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은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듯한 황량한 행성, 사막화된 메마른 대지 위에 서 있었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모래바람은 그의 얼굴을 사정없이 할퀴었고, 저 너머의 붉은 노을은 마치 오래된 상처처럼 쓰리게 번져 있었다. 수많은 시간대를 떠돌며 닳고 닳은 그의 시간복은 이제 원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의 손에 들린 시간 조율 장치는 희미하게 맥박치고 있었다. 지난 수백 개의 시간대에서 좇아온, 그의 기억 상실과 직결될지도 모르는 미약한 신호가 이곳, ‘별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폐허 속에서 가장 강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구조물 잔해가 모래 속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한때는 찬란했을 첨단 문명의 흔적이 이제는 단지 풍화된 뼈대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안은 조심스럽게 잔해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부의 공기는 얼어붙은 시간처럼 무겁고 차가웠다. 곳곳에 흩어진 파손된 장치들과 깨진 데이터 패드들은 이곳에서 어떤 격렬한 사건이 벌어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간 조율 장치의 떨림이 더욱 거세졌다. 이안은 진동이 이끄는 대로 한때 중앙 제어실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단 하나의 장치가 있었다. 검은 유리가 덮인, 정체불명의 조작 패널이었다. 오랜 시간의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지만, 이안의 손이 닿자 패널의 틈새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그리고 그 빛은 그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다.
“드디어….” 이안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수많은 밤을 헤매고 수많은 절망을 겪은 끝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패널의 먼지를 닦아냈다. 푸른빛은 더욱 선명해지더니, 중앙에 작고 둥근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서서히 떠올랐다. 흐릿한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는 한 여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오랜 거울을 들여다보는 듯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녀는 흰색 연구복을 입고 있었고, 그녀의 눈은 깊은 슬픔과 함께 어떤 결의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잔인한 무음 속에서, 그녀의 입술이 만들어내는 단어들만이 이안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이안… 시간을… 멈춰야 해….’
그 순간, 홀로그램이 강한 섬광을 내뿜으며 터져 버렸다. 빛이 사라지자, 이안의 머릿속에 파편화된 기억의 조각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차가운 금속성 소음, 거대한 균열이 열리는 듯한 파열음, 그리고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이안! 안 돼…!’ 이어지는 격렬한 충격,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 그리고 모든 것이 정지하는 듯한 먹먹한 침묵… 차가운 어둠이 그를 덮쳤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기억은 마치 꿰맬 수 없는 찢어진 천 조각처럼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절박한 목소리였다. 그녀는 누구인가? 그녀의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 끔찍한 충격은… 그의 기억 상실과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거대한 슬픔이 밀려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 같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폐허의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떨던 이안은 문득, 깨진 패널 옆에 떨어진 작은 금속 칩을 발견했다. 그의 손이 칩을 집어 들었다. 칩의 표면에는 긁힌 자국들 사이로 흐릿하게 새겨진 문구가 있었다.
‘마지막 조각은, 가장 어두운 곳에.’
이안은 칩을 꽉 쥐었다. 슬픔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이, 혹은 더 깊은 절망의 그림자가 그의 마음속에 피어났다. 그 여인의 눈빛과 그 칩의 문구는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동시에, 자신이 직면해야 할 진실이 얼마나 혹독할지 짐작하게 했다.
그때였다. 폐허의 저 멀리서, 고요를 깨고 미약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발자국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이 이안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과연 저 그림자는 그를 돕기 위해 온 아군일까, 아니면 이 모든 혼란의 원인과 관련된 또 다른 적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