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천랑산맥의 깊고 험준한 골짜기, 바람마저 칼날처럼 벼려진 기암괴석 사이를 한 젊은이가 조용히 누비고 있었다. 이름은 이진(李眞). 스물 남짓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깊은 눈매와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는, 허리춤에 찬 낡은 검과 등 뒤의 약초 바구니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치장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었을까, 짙푸른 잎이 우거진 덤불 속에서 희미한 기척이 느껴졌다.

스스스…….

풀잎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소리 같기도 했다. 이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눈동자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미약한 영력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청명안(淸明眼)’이었다.

“흐음… 과연.”

낮게 중얼거린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족히 백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아름드리 고목이 뿌리내린 바위틈이 있었다. 그곳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강렬한 생명력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지금 ‘푸른 뿔 짐승’을 추적 중이었다. 천랑산맥에서도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 영물로, 그 뿔 하나면 몇 년 치 수행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다고 알려진 귀한 존재였다.

이진은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고 바위틈으로 다가갔다. 푸른 뿔 짐승은 본래 영력이 뛰어난 자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했으니, 어쩌면 오늘이 기회일지도 몰랐다. 고요한 정적 속, 영력을 끌어모아 기척을 죽인 채 몸을 바싹 엎드렸다.

그때였다. 바위틈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뿔 짐승의 기운이 갑자기 요동쳤다. 마치 거대한 존재 앞에서 몸을 웅크리듯, 그 강렬하던 기세가 한순간에 잦아들더니, 이내 겁에 질린 듯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쉬이이익!

짐승은 이진의 존재조차 잊은 채, 헐레벌떡 바위틈 안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이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푸른 뿔 짐승이 이토록 겁에 질린 것은 처음 보았다. 단순히 위험을 감지한 것이 아니라, 마치 경외심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저 안에… 도대체 뭐가 있다는 거지?’

이진은 깊은 호기심에 이끌렸다. 영물을 쫓던 본래의 목적은 뒷전이 되었다. 그는 바위틈 안쪽에서 느껴지는 낯선 기운에 집중했다. 푸른 뿔 짐승의 기운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더 거대하고, 훨씬 더 오래된… 고요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파동이 느껴졌다.

조심스럽게 바위틈으로 향했다. 얼기설기 얽힌 덩굴과 이끼를 걷어내자, 바위틈 안쪽으로 길고 어두운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동굴 입구는 아니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은 듯 매끄럽게 다듬어진 벽면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설마… 고대 유적?”

이진의 심장이 쿵, 하고 크게 울렸다. 천랑산맥에는 오래전 멸망한 고대 문명에 대한 전설이 떠돌곤 했다. 그들은 신선에 가까운 존재들이었으며, 산맥 깊숙한 곳에 거대한 신전을 세웠으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전설이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진은 영력을 끌어올려 주변을 탐색했다. 입구 주변에는 희미하게나마 고대 영력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수천 년은 족히 지났을 법한 아득한 세월의 기운이었다.

그는 잠시 망설였다. 미지의 유적은 막대한 보물을 품고 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가득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푸른 뿔 짐승이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라, 압도적인 힘에 대한 경고였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망설임은 짧았다. 이진은 어린 시절부터 영력을 수련해왔지만, 배경도 없고 스승도 없이 홀로 떠돌았다. 늘 세상의 거대한 흐름 밖에서, 강자가 되기 위한 갈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 유적은 그에게 있어 거부할 수 없는 기회였다. 어쩌면 이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꿀 만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후우… 간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허리에 찬 검의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이진은 동굴 입구에 덮여있던 낡은 덩굴을 걷어내고,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고대 문양이 새겨진 석문을 발견했다. 석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나, 자세히 보니 한편에 희미하게 영력이 흐르는 장치가 보였다.

이진은 손가락 끝으로 그 장치를 눌렀다. 찌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석문 전체에 옅은 푸른빛이 돌았다. 이내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석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밀려들었다. 수천 년간 닫혀 있던 문이 마침내 열리는 순간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과 함께, 수천 년 된 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한 고대 영력의 기운이 이진을 덮쳤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진은 주저 없이 발걸음을 옮겨 어둠 속으로 들어섰다. 손가락 끝에서 푸른 영력을 응축해 작은 광명구를 만들어냈다. 빛이 퍼져나가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이게… 대체…”

그가 들어선 곳은 거대한 홀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았고, 사방의 벽면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벽면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그림들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어떤 그림은 우주를 유영하는 듯한 기이한 생명체를 묘사했고, 어떤 그림은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을 보여주었다. 그 모든 것은 현재의 문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질적인 형태를 하고 있었다.

바닥은 닳고 닳아 윤기가 사라진 검은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지만, 그 위에는 먼지 한 톨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모든 것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다만, 홀 중앙에는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거대한 힘이 이곳을 강타한 듯, 혹은 무언가가 이곳에서 맹렬하게 부딪힌 듯한 흔적이었다.

이진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벽화를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때 이곳을 지배했던 존재들의 기록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등에는 거대한 날개가 돋아 있었고, 손에서 빛을 뿜어내는 모습이었다. 그들이 숭배하는 듯한 존재는 별들의 사이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용과 같은 형상이었다.

‘신선들인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된 존재들인가?’

그는 한참을 벽화를 따라 걸었다. 벽화는 이곳의 존재들이 어떻게 강대한 영력을 얻었는지, 어떻게 문명을 이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침묵 속에 고하고 있었다. 마지막 벽화는 홀 중앙의 거대한 구조물이 폭발하는 듯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의 쇠락을 야기한 결정적인 사건일 터였다.

그때, 그의 시선이 홀 중앙의 한 조각 돌무더기에 멈췄다. 다른 돌들과 달리, 그 조각은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이진은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의 손이 그 조각에 닿으려는 순간, 돌 조각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지이잉!

이진의 온몸에 강력한 영력 파동이 스며들었다.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들이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다. 거대한 도시, 빛을 뿜는 존재들,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벅차오름이 그의 가슴을 휘감았다.

그 섬광이 사라진 후, 돌 조각은 더욱 선명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어떤 광물도, 어떤 영석도 아닌,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아홉 개의 면을 가진 정팔면체 형태의 조각이었다. 그 푸른빛 속에서 미세하게 고대의 문자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것은…!”

이진이 숨을 삼켰다. 그때였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진동이 유적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진이 서 있던 바닥이 크게 흔들리며 균열이 생겼다. 홀 안의 돌무더기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젠장, 대체 무슨…!”

그는 급히 몸을 일으켜세웠다. 진동은 홀 안에서 울려 퍼지는 둔탁하고 거대한 소리와 함께 더욱 강해졌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유적 깊숙한 곳에서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그 진동 속에서, 이진은 감지했다.

홀 저 너머, 유적의 심장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요하고 거대했던 유적의 기운과는 전혀 다른, 사납고 맹렬한 기운을.

이진은 손에 든 푸른 팔면체 조각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이곳이 단순한 유적이 아님을 직감했다. 수천 년의 잠에서 깨어난 무언가가, 이제 막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이었다.

어둠 속, 이진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광명구의 빛 속에서 더욱 깊게 빛났다. 미지의 위협 앞에서 그의 혈관 속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유적의 진정한 비밀은 이제부터 시작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