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비아탄의 심장 – 1장. 심연의 메아리
어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인류가 상상하는 어떤 어둠보다 깊고, 짙으며, 영원에 가까운 침묵으로 가득 찬 곳. 우리는 그 어둠 속을 헤매는 작은 불씨였다. 탐사선 레비아탄호, 인류가 가장 멀리 보낸 거대 함선은 872일째 광활한 우주를 유영 중이었다. 목적지는 없었고, 임무는 오직 ‘미지의 개척’이었다. 그때였다. 항해사 박민준 일병의 다급한 경고음이 고요한 함교의 공기를 갈랐다.
“캡틴! 비상입니다! 미확인 개체 포착! 좌표 델타-792 섹터, 렐릭 성운 외곽입니다!”
김준혁 함장은 조종석을 등지고 서 있던 몸을 돌려 민준에게로 향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항해의 피로와 함께 지울 수 없는 냉철함이 어려 있었다. 짙은 회색 제복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의 굳건한 존재감을 더욱 강조했다.
“민준 일병, 진정하고 자세히 보고해.”
“네, 넵! 장거리 스캔에 잡힌 건데… 특이점이 너무 많습니다. 중력 왜곡도 없고,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천체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심지어 에너지 반응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에너지 반응이 없다는 말에 함교에 있던 수석 과학자 이서아 박사가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터치 패널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 호기심과 냉정한 분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에너지 반응이 없다? 그럼 어떻게 감지했다는 거지?”
“그게… 일종의 ‘공허’입니다. 주변의 모든 에너지를 흡수하는 듯한… 아니, 존재 자체가 주변 공간을 비틀어버리는 듯한… 그런 형태입니다.” 민준은 화면을 손으로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마치 우주 자체가 거부하는 구멍 같달까요?”
서아는 준혁의 옆에 다가서서 주 스크린에 띄워진 영상을 응시했다. 모니터에 잡힌 형상은 비현실적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그 자신만이 존재를 증명하듯, 주변의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듯한 검은 물질. 크기는 소행성만 했으나, 그 표면은 매끄럽고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띠고 있었다. 육면체도, 구도 아닌, 시선을 붙잡는 동시에 비틀어버리는 듯한 기묘한 각(角)들의 연속.
“이건…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형태가 아닙니다.” 서아의 목소리에서 드물게 흥분이 묻어났다. “어떤 금속이나 광물로도 설명이 안 돼요. 주변의 전자기장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그냥 거기에 ‘있습니다’. 모든 물리학 법칙을 비웃는 듯이.”
준혁은 스크린 속 미지의 개체를 노려보았다. 그의 함장으로서의 직감은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인류가 발 딛지 않은 미지의 공간에서 발견된 ‘완벽하게 인공적인’ 존재. 그것은 인류의 지식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파괴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접근 경로 설정.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거리는… 1광분 간격으로 유지해.” 준혁의 지시가 떨어졌다.
“1광분요? 캡틴, 너무 멀지 않습니까? 자세한 스캔은 불가능할 텐데요.” 민준이 반문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좋을 것 없다는 느낌이 드는군.” 준혁은 짧게 대답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검은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든 시스템 비상 대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라.”
레비아탄호는 거대한 몸체를 서서히 움직여 미지의 존재에게로 다가갔다. 우주의 고요 속에서 함선의 엔진음만이 미약하게 울렸다. 1광분, 0.5광분, 0.1광분… 거리가 좁혀질수록 서아의 분석 장비는 더 많은 이상 신호를 포착하기 시작했다.
“캡틴, 이상합니다! 아무런 물리적인 반응이 없다고 보고했는데… 제 센서가 과부하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파장인지는 불명확합니다만… 정신 교란 계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서아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섞였다.
“정신 교란?” 준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함교 인원, 보호막 강화! 정신 필터 가동!”
그러나 너무 늦었는지, 민준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젠장… 머리가… 누군가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들려요, 캡틴? 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저를 부르는 것 같아요!”
준혁 역시 민준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분명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할 고요한 함교에서, 그의 뇌리에 알 수 없는 낮은 파동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것은 언어라기보다는 감정의 흐름에 가까웠다.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한 열망 같은 것.
“민준 일병, 스캔 멈춰! 모든 장거리 스캔 중지!” 준혁이 소리쳤다.
“멈출 수 없습니다! 시스템이… 시스템이 제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절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준혁은 놀라서 스크린을 바라봤다. 레비아탄호의 위치 정보가 미친 듯이 움직이고 있었다. 함선이, 누구의 지시도 없이, 거대한 검은 유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서아 박사! 함선 제어권은?”
“사라졌습니다! 제가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제어 시스템이… 먹통입니다! 마치 함선 자체가 저 유물에게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거대한 레비아탄호는 마치 거대한 자석에 이끌리는 쇠붙이처럼, 멈출 수 없는 속도로 검은 유물에게 다가갔다. 함교 전체가 웅웅거리는 듯한 알 수 없는 진동에 휩싸였다. 그것은 물리적인 진동이라기보다는, 영혼을 뒤흔드는 듯한 무형의 파동이었다.
준혁은 이를 악물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본능적인 경고음이 그의 심장을 두드렸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본능적인 공포는 단순한 미지의 경외감이 아니었다. 마치 차가운 손이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이질적인 감각이었다.
레비아탄호는 마침내 유물에 닿을 듯한 지점까지 근접했다. 거대한 검은 유물은 이제 함교의 창밖을 온통 뒤덮을 정도로 거대해 보였다. 그 칠흑 같은 표면은 주변의 별빛마저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검은 표면 속에서, 마치 빛의 잔상처럼 희미하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너무나 깊고 짙어서 그림자를 드리울 그 어떤 존재도 상상할 수 없는, 오직 그 자체로 존재하는 심연의 그림자.
가장 가까이 다가섰을 때, 서아의 눈에 믿을 수 없는 것이 포착되었다. 검은 표면이, 아주 미세하게, 심장처럼 고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어둠보다 더 깊은 심연이 그녀를 응시하는 듯했다. 그녀의 뇌리에 알 수 없는 속삭임이 터져 들어왔다.
— *마침내… 왔다… 나의 품으로…*
그 순간, 레비아탄호는 거대한 검은 유물의 표면에 닿았다. 충격은 없었다. 대신, 함선 전체가 마치 녹아내리듯 유물의 표면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함교의 모든 불빛이 일제히 꺼지고, 오직 유물의 표면에서 흘러나오는 알 수 없는, 끔찍한 빛만이 어둠을 가득 채웠다.
준혁은 마지막으로 눈을 감기 직전, 거대한 검은 유물의 심장 박동 소리가 온 우주를 채우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어둠 속에서 깨어난 무언가였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그 심연의 심장부로 걸어 들어가는 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