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공기가 고요한 저택을 감쌌다. 으스스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거실 바닥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한가운데에는 붉고 끈적한 얼룩이 섬뜩하게 번져 있었다. 그 위로, 기이한 발명품과 고풍스러운 골동품으로 가득 찬 방의 주인이었던 한서호 박사가 생기 없는 눈으로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젠장, 박 경위.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현장 지휘를 맡은 이 반장이 거친 숨을 내쉬며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외쳤다. 방 안에는 산소가 부족한 듯 답답하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박 경위는 미간을 찌푸린 채 현장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모든 창문은 안쪽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경첩에는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문고리도 마찬가지였다. 안에서 빗장이 걸려 있었고, 외부 침입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심지어 방문 틈새에는 어제 신문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훼손 없이 그대로였다. 완벽한 밀실.
“피해자의 사인은 날카로운 흉기에 의한 과다출혈. 사망 추정 시각은 어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입니다. 문제는… 범인이 어떻게 이 방을 드나들었냐는 겁니다. 밀실, 그것도 이렇게 완벽한 밀실은 처음입니다.”
박 경위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감이 묻어 있었다. 베테랑 형사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막막해했다. 이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부딪힌 듯 그들을 좌절시켰다.
그때, 저택의 정문 쪽에서 경쾌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당돌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앳된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이 별처럼 반짝이는 소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가느다란 다리와 한 손에 들린 커다란 가방이 영락없는 여고생의 모습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박 경위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무거운 침묵을 깨고 울렸다. 박 경위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어이쿠, 채린 양! 바쁜데 여기까지 와줘서 고맙네.”
이채린. 평범한 이름과는 달리, 그녀는 이 도시의 범죄 수사팀에서 ‘천재 탐정’이라 불리는 특별한 존재였다. 물론, 이면에는 밤하늘을 수호하는 마법소녀라는 또 다른 비밀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예리한 통찰력으로 난제를 풀어내는 탐정으로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채린은 어두운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형사들을 향해 싱긋 웃었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흐린 하늘에 잠깐 떠오른 햇살 같았다.
“어디 봅시다. 이번엔 어떤 퍼즐이 저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망설임 없이 사건 현장으로 향했다. 형사들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 채린은 핏자국을 주의 깊게 피하며 방 중앙으로 다가갔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녀는 시신에 먼저 시선을 주지 않았다. 대신, 방 전체를 커다란 카메라 렌즈로 담듯 훑어보았다. 천장의 거미줄부터 벽에 걸린 낡은 그림, 바닥의 미세한 흠집까지. 그녀의 시선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피해자는 한서호 박사님이시죠? 이 집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사람은 박사님 본인이 맞습니까?” 채린이 물었다.
“네, 어제 저녁 8시경, 박사님이 외출 후 귀가하는 모습이 CCTV에 포착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아무도 저택에 출입한 흔적은 없습니다.” 박 경위가 답했다.
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그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력이 응축되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손으로 벽면을 쓸어보고, 창틀에 낀 먼지를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책상 위에 놓인 낡은 태엽 인형과, 그 옆에 놓인 은색 펜에 시선을 고정했다.
“박사님은 발명가셨다고 들었는데, 주로 어떤 발명품들을 만드셨나요?”
“음… 주로 태엽 장치나 자동 인형 같은 것들을 만드셨죠. 좀 기묘하긴 하지만 해롭지 않은 것들이었습니다. 특히 이 저택 안에는 박사님이 직접 만드신 자동화 장치들이 많았죠.”
자동화 장치. 채린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는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안쪽에서 잠금쇠가 단단히 걸려 있었고, 겉보기에는 완벽했다. 하지만 채린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잠금쇠 아랫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가락을 뻗어 그 부분을 가볍게 쓸었다.
“이건… 아주 미세한 흠집이네요.”
다른 형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거의 티 나지 않는 스크래치였다.
“이게 뭘 의미하는 거죠?” 이 반장이 물었다.
“글쎄요. 완벽한 밀실에 난 단 하나의 흠집… 흥미롭지 않나요?” 채린은 미소 지었지만, 그녀의 눈은 어떤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방을 가로질러 문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살짝 만져보고, 빗장을 확인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잠겨 있었다. 그러다 그녀의 시선이 문 위쪽, 천장에 가까운 곳에 닿았다. 거기에 작은 환기구가 보였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흔한 환기구였다.
“저 환기구는 어디로 연결되어 있나요?”
“아, 저건 오래된 환기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별다른 기능은 없어요. 그냥 벽 너머 복도로 이어져 있을 겁니다.” 박 경위가 대답했다.
채린은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조각들이 빠르게 맞춰지고 있었다. 한서호 박사의 발명품, 자동화 장치, 창문의 미세한 흠집, 그리고 저 환기구.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범인은 이 방 안에 있었어요. 그리고 그가 밖으로 나간 순간,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된 겁니다.”
채린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형사들은 술렁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범인은 박사님이 만든 자동화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채린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저택에 있는 자동화 장치들 중에는, 아마 외부에서도 원격으로 조작할 수 있는 장치가 있었을 거예요. 아마도 박사님이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만드셨겠죠.”
그녀는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범인은 박사님을 살해한 후, 이 방에 있던 특정 자동화 장치를 이용해 창문 잠금쇠를 조작했습니다. 이 미세한 흠집은, 바로 그 조작 도구가 잠금쇠에 닿으면서 생긴 흔적이죠. 겉보기에는 잠겨있지만, 사실은 특수 장치를 이용해 걸쇠가 살짝 느슨해진 상태였던 겁니다. 그리고 범인은 창문을 통해 빠져나갔죠.”
모두가 경악했다. 그럼 창문이 잠겨 있었다는 건 거짓이었다는 말인가?
“아니요, 창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잠김은 범인이 빠져나간 *후*에 이루어진 겁니다.”
채린은 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범인은 창문을 통해 나간 후, 밖에 미리 설치해 둔, 박사님의 원격 조종 장치와 연결된 다른 장치를 이용해 창문을 다시 굳게 잠갔을 겁니다. 아마도 밖에서 가느다란 도구를 이용해 잠금쇠를 완전히 밀어 넣었겠죠. 또는, 박사님이 만드신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자동으로 잠기는’ 장치를 이용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저택의 자동화 시스템은 생각보다 더 복잡했을 거예요. 중요한 건, 범인이 이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겁니다.”
채린은 천장 환기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이 환기구는, 복도가 아닌… 저택 어딘가로 이어져 있습니다. 아마도 범인이 도주 경로로 이용했거나, 혹은 박사님이 만든 비밀 통로와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범인은 환기구 안으로 도구를 던져 넣어 창문을 잠그고, 자신은 다른 방법으로 유유히 사라졌겠죠.”
“즉, 범인은 박사님의 발명품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이 저택의 구조에도 정통했다는 말이 됩니다.” 박 경위가 그녀의 추론을 정리했다.
“네, 맞아요. 박사님과 가까운 사람이거나, 혹은 박사님의 연구에 대해 잘 아는 사람. 박사님의 자동화 장치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사람.”
채린은 마지막으로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범인은… 박사님의 연구 조수였던 김민준 씨입니다. 그가 박사님의 가장 큰 조수이자 제자였죠. 박사님의 모든 발명품에 대한 지식이 가장 해박한 사람입니다. 어제 김민준 씨는 박사님과 저녁을 함께 했다고 진술했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불분명합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섬광이 스쳤다. 마치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똥별처럼, 모든 미스터리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빛이었다. 마법소녀의 힘이 아닌, 오직 순수한 지성과 관찰력으로 빚어낸 빛이었다.
“김민준 씨를 즉시 체포하세요. 저택 외부에서 박사님의 원격 제어 장치와 연결된 도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환기구를 통해 연결된 통로도요. 아마 김민준 씨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그곳에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채린의 말에 박 경위와 형사들은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했던 밀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한 천재 탐정 소녀의 예리한 시선과 통찰력 아래, 모든 트릭은 벌거벗겨진 채 드러났다.
밤하늘의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지성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수많은 미스터리들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음을, 채린은 알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