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깃든 산맥 아래, 회색빛 먼지가 자욱한 사막과 같은 땅. 그곳에 ‘새벽벌’이라는 이름의 작은 촌락이 있었다. 이름과는 달리 새벽은커녕 밤의 그림자가 더 짙게 드리운 듯한 곳이었다. 몇 안 되는 허름한 집들은 툭 치면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웠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 대신 흙먼지 낀 피로와 체념이 깊게 패어 있었다. 희미한 달빛조차도 그들의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지 못했다.
“이봐, 노인장! 세금은 어디에 두었지? 오늘은 해 질 녘까지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흙바닥에 깔린 적막을 갈랐다. 제국 병사, 아니, 제국의 ‘정령사’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하급일지언정 몸에 흐르는 미약한 기운을 통해 평범한 인간들을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의 철갑옷은 먼지투성이였지만, 그들이 휘두르는 채찍은 여전히 매서웠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웅크렸다.
진우는 밭고랑에 엎드려 숨을 죽였다. 고작 스무 살, 그는 새벽벌 촌락에서 가장 꼿꼿한 허리를 지닌 젊은이였으나, 지금은 그저 흙 속에 몸을 숨기는 데 급급했다. 그의 눈앞에서 어머니뻘 되는 여인이 쌀 한 톨 없는 곡식자루를 내밀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이미 수없이 많은 절망을 보아온 듯 텅 비어 있었다.
“나으리, 보시다시피… 작년 흉작으로 모두 말라 죽었습니다. 올해는 가뭄까지 들어서… 제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시끄럽다! 네년의 거짓말은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다! 황제의 은총을 거부하는 역도들 같으니!”
정령사 중 하나가 여인의 어깨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 흙먼지가 풀썩 일었다. 여인의 찢어진 소복 아래로 핏자국이 번지는 것이 진우의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분노였다. 그러나 동시에 무력감 또한 밀려왔다.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매번 그랬다.
그때, 또 다른 정령사가 낄낄거리며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도는 영석 조각이 들려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권능을 상징하는 듯 섬뜩하게 빛났다.
“저기 저 아이는 제법 쓸 만하겠군. 이 마을에서 가장 곱상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나? 제국군 막사에서 하녀로 쓰면 딱 좋겠어.”
그의 시선이 진우의 여동생, 열세 살 난 ‘아린’에게 향했다. 아린은 두려움에 질린 채 어머니의 뒤에 숨어 있었다. 진우의 손이 저절로 흙바닥의 돌멩이를 움켜쥐었다. 손톱이 파고드는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안 돼… 안 돼…” 진우는 속으로 뇌까렸다. 그의 속삭임은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정령사는 거침없이 아린의 머리채를 잡아 끌어냈다. 아린은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어머니는 찢어진 다리로 기어가며 매달렸지만, 정령사의 발길질에 또다시 쓰러졌다. 진우의 눈앞이 피처럼 붉게 물들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서 뭔가가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흙투성이 손으로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운 무언가가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놔라… 내 동생에게서 손 떼!”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밭고랑의 정적을 깼다. 정령사들이 일제히 진우를 돌아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벌레 한 마리가 감히 울부짖는 것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오호라? 이 촌뜨기가 황제 폐하의 병사에게 대드는 것이냐?”
정령사 중 한 명이 희미한 기운을 손에 모으며 진우에게 다가왔다. ‘기운장’이라는 하급 술법이었다. 맞으면 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몸속에서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마치 용암처럼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그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생경한 감각이었다. 그의 심장을 태우는 분노와 함께 전신을 휩쓸었다. 그의 눈에 이글거리는 불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
“뭣들 하느냐! 저 하찮은 것을 당장 끌어내 황제 폐하의 법도를 가르쳐라!”
대장 격인 정령사가 격노하며 소리쳤다. 그 명령에 따라 두 명의 정령사가 거친 웃음을 흘리며 진우에게 달려들었다. 진우는 눈을 감았다. 살고 싶다는 생각보다, 동생을 지키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이 그의 전신을 감쌌다. 그의 심장에서 끓어오른 뜨거운 기운이 마치 용암처럼 팔다리를 타고 흘렀다. 땅속 깊이 박혀 있던 뿌리들이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의 시야가 이전과는 다르게 선명해진 것 같았다.
정령사 한 명이 ‘기운장’을 실은 주먹을 휘둘렀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숲 속의 맹수처럼 거칠고 예측 불가능했다. 정령사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이어서 진우는 제 몸을 던지듯 달려들어 정령사의 다리를 걸었다. 그 동작에는 어떤 기술도 없었지만, 끓어오르는 기운이 실린 몸놀림은 평소의 진우와는 확연히 달랐다.
“컥!”
정령사는 균형을 잃고 흙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정령사가 허리춤에서 시퍼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검 끝에 미약한 기운을 실어 진우에게 찔러 넣었다. 진우는 몸을 숙여 검을 피한 후, 쓰러진 정령사의 허리춤에서 칼집을 뽑아 들었다. 칼집은 비록 무딘 나무 조각이었으나, 진우의 손에서는 마치 날카로운 검처럼 휘둘러졌다. 그의 몸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원초적인 힘이 칼집에 실리는 듯했다.
“크악!”
그의 칼집이 정령사의 손목을 강타했다. 검이 땅에 떨어지는 소리가 쨍하고 울렸다. 진우는 망설임 없이 발길질로 정령사의 복부를 찼다. 정령사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마을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아무도 감히 제국의 병사에게 대항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들은 진우를 보았다. 흙투성이 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눈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한 명의 평민이, 무기력한 백성이, 제국의 정령사 두 명을 물리친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저 놈을 죽여라! 죽여!”
대장 정령사가 격노하며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손에 푸른 기운을 모아 술법을 시전했다. ‘빙결탄’. 작은 얼음 조각들이 진우를 향해 날아갔다. 진우는 몸을 날려 피했다. 얼음 조각들은 그의 뒤편의 허름한 집에 박혔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깊은 균열이 생겼다. 저런 술법은 마을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부술 수 있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그 순간, 한 그림자가 진우의 옆으로 바람처럼 날아들었다.
“진우야, 이 바보 같은 자식! 무모하게 굴지 마!”
그림자는 다름 아닌 가람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뛰어난 사냥꾼의 딸이자, 진우의 오랜 친구였다. 그녀의 손에는 날카로운 사냥칼이 들려 있었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장 정령사를 향해 칼을 던졌다. 그녀의 칼은 단순한 무쇠였지만, 숙련된 사냥꾼의 손에서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정확했다.
칼은 정령사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령사는 비틀거렸다. 작은 상처였지만, 그의 기세는 한풀 꺾였다.
“가람아!” 진우가 외쳤다. 가람은 진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도망쳐! 우선 도망쳐야 해!”
그녀는 진우를 이끌고 밭고랑을 가로질러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정령사들의 고함소리가 쫓아왔다.
“잡아라! 저 역적들을 잡아라!”
진우는 뛰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아린은 여전히 땅에 쓰러진 어머니 옆에 주저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두려움에 질린 아린의 눈빛, 그리고 무기력한 어머니의 모습이 그의 뇌리에 박혔다.
“젠장…”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다. 잠시 물러서는 것뿐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 모든 것을 되갚아 줄 것이다. 그의 심장 속에서 솟구치는 기운은 이제 차가운 분노와 뜨거운 복수심으로 뒤섞여, 그의 전신을 새로운 힘으로 채우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땅과 연결된, 세상의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듯한 끈질긴 생명력이었다.
***
칠흑 같은 밤,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작은 동굴에서 진우와 가람은 숨을 고르고 있었다. 둘의 옷은 흙과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숨은 턱 끝까지 차 있었다.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바람 소리만이 그들의 불안한 마음을 더욱 흔들었다.
“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가람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자칫하면 잡혀 죽을 뻔했잖아! 네가 죽으면 어쩌려고!”
진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허벅지에 박힌 작은 얼음 조각을 뽑아냈다. 쓰라린 통증이 스쳤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그럼 보고만 있으란 말이냐? 아린이 잡혀가는 것을?” 진우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다. 분노가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깊은 결의가 배어 있었다. “어머니는 또 당하셨고… 매년 똑같은 일이 반복돼. 이젠 지긋지긋해. 더 이상은 못 참아.”
가람은 진우 옆에 앉았다. “알아. 나도 알아. 하지만 우리 같은 평민이 어떻게 제국에 대항해? 그들은 술법을 쓰고, 우리는 맨주먹뿐인데. 무모한 짓이야, 진우야.”
“맨주먹?” 진우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흙이 잔뜩 묻은 투박한 손이었지만, 그 안에서 아직도 뜨거운 기운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니, 가람아. 나는… 나는 뭔가 느껴졌어. 내 몸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치는 것을. 그 정령사들을 밀쳐낼 때… 뭔가 달랐어. 평소와는.”
가람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진우의 손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정말? 네가…? 혹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평민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일, 기운을 느끼고 다룰 수 있다는 것은 제국의 선관이나 특출난 자들에게만 허락된 능력, 혹은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그들이 아린을 데려가려 했을 때…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어. 내 가족, 내 마을. 아무것도.”
진우의 말에 가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에도 오랜 시간 쌓인 분노와 슬픔이 어려 있었다. 제국의 수탈로 인해 그녀의 아버지도 병들어 죽었고, 사냥터는 제국군의 훈련장으로 변해 버렸다. 이 고통은 비단 진우의 가족만의 것이 아니었다. 모든 평민의 고통이었다.
“혼자서는 안 돼. 하지만 우리처럼 지친 사람들이 많아. 태수 아저씨도… 마을 사람들도… 모두 지옥 같은 삶을 살고 있어.” 가람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희미한 희망이 섞여 있었다. “만약 우리가…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진우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 혼자서는 안 돼. 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제국의 병사들이 술법을 쓴다고 해도, 그들도 결국 사람이야. 그들의 술법이 통하지 않는 곳도 있을 테고, 우리가 더 많은 수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무모해.”
동굴 입구에서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우와 가람은 화들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림자 속에 서 있는 것은 덩치 큰 사내였다. 그의 얼굴은 험악했지만, 눈빛은 깊은 회한과 오랜 세월의 지혜를 담고 있었다. 바로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이자 전직 나무꾼이었던 태수였다. 그는 과거 제국군에 징집되었다가 겨우 도망쳐 나온 경험이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낡은 도끼가 걸려 있었다.
“태수 아저씨!”
“너희 둘이 여기 숨어 있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 마을에서 소란이 엄청났어.” 태수는 천천히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질책과 함께 깊은 우려가 섞여 있었다. “제국에 대항하다니. 어리석은 짓이야. 수십 년간 수없이 많은 반란이 있었지만, 모두 피로 끝났어. 뼈도 못 추리고 죽었지.”
“하지만 아저씨, 이대로 계속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차라리 싸우다 죽는 게 낫다고요!” 가람이 울분을 토했다.
태수는 말없이 진우를 보았다. 그의 눈빛은 진우의 눈에 담긴 불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진우, 네 몸에서 기운이 느껴진다는 게 사실이냐?”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수의 눈빛이 미약하게 흔들렸다. 그의 얼굴에 거의 보이지 않는 희미한 기대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렇다면… 네가 희망이 될 수도 있겠군.” 태수의 목소리에 미약한 기대감이 실렸다. “하지만 단순히 기운을 조금 느낀다고 해서 제국의 선관들과 싸울 수는 없어. 그들은 수십 년, 수백 년간 수련해 온 자들이야. 그들의 술법은 산을 가르고 강을 마르게 할 수도 있지. 너는 아직 아무것도 아냐.”
“그럼 어쩌라는 거예요? 그냥 죽어란 말이에요? 아니면 동생이 잡혀가는 걸 보고만 있으란 말이에요?” 진우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갈급함이 묻어났다.
태수는 잠시 침묵했다. 깊은 고민에 잠긴 듯했다. “아니.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망설임과 두려움조차 허락되지 않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길이다.”
진우와 가람은 태수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는 듯한 간절함이 가득했다.
“제국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이 땅의 근원에서 솟아나는… ‘대지의 기운’을 다루는 자들. 아주 먼 옛날, 제국이 건국되기 전에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대지의 기운과 소통하며 살았다고 한다. 제국의 선관들은 하늘의 기운을 다루지만, 대지의 기운은 그들과는 다른 종류의 힘이다. 하늘의 기운이 개인의 수련과 영성을 통해 높은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면, 대지의 기운은 이 땅과 그 속의 생명과 하나 되어 얻는 힘이다. 거대하고 끈질긴… 생명의 힘이지. 하지만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은… 오래전에 잊혔지.”
“잊혔다구요? 그런 위대한 힘이?” 가람이 의아하게 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국이 의도적으로 없앤 것이다.” 태수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이 스스로의 힘을 깨닫는 것을 두려워했지. 모든 기록을 불태우고, 대지의 기운을 다루던 이들을 ‘역도’라 칭하며 학살했다. 이 땅의 백성들이 대지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잊게 만들었어.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숲 속 깊은 곳 어딘가에, 그 옛 기운을 기억하는 자들이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 힘을 깨울 수 있는 실마리가.”
진우의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대지의 기운. 평범한 땅에서 솟아나는 힘. 자신과 같은 평민들이 다룰 수 있는 힘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제국의 ‘하늘의 기운’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가 될 터였다.
“그들을 찾아야 해. 그 힘을 찾아야 해.” 진우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싸울 거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되찾을 때까지. 내 동생 아린이, 우리 어머니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때까지.”
태수는 진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빛에는 체념과 함께 새로운 불씨가 타오르는 듯했다. “좋아. 내가 길을 안내하마.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하지만 명심해라. 이 길은 피와 죽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돌아올 수 없는 길이야. 한 번 발을 들이면, 끝장을 봐야 해.”
진우는 차가운 동굴 바닥에 손을 짚었다. 그의 손에서 희미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의 몸속에서 솟아나는 기운은 분명히, 대지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 같았다. 그 작은 온기가 그의 심장까지 따뜻하게 데우는 듯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으니까.”
가람 또한 그의 옆에 섰다. 그녀의 눈은 단단한 결의로 빛났다. 그녀의 손은 진우의 어깨를 굳게 잡았다.
그날 밤, 새벽벌 촌락의 작은 동굴에서, 부패한 제국에 맞서는 평민들의 거대한 반란의 서막이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열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절망 속에 머물지 않을 것이었다. 그들의 발아래 있는 흙먼지가, 그들의 피와 땀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줄 기운의 원천이 될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