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지근한 아파트\] – 1화: 보이지 않는 손님
**[장면 #1] 어두운 새벽, 도시의 숨결**
**[배경]**
밤이 깊어 도시의 불빛마저 희미해진 새벽 3시 17분. 낡은 고층 아파트의 한 유닛. 방 2개짜리 전세 아파트는 평범함 그 자체다. 거실 한쪽 벽에는 재활용 분리수거함이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책장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다. 켜켜이 쌓인 먼지가 희미한 스탠드 불빛에 도드라진다. 창밖으로는 거대한 회색빛 도시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지만, 이곳은 그저 고요함 속에 잠겨 있다.
**[패널 #1]**
거실 한가운데 놓인 낡은 나무 책상. 모니터 불빛이 유일한 광원이다. 그 앞에 앉아 찌푸린 미간으로 모니터를 노려보는 유은찬(30세, 프리랜서 그래픽 디자이너). 검은색 라운드 티셔츠에 늘어진 트레이닝 바지 차림.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작업에 대한 그녀의 몰두를 대변한다. 주변에는 커피잔, 빈 에너지 드링크 캔, 디자인 스케치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짙게 깔렸다. 그녀의 손은 마우스 위에서 경련하듯 움직인다.
**[나레이션]**
유은찬. 서른 살, 자취 8년 차. 오늘도 마감 지옥에 갇힌 채 카페인과 싸우는 중이다.
새벽 세 시. 이 도시의 모든 소음이 잦아들었을 때, 오직 내 클릭 소리만이 살아 숨 쉬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패널 #2]**
은찬의 손가락이 마우스를 조작한다. 모니터 속 작업물은 사이버펑크 느낌의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 핏기 없는 얼굴의 캐릭터가 거대한 기계 장치들 사이에 서 있다. 은찬은 한숨을 쉬며 다른 손으로 커피잔을 집으려 한다.
**[묘사]**
책상 한쪽 구석, 마우스 패드 바로 옆에 놓여있던 연필 한 자루가 ‘스르륵’ 소리를 내며 책상 끝으로 밀려난다. 아주 느리지만 확실한 움직임이다. 은찬의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향하지만, 이내 다시 모니터로 돌아온다. 피로에 절어,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듯한 표정.
**[나레이션]**
아마… 내가 팔꿈치로 건드렸겠지.
**[패널 #3]**
연필이 책상 끝에 다다라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살짝 멈칫하는 모습이 클로즈업.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잡고 있는 것처럼 공중에서 잠시 흔들린다. 그리고는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진다. 바닥의 낡은 나무 합판 위에 놓인 연필이 불쌍해 보인다.
**[은찬]**
(작게 중얼거린다)
젠장… 또 시작이네.
**[나레이션]**
‘또’라는 말은 사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단어였다.
며칠 전부터 이런 식이었다.
물건이 저절로 움직이거나, 문이 스르륵 열리거나,
전등이 깜빡거리거나…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는 거겠지. 잠이 부족해서.
나는 그저 밤샘 작업으로 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었다.
**[패널 #4]**
은찬이 허리를 펴고 스트레칭을 한다. ‘으으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창밖은 여전히 어둡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도시의 불빛들. 창문에는 얇은 먼지층이 앉아있고, 몇 방울의 물방울이 맺혀있다. 피로에 찌든 눈이 창밖을 스쳐 지나간다.
**[묘사]**
그때, 멀리서 아주 미세한 진동음이 ‘웅-‘. 멀리서 심장이 울리는 듯한 저주파음이 아파트의 콘크리트 벽을 타고 은찬의 발바닥으로 스며든다. 이내 사라진다.
**[은찬]**
(다시 의자에 앉으며)
이 건물 낡았지… 옆집 공사하나?
**[나레이션]**
이 아파트는 30년이 넘었다. 배관 소리일 수도 있고, 바람 소리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내 착각일 수도.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나는 그렇게 나 자신을 안심시켰다.
—
**[장면 #2] 일상의 균열**
**[배경]**
다음 날 오후. 은찬은 점심을 대충 때우고 다시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여전히 흐트러진 아파트 내부. 거실 바닥에는 어제 떨어진 연필이 그대로 굴러다니고, 냉장고 문에는 배달 음식 전단지가 잔뜩 붙어 있다. 오후의 햇살이 희미하게 거실을 비추지만, 여전히 어딘가 눅눅하고 미지근한 분위기다.
**[패널 #1]**
은찬이 냉장고 문을 열어 생수를 꺼낸다. ‘텅-‘ 하는 소리와 함께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린다. 냉장고 안에는 반쯤 먹다 남은 배달 음식들과 맥주 캔 몇 개가 보인다. 그때, 냉장고 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온갖 자석들이 ‘철컥, 철컥!’ 소리를 내며 마치 잡아 뜯긴 것처럼 일제히 바닥으로 굴러떨어진다. 가장 먼저 떨어지는 것은 고양이 모양 자석이다.
**[묘사]**
은찬은 놀라서 눈을 크게 뜬다. 자석들은 꽤 강한 자성을 가진 것들이었는데,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이 일시에 잡아뜯기라도 한 것처럼 제각각의 방향으로 굴러떨어져 있다. 고양이, 강아지, 하트 모양의 자석들이 흩뿌려진 바닥을 은찬이 황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은찬]**
(혼잣말)
뭐야, 씨… 자성이 다했나?
**[나레이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늘어놓는 것도 이제는 좀 지쳤다.
어제 떨어졌던 연필, 새벽의 이상한 진동음…
그리고 지금, 냉장고 자석까지.
점점 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었다. 불쾌할 정도로.
**[패널 #2]**
은찬이 자석들을 다시 주워 냉장고 문에 붙이려고 한다. 하지만 자석들은 붙지 않고 계속 ‘툭툭’ 떨어져 버린다. 마치 냉장고 문에서 자성이 사라진 것처럼, 자석들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그녀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진다.
**[은찬]**
(짜증 섞인 목소리)
야, 너 왜 그래! 아, 진짜!
**[나레이션]**
나는 애꿎은 냉장고 문을 툭툭 쳐봤다.
말도 안 돼. 이 문은 원래 자성이 강해서, 내가 좋아하는 우주선 모양 자석도 찰싹 잘 붙어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것도 안 붙어.
**[패널 #3]**
은찬의 손에 들린 우주선 모양 자석. 매끈한 은색 표면에 검은색 띠가 둘러져 있고, 앞부분에 작은 조종석 창문이 그려져 있다. 이건 어릴 적 과학 잡지 부록으로 받았던 것인데, 은찬은 이상하게 이 자석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손때가 묻어 반짝이는 자석 표면이 클로즈업된다.
**[묘사]**
은찬이 우주선 자석을 냉장고 문에 대본다. ‘툭.’ 아무런 저항 없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순간, 아파트 전체의 불이 ‘파박!’ 하고 꺼진다. 마치 누군가 스위치를 강제로 내린 것처럼. 동시에 냉장고 안의 음식물들이 희미한 냉기를 뿜어내며 어둠 속에 잠긴다.
**[은찬]**
(숨 막히는 소리)
흐읍…
**[나레이션]**
아파트 전체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정전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이 타이밍은… 기이했다.
**[패널 #4]**
완전히 암흑이 된 아파트 내부. 창밖으로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만이 희미하게 내부를 비춘다. 냉장고 앞에서 굳어버린 은찬의 실루엣.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하다.
**[묘사]**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우주선 자석이, 아주 미세하게, 정말 아주 미세하게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는 것을 은찬은 보지 못한다. 아니,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아파트 전체에 퍼지는 진동음 ‘웅-‘. 아까보다 훨씬 더 강하고, 선명하게.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이제 바로 귀 옆에서 울리는 듯하다.
마치 벽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처럼.
**[나레이션]**
환청이 아니다.
건물 노후화도 아니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
**[장면 #3] 보이지 않는 손님**
**[배경]**
완전히 암흑이 된 아파트. 정전은 이어지고 있다. 진동음이 아파트 전체를 감싸고 은찬의 심장을 거세게 울린다. 공기 자체가 진동하며 피부를 간지럽히는 듯하다.
**[패널 #1]**
은찬이 스마트폰 플래시를 켜들고 두리번거린다. 얼굴은 공포와 혼란으로 일그러져 있다. 아까보다 훨씬 더 선명해진 ‘웅-‘ 하는 진동음이 계속해서 들린다. 진동은 바닥에서부터 발을 타고 올라와 온몸을 흔드는 듯하다. 플래시 불빛에 비친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공포를 더한다.
**[은찬]**
(떨리는 목소리)
누구… 누구 있어요…?
**[나레이션]**
공포는 냉정한 이성을 침식했다. 나는 더 이상 변명할 수 없었다.
이건 환상이 아니다.
이건… 현실이다. 섬뜩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패널 #2]**
은찬의 시선이 작업용 책상을 향한다. 책상 위, 어지럽게 놓여있던 연필, 지우개, 스케치북 등이 제멋대로 공중으로 ‘둥실’ 떠오른다. 마치 투명한 손이 그것들을 조종하는 것처럼, 무게를 잃은 물건들이 허공에서 일렁인다. 펜이 뚜껑과 분리되어 떠다닌다.
**[은찬]**
(크게 소리 지른다)
으악! 뭐… 뭐야!
**[묘사]**
떠오른 물건들이 잠시 허공에 멈춰 있다가, 이내 느린 움직임으로 책상 위를 유영하기 시작한다. 마치 중력이 사라진 것처럼, 혹은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은찬의 스마트폰 플래시가 떠다니는 물건들 위에서 불안하게 흔들린다.
**[나레이션]**
이건 폴터가이스트 현상이다.
나는 과학을 믿는 사람이다. 유령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내가 아는 모든 물리법칙을 무시하고 있었다. 이성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광경이었다.
**[패널 #3]**
은찬의 시선이 다시 방을 한 바퀴 훑는다. 거실의 작은 화분, 선반 위의 사진 액자, 심지어 식탁 위 포크까지. 모든 것이 아주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공중에 둥실 떠다니는 물건들 사이로 희미한 푸른빛이 ‘치지직’하고 감돈다. 마치 정전기가 방 전체를 채우는 것처럼, 혹은 미지의 에너지가 활성화되는 것처럼.
**[묘사]**
진동음은 이제 은찬의 귀를 때리는 고주파음으로 변해간다. ‘끼이이잉-‘ 날카로운 소리가 뇌를 꿰뚫는 듯하다. 고통스러운 듯 귀를 막는 은찬. 그녀의 표정은 고통과 공포로 가득 차 일그러져 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패널 #4]**
은찬의 작업용 모니터가 ‘팟!’ 하고 스스로 켜진다. 정전인데도 불구하고. 화면은 새까맣다. 그리고 그 위에, 푸른색 글자들이 마치 코딩되는 것처럼 한 글자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글자들은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으로 시작하다가, 점차 익숙한 한글로 변한다. 빛나는 글자들이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난다.
**[모니터 글자 (푸른색)]**
…신… 호… 잡… 힘…
…개… 체… 확… 인…
…위… 치… 확… 인…
…접… 속… 시… 도…
**[은찬]**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흐읍… 흡… 저게… 뭐야…?
**[나레이션]**
이건… 유령이 아니었다.
악령도 아니었다.
이건… 내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완전히 미지의 존재였다. 내 이성과 경험의 모든 범주를 벗어난 존재.
**[패널 #5]**
모니터 화면에 나타난 푸른 글자들이 마지막 문장을 완성한다. 은찬의 얼굴에는 공포와 함께 미세한 호기심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모니터 글자 (푸른색)]**
\[대상: 유은찬. 코드: 771-A. 동기화율: 3.14%\]
\[수집 완료. 회수 준비.\]
**[묘사]**
그 순간, 아파트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물건들이 일제히 ‘쨍그랑! 탁!’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아파트의 모든 전등이 ‘파바바박!’ 하고 다시 켜진다. 동시에 고주파음과 진동도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정전이 끝났다.
모니터는 다시 꺼져있다.
**[나레이션]**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완벽히 정상으로.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
내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내 세상은 산산조각 났다.
**[패널 #6]**
바닥에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로, 은찬이 손에 쥐고 있던 우주선 자석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아주 미세하게 진동한다. 그녀의 손바닥에 닿는 자석의 진동은, 마치 멀리 떨어진 별들의 울림처럼 느껴진다.
은찬의 눈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미세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잠 못 드는 밤을 피곤 탓으로 돌릴 수 없게 되었다.
그녀의 세상은, 이제 막 우주로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