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숲의 심장 속 그림자

    황혼이 짙게 깔린 숲은 태초의 숨결을 머금은 듯 고요했다. 오래된 나무들의 거대한 실루엣이 하늘을 가르고, 이끼 낀 바위들은 숲의 비밀을 품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세상의 시간조차 이곳에서는 멈춘 듯했다. 그 고요함 속, 숲의 가장 깊은 곳, 태양의 흔적이 닿지 않는 은밀한 웅덩이 옆에 두 그림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카엘은 조심스럽게 리라의 손을 잡았다. 그의 거친 손가락이 그녀의 여리고 섬세한 손가락을 감싸자, 숲의 기운이 스며든 그녀의 피부에서 미약한 온기가 전해졌다. 리라는 짙은 에메랄드빛 눈동자로 카엘을 올려다보았다. 숲의 정령들이 그녀의 눈에 깃든 듯, 깊이를 알 수 없는 빛이 일렁였다. 그녀의 얼굴을 감싸는 나뭇가지 문양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나며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더했다.

    “늦었잖아, 카엘.”
    리라의 목소리는 숲의 바람처럼 부드러웠으나, 그 속에는 불안이 깃들어 있었다.

    카엘은 고개를 젓고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이 닿자, 리라의 뺨 위 문양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했다.
    “미안해. 숲을 지나는 길이 쉽지 않았어. 너희 부족의 순찰이 더 잦아진 것 같아.”

    리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발각되면 어쩌려고 그래? 인간의 피를 가진 자가 숲의 심장에 발을 들였다는 걸 알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사랑은 숲의 오랜 율법을 거스르는 금기였다. 인간과 실바니, 단명하는 자와 영원히 숲과 함께하는 자. 그들의 만남은 그 자체로 파문이었다.

    “누구도 우리를 찾지 못할 거야, 리라. 나는 알아. 너는 숲의 여인이잖아. 너는 모든 것을 듣고, 모든 것을 느끼지 않나.”
    카엘은 그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그의 말은 리라의 불안을 잠시나마 가라앉히는 듯했다. 그녀는 카엘의 품에 기댔다. 숲의 차가운 기운과 달리, 그의 체온은 뜨겁고 생생했다.

    “내가 아무리 숲의 심장이라 한들, 금기를 어긴 대가는 혹독해. 내 부족은… 너를 해악이라 부를 거야.”
    리라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들은 모를 거야.” 카엘은 리라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었다. 숲의 청량한 향과 그녀 특유의 달콤한 내음이 그를 감쌌다. “우리가 얼마나 서로를….”

    그때였다.
    숲의 고요를 깨는 아주 미세한 소리.
    바람도 없는 나뭇잎의 흔들림, 혹은 흙을 밟는 가벼운 발소리.
    리라의 몸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녀의 에메랄드 눈동자가 날카롭게 주위를 스캔했다. 숲이 그녀에게 경고의 속삭임을 보내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무슨 일이야, 리라?”
    카엘은 그녀의 변화를 감지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쉿.”
    리라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카엘을 제지했다. 그녀의 눈은 이제 어둠 속에서 등대처럼 빛나고 있었다.
    “다가오고 있어. 나의 부족.”

    카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들의 사랑은 항상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다. 발견은 곧 죽음이었다. 그에게는, 그리고 리라에게는 추방 또는 더 혹독한 형벌이 기다릴 터였다.

    “어디서? 몇 명이나?”
    카엘은 허리에 찬 단도를 꽉 쥐었다. 인간으로서 그는 실바니족 전사들에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은 숲의 일부였고, 칼보다 더 날카로운 감각을 지녔다.

    “세 명. ‘그림자 발톱’들이다. 리안이 이끌고 있어. 아주 가까워. 지금 당장 숨어!”
    리라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은 숲의 바람처럼 매끄러웠다. 그녀는 카엘의 손목을 잡고 웅덩이 옆, 거대한 고목의 뿌리가 뒤엉킨 틈새로 그를 이끌었다.

    뿌리와 뿌리 사이, 빽빽한 이끼와 넝쿨로 가려진 좁은 공간. 카엘은 몸을 웅크리고 숨을 죽였다. 리라가 그의 옆에 바싹 붙어 앉았다. 그녀의 체온이 그의 옆구리를 데웠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에메랄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실바니족 전사들은 숲의 일부인 듯, 거의 소리 없이 움직였다. 그러나 카엘은 그들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숲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했다.

    “이곳이다. 숲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
    거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실바니의 언어였다. 카엘은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숲이 떨린다’는 말에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숲이 그들의 금지된 만남을 고발하고 있는 것인가.

    “인간의 피 냄새가 희미하게 난다. 정말 이 숲의 심장까지 들어왔을 줄이야.”
    또 다른 목소리가 덧붙였다.

    카엘은 리라를 보았다. 그녀는 숨조차 쉬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그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몸에서 희미하게 풀꽃 향기가 났다. 그 향기가 그들을 들키게 할까 봐 카엘은 두려웠다.

    고목의 뿌리 틈새, 바로 그들 코앞을 실바니 전사들이 지나갔다.
    발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카엘은 그들의 길고 늘씬한 그림자가 자신들의 은신처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갑옷처럼 단단한 피부는 어둠 속에서 나무껍질처럼 위장되어 있었다. 그들의 눈은 맹수처럼 날카롭게 빛났다. 리안, 그는 리라의 먼 친척이자 숲의 수호대장이었다. 그와 리라의 관계를 아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카엘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몇 분, 아니면 영원.
    점점 멀어지는 발소리, 희미해지는 목소리.
    숲의 공기가 다시 고요해졌다.

    리라가 먼저 움직였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고목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카엘도 그녀를 따라 나섰다.

    밤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카엘의 심장이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간 건가?”

    리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
    “리안은 의심을 거두지 않을 거야. 그는 숲의 경계를 강화할 거고, 너의 흔적을 더욱 집요하게 쫓을 거야. 우리는… 더 이상 여기서 만날 수 없어.”

    카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이곳, 숲의 심장이었다. 이 이상 깊은 곳은 숲의 신성한 영역이었고, 이 밖으로는 실바니족의 감시가 더욱 삼엄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 리라?” 그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리라의 에메랄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강렬하게 빛났다.
    “더 이상은 안 돼. 이렇게는… 안 될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확고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카엘은 불안감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리라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녀의 눈빛은 비장했다.
    “나의 부족은… 너의 흔적을 쫓고 있어. 그들은 너를 숲의 해악이라 부르며, 반드시… 찾아낼 거래.”
    그녀의 마지막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카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숲의 모든 감각이 리라의 부족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숲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의 운명은 숲과 얽혀 있었다.

    “우리는 도망쳐야 해.”
    리라의 눈이 카엘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 속에는 절망과 함께, 어떤 맹렬한 결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아니면….”

    그녀는 말을 끝맺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아니면’의 잔혹한 무게가 숲 전체를 짓누르는 듯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둠은 끈적했고, 지하도시의 폐부를 꿰뚫는 녹슨 금속의 비린내가 코끝을 찔렀다. 머리 위로는 번화한 황제국의 수도, ‘아스타나’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흐릿한 진동과 함께 땅속까지 전해지고 있었다. 그곳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발밑, 이 썩어가는 하수도와 버려진 전력 터널 사이로 또 다른 생명들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태오의 숨결은 거칠었다. 손에 든 구식 전술 등불이 불안하게 깜빡이며 앞을 밝혔다. 빛이 닿는 곳마다 곰팡이와 이끼가 뒤덮인 콘크리트 벽이 기괴한 형상으로 일그러져 보였다. 톡, 톡. 등불에서 떨어지는 녹물 소리가 섬뜩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젠장, 언제쯤 끝나는 길이야, 여기는?”

    뒤따르던 민준이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어깨에는 등신대 만한 배낭이 위태롭게 얹혀 있었다. 배낭 안에는 이번 작전의 핵심, ‘어둠의 파편’이 들어있었다. 황제국이 수십 년간 지하 깊숙이 숨겨두었던, 세계의 균형을 뒤흔들 힘을 가진 미지의 조각. 이것을 안전하게 아지트로 옮기는 것이 태오와 그 팀의 임무였다.

    “닥쳐, 민준. 황제국의 귀는 이 벽에도 달려있어.”

    선두에 서서 주위를 살피던 윤아가 날카롭게 속삭였다. 그녀의 눈은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듯 예리하게 번뜩였다. 윤아는 팀에서 가장 빠르고, 가장 조용하게 움직이는 그림자였다. 등 뒤의 고성능 라이플은 그녀의 분신과도 같았다.

    “그래도 너무 조용하잖아… 이대로 괜찮은 건가?”

    건장한 체격의 형준이 굵은 팔로 벽을 짚으며 말했다. 그의 손에는 묵직한 망치가 들려 있었다. 황제국의 감시망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특수 도구였다. 형준의 말대로, 이곳은 너무나 고요했다. 지하수로 깊숙한 곳, 잊힌 길이라고는 하나 황제국의 경비가 이토록 허술할 리 없었다. 오히려 그 침묵이 더 큰 불안감을 불러왔다.

    태오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쿵, 쿵. 마치 망치질 소리처럼 그의 귓가에 울렸다. 그는 손목에 찬 구식 통신기를 확인했다. 미약한 신호가 잡히는가 싶더니 이내 지지직거리는 소리만 났다. 외부와의 연락은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여기서부터 ‘망자의 골목’이다. 조심해. 황제국이 버린 구식 드론들이 아직 작동할 수도 있어.”

    태오의 말에 모두의 발걸음이 더욱 신중해졌다. ‘망자의 골목’은 과거 황제국이 대규모 도시 개발을 위해 무리하게 강제 이주를 시키고, 저항하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곳이었다. 그들의 흔적이 이곳 지하에 유령처럼 남아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수십 미터를 더 나아갔을까. 윤아가 갑자기 손을 들어올렸다. 모두가 얼어붙듯 멈춰 섰다. 그녀의 눈빛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태오가 등불을 그쪽으로 비추자, 낡은 배관이 복잡하게 얽힌 천장 아래,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뭐야… 저거, 감시 드론인가?” 민준이 침 삼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아니, 저건… 황제국 신형이야.” 윤아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이전에 보고된 적 없는 모델이야. 소리도 없어. 우리가 들어왔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신형 드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며 어둠 속을 헤치고 있었다. 기존 드론과는 달리 작고 날렵하며, 빛조차 거의 흡수하는 듯 검은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황제국이 비밀리에 이 지하 통로에도 최신 감시 시스템을 깔았다는 뜻이었다.

    “젠장, 매복이야! 빠르게 움직여야 해!”

    태오가 소리치자마자, 드론의 센서가 그들을 향해 붉은빛을 번뜩였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지하수로에 울려 퍼졌다.

    “쳇! 들켰어!” 형준이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며 앞으로 나섰다. “태오, 윤아! 민준이 데리고 먼저 가! 내가 시간을 벌게!”

    “안 돼! 같이 가야 해!” 태오가 외쳤지만, 이미 드론은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윙-하는 낮은 비행음이 들려왔다.

    윤아가 라이플을 들어 조준했다. “하나라도 더 부수면 돼! 민준, 내 등 뒤에 바짝 붙어!”

    민준은 공포에 질린 채 배낭을 더 단단히 움켜쥐었다. ‘어둠의 파편’이 그의 등 뒤에서 차갑게 느껴졌다.

    *탕! 타앙!* 윤아가 발사한 총알이 드론의 외피를 스치고 지나갔다. 드론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채 더욱 빠르게 다가왔다. 이어서 몇 대의 드론이 더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무려 다섯 대.

    “이런 개 같은…!” 형준이 욕설을 내뱉으며 망치를 휘둘렀다. 낡은 배관이 그의 망치질에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저 드론들, 전력 공급 라인에 연결된 것 같아! 저 위에 주 제어반이 있을 거야!” 태오가 급히 외쳤다. 그의 시선은 천장 깊숙한 곳에 숨겨진 희미한 패널을 향했다. “윤아, 형준! 드론 시선을 끌어! 민준, 나랑 같이 올라가서 저걸 부순다!”

    민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가요?! 저, 저는…!”

    “망설일 시간 없어! 어둠의 파편을 지켜야 해!”

    태오가 먼저 벽에 박힌 낡은 파이프들을 밟고 천장을 향해 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드론들이 일제히 태오와 민준에게 센서를 고정했다.

    “나를 따라와! 서둘러!”

    뒤에서는 윤아의 총성이 쉴 새 없이 터지고, 형준의 망치가 낡은 철골 구조물과 부딪히며 섬뜩한 금속음을 냈다. 그들이 몸을 던져 시선을 끄는 사이, 태오는 민준을 끌어올리며 필사적으로 천장의 제어반을 향해 나아갔다. 드론 하나가 굉음을 내며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찰나의 순간, 민준의 발밑 파이프가 삐걱거렸다. 그의 손이 미끄러지며, 어둠의 파편이 든 배낭이 휘청였다.

    “크아악!” 민준의 비명과 함께, 배낭이 등에서 벗겨져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태오의 눈앞에는 드론의 붉은 센서가 섬광처럼 번뜩이고, 발밑으로는 심연 같은 어둠이 아득하게 펼쳐졌다. 어둠의 파편이, 서서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반란의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이대로… 끝인가.*

    태오의 머릿속에 절망이 스쳐 지나가는 찰나, 그의 눈은 한 지점에 고정되었다. 낡은 철골 구조물에 반사된, 어둠의 파편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하고 푸른빛. 그것은 죽어가는 빛이 아니라, 오히려 무언가 깨어나려는 듯 꿈틀거리는 기운이었다.

    동시에, 지상에서 들려오던 황제국 군용 차량의 굉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하 통로의 입구를 이미 알아차린 듯했다. 곧, 이 지하 통로는 황제국 군인들로 가득 찰 것이었다. 시간은, 더 이상 태오의 편이 아니었다.

    태오는 이를 악물고 몸을 던졌다. 잡을 수 있을까? 파편이 땅에 닿기 전에. 황제국의 군화 소리가 점점 더 명확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 크툴루 신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별을 삼키는 무림**

    **제1장: 운명의 별이 드리운 그림자**

    세상은 알 수 없는 그림자에 잠식되고 있었다. 밤하늘에 떠오른 달은 보랏빛으로 일렁였고, 아침을 알리는 새들의 노랫소리에는 기묘한 불협화음이 섞여 있었다. 무림의 고수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변화를 감지했다. 어떤 이는 낡은 경전 속에서 잊힌 예언을 들춰냈고, 어떤 이는 깊은 산속에서 명상하며 기운의 뒤틀림을 느꼈다. 그리고 마침내, 천하제일비무대회(天下第一比武大會)라는 이름 아래, 운명산(運命山) 정상에 모든 것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명산은 본래 기묘한 전설이 서린 곳이었다. 일 년에 단 한 번, 자정에 정상에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현상이 관측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별빛을 쬔 자는 천하를 뒤흔들 힘을 얻거나, 혹은 영원한 광기에 빠진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 비무대회는 바로 그 운명산, 그 별이 쏟아지는 자리에 마련되었다. 대회 주최는 천 년간 무림의 평화를 수호해 온 ‘현암문(玄岩門)’이었지만, 그들조차 이번 대회가 단순한 무력 경쟁이 아님을 아는 듯했다.

    청풍(淸風)은 낡은 도포 자락을 여미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가벼웠지만, 눈빛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길목마다 이름난 문파의 기치를 휘날리며 위세를 뽐내는 무사들이 가득했지만, 청풍의 시선은 그들을 스쳐 지나 멀리 운명산 정상에 걸린 희뿌연 안개에 닿아 있었다. 그 안개 속에서, 그는 알 수 없는 부름을 느꼈다.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를 기다려온, 그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지도 모를 부름을.

    “어이, 거기! 어디 문파의 누구냐? 이곳은 아무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닐 텐데!”

    한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삼절곤을 든 사내가 길을 막아서며 호기롭게 물었다. 그의 뒤에는 ‘강룡문(降龍門)’이라 쓰인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청풍은 멈춰 서서 고개를 들었다.

    “소림 무명지사, 청풍이라 합니다.”

    그의 대답에 사내는 코웃음을 쳤다. “무명? 요즘은 무명도 천하비무대회에 나온다고 떠벌리는 시대인가? 어서 돌아가라. 이곳은 너 같은 어린애가 올 곳이 아니다.”

    청풍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히 사내의 눈을 응시할 뿐이었다. 사내는 그 침묵과 시선에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끼고 움찔했다.

    “흥! 건방진 녀석 같으니! 좋다, 어디 한번 맛이나 봐라!”

    사내는 삼절곤을 휘두르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바람을 가르는 곤의 움직임은 제법 숙련된 경지였다. 하지만 청풍은 그저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설 뿐이었다. 사내의 곤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간 순간, 청풍의 손가락 끝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번개처럼 빠르게 사내의 손목을 스친 손끝에서, 가벼운 타격음과 함께 곤이 땅에 떨어졌다.

    “크윽…!”

    사내는 자신의 손목을 감싸 쥐고 뒤로 물러섰다. 손목은 푸르스름하게 멍들었을 뿐,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긴 내공의 깊이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경지였다. 사내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청풍을 노려보았다.

    “너… 너는 대체…!”

    청풍은 다시 말없이 제 갈 길을 갔다. 그의 등 뒤로, 강룡문 무사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자는 누구지? 강룡문의 사형을 단 한 합에 제압하다니…”
    “무명이라고 했지만, 분명 보통 인물은 아닐 거야.”

    산 중턱에 다다르자, 대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원형 경기장은 고대 유적 위에 지어진 듯 돌기둥마다 기묘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중앙에는 높다란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고, 그 주위로 수많은 무림인들이 운집해 있었다. 각 문파의 수장들과 장로들은 상석에 앉아 있었고,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맴돌고 있었다.

    “왔는가, 청풍.”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풍이 고개를 돌리자, 백발을 드리운 노인이 온화한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그는 현암문의 문주이자, 이번 대회를 주최한 유일한 인물, 현무진인(玄武眞人)이었다.

    “진인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청풍이 고개를 숙였다.

    현무진인은 청풍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너의 기척은 멀리서부터 느껴졌다. 네가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 그리고… 네가 가장 먼저 도착하리라는 것도.”

    “가장 먼저라니요?” 청풍이 의아한 듯 물었다. 비무대회가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현무진인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기 전이었지만, 하늘은 이미 깊은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비무대회라는 이름에 속아 그저 무를 겨루러 왔겠지만, 너는 다르지 않느냐. 너는 저 별의 부름을 들었을 터.”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운명산 정상의 제단이 있었다. 제단 위에는 거대한 돌이 놓여 있었는데, 그 돌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돌의 표면에는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었다.

    “저것이… 이번 비무대회의 진정한 상이자, 동시에… 봉인된 재앙의 핵이다.” 현무진인의 목소리에는 깊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천 년 전, 저 돌을 통해 ‘그들’이 넘어오려 했다. 수많은 고수들의 희생으로 겨우 균열을 막았지만, 이제 그 봉인이 약해지고 있어. 밤마다 기이한 꿈과 환영이 무림을 뒤덮고, 광기가 싹트고 있지 않으냐.”

    청풍은 제단의 돌을 응시했다.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기운은 분명 인간의 것과는 다른, 차갑고도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될 심연의 속삭임 같았다.

    “대회는 단순한 무력 시합이 아니다. 저 돌의 균열을 막아낼 ‘진정한 힘’을 가진 자를 찾아내는 의식이다.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자만이 저 균열을 영원히 봉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한다면요?” 청풍의 목소리에 미묘한 떨림이 섞였다.

    현무진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실패한다면… 저 균열을 통해 ‘그들’이 완전히 넘어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세상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잃고, 영원한 밤에 잠식될 테지.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태초의 어둠에.”

    그 순간, 멀리서 다른 무사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거대한 기운을 내뿜으며 한 사내가 대회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검은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검집 속에서 울부짖는 듯했다. ‘철혈검마(鐵血劍魔)’, 천하 무림에서 가장 강맹한 검법을 구사하며 무수한 강자들을 쓰러뜨린 강자였다. 그의 등장에 모든 이들이 숨을 죽였다. 철혈검마는 오만하게 주변을 둘러본 뒤, 현무진인이 서 있는 제단 쪽을 한 번 노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권력과 힘에 대한 맹렬한 욕망이 번뜩였다.

    “흥, 현암문 문주. 천하비무대회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감춰진 것이 고작 저따위 돌덩이라니.” 철혈검마가 비웃듯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재앙의 핵이든 뭐든, 저것은 내 것이다. 천하제일인의 영광과 함께, 저 돌이 지닌 모든 힘 또한 내가 가질 것이다.”

    현무진인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으로 철혈검마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때, 또 다른 인영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검은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었다. 그녀의 걸음은 마치 밤의 그림자 같았고, 얼굴은 얇은 베일로 가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차갑게 빛났다. ‘야화(夜花)’, 무림에 홀연히 나타나 기이한 술법으로 사람들을 현혹하고 절정에 이른 고수들조차 농락했다는 소문이 자자한 수수께끼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철혈검마의 반대편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대회장은 침묵에 잠겼다. 무림의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들 사이에 흐르는 것은 단순한 경쟁심이 아니었다. 거대한 불안감, 그리고 알 수 없는 재앙의 그림자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듯했다.

    현무진인이 제단 위로 올랐다. 그의 손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무림의 모든 고수들이여. 오늘 밤, 우리는 단순히 무를 겨루는 것이 아니다. 천하의 운명, 인류의 존재 자체가 걸린 성스러운 의식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모든 무림인들의 귀에 뚜렷하게 들렸다.

    “저 별의 균열을 통해 들어오려는 존재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의 어둠은 우리의 혼을 좀먹고, 우리의 세계를 왜곡할 것이다. 오직 가장 순수하고, 가장 강맹하며, 가장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지닌 자만이 저 균열을 닫을 수 있을 것이다.”

    현무진인이 두루마리를 펼치자, 고대의 문자들이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올랐다. 그 순간, 운명산 정상의 공기가 급격히 차가워졌다. 웅성거림이 더욱 커지고, 몇몇 무사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이 비무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결전이다. 저 균열은 그대들의 내면을 탐색할 것이며,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광기를 끄집어낼 것이다. 마음속의 어둠에 잠식되는 순간, 그대들은 더 이상 무림의 고수가 아닌, ‘그들’의 하수인이 될 것이다.”

    청풍은 현무진인의 말을 들으며 제단의 돌을 응시했다. 돌 표면에 난 미세한 균열들 사이로, 어렴풋이 보랏빛 안개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형체가 꿈틀거리는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될 것들이 저 너머에서 이 세상을 향해 엿보고 있는 것처럼.

    현무진인은 말을 마친 후,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청풍을 지나, 철혈검마와 야화를 거쳐, 다시 운명산 정상의 제단에 닿았다.

    “이제… 밤이 깊어간다. 운명의 별이 쏟아져 내릴 시간이 머지않았다.”

    밤하늘의 보랏빛은 더욱 짙어졌고, 달빛은 섬뜩하리만치 희미해졌다. 산 정상에 모인 무사들은 저마다의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의 심장은 곧 시작될 결전 때문이 아니라, 알 수 없는 공포와 마주해야 한다는 예감 때문에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제단 위의 돌에서부터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심장이 박동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소리는 점점 커졌고, 돌 표면의 균열들은 마치 살아있는 핏줄처럼 붉은빛으로 번쩍였다. 동시에, 무림인들의 귓가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람소리 같기도 하고, 깊은 바닷속 생물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는 이성을 좀먹는 듯, 듣는 이의 정신을 뒤흔들었다. 몇몇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했고, 몇몇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청풍은 그 속삭임을 들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깊어졌다. 그는 알았다. 이 밤, 그의 운명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운명이 결정될 것이라는 것을.

    밤이 절정에 달했다.
    하늘에서 보랏빛 유성들이 빗발치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무대회는, 시작되었다.

  • 선협 (신선)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달빛 연가 (月光戀歌)

    **[에피소드 1: 깨어나지 못한 숲의 부름]**

    **#1. 깊은 숲 속, 밤**

    **[장면 묘사]**
    어둠이 짙게 깔린 깊은 산중.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달빛조차 희미하게 스며드는 곳이다.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기이한 풀꽃 내음이 코를 찌른다.
    핏자국이 선명한 검 ‘청뢰(靑雷)’를 든 한 젊은 사내가 비틀거리며 숲을 헤치고 나아간다. 그의 이름은 **련화(련화)**. 청운선문(靑雲仙門)의 촉망받는 수련생이다. 그의 도포는 찢어지고, 온몸에는 날카로운 발톱에 찢긴 듯한 상처들이 즐비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도포를 적시고 숲 바닥에 뚝뚝 떨어진다.

    **련화 (독백)**
    젠장… 놈의 독기는 왜 이리 지독한가.
    청운선문까지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 버렸어.
    이대로 가다간…

    **[장면 묘사]**
    련화는 고통에 신음하며 겨우 한 발 한 발을 옮기지만, 결국 무릎이 꺾이며 쓰러진다. 그의 시야가 흐려지고, 거친 숨소리가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멀리서 기괴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련화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청뢰를 들어 올리려 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2. 월영의 숲, 심연**

    **[장면 묘사]**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련화가 눈을 떴을 때, 그를 감싼 것은 더 이상 어둠과 독기가 아니었다. 사방을 뒤덮은 옅은 안개는 마치 비단처럼 부드럽고,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이끼와 풀들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대한 고목들은 수천 년의 세월을 견딘 듯 굳건히 서 있지만, 그 줄기마다 희미한 영력이 흘러나오는 듯하다. 이곳은 그가 있던 숲과는 차원이 다른, 영험한 기운이 가득한 곳이다.

    **련화 (독백)**
    여기는… 어디지?
    분명… 마수에게 쫓기다 의식을 잃었는데…
    내 상처는… 여전히 쓰라리지만, 아까보다는 덜한 것 같아.

    **[장면 묘사]**
    련화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다. 온몸의 통증이 여전하지만, 이전과 같은 극심한 고통은 아니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며 숨을 고른다.
    그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춘다. 숲의 가장 깊은 곳, 모든 빛을 모아놓은 듯한 영롱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곳이 있었다. 그 빛은 마치 그를 이끄는 듯, 홀린 듯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련화**
    이 빛은… 대체 무엇이지?

    **[장면 묘사]**
    련화는 조심스럽게 빛을 따라 걷는다. 숲은 더욱 깊어지고,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영력은 더욱 짙어진다. 마침내 숲의 끝에 다다르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련화는 숨을 멎는다.

    **#3. 달빛 아래 여인**

    **[장면 묘사]**
    숲의 가장 깊은 곳, 모든 생명력이 응축된 듯한 거대한 연못이 펼쳐져 있다. 연못 위로는 하늘에 걸린 보름달이 환하게 비치고, 물결에 반사된 달빛이 영롱하게 춤춘다. 연못가는 세상의 어떤 꽃보다도 아름다운, 붉은색과 은색이 오묘하게 섞인 꽃들이 만개해 있다.
    그리고 그 연못 한가운데, 만개한 붉은 꽃잎 위로 한 여인이 앉아있다. 그녀는 달빛으로 빚어진 듯 투명한 피부와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졌다. 눈을 감고, 달의 기운을 흡수하는 듯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녀의 주변으로는 연못의 영력이 소용돌이치며 그녀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인간의 존재가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는, 지극히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

    **련화 (독백)**
    저것은… 정령인가?
    아니, 그보다 더 고귀한 존재 같아.
    이토록 맑고 강대한 기운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
    마치 살아있는 달빛 같아…

    **[장면 묘사]**
    련화는 저도 모르게 발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경계심마저 잊은 채, 조금 더 가까이 가려는 순간… 그만 발밑의 마른 나뭇가지가 ‘툭’ 하고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장면 묘사]**
    연못 위의 여인, **월영(月影)**이 번개처럼 눈을 뜬다. 그녀의 눈은 깊고 푸른 달빛을 담고 있다. 그녀의 시선이 련화에게 꽂히는 순간, 련화의 온몸은 강렬한 영력에 압도되어 굳어버리는 듯했다. 연못 주변의 꽃잎들이 일제히 빛을 뿜으며 련화를 향해 경고하듯 흔들린다.

    **월영 (나지막하지만 울림 있는 목소리)**
    무례한 인간. 어찌하여 월영의 숲에 침범하였느냐.

    **련화**
    (온몸이 굳어버리는 듯한 압도적인 영력에 숨을 들이킨다. 그녀의 목소리 하나하나에 강력한 기운이 담겨있음을 느낀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저는 청운선문의 수련생, 련화라 합니다. 길을 잃고 마수에게 쫓기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월영**
    (말없이 련화를 응시한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련화의 영혼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는 듯하다. 그녀의 시선이 련화의 상처에 머문다.)
    마수에게 쫓기다가? 네 몸의 상처는… 마의 기운에 오염되어 있구나. 인간이 어찌 그런 곳에서 살아남았느냐.

    **련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말처럼, 상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스멀거리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는 필사적으로 영력을 사용해 마의 기운을 억누르고 있었지만, 이미 한계에 달한 상태였다.)
    그렇습니다… 몸에 마기가 침투한 듯합니다. 하지만 결코 악한 의도를 가지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맹세합니다.

    **월영**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연못을 가로질러 련화에게 다가오자, 연못물이 저절로 길을 터주듯 갈라진다.)

    **련화 (독백)**
    저 영력… 어쩌면 저리도 고고하고 깨끗할 수 있지?

    **[장면 묘사]**
    련화는 그녀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뒷걸음질 치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마기에 잠식되어 가는 통증과 그녀의 영력에 눌려 꼼짝할 수 없다.

    **월영**
    (련화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인간의 말은 믿기 어려운 법. 허나 네 눈빛은… 거짓을 담고 있지 않구나. 흥미롭군.

    **[장면 묘사]**
    월영, 가느다란 손을 들어 련화의 상처 부위에 가져간다. 그녀의 손에서 은은한 달빛이 새어 나오더니, 련화의 상처 속으로 스며든다.

    **련화 (독백)**
    차가우면서도… 따뜻해…

    **[장면 묘사]**
    련화는 엄청난 고통과 동시에 따뜻하고도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것을 느낀다. 몸속에 침투했던 마의 기운이 마치 햇살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스르르 사라져 간다. 그의 상처가 서서히 아물기 시작한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피부가 재생된다.

    **련화**
    (놀라움과 혼란 속에서)
    이것은… 당신이… 절 치료해 주시는 겁니까?

    **월영**
    (시선을 거두고 다시 연못 쪽을 바라보며)
    월영의 숲은 더러운 기운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뿐이다.

    **[장면 묘사]**
    련화는 치료된 상처를 만져본다. 통증은 거의 사라지고, 몸속의 마기도 완벽하게 정화된 것을 느낀다. 그는 그녀의 차가운 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행동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온화함에 압도된다.

    **련화**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제가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소인,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십시오.

    **월영**
    인간의 은혜는… 어차피 미미하다. 더 이상 이곳에 머물지 마라. 월영의 숲은 인간이 들어올 곳이 아니다.

    **[장면 묘사]**
    월영은 다시 연못 가운데의 꽃 위에 앉아 눈을 감는다. 그 모습은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차갑고 고고하다. 그녀의 주변을 감싸던 영롱한 빛도 서서히 사라져 간다. 하지만 련화의 마음속에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빛과, 자신을 치유해주던 따스한 달빛이 깊이 박혀버렸다.

    **련화 (독백)**
    인간 세상에… 이런 존재가 있을 줄이야.
    그녀는… 선계의 신선인가? 아니면… 인간과는 함께할 수 없는 금지된 존재인가.
    하지만…

    **[장면 묘사]**
    련화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월영을 바라본다. 그녀가 다시 깊은 수련에 잠긴 것을 확인하고, 그는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조용히 숲을 빠져나간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불안하지 않지만,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혼란과 함께 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에필로그 컷]**
    달빛 아래 고요히 잠든 월영의 신비로운 모습과, 월영의 숲을 벗어나며 뒤돌아보는 련화의 옆모습. 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동경과 번뇌가 스쳐 지나간다. 그는 무언가에 이끌린 듯, 다시 그 숲을 바라본다.

    **련화 (독백)**
    다시… 만날 수 있을까.

  • 오컬트 호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돌 틈새를 비집고 스며든 붉은 달빛이 고대 경기장의 한복판을 기묘하게 비췄다. 낡은 석벽에 걸린 횃불은 꺼진 지 오래였고, 오직 저 피 같은 달만이 이 지독한 결투의 증인처럼 하늘에 매달려 있었다. 경기장은 침묵했다. 아니, 침묵 속에 잠겨있던 것은 관객이 아니라, 이 무거운 공기 그 자체였다. 숨통을 조이는 듯한 긴장감이 돌바닥을 기어 다니는 그림자처럼 춤추고 있었다.

    결승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 준결승의 두 번째 대결.

    현우는 경기장 가장자리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서서 손에 땀을 쥐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노인의 얼굴을 한 괴물이 있었다. 백산. 그의 이름은 이미 이 거대한 대회의 시작부터 기이한 소문과 함께 회자되었다. 그가 싸울 때마다 경기장은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찼고, 그의 상대는 항상 육체적 상처보다 더 깊은, 설명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혀 무너졌다.

    오늘 그의 상대는 무림의 의인(義人)이라 불리는 철웅이었다. 굳건한 바위 같은 사내. 한평생 무도에 정진하며 강호를 수호했던 거목. 그의 주먹은 쇠를 부수고 바위를 가르는 힘을 지녔다고 전해졌다.

    “자네는…”

    철웅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공기가 그의 내면을 짐작하게 했다.

    “…인간의 무공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 듯하군.”

    백산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비틀린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붉은 달빛을 받아 번뜩였는데, 마치 깊은 늪 바닥에서 올라온 불빛 같았다.

    “어둠의 힘을 빌려 이 대회에 나선 것이라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철웅의 목소리가 한층 단단해졌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기운이 솟아올랐다. 정통 무공의 정수, 강철 같은 의지로 다져진 내공이었다. 경기장의 칙칙한 공기가 그의 기운 앞에 잠시 물러서는 듯했다.

    백산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늙은이의 것처럼 쉬고 갈라졌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다.

    “용서? 너희 인간들이 감히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이냐? 이 세상은… 이미 용서받을 가치조차 없는 곳인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백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는 그림자가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의 자세는 흐트러진 듯 보였으나, 현우의 예리한 눈에는 오히려 비현실적인 유연함으로 다가왔다.

    콰아앙!

    철웅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발길질은 대지를 뒤흔들었고, 그의 주먹은 벼락처럼 백산을 향해 쇄도했다. 파공음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경기장을 갈랐다. 무형의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하지만 백산은… 거기에 없었다.

    철웅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을 때, 백산은 이미 그의 등 뒤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느려터진 무공이로군.”

    백산의 손이 철웅의 어깨에 닿았다. 그 순간, 현우는 섬뜩한 기시감에 휩싸였다. 마치 백산의 손이 닿는 곳마다 생기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착각. 실제로 철웅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푸른 기운이 삽시간에 옅어지는 것이 보였다.

    철웅은 놀라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의 팔꿈치가 백산의 얼굴을 향해 꺾여 올라갔다.

    챙!

    기이한 소리가 났다.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쇠붙이가 마찰하는 듯한, 날카로운 금속음이었다. 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백산은 자신의 손등으로 철웅의 팔꿈치를 막아냈다. 그의 손등 피부가 마치 굳건한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것은 착시일까?

    “크윽…!”

    철웅의 얼굴에 고통이 스쳤다. 백산의 손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었다. 흡수였다. 철웅의 기운이, 그의 힘이, 백산의 비틀린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육안으로도 보였다. 철웅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것은… 요술이렷다!”

    철웅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주먹에서 다시 한번 강력한 내공이 터져 나왔다. 백산을 강하게 밀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백산은 그저 차가운 미소를 지을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 발짝 더 철웅에게 다가섰다.

    백산의 두 눈이 빛났다. 그 순간, 현우는 경기장 전체가 비틀리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붉은 달빛마저 일렁이며 흔들리는 것 같았다. 백산의 등 뒤에서 검고 흐릿한 형체가 피어오르는 것을 현우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형체가 없는 연기 같으면서도, 동시에 수천의 눈을 가진 괴물의 실루엣 같기도 했다.

    “진정한 힘은… 너희의 고루한 무공 따위가 아니다.”

    백산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공기가 얼어붙는 듯한 한기가 현우의 심장까지 파고들었다.

    “이 세상의 모든 고통, 모든 절망이 응축된… 심연의 힘이다.”

    검은 연기 같은 형체가 백산의 손끝으로 스며들었다. 백산의 손톱이 마치 짐승의 발톱처럼 길게 자라나며 검은 빛을 띠었다. 그 손이 철웅의 심장을 향해 느리지만, 거부할 수 없는 속도로 뻗어 나갔다.

    “더러운 마물! 감히 내 앞에서…!”

    철웅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터져 나오며 주변의 돌들을 산산조각 낼 기세였다. 온몸의 내공을 한 점에 모아, 백산을 소멸시킬 단 일격을 날리려 했다. 그는 기어코 이 사악한 존재를 이곳에서 꺾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눈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백산은 이미 한 발 앞서 있었다.

    백산의 검은 손톱이 철웅의 가슴에 닿았다. 깊이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저 표면에 스치는 듯한 접촉이었다.

    순간, 철웅의 몸이 굳어버렸다. 그의 눈동자에 깃들어 있던 강철 같은 의지가 사라지고, 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었다. 그의 육신은 멀쩡했지만, 그의 영혼이 꿰뚫린 듯한 끔찍한 비명을 현우는 들었다. 비록 소리 없는 비명이었지만, 현우의 뇌리를 찢어발기는 듯한 섬뜩함이었다.

    철웅의 푸른 기운이 삽시간에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내공이, 그의 삶이 백산에게 흡수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수십 년은 더 늙어버린 듯, 깊은 주름이 패였다. 그의 육체는 서서히 말라붙어 갔다.

    “네놈… 도대체… 무엇이냐…”

    철웅의 목소리가 겨우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죽어가는 자의 절규였다.

    “나는… 심연의 목소리를 듣는 자.”

    백산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철웅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너희의 운명을 결정할 자.”

    털썩!

    철웅의 거대한 육체가 무너져 내렸다. 그는 쓰러진 순간에도 눈을 감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공포와 절망이 가득했다. 그의 몸은 그대로 굳어 버린 채, 마치 수백 년 된 미라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

    경기장은 완벽한 침묵 속에 잠겼다. 붉은 달빛은 여전히 백산을 비추고 있었고, 그의 그림자는 기이하게도 더욱 길게 늘어져 경기장을 뒤덮는 듯했다.

    현우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심장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갔다. 저것은 무공이 아니었다. 인간의 힘이 아니었다. 저 노인이 품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운명을 좌우할 힘을 넘어, 세상 자체를 삼켜버릴 듯한 심연의 공포였다.

    백산은 승자였다. 이제 그는 결승으로 향한다.

    그리고 현우는, 그 백산을 결승에서 막아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현우는 자신의 심장을 옥죄어오는 섬뜩한 예감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저 괴물을, 과연 인간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현우의 등 뒤에서, 차가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핏빛 달 아래, 저 심연이 현우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의 다음 차례였다.

  • SF (공상과학)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지하 미궁의 심장 – 에피소드 1: 망각의 문턱

    [장면 1]

    **배경:**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거대한 석실이 모습을 드러낸다.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높은 천장은 랜턴 빛으로도 다 닿지 않아 아득하게 느껴진다. 바닥에는 부서진 석재 조각들과 오랜 시간 쌓인 먼지가 두텁게 깔려 있고, 그 사이로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검은빛 금속 패널들이 드문드문 솟아 있다. 침묵을 깨는 것은 강하준과 서유나의 거친 숨소리와 그들의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랜턴 빛뿐이다. 공기는 무겁고 차갑다.

    **하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가늘게 뜬다) 젠장… 드디어. 여기가… 우리가 찾던 그 ‘망각의 문턱’이 맞았어. 지도에만 존재하던 마지막 봉인 지점.

    **유나:** (손목에 찬 휴대용 분석기를 응시하며, 조심스럽게 숨을 고른다) 감지된 에너지 패턴이 지금까지 탐사했던 어떤 곳과도 달라요. 이 압도적인 규모… 선대 문명의 최심부, 그들이 모든 것을 감추려 했던 바로 그곳 같아요.

    **하준:** (피식, 짧게 웃음 짓는다) ‘감추려 했다’기보단, ‘지키려 했다’가 더 어울리지 않나?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봉인해 둔 걸 보면 말이야. 대체 뭘 그리 대단하게 지키려고 했던 건지… 기대되는군.

    [장면 2]

    **배경:** 하준이 석실 중앙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지며 정적을 더욱 강조한다. 유나는 그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며, 허공에 띄워진 홀로그램 지도를 확인한다. 지도는 지금 그들이 있는 거대한 석실을 붉은색으로 표시하고, 그 너머로 상상을 초월하는 복잡한 미로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얽혀 있는 통로와 방들.

    **유나:** (미간을 찌푸리며,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지도에 표시된 대로라면, 이 석실은 단순한 입구가 아니에요. 일종의 ‘전초 기지’ 같네요. 여기서부터 비로소 이 지하 미궁의 진정한 모습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 아래로…

    **하준:** (어두운 벽면에 손을 짚는다. 그의 손은 순식간에 두터운 먼지로 뒤덮인다) 이 벽… 단순한 돌이 아니군. 먼지를 털어내자 보이는 질감이… 마치 살아있는 금속 같아. 표면이 차가운데도 묘한 진동이 느껴져.

    **유나:** (재빨리 하준에게 다가와 벽면에 자신의 스캐너를 댄다) 인공합성 광물이에요. 고대 기록에 언급된 ‘어둠의 심장석’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특성이 있다고 전해지죠.

    **하준:** (눈을 반짝이며, 손바닥으로 벽면을 지그시 누른다) 에너지? 그렇다면… 이 거대한 공간 전체를 움직이는 동력원이 여기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군. 이 모든 장치를 움직일 만큼 엄청난 에너지원 말이야.

    [장면 3]

    **배경:** 하준이 벽면을 따라 손으로 더듬거리자, 그의 손가락 끝이 닿은 부분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인다. 먼지에 덮여 있던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을 받아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치 잠자던 신경망이 깨어나는 듯한 모습이다. 유나가 놀란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유나:** (숨을 들이쉬며,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린다) 하준 씨! 손을 떼지 마세요! 저 문양들은… 에너지 흐름을 제어하는 제어판이에요! 함부로 조작하면…

    **하준:** (피식 웃으며,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손바닥을 벽에 완전히 밀착시킨다) 오호라. 내가 뭘 건드린 거지? 뭔가 반응이 오는 걸 보니, 제대로 짚었나 보네.

    **유나:** (급하게 홀로그램 지도를 확대한다) 이 문양들의 조합은… 특정 주파수와 공명하는 트리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시스템을 과부하시키거나, 예측 불가능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요! 제게 좌표를 주세요, 제가 패턴을 분석할게요!

    **하준:** (빙글빙글 웃으며, 고개를 흔든다) 과부하? 뭐, 터지면 터지는 거지! 그래도 여태껏 꽝은 없었잖아? 직감은 배신하지 않아.

    **유나:** (기어이 한숨을 쉰다. 그녀의 표정에는 체념과 불안감이 섞여 있다) 하… 제발 한 번이라도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장면 4]

    **배경:** 유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준이 손을 움직여 벽면의 다른 문양을 건드린다. 그러자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더니, 석실 바닥 전체에 복잡한 회로도 같은 빛의 선들이 번개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웅장한 기계음이 저음으로 깔리며 공간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한다. 천장에서 미세한 먼지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하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환희에 찬 표정으로) 오, 이런! 뭔가 제대로 시작된 것 같군!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어!

    **유나:** (당황한 목소리로 외친다) 시스템이… 깨어나고 있어요! 이 속도라면…!

    **배경:** 그들이 서 있던 바닥 중앙에서, 거대한 원형 패널이 마치 거대한 꽃잎처럼 서서히 갈라지며 아래로 내려간다. 패널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아래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수직 통로가 드러난다. 통로 저편에는 기이하게 빛나는 푸른 에너지 기둥이 아득하게 솟아오르고 있다. 그 압도적인 빛은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닿을 듯 솟아오르며, 통로 전체를 신비롭게 비춘다. 통로 양옆으로는 정교하게 설계된 부유형 플랫폼들이 수없이 많이 떠 있다.

    **하준:**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꿈인가?

    **유나:** (분석기를 떨어뜨릴 뻔한다. 그녀의 눈빛에는 경외심과 충격이 뒤섞여 있다) 이건… 고대 기록에만 존재한다고 알려졌던… ‘아르카디아의 심층부’로 향하는 통로예요! 이 모든 유적이… 단순히 숨겨진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에너지 네트워크였어요! 어쩌면 그 이상…

    [장면 5]

    **배경:** 푸른 에너지 기둥의 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통로 전체를 신비로운 푸른색으로 물들인다. 부유형 플랫폼들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며, 그들 앞에 하나의 플랫폼이 스르륵 멈춰 선다. 플랫폼 중앙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좌석이 마련되어 있다. 좌석 위에는 고대의 기호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하준:** (환희에 찬 표정으로 플랫폼을 응시한다) 우리가 드디어 이 문명을 마주하게 되는 건가! 이 모든 걸 설계하고 만든 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이루려고 했던 거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유나:** (그녀의 눈빛에 경외심과 함께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친다) 단순히 에너지를 제어하는 것만이 아니었을 거예요. 이들의 목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어쩌면… 위험했을 수도 있어요. 이 규모의 에너지를 다루는 건… 결코 평범한 일일 리 없어요.

    **하준:** (플랫폼에 올라서며, 유나에게 손을 내민다. 그의 얼굴에는 모험가의 기백이 가득하다) 위험하다고 피할 거였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지, 유나. 자, 망설일 시간 없어. 이 아래, 이 문명의 심장이 우리를 부르고 있어!

    **유나:** (하준의 손을 잡으며, 결심한 듯 눈빛을 빛낸다. 그녀의 표정에서 불안감은 사라지고 강인함이 느껴진다) 좋아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에요. 이 심장은… 죽어있었지만, 이제 다시 뛰기 시작했으니. 우리는 이 심장이 품고 있는 비밀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야만 해요.

    [장면 6]

    **배경:** 플랫폼이 천천히, 그러나 거침없이 수직 통로 아래로 하강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푸른 에너지 기둥이 격렬하게 춤추듯 빛나고, 두 사람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교차한다. 통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허공에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며 그들을 감싼다. 문자들이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이며 형태를 바꾼다.

    **하준:**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며, 떠다니는 문자들을 응시한다) 저 문자들… 무슨 뜻이야? 단순한 장식은 아닌 것 같은데.

    **유나:** (문자들을 집중해서 읽으려 애쓴다.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인다) 아직 해독하기엔 정보가 부족해요… 하지만… 단편적으로 보이는 문장들이… 마치 경고처럼 느껴지네요. ‘잊혀진 것은… 다시 깨어나리라…’. ‘잠든 자의 꿈이… 현실이 될 때…’.

    **배경:** 플랫폼은 더욱 깊숙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심층부의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 중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에너지 파동이 두 사람의 전신을 뒤흔든다. 빛과 어둠이 뒤섞인 통로 끝, 거대한 장치 중앙에서 섬광이 번쩍인다. 너무나 강렬해서 두 사람은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 그 빛에 두 사람의 모습이 휩싸이며 사라진다.

    **내레이션 (유나의 목소리):** 우리는 그 심장을 깨웠다. 하지만 그 심장이 무엇을 품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깨어난 것은… 그저 잠들어 있던 유적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에피소드 끝]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3장: 월광 아래 피어난 금기

    밤은 깊었고, 은하수는 까만 비단에 수놓은 보석처럼 영롱하게 빛났다.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월령계곡(月靈溪谷)’은 달빛 아래 더욱 몽환적인 자태를 뽐냈다. 계곡 깊은 곳, 천 년 묵은 신목(神木)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그 아래서는 밤에만 피어나는 월광화(月光花) 무리가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며 신비로운 향기를 흩뿌리고 있었다.

    청운은 숨을 죽인 채 계곡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아래 사각거리는 낙엽 소리마저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단 한 번도 이처럼 심장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온몸의 혈관을 타고 뜨거운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이것은 단순히 만남에 대한 설렘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그녀 사이에 드리워진 거대한 장벽, 종족과 운명의 무게가 매 순간 그의 숨통을 조여 왔다.

    “하은아….”

    그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흩어졌다. 하지만 이미 그를 기다리던 그림자는 번개처럼 움직였다. 희미한 달빛 아래, 월광화의 영기를 머금은 듯 청초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옥색 비단을 두른 듯한 우아한 자태,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 깊은 눈망울. 그녀는 바로 월광화의 정령, 하은이었다.

    “청운님….”

    하은의 목소리는 월광화의 향기처럼 부드러웠으나,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려 청운을 맞이했고, 청운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서로의 온기가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금기와 불안이 잠시 사라지는 듯했다. 그들은 숱한 밤을 이렇게 몰래 만나 사랑을 속삭였지만, 단 한 번도 이 만남이 익숙해진 적은 없었다. 매번 첫 만남처럼 애틋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늦어서 미안하오. 오시는 길에 감시가 좀 많았소.” 청운이 그녀의 머리칼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그의 선력(仙力)이 자신도 모르게 하은의 가녀린 몸을 감싸 안았다.

    하은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오시기만 하면 돼요. 혹시… 무슨 일은 없으셨죠?” 그녀의 불안한 시선이 청운의 얼굴을 살폈다.

    “별일 아니오. 그저 내가 조금 더 신중해야 했을 뿐.” 청운은 애써 미소 지었지만, 그의 표정에는 미세한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오늘 밤, 그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감시의 시선을 느꼈다. 인간 세상의 고수들이나 심지어 선계의 기척마저 섞여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은 채,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위태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는 하은의 손을 잡고 월광화가 가장 밀집해 피어 있는 신비로운 숲 속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푸른빛이 그들의 길을 밝히고, 달빛이 신비롭게 춤추는 그곳에서 그들은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었다.

    “이 꽃들을 볼 때마다 당신이 생각나요.” 청운이 손가락으로 월광화의 꽃잎을 가만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어둠 속에서 가장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 그리고 가장 순수한 영혼.”

    하은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청운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 모든 것이 제 세상의 전부였어요. 밤에만 피어나는, 한정된 세상… 하지만 청운님을 만난 후, 저는 비로소 낮의 빛을 꿈꾸게 되었어요.”

    그녀의 말에 청운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인간과 정령. 결코 섞일 수 없는 두 종족의 경계선. 선계의 법도와 월광화 종족의 율법은 그들의 사랑을 ‘금기’라 명명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의 관계가 발각된다면, 청운은 선계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고, 하은은 소멸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사랑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뿌리 깊은 월광화가 밤마다 꽃을 피우듯, 그들의 영혼 깊숙이 새겨진 사랑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과도 같았다.

    정적이 흘렀다. 아름답고도 슬픈 침묵 속에서, 문득 싸늘한 기운이 그들을 덮쳤다. 월령계곡의 신비로운 기운을 뚫고 들어오는, 이질적이고도 압도적인 선력(仙力)이었다. 청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하은아, 물러서시오!”

    그의 경고가 채 끝나기도 전에, 숲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청운의 키를 훌쩍 넘는 장대한 체구, 매서운 눈빛은 마치 밤의 맹수 같았다. 월광화 종족의 원로이자 수호자, 칠선(七仙)이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고,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하은을 향해 있었다.

    “이 어리석은 것! 감히 월광화 종족의 율법을 어기고, 인간과 밀회하다니!” 칠선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숲을 울렸다. 그의 말 한마디마다 주변의 월광화들이 미세하게 떨며 푸른빛을 더욱 강하게 발했다. “네가 감히 무슨 짓을 저지른 줄 아는가! 네 영혼이 소멸하는 것은 물론이요, 월광화 종족 전체에 피바람을 몰고 올 수도 있는 일이다!”

    하은은 겁에 질린 채 청운의 등 뒤로 숨었다. 그녀의 작은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

    “칠선 어르신!” 청운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하은을 가렸다. “부디 화를 가라앉히시고 제 이야기를….”

    “닥쳐라, 인간!” 칠선이 손을 쳐들자, 거대한 선력이 숲을 뒤흔들었다. 주변의 나무들이 비틀거리고, 월광화의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미천한 인간 주제에 감히 월광화의 순수한 영혼을 더럽히다니! 네놈의 존재 자체가 월광화 종족에게는 불경이다!”

    칠선의 눈에서 섬뜩한 빛이 번쩍였다. 그는 청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강력한 기운이 쇄도하며 청운을 압박했다. 청운은 재빨리 검을 뽑아 막았으나, 칠선의 선력은 그의 상상을 초월했다. 강렬한 충격파가 온몸을 강타했고, 청운은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손에서 검이 미세하게 떨렸다.

    “어르신! 부디 이러지 마십시오! 이 사랑은 죄가 아닙니다!” 하은이 청운의 뒤에서 외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죄가 아니라니! 너의 존재 자체가 금기임을 잊었느냐! 넌 월광화 정령 중에서도 가장 순수한 영기를 타고났으며, 미래의 종족을 이끌어갈 영매(靈媒)가 될 몸! 그런 네가 감히 이런 더러운 짓을 하다니!” 칠선은 격분했다. 그의 육체가 월광화의 영기를 흡수하며 더욱 거대해지는 듯했다.

    “더럽다니… 이 사랑은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닙니다!” 청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저와 하은의 마음은 하늘도 땅도 갈라놓을 수 없는 진실된 것입니다! 어르신께서 아무리 막으려 하셔도, 저희의 영혼은 이미 하나로 묶였습니다!”

    “건방진 인간! 네놈이 감히 월광화의 율법에 대해 논하다니!” 칠선은 더 이상 인내심을 잃은 듯했다. 그의 주먹에서 푸른빛의 선기가 뿜어져 나오며 청운을 향해 날아들었다. 월령계곡 전체가 그 선력의 폭풍에 휘말리는 듯했다.

    청운은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자신의 모든 선력을 끌어모아 방어막을 형성했지만, 그의 힘으로는 칠선의 공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 없을 것이 자명했다. 이대로라면 하은마저 위험해질 터였다.

    그 순간, 청운의 등 뒤에 있던 하은의 몸에서 강렬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월광화의 모든 정수가 그녀에게로 모여드는 듯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오묘한 보라색으로 변하며, 손끝에서 순수한 영기의 파동이 솟아올랐다.

    “청운님을 다치게 하지 마세요!”

    하은이 외치자,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온 월광화의 영기가 칠선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냈다.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숲 전체가 뒤흔들렸다. 칠선의 공격과 하은의 영기가 충돌하며 거대한 빛줄기가 하늘로 치솟았다. 청운은 하은의 영기 뒤에 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충격파에 몸이 크게 휘청였다.

    칠선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하은의 영기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순수하고 강력했다. 어린 정령에 불과한 하은이 그 정도의 힘을 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은! 네가 감히 나에게 대적하다니!” 칠선은 더욱 격분했다. 하지만 그의 공격은 하은의 월광화 영기에 가로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하은은 온몸을 던져 청운을 보호하고 있었다.

    “어르신께서는 이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이 영혼이 소멸하더라도, 청운님과 함께한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하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는 그 어떤 바위보다도 견고했다.

    칠선은 하은의 눈에 어린 비장함과 결연함에 잠시 멈칫했다. 저토록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가, 고작 한 인간 때문에 이토록 강력한 의지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그의 심장이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곧 이성과 율법의 무게가 그를 다시금 굳건하게 만들었다.

    “어리석은 것… 이대로는 모두가 파멸할 뿐이다. 이번만은 용서하지 않겠다!” 칠선이 다시금 강력한 선력을 끌어모았다. 이번에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결의에 찬 공격이 느껴졌다.

    청운은 하은의 손을 꽉 잡았다. “하은아…!”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버틴다면 둘 모두 파멸할 것임을. 어쩌면 도망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도망친다고 해서 이 금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칠선의 거대한 선력이 다시 한번 그들을 향해 쏟아지기 직전, 청운은 하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를 놓지 않을 것이오.” 그의 눈빛은 굳건했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사랑과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월광화의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타올랐다. 이 숲 속에서, 금지된 사랑은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운명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칠선의 압도적인 선기가 그들을 삼키기 직전이었다. 이 밤, 월령계곡의 비밀은 또 하나의 비극으로 끝이 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희망의 씨앗을 품게 될 것인가.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그들의 운명은 절벽 끝에 서 있었다.

  • 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망한 프리랜서 고고학자의 고군분투

    “망했다.”

    서울 변두리, 낡은 오피스텔의 비좁은 원룸 한구석에서 한가람은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다. 곰팡이 핀 벽지에는 큼직한 세계 지도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색 마커로 알 수 없는 점들이 빼곡했다. 그 점들은 죄다 ‘가람이의 발굴 프로젝트(망함)’라는 비극적인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이번 달 월세도 밀렸는데….”

    그녀의 눈앞에는 온갖 고문헌과 지도, 발굴 보고서들이 엉망진창으로 쌓여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리랜서 고고학자의 길을 걷겠다고 야심 차게 선언했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의뢰는커녕 관심조차 받기 힘든, 한물간 전설이나 파고드는 백수 신세였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한가람의 시선이 머문 곳은 낡은 태블릿 화면이었다. ‘한반도 고대 문명 재발견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의 크라우드 펀딩 페이지. 현재 모금액은 ‘0원’이었다. 좋아요는 딱 하나, 그녀 스스로 누른 것이었다.

    “젠장, 내가 이럴 줄 알고 고구마 캐기 알바도 했지.”

    어제 발굴 현장에서 고구마를 캐다 온 여파로, 온몸이 쑤셨다. 고고학자의 ‘고’ 자도 꺼내기 민망한 신세였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누구도 믿지 않는, 그러나 심장이 쿵쿵 뛰는 비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한반도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다는 전설의 지하 유적, ‘비밀의 심장’이었다. 고문헌 속에서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기록과 지도 조각들을 수십 년간 쫓아온 결과, 그녀는 확신했다.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그곳에 엄청난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이라고.

    “음? 이게 뭐지?”

    좌절감에 빠져 멍하니 태블릿 화면을 넘기던 중, 그녀의 눈에 낯선 이메일 하나가 들어왔다. 발신자는 ‘고미술협회 익명 제보’. 평소 스팸메일로 가득한 메일함에 이런 제목은 흔치 않았다.

    [제목: 귀하의 연구에 관심을 표합니다.]
    [내용: 한가람 고고학자님, 귀하의 ‘비밀의 심장’ 연구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흥미롭군요. 며칠 뒤 열릴 고미술 경매에 참고할 만한 유물이 나올 예정이니, B동 7층 보관소의 ‘초본 27번’ 자료를 확인해 보십시오. 단, 그 자료는 이미 ‘류진하’ 박사가 열람 예약한 상태입니다. 신중을 기하십시오.]

    “류진하?”

    한가람의 미간이 순간 찌푸려졌다. 류진하. 그 이름은 고고학계의 별이자, 그녀와는 극과 극의 인생을 사는 남자였다. 젊은 나이에 최고 명문 대학교의 최연소 교수가 되었고, 유력 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스타 학자. 학계에서 그의 말 한마디는 법이었고, 그의 손길이 닿는 유물은 곧 국보급으로 격상되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비밀의 심장’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유사 고고학’이라며 코웃음 치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왜 ‘초본 27번’을 예약했을까?

    “설마… 나랑 같은 걸 노리는 건 아니겠지?”

    한가람은 류진하가 그 유적에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오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초본 27번’이 대체 무엇이기에, 익명의 제보자는 하필 그를 언급했을까? 궁금증이 그녀의 가슴을 쿵쿵 두드렸다.

    “좋아, 한번 가보자! 내 밥줄이 걸린 문제라고!”

    월세도 밀린 신세였지만, 잃을 것 없는 그녀에게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그녀는 며칠 만에 고물 스쿠터를 타고 고미술협회 건물로 향했다. 협회 건물은 으리으리했다. 유리와 철골로 이루어진 현대적인 건물은, 그녀의 낡은 티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차림과는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저… 초본 27번을 열람하고 싶어서요.”

    B동 7층, 고미술협회 보관소는 고요하고 엄숙했다. 쾌적한 온도와 습도 조절 시스템 속에서 수많은 고문헌과 유물들이 잠들어 있었다. 담당 직원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약하셨습니까? 초본 27번은 류진하 교수님께서 이미 오늘 열람 예약하셨습니다만.”

    “아, 네! 알고 있습니다. 그전에 잠시… 혹시 제가 미리 좀 볼 수 있을까요? 아주 잠깐이면 되는데….”

    한가람은 애써 싹싹한 미소를 지으며 부탁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제발, 제발.

    “규정상 어렵습니다. 류 교수님은 곧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철벽이었다. 한가람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역시, 세상은 류진하 편이었다. 괜히 익명 제보를 믿고 이 비싼 교통비를 들여 온 게 후회스러웠다.

    그때, 등 뒤에서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예약한 자료를 기다리는 중이신가 봅니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소리. 한가람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바로 그 남자였다. 류진하.
    그는 완벽하게 재단된 고급 수트를 입고, 흐트러짐 없는 머리칼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 있었다. 마치 방금 화보 촬영을 끝내고 온 듯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쨍한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은 더욱 빛이 났다. 재수 없게 잘생겼다는 말이 딱 어울렸다.

    한가람은 너무 놀란 나머지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왈칵 쏟을 뻔했다. 컵을 움켜쥐다 그만 손이 미끄러졌다.

    “어어…!”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그의 반짝이는 구두 위로, 그리고 완벽한 수트 바지 위로 촤아악 쏟아졌다.

    순간, 보관소 안에 정적이 흘렀다. 담당 직원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고, 류진하의 완벽했던 얼굴에는 싸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한가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망했다. 이번에는 정말 망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너무 놀라서….”

    한가람은 허둥지둥 손수건을 꺼내려고 했지만, 주머니에는 손수건 대신 구겨진 영수증과 낡은 사탕 껍질만 나왔다. 그녀는 더듬더듬 휴지를 찾았다.

    류진하는 차가운 시선으로 자신의 젖은 바지를 내려다봤다. 커피는 그의 발목을 타고 흘러 구두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 비싼 구두에. 그리고 이 명품 수트에.

    “괜찮으십니까, 교수님!” 직원이 호들갑을 떨며 달려왔다.

    류진하는 고개를 들어 한가람을 응시했다. 그의 눈동자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이상하게도 깊은 곳에 묘한 흥미가 스치는 듯했다.

    “한가람 씨… 맞으시죠?”

    그의 목소리는 낮고 위압적이었다. 한가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니. 나름 학계의 이단아로 알려진 덕분인가? 아니면 오늘 일을 미리 보고받았나?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네, 네. 맞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탁비는… 아니, 새 구두라도 사드릴게요!”

    그녀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그러나 그의 입가에 비스듬한 조소가 걸렸다.

    “구두는 됐습니다. 그보다… 제가 예약한 자료를 미리 보려 했다고 들었는데.”

    류진하의 시선은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한가람은 움찔했다.

    “그게 아니라… 저도 봐야 할 중요한 자료라서요. ‘비밀의 심장’에 대한 단서일 수도 있거든요!”

    그녀는 애써 당당하게 말했다. 류진하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비밀의 심장이라… 여전히 그런 허무맹랑한 연구를 하시는군요. 전 또 다른 건 줄 알았는데.”

    비웃음이었다. 한가람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남자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열정을 조롱하고, 그녀의 연구를 무시했다.

    “허무맹랑하다니요! 교수님이야말로 왜 제보받은 자료를 보러 오셨습니까? ‘초본 27번’에 ‘비밀의 심장’ 단서가 있다는 말에 오신 것 아닙니까?”

    그녀는 발끈했다. 류진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순간 그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스쳐 지나갔지만, 이내 냉정함을 되찾았다.

    “제보? 저는 그저 이 경매에 나올 유물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러 온 것뿐입니다. 한가람 씨처럼 ‘있지도 않은’ 전설에 매달리는 시간 낭비는 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리고 직원에게 말했다.

    “초본 27번을 준비해 주십시오. 그리고… 여분의 수트를 부탁드립니다.”

    그는 한가람에게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돌아서서 보관실 입구로 걸어갔다. 한가람은 그제야 직원의 눈총을 받으며 문밖으로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억울함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젠장, 저 재수 없는 인간! 꼭 내가 먼저 ‘비밀의 심장’을 찾아서 코를 납작하게 해줄 거야!”

    그녀는 고미술협회 건물을 벗어나며 주먹을 꽉 쥐었다. 비록 오늘은 완벽한 패배였지만, 그녀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오히려 류진하라는 예상치 못한 라이벌의 등장은 그녀의 심장에 다시 불을 지폈다.

    “초본 27번… 분명 뭔가 있을 거야.”

    그녀는 익명 제보자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류진하의 마지막 표정. 그 미세한 흔들림이 그녀의 촉을 자극했다. 그는 ‘비밀의 심장’에 관심이 없는 척했지만, 분명 무언가 숨기고 있었다.

    한가람은 고물 스쿠터에 올라탔다. 기름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이제 방향을 알았다.

    “그래, 바로 여기야! 이번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그녀는 낡은 태블릿에 저장된 지도 조각을 다시 한번 확대했다. 익명 제보자의 메일을 토대로, 그리고 류진하의 수상한 행동을 근거로, 그녀는 ‘초본 27번’이 가리키는 곳을 추측했다. 지도의 한 지점에 붉은색 마커로 힘주어 표시했다.

    그곳은, 지도상으로는 폐쇄된 국립공원 부지이자, 구불구불한 산맥 깊숙이 숨겨진, 아무도 발길 닿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 이번에는 기필코 ‘비밀의 심장’을 찾아내고 말겠어! 그리고 류진하, 그 빌어먹을 재수 덩어리에게 내 실력을 보여줄 기회도 될 거야! 한가람의 눈빛이 활활 타올랐다. 그녀의 심장이, 꺼져가던 불씨가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달랑 2만 원이 전부였지만, 그녀는 이미 모험을 시작하고 있었다.

    낡은 스쿠터의 엔진이 굉음을 내며 시동을 걸었다. 한가람은 거친 바람을 맞으며 도시를 벗어나 산속으로 향했다. 그녀의 뒤로는 어둠이 깔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그 어느 때보다 빛나고 있었다.

  • 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낡은 조종석에 몸을 우겨넣은 카이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눅눅한 습기와 기름때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도, 그의 눈은 전면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밤하늘을 등진 채 거대한 그림자처럼 서 있는 제국군 보급기지. 희미하게 깜빡이는 감시등들이 마치 거인의 눈동자처럼 섬뜩하게 느껴졌다.

    “카이, 들리나? 침투 경로 확보됐다. 전방 300미터 지점, 제7감시탑 사각지대.”
    무전기 너머 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차분하지만, 그 속에는 얼음장 같은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미라는 이 반란군의 두뇌였다. 폐기된 제국군 통신 장비를 엮어 만든 그녀의 통신망이 없었다면, 우리는 진작에 제국의 발톱에 찢겨 죽었을 것이다.

    “확인. 시야는 양호. 다만… 저 망할 ‘강철 거인’들이 문제야.”
    카이의 손가락이 조종간 위에서 가볍게 떨렸다. 창밖으로 언뜻 보이는 제국군 표준형 강철 거인의 실루엣. 저 육중한 장갑과 위압적인 포탑은, 우리 ‘야수’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살상력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야수’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더미에서 부품을 긁어모으고, 버려진 잔해를 용접해서 겨우 가동시키는 기체들이었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보급품은 반드시 확보해야 해. 더 이상 버틸 식량이 없어. 연료도 바닥이고.”
    미라의 목소리에 일말의 흔들림이 감지됐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었다. 지난달, 제국군에 의해 아지트가 발각되면서 우리는 겨우 몸만 피신해야 했다. 남은 건 폐허가 된 보급창과 굶주린 동료들뿐. 이번 임무는 생존 그 자체와 직결되어 있었다.

    “걱정 마. 늘 해오던 대로 처리할게.”
    카이는 애써 가벼운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 모든 상황이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매번 임무에 나설 때마다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의 기체 ‘밤도깨비’의 낡은 조종석에 그를 묶어두고 있었다.

    **위이잉-**

    야수 특유의 엔진음이 낮게 울렸다. 조용히, 그림자처럼 보급기지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기체에 덕지덕지 붙은 녹슨 장갑들이 덜컹거렸지만, 훈련된 카이의 조종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그는 이 폐품 같은 기체를 제 몸처럼 다룰 수 있었다.

    “전방 11시 방향, 제국군 순찰조다. 강철 거인 한 대, 지원 병력 셋.”
    미라의 경고가 귓가를 스쳤다. 카이의 눈이 스크린 위로 빠르게 움직였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보이는 제국군 강철 거인의 둔중한 움직임. 저들은 매뉴얼대로 움직이는 기계였다. 예측이 가능했다.

    “잠시 매복. 그림자 지역으로.”
    카이는 기체를 능숙하게 나무들 사이로 숨겼다. 울퉁불퉁한 외형이 주변의 덤불과 어우러져 완벽한 위장막을 형성했다. 야수들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제국군의 정교함에 비해 투박하고 거칠지만, 그만큼 지형에 대한 적응력이 높고 기습에 특화되어 있었다.

    **쿠우우웅… 쿠우우웅…**

    강철 거인의 발소리가 땅을 울렸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다가오는 듯한 진동이 조종석까지 전해졌다. 카이는 숨을 죽였다.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강철 거인의 육중한 다리가 마치 자신을 밟아버릴 것만 같았다. 스크린에 가깝게 다가온 제국군의 문양이 섬뜩하게 빛났다. 독수리가 발톱으로 세계를 쥐고 있는 듯한 문양. 제국을 상징하는 문양이었다.

    “지나간다… 좋아.”
    미라의 안도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카이는 조용히 기체를 움직였다. 목표 지점까지 이제 절반. 하지만 방심할 수 없었다. 이 보급기지는 미로 같았다.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그대로 제국군의 덫에 걸릴 수도 있었다.

    “좌측으로 크게 돌아가. 경비가 약한 후방 통로를 이용해야 해.”
    “알았어.”
    카이는 미라의 지시에 따라 기체를 회전시켰다. 그때였다.

    **삐이이이-!**

    날카로운 경보음이 조종석을 가득 채웠다.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스크린에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였다.
    ‘탐지됨! 적 감지!’
    어떻게?! 카이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완벽한 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카이! 도망쳐! 제국군 강철 거인 셋이 너를 포위했다!”
    미라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찢어졌다. 스크린에는 이미 세 대의 강철 거인이 자신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거대한 포신들이 섬뜩하게 빛났다.
    젠장, 신형 탐지기인가?!

    “젠장, 젠장! 빌어먹을!”
    카이는 무의식적으로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밤도깨비’는 급하게 기수를 틀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콰아앙!**

    섬광이 터졌다. 충격이 기체를 강타했다. 낡은 장갑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조종석이 흔들리고, 스크린이 지지직거리며 일그러졌다.
    “크윽!”
    카이는 비명과 함께 몸을 웅크렸다. 팔뚝에 박힌 파편들이 따끔거렸다. 고통보다 더 큰 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아니, 여기서 죽으면 동료들은…

    “카이! 정신 차려! 3번 기체 다리 쪽에 균열이 보인다! 약점이야!”
    미라의 목소리가 찢어질 듯 날카롭게 박혔다. 카이는 고통을 참고 스크린을 노려봤다. 일그러진 화면 너머로, 자신을 공격한 강철 거인의 다리 부분에 희미하게 균열이 보였다. 저건… 낡은 부품을 재활용한 흔적. 제국군도 완벽한 기체만 쓰는 건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래… 좋아!”
    카이의 눈이 번뜩였다. 죽기 살기로 덤비는 쥐가 고양이를 물 수도 있다는 걸, 제국 놈들에게 보여줘야 했다. ‘밤도깨비’는 이대로 죽을 수 없었다.

    **위이잉- 콰아앙!**

    카이는 기체의 모든 출력을 다리 균열을 향해 쏟아부었다. ‘밤도깨비’의 주무장인 구형 플라즈마 캐논이 굉음을 내며 불을 뿜었다. 낡은 캐논은 이미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지만, 지금만큼은 마지막 힘을 짜냈다.

    **쉬이이이잉-! 콰콰쾅!**

    플라즈마탄이 정확히 강철 거인의 다리 균열에 명중했다. 약점을 파고든 공격은 예상 이상의 피해를 입혔다. 금속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강철 거인의 육중한 다리가 비틀거렸다. 거대한 기체가 균형을 잃고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명중이다! 잘했어 카이!”
    미라의 희망 섞인 외침이 들렸다. 하지만 기뻐할 틈도 없었다. 남은 두 대의 강철 거인이 더욱 거세게 공격을 퍼부어왔다. 레이저 포탄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젠장, 둘 다 나를 노려!”
    카이는 필사적으로 기체를 움직였다. 낡은 야수는 기합이라도 하는 듯 삐걱거렸다. 좁은 보급기지 안, 빽빽하게 들어선 컨테이너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집고 들어갔다. 제국군 강철 거인들은 육중한 덩치 때문에 좁은 공간에서 기동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것이 카이가 노리던 점이었다.

    “미라! 후퇴 경로 있나?! 이대로는 포위될 거야!”
    “지금… 통로를 검색하고 있다! 버텨줘 카이!”
    스크린이 연신 붉은색 경고를 뿜어냈다. ‘밤도깨비’의 장갑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언제 기능이 정지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멈추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동료들의 굶주린 눈빛, 이 제국에 짓밟힌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푸슉- 콰직!**

    갑자기 ‘밤도깨비’의 한쪽 팔 부분이 무언가에 걸렸다. 강철 거인의 거대한 손이 ‘밤도깨비’의 팔을 붙잡은 것이었다.
    “젠장! 잡혔어!”
    육중한 힘에 기체가 들렸다. 낡은 기체는 힘없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다른 강철 거인의 포신이 자신을 향해 빠르게 조준되는 것이 보였다. 이제 끝인가.

    그때였다.
    “카이! 오른쪽 3시! 탈출 경로 발견!”
    미라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외쳤다. 카이의 눈은 순간적으로 빛났다. 오른쪽 3시 방향, 컨테이너들이 엉망으로 쌓여 있는 사이로 겨우 기체 한 대가 빠져나갈 만한 틈이 보였다. 저곳으로!

    “놓치지 않을 거야!”
    카이는 있는 힘껏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밤도깨비’의 팔을 잡고 있던 강철 거인이 움찔했다. 카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모든 출력을 팔다리로 돌려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낡은 기체에서 삐걱거리는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아아앙!**

    결국 잡혀 있던 팔 부분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밤도깨비’는 강철 거인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그 대가는 컸다. ‘밤도깨비’의 한쪽 팔이 너덜너덜하게 뜯겨 나간 것이다. 조종석에 경고등이 미친 듯이 울렸다.

    “젠장! 팔이…!”
    “상관없어! 당장 빠져나와! 다른 강철 거인들이 널 향해 달려오고 있어!”
    미라의 목소리는 카이를 재촉했다. 팔이 뜯겨나가면서 균형을 잡기 어려웠지만, 카이는 이를 악물고 기체를 좁은 틈새로 밀어 넣었다. 거대한 강철 거인들은 좁은 틈을 통과하지 못하고, 그저 레이저만 쏘아댈 뿐이었다.

    **쉬이이잉- 콰앙!**

    기체 뒤쪽에서 폭발음이 연이어 터졌지만, ‘밤도깨비’는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좁은 통로를 벗어나자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보급기지의 외곽, 하지만 그곳은 마치 버려진 공장 지대처럼 낡고 녹슨 건물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딩-딩-딩-!**

    새로운 경고음이 조종석을 가득 채웠다. 이번에는 ‘미확인 기체 감지’라는 문구였다.
    카이는 숨을 들이켰다. 저건 또 뭐야?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군의 강철 거인과는 다른, 훨씬 더 거대하고 위압적인 실루엣. 등에는 거대한 포대가 달려 있고, 육중한 다리가 마치 전차의 궤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저건… 제국군에서도 극소수만 운용한다는 전략 병기, ‘궤도 강습병’이었다.

    “미라! 저건…!”
    카이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보급품을 훔치러 온 침투 임무에, 저런 괴물이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젠장… 카이… 도망쳐! 저건 네가 상대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미라의 목소리가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궤도 강습병의 거대한 포대가 느리지만 확실하게 ‘밤도깨비’를 향해 조준되기 시작했다.
    카이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거대한 뱀에게 홀린 작은 생쥐처럼, 공포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거대한 포신이 섬뜩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굉음과 함께 섬광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핏물 든 그림자 아래, 첫 속삭임

    어둠이 제국의 낡고 거대한 수도, 벨리우스의 골목을 집어삼키는 시간이었다. 기름 냄새와 썩은 과일 냄새가 섞인 습한 공기가 숨통을 조였다. 검은 비가 며칠째 내린 탓에 골목 바닥은 끈적한 진흙으로 변했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황궁 시계탑의 음울한 종소리는 고통받는 이들의 절망처럼 축축하게 퍼져나갔다.

    진우는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리운 허름한 선술집 뒤편 벽에 등을 기댔다. 낡은 누더기 옷은 축축하게 몸에 달라붙었지만, 그는 추위보다 날카로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의 곁에는 그와 같은 처지의 그림자들이 여러 명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

    “제국 놈들이 오늘 밤도 순찰을 돌았다지.”

    낮고 거친 목소리가 어둠을 찢었다. 강 노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깊게 파인 주름으로 가득했고, 숱 없는 백발은 비에 젖어 더욱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빛만큼은 이 도시의 어떤 젊은이보다도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진우에게 작은 쇳덩어리를 건넸다. 녹슨 칼날이었다.

    “열흘 전, 펠라 마을에서 가져온 놈들이다. 대장간 놈들이 갈고 닦긴 했다만, 녹이 슨 마음까지 닦아줄 수는 없겠지.”

    진우는 쇳덩어리를 받아들었다. 차가운 금속이 손안에서 묵직하게 느껴졌다. 이것 하나로 거대한 제국에 맞설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이 작은 칼날들이 없다면, 그들은 영원히 짐승처럼 살다 죽을 뿐이었다.

    저 멀리, 황궁의 첨탑들이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었다. 그곳은 인간의 손으로 지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거대한 암흑이었다. 까마득한 높이, 기묘하게 뒤틀린 듯한 건축 양식, 그리고 햇빛마저 삼키는 듯한 검은 돌들은 늘 진우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황궁의 가장 높은 첨탑에서 푸르스름한 섬광이 번뜩이는 것을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그 빛은 벨리우스 전역에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고, 다음 날이면 언제나 광기 어린 사건들이 벌어지곤 했다.

    “오늘은 소득이 없었어. 황궁 감시병들의 경계가 더욱 삼엄해졌다.”

    한 젊은이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어제도 여섯 명이 잡혀갔다더군. 광장에서 목이 잘렸어. 제국 놈들은 우리가 그저 벌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다른 이가 덧붙였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체념이 스며 있었다. 제국은 백성들을 쥐어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백성들의 영혼마저 짓밟고,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들었다. 지난 수백 년간, 이 거대한 제국은 온 대륙을 무릎 꿇리고, 수많은 왕국과 문명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들의 이름은 공포 그 자체였다.

    진우는 차오르는 분노를 억눌렀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우리는 벌레가 아니다. 놈들이 잊고 사는 모양인데, 벌레도 한데 모이면 뱀을 찢어 죽일 수 있지.”

    강 노인이 혀를 찼다. “뱀? 이 제국은 뱀 정도가 아니다, 진우. 놈들은… 아니, 놈들의 뿌리는 우리가 알던 그 어떤 생명체와도 다르다.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 제국의 시조는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기어 올라온 무언가와 피를 섞었다고.”

    진우는 강 노인을 쳐다봤다. 그런 이야기는 많았다. 제국의 황제들은 수천 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소문도 있었고, 황궁 깊은 곳에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는 끔찍한 형상의 존재가 잠들어 있다는 속삭임도 있었다. 벨리우스의 주민들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꿈속에서 검고 거대한 촉수가 도시를 휘감고,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주문이 귓가를 맴돈다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그것은 단순한 악몽이 아니었다. 밤마다 황궁 첨탑에서 번뜩이는 섬광처럼, 도시 전체를 덮치는 차가운 진실의 편린이었다.

    “놈들의 힘은 단순한 군사력이나 마법이 아니라는 뜻이오, 노인장?” 진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깊은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강 노인은 진우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 깊고 무거웠다. “녀석들은… 우리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을 빌려 이 모든 것을 유지하고 있다. 황궁의 그 검은 돌들은 단순히 단단한 게 아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듯, 이 도시의 모든 비명과 절규를 흡수하고 있지. 그리고 흡수된 모든 것은…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온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멀리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제국 병사들의 발자국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저놈들이다! 잡았다!”

    진우와 동료들은 일제히 몸을 숙였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제국 병사들이 등불을 들고 골목을 샅샅이 뒤지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들의 눈빛은 매섭고 냉혹했다. 놈들은 무고한 이들을 잡아가는 것을 스포츠처럼 즐겼다.

    “강 노인,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진우가 낮은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손에 든 쇳덩어리 칼날이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놈들은 우리를 밟아 죽일 것이다. 심연의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든, 악마와 계약을 했든 상관없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을 것이다.”

    강 노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주름진 눈가에 이채가 서렸다. “결국 때가 왔군. 좋다. 계획대로 움직여라.”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불안에 흔들리지 않았다. 차오르는 분노와 결의가 그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내일 밤이다. 황궁 서쪽 벽에 있는 보급창을 노린다. 놈들이 심연의 존재에게 제물을 바치든 말든, 우리 배가 고픈 건 달라지지 않는다. 일단 식량을 확보하고, 우리의 존재를 놈들에게 알릴 것이다.”

    병사들의 발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등불의 흔들리는 불빛이 진우의 얼굴을 스쳤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나직이 속삭였다. “자, 어둠 속으로 흩어져라. 내일 밤, 우리는 심연의 그림자에 맞서 첫 번째 불꽃을 피울 것이다.”

    그림자들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진우는 마지막으로 황궁의 거대한 검은 첨탑을 올려다봤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존재가 뿜어내는 듯한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냉기가 진우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마음속에 차가운 불꽃을 지폈다.

    이 거대한 제국, 이 심연의 그림자에 맞서 우리는 인간의 나약한 불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고 그 불꽃이 언젠가 이 모든 어둠을 태워버릴 것이다. 비록 그 대가가 무엇이든 간에.

    진우는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발밑에서 빗물에 젖은 진흙이 질척거렸다. 그리고 멀리서, 황궁 첨탑의 섬뜩한 종소리가 다시 한번 밤하늘을 울렸다. 마치 이 거대한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운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알리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