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오직 제 상상에서 피어난 허구의 기록이며, 현실과는 어떠한 연관도 없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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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오래된 먼지 속에서 속삭이는 그림자**
늘 그랬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루함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순간, 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낡은 것들을 찾아 헤매곤 했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오래된 것들, 잊혀진 것들이었다. 폐허가 된 한옥 마을의 삐걱이는 대문, 잡풀 무성한 뒷산의 오래된 무덤, 그리고… 도시 한복판에 자리한,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잊은 듯 고요히 잠들어 있는 ‘시립 도서관’의 금지된 구역이었다.
도서관의 제일 구석,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비밀 자료실’. 어릴 적부터 귀가 닳도록 들었던 괴담의 주역이자, 지우에게는 미지의 보고였다. “거기 들어갔다가 실종된 사람이 많대.” “귀신이 나온다더라.” “불의의 사고로 폐쇄된 이후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했어.” 직원들조차 고개를 젓는 곳. 낡은 나무 널빤지로 겨우 가려져 있었지만, 그 틈새로 스며드는 어둠은 오히려 지우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늘이야.”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끈적하고 후텁지근한 오후였다. 시험 기간이 끝나자마자 지우는 익숙하게 도서관으로 향했다. 열람실에는 에어컨 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망설임 없이 복도 끝, 가장 햇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향했다. 녹슨 경첩 소리마저 삼켜버릴 듯한 적막감 속에서, 지우는 가방에서 작은 손전등을 꺼냈다. 낡고 삭은 널빤지를 헤치고 들어서는 순간,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흡사 오래된 피 냄새 같기도 했다.
발을 들이는 순간, 시간마저 멈춘 듯했다. 바닥에는 두꺼운 먼지가 카펫처럼 깔려 있었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 푹’ 하고 희미한 소리를 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두꺼운 합판으로 가려져 있어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았다.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비추는 곳마다 거미줄이 끈적한 커튼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주인을 잃은 듯한 거미들이 꿈틀거렸다. 책들은 제멋대로 무너져 내린 채 쓰러져 있었고, 표지는 시커멓게 변색되어 형체를 알아보기조차 힘들었다. 이곳은 분명 도서관이었지만, 더 이상 지식의 보고가 아닌 시간의 무덤 같았다.
“와… 이건 진짜…”
지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일반적인 장서들과는 다른, 고대의 서적들, 혹은 출처를 알 수 없는 기록물들이 가득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책 더미를 헤치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눅눅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곳에는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단지 ‘오래된 책’ 이상의 것. 지우의 촉이 경고와 함께 희미한 설렘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거대한 책장 뒤편, 무너진 나무 판자들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무엇. 빛이라기보다는, 어둠 속에서 홀로 온기를 내뿜는 듯한 미묘한 광채였다. 마치 캄캄한 밤하늘에 홀로 떠 있는 희미한 별똥별처럼, 주변의 어둠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둠을 끌어들이는 듯한 기이한 빛이었다. 지우는 홀린 듯 다가갔다. 그곳에는 낡고 오래된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겉면에는 이제는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선들과 점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건… 뭐야?”
지우는 숨을 들이켰다. 손을 뻗자, 묘한 끌림이 느껴졌다.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었다. 마치 자석처럼, 그의 손이 상자를 향해 저절로 움직이는 듯했다. 망설임 끝에 손가락이 상자의 표면에 닿았다.
*찌릿!*
정전기처럼 익숙한 감각, 하지만 훨씬 강렬하고 불쾌하지 않은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지우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동시에 그의 눈앞에 짧고 강렬한 섬광이 스쳤다.
수만 개의 별들이 쏟아지는 밤하늘, 거대한 바위들이 솟아 있는 황량한 대지, 그리고 그 위에서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린 채 무언가를 외치는 사람들의 실루엣… 귓가에 울려 퍼지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딘가 모르게 장엄하고 숙명적인 음절들. 마치 태초의 언어인 듯, 뇌리에 박히는 소리였다.
그는 화들짝 놀라 손을 뗐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폐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는 것 같았다. 상자는 다시 평범한 나무 상자로 돌아가 있었다. 아무런 빛도,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 착각이었을까? 지우는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했다. 그의 손끝이 아직도 미세하게 저릿했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묘하게 일렁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방금 전의 환영이 눈꺼풀 뒤에 잔상처럼 남은 것처럼.
“환영… 일 리가 없는데.”
몸 안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묘한 활력이 온몸을 감쌌다. 지우는 다시 조심스럽게 상자에 손을 뻗었다. 이번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상자를 들어 올렸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상자 안에는… 단 하나의 물체가 놓여 있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검은 돌. 칠흑 같은 어둠을 머금은 듯 매끄럽고 윤이 나는 표면은 마치 밤하늘의 조각을 떼어낸 듯했다. 지우는 그 돌을 조심스럽게 꺼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돌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평범한 돌멩이가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돌을 쥐는 순간,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쿵!* 뇌를 뒤흔드는 충격과 함께, 이번에는 머릿속에서 아까의 음절들이 더욱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의 시야가 일렁였다. 눈앞의 낡은 책장과 먼지 쌓인 책들이 흐릿하게 보이다가, 순간적으로 투명하게 변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책장 너머의 벽, 그 너머의 공간까지 꿰뚫어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이한 감각.
너무 강렬한 자극에 지우는 돌을 놓치고 말았다. 검은 돌은 바닥에 떨어져 먼지 속으로 굴러들어 갔다.
“젠장… 뭐야, 대체…”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그는 허둥지둥 돌을 주웠다. 돌은 다시 평범한 검은 돌로 돌아가 있었다. 어떤 빛도, 어떤 특이한 느낌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우는 알 수 있었다. 이 돌이 보통의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아까 경험한 것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각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돌을 조심스럽게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것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상자가 놓여 있던 책장 뒷벽. 낡고 바랜 벽지에 희미하게 그려진 문양. 상자에 새겨져 있던 것과 똑같은 기하학적인 무늬였다. 단지 그것뿐이 아니었다. 도서관 입구의 낡은 석상 어딘가에서, 교내 게시판의 오래된 낙서에서, 심지어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인형의 부러진 날개에서도 본 기억이 있는 문양이었다.
희미한 기억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그는 상자를 다시 책장 뒤편에 놓아두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저 오래된 도서관의 비밀을 파헤치고 싶었던 평범한 고등학생에게, 이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비밀이 쥐어진 것 같았다.
지우는 서둘러 비밀 자료실을 빠져나왔다. 도서관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가벼웠지만, 동시에 무거운 비밀을 짊어진 듯했다. 주머니 속의 검은 돌은 희미한 온기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삶은, 이제 막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틀어지기 시작했다.
그 밤, 지우는 잠 못 이루고 자신의 방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낡은 스탠드 불빛 아래, 그는 검은 돌을 꺼내 조심스럽게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아까의 경험은 꿈이 아니었다. 여전히 몸 안에서 끓어오르는 미약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는 돌을 응시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매끄러운 표면을 더듬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겨진 문양을 발견했다. 낮에 도서관 벽에서 보았던 그 문양과 동일한 것이었다. 손톱만 한 크기로 새겨진 그 문양은 마치 작은 심장처럼 희미하게 박동하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뭔데.”
지우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혼란과 함께 깊은 호기심으로 빛났다. 그는 돌을 든 손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낮에 귓가에 울렸던, 그 장엄하고 이해할 수 없던 음절들을 떠올려보려 애썼다. 기억은 희미했지만, 단 한 단어만은 선명했다.
‘에트나.’
그는 무심코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냈다. 낮게 읊조리는 순간, 손 안의 검은 돌이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낡은 스탠드 불빛이 ‘찌직’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깜빡였다. 그리고는 마치 과부하가 걸린 것처럼 *펑!* 하고 터져 버렸다.
순식간에 방 안은 어둠 속에 잠겼다. 지우는 놀라서 돌을 떨어뜨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터진 전구에서는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게… 나 때문에?”
지우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어둠 속에서도 그의 손끝이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단순히 전구가 터진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떨어진 돌을 주웠다. 차가운 돌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우는 확신했다. 이 돌이, 그리고 방금 자신이 경험한 것이, 그의 평범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미스터리의 시작이라는 것을.
어둠 속에서, 지우의 눈은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알 수 없는 힘. 고대의 마법.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수수께끼. 그의 발아래 펼쳐진 것은 단순한 호기심의 탐험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예정된 운명, 혹은 거대한 음모의 실마리였다.
그는 다음날 아침,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 문양.
그리고… ‘에트나’.
그 두 가지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