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존의 그림자
**장르:**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밀실 살인 미스터리
**대상:** 애니메이션 대본 & 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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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회색의 낙원**
**장면 1**
**[씬 시작]**
**[FADE IN]**
**EXT. 아크로폴리스 구역 – 주거 동 (밤)**
거대한 지하 도시. 낡고 육중한 강철문들이 줄지어 늘어선 복도. 천장의 흐릿한 비상등이 깜빡이며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조차 희미하게 울리는 정적. 콘크리트 벽에는 습기가 배어 있고, 간간이 파이프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공기는 무겁고 차갑다.
**NARRATION (유진, 차분하고 약간은 지친 목소리):**
세상이 붉게 타버린 지 백 년. 우리는 이 거대한 강철의 무덤 속에서 살아간다. 이름하여 ‘아크로폴리스 구역’. 지상의 모든 생명이 죽어버린 폐허를 뒤로하고, 우리 조상들이 선택한 마지막 피난처. 이곳의 모든 것은 규칙과 통제로 이루어져 있다. 희망도, 절망도, 빛도… 모두 통제하에 존재한다.
**INT. 서리의 연구실 겸 거주지 (밤)**
지하 도시의 다른 구역보다 조금 더 넓고 정돈되지 않은 방. 벽에는 복잡한 회로도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중앙에는 낡은 작업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해체된 기계 부품들과 공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탁한 공기 속에서 책과 서류 더미에 파묻힌 채, 서리(20대 후반, 날카로운 눈빛에 헝클어진 단발머리. 낡은 작업복 차림)가 작은 휴대용 단말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화면의 데이터를 훑고 있다.
그때, 육중한 철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유진(20대 초반, 경비대 제복 차림. 다부진 체격)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온다. 그의 표정에는 긴급함과 함께 망설임이 엿보인다.
**유진:**
…서리 누님. 주무시지 않았군요.
서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단말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서리:**
꿈결 같은 시간 낭비는 사치야. 뭘 또 부수고 왔나, 유진? 네 손은 언제쯤 정교해질까.
**유진:**
(약간 당황하며)
아닙니다! 이번엔 제가 부순 게 아니에요. 이번 일은… 더 심각합니다. 김 부관장님이 직접 부르셨습니다. 박 교수의 연구실에서…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서리의 손이 단말기 위에서 멈춘다. 그녀의 눈이 아주 느리게, 그리고 차갑게 유진을 향한다.
**서리:**
시신? 박 교수의 연구실이라면… 구역 핵심 동력원 연구동 최상층에 있는 그 ‘밀봉된’ 구역 말인가? 보안 등급 알파. 접근 인원 제한 다섯 명.
**유진:**
네, 맞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연구실 문이 안에서부터 굳게 잠겨 있었다는 겁니다. 밀실 살인입니다.
서리의 얼굴에 미미한 변화가 스친다. 흥미, 혹은 미세한 호기심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단말기를 내려놓고 작업대에서 일어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자, 날카로운 턱선이 드러난다.
**서리:**
밀실이라… 이 회색의 도시에도 간만에 지루함을 깰 만한 사건이 생겼군. 안내해.
**[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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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2**
**INT. 아크로폴리스 구역 – 연구동 복도 (밤)**
서리와 유진이 조용한 복도를 빠르게 걷는다. 그들의 발소리만이 철제 바닥에 울린다. 복도 양쪽으로는 수많은 연구실과 제어실이 늘어서 있지만, 대부분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비상등 불빛이 주기적으로 깜빡이며 긴 그림자를 만든다.
**유진:**
피해자는 박 교수님입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생명선인 ‘핵융합 코어’의 핵심 부품 개발을 총괄하시던 분이죠.
**서리:**
핵융합 코어… 구역의 생존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자원.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겠군. 동요라도 일어나면 이 도시는 혼란에 빠질 거야.
**유진:**
맞습니다. 그래서 김 부관장님이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조용히 해결하길 원하십니다.
복도 끝, 한층 강화된 보안 게이트 앞에 김 부관장(40대 중반, 강직한 인상의 보안 책임자)이 경비대원들과 함께 서 있다. 그의 표정은 굳어 있고, 주위 공기마저 얼어붙은 듯하다.
**김 부관장:**
서리 씨,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상황은 들었을 테니…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가 손짓하자, 육중한 철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린다. 문 안쪽은 더욱 깊고 어두운 통로로 이어진다.
**[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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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3**
**INT. 박 교수의 연구실 – 현장 (밤)**
문이 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와 함께 금속 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연구실 내부는 최첨단 장비들로 가득 차 있다. 거대한 에너지 코어 모형, 복잡한 회로판, 그리고 수많은 모니터들이 꺼져 있거나 알 수 없는 데이터를 송출하고 있다. 방 한가운데, 낡은 작업대 옆에 박 교수(백발의 노학자)가 쓰러져 있다. 그의 등에는 흉기가 박혀 있고, 주변 바닥은 검붉은 피로 흥건하다. 그의 얼굴은 고통스러운 절규를 마지막으로 굳어 있다.
김 부관장, 유진, 그리고 서리가 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현장에는 윤 박사(30대 초반, 박 교수의 제자. 안경 너머로 불안한 눈빛이 보인다)와 최 팀장(40대 초반, 건장한 체격의 기술 팀장.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이 초조하게 서 있다.
서리는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천천히 훑어본다. 그녀의 시선은 바닥, 벽, 천장, 모든 장비들을 스치듯 지나간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실타래를 더듬는 듯하다.
**서리:**
(낮은 목소리로)
먼저, 시신부터 확인하지.
그녀는 박 교수의 시신에 조심스럽게 다가간다. 등 뒤에 박힌 흉기는 연구용 ‘에너지 변환용 스패너’다. 스패너에는 미세한 전류 흐름을 감지하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다.
**서리:**
(스패너를 보며)
이 스패너는… 박 교수님의 특제 도구였죠? 다른 연구원들도 사용했습니까?
**윤 박사:**
(잔뜩 예민해진 목소리로)
아뇨! 그건 교수님만이 사용하시던 겁니다. 저희는 비슷한 도구가 있지만, 저렇게 개조된 건 교수님 것밖에 없어요!
**최 팀장:**
(침통한 표정으로)
맞습니다. 저건 교수님이 ‘핵융합 코어’의 미세 조정을 위해 특별히 만든 겁니다. 다른 사람이 함부로 만질 수도 없었죠.
서리는 시신 주변의 피 웅덩이를 응시한다. 피는 바닥의 차가운 금속과 섞여 끈적하게 굳어 있다.
**서리:**
사인은 과다 출혈. 죽은 지 대략… 여덟 시간 전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방 전체를 둘러본다. 가장 먼저 시선이 닿는 곳은 연구실의 육중한 강철문이다.
**서리:**
이 문은 어떻게 잠겨 있었죠?
**김 부관장:**
(복잡한 표정으로)
지문 인식과 안구 스캔으로 작동하는 이중 잠금장치입니다. 외부에서는 오직 박 교수님, 윤 박사님, 최 팀장님, 그리고 저만이 마스터키 카드를 통해 접근 가능하고요. 내부에서는 지문 인식만으로 잠그고 해제할 수 있습니다.
**유진:**
저희가 도착했을 땐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런 파손 흔적도 없었습니다. 시스템 기록에도 외부 침입 흔적은 없고요. 저희가 강제로 문을 해제한 겁니다.
서리가 문에 다가가 손을 뻗어 매끄러운 강철 표면을 천천히 쓸어본다. 그녀의 손가락이 문틈과 잠금장치 주변을 미세하게 더듬는다. 아주 작은,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흠집이나 흔적을 찾는 듯하다.
**서리:**
(문에서 손을 떼며)
그렇다면 외부 침입은 불가능. 내부에서 누군가 문을 잠그고 사라졌거나, 박 교수님이 자살을 한 후 시신이 발견된 것… 둘 중 하나겠군요.
**윤 박사:**
자살이라니요! 교수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어제까지도 새로운 코어 부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최 팀장:**
그래, 윤 박사 말이 맞아. 교수님은 구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셨어. 이 구역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을 리 없어!
서리는 그들의 격앙된 목소리에도 흔들림 없이 방 안의 모든 것을 눈에 담는다. 그녀의 시선은 이번에는 천장에 달린 환풍구를 훑고 지나간다. 환풍구는 일반적인 크기보다 훨씬 작았고, 낡은 철망으로 단단히 막혀 있다.
**서리:**
환풍구는요? 외부와 연결되어 있습니까?
**김 부관장:**
아뇨, 구역의 공조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지만, 통과하기엔 너무 좁습니다. 성인 남성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도 통과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게다가 저 철망은 특수 합금이라 절단기도 아니면 손상시키기 어렵습니다.
**서리:**
(고개를 끄덕이며)
벽이나 바닥에 숨겨진 통로 같은 건?
**김 부관장:**
그런 건 없습니다. 이 연구실은 최고 보안 등급으로 지어진 곳입니다. 설계도까지 완벽히 확인했습니다.
서리는 다시 눈을 감고 깊이 생각하는 듯 침묵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모든 정보들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다시 해체되고, 재조립되고 있을 것이다.
**서리:**
(눈을 뜨며)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몇 가지를 확인할 겁니다. 윤 박사님, 최 팀장님. 어제 박 교수님을 마지막으로 본 시간이 언제입니까?
**윤 박사:**
어제 오후 7시경입니다. 퇴근하면서 마지막으로 인사드렸습니다. 교수님은 밤새 연구하신다고 하셨고요.
**최 팀장:**
저도 비슷합니다. 오후 6시쯤 부품 조립 관련해서 보고드렸습니다. 그때도 활기 넘치셨는데…
**서리:**
연구실에 설치된 감시 시스템은요?
**김 부관장:**
내부에는 감시 카메라가 없습니다. 개인 연구 공간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복도와 이중 잠금 구역에는 모두 설치되어 있습니다.
**서리:**
(잠시 생각하더니)
이 연구실은… 정전된 적이 있습니까? 아니, 정확히는… 아주 미세하게라도 전력 공급이 불안정했던 적이 있습니까? 단 1초라도요.
김 부관장과 유진은 서로를 마주본다. 이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김 부관장:**
정식으로 기록된 정전은 없습니다. 아크로폴리스의 전력 시스템은 안정적이니까요. 하지만 가끔 아주 미세한 전압 불균형이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순간적인 오류 같은 것이죠. 그것도 기록에는 남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왜 그런 질문을?
서리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연구실의 강철문을 응시한다. 이번에는 문의 하단, 그리고 경첩 부분, 그리고 미세한 틈새를 더욱 집요하게 들여다본다. 그녀의 눈이 문득 한 곳에 멈춘다. 문 하단의 낡은 환기구 덮개, 그 주변에 아주 희미하게 긁힌 자국. 그리고… 그 덮개의 나사 하나가 다른 나사들보다 미묘하게 닳아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서리:**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거였군…
**유진:**
(걱정스러운 듯)
서리 누님, 뭘 발견하신 겁니까?
서리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긁힌 자국에 손가락을 대본다. 그리고 조용히 주변 바닥을 살핀다. 이내 그녀의 시선은 작업대 아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놓인 작은 ‘로봇 청소기’에 닿는다. 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율 작동형 청소 로봇이다.
**서리:**
유진, 이 로봇 청소기… 어제는 어디에 있었지?
**유진:**
글쎄요? 평소에는 늘 작업대 아래에 충전 중이던데요. 딱히 움직인 걸 본 적은…
**서리:**
(중얼거리듯)
재미있군.
그녀의 눈빛이 다시 빛나기 시작한다. 밀실의 비밀이,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씬 종료]**
—
**장면 4**
**INT. 박 교수의 연구실 – 수사 진행 (낮)**
다음 날, 연구실은 여전히 통제 구역으로 묶여 있다. 서리는 유진과 함께 연구실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김 부관장과 윤 박사, 최 팀장은 밖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서리:**
(작업대 주변을 뒤지며)
피해자의 마지막 행적을 추정할 만한 증거는 없습니까? 연구 일지라든가, 외부 통신 기록 같은 것 말입니다.
**유진:**
통신 기록은 외부 유출을 막기 위해 철저히 암호화되어 있습니다. 해독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겁니다. 연구 일지는… 찾기 어렵네요.
서리는 박 교수의 연구 일지를 찾다가, 작업대 서랍 깊숙한 곳에서 작은 USB 형태의 저장 장치를 발견한다. 겉보기에는 일반적인 데이터 스틱 같지만, 끝부분이 미세하게 마모되어 있다.
**서리:**
(USB를 들어 보이며)
이건 뭡니까?
**윤 박사:**
(창백한 얼굴로 다가와)
아, 그건…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사용하시던 외부 저장 장치입니다. 주로… 코어 부품 설계의 아주 민감한 부분을 저장해두셨죠. 보안 문제 때문에 구역 시스템과 연결하지 않으셨습니다.
**서리:**
(USB를 돌려보며)
이 끝부분의 마모는 무엇 때문이죠?
**윤 박사:**
글쎄요… 교수님이 워낙 물건을 험하게 다루시는 편이라…
서리는 윤 박사의 말에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로봇 청소기에 시선을 고정한다.
**서리:**
유진, 저 로봇 청소기의 작동 기록을 확인해 줄 수 있나? 구역 시스템과의 연동은 되어 있을 테니.
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로봇 청소기 옆에 쪼그려 앉아 단말기를 연결한다. 잠시 후,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친다.
**유진:**
어젯밤 11시 47분… 이 로봇 청소기가 약 5분간 연구실 바닥을 청소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충전 위치로 돌아왔고요.
**서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흥미롭군. 박 교수는 자정까지 연구하겠다고 했었지?
**윤 박사:**
네, 맞습니다.
**서리:**
그렇다면 11시 47분에 로봇 청소기가 작동할 이유가 없겠군.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 로봇 청소기를 돌리는 사람은 드물지. 게다가 충전 중이었다면 더욱 그렇고.
**유진:**
(놀란 눈으로)
그럼 누가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킨 겁니까?
**서리:**
(의미심장하게)
그걸 이제부터 밝혀낼 시간이지.
서리는 다시 문으로 다가간다. 그리고 문 하단의 닳아 있는 나사를 손으로 만져본다.
**서리:**
김 부관장님, 이 문의 환기구 덮개는 나사로 고정되어 있죠?
**김 부관장:**
네, 그렇습니다. 강철 합금 나사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습니다.
**서리:**
만약 이 나사를 풀고 덮개를 제거한다면, 환기구 통로는 얼마나 넓어집니까?
**김 부관장:**
(의아한 표정으로)
그래도 성인 남성이 통과하기엔 턱없이 좁습니다.
**서리:**
그렇다면 성인 남성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은 확보되겠군요.
**김 부관장:**
(더욱 혼란스러워하며)
무슨 말씀이신지…
서리는 대답 대신, 로봇 청소기를 집어 든다. 그리고 문의 환기구 덮개 쪽으로 로봇 청소기를 가져간다.
**서리:**
(모두를 돌아보며)
밀실의 트릭은 바로 ‘눈에 보이는 것’과 ‘진실’의 괴리에서 발생합니다. 이 연구실은 완벽한 밀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단 하나의 맹점이 있었죠.
그녀는 문 하단의 환기구 덮개를 가리킨다.
**서리:**
범인은 박 교수를 살해한 뒤, 이 환기구 덮개를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이 로봇 청소기를 이용해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모두의 얼굴에 경악과 혼란이 뒤섞인다.
**윤 박사:**
말도 안 돼! 로봇 청소기로 문을 어떻게 잠급니까?
**최 팀장:**
그 작은 로봇이 문을 열고 나갈 수도 없고, 잠글 수도 없어!
**서리:**
(차분하게 설명한다)
이 연구실 문은 안에서 지문 인식으로 잠글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이미 살인을 저지른 후였고, 시신 옆에 서 있는 자신을 들키고 싶지 않았겠지. 그래서 박 교수의 지문이 필요한 겁니다.
그녀는 USB를 꺼내 보여준다.
**서리:**
이 USB는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닙니다. 끝부분이 마모된 건 수없이 많은 지문 인식을 시도했기 때문이겠죠. 박 교수의 생체 정보를 완벽하게 모사해둔 ‘지문 복제 장치’입니다. 범인은 이걸 이용해 박 교수의 지문을 복제했고…
**서리:**
(로봇 청소기를 환기구 덮개 쪽으로 가져가며)
이 로봇 청소기는 자율 주행 기능이 있습니다. 범인은 환기구 덮개를 제거한 후, 로봇 청소기의 작동 경로를 조작해 문 앞에 세워뒀습니다. 그리고 로봇 청소기에 복제된 지문 장치를 부착한 겁니다.
**김 부관장:**
하지만 로봇 청소기가 문을 잠글 타이밍을 어떻게 맞춥니까? 범인이 밖에 있다면…
**서리:**
여기서 아까 제가 물었던 ‘미세한 전압 불균형’이 중요해집니다. 이 연구실의 자동 잠금 시스템은 특정 조건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외부 컨트롤러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특히 미세한 전압 불균형이 발생하면 더욱 그렇고요.
**서리:**
범인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아마 이 구역의 전력 시스템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겠죠. 그는 전압 불균형이 발생할 시간을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로봇 청소기를 원격 조종한 겁니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로봇 청소기가 박 교수의 복제 지문으로 문을 잠그고, 환기구를 통해 빠져나온 거죠.
**유진:**
그렇다면 범인은 박 교수님 연구에 깊숙이 관여되어 있었고, 이 구역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는 얘기군요!
**서리:**
정확합니다. 그리고… 환기구를 통해 로봇 청소기가 빠져나올 때, 이 USB 끝부분이 덮개의 나사에 긁히면서 미세한 파편이 떨어졌을 겁니다. 제가 이 문 하단에서 발견한 아주 작은 금속 파편. 그리고 환기구 덮개의 닳아버린 나사.
서리는 USB의 마모된 끝부분과 문 하단 나사의 닳은 부분을 번갈아 가리킨다. 퍼즐의 모든 조각이 맞춰지는 순간이다.
**서리:**
범인은 로봇 청소기가 빠져나온 후, 다시 환기구 덮개를 닫고, 빠져나오면서 나사를 조였습니다.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겠지. 아주 미세한 흔적을 남긴 겁니다.
모두가 서리의 설명을 숨죽여 듣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김 부관장:**
그렇다면…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서리의 시선이 느리게, 그러나 정확하게 한 사람에게 향한다.
**서리:**
박 교수님을 제외하고 이 USB의 존재와 용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사람. 그리고 이 구역의 전력 시스템의 미세한 전압 불균형까지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이 관여되어 있었던 사람. 마지막으로, 박 교수님의 지문을 쉽게 얻을 수 있었던 사람.
그녀의 시선이 윤 박사에게 꽂힌다. 윤 박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고, 두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서리:**
윤 박사님. 어제 박 교수님은 밤늦게까지 코어 부품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셨다고 했죠? 그 ‘새로운 코어 부품’이 박사님의 연구 성과를 가로채는 결과물이었기 때문은 아닙니까?
**윤 박사:**
(말없이 뒷걸음질 치다, 결국 무너져 내린다)
아… 아냐… 나는… 나는 그저… 교수님이 내 연구를… 내 미래를 앗아가려 해서… 그래서…
윤 박사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그의 손에는 작은 스패너가 쥐어져 있었고, 그 스패너의 끝부분에는 미세한 전류 감지 센서가 달려 있었다. 박 교수의 특제 스패너와 똑같은 것이다.
**서리:**
(차가운 목소리로)
박사님은 교수님께 복제 지문 장치를 선물하며 신뢰를 쌓았겠지. 그리고 그 장치를 이용해 교수님의 지문을 얻어냈고, 로봇 청소기와 환기구, 그리고 이 구역 시스템의 맹점을 완벽히 이용해 밀실 살인을 위장한 겁니다. 스패너에 부착된 센서가 박 교수님의 등 뒤에 박힌 스패너에서 흘러나오는 미세한 전력을 감지해 범행 시간을 조작하기 위한 도구였을 겁니다. 교수님이 사망한 시간을 실제보다 훨씬 뒤로 미루려 했던 거죠.
유진은 경비대원들에게 눈짓하고, 그들은 망연자실한 윤 박사를 체포한다.
**유진:**
서리 누님…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내신 겁니까?
**서리:**
(창밖의,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듯)
모든 시스템은 결국 인간이 만듭니다. 완벽해 보이는 시스템에도 결국 인간의 맹점, 혹은 욕망이 스며들기 마련이지. 이 지하 도시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만, 인간의 마음만큼은 통제할 수 없어. 그것이 이 밀실의 진실이었다.
그녀는 창백한 비상등 아래, 마치 구역의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지하 도시의 깊은 곳,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극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 어둡고 답답한 지하 세계에는 여전히 수많은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을 터였다.
**[FADE OUT]**
**[씬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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