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화: 유리벽 너머의 그림자**
「오아시스 7」의 바이오 연구실 3. 차가운 금속과 멸균된 공기의 냄새가 뒤섞인 그곳은 늘 그랬듯 침묵에 잠겨 있었다. 아니, 침묵에 ‘갇혀’ 있었다. 외부의 모든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생체 인식 잠금장치와 견고한 강철 방화문. 그리고 내부의 누구도 나갈 수 없는 완벽한 밀실.
하지만 오늘은 그 완벽한 침묵이 깨져 있었다. 연구실 중앙, 중요 실험체 배양기로 쓰이던 투명한 거치대 앞에 닥터 카이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목덜미에는 좁고 정교한 천공 흔적 하나. 주변엔 혈흔조차 거의 없었다. 고통의 흔적도, 저항의 몸부림도 없이, 마치 삶의 스위치가 꺼진 듯 고요한 죽음이었다.
강서진은 느리게, 그러나 집요하게 연구실을 훑었다. 그의 눈동자는 살아있는 스캐너 같았다. 윤 소령은 강서진의 뒤편에서 초조하게 서성였다. 이곳의 총 보안 책임자이자 강서진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였지만, 지금 이 상황만큼은 그의 상식 밖이었다.
“소장님.” 윤 소령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됩니다. 생체 인식 로그는 닥터 카이가 사망 추정 시간으로부터 여섯 시간 전에 마지막으로 연구실 문을 열었고, 그 이후론 외부 침입 흔적은 물론, 내부에서 문을 연 기록조차 없어요. 환기구는 레이저 그리드로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고, 물품 이송구는 저희가 도착했을 때부터 완벽히 밀봉되어 있었습니다. 안에서 잠금장치를 조작한 흔적도 없고요. 대체 누가, 어떻게 들어와서, 또 어떻게 나갔다는 겁니까?”
강서진은 윤 소령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 하나, 벽면의 그림자 하나, 심지어 공기 흐르는 방향까지 놓치지 않고 포착하려는 듯 움직였다. 그가 입고 있는 작업복의 낡은 주머니에서 작은 렌즈와 조명기를 꺼내 들었다. 무심한 듯 보이는 그의 손놀림 속에서, 윤 소령은 이 도시의 유일한 빛을 보았다. ‘오아시스 7’이라는 이름처럼, 외부의 폐허 속에서 유일하게 인류가 생존하고 있는 이곳은, 강서진이라는 천재적인 두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닥터 카이의 시신에서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신경독으로 추정되지만, 너무 미량이라서… 그리고 상처는, 마치 주사기로 찌른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어떤 주사 바늘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연구실 내에선요.” 윤 소령이 덧붙였다.
강서진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눈은 시신의 목덜미에 박힌 미세한 천공 흔적을 넘어, 닥터 카이의 손에 들려 있던 태블릿 PC를 잠시 응시했다. 화면은 절전 모드로 꺼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바닥에 떨어진 펜 하나가 놓여 있었다. 그는 펜을 줍지 않았다. 그 대신, 시신의 팔 위치를 유심히 살폈다. 닥터 카이의 오른팔은 마치 무언가를 향해 뻗으려다 멈춘 듯한 어정쩡한 자세였다.
강서진의 시선이 천천히 시신의 팔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벽 한쪽에 위치한 물품 이송구에 멈췄다. 물품 이송구는 이중 잠금장치로 되어 있어, 외부에서 물건을 넣으면 내부에서 열고, 다시 내부에서 물건을 넣으면 외부에서 열 수 있는 구조였다.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리는 일은 없었다. 완벽히 밀봉되어 있었고, 지금도 견고하게 닫혀 있었다.
“이송구의 내부 문을 열려고 한 건가요?” 윤 소령이 물었다. “무슨 급한 물건이라도 받으려고…?”
강서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의 손이 물품 이송구의 표면을 쓸었다.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표면. 그런데 그의 손끝이 아주 미세한, 눈에 거의 보이지 않는 흠집을 감지한 듯 멈칫했다. 그는 조명기를 꺼내 흠집을 비췄다.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아주 정교한 도구로 긁어낸 듯한 흔적이었다. 그것은 이송구의 가장자리, 그러니까 내부 문이 닫히는 경계면에 나 있었다.
“이상하군요.” 강서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연구실의 침묵을 깨는 날카로운 파동 같았다. “이송구는 지금 완벽히 닫혀 있습니다. 외부에서도, 내부에서도 잠겨 있죠. 하지만 이 흠집은… 외부에서 내부 문을 강제로 잠그려 할 때 생길 법한 흔적입니다.”
윤 소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외부에서 내부 문을 잠근다고요?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내부 문은 안에서 조작하는 건데…”
“네.”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은 이제 물품 이송구의 표면을 넘어, 그 너머의 공기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보통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닥터 카이의 시신이 향하고 있는 방향, 그리고 이송구 문 가장자리의 흠집… 이 두 가지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강서진은 태블릿 PC를 들어 올렸다. 화면을 켜자, 닥터 카이가 마지막으로 열람했던 실험 기록이 떴다. 그것은 특정 미생물의 배양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미생물은… 극소량으로도 치명적인 신경독을 생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닥터 카이는 이 미생물 배양액을 연구 중이었습니다. 아마도, 물품 이송구를 통해 외부와 어떤 샘플을 주고받으려 했겠죠.” 강서진이 말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흠집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송구는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습니다. 내부 문이 열리면 외부 문은 잠기고, 외부 문이 열리면 내부 문은 잠기죠. 만약 닥터 카이가 내부 문을 열고 있었고, 그 순간…”
강서진은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빛이 순간 섬뜩하게 빛났다.
“만약, 살인자가 외부 문을 열어놓은 상태에서, 아주 정교하고 얇은 도구를 이용해 내부 문틈으로 침투시켰다면? 그리고 그 도구로 닥터 카이의 목을 찔렀다면?”
윤 소령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장님, 아무리 얇은 도구라고 해도… 이송구의 통로 폭은 너무 좁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길고 정교한 도구를 이용해 움직이는 목표를… 게다가 독극물을 주입해야 하는데, 그런 도구가 존재한다고 해도 조작하기가…”
“여기서 중요한 건 ‘조작’이 아닙니다. ‘매개’죠.” 강서진은 닥터 카이의 시신 옆에 떨어진 펜을 주워 들었다. “이 펜… 닥터 카이가 쓰던 전자펜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세요. 펜촉 부분에 미세한 홈이 나 있습니다. 일반적인 사용으로는 생길 수 없는 형태입니다. 마치, 이 펜의 일부가 무엇인가의 ‘연장’처럼 쓰인 흔적입니다.”
강서진은 펜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범인은 외부에서 물품 이송구의 외부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닥터 카이에게 내부 문을 열도록 유도했겠죠. 아마도, 급하게 받아야 할 샘플이 있다고 속였을 겁니다. 닥터 카이가 내부 문을 열었을 때, 범인은 물품 이송구 안으로 아주 작고 정교한 ‘무인 로봇 팔’을 밀어 넣은 겁니다.”
윤 소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인 로봇 팔이요? 그런 게… 이런 곳에?”
“오아시스 7의 폐기물 처리장에서 몇 년 전부터 극소형 로봇 부품들이 간헐적으로 사라지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저도 최근에야 그 사실을 확인했죠. 어쩌면 그게 이걸 위한 준비였을지도 모릅니다.” 강서진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범인은 그 로봇 팔에 닥터 카이가 연구하던 미생물 배양액에서 추출한 신경독을 주입할 수 있는 초소형 주사 바늘을 장착했습니다. 그리고 닥터 카이가 물품 이송구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내민 순간, 정확히 목덜미를 찔렀을 겁니다.”
윤 소령은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그럼… 범인은 애초에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겁니까? 밀실의 트릭이… 외부에서 온 무인 로봇 팔이었다는 말입니까?”
“네.”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 로봇 팔이 살인의 도구로만 쓰인 게 아닙니다. 닥터 카이가 사망하고 쓰러진 후, 로봇 팔은 다시 외부로 빠져나가기 전에 아주 중요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강서진의 시선이 연구실 문에 달린 생체 인식 잠금장치를 향했다. 그 잠금장치 옆에는 수동으로 잠금을 조작할 수 있는 비상 잠금 스위치가 있었다. 아주 작고,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스위치였다.
“로봇 팔은 아주 정교하게, 비상 잠금 스위치를 조작했습니다. 안에서 밖으로 밀어서 잠그는 방식이 아니라, 안에서 무언가로 ‘누르는’ 방식이라면… 그리고 로봇 팔은 얇은 접착성 패드 같은 것을 이용해 그 스위치를 누르고 잠금 상태를 유지한 채 빠져나간 겁니다.” 강서진의 설명은 너무나도 냉철하고 논리적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에서 강제로 열기 전까지는 완벽한 밀실이 된 겁니다.”
윤 소령은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럼 로봇 팔은 어디에 있습니까? 물품 이송구 외부도 살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범인은 로봇 팔을 회수하고 흔적을 지웠겠죠.” 강서진은 손에 든 전자펜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로봇 팔이 문을 조작하고 빠져나가면서 남긴 흔적은 지우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시 물품 이송구의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 흠집 바로 옆, 거의 보이지 않는 작은 얼룩을 렌즈로 확대해 보였다. 그것은 아주 미세한, 기름때 같은 것이었다. 일반적인 인체에서 나오지 않는, 그러나 기계 부품에서 흔히 발견될 수 있는 윤활유의 흔적.
“이것은 무인 로봇 팔의 잔해입니다. 범인이 아무리 완벽하게 흔적을 지웠다고 해도, 아주 미세한 유기물질까지 완벽하게 제거할 수는 없죠.” 강서진의 눈은 날카롭게 빛났다. “이제 우리는 누가 이 로봇 팔을 만들었는지, 그리고 누가 닥터 카이의 연구를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왜 닥터 카이를 죽여야만 했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연구실의 침묵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변했다. 그것은 더 이상 완벽한 밀실의 침묵이 아니었다. 그림자 속에 숨어 있던 살인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불길한 서막의 침묵이었다. 윤 소령은 강서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는 폐허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아냈다. 하지만 그 빛이 가리키는 곳에는, 또 다른 어둠이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그 로봇 팔의 잔해 분석에 착수하겠습니다.” 윤 소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범인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강서진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물품 이송구의 차가운 금속 표면에 머물러 있었다. 누군가 폐허의 시대에도 여전히 이토록 정교하고 잔혹한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에, 그의 표정에는 미묘한 고뇌의 그림자가 스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