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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좀비 아포칼립스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아크호 (ARK-HO)

    **장르:** 좀비 아포칼립스 (우주 배경)
    **핵심 줄거리:** 심우주에서 정체불명의 외계 유물을 발견한 우주선 승무원들.

    ### EP. 1: 심연의 유산

    **[1컷]**
    (어두운 우주 공간.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 광활함 속에서, 우주선 ‘아크호’가 홀로 고요히 떠 있다. 아크호는 매끄러운 은색 선체를 가졌으며, 여러 개의 거대한 추진 엔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내레이션 (이안):** 광활한 우주는 언제나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다. 우리는 답을 찾기 위해, 혹은 그저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갔다. 수십 년 전, 인류는 지구의 한계를 넘어 행성 간 이동에 성공했고, 이제는 저 심연 속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있다.

    **[2컷]**
    (아크호 함교 내부. 푸른빛이 감도는 모니터들이 즐비하고, 선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분위기는 한산하면서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중앙 사령석에 앉은 **이안 함장**은 창밖의 우주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수현 과학 장교**가 데이터 패드를 들고 뭔가를 보고 있다. 후방 조종석에는 **준영 기관사 겸 조종사**가 능숙하게 키보드를 조작하고, 한쪽 구석에는 **세라 보안 겸 의무 장교**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준영:** (모니터를 보며 나른하게) 함장님, 일주일째 특별한 이상 징후 없습니다. 평소와 같은 우주 먼지와 소행성 파편 몇 개가 전부네요. 이대로라면 예정된 탐사 경로대로 계속 진행해도 무리 없을 것 같습니다.

    **이안:** (창밖을 보며) 예상했던 바다. 미지의 영역 탐사는 원래 지루함의 연속이지. 하지만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돼, 준영. 자네의 임무가 가장 중요하네.

    **준영:** (어깨를 으쓱하며) 알고 있습니다, 함장님. 언제든 이 아크호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컷]**
    (수현의 얼굴 클로즈업. 그녀의 눈이 모니터 화면 속 그래프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프는 평이하게 움직이다가, 갑자기 미세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진다.)

    **수현:** 함장님, 잠시만요. 이쪽 스캐너에… 이상 신호가 감지됩니다.

    **[4컷]**
    (함교 전체 컷. 모든 승무원의 시선이 수현에게로 향한다.)

    **이안:** (자세 고쳐 앉으며) 이상 신호? 어떤 종류지?

    **수현:** (모니터를 빠르게 조작하며) 특정 주파수 대역에서 반복적으로 포착되는 에너지 파동입니다. 자연 현상이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인위적입니다. 마치, 거대한 구조물에서 방출되는 신호처럼 느껴집니다.

    **[5컷]**
    (수현의 모니터 화면 클로즈업.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멀리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무언가의 실루엣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행성도, 소행성도 아닌, 기이한 형태의 그림자다.)

    **세라:** (수현의 어깨 너머로 보며) 저게… 뭐죠? 소행성 치고는 너무 불규칙한데.

    **이안:** (준영에게) 준영, 최대 출력으로 접근해. 수현, 신호의 발원지를 최대한 분석해 봐.

    **준영:** 알겠습니다! 출력 상승!
    **(부우웅—)** (추진기 소리가 미세하게 커진다.)

    **[6컷]**
    (아크호가 미지의 존재를 향해 서서히 다가간다. 스크린 속 존재의 형체가 점점 선명해진다. 거대한 크기, 기하학적이지만 동시에 유기적인 듯한 형태. 표면은 낡고 부식되어 보이지만, 미세하게 빛을 반사한다.)

    **수현:** (놀라움과 경외감이 섞인 목소리로) 말도 안 돼… 이건… 인공 구조물입니다. 저희 스캐너로는 파악할 수 없는 미지의 금속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요. 수백, 아니, 수천 년은 족히 되었을 겁니다!

    **이안:** (입술을 깨물며) 이런 곳에… 이런 것이 존재할 줄이야. 외계 문명의 잔해인가?

    **[7컷]**
    (유물의 압도적인 크기와 기이한 형태를 보여주는 광각 컷. 거대한 이빨처럼 솟아오른 부분도 있고, 불규칙하게 뻗어 나간 촉수 같은 부분도 있다. 전체적으로 낡고 어두운 색이지만, 간헐적으로 내부에서 푸르거나 붉은빛이 깜빡인다.)

    **세라:** (긴장한 얼굴로) 어쩐지… 섬뜩한데요. 저 안에서 대체 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준영:** (침을 꿀꺽 삼키며) 이거… 함장님, 진짜로 저 안에 들어가 보실 겁니까? 왠지 기분 나쁩니다.

    **이안:** (단호하게) 이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바로 이런 미지의 존재를 탐사하기 위해서다. 준영, 아크호를 유물의 대기권에 정렬해. 수현, 세라, 나와 함께 탐사팀을 꾸린다.

    **[8컷]**
    (탐사정 ‘가젤호’ 내부. 이안, 수현, 세라가 탐사복을 입고 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함께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한다.)

    **세라:** (방호 헬멧을 쓰며) 개인 방사능 측정기, 이상 없음. 산소통, 정상. 무기… 음, 비상용으로 레이저 권총만 휴대하겠습니다.

    **수현:** (데이터 패드를 보며) 유물 내부에서 에너지 파동이 계속 감지되고 있습니다. 미약하지만 생체 반응 신호도… 감지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확실하진 않아요.

    **이안:** (헬멧을 착용하며) 생체 반응? 조심해야겠군. 우리가 먼저 접근한다면, 먼저 경고하고, 그다음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다, 세라.

    **세라:** (결연한 표정으로) 알겠습니다, 함장님.

    **[9컷]**
    (가젤호가 유물의 거대한 입구처럼 보이는 곳으로 진입한다. 입구 주변은 부식되어 너덜너덜하지만, 내부에서는 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쉬이이익-)** (가젤호 문이 열리는 소리)

    **[10컷]**
    (유물 내부. 어둡고 거대한 동굴 같지만, 표면은 금속 질감이다. 천장과 벽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바닥에는 알 수 없는 장치들이 흩어져 있다. 공기는 차갑고 습하며, 희미한 금속 냄새가 난다.)

    **수현:** (주변을 둘러보며) 대단해… 이런 건축 기술은…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야.

    **이안:** (전방을 주시하며) 신호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중심부가 저 앞이다.

    **세라:** (뒤를 돌아보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후방도 계속 확인하겠습니다.

    **[11컷]**
    (유물의 중심부. 거대한 홀의 중앙에, 검고 매끄러운 기둥이 솟아 있다. 기둥의 끝에는 수정처럼 투명하지만 검은 빛을 내는, 주먹만 한 크기의 구슬이 놓여 있다. 그 구슬에서 미세한 진동과 함께 알 수 없는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다. 주변의 기이한 문양들이 구슬의 에너지에 반응하여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수현:** (구슬에 완전히 매료된 듯 다가간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외감과 함께 과학자로서의 탐구욕이 가득하다.) 이게… 바로 신호의 발원지군요. 이런 재질은 처음 봐요. 모든 스캐너에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안:** (경고하듯) 수현,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미지의 물질이다.

    **세라:** (권총을 들고 주위를 경계하며) 함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너무 가까이 가는 건 위험해요.

    **[12컷]**
    (수현의 손이 구슬에 닿으려는 찰나. 그녀의 눈빛이 마치 홀린 듯 구슬을 향한다. 이안과 세라가 말리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
    **(팟-!)**
    (수현의 손이 구슬에 닿자마자, 구슬에서 강렬한 검은 섬광이 터져 나온다. 섬광은 수현의 몸을 감싸고, 그녀의 방호복 내부로 스며드는 것처럼 보인다. 이안과 세라는 급히 뒷걸음질 친다.)

    **[13컷]**
    (섬광이 걷히고, 수현은 비틀거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난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지만, 구슬을 응시하는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 몽롱하다.)

    **이안:** 수현! 괜찮은가? 무슨 일이야?!

    **수현:**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아무 이상 없는 듯 보이지만, 그녀의 손등에 아주 미세하게 검은 점이 생겼다 사라지는 것을 이안이 포착한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함장님. 순간적으로… 머리가 좀 울려서.

    **세라:**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혹시 모를 오염에 대비해서, 즉시 함선으로 복귀해야 합니다.

    **[14컷]**
    (아크호 의무실. 세라가 수현의 방호복을 벗기고 여러 가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현은 다소 피곤한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다.)

    **세라:** 체온, 정상. 심박수, 정상. 혈액 검사에서도 특별한 이상은 없습니다. 다만… 아주 미세한 수준의 세포 변형 반응이 감지되긴 하는데, 워낙 미미해서 유물 접촉으로 인한 일시적인 스트레스 반응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현:** (하품하며) 그럴 겁니다. 긴장해서 그런지 갑자기 피곤해지네요.

    **이안:** (한숨을 쉬며) 다행이군. 오늘 하루는 쉬도록 해, 수현. 유물 분석은 내일 다시 진행해도 늦지 않아.

    **[15컷]**
    (아크호 승무원 식당. 저녁 식사를 하고 있는 승무원들. 수현은 테이블에 앉아 스프를 먹고 있는데, 숟가락을 들다가 손을 떨군다. 접시가 덜그럭거린다. 그녀의 눈은 초점을 잃고, 얼굴은 미세하게 붉게 상기되어 있다.)

    **준영:** 수현 누나, 괜찮아요? 안색이 좀 안 좋은데.

    **수현:** (억지로 미소 지으려 하지만 표정이 굳어 있다) 아… 괜찮아. 그냥 좀 피곤해서.

    **(주변 승무원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수현을 바라본다.)**

    **[16컷]**
    (수현의 방. 침대에 쓰러져 잠든 수현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다. 그녀의 피부 아래로 검푸른 혈관이 도드라져 보이기 시작한다. 잠든 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비틀려 있다.)
    **(흐읍… 흐읍…)** (거친 숨소리)

    **[17컷]**
    (밤늦은 아크호 복도. 세라가 의료 장비를 들고 수현의 방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세라:** (혼잣말) 아무리 피곤해도,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건 좀 이상한데… 아무래도 다시 확인해봐야겠어.

    **[18컷]**
    (수현의 방 내부. 세라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침대에 있어야 할 수현이 보이지 않는다. 방 안은 어질러져 있고, 바닥에는 깨진 물컵 조각들이 흩어져 있다.)

    **세라:** (당황하며) 수현?! 어디 있지?

    **(덜컥!)**
    (세라의 뒤쪽, 화장실 문이 천천히 열린다. 그림자 속에서, 수현의 모습이 드러난다. 그녀의 눈은 검게 변했고,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하다. 입가에는 검붉은 침이 묻어 있고, 턱은 기괴하게 늘어져 있다. 손톱은 길고 날카롭게 변해 있다. 그녀의 몸은 부자연스럽게 비틀거린다.)

    **[19컷]**
    (세라의 얼굴 클로즈업. 공포에 질린 눈. 그녀의 손에서 의료 장비가 **(철컥!)**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세라:** (경악하며) 수… 수현?! 이게… 이게 대체…!

    **(크르르르…)**
    (수현의 목에서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짐승 같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녀는 세라를 향해 기괴하게 웃는다.)

    **[20컷]**
    (아크호 함교. 평화롭게 모니터를 보고 있던 준영의 헤드셋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세라 (통신):** (찢어질 듯한 비명) 준영! 함장님! 빨리… 수현이… 수현이 이상해요! 괴물로 변했어요! 격리해야 합니다!!

    **준영:** (깜짝 놀라 헤드셋을 벗는다) 세라! 무슨…?!
    **(퍽!)** (강렬한 충돌음과 함께 통신이 끊긴다.)

    **[21컷]**
    (함교 전체 컷. 준영은 혼비백산하여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다. 이안 함장과 다른 승무원들도 경보음에 반응하며 패닉에 빠진다.)

    **이안:** (벌떡 일어나며) 준영! 무슨 일이야?! 세라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준영:** (떨리는 목소리로) 함장님… 통신이 끊겼습니다! 세라가… 수현이 변했다고… 괴물로 변했다고…!

    **(화면 전환: 아크호 내부 통로, 비상등이 깜빡이며 붉게 물든다. 복도 저편에서 그림자 같은 형체가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실루엣이 보인다.)**
    **(콰아앙-!)** (강력한 문 충돌 소리)

    **[22컷]**
    (이안 함장의 얼굴 클로즈업. 그의 눈은 절망과 공포로 가득하다.)

    **이안:** (이를 악물고) 말도 안 돼… 설마… 그 유물이…

    **내레이션 (이안):** 심우주 깊은 곳, 미지의 유산 속에서 우리는 답이 아닌 저주를 찾아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리는 고립되었다.

    **[23컷]**
    (아크호 전체가 우주 공간에 홀로 떠 있는 모습. 외부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지만, 내부에서는 비상등의 붉은빛이 깜빡이고, 희미하게 비명과 경보음이 새어 나온다. 거대한 우주의 침묵 속에서, 아크호는 이제 지옥이 되었다.)
    **(삐이이이— 삐이이이—)** (비상 경보음)
    **내레이션 (이안):** 인류의 호기심이… 파멸의 서곡이 될 줄이야.


    **[다음 화 예고]**
    **”아크호, 미지의 공포에 잠식되다.”**

  • SF (공상과학)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피소드 1: 균열 너머의 메아리

    **1. 연구실 내부 – 밤**

    **컷 1**
    * **묘사:** 어두운 밤, 도시의 불빛이 아득히 멀리 보이는 낡고 좁은 연구실. 먼지 쌓인 선반들 위에는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파편들과 최신형 분석 장비들이 뒤섞여 있다. 그 한가운데, 수십 개의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에 떠 있고, 한세라(20대 후반)가 머리를 헝클어뜨린 채 후드티를 입고 집중한 얼굴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복잡한 파동 그래프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춤추는 것을 쫓고 있다. 커피잔에는 이미 마른 커피 자국이 남아있다.
    * **효과음:**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 [웅-1] (장비 작동 소리)
    * **한세라 (생각):** (새벽 3시. 또다시 이 패턴. 이 도시의 지하 깊은 곳에서… 이런 주파수가 감지된다고? 분명히 오류일 텐데.)

    **컷 2**
    * **묘사:** 세라의 얼굴을 클로즈업. 그녀의 눈은 피로하지만 호기심으로 반짝인다. 그녀가 스크린 속 파동 그래프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확대한다. 확대된 그래프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심장 박동처럼 불규칙하면서도 일정한 패턴을 보여준다. 기존에 알려진 모든 에너지 스펙트럼과 다르다.
    * **한세라 (생각):** (아니, 오류가 아니야. 이건… 기존 데이터베이스에는 존재하지 않는 에너지 서명이다. 마치… 완전히 다른 시대에서 온 것 같은.)

    **컷 3**
    * **묘사:** 세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녀의 눈은 홀로그램 지도를 향한다. 지도 위에는 도시의 복잡한 지하 구조가 층층이 펼쳐져 있고,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접근하기 어려운 구역, ‘구-A23 폐쇄 구역’에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다. 그곳은 수백 년 전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폐쇄된 곳으로, 통제 구역 중에서도 특히 더 그랬다.
    * **한세라:** 구-A23… 거기라면… 혹시?
    * **효과음:** [휘릭] (홀로그램 전환 소리)

    **2. 세라의 연구실 – 다음 날 아침**

    **컷 4**
    * **묘사:** 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고, 이지훈(20대 후반)이 손에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들어온다. 그는 단정한 옷차림으로, 밤을 새운 듯 초췌한 세라와 대조적이다. 연구실 안은 어제와 다름없이 너저분하다. 지훈은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 **이지훈:** 야, 한세라. 또 밤샜냐? 너 이러다 퓨즈 나간다. 자, 신상 카페 에스프레소 투 샷. 너 이거 없으면 죽잖아.
    * **효과음:** [덜컥] (문 열리는 소리), [짤랑] (컵 부딪히는 소리)

    **컷 5**
    * **묘사:** 세라가 지훈이 내민 커피를 반사적으로 받아든다. 그녀는 여전히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지훈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세라의 어깨를 툭 친다.
    * **한세라:** 야, 이지훈. 너 어제 내가 보낸 데이터 봤어?
    * **이지훈:** (한숨) 봤지, 봤어. ‘알 수 없는 기원의 고대 에너지 파동’이라던가? 또 네 특기 발동했네. 그거 그냥 지하 광산에서 쓰는 오래된 발전기 노이즈라니까? 아니면… (장난스럽게) 저 옛날 고문헌에 나오는 ‘정령의 속삭임’이라든가?
    * **한세라:** (단호하게) 아니. 이건 달라. 노이즈도, 단순한 발전기 진동도 아니야. 어떤 규칙성을 띠고 있어. 마치… 의지를 가진 존재의 맥박 같아.

    **컷 6**
    * **묘사:** 세라가 지훈의 팔을 잡고 홀로그램 스크린 앞으로 끌고 간다. 스크린에는 어제 그 복잡한 파동 그래프와 함께, 그녀가 새로 분석해낸 몇 개의 기호들이 떠 있다. 고대 상형문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복잡한 회로도 같기도 하다.
    * **한세라:** 봐봐. 이 패턴. 이 주파수 대역. 그리고 이 기호들. 난 이 파동이 그냥 무작위적인 게 아니라고 확신해. 이건 일종의… 신호야.
    * **이지훈:** (인상을 찌푸리며) 신호? 외계인이라도 통신하는 줄 알겠네. 아무리 네가 고고학적 에너지 분석 전문이라지만, 이번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구-A23은 폐쇄된 지 수백 년 된 구역이잖아. 거기서 대체 뭐가 나온다고.

    **컷 7**
    * **묘사:** 세라가 지훈의 말을 무시하고, 홀로그램 지도를 다시 확대한다. 붉은 점이 깜빡이는 구-A23 폐쇄 구역의 세부 도면이 나타난다. 오래된 지하 통로와 알 수 없는 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한세라:** 바로 그거야. 수백 년간 아무도 발을 들이지 않은 곳. 그래서 오히려 무언가가 ‘보존’될 수 있었을지도 몰라. 이 파동의 중심지는… 이 지점이야.

    **3. 구-A23 폐쇄 구역 입구 – 낮**

    **컷 8**
    * **묘사:** 도시 외곽의 낡은 지하 통로 입구. 녹슨 철문에는 ‘접근 금지’, ‘붕괴 위험’ 등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세라와 지훈이 손전등과 휴대용 스캐너를 들고 서 있다. 지훈은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고, 세라는 결연한 눈빛이다.
    * **이지훈:** 야, 진짜 괜찮겠어? 이거 불법 침입이야. 운 좋으면 경고, 재수 없으면 벌금이다.
    * **한세라:** 벌금? 지금 그게 중요해? 내 직감이 말하고 있어, 지훈. 이건 내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 될 수도 있다고.

    **컷 9**
    * **묘사:** 세라가 문 옆에 설치된 오래된 전자 잠금장치를 스캔한다. 그녀의 휴대용 스캐너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며 잠금장치의 시스템을 해킹한다. [삐빅-] 하는 소리와 함께 철문이 서서히 열린다. 안에서는 퀘퀘한 흙먼지와 습한 공기가 훅 끼쳐 나온다.
    * **효과음:** [삐빅-] (스캐너 작동음), [끼이이익-] (녹슨 문 열리는 소리)
    * **한세라:** (환하게 웃으며) 역시. 이런 구형 시스템은 내 손바닥 안이지.
    * **이지훈:** (입을 쩍 벌리며) 와, 진짜 네 해킹 실력은… 나도 가끔 네가 범죄에 쓰면 어쩌나 걱정된다니까.

    **컷 10**
    * **묘사:** 세라가 먼저 어두운 통로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지훈은 마지못해 그녀를 뒤따른다. 그들의 손전등 불빛이 통로의 낡고 부서진 벽돌들을 비춘다. 공기 중에는 흙먼지가 가득하다.
    * **이지훈:** 으으, 먼지 봐라. 이거 진짜 사람 살던 곳 맞아? 아니, 살 수 있는 곳이었나?

    **4. 구-A23 지하 깊은 곳 – 미지의 공간**

    **컷 11**
    * **묘사:** 그들이 한참을 걸어 들어간 뒤, 갑자기 통로가 넓어지며 거대한 지하 공간이 나타난다. 그곳은 동굴 같으면서도, 인공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방이었다. 중앙에는 정체불명의 제단처럼 생긴 구조물이 있고, 그 위에는 어두운 금속으로 만들어진 구 형태의 물체가 놓여 있다. 물체 주변에는 아까 세라의 스크린에서 본 기호들이 음각되어 있다. 방의 천장에서는 얇은 빛줄기들이 새어 들어와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 **한세라:** (숨을 들이쉬며) 세상에…!
    * **이지훈:**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런 곳이… 도심 지하에… 존재했다고?

    **컷 12**
    * **묘사:** 세라가 구체 앞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녀의 휴대용 스캐너에서 파동이 더욱 강하게 울린다. 스캐너 화면에는 어제 본 파동 그래프가 최고치를 찍고 있다. 세라는 구체에 새겨진 기호들을 손끝으로 더듬는다. 기호들은 만질수록 미묘하게 따뜻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하다.
    * **한세라 (생각):** (이 느낌… 이 에너지…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그 ‘무엇’인가?)
    * **효과음:** [삐비비비빅-] (스캐너 경고음)

    **컷 13**
    * **묘사:** 세라가 구체에 손을 대는 순간, 구체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빛은 점점 강해지며 방 안을 가득 채운다. 구체 주변의 기호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빛을 내며 번쩍인다. 세라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외감이 동시에 스친다.
    * **효과음:** [쉬이이잉-] (낮은 진동음), [파지직-] (빛나는 기호 소리)
    * **한세라:** (나지막이) 이건…

    **컷 14**
    * **묘사:** 구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이 방 전체를 감싸더니, 갑자기 빛줄기가 천장으로 솟구쳐 오른다. 그 빛줄기는 지하 공간의 단단한 암반을 뚫고 도시의 지상으로 향하는 듯하다. 동시에 방 전체가 기묘한 에너지로 들끓고, 세라의 주변에 떠다니던 먼지들이 마치 별처럼 반짝이기 시작한다.
    * **이지훈:** (뒷걸음질 치며) 세라야! 위험해! 무슨 짓을 한 거야?!
    * **효과음:** [콰아아앙-!] (강렬한 에너지 폭발음은 아니지만, 압축된 파동이 퍼져나가는 듯한 웅장한 소리), [우우웅-] (공간 전체가 울리는 진동음)

    **컷 15**
    * **묘사:** 구체는 이제 찬란한 푸른색으로 빛나며 공중에 떠오른다. 그 아래의 제단 같은 구조물도 함께 빛나기 시작한다. 세라는 그 빛의 한가운데 서서, 손을 뻗은 채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의 눈동자에도 푸른빛이 반사되어 빛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초월한 듯한 표정이다.
    * **한세라 (생각):** (이것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야.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어떤… 의지. 어쩌면… 이 별의, 이 문명의… 가장 오래된 기억.)
    * **이지훈:** (작은 글씨) 세라…!

    **컷 16**
    * **묘사:** 구체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에너지가 방 전체를 휩쓸며 거대한 파동을 일으킨다. 그 파동은 마치 물결처럼 공간을 일렁이게 하고, 지훈은 그 충격에 휘청이며 벽에 부딪힌다. 세라는 그 파동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서 있다. 그녀의 주변에서 작은 빛의 조각들이 마치 생명체처럼 춤을 춘다.
    * **한세라:** (작은 소리로, 경이로움 가득한 목소리로) 와…
    * **효과음:** [휘이이이이잉-!] (공간을 뒤흔드는 파동 소리)

    **컷 17**
    * **묘사:** 푸른빛이 최고조에 달하며, 방 안의 모든 것이 잠시 정지한 것처럼 보인다. 세라의 뒤편, 구체가 떠오른 제단의 가장자리에서, 아까 그녀가 스크린에서 봤던 그 고대 기호들이 빛으로 형상화되며 마치 벽에 투영된 듯 나타난다. 그리고 그 중 하나가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빛나며 마치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 **한세라 (생각):** (이것은… 시작인가? 아니면… 경고인가?)
    * **나레이션:** 오래된 기록에 잠들어 있던 힘이, 마침내, 현대의 빛 아래 깨어났다. 과연 이 힘은 인류에게 어떤 미래를 선사할 것인가? 혹은… 어떤 대가를 요구할 것인가?

    **-1화 끝-**

  • 추리 미스터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현우는 불길한 예감이 들 때마다 꼭 어깨가 욱신거렸다. 오늘은 유독 그 느낌이 강했다. 방금 전까지 멀쩡히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열쇠 꾸러미가, 눈을 깜빡이는 사이에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쨍, 하는 금속음이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갈랐다.

    “젠장, 또야?”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온 지 한 달째. 처음에는 건조하고 조용한 이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소음과 단절된, 오롯이 자신만의 안식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일주일 전부터 기묘한 일들이 시작됐다.

    처음엔 사소했다. 분명히 잠그고 나왔던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다거나, 냉장고 문이 희미하게 벌어져 있는 식이었다. 처음엔 건망증이 심해졌나 했다. 야근에 시달리다 보니 피로가 누적된 탓이겠거니,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고, 이제는 대담해지기까지 했다.

    지난 수요일에는 샤워를 마치고 나왔더니, 욕실 거울에 뿌옇게 김이 서린 채로 손가락으로 길게 그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마치 누군가 손톱으로 긁고 간 것처럼.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욕실 안을 다시 살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흔적은 이내 사라졌다.

    “이건 아니지…”

    현우는 식탁 아래 떨어진 열쇠를 줍지 않고, 그대로 선 채로 거실을 둘러보았다. 30평대 오피스텔. 높은 층수 덕분에 시야는 탁 트여 있었다. 창밖으로는 빌딩 숲의 불빛들이 점점이 박혀 있었고, 그 너머로 희미하게 동이 트기 시작하는지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물들고 있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야경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이 현우의 불안감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 고층 건물 안, 텅 빈 공간에 갇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는 어쩐지 등을 돌려 주방을 볼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뒤를 돌아보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마치 누군가 등 뒤에 서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을 것만 같은 오싹한 기분.

    결국 한참을 망설이다가, 뻣뻣한 몸을 돌려 주방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냉장고, 가스레인지, 싱크대.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다. 특별한 건 없었다. 하지만 싱크대 한가운데 놓여있는 스테인리스 컵이 보였다. 현우는 분명히 어제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컵을 컵걸이에 걸어두었었다. 그런데 왜 지금 저 컵은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걸까.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그때였다.

    *딸깍.*

    현관문 도어락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

    몸이 굳었다. 손끝이 저릿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새벽 2시 17분. 아무도 올 리 없는 시간. 누군가 문을 연 것이다. 하지만 현관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잠금쇠가 풀렸을 뿐, 문 자체는 열리지 않았다.

    “누구야?”

    목소리가 쥐어짜듯 나왔다. 대답은 없었다. 대신, 현관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긁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손톱으로 나무 문을 긁는 듯한, 섬뜩한 소리.

    현우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뭘 준비해야 할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온몸의 피가 식어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긁히는 소리는 점점 더 강해졌다. 이젠 문이 쿵, 쿵 하고 울리는 것 같았다. 마치 문 너머의 존재가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현우는 휴대폰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주머니에 있었다. 지훈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 지금 당장.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누르려는 순간, 긁히는 소리가 뚝 끊겼다.

    정적.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고요. 그 고요가 오히려 현우를 더 옥죄었다.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이내, 정적을 깬 것은 현관문 너머가 아니었다.

    *와장창!*

    거실 한가운데 놓여있던 유리 테이블 위 꽃병이, 아무런 이유 없이 그대로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박살이 났다.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고, 물이 흥건하게 퍼졌다.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차마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며 눈을 크게 뜰 뿐이었다. 꽃병이 깨진 자리에, 차가운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그리고 그 차가운 공기 속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바람이 지나가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가…….”

    마치 누군가 귓가에 대고 속삭인 듯이 생생했다. 분명히 들었다. ‘나가’라고.

    현우는 정신없이 휴대폰을 쥐고 현관 쪽으로 달려갔다. 문고리를 잡으려 했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문이 덜컥, 하고 스스로 열렸다.

    복도는 어둡고 고요했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현우는 문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그 대신, 열린 현관문 너머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등골을 타고 올라오는 섬뜩한 감각과 함께, 열린 문틈으로 희미하게 보이는 자신의 아파트 안쪽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방금 깨진 꽃병의 파편들 위로,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스르륵, 하고 기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악!”

    현우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문을 쾅 닫았다. 잠금 버튼을 미친 듯이 눌렀다. 잠금쇠가 철컥철컥, 격렬하게 움직였다. 이중 잠금까지 걸고 나서야 겨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눈앞이 아찔했다.

    “미쳤어… 이건 말도 안 돼…”

    머릿속이 온통 혼란스러웠다. 꿈일까? 아니, 너무나 생생했다. 현실이었다. 누군가의 장난? CCTV를 돌려봐도 아무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령?

    그 순간, 거실에서 다시 한번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거실 장식장에 놓여있던 작은 도자기 인형들이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현우가 기대고 있던 현관문이 안쪽에서부터 *쿵, 쿵, 쿵!* 하고 격렬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아니,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무언가 거대한 힘으로 문을 부수려는 것처럼.

    현우는 이제 확신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 아파트 안에, 자신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자신을 원하지 않았다.

    문은 계속해서 격렬하게 울렸다. 현우는 공포에 질려 눈을 감았다.

    “젠장, 젠장, 젠장…”

    그는 이를 악물었다. 대체 무엇이,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걸까. 이 아파트에 무슨 비밀이 있는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만 보이는, 광기의 시작일까.

    쿵, 쿵, 쿵!

    문이 한 번 더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문을 두드리던 소리는 뚝 끊겼다. 대신, 닫힌 현관문 너머, 자신의 아파트 안쪽에서, 기분 나쁜 정적이 흘러나왔다.

    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고요했다. 너무나 고요해서 오히려 더욱 불안했다.

    그는 문에 기대어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숨을 참고, 다시 한번 현관문 쪽을 바라보았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굳게 닫힌 문틈 사이로, 아주 미세하게, 붉은 액체가 스며 나오는 것이 보였다. 마치 피처럼, 끈적하고 어두운 붉은색.

    그리고 그 붉은 액체 위로, 스르륵, 하고 기어가는 듯한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렸다.

    현우는 더 이상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한 단어로 가득 찼다.

    ‘탈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비상 계단으로 향하는 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복도 끝, 희미한 비상등 불빛만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거기, 서…!”

    아파트 안쪽에서, 찢어질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현우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비는 내렸다. 아니, 쏟아졌다. 잿빛 하늘은 찢어진 먹구름 조각들을 토해내듯 지독한 장대비를 뿌려댔고, 그 아래 도시는 거대한 수채화처럼 희뿌옇게 번져 있었다. 굵고 시끄러운 빗방울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어떤 거대한 짐승이 발톱으로 긁어대는 듯 불쾌한 진동을 안겨주었다. 서재현은 그런 창밖을 말없이 응시했다. 그의 손에는 갓 내린 뜨거운 커피잔이 들려 있었지만, 그에게서 온기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런 날씨에… 아주 귀찮게 됐습니다.”

    잔잔한 그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 초조하게 발을 떨던 박 경감은 그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죄송합니다, 서 박사님. 저도 이런 식으로 찾아뵙고 싶진 않았습니다만… 이건 아무래도 서 박사님밖에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서요.”

    박 경감의 얼굴은 피로와 함께 미심쩍은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꽤나 경험이 많은 베테랑 형사였지만, 이번 사건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는 듯 보였다.

    서재현은 천천히 몸을 돌려 박 경감을 향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처럼 날카로웠지만, 동시에 세상만사를 초월한 듯한 깊이를 담고 있었다. 빗소리에 묻힐 듯 작게 시작된 그의 질문은 선명하게 귓가를 파고들었다.

    “밀실 살인, 맞습니까?”

    박 경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는 아직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오직 불안한 표정과 긴장된 몸짓만이 그를 대변했을 뿐이었다.

    “네, 네! 맞습니다. 서 박사님은 역시… 어떻게 아셨습니까?”

    서재현은 대답 대신 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쌉쌀한 향이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을 만들었다.

    “당신은 어지간한 사건에는 이렇게까지 떨지 않소. 그리고 당신이 나를 찾는 사건의 십중팔구는 언제나 상식을 벗어난 범주에 속하니까. 밀실, 혹은 기괴한 살인. 안 그렇소?”

    박 경감은 더듬더듬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십니다. 피해자는 강태산 씨입니다. 어둠의 경매를 통해 고대 유물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아니, 유명한 분이시죠.”

    서재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강태산. 그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희귀한 물건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기이한 소문들로 가득 찬 남자.

    “시신은 그의 서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내부에서 굳게 잠긴 서재였고, 창문은 특수 강화유리로 되어 있어 외부 침입은 불가능합니다. 천장도 마찬가지고요. 환기구조차 성인 남자가 드나들기엔 턱없이 작습니다. 게다가 강태산 씨는 지독한 은둔형 인간이라 저택에는 단 한 명의 집사 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 집사도 살인 당시에는 외출 중이었다고 진술했고요.”

    “범행 도구는?” 서재현이 물었다.

    “없습니다. 그 흔한 칼 한 자루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신에는 어떤 외상도 없었고요. 다만… 표정이… 죽는 순간 극심한 공포에 질린 듯했습니다.”

    박 경감은 말을 잇기 힘든지 침을 꿀꺽 삼켰다.

    “자살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독극물 검사에서도 아무런 흔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재 내부의 모든 공기 샘플까지 채취했지만, 이상은 없었습니다. 부검의 소견은… 심장마비였습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

    서재현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찻잔이 테이블에 부딪히며 ‘탁’ 하는 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울렸다.

    “밀실 안에서, 범행 도구도 없이, 외상도 없이, 독극물도 없이, 스스로 공포에 질려 심장마비로 죽었다라… 재미있군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얇은 코트를 걸쳤다.

    “안내해주시죠. 어둠의 컬렉터가 마지막으로 마주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

    강태산의 저택은 시 외곽, 인적이 드문 언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거대한 돌담이 저택을 둘러싸고 있었고, 낡은 철문은 기괴한 문양이 새겨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빗물에 젖어 어둡게 빛나는 검은 석조 건물은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듯 보였다.

    “도착했습니다, 서 박사님.” 박 경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경찰차가 저택 입구에 멈춰 서자, 거친 빗줄기 속에서도 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노란 폴리스 라인이 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감식반원들이 오가는 그림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서재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눅눅하고 축축한 공기 속에서 그는 무언가 다른 냄새를 맡았다. 흙냄새, 젖은 나뭇잎 냄새, 그리고… 희미한 비린내 같은 것. 아니, 그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되고 끔찍한, 형언할 수 없는 냄새였다.

    “이 냄새는 대체…” 서재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박 경감은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런 냄새도 안 나는데요?”

    서재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냄새의 근원을 찾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택의 정원에는 기이하게 뒤틀린 고목들이 서 있었고, 그 가지들은 앙상한 손가락처럼 빗줄기 속에서 하늘을 할퀴는 듯했다. 어딘가에서, 그는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울리는 듯한 저음의 웅얼거림을 들은 것 같았다. 착각일까?

    “어서 안으로 들어갑시다. 빗물에 젖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박 경감이 재촉했다.

    서재현은 묵묵히 그를 따랐다. 저택 내부는 외부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천장은 높고, 어두운 목재 패널로 장식된 벽은 웅장하면서도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복도 곳곳에는 강태산이 수집했을 법한 이국적인 조각상과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진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 몇몇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어딘가 일그러지고 기형적인 모습이 심장을 불쾌하게 긁는 듯했다.

    “서재는 이쪽입니다.”

    박 경감이 안내한 곳은 저택의 가장 안쪽,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곳에 위치한 방이었다. 두껍고 육중한 참나무 문 앞에는 이미 감식반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재입니다. 발견 당시에는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고, 유일하게 열쇠를 가지고 있던 집사는 외출 중이었습니다.”

    서재현은 문을 훑어보았다. 낡고 오래된 문이었지만, 잠금장치는 튼튼하고 복잡해 보였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내 문틈과 손잡이, 잠금장치 주변을 꼼꼼히 비춰보았다.

    “틈새를 통한 침입 흔적은 없군요. 강제로 열린 흔적도 없고.”

    “네, 전문가의 말로는 완벽한 밀실이라고 합니다.”

    서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서재는 넓고 어두웠다. 낡은 서가에는 두꺼운 책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는데, 그중에는 제목조차 알 수 없는 고문서들이 상당수 보였다. 희미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직한 종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 중앙에는 거대한 서재 책상이 놓여 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창문이 있었다. 창문은 두꺼운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감식반원들이 일부를 걷어내어 외부의 빗줄기가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서재 책상 앞, 앤티크 의자 위에 강태산의 시신이 앉아 있었다.

    “흐읍…”

    서재현은 시신을 보자마자 아주 짧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에 비친 강태산은 박 경감의 말대로 극심한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눈은 동그랗게 치켜떠져 있었고, 입은 벌어져 마치 비명을 지르다 굳은 듯했다. 피부는 창백했고, 손은 의자 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비틀려 있었다.

    하지만 서재현의 시선은 표정보다 더 깊은 곳에 머물렀다. 그의 눈은 강태산의 손에 들린 것에 고정되었다. 쭈글쭈글하게 쥐어진 손에는 검은색, 낡고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돌 조각이 쥐어져 있었다. 돌 조각은 손때가 묻어 반질거렸고, 육안으로 보아도 그저 평범한 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건… 유물입니까?” 서재현이 물었다.

    “네, 강태산 씨의 수집품 중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시신 발견 당시부터 저렇게 쥐고 있었습니다.” 박 경감이 답했다.

    서재현은 시신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허리를 숙여 강태산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공포. 그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감정 중 하나였고, 그의 얼굴에는 그 감정의 모든 잔해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공포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치… 무엇인가를 ‘본’ 것에 대한 공포 같았다.

    “시신 주변에서 발견된 다른 특이점은 없었습니까?”

    “아뇨, 없습니다. 책상 위에도 평소 그가 읽던 고문서 몇 권과 필기도구 정도뿐입니다. 다른 어지럽혀진 흔적도 없고요. 저항의 흔적도 전혀 없습니다.”

    서재현은 서서히 서재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책장, 바닥, 천장, 그리고 다시 창문으로 향했다. 그는 서재 곳곳에 놓인 강태산의 다른 수집품들을 눈여겨보았다.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듯한 토기, 동남아시아의 어느 부족에서나 만들 법한 나무 가면, 그리고 기하학적인 무늬가 뒤얽힌 청동 거울. 모든 것들이 묘한 불쾌감을 자아냈다.

    그의 발걸음은 멈췄다. 책상 옆,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였다. 칙칙한 색깔의 천에는 알 수 없는 문자와 형체가 복잡하게 수놓아져 있었다. 그것은 어느 고대의 신화에 나올 법한 괴물의 형상을 하고 있는 듯했다. 촉수, 거대한 눈, 그리고 비늘 달린 몸통. 불쾌하고, 역겹고, 동시에 묘하게 눈길을 사로잡는 형태였다.

    서재현은 그 그림을 응시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책상 위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강태산의 손에 쥐어진 검은 돌 조각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강태산 씨의 서재에서, 혹시 최근에 사라진 물건이 있습니까?”

    박 경감은 고개를 저었다. “집사에게 확인해봤지만, 특별히 사라진 물건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워낙 많은 유물이 있다 보니 하나하나 파악하진 못하지만, 최소한 그가 아끼던 주요 컬렉션은 그대로라는군요.”

    “그렇군요.”

    서재현은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여전히 태피스트리와 돌 조각, 그리고 강태산의 시신 사이를 오갔다. 좁혀지는 시야 속에서, 그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쓰는 듯했다.

    “서 박사님, 범인이 대체 어떻게 밀실 안으로 들어와 강태산 씨를 살해하고 사라질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범행 도구도 없이… 설마 유령이라도 되는 겁니까?”

    박 경감의 목소리에는 이제 노골적인 공포가 섞여 있었다. 그는 이런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눈앞의 상황은 그의 모든 상식을 부정하고 있었다.

    서재현은 한참을 말이 없었다. 서재 안에는 빗소리와 감식반원들의 작은 움직임, 그리고 그의 차분한 숨소리만이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유령은 아니오.”

    박 경감이 안도하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범인은 강태산 씨를 죽인 방법은 상식적이지 않소.”

    그는 서서히 강태산의 시신이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뒤편, 벽과 의자 사이에 아주 미세하게 비집고 들어간 틈새에 시선을 고정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좁은 틈이었다. 그는 손전등을 비추어 그곳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곳에… 작은 흠집이 있군요.”

    “흠집이요?” 박 경감이 의아하게 물었다.

    “아주 미세한. 마치 무언가가 벽을 스치듯 긁어낸 흔적처럼.”

    서재현은 그 흠집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의 눈은 천장 모서리, 그리고 그 너머의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밀실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소.”

    박 경감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럴 리가요! 모든 곳을 확인했습니다!”

    “아니오. 완벽한 밀실처럼 ‘보였을’ 뿐이오.”

    서재현은 다시 한번 강태산의 손에 쥐어진 검은 돌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치 그 돌 조각이 그에게 어떤 비밀을 속삭이는 것처럼, 그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이 모든 것은… 이 방에 있는 ‘그것’이 만들어낸 완벽한 착각이었을 뿐.”

    그의 말은 빗소리에 묻히는 듯했지만, 박 경감의 귀에는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서재현의 시선은 이제 강태산의 시신과, 그의 손에 쥐인 돌 조각, 그리고 벽에 걸린 태피스트리를 넘어… 이 방 전체를 감싸고 있는 듯한 묘한 기운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이 밀실이 숨기고 있는 ‘진짜’ 범인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이 사건은… 단순히 트릭을 깨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겠군요. 이 방 안에는… 아주 오래된 손님 한 분이 더 계신 것 같으니.”

    서재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수수께끼를 풀 기회를 얻은 탐정의 만족감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거대한 미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의 싸늘한 감격처럼 보이기도 했다.

    밀실은 그 침묵 속에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밀은, 그 안에 잠들어 있던 고대의 존재처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세상의 모든 상식을 조롱하려 하고 있었다.

  • 사이버펑크 독립적인 단편 소설

    무한한 어둠 속을 유영하는 낡은 상어처럼, ‘세이렌’ 호는 길고 지루한 항해를 이어가고 있었다. 빛의 속도를 아득히 넘어선 워프 항해도 이제는 일상이 된 시대였지만, 여전히 심우주는 인간에게 미지의 영역이자 압도적인 고독의 상징이었다. 캡틴 류는 함교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끝없이 이어지는 별들의 강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수많은 항해를 거치며 날카롭게 벼려졌지만, 동시에 깊이를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배어 있었다.

    “캡틴, 특이 신호 감지.”
    정적을 깬 건 항해사 카이의 나직한 목소리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데이터 분석 능력으로 류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위치?” 류는 미동도 없이 물었다.
    “좌현 3-A 섹터, 좌표 J-782. 일반적인 항성계가 아닙니다. 어떤 에너지 방출도 없고, 중력장 왜곡도 미미합니다. 그런데……” 카이의 목소리에 미묘한 동요가 섞였다. “알 수 없는 파동이 감지됩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습니다.”
    류는 천천히 몸을 돌려 카이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바라봤다. 스크린 위에는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알 수 없는 기하학적 패턴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코드처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듯했다.
    “출력을 올려서 다시 스캔해.”
    카이가 조작패드를 능숙하게 두드리자, 홀로그램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러나 패턴은 더욱 복잡해질 뿐, 명확한 형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파동이…… 반응합니다, 캡틴. 스캔 주파수에 맞춰 스스로 변형하고 있어요. 마치…… 우리를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교에 순간적인 침묵이 흘렀다. 우주에서 수많은 현상을 보았지만, 이토록 기이한 반응은 처음이었다.

    “지나, 엔지니어실. 현재 선체 상태는?” 류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스크린 한쪽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의 지나가 나타났다. 그녀는 늘 낡은 우주선 ‘세이렌’ 호의 심장과도 같았다. “캡틴, 출력은 안정적입니다. 워프 코어 이상 없음. 하지만…… 이 파동, 대체 뭡니까? 선내 시스템에 미약하게 간섭하고 있습니다. 경고등이 깜빡여요.”
    “안정화시켜. 에바, 생체 반응은?”
    생체학자 에바는 언제나처럼 고글을 이마 위로 올린 채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콘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탐지되지 않습니다, 캡틴. 생명체 반응은 없어요. 하지만 이 파동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어떤…… 정보의 흐름 같아요. 언어 같기도 하고, 수학 공식 같기도 합니다. 너무나 밀도가 높아서 분석 불가능합니다.” 그녀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미지의 것을 탐구하려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십 년간의 우주 생활은 그에게 직감을 선물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직감은 이 신호가 단순한 우주 현상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속도를 줄여. 천천히 접근한다.”
    카이가 놀란 눈으로 류를 바라봤다. “캡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파동입니다.”
    “알아. 하지만 여기 심우주까지 와서 정체불명이라는 이유로 돌아설 수는 없어. 이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류의 시선은 홀로그램의 복잡한 패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니면, 거대한 미스터리일 수도 있지.”

    세이렌 호는 거대한 검은 바다를 가르는 작은 배처럼 신중하게 다가갔다. 파동의 근원은 멀리서 보아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육안 관측 가능합니다!” 카이가 외쳤다.
    전면 스크린에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새까만 우주를 배경으로, 그것은 마치 시간을 찢고 튀어나온 거대한 얼음 결정 같았다. 그러나 표면은 얼음처럼 투명하지 않고, 끝없이 변하는 심해의 색깔을 담고 있었다. 거대한 육면체, 혹은 다면체의 형태로 우주에 정지해 있었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인공물과도 달랐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자세히 보면 수없이 작은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패턴을 이루고 있었다.
    “맙소사……” 지나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건…… 유물입니다.” 에바의 목소리는 경외심으로 가득했다. “어떤 문명이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기술력입니다.”

    류는 조용히 명령했다. “접근 통로 탐색. 가능하다면 착륙 모드를 준비해.”
    “착륙이라고요? 캡틴, 이건 대체 뭡니까? 위협일 수도 있습니다!” 카이가 반문했지만, 류는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정보를 원한다면, 가까이 가야만 해. 경계 태세 유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세이렌 호는 유물로부터 약 1킬로미터 지점에 멈춰 섰다. 유물의 표면에서는 여전히 기이한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접근 통로를 찾았습니다!” 카이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표면에 형성된 패턴 중 하나가 안정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가 접근하길 기다린 것처럼요.”
    그 말에 모두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류는 심호흡을 했다. “에바, 지나, 카이. 나랑 같이 간다. 무장은 최소한으로. 이건 전투가 아니야. 탐사다.”

    캡슐형 셔틀에 탑승한 세 사람은 유물의 입구로 향했다. 입구는 마치 거대한 우주선 도킹 베이처럼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형태였다. 셔틀이 내부로 진입하자, 바깥의 어둠과는 다른, 희미한 푸른빛이 주변을 밝혔다. 내부 공간은 밖에서 본 것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도 벽도 바닥도 없었다. 마치 무한한 공간 안에 갇힌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건…… 구조물이 아니야.” 에바가 중얼거렸다. “공간 자체가 유기적으로 변형된 것 같아.”
    “중력은 안정적입니다. 공기는…… 질소와 산소의 비율이 지구와 동일합니다. 하지만 약간의 희귀 가스가 섞여 있어요.” 카이가 진단 결과를 보고했다.

    셔틀에서 내린 그들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닥은 액체처럼 부드럽게 출렁였지만, 발이 닿으면 고체처럼 단단해졌다. 푸른빛은 공간 전체를 감싸는 듯했다. 빛의 근원은 보이지 않았고, 벽도 경계도 없었다. 그저 무한한 푸른색이었다.
    “캡틴, 여기…… 뭔가 있어요.”
    지나의 손전등이 한 곳을 비추자, 그들은 숨을 멈췄다. 공간 중앙에 떠 있는 거대한 구체. 금속인지 유기체인지 알 수 없는 재질로 이루어진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구체의 표면에는 아까 홀로그램 스크린에서 보았던 기하학적 패턴들이 끝없이 흐르고 있었다.
    “이게…… 파동의 근원인가.” 류가 낮게 읊조렸다.
    에바가 홀린 듯 구체에 다가갔다. “이건 기술이 아니에요. 예술이자, 생명이며, 동시에…… 우주 그 자체입니다.”
    그녀가 손을 뻗어 구체의 표면에 닿으려는 순간, 구체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들의 의식 속으로 파고들었다.

    류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혼돈과 질서가 뒤섞인 이미지들이었다.
    수십억 년에 걸쳐 탄생하고 소멸하는 별들의 모습.
    가스 구름 속에서 꿈틀대는 거대한 생명체.
    빛으로 이루어진 도시, 혹은 존재들의 춤.
    그리고…… 한순간, 너무나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압도적인 외로움.
    그것은 언어가 아니었고, 이미지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감정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순수한 정보의 폭포. 그들의 뇌가 이해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 수 있었다. 이 유물이 품고 있는 것은 하나의 문명이 아닌, 수많은 문명과 시간과 공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다.’ 류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그 순간, 지나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카이는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에바만이 여전히 구체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기쁨과 경외심, 그리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건…… 우리가 찾아 헤매던 모든 것……” 에바의 목소리는 떨렸다. “답을 찾았습니다, 캡틴. 아니, 답이 우리를 찾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과부하에 구체의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류는 정신을 차리고 쓰러진 지나와 괴로워하는 카이를 부축했다.
    “돌아가자! 당장!”
    그들은 서둘러 셔틀로 향했다. 유물은 침묵 속에 다시 잠겼다. 셔틀이 유물 내부를 벗어나자마자, 입구는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세이렌 호의 함교로 돌아왔을 때,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와 혼란,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경외심이 교차했다.
    “캡틴…… 우리는 뭘 본 거죠?” 카이가 힘겹게 물었다.
    류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평생을 지탱했던 냉철함 대신, 깊은 경이로움과 함께 무언가 거대한 것을 깨달은 자의 고뇌가 어려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 이유를 본 것 같아.”
    지나가 머리를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머릿속이…… 온통 그래픽 노이즈로 가득해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명확해요.”
    에바는 창밖의 유물을 응시했다. 거대한 육면체는 다시 검은 우주에 잠겨, 아무것도 아닌 듯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알았다. 그것이 품고 있는 진실이 얼마나 압도적인지.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죠, 캡틴?” 에바가 물었다. “이걸 보고할까요? 아니면……”
    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홀로그램 스크린에 나타난 유물의 희미한 파동에 머물렀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류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결연했다. “우리는 아직 이 모든 것을 이해할 준비가 안 됐어. 하지만 하나는 확실해. 우주의 지도는 오늘부터 새로 그려져야 할 거야.”

    세이렌 호는 다시 유영을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단순한 화물선이 아니었다. 거대한 우주의 비밀을 품고 가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앞에는 미지의 유물이 선사한 끝없는 질문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경외심이 펼쳐져 있었다. 심우주의 고독은 여전했지만,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우주는 그들의 상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외로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제, 그 외로움은 그들 모두의 것이 되었다.

  • 던전 탐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잿빛 심연의 서곡

    축축한 공기가 뼈를 에는 듯 차가웠다. 고대 묘지의 하층부, 이빨처럼 솟은 뾰족한 석순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골격의 미궁’ 깊숙한 곳에서 다섯 그림자가 움직였다. 삐걱이는 뼈들의 무게가 천 년의 침묵을 깨고 발걸음마다 희미한 메아리를 남겼다. 강혁은 고개를 저으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의 손에 쥔 녹슨 단검은 언제든 적을 찢을 준비를 마친 늑대의 이빨 같았다.

    “젠장, 여기서 숨 쉬는 것조차 사치 같군.” 리안이 마른 기침을 터뜨렸다. 젊은 그의 눈에는 긴장과 피로가 짙게 서려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촛불보다 어두운 주위의 어둠 속에서도 번들거렸다.

    “불평할 시간에 주변이나 잘 살펴, 리안. 우리가 찾아야 할 건 보물창고가 아니라 제국의 지옥이다.” 강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묵직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는 반역의 불꽃을 품은 평민들의 지도자였다. 수많은 피와 눈물을 보며 굳어진 그의 의지는 강철보다 단단했다.

    세린은 눈을 감고 미약한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은은한 푸른빛이 그녀의 손끝에서 일렁였다. “이쪽이야. 미약하지만, 제국 마법진의 흔적이 느껴져. 이 아래, 분명 그들이 숨겨둔 시설이 있을 거야.”

    그녀의 안내를 따라 묵호가 육중한 몸을 움직였다. 그의 거대한 양손검은 등 뒤에서 마치 잠자는 거인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한때 제국군 최고의 전사였던 그가 왜 이 초라한 반란군에 합류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의 눈빛에서 제국에 대한 깊은 증오를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갑자기, 리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위험!”

    그의 외침과 동시에, 발밑의 뼈무더기에서 끔찍한 소음과 함께 거대한 강철 해골병이 솟아올랐다. 녹슨 갑옷을 걸친 채 앙상한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마치 악몽에서 튀어나온 존재 같았다. 그 뒤를 이어 연달아 세 개의 강철 해골병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이 지하 납골당을 수호하는 존재들인 것 같았다.

    “흩어져! 세린, 후방 지원!” 강혁이 소리쳤다.

    강철 해골병의 녹슨 칼날이 번개처럼 강혁의 목을 노렸다. 강혁은 몸을 틀어 간신히 피하며 단검을 휘둘렀지만, 해골병의 갑옷은 단단했다. 금속성 마찰음만 날 뿐, 깊은 상처는 입히지 못했다.

    “젠장, 놈들 갑옷이 너무 두꺼워!”

    그 순간, 묵호의 거대한 양손검이 허공을 갈랐다. ‘콰아앙!’ 굉음과 함께 첫 번째 강철 해골병이 두 동강 나며 산산조각 났다. 뼈 조각과 갑옷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묵호는 미동도 없이 나머지 해골병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움직임은 거구에서 나올 수 없는 속도와 정확성을 자랑했다.

    “불꽃, 휩쓸어라!” 세린의 손에서 강력한 화염구가 터져 나왔다. 해골병 하나가 화염에 휩싸여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가 주위를 가득 채웠다.

    리안은 재빨리 쇠뇌를 장전했다. ‘챙!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살이 해골병의 관절을 정확히 노렸다. 팔다리가 분리된 해골병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강혁은 묵호와 세린이 길을 여는 동안, 마지막 남은 해골병의 뒤를 잡았다. 날카로운 단검이 갑옷의 틈새, 목과 어깨가 연결되는 부위를 정확히 찔렀다. ‘끼이이익!’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해골병은 움직임을 멈추고 고철처럼 무너져 내렸다.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 가득했다. 연기와 먼지가 가라앉자, 부서진 뼈와 녹슨 갑옷 파편들이 널브러진 모습이 보였다.

    “모두 괜찮은가?” 강혁이 물었다.

    “상처는 없지만, 좀 더러워졌네요.” 리안이 얼굴을 닦으며 투덜거렸다.

    세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력을 재정비했다.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할 순 없어. 제국 녀석들이 이런 곳에 단순한 함정만 설치해 두지는 않았을 거야.”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제국군 제7 비밀 연구 시설’에 도달해야 한다. 그곳에 황제 직속 특수 부대의 운용 정보,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고대 유적에서 찾아냈다는 ‘영혼석’의 잔해가 있을지도 모른다. 제국의 어둠을 파헤칠 단서가.”

    그의 눈빛에는 결의가 가득했다.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는 이유는 단 하나, 굶주리고 착취당하는 평민들의 절규를 멈추기 위해서였다. 부패한 제국은 피와 눈물 위에서 그들의 번영을 쌓아 올렸다. 그 번영의 심장을 꿰뚫기 위해, 강혁과 그의 동지들은 가장 어두운 심연으로 뛰어들었다.

    세린은 다시 눈을 감고 집중했다. 이번에는 더 강렬하고 끔찍한 마력의 흐름이 느껴졌다. “이쪽이야. 강력한 보호 마법진이 느껴져. 아마도… 봉인된 문일 거야.”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다름 아닌 벽이었다. 육안으로는 그저 평범한 석벽에 불과했지만, 세린의 마력이 닿자 희미한 푸른빛의 문양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대 문자들과 함께 복잡하게 얽힌 마법진이 드러났다.

    “이건… 고대어와 제국어가 혼합된 형태의 봉인 마법진이야. 해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세린은 조심스럽게 문양들을 짚어가며 해제를 시도했다.

    그녀가 마법진에 집중하는 동안, 강혁은 주위를 경계했다. 심장은 쉬지 않고 쿵쾅거렸다. ‘과연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 모든 희생이… 결국엔 의미 있는 일일까?’ 머릿속을 스치는 의문들을 애써 억눌렀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지던 아이들의 얼굴, 제국군에게 끌려가던 여인들의 비명, 눈앞에서 폭사당하던 동지들의 마지막 모습이 그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돌아갈 길은 없었다. 나아갈 뿐이었다.

    “젠장, 이놈들 진짜 치밀하게 숨겨놨네.” 리안이 투덜거렸다. “대체 뭘 숨기려고 이런 깊은 곳까지 내려온 걸까요?”

    묵호는 아무 말 없이 양손검의 손잡이를 굳게 쥐고 주변의 어둠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맹수가 사냥감을 노리는 것처럼 예리했다.

    얼마 후, 세린의 손끝에서 마지막 마력의 불꽃이 튀었다. “됐다! 봉인 해제!”

    ‘쉬이이잉…’ 거대한 석벽이 굉음을 내며 천천히 안쪽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 뒤에 드러난 것은 고대 묘지의 뼈와는 전혀 다른, 차갑고 깔끔한 금속 재질의 통로였다. 푸르스름한 비상등이 깜빡이며 길을 비췄고, 공기마저 방금까지 걷던 곳과는 확연히 달랐다. 퀴퀴한 먼지 냄새 대신, 소독약과 금속이 뒤섞인 듯한 낯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제7 비밀 연구 시설….” 강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통로 안으로 발을 디딘 순간, ‘삐이이이-‘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천장의 푸른 비상등이 붉은색으로 바뀌며 번뜩였다. 통로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들었고, 어디선가 둔탁한 금속성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경보! 침입자 감지! 침입자 감지!” 기계적인 목소리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젠장, 놈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나!” 리안이 쇠뇌를 바짝 당겼다.

    묵호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거대한 전의가 뿜어져 나왔다.

    ‘쿵… 쿵… 쿵…’ 발걸음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금속이 바닥을 울리는 둔중한 진동이 심장까지 전해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전의 강철 해골병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였다. 육중한 강철과 알 수 없는 검은 돌이 뒤섞인 거대한 수호 골렘. 붉은 빛을 뿜어내는 두 눈은 마치 불타는 용광로 같았다. 놈의 거대한 팔에는 고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고, 그 마력으로 인해 주변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했다.

    “침입자… 제거….” 왜곡된 금속성 음성이 통로를 뒤흔들었다.

    수호 골렘이 육중한 몸을 이끌고 다가왔다. 그 거대한 존재가 통로를 완전히 가로막았다. 뒤에는 봉인 마법이 해제된 문이 있지만, 그들의 유일한 탈출구는 저 거대한 괴물 뒤에 있었다. 그들은 이제 옴짝달싹할 수 없는 함정에 갇힌 것이다. 붉은 비상등이 혼란스럽게 번뜩이며, 그들의 얼굴에 공포와 결의가 뒤섞인 그림자를 드리웠다.

    강혁은 단검을 굳게 쥐었다. 심장이 터질 듯 울렸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이것이… 제국이 숨긴 진짜 얼굴인가.’

    그 순간, 수호 골렘의 거대한 팔이 번개처럼 그들을 향해 내리쳤다.

  • 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심연의 그림자, 복수의 칼날**

    축축한 흙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빛 한 점 없는 어둠 속에서 김현우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귓가를 맴돌던 짐승들의 울부짖음은 이미 멀리 사라진 지 오래. 수개월, 아니 수년이었을지도 모를 시간 동안 그를 집어삼켰던 끔찍한 심연이, 마침내 그를 토해낸 듯했다.

    삐거덕거리는 관절을 움직여 몸을 일으켰다. 해골처럼 바싹 마른 손가락이 바닥의 진흙을 움켜쥐었다. 찢어지고 해진 누더기 같은 옷가지들은 이제 그의 몸에 걸쳐진 장식품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달랐다. 깊은 암흑 속에서 수천 년을 벼려낸 듯, 푸르스름한 불꽃이 춤을 추고 있었다.

    “후우…”

    오랜만에 내쉬는 숨결이 폐를 가득 채웠다. 썩어가는 시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섞인 공기였지만, 그에게는 생명의 향취나 다름없었다. 몸속 어딘가에서부터 차오르는 힘이 그의 혈관을 따라 흐르는 것을 느꼈다.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훨씬 거대하고 차가운 힘이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은 잊혀진 던전의 가장 깊은 곳, ‘망각의 심장부’라 불리던 곳이었다. 평생 빛을 보지 못했을 거대한 종유석들이 천장에서 마치 짐승의 이빨처럼 솟아 있었고, 바닥에는 이름 모를 생물들의 뼈가 뒹굴었다. 한때 이곳은 탐험가들의 무덤이자 절망의 상징이었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 무덤의 일부가 될 뻔했다.

    *그날이었다.*

    머릿속에 섬광처럼 스치는 기억에 현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친구의 얼굴. 이준호. 가장 믿었던 동료이자, 함께 수많은 던전을 헤쳐 나갔던 전우.

    “미안하다, 현우야. 우리 모두를 위해서야.”

    그 미소는 악마의 속삭임보다 더 잔인했다. ‘심연의 틈새’ 던전의 마지막 보스, ‘어둠의 파수꾼’과의 사투 중이었다. 모두가 지쳐 쓰러지기 직전, 그는 준호의 등 뒤를 지키고 있었다. 몬스터의 마지막 발악이 덮쳐오던 순간, 준호는 망설임 없이 현우를 밀쳤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아니, 그가 말했던 ‘우리 모두’를 위해.

    현우는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심연의 틈새 아래로 떨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추락. 육신이 산산조각 날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를 덮친 것은, 친구의 배신이 남긴 지독한 상처였다. 뼛속 깊이 박힌 칼날처럼, 그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어떻게 그 심연의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현우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그는 끝없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단 하나의 목표만을 품고 버텨냈다.

    복수.

    몸을 이끌고 좁은 통로를 벗어나자,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들어오는 균열이 보였다. 균열 너머에는 낯선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망설임 없이 균열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크으읍…”

    순간, 온몸의 세포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차가운 이세계의 기운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하지만 곧 익숙한 듯 안정감을 찾았다. 그는 더 이상 약한 인간 김현우가 아니었다. 심연의 힘을 받아들인 존재였다.

    바깥세상으로 나오자마자, 현우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잠시 숨을 멈췄다. 폐허가 된 도시 외곽. 앙상한 철근 구조물들이 마치 유령처럼 서 있었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가득한 거대 도시가 보였다. 자신이 사라진 후, 세상은 변해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시 외곽의 ‘방랑자의 휴게소’라 불리는 허름한 주점에 들어섰다. 퀴퀴한 술 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그를 맞았다. 낡은 영상 단말기에서는 끊임없이 뉴스가 흘러나왔다.

    “이준호 대원이 이끄는 ‘여명의 기사단’이 드디어 ‘어둠의 심장’ 던전 공략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이번 공략을 통해 다시 한번 뛰어난 리더십과 압도적인 전투력을 입증했습니다. 그의 활약으로 도시의 안전은 더욱 굳건해질 것입니다!”

    현우의 눈에 핏발이 섰다. 낡은 의자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사내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이야, 이준호 대장님은 진짜 영웅이야. 김현우인가 뭔가 하는 놈이 배신하고 사라진 후에 파티가 더 잘 나가는 것 같지 않냐?”
    “쉿! 그런 말 마! 김현우는 망각의 심장 던전에서 몬스터의 습격으로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됐어. 준호 대장님이 시체라도 수습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그럼 뭐 해. 결국 시체도 못 찾았잖아. 아무튼, 준호 대장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사는 거지!”

    시체. 현우는 자신을 두고 떠들어대는 소리에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희생을 딛고 영웅이 된 친구. 그의 비릿한 미소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순간, 주점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비척거리는 몬스터 하나가 들이닥쳤다. 몸 전체가 썩어 문드러진 ‘변이된 좀비’였다. 덩치 큰 몬스터는 끔찍한 신음 소리를 내며 가장 가까이 있던 손님에게 달려들었다.

    “악! 몬스터다!”
    “크악! 살려줘!”

    휴게소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고, 몇몇 어설픈 용병들이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공포에 질려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다. 변이된 좀비는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이며 한 남자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 했다.

    콰직!

    그러나 그 순간, 거대한 좀비의 머리가 터져 나갔다.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으깨져 사방으로 핏물과 살점이 튀었다. 휴게소 안은 순간적으로 정적이 흘렀다.

    현우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손에는 뼈로 만들어진 검은 칼날이 들려 있었다. 심연에서 얻은, 자신의 살과 피로 벼려진 무기였다. 칼날에는 좀비의 끈적한 피가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너무나도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잔혹하게 적의 급소를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흐읍…”

    겁에 질린 사람들이 현우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존재 자체가 공포였다. 섬뜩한 눈빛, 뼈만 남은 듯한 얼굴, 그리고 마치 지옥에서 갓 올라온 듯한 음산한 기운.

    현우는 그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낡은 영상 단말기 앞으로 다가갔다. 뉴스 화면은 여전히 이준호의 얼굴로 가득했다. 그의 업적과 명성이 번쩍이는 자막과 함께 흘러나왔다.

    “이준호…”

    현우의 입에서 잊었던 이름이 낮게 읊조려졌다. 마치 맹세라도 하듯이, 그의 목소리에는 차갑고 잔혹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기다려라. 네가 이뤄낸 모든 것을, 네가 짓밟고 올라선 모든 것을, 내가 하나하나 되찾아 줄 테니.”

    그의 푸른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심연에서 돌아온 그림자는, 이제 복수의 칼날을 품고 세상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명의 기사단의 영웅, 이준호. 그는 곧 자신이 버렸던 그림자가 어떤 대가를 요구할지 알게 될 터였다. 그의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될 뿐이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긁고 지나갔다. 이지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손전등을 들어 올렸다. 렌즈를 뚫고 나간 빛줄기가 눈앞의 공간을 비추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기는 지상에서 수백 미터 아래,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채 수천 년간 잊혀 있던 고대 유적의 심장이었다. 지금까지 발견된 유적들은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는 걸 이 공간이 웅변하고 있었다.

    그가 발을 딛고 선 곳은 거대한 원형 홀이었다. 천장은 까마득했고, 벽면은 정교한 문양과 알 수 없는 상형문자로 뒤덮여 있었다. 흡사 거대한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일렁이는 빛 아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고요했지만, 고요해서 더욱 섬뜩했다. 이곳의 모든 돌멩이 하나하나가 거대한 비밀을 짊어진 채 침묵하고 있는 듯했다.

    “젠장… 이걸 봐.”

    이지한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습기를 머금은 공기 속으로 맥없이 흩어졌다. 손가락 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지하 탐사가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쳤다.

    발아래의 바닥은 검은색과 짙은 회색의 석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석판의 틈새가 아니라, 석판 자체에 새겨진 문양에서 빛이 발하는 것이었다. 마치 잠자고 있던 고대의 회로가 서서히 깨어나는 것처럼.

    이지한은 자신의 가방에서 필드킷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휴대용 광물 분석기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미약한 에너지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다. 숫자들이 미친 듯이 튀어 올랐다.

    “이게… 대체 무슨 에너지지? 기존에 알려진 물질이 아니야.”

    그는 조심스럽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빛을 내는 문양들 사이로 길게 뻗은 길이 나타났다. 그 길의 끝에는 거대한 제단 같은 구조물이 서 있었다. 제단은 단순한 돌덩이가 아니었다. 중앙에는 한 사람 정도가 들어설 만한 크기의 원통형 공간이 움푹 파여 있었고, 그 안에는 검푸른 빛을 내는 수정이 박혀 있었다.

    그 수정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미세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의 심장이 쿵, 쿵, 쿵. 수정의 박동에 맞춰 울리는 듯했다.

    “혹시… 저게 핵심인가?”

    이지한은 숨을 죽였다. 본능적으로, 저 수정이 이 고대 유적의 모든 비밀을 쥐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저것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 절대로.

    그러나 그의 발은 이미 제단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대 문명의 유물에 대한 학구적인 호기심과, 그 아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그를 이끌었다. 탐험가로서의 직감은 저것이 단순히 아름다운 보석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저것은 힘의 원천이자, 어떤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수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빛이 그의 얼굴에 닿는 순간, 이지한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마치 수천 년의 시간 속에 잠자고 있던 거대한 존재가 눈을 뜨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때였다. 홀의 벽면에 새겨진 상형문자들이 하나둘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푸른빛, 붉은빛, 금빛. 색색의 빛들이 복잡한 패턴을 그리며 벽면을 타고 흘렀다. 그 빛은 제단 중앙의 수정으로 모여들었다.

    “이런… 내가 뭔가 건드렸나?”

    그는 당황했다. 그저 가까이 다가갔을 뿐인데, 유적이 스스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불안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이곳에 도사린 미지의 위험이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빛의 흐름이 빨라지자, 홀 전체가 웅웅거리는 진동에 휩싸였다. 천장에서 작은 돌조각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이지한은 본능적으로 팔로 머리를 가렸다.

    진동은 점점 더 강해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시동을 거는 듯한 소음이 지하 공간을 가득 채웠다. 제단 중앙의 수정은 이제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그 빛은 홀의 모든 벽면을 물들이며, 상형문자들이 완전히 깨어난 듯 생동감을 부여했다.

    그리고, 문자들이 형상을 이루기 시작했다.

    빛으로 이루어진 문자들이 공중에 떠올라 거대한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나는 용 같기도 했고, 뿔 달린 사슴 같기도 한 거대한 짐승의 모습이었다. 짐승의 형상은 홀 안을 가득 채울 듯이 커졌고, 그 기세에 이지한은 숨이 턱 막혔다.

    그 순간, 짐승의 형상에서 끔찍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리는 비명처럼 날카로웠고, 동시에 지하 세계 전체를 뒤흔드는 깊은 포효 같았다. 이지한은 귀를 막았지만, 소리는 그의 고막을 뚫고 뇌를 직접 때리는 듯했다.

    그는 비틀거렸다.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그의 눈은 짐승의 형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빛으로 이루어진 짐승의 눈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이지한의 모습이 희미하게 비쳤다.

    그리고 그 눈이,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이지한을 똑바로 응시했다.

    “안 돼… 이건…”

    이지한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발밑의 바닥이 거대한 지진이라도 난 듯 요동치기 시작했다. 제단 중앙의 수정이 폭발할 듯이 격렬하게 빛나더니, 그 푸른빛이 홀 중앙으로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콰아아앙!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빛이 응축된 지점에서 공간이 일그러졌다. 시커먼 균열이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공기가 아니었다. 냉기가 섞인 듯한 비릿한 냄새와 함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존재감이 지한의 피부에 와닿았다.

    균열은 점점 커졌다. 마치 심연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 듯했다. 그 안에서 어둠이 울렁거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무언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길고 가느다란 촉수였다. 마치 거대한 문어의 팔처럼, 균열을 비집고 나와 허공을 더듬었다. 촉수 끝은 뾰족한 칼날처럼 날카로웠고, 표면은 검고 번들거렸다.

    한 개, 두 개… 수많은 촉수들이 미친 듯이 솟아나 홀을 가득 채웠다. 촉수들은 이지한을 향해 뱀처럼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망할… 이게 대체 뭐야!”

    이지한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촉수들을 바라봤다. 그 촉수들 사이로, 균열 너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자는 거대했다. 형체를 가늠할 수 없는 혼돈 그 자체였다. 이지한은 차마 그것이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존재가 풍기는 압도적인 사악함과 오래된 증오만이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어쩌면, 그는 고대의 비밀을 파헤친 것이 아니라, 고대의 재앙을 불러낸 것일지도 몰랐다.

    촉수 하나가 그의 발치에 닿았다. 차가운 이물감에 이지한은 숨을 멈췄다.

    검은 그림자가 균열에서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지한은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껏 발굴해온 모든 것이, 이 거대한 존재가 깨어나기 위한 발판에 불과했다는 것을.

    지하 세계의 오랜 침묵이 깨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희생자는… 바로 이지한, 그 자신이었다.

    그는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무수한 촉수와, 균열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미지의 존재를 바라보며 굳어버렸다.

    이제 도망칠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 스팀펑크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톱니바퀴 미궁

    **장르: 스팀펑크, 미스터리**

    **주요 인물:**
    * **엘리야 폰 크로노스 (Elijah von Chronos)**: 천재 탐정. 날카로운 눈빛과 헝클어진 갈색 머리. 항상 증기압력식 회중시계를 들고 다니며, 기계 장치에 대한 비범한 통찰력을 지녔다.
    * **사라 (Sara)**: 엘리야의 조수. 실용적이고 강단 있는 여성. 엘리야의 기행을 묵묵히 보조한다.
    * **로버트 블레이크 (Robert Blake)**: 피해자. 거대 증기 엔진 제조사 ‘아이언 휠 코퍼레이션’의 사장.
    * **오스카 블레이크 (Oscar Blake)**: 로버트의 동생. 유약하고 신경질적인 인상.
    * **베아트리스 콜린스 (Beatrice Collins)**: 로버트의 비서. 냉철하고 빈틈없는 외모.
    * **제임스 모리슨 (James Morrison)**: 로버트의 사업 파트너. 호탕하고 능글맞은 태도.

    ### **시작 부분**

    **장면 1**

    **[시간: 밤 / 장소: 크로노스 시티 상공]**

    **1. [WIDER SHOT]**
    어둠이 내린 크로노스 시티의 밤 풍경.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멀리서 웅장하게 들려온다. 수많은 증기 파이프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황동색 가스등 불빛이 도시를 가득 메운다. 공중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이 묵직한 엔진음을 내며 천천히 움직이고, 그 아래로 복잡하게 얽힌 건물들이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스팀펑크 특유의 웅장하면서도 기계적인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SFX: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증기 소리, 비행선 엔진음]**

    **2. [CLOSE UP]**
    한 비행선의 유리창. 창문 너머로 도시의 불빛과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물방울이 맺힌 창문은 도시의 흐릿한 윤곽을 더욱 신비롭게 만든다.

    **3. [INSIDE SHOT]**
    비행선 내부의 작은 객실. 삐걱이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엘리야의 옆모습. 그의 손목에는 여러 개의 작은 기어들이 섬세하게 움직이는 복잡한 손목시계가 채워져 있다. 창밖을 무심히 보던 그는 이내 손에 든 두툼한 책 속으로 다시 시선을 돌린다.
    책의 표지에는 ‘고대 오토마톤의 원리’라는 글자가 황동색으로 희미하게 박혀 있다. 페이지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하다.

    **사라 (O.S.)**
    (가볍게 한숨 쉬는 소리)
    아직도 그 난해한 책을 읽고 계세요, 탐정님? 벌써 세 번째 정독 아닌가요?

    **4. [MEDIUM SHOT]**
    엘리야 맞은편에 앉아 홍차를 따르고 있는 사라. 그녀는 단정한 제복 차림으로, 엘리야의 기행에 익숙한 듯 고개를 살짝 젓는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그녀의 얼굴을 스친다.

    **엘리야**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난해하다고? 오히려 이보다 더 아름다운 지식은 없어, 사라. 기계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순수하게 투영한 예술품이지. 그 어떤 인간의 심리보다도 복잡하면서도 정직한 규칙을 따르지 않나.

    **사라**
    (찻잔을 내려놓으며)
    네, 네. 그래서 그 ‘아름다운 예술품’ 덕분에 저희가 이 한밤중에, 그것도 이렇게 비싼 비행선을 타고 크로노스 시티를 가로지르고 있는 거겠죠. 블레이크 저택이라…. 그 아이언 휠 코퍼레이션 사장 말이죠? 이번에도 그놈의 ‘완벽한 밀실’ 사건입니까?

    **엘리야**
    (마침내 책을 덮으며, 살짝 미소 짓는다)
    그래. 도시에서 가장 부유하고… 어쩌면 가장 악명 높은 인물일지도. 기계에 대한 그의 집착은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위한 설계였을지도 모르지.

    **5. [CUT TO]**
    비행선이 거대한 황동색 문양으로 장식된 웅장한 저택 상공에 정지한다. 저택의 굴뚝에서는 증기가 쉼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으며, 거대한 시계탑이 시간을 알리듯 묵묵히 서 있다.

    **장면 2**

    **[시간: 밤 / 장소: 블레이크 저택 – 기념품 방]**

    **1. [WIDER SHOT]**
    블레이크 저택의 ‘기념품 방’. 화려하지만 어딘가 음침하고 차가운 분위기. 방 한가운데에는 붉은 카펫 위에 쓰러져 있는 로버트 블레이크의 시신이 보인다. 그의 등에는 황동 손잡이의 단검이 깊숙이 박혀 있고, 진한 피가 붉은 카펫 위로 섬뜩하게 번져 있다.
    방 안은 온통 기계 장치와 호화로운 장식품들로 가득하다. 벽에는 복잡한 톱니바퀴 문양이 황동으로 새겨져 있고, 천장에는 거대한 황동색 밸브와 두꺼운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창문은 두꺼운 강철판과 쇠창살로 견고하게 막혀 있으며, 유일한 문은 육중한 철문이다.
    **[SFX: 불길한 정적, 증기 파이프에서 새는 희미한 소리]**

    **2. [CLOSE UP]**
    시신의 손. 힘없이 쥐어져 있는 작은 황동 기어 조각이 보인다. 피가 끈적하게 묻어 있다. 손가락이 굳게 쥐어져 있어 마치 마지막까지 놓지 않으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경감 (O.S.)**
    환영합니다, 크로노스 탐정님. 이 역대급 밀실 살인 사건을 당신께 맡기게 되어 영광입니다. 말 그대로, 발자국 하나 남지 않은 범죄입니다.

    **3. [MEDIUM SHOT]**
    방 입구. 경찰 경감과 몇 명의 수사관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다. 엘리야와 사라가 들어선다. 엘리야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천장부터 바닥까지, 그리고 벽면의 모든 기계장치들을 훑어본다. 그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나며 마치 방의 모든 톱니바퀴를 읽어내는 듯하다.

    **엘리야**
    (담담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사건의 개요는 들었습니다. 피해자, 로버트 블레이크. 사망 시각은 대략 두 시간 전. 흉기는 이 칼이겠죠. 날카로운 황동 칼날이군요.

    **경감**
    네,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방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문은 저희가 부수고 들어왔습니다만, 안쪽에서는 쇠빗장과 더불어 증기 압력으로 작동하는 이중 잠금장치까지 걸려 있었습니다. 창문은 보시다시피 외부와 완벽히 차단되어 있고요. 철저하게 봉쇄되어 있습니다.

    **사라**
    (벽에 설치된 두꺼운 강철판을 만져보며, 차가운 금속의 질감을 느낀다)
    이건 밖에서 강제로 뜯어낼 수도 없겠네요. 환풍구나 숨겨진 통로 같은 건요? 이런 저택에는 비밀 통로가 있기 마련인데.

    **수사관**
    (고개를 젓는다)
    전부 확인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샅샅이 뒤졌지만, 개미 한 마리 드나들 틈조차 없습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4. [POV SHOT – 엘리야의 시점]**
    엘리야의 시선이 천천히, 그리고 집중적으로 방 안을 훑는다. 그의 시야는 마치 기계의 설계도를 읽듯, 각 부품의 연결과 기능을 파악하려는 듯 움직인다.
    – 벽면의 톱니바퀴 장식. 단순한 장식인지, 숨겨진 기능이 있는지 그의 눈이 분석한다.
    – 천장의 거대한 증기 파이프와 밸브. 그 복잡한 배관의 흐름을 쫓는다.
    –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벽면의 대형 증기 압력계. 바늘은 0을 가리키고 있다. 그는 미세한 녹을 감지한다.
    – 방 한가운데, 시신 뒤편에 놓인 복잡한 자동 인형(오토마톤). 기사 갑옷을 입고, 칼을 든 채 굳게 서 있다. 그 칼날은 핏자국 하나 없이 반짝이고 있다.
    – 피해자의 손에 쥐어진 작은 기어 조각. 표면에 묻은 피가 선명하다.
    – 벽난로 옆, 황동 장식 사이에 희미하게 보이는 작은 틈새. 그의 눈이 그 틈새의 미묘한 비대칭을 놓치지 않는다.

    **엘리야**
    (작게 중얼거리며)
    완벽한 밀실이라… 이 세상에 완벽한 기계란 없지. 모든 기계에는 틈이 있고, 그 틈은 반드시 목적을 가지고 있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만큼 의심스러운 것도 없지.

    **5. [CLOSE UP]**
    엘리야가 증기 압력식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시계 내부의 작은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움직이며 ‘딸깍딸깍’ 하는 소리를 낸다.
    **[SFX: 회중시계 톱니바퀴 소리]**

    **엘리야**
    (사라에게)
    사라, 방 안의 공기 상태는 어떤가? 평소와 다른 점은?

    **사라**
    (코를 킁킁거리며, 미간을 찌푸린다)
    글쎄요… 좀 건조한 것 같기도 하고, 동시에 묘하게 눅눅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미세하게 기름 냄새 같은 것도 나고요. 마치 낡은 엔진실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에요.

    **경감**
    (의아한 표정으로)
    공기 상태라니요? 탐정님. 그런 것까지 살피십니까?

    **엘리야**
    (시신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자세히 살펴본다)
    이 기어 조각… 시신이 움켜쥐고 있었군. 칼에 찔린 상태에서 범인에게 저항하다가 빼앗은 것인가? 꽤나 필사적이었던 모양이군.

    **수사관**
    저희도 그렇게 추정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저항의 증거겠죠.

    **6. [CLOSE UP]**
    엘리야의 손이 시신의 손에 쥐어진 기어 조각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는 기어 조각을 회중시계와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본다. 모양이 미묘하게 다르다. 엘리야의 눈빛이 더욱 깊어진다.

    **엘리야**
    이건 시신 뒤에 있는 저 자동 인형의 부품은 아니군. 이 방 어딘가에 설치된 장치의 일부일 텐데… 아니면…

    엘리야의 시선이 다시 방을 훑는다. 작동하지 않는 증기 압력계에 멈춘다. 그는 압력계로 다가가 손가락으로 유리 덮개를 가볍게 두드린다. 바늘은 미동도 없다.

    **엘리야**
    이 압력계는 왜 작동하지 않지? 방금 들어올 때부터 바늘이 0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고장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완벽하게 멈춰 있군.

    **경감**
    (어깨를 으쓱하며)
    고장 난 모양입니다. 이런 오래된 저택에선 흔한 일이죠. 사장님도 신경 쓰지 않으셨겠죠.

    **엘리야**
    (압력계의 유리 덮개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린다)
    고장… 글쎄. 블레이크 사장은 이런 사소한 고장도 용납하지 않았을 텐데. 더욱이 그는 증기 엔진 전문가가 아니었나? 자신이 만든 기계가 고장 난 것을 방치했을 리가.

    엘리야가 압력계 주위를 면밀히 살피기 시작한다. 벽에 연결된 파이프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벽난로 옆 작은 틈새에 시선이 멈춘다. 아주 얇고 길쭉한 틈새지만, 그 안으로 희미하게 다른 쪽 벽이 보이며, 그 너머로 어둠이 느껴진다.

    **엘리야**
    이 틈새는… 단순한 장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부자연스럽군.

    **7. [CUT TO]**
    엘리야가 주머니에서 돋보기처럼 생긴 접안경을 꺼내 틈새를 들여다본다. 그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SFX: 작은 기계음,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 엘리야의 접안경 효과음]**
    그의 접안경 안에서 작은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돌아가는 모습이 시각화된다. 그는 무언가에 도달한 듯 입꼬리를 살짝 올린다.

    **엘리야 (V.O.)**
    밀실은 없다. 오직 밀실처럼 보이는 트릭이 있을 뿐. 중요한 건, 이 기계장치들이 어떤 방식으로 거짓을 만들어냈는가이다. 모든 기계는 설계자의 의도를 담고 있다.

    **장면 3**

    **[시간: 밤 / 장소: 블레이크 저택 – 서재, 응접실, 홀]**

    **1. [WIDER SHOT]**
    고풍스러운 서재. 온통 책으로 가득하며, 커다란 황동색 지구본과 고정형 망원경이 창가에 놓여 있다.
    엘리야와 사라, 그리고 오스카 블레이크가 앉아 있다. 오스카는 불안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땀을 흘리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짜증과 초조함이 뒤섞여 있다.

    **엘리야**
    (차분하지만 꿰뚫어 보는 듯한 목소리로)
    오스카 씨, 형님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유산 문제로도 갈등이 있었다고요. 꽤 오래된 불화라고 들었습니다만.

    **오스카**
    (울먹이며, 목소리가 떨린다)
    맞아요! 형은 늘 저를 깔봤어요! 제가 하는 일은 뭐든 시시하다면서… 그 빌어먹을 증기 엔진 사업 이야기만 늘어놓았죠! 나는 예술을 사랑하는데, 형은 나를 그저 게으른 동생 취급했으니! 하지만… 하지만 제가 형을 죽일 리가 없어요! 전 그 시간에 서재에 있었습니다. 이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사라**
    (노트를 펼치며)
    아무도 보지 못했나요? 서재는 저택의 외진 곳에 위치해 있던데.

    **오스카**
    (고개를 젓는다)
    아무도… 이 시간에 하인들은 모두 퇴근하고 없어요. 저는 혼자였습니다. 완벽하게 혼자!

    **엘리야**
    (오스카의 손을 유심히 본다. 그의 손톱 밑과 손가락 사이에 희미하게 검은 기름때가 묻어 있다)
    손에 기름때가 묻어 있군요. 무엇을 정리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더럽혀진 겁니까? 서재에서 기계 작업이라도 하셨습니까?

    **오스카**
    (화들짝 놀라며, 재빨리 손을 등 뒤로 숨긴다)
    아, 아뇨! 그냥… 오래된 기계 장치들을 만지다가요. 형이 모아둔 희귀한 시계들을 제가 좀 만져봤거든요. 먼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닦아주는 중이었어요.

    **엘리야**
    (피식 웃는다. 그의 눈은 오스카의 당황한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희귀한 시계요. 그럼 형님 못지않게 기계에 대한 지식이 깊으시겠군요. 로버트 블레이크 사장에게도 없는 당신만의 재능이겠군요.

    **오스카**
    (당황하며 말을 더듬는다)
    아뇨! 그냥 취미 삼아 몇 개 만져본 게 다예요! 깊은 지식이라뇨!

    **2. [CUT TO]**
    블레이크 저택의 응접실. 베아트리스 콜린스 비서가 엘리야와 사라 앞에 앉아 있다. 그녀는 감정의 동요 없이 차분하며,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이다. 흐트러짐 없는 머리카락과 단정한 옷차림은 그녀의 성격을 대변하는 듯하다.

    **엘리야**
    로버트 사장님의 비서로서, 누구보다 가까이서 사장님을 보셨을 겁니다. 사장님의 주변에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그의 잔혹한 사업 수완 때문에.

    **베아트리스**
    (냉정하게, 감정 없는 목소리로)
    로버트 사장님은 사업가로서 수많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는 손해를 보았을 테죠. 원한을 가진 사람은 수두룩할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업의 본질입니다.

    **사라**
    사건 당시에는 어디에 계셨죠?

    **베아트리스**
    저는 저택 외부의 증기통신망을 통해 해외 지사와 통화 중이었습니다. 런던 지부와의 연간 결산 보고 관련 통화였죠. 약 한 시간 가량 통화를 했고, 그 통화 기록은 증기통신국에 정확히 남아 있을 겁니다.

    **엘리야**
    (베아트리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녀의 눈은 흔들림이 없다)
    사장님께 불만은 없었습니까? 끊임없이 일에 시달렸을 텐데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습니다.

    **베아트리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기계처럼 단호하게)
    저는 제 일을 할 뿐입니다. 불만을 가질 여유도 없었고, 그런 감정에 사로잡히지도 않습니다. 저는 로버트 사장님의 그림자였습니다.

    **3. [CUT TO]**
    블레이크 저택의 홀. 제임스 모리슨이 거만한 자세로 서서 콧수염을 만지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자신감과 능글맞음이 뒤섞여 있다. 엘리야와 사라가 그를 심문하고 있다.

    **제임스**
    (코웃음 치며)
    로버트 그 자식… 저랑은 사업 파트너였지만, 사사건건 부딪혔어요. 특히 신기술 특허 문제로 크게 다웠지. 내가 먼저 발견한 기술을 자기 거라고 우기지 않나! 아주 교활한 자식이었어! 그 자식의 탐욕은 끝이 없었지.

    **사라**
    사건 당시에는 어디에 계셨죠?

    **제임스**
    난 그 시간에 증기선 항구에 있었어. 해외에서 막 도착한 신형 증기선을 검사하고 있었지. 기관실에서 새로운 증기압축기를 테스트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선장과 선원들 모두 나를 봤을 거야. 내 알리바이는 확실해!

    **엘리야**
    (제임스의 팔에 묻은 희미한 기름때를 발견한다. 오스카의 것보다 짙고 넓게 묻어 있다)
    항구에서 배를 검사하셨다면서, 굳이 왜 이런 기름때를 묻히셨습니까? 마치 방금 기계 정비를 하고 온 사람 같군요.

    **제임스**
    (자신감 있게 팔을 보여주며)
    하! 탐정님, 증기선이라는 게 다 이런 겁니다. 기름때 없이 움직이는 기계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오히려 이 정도는 양호한 거죠. 난 내 손으로 직접 엔진을 만져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서 말이지. 기계를 사랑한다고!

    엘리야는 세 명의 용의자들을 모두 심문했지만, 아직 결정적인 단서는 잡히지 않은 듯하다. 그의 미간에 미묘한 주름이 잡힌다. 그의 시선은 허공 어딘가를 응시하며 톱니바퀴들을 떠올리는 듯하다.

    **엘리야 (V.O.)**
    모두가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모두가… 미세한 기름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이 방의 공기처럼. 기름은 기계의 피. 그리고 피는… 살인의 흔적.

    **장면 4**

    **[시간: 새벽 / 장소: 블레이크 저택 – 기념품 방]**

    **1. [WIDER SHOT]**
    엘리야가 다시 기념품 방으로 돌아온다. 경찰들은 모두 잠시 물러나 휴식을 취하는 상태. 방 안은 어둡고 고요하다. 증기 파이프에서 희미하게 증기가 새는 소리, 그리고 톱니바퀴가 아주 느리게 돌아가는 듯한 소리만 들린다. 한밤중의 정적이 오히려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사라**
    (작은 손전등으로 방 안을 비추며)
    모두의 알리바이가 너무 완벽해요. 제임스 모리슨은 증기선, 베아트리스 비서는 증기통신국 기록, 오스카 씨는 혼자였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 밀실에서 살인이 가능했을까요?

    **엘리야**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빛난다)
    밀실은… 기계장치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이다. 그리고 환상은… 완벽하지 않아. 모든 환상에는 반드시 깨지는 지점이 있지.

    엘리야가 다시 벽면의 증기 압력계로 다가간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기계 도구 상자를 꺼내, 섬세한 핀셋과 드라이버를 이용해 압력계를 분해하기 시작한다. 나사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풀어낸다.
    **[SFX: 작은 금속 마찰음, 나사 풀리는 소리]**

    **2. [CLOSE UP]**
    엘리야의 섬세한 손가락이 압력계 내부의 톱니바퀴들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녹슨 것처럼 보였던 톱니바퀴들이 사실은 특수한 코팅이 되어 있었다. 코팅 아래로는 새것 같은 황동빛이 드러난다. 그는 손에 쥐었던 작은 황동 기어 조각을 그 톱니바퀴들과 비교한다. 완벽하게 일치한다. 마치 잃어버린 조각을 찾은 듯.

    **엘리야**
    (나지막이, 그러나 확신에 찬 목소리로)
    찾았다… 이 기어는 이 압력계의 핵심 부품이었어. 고장 난 것이 아니라, 고장 난 것처럼 위장된 것이지.

    **3. [CUT TO]**
    엘리야가 천장에 달린 거대한 밸브와 파이프 시스템을 바라본다. 그는 작은 기계 도구를 이용해 천장의 밸브를 조작하기 시작한다. 밸브를 돌리는 그의 손길은 거침없다.

    **사라**
    (놀란 눈으로, 손전등이 흔들린다)
    탐정님! 그걸 만지시면… 방 안의 증기 압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위험하지 않나요?

    **엘리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밸브를 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 방의 기압을 조절하는 장치다. 사라, 이 방은 완벽히 밀폐된 공간이 아니었어. 오히려 기압을 조작하기 위해 완벽히 밀폐된 것처럼 위장된 공간이었지. 범인은 이 거대한 톱니바퀴와 밸브를 이용해 방 안의 공기를 조종한 거야.

    엘리야가 밸브를 돌리자, 천장의 파이프에서 ‘쉬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증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작동하지 않던 벽의 증기 압력계의 바늘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0에서 1, 2… 올라가는 바늘이 긴장감을 더한다.
    **[SFX: 증기 뿜어져 나오는 소리, 압력계 바늘 움직이는 소리]**

    **4. [MEDIUM SHOT]**
    엘리야가 벽난로 옆의 틈새로 다가간다. 그는 아까 꺼낸 기어 조각을 틈새에 끼워 넣는다. 그리고는 작은 손잡이를 돌리듯 기어 조각을 시계 방향으로 움직인다.
    **[SFX: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 묵직한 기계음, 잠금장치 움직이는 소리]**
    그러자 틈새 뒤편에서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방의 유일한 문에서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철컥이는 증기 잠금장치가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엘리야**
    이 틈새는… 밀실을 완성하는 열쇠다. 범인은 이 기어 조각으로 방 안의 증기 압력 잠금장치를 외부에서 조작했지. 방 안의 압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이 잠금장치가 활성화되는 거야.

    **5. [CLOSE UP]**
    엘리야의 손이 시신 뒤편에 놓인 자동 인형의 칼날을 만진다. 칼날은 여전히 날카롭고 번뜩인다. 그는 인형의 팔 부분에 숨겨진 작은 동력 연결부를 발견하고, 그곳에 작은 증기압력 측정기를 연결한다. 측정기의 바늘이 미세하게 떨린다.

    **엘리야**
    그리고 이 자동 인형… 로버트 사장이 그렇게 아꼈다던. 하지만 사실은 살인 도구로 개조되었지. 인형의 동력원은 방 안의 기압 변화에 반응하도록 세밀하게 개조된 거야.

    **사라**
    (충격받은 표정으로, 손전등이 흔들린다)
    그럼 범인은… 이 방 안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진 게 아니라… 외부에서 조종한 겁니까? 말도 안 돼요…

    **엘리야**
    (피식 웃으며, 그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
    아니, 사라. 범인은 이 방 안의 기계장치를 조작하여 살인을 ‘유도’하고 사라진 거야. 로버트 블레이크는 기계의 대가였지만, 결국 자신이 사랑한 기계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거지. 이 모든 것은 정교한 연극이었어.

    **6. [WIDER SHOT]**
    엘리야가 방 한가운데 선다. 그는 방의 모든 기계장치들을 다시 한번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이제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는 듯 확신에 차 있다. 톱니바퀴들이 정밀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모든 진실이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엘리야**
    자, 이제 이 톱니바퀴 미궁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다. 새벽의 침묵은 곧 깨질 것이다.

    **장면 5**

    **[시간: 아침 / 장소: 블레이크 저택 – 기념품 방]**

    **1. [WIDER SHOT]**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들어오는 기념품 방. 어제의 음침함 대신 차가운 긴장감이 감돈다. 경감과 수사관들, 그리고 오스카, 베아트리스, 제임스 세 용의자가 모두 모여 있다. 모두의 얼굴에 불안과 초조함이 서려 있다. 엘리야는 방 한가운데에서 용의자들을 바라본다.

    **엘리야**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그의 시선은 용의자들을 번갈아 훑는다)
    여러분, 로버트 블레이크 사장 살인 사건은 밀실 살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획된 ‘밀실처럼 보이는’ 기계적인 트릭을 이용한 살인입니다. 범인은 이 방의 모든 기계장치를 살인의 도구로 사용했죠.

    **경감**
    (고개를 젓는다)
    트릭이라니요? 탐정님. 이 방은 문이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강철판으로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엘리야**
    (시신이 쓰러져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범인은 이 방의 증기 압력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장에 달린 이 거대한 밸브 시스템을 조작해 방 안의 기압을 인위적으로 높였습니다. 마치 잠수함의 수압을 조절하듯이 말이죠.

    **2. [CLOSE UP]**
    엘리야가 천장의 밸브를 가리킨다. 그의 눈빛은 마치 밸브의 내부 구조까지 꿰뚫어 보는 듯하다.

    **엘리야**
    그리고 이 벽의 증기 압력계는 고장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일정 수준 이상의 기압이 가해지지 않으면 바늘이 움직이지 않도록 개조된 것이었죠. 범인은 기압을 한계치까지 올린 후, 제가 발견한 이 기어 조각을 이용해 벽난로 옆 틈새로 연결된 증기 잠금장치를 작동시켰습니다.

    **3. [CUT TO]**
    엘리야가 벽난로 옆 틈새에 기어 조각을 다시 끼워 넣고 돌린다.
    **[SFX: 묵직한 기계음, 잠금장치가 닫히는 소리, 증기압 올라가는 소리]**
    엘리야의 조작에 따라 방의 유일한 문에서 ‘딸칵’ 하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증기 잠금장치가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압력계의 바늘이 다시 천천히 상승하기 시작한다. 용의자들의 얼굴에 공포가 스친다.

    **제임스**
    (놀라서 뒤로 물러서며)
    저, 저게 뭐야! 문이 잠겼잖아! 우리가 갇혔어!

    **엘리야**
    (빙긋 웃으며, 제임스를 바라본다)
    바로 이 상태가, 로버트 블레이크 사장이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밀실’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방 안의 기압을 조작하는 동시에, 이 자동 인형을 살인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4. [MEDIUM SHOT]**
    엘리야가 자동 인형으로 다가가 설명한다. 그의 손이 인형의 칼날을 스친다.

    **엘리야**
    로버트 블레이크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는 데 열중했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미움을 샀습니다. 특히 그는 자신의 동생인 오스카 씨를 항상 깔봤습니다. 그의 예술적 재능을 무시하고, 자신의 사업에만 몰두하기를 강요했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오스카 씨는 형의 사업에 대한 깊은 지식과 기계에 대한 섬세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형의 재능을 뛰어넘는 당신만의 재능이었죠.

    오스카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질린다. 그의 눈빛이 격렬하게 흔들린다.

    **엘리야**
    범인은 방 안의 기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오르면, 이 자동 인형이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개조했습니다. 로버트 사장은 기압 조절 장치를 만지려다, 혹은 그저 방 안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움직인 인형의 칼에 찔렸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범인이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빼내려던 이 기어 조각을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숨을 거뒀습니다.

    **5. [CLOSE UP]**
    엘리야가 로버트의 시신이 쓰러져 있던 곳을 다시 가리키며, 그 위로 자동 인형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듯 바라본다. 인형의 칼날이 섬뜩하게 번뜩인다.

    **엘리야**
    범인은 살인 후, 증기 압력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방의 기압을 다시 낮췄습니다. 그러자 문은 안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됩니다. 범인은 기어 조각을 빼낸 뒤, 방을 유유히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이 방에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죠. 모두의 손에 묻어 있던 기름때… 그건 로버트 블레이크 사장의 주변에 기계에 능통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하지만 단 한 사람만이, 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실행할 수 있었죠.

    **베아트리스**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도 안 돼요… 그럼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도대체 누가…

    **엘리야**
    (오스카 블레이크를 똑바로 응시한다. 그의 시선은 오스카의 모든 방어를 꿰뚫는다)
    이 모든 장치를 이해하고, 로버트 사장에게 원한을 가졌으며, 동시에 사건 당일 알리바이가 모호하고, 손에 기름때를 묻히고 있던 사람. 바로 오스카 블레이크 씨, 당신입니다. 당신은 형님이 아끼던 자동 인형과 방의 증기 시스템에 대한 깊은 지식을 이용해 완벽한 살인을 꿈꿨죠.

    **6. [CUT TO]**
    오스카 블레이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그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리며 초점을 잃는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그는 이제 도망칠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오스카**
    (더듬거리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아… 아니야! 내가… 내가 아니야!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엘리야**
    당신은 형님의 사업 서류를 정리하며 이 방의 설계도를 보았을 겁니다. 그리고 평소에도 형님의 기계 장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죠. 손에 묻은 기름때는 당신이 형님의 희귀한 시계를 만진 것이 아니라, 이 방의 시스템을 조작한 흔적입니다. 형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고, 비로소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했던 당신의 욕망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겁니다.

    **오스카**
    (분노와 절망이 뒤섞인 표정으로, 절규하듯 소리친다)
    그래! 내가 했어! 그 자식은 늘 나를 비웃었어! 내 재능을 무시하고, 내 인생을 망가뜨리려 했어! 나는… 나는 그 빌어먹을 기계들이 형을 죽이길 바랐다고! 그 자식은 죽어 마땅해!

    오스카가 절규하며 엘리야에게 달려들려 한다. 경찰들이 즉시 그를 제압한다. 오스카는 거칠게 저항하지만, 결국 수갑이 채워진다.

    **7. [WIDER SHOT]**
    경찰에게 끌려나가는 오스카. 그의 눈빛은 공허하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는 듯 허탈함이 가득하다.
    엘리야는 고요하게 서서 자동 인형을 바라본다. 인형의 칼날은 여전히 번뜩이고 있다. 방 안의 증기 압력계는 다시 0을 가리키며 침묵한다.

    **엘리야 (V.O.)**
    인간의 가장 깊은 욕망은, 가장 정교한 기계장치마저도 살인의 도구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인간의 흔적이 남는 법. 완벽한 범죄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완벽한 탐정만이 존재할 뿐.

    ### **결말 부분**

    **장면 6**

    **[시간: 낮 / 장소: 크로노스 시티 – 엘리야의 사무실]**

    **1. [WIDER SHOT]**
    엘리야의 사무실. 책과 기계 부품들, 알 수 없는 설계도들로 어수선하지만, 그 나름의 질서가 있다. 벽면의 거대한 태엽 시계는 정확히 시간을 가리키고, 증기 구동식 타자기가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와 먼지 가득한 공기를 가로지른다.

    **사라**
    (따뜻한 차 두 잔을 내밀며, 한 잔은 엘리야에게 건넨다)
    수고하셨습니다, 탐정님. 또 하나의 완벽한 밀실이 깨졌군요. 이제 좀 쉬실 수 있겠어요.

    **엘리야**
    (차를 받아 들며, 차가운 찻잔의 온기를 느낀다)
    완벽한 밀실은 없어, 사라. 다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틈이 있을 뿐이지. 모든 기계는 그 틈을 통해 진실을 말하려고 해.

    엘리야가 창밖을 바라본다. 크로노스 시티의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도시의 증기 파이프에서는 끊임없이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도시는 활기차게 움직인다.

    **2. [CLOSE UP]**
    엘리야의 손에 쥐어진 증기압력식 회중시계. 시계 내부의 톱니바퀴들이 정교하게 움직이며 ‘째깍째깍’ 소리를 낸다. 그는 잠시 시계를 응시하다가, 이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엘리야**
    이 도시의 모든 기계는… 인간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어. 인간의 욕망, 탐욕, 질투, 그리고 때로는 절망까지. 그리고 그 그림자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겠지.

    **사라**
    (엘리야 옆에 서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그때도 저희가 필요하겠죠? 당신의 기계적인 통찰력과 제 실용적인 지식이.

    **엘리야**
    (옅게 미소 짓는다)
    물론이지. 이 톱니바퀴 미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도시는 언제나 새로운 미스터리를 품고 있으니.

    **3. [FINAL SHOT]**
    엘리야의 눈빛이 도시의 복잡한 기계 장치들을 꿰뚫어 보듯 빛난다. 카메라는 엘리야와 사라를 뒤로하고 도시의 스팀펑크 풍경 위로 서서히 줌아웃된다. 도시를 가득 채운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 수많은 기계음들이 웅장한 화음을 이루며, 도시의 끝없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END CREDIT]**

  • 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어둠 속의 섬광

    “젠장, 제이!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세라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화물칸 공기를 갈랐다. 그녀의 눈은 한 점의 빛도 허용하지 않는 듯, 화물칸 중앙에 떠 있는 검은 사각형 덩어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어두운 공간에 희미하게 울렸다.

    제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는 스크린을 연신 두드리며 데이터를 확인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모릅니다, 세라님. 모든 분석 장비가 먹통이에요. 이 물체가 발산하는 에너지 파장이… 지금까지 인류가 접해본 적 없는 방식입니다.”

    카인은 묵묵히 그 검은 유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유물의 표면을 훑었다. 완벽한 직육면체, 모든 면이 매끄럽고 차가운 검정색이었으나, 그 속에서 희미하게 자주색 빛이 맥동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어떤 파장인데?” 카인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눈은 이미 유물의 ‘속성’을 읽어내려는 듯, 날카롭게 빛났다.


    **[시스템 메시지] ‘미확인 유물: 차원의 틈새’를 발견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퀘스트: 심연의 유산’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목표: 유물의 정체를 밝히고, 그 힘을 제어하십시오.**
    **[시스템 메시지] 난이도: ???**

    엘라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캡틴… 저, 저거 분명히 저희 배의 모든 시스템에 간섭하고 있어요. 생체 신호 분석 장치도 오류를 뿜어내고, 중력 제어장치도 불안정합니다. 지금 제 손목에 있는 바이오 모니터링 장치도 계속 경고음을 울리고 있어요!” 그녀의 손목에 감긴 장치에서 실제로 약한 경고음이 “삐- 삐-” 하고 울렸다.

    “안정화시켜, 제이.” 카인의 명령은 짧고 단호했다.

    제이는 스크린을 다시 한번 두들겼지만, 이내 절망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모든 보조 전력마저도 저 물체에 흡수되고 있어요! 이런 식이라면, 몇 분 안에 아스트라호의 모든 기능이 정지할 겁니다!”

    갑자기,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자주색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화물칸 전체가 일렁이는 자주색 안개로 뒤덮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동시에 ‘치지직’하는 정전기 같은 소리가 울렸다. 전기가 흐르는 듯한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젠장, 뭐야!” 세라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쥐어진 홀로그램 검이 창백하게 빛났다. 검날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카인도 곧장 허리춤의 블래스터를 움켜쥐었다. 그의 눈동자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모두 경계 태세!”

    그 순간, 유물의 한쪽 면에서 작은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드득’ 하는 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균열은 점차 커지더니, 이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구멍을 형성했다. 그 안쪽은 마치 우주의 심연처럼, 빛 한 점 없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그 어둠이 주변의 모든 빛을 삼키는 듯했다.

    “저 안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아요!” 엘라가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검은 구멍에서 기다란 촉수 하나가 스르륵 튀어나왔다. 끈적한 검은 액체를 흘리는 듯한 촉수는 느릿하게 허공을 더듬었다. 촉수의 끝에는 수십 개의 작은 눈들이 박혀 있었고, 그것들이 일제히 승무원들을 향해 번뜩였다. 섬뜩하고 혐오스러운 광경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미지의 존재: 심연의 탐색자’가 출현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전투’가 시작됩니다.**

    “사격 개시!” 카인의 외침과 동시에 블래스터가 불을 뿜었다. ‘쉬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에너지탄이 촉수를 향해 날아갔다. 세라도 망설임 없이 홀로그램 검을 휘둘러 촉수를 잘라냈다. ‘촤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액체가 흩뿌려졌다.

    하지만 잘려나간 촉수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금방 재생되었다. 게다가 검은 구멍에서는 두 번째, 세 번째 촉수가 연이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화물칸은 순식간에 기괴한 촉수들로 가득 차버렸다. 끈적한 움직임이 공포를 더했다.

    “젠장, 재생력이 말도 안 돼!” 제이가 당황해서 외쳤다. 그의 무기는 해킹 장비였기에 직접적인 전투에는 약했다. 그는 태블릿을 움켜쥐고 촉수를 피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엘라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촉수 하나가 그녀의 팔을 향해 뻗어왔다. 검은 눈들이 그녀를 노려보는 듯했다.

    “엘라!” 카인이 몸을 날려 엘라를 밀쳐냈다. 그 순간, 촉수 하나가 카인의 어깨를 휘감았다. ‘으읍!’ 카인의 신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시스템 메시지가 팝업되었다.


    **[시스템 메시지] ‘카인’이 ‘심연의 탐색자’에게 붙잡혔습니다. 치명적인 독 공격이 시작됩니다!**
    **[시스템 메시지] HP: 98/100 -> 95/100 -> 92/100 …**

    어깨를 조여오는 고통에 카인은 블래스터를 놓칠 뻔했다. 검은 촉수들은 흡사 살아있는 올가미처럼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가 발버둥 칠수록 촉수들은 더욱 강하게 죄어왔다.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꿰뚫었다.

    세라가 급히 달려와 카인의 어깨를 감은 촉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챙강!’ 홀로그램 검이 촉수에 닿자 검은 액체가 튀었다. 촉수는 잠시 움츠러드는 듯했으나, 곧바로 더 격렬하게 카인을 휘감기 시작했다.

    “안 돼! 이대로는 캡틴이…!” 엘라가 울먹였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공포로 얼룩져 있었다.

    그 순간, 제이가 눈을 번뜩였다. 그는 한 손으로는 전투를 회피하며 다른 한 손으로 태블릿을 미친 듯이 조작했다. 그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맹렬히 움직였다. “젠장, 이놈들 코드를 읽을 수가 없어… 뭔가 핵심이 있을 텐데… 아! 찾았다! 에너지 증폭 패턴! 이놈들은 이 유물을 통해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제이?!” 세라가 소리쳤다. 그녀는 계속해서 촉수를 베어내고 있었지만, 끝없이 솟아나는 촉수들 때문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녀의 체력 바가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저 유물을 파괴해야 합니다! 저 유물이 에너지 공급원이에요! 파괴하면 이놈들도 사라질 겁니다!” 제이가 외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희망과 다급함이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유물은 마치 검은 강철덩어리처럼 단단해 보였다. 카인은 여전히 촉수에 붙잡혀 있었고, 그의 HP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한계에 다다른 듯,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쉽지 않아… 제이! 약점이 어디야!” 카인이 고통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저 맥동하는 자주색 빛! 그게 유물의 코어 에너지인 것 같아요! 하지만 접근하기가…!”

    그때, 촉수 중 하나가 화물칸 천장을 향해 뻗어 올라가더니, 아스트라호의 주요 전력 케이블을 휘감았다.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케이블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화물칸의 조명이 한순간 깜빡였다.


    **[시스템 메시지] 아스트라호의 메인 전력이 불안정해졌습니다! 경고! 시스템 다운 60초 전!**

    “세상에! 이러다 배가 터지겠어!” 엘라가 패닉에 빠졌다.

    카인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의 눈빛이 결연하게 변했다. “세라, 제이! 내가 시간을 벌게! 저 유물의 약점을 찾아 파괴해! 엘라, 제이를 도와!”

    촉수에 완전히 휘감긴 카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가 가진 ‘직업 스킬’의 기운이었다.


    **[시스템 메시지] ‘선장’ 스킬, ‘결집된 의지’를 사용합니다!**
    **[시스템 메시지] 모든 공격이 ‘카인’에게 집중됩니다. 주변 아군에게 방어력 증가 버프가 부여됩니다.**
    **[시스템 메시지] ‘카인’이 ‘어그로’를 획득했습니다.**

    “캡틴!” 세라가 비명을 질렀다. 카인의 몸을 휘감은 촉수들이 더욱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주색 빛 또한 격렬하게 일렁였다. 모든 촉수가 카인을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제이는 카인의 희생을 감지한 듯, 필사적으로 태블릿을 두드렸다. 그의 손가락은 키보드를 춤추듯 오갔다. “젠장… 젠장! 반드시 약점을 찾아낸다!”

    그 순간, 유물의 한쪽 면에 균열이 생기며 이전보다 훨씬 큰 자주색 빛이 한 번 더 번쩍였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마치 심연의 문이 열린 듯, 또 다른 무언가가 기어나올 조짐을 보였다. 촉수보다 훨씬 거대하고, 훨씬 불길한 형체가 검은 구멍 너머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악의 기운이 화물칸을 가득 채웠다.


    **[시스템 메시지] ‘심연의 군주’가 소환을 준비합니다!**
    **[시스템 메시지] 아스트라호의 메인 전력 시스템이 붕괴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 경고! 30초 후, ‘아스트라호’가 폭발합니다!**

    “30초?!” 세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카인! 제이! 엘라! 어서 도망쳐야 해!”

    “아니!” 카인의 목소리가 고통 속에서도 단호하게 울렸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린 여기서 이 괴물들을 막아야 해! 이 유물을 파괴해야만 해! 안 그러면… 이 우주 전체가 위험해질 거야!”

    제이의 손가락이 마침내 멈췄다. 그의 얼굴에 희미한 희망의 빛이 스쳤다. “찾았습니다! 유물의 핵이 노출되었어요! 저기, 균열 사이로 보이는 보라색 수정! 저걸 부숴야 합니다!”

    그가 가리킨 곳은 유물의 표면에 새로 생긴 균열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수정체였다. 하지만 그곳까지 접근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촉수와, 이제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심연의 군주’의 위협을 뚫고 가야 했다. 그 거대한 존재는 이미 반쯤 화물칸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카인의 HP는 이제 한 자릿수로 떨어져 있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지만, 몸은 한계에 다다랐다. 그의 숨결은 이미 끊어질 듯 가늘었다.

    “나머지는… 너희에게 맡긴다…!” 그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희미해졌다.

    세라는 카인의 얼굴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젠장… 카인! 포기하지 마! 제이! 엘라! 서둘러!”


    **[시스템 메시지] ‘아스트라호’의 자폭 카운트다운: 20초!**

    화물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웅-콰콰쾅!’ 아스트라호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심연의 기운과, 함선이 폭발하기 직전의 진동이 뒤섞여 혼돈 그 자체였다. 천장에서는 파편들이 떨어져 내리고, 바닥은 끊임없이 진동했다.

    세라는 검을 움켜쥐고 유물의 핵을 향해 돌진했다. 그녀의 눈은 오직 수정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엘라는 제이를 따라 그의 뒤를 지키며 블래스터를 발사했다. 제이는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유물의 핵을 향해 해킹 모듈을 던질 준비를 했다.

    과연 그들은 이 심연의 유물을 파괴하고, 아스트라호의 파괴를 막아낼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미지의 힘에 잠식당하여 우주의 먼지가 될까? 그들의 운명은 이제 카운트다운 숫자처럼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