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아포칼립스 독립적인 단편 소설

폐허 속의 밀실

강철 문이 닫히는 소리는 늘 묵직하고 절망적이었다. 쾅, 하고 울리는 둔탁한 금속음은 세상의 모든 비명과 단절을 압축한 듯했다. 그 소리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다. 바깥은 죽음으로 가득한 지옥이고, 이 안만이 유일한 생존의 땅이라는 것. 좀비 아포칼립스, 그 끔찍한 재앙이 세상을 집어삼킨 지 5년째. 우리는 서울 외곽에 버려진 연구시설을 개조해 ‘요새’라 부르는 생존자 거주지를 만들었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과 철조망, 그리고 무기력한 인간들. 그게 전부였다.

그러나 오늘은 그 강철 문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요새의 심장부, 보안이 가장 철저한 윤 박사의 개인 연구실에서 살인이 벌어졌다는 소식은 얼어붙은 호수에 돌을 던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동요했고, 공포에 질렸으며,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바깥의 그림자들보다 안쪽의 인간들이 더 무서운 법이다.

나는 강태인. 한때는 그저 방구석에서 추리 소설이나 읽던 한심한 존재였지만, 세상이 뒤바뀐 후 기이하게도 나의 ‘관찰력’과 ‘추리력’은 생존에 필수적인 재능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천재’라 부르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눈에 보이는 것들을 보고, 연결될 수밖에 없는 점들을 이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도저히 연결될 수 없는 점들이 놓여 있었다.

***

“밀실 살인이라고?”

내 앞에 선 경비대장 최혁의 얼굴은 흙빛이었다. 강인한 사내였지만, 그의 눈빛에는 피로와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

“그렇습니다, 탐정님. 윤 박사님은… 안에서 잠긴 연구실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안에서 잠겼다고? 모든 출입구는?”

“하나뿐입니다. 강화 강철 문. 그 외에는 환기구와 자재 운반용 소형 리프트가 있지만, 모두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창문요? 애초에 없습니다. 방음벽으로 완벽히 차단된 공간이었죠.”

나는 턱을 쓸어 올렸다. 윤 박사. 요새의 브레인이자 거의 모든 보안 시스템과 전력, 식량 시스템을 설계한 인물. 그의 죽음은 요새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뿐 아니라, 그 죽음의 방식 자체가 사람들을 광란에 빠뜨릴 수 있었다.

“안내해 줘.”

연구실로 향하는 복도는 적막했다. 평소에는 연구원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기계 소리로 가득했던 곳이지만, 지금은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경비대원들의 삼엄한 표정만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강화 강철 문 앞에 섰다. 문틈을 봉쇄한 두꺼운 고무 실링 위로, 억지로 잡아 뜯으려 했던 흔적이 보였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짐작이 갔다.

“어떻게 열었지?” 내가 물었다.

“이중 잠금장치라서… 부술 수가 없었습니다. 박사님이 직접 만든 비상 잠금 해제 스위치가 있는데, 그 스위치가 있는 곳이… 박사님 연구실 내부에 있었죠.” 최혁이 이를 악물었다. “결국 제가 외부에 비치된 비상용 암호를 입력하고 수동으로 잠금을 해제했습니다. 한 시간 전에요.”

한 시간 전. 그동안 윤 박사는 차가운 시신으로 밀실 안에 방치되어 있었던 셈이다.

문이 열리자, 싸늘한 공기가 훅 끼쳐 왔다. 피 냄새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퀴퀴한 기계 기름 냄새가 섞여 코를 찔렀다. 연구실은 예상보다 넓었다. 각종 장비와 설계도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고, 한쪽 벽면에는 거대한 모니터 여러 대가 깜빡이고 있었다.

윤 박사는 자신의 주 작업대 옆,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흰 가운은 피로 흥건했고, 목 왼쪽에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린 듯한 작은 상처가 선명했다. 출혈이 심했지만, 그의 표정은 경직된 채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방 한구석에 설치된, 성인 팔뚝만 한 크기의 작은 자재 운반용 리프트였다.

“무기는?” 내가 물었다.

최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연구실 내부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날카로운 도구도, 총기도 보이지 않습니다.”

밀실 살인. 무기 없는 살인.

나는 주변을 천천히 훑었다.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 밖으로 나갈 통로가 전혀 없었다. 환기구는 너무 작았고, 자재 리프트는 위아래로 움직이는 작은 컨베이어 벨트식으로 되어 있어 사람 몸이 들어갈 리 만무했다. 더욱이, 리프트의 내부와 외부 연결 통로 모두 잠겨 있었다고 했다.

“박사님 시신은 건드리지 마.” 내가 명령했다.

나는 윤 박사의 시신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스패너가 쥐어져 있었다. 무언가 작업 중이었던 것 같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리프트를 향하고 있었다. 리프트의 작은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고, 잠금 램프는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안에서 잠겨 있다는 뜻이었다.

바닥을 살폈다. 혈흔은 윤 박사의 시신 주위에만 흩어져 있었다.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먼지가 뽀얗게 쌓인 바닥은 오직 윤 박사의 것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이었다. 살인범이 드나든 흔적은 전혀 없었다. 완벽했다.

이때, 문밖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사님! 박사님께 무슨 일이…!”

김민성. 윤 박사의 수석 보조 연구원이다. 그는 거의 울먹이는 얼굴로 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민성 씨, 여긴 잠시 출입 금지입니다.” 최혁이 제지했다.

“하지만 박사님 작업은 제가… 흐읍, 대체 누가…!” 김민성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공포와 슬픔이 뒤섞인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진정해. 곧 밝혀질 거야.” 내가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의 시선은 잠시 윤 박사의 시신에 머물다, 이내 리프트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미묘한 움직임이었다.

나는 연구실 내부를 몇 번 더 둘러보았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했고, 모든 것이 정돈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감각은 무언가 미세하게 뒤틀려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나는 작업대 위에 놓인 돋보기를 집어 들었다. 윤 박사가 정밀 부품을 다룰 때 사용하던 것이리라.

그리고는 윤 박사의 시신 쪽으로 다시 향했다. 그의 목에 난 작은 상처. 정교하고 날카로운 도구로 찔린 듯했다. 그의 셔츠 깃을 살짝 들추자, 아주 희미한 푸른색 섬유 조각이 보였다.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조각이었다.

나는 돋보기로 리프트 주변을 면밀히 살폈다. 잠금 램프는 여전히 초록색. 리프트 문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손가락으로 쓸어내린 듯한 자국이 먼지 위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자국 바로 아래, 리프트 문과 바닥 틈새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굽혔다. 돋보기로 확대하자, 그것은 아주 작은 금속 파편이었다. 마치 아주 정교하게 가공된 부품의 조각처럼 보였다. 일반적인 금속 파편과는 달랐다.

“최혁 대장.” 내가 불렀다.

“네, 탐정님.”

“이 리프트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나?”

최혁은 잠시 망설이더니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리프트는 윤 박사님이 직접 설계한 겁니다. 외부의 보관소와 박사님 연구실을 연결하는 통로죠. 작은 부품이나 샘플을 옮길 때 사용합니다. 보안을 위해 외부에서도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고, 내부에서도 박사님의 생체 인식으로 잠금이 해제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박사님의 생체 인식이 없으니 안에서는 잠금 해제가 불가능합니다. 외부에서도 제가 아는 비밀번호는 없고요.”

“그럼 이 리프트를 작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누구였지?”

“설계자인 박사님과… 그리고 박사님의 비서를 겸하던 김민성 연구원 정도입니다. 김 연구원은 박사님의 작업 과정을 도왔으니, 리프트 사용법과 보안 장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겠죠. 하지만 그 역시 외부에서 작동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비상 코드를 모르면.”

나는 김민성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문밖에 서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리프트에 닿아 있었다.

나는 리프트 문에 붙은 잠금 램프를 손으로 가렸다. 램프 옆에는 작은 스위치가 있었다. 아주 미세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스위치였다. 윤 박사가 만든 보안 시스템의 일부일 것이다.

내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들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밀실, 무기 없는 살인, 그리고 윤 박사의 시선이 향했던 리프트. 결정적인 단서는 그 작은 금속 파편과 푸른색 섬유 조각이었다.

“최혁 대장, 모든 인원을 이 복도에 모아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김민성 연구원은 여전히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고, 다른 연구원들과 경비대원들은 두려움과 궁금증으로 가득 찬 얼굴이었다.

나는 윤 박사의 연구실 문을 완전히 열고, 문턱에 섰다.

“여러분, 윤 박사님은 이 안에서 살해당했습니다.” 내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공간에 울려 퍼지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범인은 바로 이 안에, 우리들 중 한 명입니다.”

웅성거림이 커졌다. 김민성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불가능합니다! 탐정님! 이 방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박사님은 밀실에서…!” 한 연구원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밀실이 아니었기 때문에 살인이 가능했던 겁니다.” 내가 냉정하게 말했다. “윤 박사님은 자신이 만든 보안 시스템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아니, 자신이 만든 보안 시스템을 이용당한 거죠.”

모두의 시선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윤 박사님의 시신에서 무기가 발견되지 않았죠. 왜냐하면 무기는 범인이 지닌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윤 박사님을 죽이고, 이 방을 밀실로 만든 후 떠났을 뿐입니다.”

나는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 윤 박사의 시신 옆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향했던 리프트를 가리켰다.

“범인은 윤 박사님을 살해하기 위해 이 리프트를 이용했습니다. 정확히는, 이 리프트를 이용해 살인 도구를 들여보냈죠.”

김민성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 리프트는 작은 부품 운반용입니다. 하지만 윤 박사님은 최근 이곳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압축 공기 발사 장치를 개발 중이셨습니다. 이 요새를 위협하는 그림자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일종의 강력한 투사체 발사기였죠. 그는 그것의 시험을 위해 리프트를 통해 특수 제작된 고밀도 투사체를 운반하곤 했습니다.”

나는 윤 박사 시신에서 발견된 푸른색 섬유 조각을 떠올렸다.

“윤 박사님은 이 리프트를 통해 운반되는 특수 투사체, 즉 고압 공기로 발사되는 날카로운 금속 다트에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범인은 박사님과의 작업으로 이 리프트의 운용 방식과 내부 보안 시스템, 그리고 박사님이 개발 중이던 압축 공기 발사 장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윤 박사님이 리프트를 통해 부품을 받으려 할 때, 혹은 리프트의 보안 시스템을 점검할 때를 노렸을 겁니다. 리프트가 작동하는 그 찰나의 순간, 외부에서 고압 공기 발사 장치를 조준해 박사님을 살해한 거죠.”

최혁 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리프트의 입구는 작습니다. 그리고 박사님은 리프트 바로 앞에 쓰러지지도 않았는데…”

“그렇습니다. 범인은 리프트 문을 완전히 열지 않았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작은 틈을 만들었죠. 그리고 그 틈으로 특수 제작된 금속 다트를 발사했습니다. 윤 박사님의 목에 난 상처는 작지만 깊습니다. 그것은 총알이나 칼이 아닌, 특정 목적으로 제작된 투사체에 의한 상처입니다.”

나는 다시 리프트 바닥에서 발견한 작은 금속 파편을 들어 올렸다.

“이것은 그 다트의 아주 작은 조각입니다. 고압으로 발사되면서 리프트 문에 부딪혀 떨어져 나간 파편이죠. 그리고 박사님의 옷에서 발견된 푸른색 섬유 조각은 이 다트를 외부에서 발사할 때 사용한, 특정 장비의 색과 일치합니다.”

나는 김민성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이 방이 밀실로 ‘만들어진’ 방식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윤 박사님은 자신이 만든 시스템에 대한 강박적인 보안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리프트 시스템은 외부에서 잠금 해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아주 미세한 취약점이 있었습니다.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를 이용해 리프트 내부의 잠금장치를 간섭할 수 있었죠. 물론, 그 주파수를 아는 사람은 박사님과… 그리고 그의 모든 연구 과정을 도왔던 김민성 연구원, 당신뿐입니다.”

김민성의 얼굴에서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박사님을 살해한 후, 당신은 리프트의 잠금장치를 간섭해 아주 잠시, 리프트 문을 강제로 열고 닫았습니다. 그리고 리프트 시스템에 내장된 비상 잠금장치를 작동시킨 겁니다. 윤 박사님은 이 리프트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할 경우, 외부 침입을 가정하여 연구실 전체의 문을 자동으로 잠가 버리는 시스템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완벽한 밀실을 만들기 위해서요. 하지만 당신은 그 시스템을 역이용한 겁니다.”

나는 김민성의 주머니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그 푸른색 장비. 당신이 최근에 만들어 사용하던, 소형 무선 주파수 발생기죠? 윤 박사님의 압축 공기 발사 장치의 작동을 원격으로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그 장비 말입니다. 어째서 오늘 아침, 당신의 옷에 그것의 잔해로 보이는 푸른색 섬유 조각이 묻어 있었을까요?”

김민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했다.

“윤 박사님은 당신의 연구가 너무 빠르다며 제동을 걸었죠. 당신의 공적을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이 요새의 리더가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님만 사라지면, 당신의 시대가 올 거라고 믿었겠죠.”

김민성은 주저앉았다. 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의 눈에서 흐르는 것은 슬픔이 아니었다. 좌절과 분노, 그리고 체념이었다.

***

강철 문이 닫히는 소리는 여전히 묵직하고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소리는 또 다른 의미를 더했다. 그 문 안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또 다른 지옥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

김민성은 경비대원들에게 끌려갔다. 요새는 다시 침묵에 잠겼지만, 그 침묵은 이전과는 달랐다.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바깥의 그림자들은 여전히 위협적이었지만, 안쪽의 그림자는 더욱 깊고 음습하게 드리워졌다.

나는 윤 박사의 연구실 문을 다시 닫았다. 완벽한 밀실은 없었다. 완벽한 보안도 없었다. 인간의 탐욕과 질투는 세상의 어떤 강철 문도 뚫고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 강태인은 그저 그 뒤틀린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또 다른 밀실 살인이 벌어질 때까지, 나는 이 폐허 속에서 눈을 감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