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한없이 깊은 어둠 속을 헤치며, 아틀라스 호는 나아가고 있었다. 인류의 발길이 닿은 가장 먼 변방, 그조차 아득한 옛 기억으로 만들 법한 미지의 심연. 선내를 가득 채운 기계음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었지만, 그 너머에는 별빛조차 닿지 않는 완벽한 정적이 도사리고 있었다.
“캡틴, 현 시간부로 347일째입니다. 특이 사항 없음.”
항해사 지우의 나른한 목소리가 브릿지에 울렸다. 그는 홀로그램 성도 위로 춤추는 점들을 무심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지루함에 절어 있는 목소리였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운 레이더처럼 우주를 스캔하고 있었다.
“그래, 지우. 특이 사항 없다는 게 가장 큰 특이 사항 같군.”
캡틴 서진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함장석에 등을 기댄 채, 눈앞의 메인 뷰스크린을 응시했다. 검푸른 망망대해. 그곳엔 그녀의 고향 행성, 푸른 지구의 흔적이라곤 티끌 하나 없었다. 다만, 별들의 차가운 시선만이 쏟아질 뿐이었다.
그때였다. 지우의 의자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몸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캡틴! 비정상적인 에너지 시그니처 감지! 극도로 미약하지만… 존재합니다!”
서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뭐? 위치는?”
“현재 좌표계에서… 젠장, 정확한 위치가 잡히지 않습니다. 마치…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듯한, 유령 신호입니다.” 지우는 홀로그램 콘솔 위로 손을 번개처럼 움직였다. “잠시만요, 심층 스캔 모드 가동… 잡았다! 방위 231, 고도 17 지점에 약한 중력 이상 파동 감지! 에너지 시그니처와 일치합니다!”
“현수, 미나, 브릿지로 집결!” 서진은 함내 통신을 통해 짧게 명령했다. 잠시 후, 투박한 작업복 차림의 기관장 현수와 생명과학 연구복을 입은 탐사대원 미나가 브릿지에 들어섰다.
“무슨 일입니까, 캡틴?” 현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우가 이상 신호를 잡았어. 중력 이상 파동과 미약한 에너지 시그니처. 심우주에서 이런 건 드물지.” 서진은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미나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홀로그램 성도를 들여다봤다. “탐사선 파견 준비할까요?”
“아니, 직접 간다. 이런 미약한 신호는 탐사선이 놓칠 가능성이 커. 아틀라스 호를 조심스럽게 이동시켜.” 서진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수 시간 후, 아틀라스 호는 문제의 좌표에 도착했다. 메인 뷰스크린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어둠뿐.
“지우, 다시 스캔해봐. 가시광선, 전자기 스펙트럼, 중력파까지 전부.” 서진이 명령했다.
지우의 손이 콘솔 위에서 춤을 추자, 뷰스크린의 해상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저게… 뭐야?” 미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것은 육각형과 오각형,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든 알 수 없는 다면체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빛을 반사하는 대신, 마치 주변의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칠흑 같은 표면. 그것은 어떤 행성도, 소행성도 아니었다. 완벽하게 비대칭적이고, 불가능한 각도로 꺾인 면들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누군가 우주의 법칙을 비웃으며 조립한 조형물 같았다.
“크기 스캔… 직경 최소 20km 이상. 표면은… 어떤 알려진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지우의 목소리에 경외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현수는 인상을 썼다. “빌어먹을, 저게 어떻게 여기에 떠 있지? 추진 기관도 안 보이고, 중력 렌즈 효과도 없는데.”
“중력 렌즈 효과가 없어 보이지만, 중력 이상 파동은 발생하고 있었잖아. 저 존재 자체가 중력 법칙을 비틀고 있는 건지도 몰라.” 서진은 천천히 일어섰다. “접근한다. 최대 출력 빔으로 표면 스캔.”
초고밀도 빔이 칠흑 같은 구조물에 발사되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마치 빛이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듯, 표면에서 사라져 버렸다.
“에너지 흡수율 100%… 말도 안 돼.” 현수가 이를 악물었다.
“미나, 탐사선 준비해. 직접 접촉한다.” 서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현수는 만일에 대비해 대기하고, 지우는 함선 방어막을 최대로 올려.”
미나는 작은 탐사선에 몸을 싣고, 아틀라스 호에서 분리되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칠흑 같은 구조물에 접근했다. 가까이 갈수록, 그것은 더욱 거대하고, 더욱 불가능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표면에는 어떤 이음새나 접합부도 없었다. 완벽하게 단일한 덩어리처럼 보였다.
“표면 온도, 영하 270도… 아니, 절대 영도에 가까워요. 열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류의 복사열도 감지되지 않아요.” 미나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탐사선의 로봇 팔을 내밀었다. 로봇 팔의 끝이 구조물에 닿자마자, ‘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팔의 센서가 오류를 뿜어냈다.
“전기장이… 아니, 이건 전기장이 아니에요. 내 로봇 팔이… 녹아내리고 있어요. 금속이… 액체처럼 변하고 있어요.”
“미나! 즉시 후퇴해!” 서진이 급히 외쳤다.
미나는 탐사선을 급회전시켰다. 다행히 구조물에 닿았던 로봇 팔 부분만 손상되었을 뿐, 탐사선 자체는 무사했다.
아틀라스 호로 복귀한 미나는 흥분과 공포가 뒤섞인 얼굴이었다.
“캡틴, 저건 우리가 아는 어떤 물질도 아니에요. 만져지는 순간, 금속의 분자 구조가 통째로 붕괴돼요. 그런데… 뭔가 이상해요.”
“뭐가 말이야?” 현수가 물었다.
“제가 구조물에 닿았던 순간… 아주 짧게, 제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갔어요. 형언할 수 없는 이미지들… 비정형적인 공간, 끊임없이 뒤틀리는 시간… 마치 오래된 기억 같았어요. 혹은, 미래의 예언 같기도 하고…” 미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젠장,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그날 밤부터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현수는 기관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기계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소리, 낮게 읊조리는 속삭임 같은 것들. 하지만 점검 결과,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지우는 자꾸만 꿈을 꾸었다. 무한한 어둠 속에서 거대한 촉수들이 춤을 추고, 수많은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는 꿈. 꿈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미나는 구조물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보였다. 그녀는 식사도 거른 채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구조물에서 보내온 극히 미약한 에너지 파동을 분석하려 애썼다. 그녀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고, 입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서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잠들 때마다 낯선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이름은 아니었지만,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녀의 이름을 불러왔던 것 같은 목소리. 때로는 그것이 그녀의 심장 소리처럼 느껴졌고, 때로는 아틀라스 호의 선체가 내는 낮은 삐걱거림처럼 느껴졌다.
선내는 점차 싸늘하게 식어갔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듯, 서로의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불편해졌다.
“캡틴, 저것… 저 검은 덩어리가 우리를 감염시키고 있습니다.” 미나가 어느 날 갑자기 서진에게 찾아와 속삭였다. 그녀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것은 물질이 아니에요. 그것은… 생각이에요. 이 우주보다 더 오래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의 생각이에요!”
“미나, 진정해. 너무 무리했어.” 서진은 그녀를 달래려 했다.
“아니에요! 난 보고 있어요! 어둠 속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것들을! 지우의 꿈에 나오는 촉수들이 현실이 되고 있어요! 현수가 듣는 소리들이 이제… 내 머릿속에서도 들려요!” 미나는 자신의 귀를 틀어막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살려줘… 제발… 그들이 오고 있어…”
미나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며칠 뒤, 지우는 브릿지에서 발작을 일으켰다. 그는 뷰스크린을 가리키며 소리 질렀다. “저기! 저기에 보여! 검은 덩어리 안에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저것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어!”
서진이 뷰스크린을 바라봤지만,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칠흑 같은 구조물만 보일 뿐이었다.
“지우! 진정해!”
하지만 지우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손톱으로 뷰스크린을 긁어대며 절규했다. “날 잡지 마! 저것들이 날 데려가려고 해! 나의 심장을, 나의 정신을 찢어 발기려고 해!”
그날 저녁, 현수가 미나를 찾아갔다.
“미나, 너… 괜찮은 거지? 요즘 통 안 보여서… 걱정돼서 왔다.”
미나는 연구실 구석에 웅크린 채 현수를 노려봤다. “걱정? 아니, 넌 궁금한 거겠지. 내가 뭘 알아냈는지. 저 검은 존재의 비밀을 캐내서 네 영웅심을 채우고 싶은 거겠지!”
“무슨 소리야? 난 그저…”
“거짓말! 너희 모두 거짓말쟁이야! 그분들의 속삭임이 들려! 너희를 배신하라고, 나만 살려주겠다고!” 미나는 비명을 지르며 현수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손톱은 날카로운 갈고리처럼 현수의 얼굴을 할퀴었다.
현수는 가까스로 미나를 밀쳐내고 도망쳤다. 그는 자신의 팔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며, 공포에 질려 기관실로 달려갔다.
서진은 선내 전체의 비정상적인 정신 활동을 감지했다. 승무원들의 정신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다. 그 원인은 명백했다. 칠흑 같은 구조물.
그녀는 함장석에 앉아 메인 뷰스크린을 응시했다. 뷰스크린 속의 구조물은 마치 이빨을 드러낸 괴물처럼 보였다. 어둠을 씹어 삼키는 존재.
‘저것을 제거해야 해.’
서진의 머릿속에 그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유일한 해결책.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뷰스크린을 만졌다.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 그때, 그녀의 손에 닿은 뷰스크린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뇌리에 다시 한번 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는 뚜렷했다.
“그분을 깨우지 마라… 네 존재는… 먼지보다도 하찮다…”
서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목소리는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아틀라스 호의 선체 전체에서, 우주 전체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함장석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비상용 권총을 꺼내 들었다.
“캡틴! 뭐 하는 겁니까!” 기관실에서 달려온 현수가 소리쳤다. 그의 얼굴에는 미나가 할퀸 상처가 선명했다.
“현수… 우리는… 저것을 파괴해야 해. 저것이 우리를 잠식하기 전에.” 서진의 목소리는 공허했다.
“안 됩니다! 캡틴! 무력으로 저걸 파괴할 순 없어요! 로봇 팔도 통째로 녹아내렸잖아요!”
“아니… 방법이 있어. 저것은… 우리와 연결되어 있어.” 서진은 권총을 들어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연결을 끊어야 해. 내가… 내가 희생해야 해.”
“캡틴!” 현수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현수가 서진에게 닿기 직전, 미나가 연구실에서 뛰쳐나왔다.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공포에 질린 눈으로 현수를 노려봤다.
“멈춰! 현수! 캡틴을 방해하지 마! 그분들이 원하시는 건… 완벽한 희생이야!” 미나는 손에 들고 있던 날카로운 메스로 현수의 어깨를 찔렀다.
현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쓰러졌다. 그의 눈은 공포와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나는 피 묻은 메스를 든 채 웃었다. 그 웃음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분들이 오실 거야… 드디어… 우리를 데리러 오실 거야!”
서진은 미나와 현수, 그리고 공포에 질려 바닥에 쓰러진 지우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들의 눈빛은 이미 그녀가 알던 승무원들의 것이 아니었다. 광기와 절망만이 가득했다.
그녀는 다시 권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눴다. 이제 망설임은 없었다. 이대로는 모두가 저 칠흑 같은 존재의 먹이가 될 뿐이었다.
“안녕히, 동료들… 그리고… 안녕히, 우주.”
그녀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아틀라스 호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메인 뷰스크린 속 칠흑 같은 구조물이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개의 거대한 촉수들이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검은 어둠 속에서 유영하며, 아틀라스 호를 향해 맹렬한 속도로 돌진했다.
마치 우주 자체가 거대한 입을 벌려 이 불청객을 삼키려는 듯했다.
서진의 손에서 권총이 떨어졌다. 그녀의 눈은 뷰스크린 속 끔찍한 광경에 고정되었다.
“왔어… 그분들이… 드디어 오셨어…” 미나의 광기 어린 속삭임이 브릿지를 가득 채웠다.
아틀라스 호의 방어막이 굉음과 함께 찢겨 나갔다. 칠흑 같은 촉수들이 선체에 닿자, 금속은 녹아내리고, 전선은 불꽃을 튀기며 끊어졌다.
함내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어둠.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끔찍한 존재들이 아틀라스 호를 완전히 집어삼키는 소리뿐이었다.
아틀라스 호는 그렇게, 미지의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갔다.
그 안의 승무원들의 비명조차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정적 속에서.
오직, 우주의 차가운 침묵만이 그 모든 것을 감싸 안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