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연의 입구
세레나 마법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마법사 가문의 자제들은 물론, 평민 출신의 천재들까지 가슴을 설레게 하는 꿈의 전당이었다. 고풍스러운 첨탑들은 구름을 뚫고 솟아 있었고, 드넓은 정원에는 고대 마법으로 자라난 희귀한 식물들이 사계절 내내 찬란한 빛을 발했다. 도서관의 층계는 살아있는 지식으로 숨 쉬는 듯했고, 연습실에서는 밤늦도록 마법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아름다웠으며, 감탄을 자아냈다.
적어도, 강지혁이 지하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지혁아, 벌써 세 번째야. 그 책 페이지가 닳겠다.”
최유진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 도서관 공기를 갈랐다. 지혁은 들고 있던 『고대 문명 마법 유적의 재발견』이라는 두꺼운 책에서 겨우 시선을 떼어냈다. 그가 읽던 부분은 세레나 학원 아래에 존재했을지도 모를, 미지의 거대 유적에 대한 학설을 다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저 재미있는 가설일 뿐이라고 치부했지만, 지혁은 최근 들어 그 주장에 묘한 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괜찮아, 유진아. 이 책, 다음 주에 반납이야. 그전에 완전히 외워둘 작정이었거든.”
건성으로 대답하며 지혁은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사실 책 내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책 속의 글자가 아니라, 최근 며칠간 그를 사로잡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학원 어딘가에서 풍겨오는 희미한 비린내, 평소라면 감지되지 않았을 아주 작은 마력의 잔류, 그리고 결정적으로…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봉인된 듯한 지하 통로에 대한 어렴풋한 소문들이었다.
이 학원의 지하에는 일반 학생들에게는 철저히 감춰진, ‘대도서관 보존고’라는 이름의 구역이 있었다. 일반 도서관보다 훨씬 깊숙한 곳에 위치한 그곳은, 말 그대로 ‘금서’나 ‘위험한 마법 도구’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지혁이 호기심을 가진 것은 그 보존고 너머, 더 깊은 곳에 대한 이야기였다. 몇몇 나이 든 교수들이 술에 취해 중얼거렸다는 “깊은 곳”, “잊혀진 길”, “누구도 깨워서는 안 되는 것” 같은 단편적인 말들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였다. 층계를 내려오던 누군가의 발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울렸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든 지혁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엘루카 교수였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이 우아하고 차가운 미소를 짓던 엘루카 교수는 지금, 안색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한 손에는 고대 주술 문자로 가득한, 낡고 두꺼운 가죽 장정의 책이 들려 있었다. 책의 표면에는 이름 모를 짐승의 뼈 조각이 박혀 있었고, 은은하고 불길한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는 듯했다.
엘루카 교수는 평소 가지 않던 방향, 즉 지하 깊숙이 이어진다는 보존고 복도 쪽으로 향했다. 그녀의 걸음은 불안정했고, 이따금씩 비틀거렸다. 그녀는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 연신 주위를 살피는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그녀는 복도 끝, 늘 봉쇄되어 있던 철문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는 품에서 작은 은색 열쇠를 꺼내, 문에 달린 자물쇠에 꽂아 넣었다.
*딸깍.*
작지만 명확한 소리였다. 철문이 스르륵 열리고, 엘루카 교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문은 다시 닫히는 듯했으나, 완벽하게 밀폐되지 않은 틈새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저 문은… 늘 닫혀 있지 않았나?” 유진이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의문과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지혁은 더 이상 책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직감했다. 지금껏 그를 맴돌던 모든 위화감과 소문들이, 저 문 뒤에 숨겨진 진실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고.
“유진아, 잠시만 기다려.”
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유진이 그의 팔을 붙잡으려 했지만, 지혁은 이미 사서의 눈을 피해 엘루카 교수가 사라진 복도 쪽으로 조용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혁아! 위험해!” 유진의 다급한 목소리가 그의 뒤를 따랐다.
복도는 점점 더 어두워지고, 차가워졌다. 화려했던 학원 본관과는 달리, 이곳은 돌로 이루어진 낡고 칙칙한 통로였다. 지혁은 조심스럽게 철문 앞으로 다가섰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은 이제 희미한 냄새와 함께 흘러나오고 있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희미한 쇠 비린내 같은 것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문을 살짝 밀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안쪽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일반적인 어둠이 아니었다. 마법으로도 쉽게 뚫리지 않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원초적인 어둠이었다.
“엘루카 교수님!” 지혁이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등 뒤에서 “하아, 하아…” 하는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유진이 잔뜩 겁먹은 얼굴로 그를 쫓아와 있었다.
“말했잖아… 위험하다고…!” 유진은 공포에 질려 눈물을 글썽였다.
“미안, 유진아. 하지만… 뭔가 이상해. 느껴지지 않아? 이 아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이.”
지혁은 손바닥을 펴고 작은 빛의 구슬을 만들어 어둠 속으로 던져 넣었다. 마법 조명탄은 잠시 빛을 발하는 듯했지만, 순식간에 어둠에 흡수되어 버렸다. 마치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았다.
“젠장… 이건 보통 어둠이 아니야.”
지혁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그는 손을 뻗어 차가운 돌벽을 더듬었다. 그리고 손끝에 닿은 것은, 매끄러운 돌 표면이 아니라, 울퉁불퉁하고 기이한 조각들이었다.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니, 그것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뒤틀리고 왜곡된 형상들이었다. 마치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이나, 절규하는 입 모양 같기도 했다.
“이게 뭐야…?” 유진이 벽에 손을 얹으려다,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거둬들였다. “벽이… 차가워. 너무 차가워… 살아있는 것 같아….”
지혁은 자신의 마력이 벽에 미세하게 흡수되는 것을 느꼈다. 이 공간 자체가, 마력을 먹어치우는 어떤 존재처럼 느껴졌다.
“유진아, 여기 있을 곳이 아니야. 어서 나가자…!”
그가 유진의 손을 잡고 뒤돌아서려던 순간이었다.
*쉬이익…*
귓가에 들려오는 듯한 알 수 없는 속삭임. 바람 소리 같기도, 누군가의 한숨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얽히는 듯한 혼란스러운 소리였다.
“뭐… 뭐야…? 이 소리…?” 유진의 몸이 심하게 떨렸다.
지혁은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마력 감지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되었다.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이 복도 아래, 저 어둠 속에서 거대한 마력의 덩어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 같기도 했고, 아니면 봉인된 고대의 재앙 같기도 했다.
*쿵… 쿵… 쿵…*
그때, 발밑에서 느껴지는 둔탁하고 규칙적인 진동.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온몸을 흔들었다. 벽에 새겨진 기괴한 형상들이 진동에 맞춰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일렁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지혁아… 도망가야 해…!” 유진이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진동은 점점 강해졌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깜빡거렸다. 빛은 벽면에 박힌 끔찍한 조각들을 비추었고, 그 순간 조각들의 눈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환영이 보였다.
“도망쳐…!”
지혁은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는 유진의 손을 꽉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알 수 없는 공포가 그를 채찍질했다.
간신히 철문 밖으로 뛰쳐나와 문을 닫자, 끔찍한 소음과 진동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숨소리는 여전히 거칠었다. 지혁은 차가운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겨우 숨을 골랐다. 유진은 그의 옆에서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벽에 기대어 흐느끼고 있었다.
학원 본관에서는 여전히 학생들의 재잘거림과 마법 연습 소리가 들려왔다. 지상의 세레나 학원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지혁의 눈에는 이제 그 모든 아름다움이 위장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발밑에 숨겨진, 존재해서는 안 될 끔찍한 진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혁은 떨리는 손으로 유진의 어깨를 잡았다. 유진은 고개를 들었고,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유진의 눈에는 깊은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가득했다.
“유진아…” 지혁은 겨우 입을 뗐다.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우리… 우리 뭘 본 것 같아…?”
그의 말에 유진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단지, 그녀의 눈동자에 비친 지혁의 모습 뒤로, 어두운 복도 끝의 철문이 섬뜩하게 아른거릴 뿐이었다. 철문 너머의 어둠이 이들을, 그리고 이 학원 전체를 집어삼킬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