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추리 미스터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천하제일 무도회】 에피소드 1: 핏빛 연무 (Crimson Haze)

    **장르:** 추리 미스터리, 무협

    **[장면 묘사]**

    **1. 거대한 전경 – 천하제일 무도회장**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수많은 관중들이 거대한 함성을 지르며 경기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깃발들이 펄럭이고,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다. 중심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낡은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주위를 십여 명의 강호 고수들이 둘러싸고 앉아 있다. 경기장 중앙의 흙먼지 흩뿌리는 원형 무대 위에서는 격렬한 대결이 펼쳐지고 있다.

    **내레이션 (이안):**
    세상은 말한다. 천하의 운명이 이곳, 천무대회에 달렸다고. 가장 강한 자가, 가장 순수한 힘을 가진 자가,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웃기는 소리. 순수한 힘? 세상을 구원? 그저 피 튀기는 살육전일 뿐. 그것도, 뭔가 뒤틀린 살육전.

    **[장면 묘사]**

    **2. 관중석의 이안**
    젊은 무인 ‘이안’. 화려하진 않지만 단정하고 견고해 보이는 검은 무복을 입고 있다. 그의 눈은 주변의 흥분과는 달리 차분하고 날카롭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무대 위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옆자리에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 노인의 손에는 닳고 닳은 나무 지팡이가 들려 있다.

    **이안 (독백):**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을 뒤로하고) 벌써 일곱 번째 이변이다. 맹목적인 승부욕에 눈이 먼 건지, 아니면… 뭔가에 홀린 건지. 저들은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싸우고 있어.

    **[장면 묘사]**

    **3. 무대 위 격렬한 대결**
    두 명의 무인이 피 튀기는 혈투를 벌이고 있다. 한 명은 거대한 대도를 휘두르는 거한 ‘벽력권 강무’. 다른 한 명은 날렵한 쾌검을 자랑하는 ‘쾌검 문시우’. 강무의 대도가 붕괴하는 바위처럼 문시우를 향해 내리찍히고, 문시우는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한다. 하지만 강무의 후려치기에 문시우의 팔을 스치고 지나가자 피가 솟구친다.

    **효과음:** 콰앙! 챙강! 푸슉! (강무의 대도가 바닥을 찍고 문시우의 팔에서 피가 튀는 소리)

    **강무:**
    크하하! 네놈의 재주가 고작 이것이더냐! 천하제일은 바로 나다! 무릎 꿇어라, 잡놈!

    **문시우:**
    (고통에 찬 신음) 컥…! (눈이 핏발 선 광기로 번뜩인다) 감히…! 감히 나를…! 이 쓰레기 같은…!

    **[장면 묘사]**

    **4. 이안의 클로즈업**
    이안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문시우의 눈빛에 비정상적인 광기가 서려 있음을 포착한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평소와는 다르다. 명백히 무리하고, 스스로의 내공을 태워버리는 듯한 기운이다.

    **이안 (독백):**
    이상해. 저건 단순한 투기가 아니야. 스스로의 내공을 불쏘시개 삼아 타오르는 광기… 마치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것처럼. 제 몸을 망가뜨리고 있어.

    **[장면 묘사]**

    **5. 문시우의 폭주**
    문시우가 갑자기 입에서 피를 토하며 온몸에서 붉은 기운을 뿜어낸다. 그의 검이 섬광처럼 빨라지고, 미친 듯이 강무를 공격한다. 평소의 쾌검과는 다른, 죽음을 각오한 듯한 맹렬함이었다. 강무는 당황한 표정으로 방어하지만, 문시우의 속도와 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되어 있다.

    **효과음:** 쉬이이익! 파아앙! 쾅! (문시우의 검이 강무의 가슴팍을 꿰뚫는 소리)

    **강무:**
    크아아아악! 말도 안 돼…! 저것은… 요마의 힘이렷다…!

    **문시우:**
    (이빨을 드러내며 섬뜩하게 웃는다) 흐흐흐… 하하하하! 난… 난 강하다!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어!

    **[장면 묘사]**

    **6. 경기장의 침묵과 술렁임**
    강무가 쓰러지고 문시우가 승리하자, 경기장은 잠시 충격적인 침묵에 휩싸였다가 이내 웅성거림과 경악으로 가득 찬다. 일부 관중은 열광하지만, 많은 이들은 방금 전의 기이한 승리에 의아함과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다.

    **관중1:**
    저건… 대체 무슨 기술인가? 너무나도… 끔찍해! 사람의 기술이 아니야!

    **관중2:**
    쾌검 문시우가 저 정도 실력이었나? 분명 몇 달 전만 해도… 어찌 저리 변했단 말인가!

    **[장면 묘사]**

    **7. 심판석의 반응**
    심판을 맡은 천무맹의 고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 그들의 표정에는 미묘한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지나간다. 특히 가장 중앙에 앉은, 백발의 노인 ‘청산도인’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난다. 그의 굳게 다문 입술은 심상치 않은 상황을 짐작하게 한다.

    **청산도인 (나지막이):**
    …점점 가속되는군. 이대로라면… 예정보다 훨씬 빨라지겠어.

    **[장면 묘사]**

    **8. 이안의 시선 – 문시우와 그 뒤의 그림자**
    문시우는 승리의 포효를 지르다 이내 휘청이며 쓰러진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붉은 기운이 스러지고, 극심한 피로감과 고통이 밀려오는 듯하다. 이안은 그가 쓰러지는 순간, 문시우의 등 뒤에서 아주 잠시, 마치 안개처럼 흐릿하게 사라지는 검은 그림자를 목격한다. 너무나도 짧고 희미해서 착각일 수도 있는 움직임이었다.

    **이안 (독백):**
    (눈을 가늘게 뜨며) 그림자…? 설마… 잘못 본 건가? 아니. 분명… 뭔가 스쳐 지나갔어. 마치 문시우를 감싸고 있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장면 묘사]**

    **9. 이안의 옆자리 노인 – 갑작스러운 기침**
    꾸벅꾸벅 졸던 노인이 갑자기 기침을 ‘콜록’하며 크게 한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큰 기침이었다. 이안은 불현듯 옆자리의 노인을 돌아본다. 노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안은 노인의 손이 짚고 있던 지팡이 끝부분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노인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잠든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이안 (독백):**
    (노인을 곁눈질하며) 저 노인… 단순한 길거리 노인은 아닌 것 같은데. 이 대회에 왜 와서 잠만 자고 있는 거지? 그리고… 지금의 기침은 단순한 기침이 아니었어.

    **[장면 묘사]**

    **10. 경기장 대형 현수막 – ‘천하제일 무도대회’**
    경기장 가장 높은 곳에 걸린 대형 현수막. ‘천하제일 무도대회’라는 힘찬 붓글씨 아래로, 고요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그림 속에는 검은 실로 묶인 듯한 형상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당하는 듯한 모습이 희미하게 비친다. 너무나 은밀하게 그려져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내레이션 (이안):**
    세상의 운명? 결국은 누군가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건 아닐까. 맹목적인 명예와 힘에 대한 욕망… 그것이 진정 이 대회의 목적을 가리고 있는 건가. 그리고… 내가 저 무대에 서게 된다면, 나 또한 그들의 그림자에 휩쓸리게 될까?

    **[장면 묘사]**

    **11. 이안의 굳은 결심**
    이안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선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욱 날카롭고 단단해져 있다. 그는 문시우가 쓰러진 무대를, 그리고 그 뒤편의 높은 귀빈석을 번갈아 쳐다본다. 그의 시선은 그 너머, 어딘가 숨겨진 진실을 향하는 듯했다.

    **이안 (결의에 찬 목소리, 독백):**
    알아내야 한다. 이 핏빛 연무 속에 숨겨진 진실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해. 이 대회가… 정말로 천하의 운명을 건 싸움이라면, 그 운명이 누구의 손에 쥐여질 것인지도.

    **[장면 묘사]**

    **12. 이안, 경기장을 떠나다**
    이안이 관중석을 빠져나와 경기장 뒷편의 어두운 복도로 향한다. 복도 끝에는 ‘참가자 대기실’이라는 팻말이 어둠 속에 가려져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내레이션 (이안):**
    대회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안의 의심 또한,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장면 묘사]**

    **13. 어둠 속의 시선**
    복도의 깊은 그림자 속에서, 붉은 눈빛이 이안의 뒷모습을 섬뜩하게 응시하고 있다. 그 눈빛은 한순간 이안에게 향했다가 이내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듯 사라진다. 마치 잘 짜여진 판 위에서 다음 말이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는 사냥꾼의 눈처럼.

    **효과음:** 스윽…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림자)

  • 스페이스 오페라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천하무림대전 (우주 협객 열전) – 제1화: 별들의 격돌

    **[장면: 우주 천하무림대전장 외경. 광활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거대한 구조물. 고대의 궁전 양식과 미래 기술이 융합된 듯, 은하수를 배경으로 황금빛과 푸른빛 에너지 장막이 섬광처럼 번뜩인다. 수많은 소행성 크기의 관람석들이 그 주위를 공전하고 있으며, 각 관람석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한 종족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내레이션:** 이 광대한 우주에서, 수많은 문명이 별처럼 피고 졌다. 셀 수 없는 생명체가 기원을 달리하며 존재했고,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를 추구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도’의 정수가 한자리에 모이는 때가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우주 천하무림대전’. 천하의 운명을 건, 별들의 격돌이었다.

    **[장면: 대전장 내부. 중앙에는 지름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원형 경기장이 펼쳐져 있다. 경기장 바닥은 신비로운 문양으로 수놓아진 에너지 실드이며, 그 아래로는 암흑 물질로 이루어진 심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십 개의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에 각 행성계에서 온 강자들의 모습이 번갈아 스쳐 지나간다. 우주 전역에서 모인 관중들의 환호성과 함성이 경기장 전체를 뒤흔든다. 거대한 심판대 위에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심판장 (거대한 빛의 존재, 우주어를 통역하는 목소리):** (우렁찬 공명음) 침묵! 모든 경계를 멈추고, ‘천하무림대전’의 서막에 귀 기울여라!

    **[장면: 심판장의 말에 관중들이 일순간 조용해진다. 홀로그램 스크린들이 일제히 빛나며 우주 지도가 펼쳐진다. 그 위로 붉은 빛의 점들이 서로를 향해 충돌하는 애니메이션이 그려진다.]**

    **심판장:** 이 대전은 단순한 힘의 겨룸이 아니다! 천 년에 한 번, 은하의 균형이 깨어질 위기에 처할 때마다 개최되는 영광스러운 의식! 승자는 ‘천하패자’의 칭호를 얻고, 우주를 위협하는 ‘심연의 어둠’을 봉인할 권능을 손에 넣으리라!

    **[장면: 관중석. 인간과 흡사한 종족부터, 수정으로 이루어진 몸, 또는 빛으로 된 형체를 가진 존재들까지, 각양각색의 관중들이 심판장의 말에 압도된 표정을 짓는다. 그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끄는 것은 검은 도포를 두른 한 무리의 인물들이다. 그들은 미동도 없이 침묵하고 있지만, 그들의 눈빛에서는 차가운 살기가 느껴진다.]**

    **심판장:** 오늘, 우리는 ‘본선 토너먼트’의 첫 번째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은하계 서쪽, ‘철혈성’의 맹주! ‘강철 비늘 기갑술’의 전승자! **제황 리칸**이다!

    **[장면: 한쪽 선수 입장 게이트가 열리고, 거대한 에너지 폭풍과 함께 한 인물이 등장한다. 그의 몸은 검붉은 강철 비늘로 뒤덮여 있으며,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주변의 공기를 일그러뜨린다. 그의 발걸음마다 경기장 바닥이 묵직하게 울린다. 관중들이 환호한다. 그의 뒤로 철혈성의 전사들이 기립하여 경의를 표한다.]**

    **제황 리칸:** (거만한 미소) 하찮은 놈들을 상대하느라 내 귀한 기력을 낭비할 수는 없지. 누가 감히 내 앞길을 막으려 하는가?

    **[장면: 심판장이 다시 입을 연다.]**

    **심판장:** 그리고 그에 맞설 도전자! 은하계 동쪽, ‘청운성’에서 온 고수! ‘태극무신류’의 계승자! **류 진**이다!

    **[장면: 반대편 선수 입장 게이트가 열린다. 아무런 효과음도, 거창한 등장도 없다. 그저 한 청년이 조용히 걸어 나온다. 그의 몸에서는 어떠한 ‘기’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옷차림은 흰색 도포 한 벌이 전부이며, 등에 매달린 낡은 목검이 유일한 무장이다. 리칸과는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모습에 관중석에서 술렁임이 인다.]**

    **류 진:** (평온한 눈빛) 류 진, 인사 올립니다.

    **[장면: 리칸이 류 진을 내려다보며 비웃는다.]**

    **제황 리칸:** 큭큭큭… 심판장 나으리, 착각하신 것 아닙니까? 저런 애송이가 감히 이 제황 리칸의 상대라고요? 벌레 한 마리가 기어 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류 진:** (미소를 지으며) 벌레라고는 하시나, 때로는 작은 벌레가 거대한 산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제황 리칸:** (눈썹을 치켜세우며) 건방진 놈! 좋다. 네놈의 오만을 부숴버리겠다!

    **[장면: 심판장이 손을 들어 올린다. 경기장 중앙에 거대한 에너지 시계가 나타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3… 2… 1…]**

    **심판장:** 자, 이제 두 고수의 대결을 시작한다!

    **[효과음: 쾅!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면: 리칸이 먼저 움직인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푸른 불꽃처럼 번쩍이며, 순식간에 류 진의 앞으로 돌진한다. 그의 거대한 주먹이 강력한 에너지를 휘감고 류 진의 머리를 향해 쇄도한다.]**

    **제황 리칸:** ‘강철 제왕권’이다! 한 방에 부서져라!

    **[장면: 류 진은 미동도 없이 서 있다가, 리칸의 주먹이 닿기 직전, 마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는 듯한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옆으로 스쳐 지나간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마치 바람이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보였다. 리칸의 주먹은 류 진이 서 있던 자리의 에너지 바닥을 강타하고, 거대한 균열이 생긴다.]**

    **[효과음: 콰아앙! (에너지 바닥이 붕괴하는 소리)]**

    **관중1:** 헉! 피했어!

    **관중2:** 저 속도! 대체 뭐지?!

    **[장면: 리칸은 당황한 듯 몸을 돌린다. 류 진은 그의 뒤에서 이미 평온한 자세로 서 있다.]**

    **제황 리칸:** 이놈! 쥐새끼처럼 빠르군! 하지만 피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장면: 리칸이 온몸의 강기를 폭발시킨다. 그의 강철 비늘 갑옷에서 섬광이 터져 나오며, 그의 몸이 거대한 쇠구슬처럼 변한다. 그는 회전하며 류 진을 향해 돌진한다. 그 속도는 음속을 아득히 뛰어넘어, 잔상이 공간에 그려진다.]**

    **제황 리칸:** ‘강철 회전포’! 이걸 피할 수 있나 보자!

    **[효과음: 쐐애애액! (리칸이 회전하며 돌진하는 소리)]**

    **[장면: 류 진은 여전히 침착하다. 그는 눈을 감았다가 뜨고, 등에 매달린 목검을 천천히 뽑아 든다. 목검은 낡았지만, 그의 손에 들리자마자 맑고 푸른 ‘기’가 감돈다. 그는 목검으로 리칸의 회전 방향을 읽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류 진:** 흐름을 읽지 못하는 힘은, 그저 맹목적인 폭력일 뿐.

    **[장면: 리칸이 류 진에게 거의 닿았을 때, 류 진이 목검을 수평으로 휘두른다. 그 움직임은 매우 느리고 부드러웠지만, 목검 끝에서 뿜어져 나온 ‘기’가 거대한 파동을 형성하여 리칸의 회전 방향을 미묘하게 틀어버린다.]**

    **[효과음: 퓨슈슈! (기파가 리칸을 스치는 소리)]**

    **[장면: 리칸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경기장 가장자리에 부딪힌다. 강철 비늘 갑옷에서 스파크가 튀고, 그의 몸이 땅에 굴러떨어진다.]**

    **[효과음: 콰아앙! (리칸이 경기장 바닥에 충돌하는 소리)]**

    **제황 리칸:** 큭… 이런! 감히…!

    **[장면: 리칸이 분노에 찬 얼굴로 일어선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기가 붉은색으로 변하며 더욱 강력해진다. 그의 양손에서 거대한 에너지 구체가 형성된다.]**

    **제황 리칸:** 좋다! 이제 네놈의 재주를 볼 만큼 봤다! ‘철혈성’의 최강 무공! ‘멸성 대광선포’!

    **[장면: 리칸의 두 손에서 발사된 에너지 구체가 하나로 합쳐지며, 거대한 푸른색 광선으로 변해 류 진을 향해 쏘아진다. 그 광선은 모든 것을 증발시킬 듯한 위력을 가졌다. 관중들이 숨을 죽인다.]**

    **[효과음: 즈으으응! (광선이 발사되는 소리)]**

    **[장면: 류 진은 눈을 가늘게 뜬다. 그의 몸 주변에서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기 시작한다. 그는 목검을 휘두르지 않고, 두 손을 모아 허공에 ‘태극’ 문양을 그린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기’가 광선을 향해 뻗어나간다.]**

    **류 진:** 흐르는 물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모든 것을 감싸 안나니… ‘태극무신류’, ‘허공진동파’!

    **[장면: 류 진의 손에서 뻗어나간 기파가 리칸의 멸성 대광선포에 닿는 순간, 광선은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휘어지기 시작한다. 강력한 에너지가 류 진의 손끝에서 발산되는 ‘진동파’에 의해 산산이 흩어진다. 광선은 류 진을 지나쳐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고, 대전장 천장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효과음: 콰아아아앙! (광선이 허공에서 폭발하는 소리)]**

    **관중3:** 저걸 막았다고?! 아니, 막은 게 아니라… 흘려보냈어?!

    **관중4:** 믿을 수 없어… 저게 대체 무슨 무공이란 말인가!

    **[장면: 리칸은 경악한 표정으로 서 있다. 그의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류 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평온한 자세로 돌아온다. 그의 목검은 여전히 그의 손에 들려 있지만, 더 이상 ‘기’를 뿜어내지 않는다.]**

    **제황 리칸:** 네… 네놈은… 대체…

    **[장면: 류 진은 한 발짝 앞으로 내딛는다. 그의 발걸음에서 미세한 진동이 경기장 전체로 퍼져나간다. 리칸의 강철 비늘 갑옷에 미세한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그의 몸을 감싸던 강기가 흔들린다.]**

    **류 진:** 세상의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장 단단한 것일지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약한 고리가 있는 법. 그것을 읽어내는 것이 ‘무도’의 시작이지요.

    **[장면: 류 진이 손가락 하나를 들어 리칸을 가리킨다. 그의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미세한 ‘진동파’가 리칸의 몸으로 스며든다. 리칸의 갑옷이 우지직 소리를 내며 갈라지기 시작하고, 그의 몸을 감싸던 강기가 완전히 붕괴된다.]**

    **[효과음: 우지직! 와장창! (강철 갑옷이 깨지는 소리)]**

    **제황 리칸:** (고통에 찬 비명) 크아아악!

    **[장면: 리칸은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그의 강철 비늘 갑옷은 산산조각 나 바닥에 흩어져 있고, 그는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인다. 류 진은 다시 평온한 표정으로 돌아와, 목검을 다시 등에 매단다. 경기장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이내 폭발적인 환호와 박수갈채로 가득 찬다.]**

    **심판장:** (공명음) 승자! ‘청운성’의 **류 진**!

    **[장면: 류 진은 경기장 중앙에 홀로 서서, 고개를 숙여 관중들에게 인사한다. 그의 표정은 담담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우주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한 깊이가 담겨 있다.]**

    **내레이션:** 이 광대한 우주에서, 진정한 무(武)의 의미를 깨달은 자만이 ‘천하패자’의 자격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류 진, 이 청년의 등장으로 인해, ‘우주 천하무림대전’의 흐름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과연 그는 무엇을 향해 나아가려는 것인가?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다음 시련은 무엇일까?

    **[장면: 관중석 어딘가. 검은 도포를 두른 무리 중 한 명이 류 진을 예리하게 응시한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린다.]**

    **검은 도포의 인물:** 흥미롭군… 과연 ‘태극무신류’의 계승자다워. 그 정도의 실력으로도… 아직 ‘진정한 어둠’은 알지 못할 터. 후후…

    **[장면: 류 진의 얼굴 클로즈업.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나며, 그는 허공에 떠 있는 거대한 우주 지도를 올려다본다. 우주 지도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효과음: 쿵! (낮게 울리는 불길한 심장 소리)]**

    **내레이션:**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별들의 운명을 건, 진정한 싸움은…

    **[END]**

  • 가상현실 게임 (VRMMO)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아스펠라: 제147화 – 달빛 아래 숨결

    고요의 숲, 가장 깊은 곳. 잊힌 유적의 돌담은 달빛조차 두려워하는 듯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수백 년 전, 어떤 왕국의 마지막 흔적이었을 낡은 탑의 잔해 속에서 진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축축한 이끼의 감촉이 평소 같으면 불쾌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무감각했다. 오직 신경은 숲을 가득 메운 미세한 소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멀리서 들려오는 야수의 울음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늦는군.’

    불안감이 덩어리째 가슴을 짓눌렀다. 약속된 시간은 이미 몇 분 지났다. 매번 이런 식이었다. 그녀를 기다리는 이 순간은 고통스럽도록 아름다운, 그러나 동시에 날카로운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만남은 세상의 모든 섭리에 거스르는 일. 인간과 밤꽃족의 교류는 금지되어 있었고, 그중에서도 사랑은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었다.

    그때였다. 숲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푸른빛이 일렁였다. 짐승의 눈빛과는 다른, 은은하고 신비로운 빛. 진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동시에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의 모든 세포가 환희로 일렁였다.

    “진.”

    속삭이듯 나지막한 목소리. 밤꽃족 특유의, 숲의 정령이 직접 속삭이는 듯한 맑고 청아한 음성이 진의 귓가에 닿았다.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그녀는 마치 달빛이 빚어낸 조각 같았다. 푸른색과 은색이 오묘하게 섞인 머리카락은 길게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가늘고 유려한 몸선은 주변의 숲과 완벽하게 조화되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역시 피부였다. 한낮에는 평범한 살색처럼 보이지만, 밤이 되면 푸른 달빛을 머금은 듯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피부. 밤꽃족 엘라나의 존재 자체가 금기였다.

    진은 그녀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팔을 벌렸다. 엘라나는 망설임 없이 그의 품에 안겼다. 부드러운 체온, 익숙한 숲의 향기,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싸는 아스펠라의 밤 공기.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가 고요한 숲에 메아리치는 듯했다.

    “늦어서 미안해. 숲의 순찰이 강화되었어.” 엘라나의 목소리에는 미안함과 함께 희미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진은 그녀의 등을 가만히 쓸어주며 말했다. “괜찮아. 너만 무사하면 돼. 무슨 일이라도 생겼어?”

    엘라나는 진의 품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 빛나고 있었다. “인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북쪽의 잿빛 발톱 용병단이 ‘밤꽃의 심장’에 대한 정보를 캐고 다니는 모양이야.”

    ‘밤꽃의 심장.’ 밤꽃족의 생명과 마법의 원천이자, 인간들에게는 엄청난 부와 권력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지는 전설적인 유물. 그것을 노린다는 것은 곧 밤꽃족 전체를 향한 공격이나 다름없었다.

    “하필 지금….” 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는 인간의 그림자 사냥꾼. 잿빛 발톱 용병단과는 몇 번 마찰을 빚었던 적이 있는,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집단이었다. 그들이 이 깊은 숲까지 발을 들인다면, 엘라나의 종족은 안전할 수 없을 터였다.

    엘라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묘하게 따뜻한 온기가 스며 나오는 듯했다. “진, 난 네가 걱정돼. 이곳까지 오는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잖아. 언제 우리 부족의 감시자에게, 혹은 인간 사냥꾼에게 들킬지 몰라.”

    “들키면 어때. 너와 함께라면 상관없어.” 진은 그녀의 손에 키스했다. 그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 사랑은 과연 옳은가. 그는 매일 밤 자신에게 되묻곤 했다.

    엘라나는 그의 뺨을 어루만졌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네가 들키면… 넌 배신자로 낙인찍힐 거야. 나는… 부족의 죄인이 되겠지.”

    그녀의 말이 비수가 되어 진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엘라나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녀가 감당해야 할 고통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바로 그때, 숲 저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사냥꾼의 본능이 위험을 감지했다.

    진은 즉시 엘라나를 자신의 뒤로 밀치며 몸을 낮췄다. “쉿! 숨어.”

    그의 눈은 어둠에 완전히 적응한 듯, 희미한 움직임조차 놓치지 않았다. 거친 발걸음 소리, 철컹거리는 금속음, 그리고 낮은 목소리의 대화가 바람을 타고 불어왔다.

    “이봐, 대장. 이 숲은 왜 이렇게 어두컴컴해? 밤꽃족 놈들이 숨기 딱 좋은 곳이군.”
    “시끄러워! 조용히 해. ‘밤꽃의 심장’이 이곳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고. 그걸 찾으면 우리는 아스펠라 최고의 부자가 되는 거야!”

    잿빛 발톱 용병단이었다. 그것도 꽤 많은 수가 은밀하게 숲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진은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 폐허는 은신하기 좋은 곳이었지만, 한 번 발각되면 빠져나갈 길이 마땅치 않았다.

    “은신!” 진은 소리 없는 주문과 함께 그림자 사냥꾼의 기술을 발동했다. 그의 몸은 주변의 어둠과 완벽하게 융합되며 흐릿해졌다. 엘라나 역시 몸을 웅크리고 고대의 유물 뒤로 숨었다. 그녀의 푸른 피부는 달빛 아래서 빛났지만, 숲의 정령처럼 주변 환경에 완벽히 동화되는 그녀의 종족 특성 덕분에 희미한 윤곽조차 사라지는 듯했다.

    쿵, 쿵.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바로 유적의 입구 쪽이었다. 용병단원들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거대하게 드리워졌다.

    “젠장, 아무것도 없잖아. 이 거지 같은 숲에 정말 밤꽃족 놈들이 숨어있긴 한 거야?” 한 용병이 투덜거렸다.

    “저기, 저기 잔해 속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용병이 손가락으로 진과 엘라나가 숨은 유적의 돌담을 가리켰다.

    진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목울대가 꿀꺽 넘어갔다. 사냥꾼의 예리한 감각이 곤두섰다. 만약 저들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온다면… 필사적으로 싸워야 했다. 엘라나를 보호하기 위해.

    대장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팔지 마! 이끼 낀 돌덩이일 뿐이야! 계속 수색해. 동쪽에 수상한 흔적이 있다고 했다!”

    다행히 대장은 더 이상 유적 쪽을 의심하지 않았다. 용병단원들은 투덜거리면서도 대장의 명령에 따라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철컹거리는 금속음마저 희미해졌다.

    진은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흐트러졌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은신을 풀자, 땀으로 축축한 몸이 차가운 밤공기에 닿아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엘라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공포와 함께, 진을 향한 걱정이 역력했다. “진…”

    “괜찮아.” 진은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격렬하게 뛰고 있었지만, 엘라나가 무사하다는 안도감에 모든 두려움이 사그라드는 듯했다.

    하지만 안도감은 잠시였다. 엘라나는 진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진, 이제 정말 안 되겠어.”

    진은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무슨 말이야?”

    “더 이상 이렇게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엘라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오늘, 내가 이곳에 오기 직전… 부족의 원로들이 날 불러냈어.”

    진의 몸이 굳었다. 부족의 원로라면… 그녀의 금지된 행동을 눈치챘다는 뜻인가.

    엘라나는 떨리는 손으로 진의 뺨을 감쌌다. “그들이 내게… ‘밤꽃의 심장’을 지키기 위한 고대의 의식을 준비하라고 했어. 그 의식이 끝나면… 나는 더 이상 부족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게 될 거야. 영원히.”

    그녀의 말은 차가운 비수가 되어 진의 심장을 깊숙이 찔렀다. 영원히. 그것은 곧 영원한 이별을 의미했다. 이제 그들의 금지된 사랑은 게임 속 환상이 아니라, 거대한 운명의 벽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진은 허공을 응시했다.

    “안 돼…!” 그의 절규가 숲의 고요를 갈랐다.

    그때, 엘라나가 숲 저편, 밤꽃족의 성역이 있는 방향을 향해 눈을 돌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에 불안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들은… 이미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아. 내 몸속에서 밤꽃의 기운이 희미해진다고… 인간의 잔향이 묻어난다고….”

    진은 말을 잃었다. 인간의 잔향이라니. 그들의 접촉이, 그들의 사랑이, 엘라나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고 있었단 말인가.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 진의 목소리는 메마른 사막처럼 갈라져 있었다.

    엘라나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진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 속에 담긴 결심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만 더….”

    그녀의 손이 진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리고 숲 저편, 밤꽃족의 성역을 향해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그것은 밤꽃족의 경고이자, 고대의 마법이 깨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진은 엘라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눈 속에서,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그림자가 거대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기회는,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밤은 깊어지고, 숲은 모든 비밀을 품은 채 침묵했다.

  • 무협 독립적인 단편 소설

    천공검 무영과 흑풍검 현풍. 강호는 우리 둘을 두고 늘 그렇게 불렀다.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처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무림의 어둠을 헤치던 존재들. 우리는 서로의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다음 수를 읽었고, 등에 칼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벗이었다. 십 년, 핏빛 강호를 함께 걸으며 수많은 역경을 넘었다. 내 검 끝에 스친 생명 수만큼 현풍의 품에 안겨 뜨거운 눈물을 흘린 밤도 많았다. 우리는 전설이 되고자 했고, 강호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맹세했다.

    그날도 그랬다. 암흑 세력의 거점, 비탈진 절벽 끝에 매달린 음습한 동굴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대결을 펼쳤다. 천 년 묵은 사악한 기운이 응축된 ‘마혈석’을 파괴하기 위함이었다. 격렬한 사투 끝에 마침내 마혈석은 산산이 부서졌고, 뿜어져 나오던 검은 기운은 우리 두 사람의 합공에 휩쓸려 사라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갔지만, 현풍과 나란히 서서 동굴 밖으로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을 바라볼 때의 희열이란. 나는 활짝 웃었다. 현풍도 환하게 웃었다.

    “무영아, 해냈어! 마침내 해냈다고!”

    현풍의 목소리는 기쁨으로 들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섬뜩한 냉기가 느껴졌다. 번개처럼 몸을 돌리려는 찰나, 차가운 쇠붙이가 내 허리를 꿰뚫는 고통과 함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크헉… 현풍…?”

    목구멍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나의 눈에 비친 것은, 배신감과 경악으로 일그러진 내 얼굴을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현풍의 시커먼 눈동자였다. 그 눈빛은 내가 알던 현풍의 것이 아니었다. 어둠, 탐욕, 그리고 싸늘한 잔혹함.

    “미안하다, 무영아. 하지만… 너는 너무나 눈부셨어. 너의 그림자로 사는 것은 이제 지겨워. 마혈석의 힘은 너처럼 강호의 어리석은 정의를 좇는 자가 아니라, 강호를 지배할 자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현풍은 비정하게 웃었다. 그의 손에 들린 검은, 내가 현풍에게 선물했던 ‘흑풍검’이었다. 그 검이 내 허리를 꿰뚫고 있었다. 검날이 비틀리며 나의 기해(氣海)를 산산조각 냈다. 몸 안의 모든 기운이 역류하며 격렬한 고통이 온몸을 집어삼켰다. 절벽 끝자락, 나의 몸은 기우뚱 흔들렸다.

    “현풍… 너는…!”

    마지막 외침은 핏덩이가 되어 터져 나왔다. 현풍은 나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아래는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이었다.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내 세상이 통째로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부러진 팔다리, 꿰뚫린 허리. 무엇보다 산산이 부서진 기해는 내가 더 이상 무인이 아님을 말해 주었다. 절벽 아래, 어느 기이한 동굴 속이었다. 마혈석이 부서지며 뿜어냈던 잔여 사기(邪氣)가 웅크려 있던 곳이었다. 그 기운이 내 몸을 파고들었고,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기형적인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몸은 불구가 되었지만, 나의 의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나는 살아야 했다. 오직 복수만을 위해.

    수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굴 속에서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온몸에 흐르는 사악한 기운을 억누르며, 부서진 기해 대신 다른 곳에 새로운 기운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고통은 나의 스승이었고, 증오는 나의 동력이었다. 낮에는 기이한 약초를 캐어 몸을 연단했고, 밤에는 동굴 벽에 새겨진 정체불명의 문양들을 익혔다. 그것은 마혈석이 수천 년간 흡수했던 영물들의 기운이 새겨진 흔적이었다. 나는 그 기운을 역이용하여 새로운 무공을 창조했다. 겉보기엔 사악하고 기괴하지만, 그 파괴력만큼은 이전의 천공검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 이름은 이제 무영이 아니었다. 그림자도, 빛도 아닌, 오직 복수를 위해 존재하는 망령이었다.

    세월은 강산을 바꾸듯 강호를 뒤흔들었다. 내가 사라진 후, 현풍은 강호의 새로운 지배자가 되어 있었다. 그는 내가 파괴했던 마혈석의 조각을 손에 넣었고, 그 잔여 사기를 흡수하여 절대적인 힘을 얻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흑풍신룡 현풍’. 그는 강호의 모든 문파를 무릎 꿇리고, 자신의 아래에 두었다. 나의 자리를, 아니,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다.

    ***

    황량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강호의 변두리, 폐허가 된 절에 홀로 앉아 현풍의 소식을 듣던 나는 피식 웃었다. 드디어 때가 된 것이다. 나는 망령처럼 강호로 다시 스며들었다. 나의 모습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수년의 고통과 연단은 나를 전혀 다른 존재로 바꿔놓았으니까.

    흑풍신룡 현풍이 주최하는 ‘강호만파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강호의 모든 무림인을 자신의 발아래 모아놓고, 자신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자리. 그곳이 바로 나의 무대였다.

    대회는 현풍의 거대한 궁전에서 열렸다. 웅장하고 화려한 연회장에는 수많은 무림인들이 모여 현풍의 권위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그들 속에 섞여 현풍을 바라보았다. 그는 상석에 앉아, 모든 이들의 찬사를 즐기는 오만한 황제 같았다. 그 얼굴에 어린 미소는 내가 알던 순수함이 아닌, 권력에 취한 추악한 그림자였다.

    나는 조용히 움직여 연회장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그들 중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했다. 나조차도 거울 속 내 모습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으니.

    “누구냐, 감히 연회장의 분위기를 흐리는 자는?”

    현풍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나를 향해 불꽃을 뿜었다. 그의 기세는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심장은 고요했다.

    “오랜만이군, 현풍.”

    나의 목소리는 낮고 음침했다. 귓가에 맴도는 메아리처럼, 공기를 흔들었다.

    현풍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뭔가 낯익은 듯, 그러나 전혀 다른 분위기에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네놈이 누구기에 감히 나의 이름을 부르느냐!”

    현풍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많은 무림인들이 칼을 뽑아 나를 겨냥했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의 검 끝에서 나는 십 년 전의 나를 보았다. 정의를 좇던 어리석은 나를.

    “기억 못 하는 것이 당연하지. 나는 너의 과거이자, 너의 미래를 끝낼 망령이니까.”

    나는 천천히 가면을 벗었다. 고통과 세월이 빚어낸 흉터투성이의 얼굴이 드러났다. 한때는 미남이라 칭송받던 얼굴은 뼈와 가죽만 남은 채 뒤틀려 있었다. 그러나 그 눈빛만은 십 년 전의 그 눈빛이었다. 복수심으로 불타는, 지옥에서 돌아온 자의 눈빛.

    현풍의 눈이 공포로 크게 뜨였다. 그는 뒷걸음질 쳤다.
    “무… 무영?! 설마… 네가… 살아있었단 말이냐?!”

    그의 목소리는 완전히 흔들렸다. 그제야 주변의 무림인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호에 사라진 지 오래인 천공검 무영. 그 이름은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살아남았다, 현풍. 너의 그 비열한 칼날에도 불구하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의 발걸음마다 바닥의 돌들이 미세하게 갈라졌다. 나에게 흐르는 기운은 더 이상 정통 무공의 것이 아니었다. 사악하고, 음습하며, 강력했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을 텐데…!”

    현풍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이제 오만함 대신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절벽이 나를 죽이지 못했듯이, 너도 나를 죽이지 못할 것이다. 현풍. 이제 너는 나의 손에 죽을 것이다.”

    나는 손을 뻗었다. 손끝에서 검은 기운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나의 새로운 무공, ‘흑암신류(黑闇神流)’의 기운이었다.

    현풍은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검을 뽑았다. 흑풍검. 내가 선물했던 그 검. 그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친구가 아니었다. 탐욕스러운 괴물일 뿐.

    “착각하지 마라, 무영! 이제 너는 그저 한물간 폐인에 불과해! 나의 힘은 네 상상을 초월한다!”

    현풍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의 흑풍검에서 검은 바람이 휘몰아치며 날카로운 검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는 마혈석의 잔여 사기를 흡수하여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나는 그의 검기를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 걸음 내디뎌 현풍의 검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나의 맨손에서 뿜어져 나온 흑암신류의 기운이 현풍의 검기를 산산조각 냈다. 파괴적인 기운이 현풍의 몸을 강타했다.

    “크악!”

    현풍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바닥에 몸을 부딪힌 순간, 그의 오만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의 눈에는 순수한 경악과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말도 안 돼… 너의 기운은… 어째서 이렇게…!”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일어섰다. 흑풍검을 휘두르며 다시 나에게 덤벼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빨랐지만, 나의 눈에는 너무나도 느리게 보였다. 나는 그림자처럼 그의 공격을 스쳐 지나갔다. 내 손이 현풍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

    “이 고통이 느껴지느냐, 현풍? 십 년 전, 네 칼날이 나의 기해를 부수고 나를 절벽으로 떨어뜨릴 때의 고통이.”

    나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현풍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나의 힘은 그를 압도했다.

    “너의 그림자로 사는 것은 지겨웠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제 영원히 나의 그림자가 되어라.”

    나는 현풍의 목덜미를 쥔 채, 그의 몸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몸에 흐르는 흑암신류의 기운을 그의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몸 안에서 격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악!”

    현풍은 절규했다. 그의 몸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며, 마혈석의 잔여 사기가 강제로 뽑혀 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힘의 근원이 뿌리 뽑히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무… 무영아… 잘못했다… 살려다오… 제발…”

    현풍의 목소리는 비굴한 애원으로 변했다. 십 년 전, 나에게 칼을 박아 넣던 그 비정한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한때는 나의 가장 친한 벗이었던 이의 비참한 최후. 나의 심장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너는 나를 살려주지 않았다. 현풍.”

    나는 현풍의 몸을 바닥에 던졌다. 그의 몸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모든 기운이 뽑혀나가고, 그는 그저 한 줌의 폐인이 되어버렸다. 그의 눈은 공허하게 천장을 응시했다. 그는 더 이상 흑풍신룡이 아니었다. 그저 패배한 비렁뱅이에 불과했다.

    주변의 무림인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감히 나에게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현풍의 앞에 섰다. 그리고 천천히 나의 흑암신류를 발동했다. 그의 몸에서 마지막 남은 생명력까지 흡수하려는 듯, 검은 기운이 현풍의 몸을 감쌌다.

    “이것이… 너의 최후다, 현풍. 너의 어리석은 탐욕이 불러온 파멸.”

    나는 현풍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그의 눈은 영원히 감기지 않은 채, 공허한 증오를 품고 있었다. 마치 십 년 전, 내가 그를 보았던 그 눈빛처럼.

    나의 복수는 끝났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았다. 강호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는 다시 돌아온 무영이 아니었다. 나는 오직 복수를 위해 존재했던 망령. 이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텅 빈 연회장 한가운데서, 내 손에 묻은 피를 말없이 응시할 뿐이었다. 강호의 밤은, 길고도 어두웠다.

  • 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34화: 심연의 눈, 깨어나다

    지하 수 킬로미터 아래. 이곳은 시간마저 멈춰버린 듯한 고대의 심장이었다. 아린은 헐떡이는 숨을 고르며 거대한 석실 중앙에 섰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그녀의 심장 박동만이 이 모든 침묵을 깨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그녀의 ‘별빛 수정’이 내뿜는 희미한 빛이 기괴한 문양으로 가득한 벽면을 더듬었다. 이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선들은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비명처럼 느껴졌다.

    “이건… 대체….”

    아린은 땀으로 축축한 손으로 심장 부근의 펜던트를 꽉 쥐었다. 펜던트 속 조그만 수정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의 신호였다. 이 정도 진동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탐사했던 어떤 유적의 공간보다도 깊고, 어둡고, 위험한 기운이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의 시선이 석실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검은 석판에 닿았다. 검은색이라기보다는 모든 빛을 집어삼킨 듯한 완벽한 어둠. 매끄럽게 다듬어진 표면에는 아무런 문양도, 글자도 없었다. 그저 무한한 공허함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공허함이 오히려 더욱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쿵… 쿵…**

    아린의 심장이 평소보다 훨씬 빠르고 격렬하게 뛰었다. 아니, 그녀의 심장만이 아니었다. 발아래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희미한 진동이 올라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이지만 둔탁한 울림이었다.

    “설마… 저게….”

    그녀는 한 발자국, 아주 조심스럽게 석판 쪽으로 다가갔다. 별빛 수정의 빛이 석판에 닿자마자 빛은 그대로 사라졌다.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아린은 마력을 끌어올렸다. 푸른빛 섬광이 그녀의 손끝에서 뿜어져 나와 석판을 향해 뻗어 나갔다. 마력의 파동은 석판에 닿는 순간,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정적이 깨지고, 어디선가 아주 미세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밀폐된 지하 깊숙한 곳에서 바람이라니. 아린은 몸을 움츠렸다. 바람은 점차 강해졌다. 단순한 바람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긁고, 할퀴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콰직! 콰지지직!**

    검은 석판의 표면에서부터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거미줄처럼 퍼져나가는 균열은 찰나의 순간에 석판 전체를 뒤덮었다. 그리고 그 균열의 틈새로, 붉은색 섬광이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크윽…!”

    갑작스러운 빛과 함께 뿜어져 나온 거대한 에너지가 아린을 강타했다. 그녀는 몸을 날려 겨우 충격파를 피했지만, 등 뒤의 석실 벽면에 강하게 부딪히고 말았다. 머리가 울렸다.

    “젠장…!”

    아린은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눈앞의 풍경이 믿기지 않았다. 검은 석판을 뒤덮었던 균열들이 점차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눈꺼풀이 서서히 열리는 것처럼. 그리고 그 틈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불타는 듯한 마력의 응축체였다.

    **우우우우웅—!**

    석실 전체가 찢어지는 듯한 굉음으로 가득 찼다. 검은 석판의 정중앙, 가장 큰 균열이 벌어진 곳에서 섬뜩한 붉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홍채는 없었다. 그저 불길처럼 일렁이는 붉은 기운이 끓어오르고 있을 뿐. 셀 수 없이 많은 시대를 지켜본 듯한 깊이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광기 어린 시선이 아린을 향했다.

    그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는 순간, 아린은 온몸의 마력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움직일 수 없었다.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그 눈동자 속에서 그녀는 과거의 환영을 보았다. 거대한 도시가 불타오르고, 수많은 생명들이 비명과 함께 재로 변하는 참혹한 광경이었다.

    “안 돼… 이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법소녀로의 변신이 강제로 풀리기 시작했다. 피부를 감싸던 빛이 흐트러지고, 갑옷처럼 단단했던 의상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무릎이 꺾였다.

    그 붉은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서서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리고 그 순간, 석실 전체가 거대한 존재의 숨결로 채워지는 듯했다.

    **”미약한 존재여… 잠들었던 심연을 깨운 대가는… 네 존재 자체로 치러야 할 것이다….”**

    수억 개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속삭이는 듯한, 차갑고 소름 끼치는 음성이 아린의 뇌리를 직접적으로 강타했다. 그 목소리는 그녀의 영혼 깊숙한 곳을 뒤흔들며,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절망의 속삭임이었다.

    아린은 공포로 질식할 것 같았다. 그녀의 눈앞에서 거대한 검은 석판의 눈꺼풀이 완전히 벌어지며, 심연의 눈동자가 그 거대한 크기를 온전히 드러냈다.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한 파멸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그 거대한 눈동자가 그녀를 향해 번뜩였다.
    그리고… 눈동자 중앙에서, 차마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동이 아린을 향해 쏘아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제야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 안 돼…!”

    마지막 발악처럼 외친 그녀의 목소리는 굉음에 파묻혔다.

    파멸의 파동이, 그녀를 덮쳐오고 있었다.

  • 타임슬립 (시간여행)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드넓은 심우주, 무한한 침묵의 바다 위를 항해하는 은색의 유선형 선체, 헤르메스호가 유영하고 있었다. 인류의 탐사선 중 가장 멀리, 가장 깊이 나아간 배. 그곳에는 탐험의 기쁨과 더불어, 존재의 근원을 묻는 듯한 광대한 적막함이 항상 동반되었다.

    함교의 푸른빛 조명이 흐릿하게 이진우 선장의 얼굴을 비췄다. 그의 눈은 피로했지만, 화면 가득한 별들의 향연 속에서도 언제나 날카로운 기색을 잃지 않았다. 헤르메스호의 심장이자 정신이라 불리는 남자.

    “선장님,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나른하던 정적을 깬 건 부함장이자 과학 책임자인 한세라 박사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안경을 고쳐 쓰며 홀로그램 패널에 떠오른 그래프를 응시했다. 차분했지만, 미묘한 긴장감이 실린 목소리였다.

    “비정상적이라고? 어디서?” 진우가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항성 간 물질 유동이 활발한 영역 근처입니다. 허나, 이전에 기록된 적 없는 에너지 서명이에요. 어떤 종류의 알려진 물질에서도 방출되지 않습니다.”

    세라의 손가락이 허공을 스치자, 시야에 들어오는 별들 너머, 까마득히 먼 곳에 작은 붉은 점 하나가 깜빡였다. 헤르메스호의 탐사 기록에도 없는, 말 그대로 미지의 존재였다.

    “민준, 현재 속도 유지하면서 접근 경로 잡아. 철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주 엔진 출력을 최대로 올려놔.” 진우의 지시가 떨어지자, 조종석에 앉아 있던 막내 대원 김민준이 빠르게 손을 움직였고, 함선 구석의 정비실에서 박철민 기관장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선장님! 엔진은 언제든 토해낼 준비가 됐습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미지에 대한 설렘과 경계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수년간 우주를 떠돌며 수많은 현상을 마주했지만, ‘알려진 적 없는’이라는 세라의 말은 언제나 그들의 심장을 다시금 뛰게 만들었다.

    수백만 킬로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붉은 점은 이제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커다란 이미지로 변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 형태는 모호했다. 마치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유령 같았다.

    “접근 완료, 선장님. 현재 거리 1000km.” 민준이 보고했다.

    “메인 스캐너, 최대 출력으로 대상 분석.” 진우가 명령했다.

    세라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믿을 수 없군요. 선장님,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아니, 작동하고 있는데 분석이 불가능해요. 모든 물리적 법칙이 이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것 같습니다.”

    화면 속의 물체는 마치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듯한 모습이었다. 육면체인 듯하면서도 둥글고, 딱딱한 듯하면서도 흐느적거렸다. 특정한 색깔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빛을 흡수하는가 싶으면 다음 순간 반사했고, 마치 살아있는 듯 미묘하게 형태를 바꾸고 있었다. 그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이해를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선장님, 저건… 유기체도, 무기체도 아닙니다. 단순히 물질이라고 부를 수도 없어요. 어떤 에너지 장이 이 물체를 감싸고 있는데, 그 장의 주파수가 계속 변동합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물체가 우리 공간으로 억지로 밀려들어 온 것 같아요.” 세라의 목소리에 경외심과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철민, 혹시 주변에 위험한 에너지 방출이 있는지 확인해 봐.” 진우는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아직은 없습니다, 선장님. 다만… 함선의 모든 시스템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동조하지 않는 주파수에 노출된 것처럼요.” 철민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거칠게 들려왔다.

    “물체에 접촉할 수 있는 탐사 드론을 발사한다. 세라, 에너지 안정화에 집중해 줘.”

    지시가 떨어지자, 헤르메스호의 한쪽 격납고에서 소형 탐사 드론 하나가 조용히 분리되어 미지의 물체를 향해 날아갔다. 드론의 카메라가 전송하는 실시간 영상이 함교의 메인 화면에 크게 확대되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드론. 그제야 물체의 경이로운 디테일이 드러났다. 표면은 마치 거울처럼 매끄러웠지만, 그 안에는 무한히 깊은 우주가 펼쳐져 있는 듯했다. 작은 구멍 하나가 보였는데, 그 안은 수억 개의 별들이 폭발하는 은하계처럼 반짝였다. 그리고 그 빛들이 뒤틀리고 일그러지며, 마치 시간을 역행하는 듯한 착시를 일으켰다.

    드론이 물체의 표면에 거의 닿는 순간, 갑자기 화면 전체가 일렁였다.

    “선장님! 드론과의 연결이 불안정합니다! 마치… 과거의 신호와 현재의 신호가 뒤섞이는 것 같습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말도 안 돼! 그런 현상은 불가능해!” 세라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드론이 전송하는 영상은 순간적으로 흑백 화면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현재의 컬러 영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흑백 화면 속에는… 헤르메스호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그 헤르메스호는 지금과는 다른 디자인, 훨씬 더 투박하고 낡은 모습이었다. 마치 수백 년 전의 설계도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게… 대체… 무슨…” 진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미지의 물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뒤섞인 강렬한 빛이 헤르메스호 전체를 집어삼켰다. 함교 안의 모든 불빛이 꺼지고, 비상 경보음이 귓청을 때렸다.

    “선장님! 함선 시스템이… 먹통입니다! 시간 계측기가… 엉망이 됐어요! 지금이 몇 년도인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민준의 비명이 이어졌다.

    “젠장! 철민! 동력원 확인해! 세라! 대체 이 물체의 정체가 뭐야?!” 진우가 소리쳤지만, 그의 목소리는 혼란의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푸른 섬광이 걷히자, 헤르메스호는 다시 어둠 속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모든 것이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메인 화면에는 여전히 미지의 물체가 떠 있었지만, 그 주위에 떠다니던 작은 먼지 입자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마치 정지된 사진처럼 고정되어 있었다.

    시간이 멈춘 것인가? 아니면…

    진우는 차갑게 식은 식은땀을 흘리며 물체를 응시했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발견’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알던 모든 물리 법칙을 부수고, 존재의 근간을 뒤흔드는, 거대한 미지의 문이 그들 앞에 열린 것이다. 그 문 너머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과거인가, 미래인가, 아니면 전혀 다른 시공간의 혼돈인가.

    “선장님…”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드론이… 드론이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증발한 것처럼…”

    진우의 시선은 정지된 먼지 입자들을 지나, 고요하게 빛나는 미지의 유물에 박혔다. 이제 그들의 항해는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

  • 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세계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제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거대한 무덤처럼 침묵에 잠겨 있었다. 황량한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으스스한 바람만이 휘파람을 불었고, 하늘은 더 이상 파랗지 않았다. 늘 그랬듯이, 썩은 피를 흩뿌린 듯한 핏빛 구름이 뭉텅이로 떠다니거나,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검푸른 빛깔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느릿하게 회전하며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훈은 고개를 숙인 채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낡은 방독면 안으로 쿰쿰한 먼지 냄새와 함께 쇠 녹이 슨 비릿한 향이 스며들었다. 등에 멘 낡은 배낭은 깡통과 알 수 없는 파편들로 가득 차 무거웠고, 한쪽 어깨에 멘 샷건은 언제든 발사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생존 법칙을 몸으로 익혔다. ‘움직여라. 그리고 절대 눈에 띄지 마라.’

    오늘은 꽤 운이 좋았다. 허물어진 편의점 건물 잔해 속에서 겨우 물 한 병과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통조림 몇 개를 찾아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녹슨 철문 안쪽에서 반쯤 부서진 태양광 충전기를 발견했다. 작은 성과였지만, 이 암흑 같은 세상에서는 그것마저도 귀한 희망의 조각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아니, 해라는 표현이 맞는지도 불분명했다. 하늘의 핏빛 구름이 더욱 진해지고, 어둠이 서서히 지상을 잠식하는 시간이었다. 지훈은 늘 그랬듯이 안전한 곳을 찾아야 했다. 폐건물의 지하 벙커나, 혹은 거대한 구조물 틈새에 숨겨진 작은 공간. 그곳만이 밤의 방문객들로부터 그를 보호해줄 수 있었다.

    “빌어먹을.”

    그는 중얼거렸다. 멀리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뼈를 씹는 듯한 우드득거리는 소리 같기도 했고, 아니면 수십 개의 혀가 동시에 끈적한 액체를 핥는 소리 같기도 했다. 소리는 불규칙했고, 예측할 수 없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렸다. 저 소리의 주인이 무엇인지는 그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알면 안 됐다.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었다. 그의 주변을 떠돌다 미쳐버린 이들이 증명하는 바였다.

    그는 낡은 건물 잔해 사이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목표는 도시 외곽에 위치한 오래된 도서관이었다. 그곳은 한때 지식의 보고였지만, 지금은 그저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은 다른 곳보다 ‘그것들’의 접근이 덜했다. 마치 그곳에 존재하는 무언가가 ‘그것들’을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었다.

    도서관 입구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지훈은 능숙하게 자물쇠를 부수고 안으로 들어섰다. 퀴퀴한 먼지 냄새와 함께 종이가 썩는 듯한 특유의 향이 코를 찔렀다. 플래시를 켜자, 겹겹이 쌓인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떤 책들은 거미줄에 뒤덮여 있었고, 어떤 책들은 곰팡이가 피어 형태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훈은 익숙하게 한쪽 구석의 낡은 철제 책장 뒤로 향했다. 그곳에는 좁은 틈새가 있었고,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으면 간이 침대가 놓인 작은 공간이 나타났다. 이곳이 그의 은신처였다. 그는 배낭을 내려놓고 샷건을 옆에 뒀다. 방독면을 벗자,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었다.

    “후우…”

    그는 한숨을 쉬었다. 찢어진 옷자락으로 얼굴의 먼지를 닦아냈다. 그의 눈은 피곤했지만, 그 속에는 결코 꺼지지 않는 생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통조림을 따서 차가운 고깃덩어리를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그것을 삼켰다.

    밤이 깊어질수록 도서관 안은 더욱 싸늘해졌다. 밖에서는 다시 그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가까이, 마치 도서관 벽을 긁는 듯한 소리였다. 지훈은 몸을 웅크렸다.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그는 자신의 불안감을 억누르려 애썼다. 공포는 사치였다. 공포는 판단을 흐리게 했고, 판단이 흐려지면 죽음만이 남았다.

    그때, 소리가 멎었다. 완벽한 침묵. 그 침묵은 오히려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마치 무엇인가가 그의 존재를 눈치채고, 그의 은신처를 찾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지훈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플래시도 껐다. 오직 어둠만이 그를 감쌌다.

    어둠 속에서, 그는 희미한 빛을 발견했다. 책장 틈새로 스며드는 푸른빛이었다. 그 빛은 벽 너머에서 오는 것이었다. 궁금증이 고개를 들었다. 이 도서관에 이런 빛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인공적인 빛도, 자연적인 빛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빛이었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은 샷건을 꽉 쥐고 있었다. 그는 빛이 새어 나오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책장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자, 낡은 벽돌 벽에 이상한 문양이 새겨진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기하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불쾌한 형태의 문양이었다. 문양의 중앙에는 작은 틈이 있었고, 그 틈 사이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뭐지…?”

    그는 문양에 손을 댔다. 차가운 벽돌 표면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진동과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촉수, 비명을 지르는 도시, 하늘을 뒤덮은 검은 그림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울려 퍼지는 웅장하고 불쾌한 노래 소리.

    그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에 주저앉았다. 환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한 ‘기억’이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존재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강제로 주입되는 것 같았다. 그는 팔로 머리를 감싸고 고통에 몸부림쳤다.

    환각, 아니 기억은 빠르게 사라졌다. 고통도 잦아들었다. 지훈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그는 다시 벽을 바라봤다. 푸른빛은 여전히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젠장… 이게 대체…”

    그는 몸을 떨었다. 이곳이 왜 ‘그것들’로부터 안전한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도서관 자체가, 이 벽 안의 무언가가 ‘그것들’을 멀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그것들’보다 더 끔찍한 존재가 이 벽 안에 잠들어 있는 것이라면?

    지훈은 다시 배낭을 챙겼다. 이번에는 통조림 대신, 부서진 태양광 충전기를 챙겼다. 그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당장. 이 밤에 밖으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았지만, 이 끔찍한 벽 안에서 한시도 더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밤하늘의 핏빛 구름은 여전히 진했다. 거대한 소용돌이는 멀리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도서관을 뒤로하고 어둠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더 이상 안전한 곳은 없었다. 다만, 덜 위험한 곳만 있을 뿐이었다.

    폐허 속을 걷는 그의 귀에, 다시 그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 가까웠다. 마치 바로 뒤에서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그저 앞을 향해 달릴 뿐이었다. 그의 생존은 끝없는 도주와 마주한 공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의 도주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임을. 그의 발자국이 남긴 먼지 위로, 검푸른 하늘의 거대한 눈이, 침묵 속에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 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 하늘이 어둠을 집어삼키기까지는 아직 몇 시간 남았지만, 이미 지표는 붉은 황혼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지평선은 온통 잔해와 먼지로 뒤덮여 희미했다. 유진은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밟으며 걸었다. 낡은 작업복 위로 주워 입은 오염된 방진 코트가 펄럭였다. 찢어진 모자 사이로 드러난 마른 얼굴은 생기 없이 푸석했지만, 눈동자만큼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하아… 하아…”

    메마른 목구멍에서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며칠째 제대로 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아침에 운 좋게 발견한 녹슨 통조림은 내용물이 이미 부패한 지 오래였다. 이런 날이 허다했다. 기대는 좌절을 낳았고, 좌절은 무의식적인 희망을 끊임없이 좀먹었다.

    발밑에 채이는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오래전 번화했던 도시의 흔적이라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풍경이었다. 무너진 빌딩의 뼈대 사이로 휘파람처럼 바람이 불었다. 그 소리는 때로는 멀리서 들려오는 절규처럼, 때로는 숨어있는 짐승의 으르렁거림처럼 들려 유진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낡은 지도 조각을 꺼냈다. 종이는 습기와 세월에 닳아 모서리가 찢어지고 글자들이 희미해져 있었다. 손가락으로 가늘게 표시된 지역을 짚었다. ‘정수 처리 시설.’ 지도에 적힌 글자는 흐릿했지만, 그 의미만은 유진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약 3km. 걸어서 반나절은 족히 걸릴 거리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 시설이 정말로 작동하는지, 아니면 이 넓은 폐허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그저 앙상한 유물로 남아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만약에 거기라도 없다면…”

    입 밖으로 터져 나온 말은 이내 바람에 흩어져 버렸다. 불안감이 뼈 속 깊이 파고들었다. 더 이상은 물 없이 버틸 수 없었다. 지금껏 버텨온 모든 순간이 기적이라고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지만, 기적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을 유진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은 끊임없이 주변을 훑었다. 이곳은 폐허만큼이나 위험한 것들이 도사리는 곳이었다. 굶주린 짐승들, 그리고… 짐승보다 더 끔찍한 인간들.

    부서진 건물 한 채의 입구를 조심스럽게 지나쳤다. 안쪽은 온통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빛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틈새로 낡은 옷가지와 알 수 없는 핏자국이 보였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그녀의 오른손은 허리춤에 찬 녹슨 칼자루를 본능적으로 움켜쥐었다. 칼은 무디고 낡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곳에서 ‘없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스스슥, 하는 마찰음. 유진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어둠 저편을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는 분명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그곳에 있었다.

    차가운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지금 도망칠까? 아니, 너무 늦었다. 이미 상대는 그녀의 존재를 알았을 터였다. 유진은 천천히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칼을 뽑아 들었고,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인간의 소리라기보다는 위협하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가까웠다.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더니, 이내 한 형체가 나타났다. 키가 크고 왜소한, 기형적인 형체. 유진은 숨을 들이켰다. 그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온몸을 넝마 같은 천으로 감싸고 있었고, 얼굴은 해진 두건 속에 가려져 있었다. 손에 든 것은 날카롭게 다듬어진 뼈 조각이었다.

    “누… 누구야…?”

    유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상대는 아무 대답 없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순간, 두건 속에서 번뜩이는 눈빛이 드러났다. 그것은 광기에 가까운, 텅 비어 있는 시선이었다. 유진은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상대는 아무 말 없이 유진에게 달려들었다. 뼈 조각이 허공을 가르며 유진의 어깨를 노렸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날카로운 뼈 조각이 그녀의 코트 자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찢어진 코트에서 먼지가 풀풀 날렸다.

    “크윽…!”

    유진은 반격했다. 낡은 칼을 휘둘러 상대의 팔을 노렸지만, 상대는 놀랍도록 민첩하게 움직였다. 이 폐허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짐승 같았다. 약육강식의 법칙은 인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었다.

    뼈 조각과 낡은 칼이 쉴 새 없이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유진은 상대의 눈빛에서 배고픔을 읽었다. 저 자는 나를 먹이로 보고 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모든 생존자가 서로에게 먹잇감이 될 수 있었다.

    몇 번의 공방 끝에, 유진은 겨우 상대와 거리를 벌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상대의 빈틈을 찾으려 애썼지만, 그 기형적인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그 순간, 멀리서 둔탁한 금속성 소리가 울렸다. ‘쿵- 쿵-‘ 하는 규칙적인 소리. 그것은 마치 거대한 망치가 지표를 찍어 누르는 듯한 소리였다. 유진과 상대 모두 동시에 움직임을 멈췄다. 서로를 죽이려던 눈빛에서 일순간의 당혹감과 공포가 스쳐 지나갔다.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의 소리도, 짐승의 소리도 아니었다. 기계적인, 거대하고 위협적인 존재의 발소리 같았다.

    상대는 더 이상 유진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두건 속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소리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폐허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진도 망설일 틈이 없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폐허 깊숙한 곳으로 몸을 던졌다. 쿵- 쿵- 하는 소리는 이미 바로 등 뒤에까지 다가온 듯했다. 진동이 발밑을 흔들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에 몸을 숨긴 유진은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먼지투성이 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울렸다.

    ‘뭐지… 대체…?’

    그때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건물 잔해 위로 드리워졌다. 마치 하늘을 뒤덮은 듯한 거대한 형체. 유진은 두려움에 질려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붉은 황혼 속에서, 그 거대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수십 층 빌딩만 한 높이의 검은 금속 구조물이었다. 불규칙한 팔다리가 수없이 달렸고, 표면에는 섬뜩한 붉은색 광원이 점멸하고 있었다. 거대한 금속 다리가 폐허를 밟고 지나갈 때마다 대지는 흔들렸다.

    그리고, 그 금속 괴물의 몸통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경고. 생체 신호 감지. 즉시 제거합니다.]

    기계음은 차갑고 무감각했다. 유진은 숨을 멈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세상이 황폐해진 이유. 그리고 아직까지도 폐허를 배회하며, 남아있는 모든 생존의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미지의 존재들.

    거대한 금속 괴물의 붉은 광원이 유진이 숨어있는 잔해 쪽을 향해 번뜩였다. 그녀의 심장은 멎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스스슥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 그 기형적인 생존자가 그녀의 바로 옆 잔해 속에 숨어 있었다.

    두려움에 질린 눈빛이 어둠 속에서 마주쳤다. 굶주림과 광기로 가득했던 눈빛은 이제 순수한 공포에 잠겨 있었다. 금속 괴물의 붉은 광원이 더욱 강렬해지며 잔해를 비추기 시작했다.

    유진은 이를 악물었다. 살아야 했다. 이 거대한 죽음의 손아귀에서도.

    그녀의 눈빛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죽어가는 세상, 살아남은 인간, 그리고 그들을 쫓는 미지의 존재. 이 모든 것들이 한데 뒤섞인 곳에서, 그녀는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저 생존자와 손을 잡을 것인가.

    붉은 광선이 잔해를 꿰뚫듯이 덮쳐왔다. 피할 시간은 없었다. 유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다음 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이, 그 어떤 이성보다 강하게 외쳤다.

    ‘죽지 마.’

  • 스페이스 오페라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선체의 외피를 뚫고 들어선 류진의 수트 헬멧 안으로, 잊혀진 문명의 거대한 묘비가 뿜어내는 정적과 먼지 냄새가 스며드는 듯했다.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이 고대 함선은, 차가운 강철의 뼈대만 남긴 채 우주를 영원히 떠돌 운명이었다. 센서는 미약한 잔류 에너지 외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다. 흔한 전원부조차 소멸한, 말 그대로 죽은 거인이었다.

    “젠장, 또 꽝인가.”

    류진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움직임은 능숙하고 빨랐다. 오래된 잔해 속에서 한 줌의 가치를 긁어모아 생존하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손목의 스캐너가 부식된 벽면을 훑자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이상 신호가 깜빡였다.

    일반적인 에너지원이 아니었다.
    고유 주파수도, 알려진 물질의 파장도 아니었다.
    무언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류진은 잠시 망설였다. 이런 미지의 신호는 보통 위험을 동반했다. 오래된 함선에는 미처 소멸하지 않은 방어 시스템이나, 기괴한 변형체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본능, 아니, 그를 지배하는 갈망이 속삭였다. *가치 있을 거야. 엄청나게.*

    그는 망설임을 떨쳐내고 신호를 따라 움직였다. 내부 통로를 따라 깊숙이 들어갈수록, 함선의 부식은 기이하게도 줄어들었다.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외피가 찢겨나간 외부와 달리 내부는 묘하게 보존된 구역이 나타났다.

    “이건… 말도 안 돼.”

    그가 도착한 곳은 함선 한가운데에 위치한 거대한 홀이었다. 수십 미터 높이의 돔형 천장, 매끄러운 금속 벽면은 수만 년의 세월에도 흠집 하나 없었다. 이곳은 부패에서 완벽하게 격리된, 마치 시간이 멈춘 공간 같았다.

    그리고 홀 중앙에, 그것이 떠 있었다.

    수정이었다.
    아니, 수정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기이한 형태였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완벽한 육면체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면을 가진 것처럼 빛을 반사했다.
    내부에서는 심장이 뛰는 듯한, 느리고 몽환적인 맥동이 흘러나왔다.
    어떤 에너지도 감지되지 않았지만,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

    류진은 홀린 듯 다가갔다. 그의 스캐너는 이제 완벽하게 먹통이 되었다. 분석 불가능. 감지 불가능. 그저 그 불가능한 물체가 존재한다는 시각적 정보만이 전부였다.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 장갑이 크리스탈의 표면에 닿기 직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

    *휘이이잉—!*

    손이 닿기도 전에, 크리스탈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류진의 시야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의 눈앞에, 환영이 펼쳐졌다.

    검푸른 하늘 아래, 고대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알고 있던 어떤 문명과도 다른,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숨 쉬는 듯한 건물들.
    공중을 유영하는 거대한 함선들, 하지만 그 함선들은 금속이 아닌, 빛과 에너지로 이루어진 듯했다.
    그리고 그 도시를 가로지르는, 인간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형태의 존재들.
    그들은 손짓 한 번으로 별을 꿰뚫고, 허공에서 에너지를 뽑아내 무기를 만들었다.

    마법이었다.

    그의 이성이 외쳤다. *불가능해!*
    하지만 감각은 생생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거대한 에너지의 떨림. 뇌리를 꿰뚫는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 그는 환영 속에서 고대 문명의 영광과, 동시에 그들을 집어삼킨 거대한 재앙을 목격했다. 별들이 깨지고, 우주가 울부짖는 절망적인 파괴의 순간까지.

    그리고 갑자기, 환영이 칼날처럼 끊겼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경보음이 함선 전체를 뒤흔들었다. 류진의 수트 헬멧 디스플레이가 붉은 경고등으로 가득 찼다.

    [외부 접근 감지. 고에너지 반응. 다수.]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 감지. 발신원: 본 함선.]

    류진은 혼란에 빠졌다. 크리스탈의 마법 같은 환영, 그리고 이어진 외부 침입 경보.
    그가 크리스탈에 닿으려 하자, 크리스탈이 반응한 것이다!

    손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탈은 여전히 느리게 맥동하고 있었다. 그의 피부에 닿았던 곳에서부터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듯 보이더니, 이내 금색의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홀의 벽을 타고 번지며 고대 함선 전체를 비추기 시작했다.

    갑자기, 함선이 부활했다.

    정지했던 시스템이 하나둘씩 깨어나는 소리. 금속이 뒤틀리는 둔탁한 마찰음. 그리고 함선 외부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에너지 포화음.

    *쉬이이이이익—!*

    “젠장! 무슨 짓을 한 거야!” 류진은 소리쳤다.
    그의 함선 ‘그림자 추적자’ 호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류진! 큰일 났어! 네놈이 보낸 파장을 감지하고 사냥꾼들이 몰려들고 있어! 놈들이 널 잡으러 올 거야!”
    호출기 너머로 동료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렸다. ‘사냥꾼’이라 불리는 자들. 황량한 우주에서 고가의 유물을 찾아 헤매며, 필요한 경우 잔혹하게 약탈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는 무리들.

    류진은 재빨리 홀을 벗어나 함선 내부 통로로 몸을 날렸다. 고대 함선의 시스템이 부활하며, 이제는 길을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잠겨 있던 문들이 열리고, 꺼져 있던 조명들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함선 외부에서 굉음이 울리며 무언가 충돌했다.

    *쿠구구구궁—!*

    함선 전체가 흔들렸다.
    적들이 이미 달라붙은 것이다.
    내부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소리. 폭발음.

    류진은 주머니 속에서 방어막 생성기를 꺼냈다. 고대 함선은 깨어났지만, 그를 보호해주지는 않을 터였다. 아니, 오히려 그를 미끼 삼아 다른 생명체들을 끌어들이는 함정이 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크리스탈이 있던 홀에서, 금색 섬광이 통로를 따라 번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빛이 아니었다. 어떤 의지를 가진 듯, 고대 함선의 모든 기능을 되살리는 원천이었다.

    “이게… 마법의 힘이란 말인가?”

    손바닥에 미약한 떨림이 느껴졌다. 크리스탈과 접촉했던 곳에서부터 시작된 감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환영을 본 것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그의 안에 스며들었다.
    피부 속으로, 혈관을 타고, 뇌세포까지.

    그 순간, 류진은 자신의 안에서 새로운 힘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끝에서 미약한 전기가 튀는 듯한 감각.
    그의 눈앞에 흐릿하게 보이던 함선의 시스템이, 갑자기 선명하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그 자신이 함선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함선의 보안 시스템.
    무기 시스템.
    엔진 출력.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마치 본래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흘러들어왔다.

    류진은 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의지에 따라, 부식된 통로를 가로막던 거대한 강철 문이 굉음을 내며 활짝 열렸다.

    “젠장, 이게 무슨…”

    놀라움과 경악,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감정.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거대한 고대 함선이 그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동시에, 함선 외부에서 강력한 블래스터포가 발사되는 섬광이 번뜩였다.
    고대 함선의 선체가 찢겨나가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생생하게 울렸다.

    “류진! 서둘러! 놈들이 메인 코어를 노리고 있어!”

    동료의 절규가 다시 한번 울렸다.
    사냥꾼들은 이 거대한 함선이 깨어나자마자 그 가치를 알아채고 달려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모든 변화의 원인이 류진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적 함선들의 수가 그의 통제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류진은 홀린 듯 달려나갔다. 이 힘이 무엇이든 간에, 그는 이제 도망칠 수 없었다.
    아니,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 고대의 마법이 그를 구원할지, 아니면 더 깊은 나락으로 밀어 넣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 우주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힘이 쥐어져 있었다.

    *콰아아앙!*

    함선 외부에서 다시 한번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충격에 류진은 몸을 휘청였지만, 그의 두 눈은 이글거리는 활성 상태의 고대 함선 코어로 향했다.
    그는 전율했다.
    이제 시작이었다.

  • 이세계 전생 (Isekai)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1: 금기의 그림자 아래】**

    **[장면 1] 에테르 마법 학원, 본관 복도**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에테르 마법 학원. 이 세계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이곳은, 언뜻 보기엔 완벽 그 자체였다. 고대 유적으로부터 솟아난 마나로 빛나는 첨탑들, 푸른 하늘에 닿을 듯 뻗은 장엄한 건물들, 그리고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능력자들이 매일같이 신비한 마법을 펼쳐 보이는 곳. 전생의 내가 살던 팍팍한 회색 도시와는 너무나도 다른, 그야말로 꿈같은 세계… 라고는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디테일 속에 숨어 있는 법이지.

    (리아노는 복도를 걷고 있다. 그의 시선은 천장의 마나 감지 수정에 잠시 머문다. 다른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바쁘게 지나다닌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예를 들면 저거. 구관 별관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설치된 마나 감지 수정들. 언제부터인가 희미하게 깜빡이는 빈도가 늘었다. 아주 미세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깜빡임. 마치 고장 난 형광등처럼. 처음엔 그냥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가 했지만… 글쎄. 마법으로 작동하는 이런 장치들이 그렇게 쉽게 ‘노후화’될까?

    **[장면 2] 마법 기초 실습실**

    (리아노는 책상에 앉아 마법서적을 뒤적이고 있다. 옆자리에서는 친구인 세린이 작은 불꽃을 손끝에서 피워 올리며 장난치고 있다.)

    **세린:** 야, 리아노. 너 또 멍 때리지? 교수님이 질문하면 어쩌려고 그래?

    **리아노:**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걱정 마. 이 정도는 눈 감고도 대답할 수 있으니까. 그보다, 너 마나 제어는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 불꽃이 너무 제멋대로인데.

    **세린:** 칫, 너는 너무 완벽주의자야. 적당히 즐기면서 살라고! 아, 맞다! 너 엘라 봤어?

    (리아노는 고개를 들어 세린을 본다. 엘라. 같은 반 학생이었다.)

    **리아노:** 엘라? 걔가 왜?

    **세린:** 이상하다니까. 저번 주부터 안 보이잖아. 학원 측에서는 ‘개인 사정으로 인한 조기 졸업’이라는데… 엘라가? 그렇게 마법에 진심이던 애가 갑자기? 말도 안 돼. 우리 조별 과제도 같이 했었는데, 아무 말도 없었어.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조기 졸업’. 흔한 변명이군. 전생에서도 회사에서 직원 사라지면 ‘이직’이라든지 ‘건강상의 이유’라든지 얼렁뚱땅 넘어갔었지. 하지만 여긴… 마법 학원인데. 그것도 최고의 엘리트 학원.

    **리아노:** 혹시… 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학원 내에서 싸움이라도?

    **세린:** 글쎄? 그런 소문은 없던데. 오히려 너무 조용해서 더 이상해. 평소 같으면 학원 전체가 떠들썩했을 텐데. 마치… 모두가 입을 맞춘 것처럼.

    (리아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미간을 찌푸린다.)

    **[장면 3] 점심시간, 학원 식당**

    (학생들로 북적이는 식당. 리아노는 세린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 익숙한 뒷모습이 잡힌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카엘 교수님. 아르카나 학과의 수장. 항상 온화한 미소를 띠고 계시지만,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눈빛을 가진 분. 특히 구관 별관 ‘봉인된 구역’ 근처에서 자주 마주쳤던 기억이 난다. 그 구역은 그냥 오래된 서고 겸 창고라고 했는데… 교수님이 직접 그렇게 자주 드나들 이유가 있을까?

    (카엘 교수가 식사를 마치고 일어선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구관 별관 쪽으로 향한다.)

    **세린:** (리아노의 팔을 툭 치며) 야, 또 교수님 빤히 쳐다보고 있냐? 혹시… 교수님께 점수 따려는 거야?

    **리아노:** (무심하게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아니. 그냥… 요즘 학원에 이상한 기류가 느껴져서.

    **세린:** 이상한 기류? 네가 요즘 판타지 소설 너무 많이 읽는 거 아니냐?

    **리아노:** 글쎄. (리아노는 카엘 교수가 사라진 방향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어쩌면 현실이 소설보다 더 기묘할 수도 있지.

    **[장면 4] 해질녘, 학원 구관 별관 복도**

    (수업이 끝나고, 리아노는 일부러 구관 별관 쪽으로 향한다. 복도는 어둡고 한산하다. 저 멀리 ‘봉인된 구역’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복도 천장의 마나 감지 수정은 여전히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봉인된 구역. 그냥 오래된 창고에 굳이 이런 이름까지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리고 이 미세한 마나 감지… 외부에서 유입되는 게 아니라, 안에서 새어 나오는 듯한 느낌. 마치 낡은 수도관에서 물이 새듯, 마나가 새고 있어.

    (리아노는 봉인된 구역의 문 앞에 선다. 낡았지만 견고해 보이는 철문이다. 문고리에는 옅은 마법 봉인이 걸려 있다. 초보적인 수준의 마나 감지로도 느껴질 정도의 약한 봉인.)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허술하군. 아니, 어쩌면… 일부러 이렇게 허술하게 해 놓은 건가? 아무나 드나들게 하려는 의도? 아니면, 그냥 누구도 여기에 접근할 거라고 예상 못 한 걸까?

    (리아노는 손을 뻗어 봉인을 만진다. 약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감각이 손끝을 스친다. 봉인 자체는 약하지만, 단순히 마법으로 해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열쇠’가 필요한 것 같다. 그는 주변을 둘러본다. 오래된 벽, 바닥… 그리고 한쪽 벽에 걸린 낡은 램프.)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이 봉인은… 마나의 ‘흐름’을 감지하는 방식. 특정 마나 패턴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해제되거나, 혹은… 특정 물체에 담긴 마나를 ‘흡수’하는 방식. (그는 램프를 자세히 본다. 램프의 심지에는 희미한 마나 잔류가 느껴진다.) 설마.

    (리아노는 램프를 벽에서 조심스럽게 떼어낸다. 램프는 생각보다 무겁다. 램프의 밑바닥에 작게 새겨진 문양. 그것은 봉인된 구역 문에 그려진 문양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램프를 문고리 바로 아래에 있는 홈에 맞춰 끼운다.)

    (지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에 걸려 있던 마법 봉인이 풀린다. 램프의 마나가 봉인에 흡수된 것이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역시. 이런 구식 트릭이라니. 아니, 어쩌면 이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방식이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걸 수도 있겠군.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안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퀴퀴하고 습한 공기,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역한 비린내.)

    **리아노:** (작게 읊조린다) 맙소사…

    (리아노는 자신의 마나를 손끝에 모아 작은 빛구슬을 만들어낸다. 빛구슬이 어둠을 밝히자,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창고’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장면 5] 봉인된 구역, 지하 입구**

    (열린 문 너머로, 좁고 가파른 돌계단이 끝없이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계단 벽면에는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음산하게 새겨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희미하게 푸른색 마나가 흐르고 있었다. 계단 끝 어둠 속에서는 쿵, 쿵, 하는 불규칙한 진동이 느껴진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처럼.)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이건… 창고가 아니야. 이건… 지하로 향하는 통로. 이 학원 지하에 이런 곳이 숨겨져 있었다니. 이 진동은 또 뭐지? 뭔가… 살아있는 것 같아.

    (그때, 계단 아래에서 희미하게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듯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워하는 듯한 울림. 그리고 그 사이로 분명하게 들려오는, 엘라의 마나 서명과 일치하는 미약한 마나의 파동.)

    **리아노:** (눈을 크게 뜨며) 엘라…? 설마…

    (계단 아래 어둠 속에서, 찰랑거리는 물소리,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더욱 커지는 알 수 없는 진동이 울려 퍼진다. 리아노의 손에 들린 빛구슬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이 학원 지하에 숨겨진 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거대한 것일지도 모른다. 감히 발을 들여놓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군.

    **[장면 6] 클로즈업 – 리아노의 불안한 눈동자**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와 진동, 그리고 엘라의 희미한 마나 파동에 리아노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는 공포와 함께, 알 수 없는 진실을 파헤쳐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다.)

    **리아노 (내레이션):** (생각) 이제… 돌아갈 수 없어. 이 끔찍한 금기의 그림자 아래, 대체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거지?

    (화면 암전)

    **[다음 화 예고]**
    **리아노 (내레이션):** 엘라의 흔적을 쫓아 지하로 내려간 리아노.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학원의 명성 뒤에 가려진 상상을 초월하는 금기의 현장이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