻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했다. 지하에서 발견한 그 검은 금속판 때문일까?

주머니에서 금속판을 꺼냈다. 침대 스탠드 불빛 아래에서, 금속판은 여전히 어둡고 깊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손가락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았다. 매끄럽지만, 동시에 거친 역사(歷史)가 느껴지는 기이한 감촉이었다.

“대체 넌 정체가 뭐냐…”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금속판에 완전히 사로잡혔다. 수천 년 전, 어떤 존재가 이 판을 만들었을까?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문양을 새겼을까? 고고학자의 꿈을 꾸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던 탐구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순간, 금속판에서 다시 한번 강렬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아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렬했다. 그의 손이 저릿해졌고, 금속판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두운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으윽!”

갑작스러운 빛과 진동에 현우는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그의 눈앞이 하얗게 번뜩였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주변의 모든 사물이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방 안의 벽지와 가구가 뒤틀리고 사라지는 기분. 그의 몸이 마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린 듯 휘청거렸다.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칼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웅성거림, 알 수 없는 짐승의 울음소리, 흙먼지가 이는 발자국 소리… 모든 감각이 뒤섞여 마구잡이로 쏟아져 들어왔다. 토할 것 같은 어지럼증과 함께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이게… 뭐야…!”

현우는 신음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고통이 끝나기를, 이 혼란스러운 감각들이 멈추기를 간절히 바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몇 초였을까, 아니면 몇 시간이었을까?

모든 것이 멈췄다.

고통도, 어지럼증도, 시끄러운 소리들도 일순간에 사라졌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방 안의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낡은 벽지 대신 거친 흙벽이 눈에 들어왔다. 형광등은 온데간데없고, 천장에는 짚으로 엮은 듯한 낮은 지붕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노트북 대신 정체 모를 짚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소리 또한 달랐다. 자동차 경적 소리 대신, 마차가 지나가는 듯한 바퀴 소리와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대화가 들려왔다. 익숙한 한국어이긴 했지만, 억양이나 사용되는 단어가 미묘하게 달랐다.

현우는 벌떡 일어섰다. 손바닥에 쥐어진 검은 금속판은 여전히 빛을 내뿜고 있었다.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봤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서울의 고층 빌딩 숲이 아니었다. 기와지붕이 끝없이 이어지는 낡은 한옥들,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사람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벽.

“말도 안 돼…”

그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차가운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이건 꿈이 아니었다. 너무나 생생하고,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여긴… 대체… 어디지?”

그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그가 책에서만 보아왔던 조선시대의 한양 도성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