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걱이는 정적
한낮의 태양은 창밖의 강철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37층, 이지훈의 아파트는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에어컨의 나지막한 웅웅거림으로 겨우 평온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낡은 원목 책상 위에는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구조의 탁상시계가 느릿하게 태엽을 감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갓 추출한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나른하게 일렁였다. 지훈은 늘 그랬듯 화면 속 빼곡한 코드들을 노려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후 두 시. 그의 삶은 언제나 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예측 가능하게 굴러갔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젠장, 또 오류야?”
한숨과 함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최근 들어 시스템이 삐걱대는 일이 잦았다. 서버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 도시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증기압의 변동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강철과 증기의 도시, ‘아이젠슈타트’는 늘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때로는 그 겉모습 아래 숨겨진 불안정한 에너지가 느껴지곤 했다.
그때였다. 찌릿, 하는 소리와 함께 탁상시계의 태엽 감는 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저 시계를 아끼는 편이었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유물이라, 아무리 전기로 작동되는 디지털시계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고집스럽게 그의 책상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시계의 바늘이 거칠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침은 맹렬하게 한 바퀴를 돌더니 이내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회전했다. 분침과 시침도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며 이리저리 오갔다. 마치 술 취한 광대가 손목 위에서 발레를 추는 것 같았다.
“어이, 이봐. 왜 이래, 오늘따라.”
지훈은 툭툭, 시계를 두드렸다. 보통 이런 식의 작은 오작동은 전원부를 재정비하거나 살짝 충격을 주면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시계는 지훈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끽, 하는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모든 바늘이 오후 4시 44분을 가리킨 채 정지했다.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장인가? 오래된 물건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집중은 쉽지 않았다. 방금 전 시계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뇌리에 남아서인지, 아니면 그가 무의식중에 감지한 어떤 미묘한 변화 때문인지.
쿵.
작은 소리였다. 마치 위층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 지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파트 생활에서 층간 소음은 익숙한 배경음악이었다.
그때, 거실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가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였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아파트 문은 늘 잠겨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낮, 집에 있을 리 없는 외부인이 침입했을 리도 만무했다.
“누구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거실 쪽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헛것을 들었나? 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쉬익-* 하는 증기 새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놀라 몸을 휙 돌렸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빈티지한 디자인의 증기식 난로였다. 오래되어 잘 사용하지 않던, 그저 장식용으로 두었던 물건이었다. 난로의 좁은 틈새에서 하얀 증기가 미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난로 안에서는 작은 톱니바퀴들이 엇박자로 삐걱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난로를 켠 적이 없는데?”
지훈은 난로 앞으로 다가갔다. 전원 버튼은 분명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증기는 멈추지 않고 새어 나왔다. 점점 더 격렬하게. 난로의 표면은 손으로 만져보기 무서울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부의 기어들이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쿵쾅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젠장, 고장이야?”
그는 황급히 코드를 뽑으려 했지만, 손을 뻗는 순간 난로의 증기 배출구에서 하얀 증기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난로 주변의 공기가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쨍, 하는 금속음과 함께 눈앞의 증기 속에서 작은 황동색 톱니바퀴 하나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훈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난로에서 떨어져 나온 톱니바퀴라니. 저 난로는 움직이는 부품이라곤 몇 개 없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단순히 기계 고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섬뜩했다. 마치 난로 자체가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번엔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였다.
지훈은 굳어진 얼굴로 부엌을 향해 뛰었다. 부엌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식탁 위 접시들이 마치 누군가 내던진 것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은색 수저 몇 개가 허공에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들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이게… 대체 뭐야?”
지훈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젠 단순히 기계 오작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건, 이건 명백한… 현상이었다.
그때, 흔들리던 수저들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틱, 틱, 틱*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톱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은색 수저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회전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동시에, 부엌 천장에 달린 환풍기가 미친 듯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환풍구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쉬이이익, 쿵, 딸깍, 쉬이이익.*
환풍기, 난로, 그리고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뒤섞여 기괴한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지훈은 패닉에 빠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의 아파트가, 그의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가야 해… 나가야 한다고!”
그는 본능적으로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손잡이를 잡으려 현관문으로 달려갔지만, 그의 손이 손잡이에 닿기 직전, 문고리가 저절로 *덜컹*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문은 안에서 잠겨버렸다.
삑, 삑, 삑.
현관 옆에 설치된 디지털 도어락이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비웃는 듯이. 안쪽에서 잠겼다는 뜻의 경고였다. 그는 갇혔다.
지훈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환풍기 연기 속의 그림자를 향했다.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던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뭉쳐진 것처럼. 금속성의 차가운 광택과 함께, 그 거대한 톱니바퀴의 중심에서 붉은 빛이 섬뜩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덜컥, 하고 크게 흔들렸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시동이라도 거는 것처럼.
지훈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기계적인 악몽이었다. 그의 아파트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딸깍, 쿵, 삐걱.*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울려 퍼지는 기계음 속에서, 지훈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악몽이, 시작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