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푸른 심장, 얼어붙은 영혼
하늘 끝, 아득한 구름 너머에 자리한 천랑궁(天狼宮)은 은하수의 정기를 모아 지은 듯 영롱하게 빛났다. 그곳의 주인, 천랑신군(天狼神君)은 옥좌에 기대어 늘 그러했듯 희뿌연 안개에 싸인 인간계를 굽어보고 있었다. 그의 백색 도포 자락은 별빛을 머금은 듯 반짝였고, 은빛으로 물든 머리칼은 신비로운 광채를 뿜어냈다. 수려한 얼굴은 언제나 냉철하고 고고했으나, 깊이를 알 수 없는 그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천랑신군은 태초부터 존재했던 신성한 존재였다. 그는 북두칠성의 운행과 은하수의 흐름을 관장하며, 천계의 굳건한 율법을 수호하는 자 중 하나였다. 그의 시간은 영원과 같았고, 그의 삶은 거대한 질서 속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이어져 왔다. 수많은 세월 동안 그는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의 심장은 마치 얼음으로 빚어진 듯, 어떠한 파동도 허락하지 않는 견고한 성과도 같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천랑신군은 그저 익숙한 시선으로 만상(萬象)을 훑고 있었다. 인간들의 어리석은 다툼, 덧없는 사랑, 끊이지 않는 욕망. 그 모든 것이 그의 눈에는 한낱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이었다. 그의 시선은 태고의 숲으로 향했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아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그곳은 언제나 그러했듯 평온했다. 거대한 고목들이 하늘을 뚫을 듯 솟아 있고, 폭포수는 은빛 물줄기를 쏟아내며 바위 틈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천랑신군의 무감했던 시선이 순간적으로 멈춰 섰다. 숲의 가장 깊은 곳, 폭포수가 떨어지는 작은 연못가에서 눈부시게 푸른 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숲의 모든 생명력이 한곳에 응축된 듯한, 경이로운 색채였다.
호기심은 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천랑신군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그곳에 고정했다. 푸른 빛이 옅어지자, 그 안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연못가의 바위에 앉아 있었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뚫고 내려와 그녀의 머리칼에 부서졌고, 얇은 비단 같은 옷자락이 푸른 연못물 위로 살랑였다. 그녀의 피부는 백옥처럼 희었고, 작은 얼굴에는 맑은 이슬을 머금은 듯한 눈망울이 빛났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를 감싸고 있는 듯한 생명의 기운이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초록빛 정기(精氣)는 주변의 풀잎과 꽃잎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시들었던 꽃이 되살아나고, 작은 새들이 그녀의 어깨에 앉아 지저귀었다.
그녀는 마치 숲 그 자체인 듯했다.
천랑신군은 처음으로, 그 존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손바닥에 작은 씨앗 하나를 올려놓고 있었다. 연못물에 손을 담그자, 씨앗은 그녀의 손안에서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초록빛 새싹이 힘겹게 껍질을 뚫고 나오자, 그녀의 얼굴에는 순수한 기쁨이 가득 피어났다. 그녀는 씨앗에 대고 나직이 노래를 불렀다. 그 목소리는 숲의 바람 소리 같았고, 폭포수의 물방울 소리 같았으며, 새벽의 햇살이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 같았다. 인간계의 어떤 미성(美聲)도 이토록 깊은 생명의 울림을 담지는 못할 터였다.
아린. 숲의 정령. 숲의 가장 오래된 고목에서 태어나, 오직 숲의 생명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존재.
천랑신군은 수천, 수만 년을 살아오면서 온갖 신비롭고 경이로운 존재들을 보아왔다. 그러나 아린과 같은 존재는 처음이었다. 그녀의 존재는 천랑신군의 얼어붙은 심장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는 듯했다. 그의 영혼에 깃든 오랜 공허함이 그녀의 순수한 생명력 앞에 처음으로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신은 인간계의 일에 개입할 수 없었다. 특히, 그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거나, 종족의 굴레를 넘어서는 감정을 품는 것은 천계의 가장 엄중한 율법 중 하나였다. 그것은 혼돈을 야기하고, 우주의 질서를 뒤흔드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수많은 신들이 이 금기를 어겨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었다. 천랑신군은 그 모든 역사를 알고 있었고, 누구보다도 율법을 수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선은 아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 얼굴에 스치는 미소, 나직이 읊조리는 노랫소리. 그 모든 것이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고 있었다. 잊고 지냈던 감정의 조각들이 마치 얼음 조각처럼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리석군.”
천랑신군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는 낮은 저음으로, 바람 소리처럼 천랑궁의 허공에 흩어졌다. 어리석은 것은 아린이 아니었다.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자신이었다.
그는 애써 시선을 거두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의 영혼이 이미 아린의 푸른 생명력에 붙들린 듯했다. 그의 얼어붙은 심장은 다시 차갑게 굳어지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뜨거운 갈증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천랑신군은 깊은 고뇌에 잠겼다. 율법을 어기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저토록 순수한 존재를 알게 된 이상, 다시 예전의 공허함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의 영원한 삶은 저 푸른 빛을 알기 전과 후로 나뉠 것만 같았다.
구름이 다시 두터워지며 숲을 가렸다. 아린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천랑신군의 눈앞에는 여전히 그녀의 미소와 노랫소리가 아른거렸다.
그는 옥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신전의 공기가 그의 백색 도포를 스쳤지만, 그의 심장은 이미 다른 온도를 품고 있었다.
“천계의 율법이라…”
천랑신군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냉철함이 아닌, 미지의 세계로 발을 들이는 자의 옅은 설렘이자 위험한 결심의 시작이었다. 그는 율법의 칼날이 자신의 목을 겨눌지라도, 더 이상 그녀를 외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그의 영혼은 그녀의 푸른 생명력에 매혹되었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