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이진우는 오늘도 키보드 위를 헤매는 손가락 끝에서 먼지 냄새를 맡았다. 눅눅하고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아니라, 건조하고 텁텁한 오래된 종이와 잊혀진 활자들의 냄새. 박사 학위를 딴 이후, 그의 삶은 거대한 박물관의 먼지 쌓인 수장고와 다를 바 없었다. 한때는 고대 언어학계의 떠오르는 샛별이라 불렸지만, 이제는 이단으로 낙인찍힌 채 세상의 시선에서 멀어진 지 오래였다. 그가 매달렸던, ‘심연 아래 잠든 자들의 언어’에 대한 가설은 학계의 조롱거리가 되었고, 그는 그렇게 홀로 남겨졌다. 그의 유일한 벗은 낡은 서적들과, 그 안에 잠든 죽은 문자들뿐이었다.

    작업실 창밖은 회색빛 도시의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풍경이었다. 그는 다시 시선을 낡은 태블릿 PC 화면으로 돌렸다. 몇 년째 붙들고 있는 고대 문자의 잔해들.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형문자와 추상적인 기호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모두 그가 상상했던 ‘잃어버린 문명’의 흔적들이었다.

    딩동.

    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진우는 움찔 몸을 떨었다. 그의 삶에 이렇게 불쑥 찾아오는 방문객은 거의 없었다. 택배 기사겠지. 그는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관문 앞에 놓인 것은 큼지막한 나무 상자 하나였다. 투박하게 포장된 상자 위에는 발신인 정보도 없이, 오직 그의 이름과 주소만이 적혀 있었다. 불길한 예감에 손끝이 차가워졌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작업실로 들고 들어왔다. 커터칼로 테이프를 끊자, 안에서 또 다른 포장재가 드러났다. 겹겹이 쌓인 천과 스티로폼을 걷어내자, 마침내 안의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돌이었다. 아니, 돌 조각. 한 손에 들기 묵직한 크기의 육각형 돌 조각이었다. 표면은 오랜 세월에 마모된 듯 거칠었지만, 그 위에 새겨진 문양은 놀랍도록 선명했다. 진우는 숨을 들이켰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것은… 그가 수년간 연구했던, 그러나 단 한 번도 실물로 마주한 적 없는, ‘심연 아래 잠든 자들의 언어’였다. 그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믿었던 고대 문명의 문자들이, 그의 눈앞에 실재하고 있었다.

    손이 떨렸다. 믿을 수 없었다. 학계에서 자신을 비웃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거짓말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그의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돌 조각 아래에는 낡은 양피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잉크가 번진 듯 희미하게 적힌 단 세 줄의 문구.

    *그들의 심장이 다시 뛸 준비를 마쳤다.*
    *서두르지 않으면, 너 또한 잊힐 것이다.*
    *그곳의 빛은 어둠 속에 잠들었으나, 이제 다시 깨어날 때가 되었다.*

    진우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그들의 심장’? ‘잊힐 것이다’? 마지막 문구는 마치 하나의 암호 같았다. 돌 조각을 든 손에서 싸늘한 한기가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이것은 단순한 학술적인 발견이 아니었다. 어떤 거대한 그림자, 거대한 비밀이 자신을 이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는 즉시 돌 조각의 문양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그의 뇌는 수년간의 훈련으로 단련된 고대 문자 해독 기계처럼 작동했다. 손가락이 미친 듯이 자판 위를 오갔고,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가설과 데이터가 번개처럼 교차했다.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그는 돌 조각과 씨름했다. 그리고 새벽이 동터올 무렵, 마침내 그는 그 조각의 의미를 파악해냈다.

    “거울은 그림자를 품고, 그림자는 문을 연다. 문의 열쇠는 피에 잠겨 잠들었으니, 빛이 닿지 않는 심연에서 그림자를 보리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 같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단어, ‘심연’. 그리고 첫 문장의 ‘거울’과 ‘그림자’. 이것은 단순한 시구가 아니었다. 하나의 방향을 지시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오래된 전설의 파편들.

    학계에서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가 끈질기게 파고들었던, 어떤 존재에 대한 기록들. ‘세계의 심연’이라 불리던, 그림자처럼 사라진 지하 도시의 전설. 그곳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지식과 위험을 품고 있다고 전해졌다.

    그는 작업실 한편에 굴러다니던 낡은 지도를 꺼냈다. 수많은 선과 기호가 복잡하게 그려진 고지도였다. 심연에 대한 자료를 모으던 중, 우연히 발견했던 파편적인 지도였다. 한 점, 오랫동안 의미를 알 수 없었던 표시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 표시는 기묘하게도 돌 조각의 문양과 흡사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표시 아래에는, 희미하게, ‘거울의 문’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진우의 목소리가 텅 빈 작업실에 낮게 울렸다. 그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듯했다. 이건 학계의 인정을 넘어선 문제였다. 이것은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미지의 공포가 그를 짓눌렀다. ‘그들의 심장’이 다시 뛸 준비를 마쳤다는 문구.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이 깨어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그는 손에 든 돌 조각을 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잊혀진 문명, 지하 유적, 그리고 누군가의 경고. 이 모든 것이 그를 이 심연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고 있었다. 과거의 굴욕과 현재의 고립을 벗어던질 수 있는 유일한 기회.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지도 모를 미친 짓.

    그는 지도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앉아있던 허리가 뻐근하게 비명을 질렀지만, 그의 의지는 이미 굳건했다. 배낭을 꺼내들었다. 며칠 치 식량, 물, 손전등, 그리고 오래된 녹음기. 최소한의 준비물이었다. 그의 손이 멈칫한 곳은, 낡은 권총 한 자루였다. 언젠가 위험에 대비해 준비해뒀던 물건.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내 권총을 배낭 깊숙이 집어넣었다.

    이건 탐험이 아니었다. 모험도 아니었다.
    이것은… 진실을 향한 발버둥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마지막 시험이었다.
    그는 창밖의 회색빛 도시를 잠시 응시했다. 밤사이 내린 이슬비로 촉촉해진 아스팔트 위를 차들이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잠들었던 빛. 이제 깨어날 시간이었다.

  • 무협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흑운 비사(黑雲秘史)] 에피소드 1화: 길 잃은 발자취, 기이한 빛

    **장르:** 무협
    **핵심 줄거리:** 우연히 발견한 고대의 숨겨진 마법의 힘

    **1. 컷 묘사:**

    [1컷]
    배경: 칠흑 같은 밤, 흑운산 중턱의 숲. 희미한 달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부서져 내린다.
    인물: 강진우 (18세). 낡은 도포를 입고,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을 맺은 채 나무 토막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고 있다. 그의 표정은 초조함과 답답함으로 가득하다. 주변에는 닳고 닳은 목검과 훈련 흔적이 역력한 땅이 보인다.

    **진우 (내레이션):** (한숨) 벌써 십 년째다… 하오문(下烏門)의 말단 제자로, 매일같이 검을 휘두르고 기를 운용하는 법을 배우지만… 왜 나만 이리 더딘가.

    **2. 컷 묘사:**

    [2컷]
    배경: 진우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훈련장. 다른 제자들이 능숙하게 초식을 익히고, 사부의 칭찬을 받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진우는 그들을 의식하며 더욱 힘없이 목검을 휘두른다.
    말풍선: (다른 제자들의 활기찬 기합 소리, 사부의 우렁찬 목소리가 배경처럼 들린다) “옳지! 그 기세다!” “정확하구나!”

    **진우 (내면):** 사부님은 언제나 말씀하셨지. ‘무공이란 한 걸음 한 걸음 쌓아 올리는 정성이다.’ 하지만 내 정성은… 어째서 이토록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일까.

    **3. 컷 묘사:**

    [3컷]
    배경: 해가 저물고, 모두가 떠난 텅 빈 훈련장. 진우만이 홀로 남아 지친 기색으로 목검을 바닥에 내려놓고 앉아 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린다.
    인물: 지쳐 앉아 있는 진우.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박여 있고, 옷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다.

    **진우:** (중얼거림) ‘천기검(天氣劍)’의 삼연속 찌르기… 대체 어떻게 해야 흐트러짐 없이 연결할 수 있는 거지? 분명 사부님은 쉬운 초식이라 하셨는데…

    **4. 컷 묘사:**

    [4컷]
    배경: 한밤중, 흑운산의 더욱 깊은 숲 속. 진우는 훈련장을 벗어나 인적 드문 곳으로 들어서 있다. 답답한 마음에 무작정 걷다가 길을 잃은 듯 두리번거린다. 숲은 더욱 어둡고 으스스하다.
    말풍선: (부엉이 울음소리,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진우:** (땀을 닦으며) 젠장, 어디까지 온 거지? 사부님께 혼날 텐데… 돌아가야 하는데…

    **5. 컷 묘사:**

    [5컷]
    배경: 진우가 발을 헛디딘 순간. 발밑의 흙이 무너지면서 진우의 몸이 균형을 잃고 기울어진다. 그의 눈이 크게 뜨인다.
    인물: 놀란 표정의 진우, 공중에서 몸이 뒤틀리고 있다.

    **진우:** 헉! 으악!

    **6. 컷 묘사:**

    [6컷]
    배경: 진우가 떨어지는 모습. 낙하하는 진우의 시점에서, 아래로는 어둠이 깔린 깊이를 알 수 없는 협곡 같은 곳이 보인다. 희미하게 덩굴과 이끼가 얽혀 있는 바위들이 스쳐 지나간다.

    **진우:** (비명) 살려…!

    **7. 컷 묘사:**

    [7컷]
    배경: 다행히 깊지 않은 곳, 좁은 바위 틈새로 떨어진 진우. 바닥에 뒹굴며 쿵 하고 부딪힌다. 잔가지와 나뭇잎,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린다.
    인물: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는 진우. 팔꿈치와 무릎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진우:** (콜록이며) 쿨럭… 아야야… 죽는 줄 알았네… 다행히 다리는 괜찮은 것 같… 어?

    **8. 컷 묘사:**

    [8컷]
    배경: 진우가 떨어진 곳의 한쪽 벽면. 두꺼운 이끼와 덩굴로 뒤덮여 있던 바위가 진우의 충격으로 일부 떨어져 나갔다. 그 아래로 좁고 어두운 동굴 입구가 드러난다. 입구 안쪽으로는 알 수 없는 기운이 흐르는 듯 어렴풋한 냉기가 느껴진다.
    인물: 동굴 입구를 멍하니 바라보는 진우. 그의 눈빛에 호기심이 스친다.

    **진우:** 이건… 동굴인가? 흑운산에 이런 곳이 있었나…? (중얼거림)

    **9. 컷 묘사:**

    [9컷]
    배경: 동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는 진우. 그의 발걸음 소리가 동굴 안에 울린다. 동굴은 좁고 구불구불하며,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아 손으로 더듬으며 나아가야 한다. 벽면에는 기괴한 문양들이 흐릿하게 새겨져 있다.

    **진우:** (내면) 왠지 모르게… 섬뜩하면서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는 기분이다…

    **10. 컷 묘사:**

    [10컷]
    배경: 동굴의 끝자락, 넓은 공간이 펼쳐진다. 그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연못 같은 것이 있고, 연못 위로는 기묘한 푸른빛을 내는 수정체가 공중에 떠 있다. 수정체에서는 마치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빛이 깜빡이며, 주변을 은은하게 밝힌다. 동굴 벽면에는 고대의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인물: 푸른빛에 비쳐 선명하게 드러나는 진우의 놀란 얼굴. 그의 눈은 휘둥그레져 있다.

    **진우:** (숨을 헐떡이며) 이게… 대체… 뭐야…?

    **11. 컷 묘사:**

    [11컷]
    배경: 공중에 떠 있는 수정체의 클로즈업. 마치 살아있는 듯, 내부에서 복잡한 문양들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주변 공간에는 그 빛으로 인해 신비로운 기운이 감돌고, 진우의 옷자락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말풍선: (아주 미세하고 낮은, 울림 같은 소리) 우우웅…

    **진우 (내면):** (몸이 저절로 떨려온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아… 평생 느껴보지 못한 압도적인 기운… 이게 바로… ‘힘’인가…?

    **12. 컷 묘사:**

    [12컷]
    배경: 진우가 홀린 듯 수정체에 손을 뻗는 모습. 그의 손이 서서히 푸른빛 수정체에 가까워진다. 그의 눈빛은 경외심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진우:** (무의식적으로) …아름답다…

    **13. 컷 묘사:**

    [13컷]
    배경: 진우의 손끝이 수정체에 닿는 순간. 수정체에서 엄청난 섬광이 폭발하며 동굴 전체를 집어삼킨다. 진우의 몸이 빛에 휩싸이며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말풍선: (콰아아앙!!!)

    **진우:** (비명) 끄아아아아악!

    **14. 컷 묘사:**

    [14컷]
    배경: 섬광이 가라앉은 후, 진우의 몸이 공중에 떠오른다. 수정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푸른빛의 기운이 마치 용솟음치듯 진우의 온몸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몸은 투명하게 빛나고, 고통과 경련 속에서도 알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되는 듯하다.
    인물: 의식을 잃어가는 진우의 얼굴. 그의 몸에서는 푸른빛의 문신 같은 형상이 잠시 드러났다 사라진다.

    **진우 (내레이션):** (점점 희미해지는 의식)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아니… 새로 태어나는… 듯한…

    **15. 컷 묘사:**

    [15컷]
    배경: 동굴 입구 밖, 흑운산의 깊은 숲. 굳게 닫혔던 이끼와 덩굴 사이로 강렬한 푸른빛이 새어 나와 밤하늘을 일렁인다. 숲의 모든 생명체가 그 빛에 반응하듯 일순간 정지한다.
    말풍선: (정적, 그리고 낮은 울림) 우우우우웅…

    **진우 (내레이션):** (아주 희미하게) 나의… 새로운… 시작…


    **에피소드 1화 끝**

  • 크툴루 신화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심연의 비무 – 무림에 드리운 영겁의 그림자

    **장르:** 크툴루 신화, 무협, 액션

    **[프롤로그]**

    **장면 1**
    **장소:** 이름 없는 고목림 – 깊은 밤, 안개 자욱한 숲
    **시간:** 늦은 밤

    **카메라:**
    * 높은 앵글에서 아래로 숲 전체를 내려다본다. 고요하고 어두운 숲은 안개에 잠겨 신비롭고 동시에 불길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 점점 아래로 내려가면서 숲 속 깊숙한 곳, 거대한 나무들이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로 서 있는 곳을 비춘다. 나무들의 형상은 마치 고통받는 존재들이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르는 듯하다.
    * 클로즈업: 땅바닥에 흩뿌려진 오래된 문서 조각들. 희미한 달빛 아래 글씨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자들 사이로, 현대에는 쓰이지 않는, 기이하고 날카로운 문양들이 혼재되어 있다.

    **내레이션 (잔잔하고 낮은 목소리):**
    “천하의 무림은 영겁의 시간 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강호의 평화가 얼마나 덧없는 모래성에 불과했는지를. 그들이 숭상하던 무공의 극한이 얼마나 하찮은 속박이었는지를.”

    **카메라:**
    * 문서 조각들 사이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고 푸른 빛의 안개. 안개는 서서히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며,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꿈틀거린다.
    * 촉수 안개가 지면에 닿자, 땅이 미세하게 진동하며 검은 금이 가기 시작한다. 금 간 틈새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새어 나온다.
    * 급작스럽게 화면이 암전된다. 직후,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심장 깊숙한 곳을 뒤흔드는 낮은 굉음이 울린다.

    **내레이션 (목소리에 미세한 떨림이 섞인다):**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존재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가 무림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효과음:**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웅장하고 기괴한 저음의 울림, 땅이 갈라지는 소리,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

    **[본편 시작]**

    **장면 2**
    **장소:** 영원비무대 입구 – 고목림을 지나 나타난 거대한 석문
    **시간:** 해 질 녘

    **카메라:**
    * 저녁노을에 물든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숲의 장막을 뚫고 솟아오른 거대한 석문을 와이드 샷으로 보여준다. 석문은 기묘하게 뒤틀린 나무뿌리와 덩굴에 휘감겨 있으며, 그 문양은 무림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고대적이고 음산한 형상들로 가득하다.
    * 석문 앞에 모여든 수많은 무림인들을 천천히 팬한다. 각 문파의 기치를 든 무사들, 화려한 복장을 한 세가 문도들, 그리고 홀로 움직이는 떠돌이 무인들까지. 저마다의 강한 기운과 자부심이 느껴진다.
    * 카메라가 무림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며, 한 남자의 뒷모습에 멈춘다. 그의 복장은 소박하며, 검집조차 낡아 보인다.

    **액션/지문:**
    * 석문은 얼핏 보기에 굳게 닫혀 있는 듯하나, 자세히 보면 문틈 사이로 옅은 푸른색 안개가 새어 나오고 있다.
    * 무림인들은 웅성거리며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들의 강함을 은근히 과시하듯 대련 자세를 취하는 이들도 보인다.

    **현우 (내레이션/독백, 낮은 목소리):**
    “영원비무대.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곳. 이 낡은 석문 너머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 단순한 비무대회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은 왜 이리 선명한가.”

    **카메라:**
    * 현우의 옆모습을 클로즈업. 그의 눈은 다른 이들보다 더 깊은 곳을 응시하는 듯하다. 그의 시선이 석문 위, 기괴한 조각상에 닿는다. 조각상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얼굴은 마치 여러 개의 눈과 입이 뒤섞인 듯 혼란스러워 보인다.
    * 현우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순간, 조각상에서 미세한 빛이 번뜩이는 듯하다. 현우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뜬다.

    **액션/지문:**
    * 주변 무림인 중 일부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무림인 1 (목소리, 흥분):**
    “보시오! 저분이 바로 화산파의 매화검 선자, 설화 아가씨 아니시오!”

    **카메라:**
    * 화면 전환. 무리들 사이를 우아하게 헤치며 다가오는 설화. 백색의 비단 도포를 입었으며, 허리에는 섬세하게 장식된 장검이 매달려 있다. 그녀의 주변에는 은은한 매화 향이 퍼지는 듯하다.

    **설화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
    “모두들 멀리서 오셨습니다. 부디 안녕들 하신지 여쭙니다.”

    **액션/지문:**
    * 설화의 등장에 주변 무림인들이 환호하거나 감탄사를 뱉는다. 그녀는 짧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의 시선이 현우에게 잠시 닿지만, 이내 스쳐 지나간다.

    **무림인 2 (목소리, 거만함):**
    “흥, 매화검도 이제 옛말이지. 진정한 강자는 따로 있는 법!”

    **카메라:**
    * 화면 전환. 우악스러운 웃음소리와 함께, 근육질의 거대한 남자가 수십 명의 추종자들을 이끌고 다가온다. 그의 전신에서는 뿜어져 나오는 듯한 검은 살기가 느껴진다. 흑풍맹주다.

    **흑풍맹주 (거칠고 호탕한 웃음):**
    “하하하! 설화 아가씨, 이런 누추한 곳까지 발걸음을 하시다니. 혹 비무에 참가하여 제 품에 안기려 함이오?”

    **액션/지문:**
    * 흑풍맹주의 말에 주변의 흑풍맹원들이 사악하게 웃는다. 설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설화 (단호하게):**
    “흑풍맹주께서는 그 경박함을 버리시지 못했군요. 저는 비무의 본질을 찾아 이곳에 왔을 뿐입니다.”

    **흑풍맹주 (코웃음):**
    “본질이라… 이 비무는 강자가 모든 것을 취하는 자리! 약자들은 그저 무대 위를 장식할 꽃잎에 불과할 뿐이다!”

    **카메라:**
    * 흑풍맹주의 시선이 주변을 훑다가, 현우에게 멈춘다. 현우는 여전히 조용히 석문을 응시하고 있다.

    **흑풍맹주 (비웃음 섞인 목소리):**
    “저런 초라한 행색의 잡배들도 참가 자격이 되는가? 비무대의 격이 떨어지는군.”

    **현우 (내레이션/독백):**
    “어쩌면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 이 비무는, 단순히 무공을 겨루는 장이 아닐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어떤 거대한 존재의 놀이판일지도.”

    **액션/지문:**
    * 그때, 석문 저편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발소리. 그리고 이어서 천지를 울리는 듯한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장백산인 (목소리, 깊고 웅장함):**
    “오셨는가, 무림의 강자들이여.”

    **카메라:**
    * 석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던 푸른 안개가 더욱 짙어지며 기이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 석문이 완전히 열리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한 노인. 백발이 성성한 그는 허름한 도포를 입고 있지만,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과도 같다. 그의 등 뒤로는 거대한 비무대가 어렴풋이 보인다.

    **액션/지문:**
    * 노인의 등장에 모든 무림인들이 숨을 죽인다. 흑풍맹주조차 잠시 입을 다문다.

    **장백산인 (모두를 꿰뚫어보는 듯한 시선):**
    “나는 장백산인. 이 영원비무대의 수호자이자, 이번 비무의 심판이다.”

    **카메라:**
    * 장백산인의 얼굴을 클로즈업. 그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깊게 패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초월적인 고요함과 체념이 깃들어 있다.

    **장백산인:**
    “그대들은 천하제일의 영광을 위해 이곳에 왔을 것이다. 허나… 이 비무는 단순히 무를 겨루는 것이 아니다.”

    **액션/지문:**
    * 주변 무림인들이 웅성거린다. 몇몇은 의아한 표정을 짓고, 몇몇은 불안감을 드러낸다.

    **흑풍맹주 (목소리, 불만스럽게):**
    “흥, 노인장. 그럼 무엇을 겨룬다는 말이오? 혹 상대를 홀리는 술법이라도?”

    **장백산인 (흑풍맹주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의 눈빛이 순간 섬광처럼 번뜩인다):**
    “강함이란 무엇인가? 힘의 정점에 서는 것이 강함인가? 아니면… 미지의 공포 앞에서 제정신을 붙들고 버텨내는 것이 강함인가?”

    **액션/지문:**
    * 장백산인의 말에 흑풍맹주가 순간 움찔한다.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 현우는 장백산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듯하다. 그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어둡게 가라앉아 있다.

    **장백산인:**
    “이 비무의 승자는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넘어, 거대한 ‘짐’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 짐은… 이 천하의 존재를 건 심연과의 싸움을 의미한다.”

    **카메라:**
    * 장백산인의 손짓에 따라, 비무대 안쪽에서 거대한 석비 하나가 천천히 솟아오른다. 석비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으며, 그 문양들 사이에서 희미한 녹색 빛이 파동처럼 퍼져 나온다.

    **액션/지문:**
    * 석비에서 퍼져 나온 녹색 빛이 무림인들의 얼굴을 비춘다. 빛이 닿자, 몇몇 무림인들은 머리를 감싸 쥐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등 고통스러워한다.
    * 현우는 고통스러워하는 대신, 그 녹색 빛의 파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듯 보인다. 그의 눈에는 일말의 고통과 함께, 깊은 이해와 연민의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심연의 속삭임 (귓가에 들리는 듯한 흐느끼는 듯한 속삭임, 알 수 없는 언어):**
    “*그크트흐프그… 즈그르흐프… 깨어나라…*”

    **현우 (내레이션/독백, 떨리는 목소리):**
    “저 석비… 저것이 봉인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비무는, 제물이 될 자를 고르는 의식에 불과한 것인가?”

    **장백산인 (목소리가 더욱 묵직해진다):**
    “망설이는 자는 돌아가라. 이곳에 남는다면, 그대들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진정한 공포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무공, 그대들의 신념, 그대들의 모든 것이 시험대에 오를지니.”

    **카메라:**
    * 장백산인의 시선이 다시 한번 모든 무림인들을 훑는다. 그의 시선이 현우에게 잠시 머문다. 현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
    * 화면은 비무대 안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거대하고 음산한 비무대는 끝없이 펼쳐진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비무대 중앙에는 기괴한 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원형 문양이 보인다.
    * 급작스럽게 화면이 암전된다.

    **효과음:** (묵직한 공명음, 알 수 없는 존재들의 울부짖음이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 금속이 긁히는 듯한 섬뜩한 소리)

    **장면 3**
    **장소:** 영원비무대 대기실 – 첫날 밤
    **시간:** 한밤중

    **카메라:**
    * 어둡고 축축한 돌벽으로 된 대기실. 좁은 공간에 여러 명의 무림인들이 지쳐 잠들어 있거나, 초조하게 앉아 있다.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 현우가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얼굴에는 미세한 긴장감이 흐른다.

    **액션/지문:**
    * 주변에서는 코 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 그리고 낮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현우 (내레이션/독백):**
    “첫날 밤. 공포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한 채, 이 공간을 떠돌고 있다.”

    **카메라:**
    * 현우의 눈꺼풀이 살짝 떨린다. 그의 시야에 몽롱하고 혼란스러운 영상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 시점은 현우의 꿈속으로 전환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무한히 펼쳐진 바다 위를 떠다니는 기분. 하늘에는 별 대신, 거대한 눈동자들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다.

    **현우 (꿈속에서, 떨리는 목소리):**
    “이것은… 꿈인가?”

    **심연의 속삭임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목소리, 점점 또렷해진다):**
    “*아니다… 이것이… 진실이다…*”
    “*너는… 깨어나야 한다…*”
    “*우리는… 너를… 기다린다…*”

    **카메라:**
    * 꿈속의 바다가 갑자기 거대한 촉수들로 변하기 시작한다. 촉수들은 하늘의 눈동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현우를 향해 뻗어온다.
    * 촉수들이 현우에게 닿으려는 찰나,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오며 꿈에서 깨어난다.

    **액션/지문:**
    * 현우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눈을 번쩍 뜬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하다.
    *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무림인들 중 몇몇도 잠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거나 몸을 떨고 있다.

    **무림인 3 (울먹이는 목소리):**
    “악몽… 끔찍한 악몽이었어…! 세상이 뒤집히고,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무림인 4 (겁에 질린 목소리):**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네… 심연에서… 날 기다린다고…”

    **현우 (내레이션/독백, 씁쓸하게):**
    “결국, 모두가 보게 되는구나. 형체 없는 그림자가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카메라:**
    * 현우의 시선이 대기실 한쪽에 웅크려 앉아 있는 흑풍맹주에게 향한다. 흑풍맹주도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며, 그의 눈은 깊은 불안감과 함께 기묘한 광기를 띠고 있다.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알 수 없는 문양을 계속해서 그리고 있다.

    **흑풍맹주 (낮은 목소리, 중얼거리는 듯):**
    “더 큰 힘… 더 강한 힘… 저것을 가질 수 있다면… 천하 따위… 아무것도 아니지…”

    **액션/지문:**
    * 흑풍맹주의 중얼거림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녹색 빛으로 섬뜩하게 번뜩인다. 그 순간, 대기실 벽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는 듯하다.
    * 현우는 흑풍맹주의 변화를 감지하고 미간을 찌푸린다.

    **현우 (내레이션/독백):**
    “저자는 이미 물들기 시작했군. 힘에 대한 갈망이 심연의 속삭임을 받아들이고 있어.”

    **카메라:**
    * 벽에 새겨진 문양 중 하나를 클로즈업한다. 문양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하다.
    * 화면 전환.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대기실 문이 삐걱이며 열린다.

    **장백산인 (문가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날이 밝았다. 비무의 서막이 열릴 시간이다. 모두 영원비무대로 집결하라.”

    **액션/지문:**
    * 장백산인의 말에 무림인들이 불안한 얼굴로 천천히 일어선다. 그들의 얼굴에는 어제의 자신감 대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피로감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백산인을 향해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다른 이들보다 단호하다.

    **카메라:**
    * 현우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그의 어깨 위로, 비무대의 어둡고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화면은 영원비무대 전체를 조감한다. 안개 속에서 드러난 비무대는 고대 도시의 유적처럼 거대하고 음침하다. 중앙의 원형 문양은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다.
    * 비무대 위로, 첫 번째 대련을 알리는 징 소리가 음산하게 울려 퍼진다.

    **효과음:** (묵직한 징 소리, 스산한 바람 소리, 알 수 없는 속삭임이 다시금 들려오지만, 이번에는 더 강렬하고 가까워진 느낌)

    **현우 (내레이션/독백):**
    “이 비무는,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이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장면 종료]**

  • 던전 탐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잿빛 심연, 예상치 못한 균열

    **[장면 1]**

    **#1. 심연의 입구 – 낮게 드리운 잿빛 안개와 눅진 공기**

    시커먼 바위벽을 타고 축축한 이끼가 군데군데 얼룩처럼 피어 있었다. 거친 숨소리가 어두컴컴한 동굴을 낮게 울렸다. 낡은 가죽 갑옷을 걸친 청년, 이룸은 들고 있는 횃불을 휘저으며 발밑을 살폈다. 횃불의 불꽃이 가늘게 흔들릴 때마다 길고 기괴한 그림자가 바위 틈새를 따라 춤을 추듯 일렁였다.

    **이룸 (독백)**
    젠장, 오늘도 빈손인가. 이 망할 ‘잿빛 심연의 미궁’은 매번 날 배신하는군.

    이룸의 얼굴은 흙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있었다. 한 손에는 녹슨 단검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 대신 겨우 막대기만 한 작은 나무 방패를 쥐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맨 낡은 배낭은 텅 비어 있는 듯 가벼웠다.

    **이룸 (독백)**
    결계석 파편… 고작 이거 하나로는 다음 달 월세도… 에휴.

    투덜거리며 벽에 기댄 채 잠시 쉬었다. 피곤이 발목을 잡아끌었지만, 아직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포기할 여유 따윈 없었으니까. 이곳에 오기 위해 들인 경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다. 어둠 속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이마에 떨어졌다. 축축한 바닥에서는 알 수 없는 끈적한 냄새가 올라왔다.

    **[장면 2]**

    **#2. 어둠의 습격 – 끈적거리는 그림자들**

    그때였다. 으스스한 마찰음과 함께 이룸의 등 뒤에서 시커먼 그림자 하나가 미끄러지듯 솟아올랐다. 거대한 슬라임이었다. ‘어둠의 슬라임’. 하급 몬스터이긴 했지만, 이곳 잿빛 심연에서는 크기도, 공격성도 상상을 초월했다. 끈적이는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부식성 액체가 이룸의 가죽 갑옷에 튀었다.

    **이룸**
    크윽! 이 자식이!

    놀란 이룸은 재빨리 몸을 피하며 단검을 휘둘렀다. 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슬라임의 몸체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슬라임의 몸은 단단한 젤리 같아서 이룸의 녹슨 단검으로는 치명상을 입히기 어려웠다. 슬라임은 끈적한 팔을 뻗어 이룸을 덮치려 했다.

    **이룸 (독백)**
    젠장, 또 이거야? 몇 마리를 잡아야 지겨워하지 않을 셈이냐!

    이룸은 간신히 슬라임의 공격을 피하고는 벽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단검을 꽉 쥐고 슬라임의 핵이 있을 법한 몸체 중앙을 향해 필사적으로 찔렀다. 퍽!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슬라임의 몸체가 터져 나가며 끈적한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다.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룸**
    흐읍, 흐읍… 이 망할 놈의 미궁은… 날 매번 시험하는군.

    간신히 한숨을 돌린 이룸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아까 슬라임의 체액이 묻은 건가 싶어 손을 닦으려는데, 손바닥에 날카로운 돌멩이에 긁힌 듯한 상처가 보였다. 피가 배어 나왔다.

    **이룸**
    하아… 피곤하다. 이제 정말 돌아가야 하나… 이대로는 안 되는데.

    **[장면 3]**

    **#3. 예상치 못한 균열 – 숨겨진 통로**

    이룸은 터덜터덜 걷다가 축축한 벽에 기대어 한숨을 쉬었다. 차가운 돌벽이 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잠시 눈을 감으려던 그때였다.

    **[효과음]** – 스르륵… 툭!

    이룸이 기대고 있던 벽의 일부가 작게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이어 작은 돌멩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

    **이룸**
    응? 이건… 뭐야?

    이룸은 피곤에 절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가 기대고 있던 자리의 벽돌 하나가 안쪽으로 살짝 밀려들어가 있었고, 그 틈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보였다. 단순한 틈이 아니었다. 분명, 그 뒤로 또 다른 공간이 있는 듯했다.

    **이룸 (독백)**
    설마… 숨겨진 통로? 이 미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호기심과 함께 일말의 기대감이 피어올랐다. 이룸은 조심스럽게 밀려들어 간 벽돌 주변을 더듬었다. 손가락 끝에 차가운 금속 같은 질감이 느껴졌다. 벽돌을 잡고 옆으로 살짝 밀어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틈이 넓어졌다. 그 뒤로는 손전등도 없는 횃불만으로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깊은 어둠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룸**
    이런 곳이 아직 남아있었다니. 대체 누가, 언제…

    그는 망설였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그의 가난한 주머니 사정이 그를 재촉했다.

    **이룸 (독백)**
    에라 모르겠다! 이 미궁에 들어온 이상, 살아남거나… 혹은, 뭔가를 발견하거나 둘 중 하나지.

    굳게 결심한 이룸은 횃불을 높이 들고 조심스럽게 좁은 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몸을 비틀어 겨우 통과하자,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공기가 그를 감쌌다. 훨씬 더 무겁고, 알 수 없는 달콤하면서도 쌉쌀한 냄새가 났다.

    **[장면 4]**

    **#4. 고대의 전당 – 침묵 속의 제단**

    이룸이 도착한 곳은 작은 통로를 지나 넓게 펼쳐진 공간이었다. 횃불의 불빛이 닿는 곳마다 고대의 상형문자와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잿빛 심연의 미궁과는 달리, 이곳은 놀랍도록 깨끗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먼지 하나 없이 말이다.

    **이룸 (독백)**
    이 문양들은… 처음 보는 것들인데. 마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 같아.

    벽에 새겨진 문양들은 푸른빛, 붉은빛, 황금빛을 띠며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에 잊혔던 마법이 이곳에 여전히 깃들어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룸은 숨을 죽이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발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이 넓은 공간에는 아무런 생명체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섬뜩할 정도의 침묵만이 그를 짓눌렀다.

    중앙에는 거대한 돌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하지만 이룸의 눈에 포착된 것은, 제단 중앙에 놓인, 마치 평범한 강가의 돌멩이처럼 보이는 검은색 돌이었다.

    **이룸**
    이게… 전부인가?

    실망감이 밀려왔다. 힘들게 찾아 들어온 곳인데, 겨우 평범한 돌멩이라니. 그는 조심스럽게 제단에 다가가 검은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매끄러웠다. 아무런 특이점도 없어 보였다. 이룸은 검은 돌을 돌려보고, 흔들어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이룸 (독백)**
    젠장, 괜한 헛고생만 했잖아.

    **[장면 5]**

    **#5. 힘의 각성 – 내면의 울림**

    이룸은 검은 돌을 제자리에 내려놓으려다 멈칫했다. 아까 슬라임을 잡다가 생긴 손바닥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핏방울이 검은 돌 위에 톡, 하고 떨어졌다.

    **[효과음]** – 파르르… 웅-!

    순간, 검은 돌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돌의 표면에 희미한 푸른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렬해지더니, 이룸의 눈앞에서 돌 전체를 감싸는 푸른 불꽃으로 타올랐다.

    **이룸**
    으, 읍… 으아아악!

    이룸은 비명을 지르며 돌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돌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돌은 공중에 떠올라 이룸의 손바닥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함께 빛을 더욱 강렬하게 뿜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주변 벽에 새겨져 있던 고대의 문양들이 일제히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심장이 뛰듯, 규칙적으로 깜빡이는 빛들이 고대 전당을 환하게 밝혔다.

    이룸은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거대한 힘이 자신의 몸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뜨겁고 차가운 것이 동시에 흐르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자신의 내면에서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이룸 (독백)**
    이… 이게 대체… 무슨…

    그의 몸에서 푸른빛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알 수 없는 언어가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 언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의미는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각성’ 그리고 ‘계약’.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작은 푸른색 구슬 형태의 마력이 형성되었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빛이었다. 하지만 그 마력은 이룸의 통제를 벗어나, 순식간에 제단 옆 바닥에 떨어졌다. 콰아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생겼다. 바위가 녹아내린 듯, 그을린 자국이 선명했다.

    이룸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아까의 검은 돌이 박혀 있는 듯한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이룸 (독백)**
    이건… 마법? 내가… 마법을 썼다고?

    그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고통스러웠지만,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전율과 희열이 온몸을 감쌌다. 그의 몸 안에, 이런 거대한 힘이 숨어 있었다니.

    **[장면 6]**

    **#6. 새로운 시작 – 미궁의 울림**

    각성한 힘에 이끌린 듯, 고대 전당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이룸은 주저앉은 채로 고개를 들었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벽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전당 곳곳에 흐르는 마력의 흐름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룸은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진 문양을 보았다.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의 일부가 되었고, 그의 존재의 근원이 될 것처럼 느껴졌다.

    **이룸 (독백)**
    이건… 시작에 불과해.

    그때였다. 이룸의 각성한 힘 때문이었을까. 전당 저 깊은 곳, 이룸이 들어온 곳과는 반대편 어둠 속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그의 각성으로 인해 깨어난 듯했다. 그 소리는 잿빛 심연의 미궁 전체를 울리는 듯, 불길하면서도 거대했다.

    이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었다.

    **[장면 끝]**

  • 좀비 아포칼립스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흉터, 그리고 심장 박동

    **시놉시스:**
    세상이 무너진 지 10년, 인류는 죽은 자들의 틈바구니에서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감염자’라 불리는 괴물들은 한때 문명이었던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생존자들은 차가운 콘크리트 숲 속에서 희망 없는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하지만 여기, 잔혹한 세상의 법칙을 거스르는 금지된 감정이 싹튼다. 자비 없이 살아남아 온 인간 소녀 ‘미나’와, 괴물이면서도 인간의 심장을 잃지 않은 ‘제로’. 종족을 초월한 두 존재의 사랑은 파멸의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잔인한 역설이 된다.

    ### **프롤로그: 재의 노래**

    **SCENE 1**
    **EXT. 폐허가 된 도시 외곽 – 낮**

    [음악: 처연하고 쓸쓸한 현악기 선율, 낮게 깔리는 베이스]

    수십 년 전 번화했던 도시의 잔해가 붉게 물든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앙상한 뼈대만 남은 고층 빌딩들은 거대한 묘비처럼 서 있고, 그 사이를 비집고 자란 잡초와 덩굴이 콘크리트 벽을 휘감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먼지와 함께 녹슨 철근 조각들이 슬픈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카메라, 황량한 풍경을 천천히 팬 오버한다.

    [효과음: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날카로운 짐승 울음소리]

    한 생존자의 뒷모습이 화면 중앙에 잡힌다. 거친 사막 전투복 같은 옷을 입고, 낡은 백팩을 멘 채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미나(20대 초반)**다. 얼굴에는 먼지와 흙이 묻어있지만, 또렷한 눈빛은 주변을 예리하게 탐색한다. 등에는 개머리판이 접힌 소총이 매달려 있고, 한 손에는 묵직한 마체테가 들려 있다.

    **내레이션 (미나의 속삭이는 목소리):**
    _세상은 멸망했고, 우리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 ‘숨쉬고’ 있었다. 죽지 못해 버티는 숨결마다 칼날 같은 현실이 스며들었지. 인간은 괴물이 되고, 괴물은… 그저 괴물일 뿐인 세상._

    미나가 멈춰 선다. 그녀의 눈이 한 건물 잔해에 고정된다. 한때 식물원이자 온실이었을 법한, 유리 지붕이 산산조각 난 거대한 구조물이다. 내부에는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기이하게 자라난 식물들이 엉켜 있다. 푸른색, 보라색, 붉은색의 이질적인 빛깔을 띠는 식물들이 기형적으로 번성해 있다.

    미나, 마체테를 고쳐 잡고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 **챕터 1: 숲의 그림자**

    **SCENE 2**
    **INT. 폐허가 된 식물원 – 낮**

    [음악: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낮은 현악기 화음, 이따금 들리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식물원 내부는 바깥보다 훨씬 더 어둡고 습하다. 부서진 유리창을 통해 간신히 들어오는 빛줄기가 먼지 속을 헤집으며 기괴한 그림자들을 만들어낸다. 공기는 흙냄새와 함께 썩어가는 식물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다.

    미나, 잔뜩 경계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꺾인 나뭇가지와 엉성하게 엉킨 덩굴을 마체테로 헤치며 나아간다. 그녀의 시선은 끊임없이 주변을 훑는다.

    **미나 (속삭이듯):**
    “젠장, 여기서 대체 뭘 찾으라는 거야.”

    [효과음: 미나의 발소리, 찰칵, 마체테가 덩굴을 자르는 소리]

    그녀는 고장 난 선반 위에서 찢어진 책 몇 권과 곰팡이 슨 플라스틱 용기를 발견한다. 실망한 표정으로 혀를 찬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미나:** (화들짝 놀라며)
    “…!”

    미나, 즉시 몸을 숨긴다. 빽빽한 덩굴 뒤편으로 몸을 웅크리고, 소총을 겨눈다. 심장이 거칠게 요동친다.

    [효과음: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 미나의 거친 숨소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비정상적으로 길고 마른 팔다리, 핏발 선 눈동자, 그리고 찢어진 피부 사이로 드러나는 뼈대. 일반적인 ‘감염자’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그것은 덩치 큰 일반 감염자 무리를 이끌고 있는 듯했다.

    카메라, 그 감염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깊게 패인 눈과 앙상한 턱선. 하지만 기묘하게도, 다른 감염자들처럼 무작정 날뛰는 광기보다는, 어딘가에 집중하는 듯한 정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그 ‘감염자’의 이름은 **제로(Zero)**다. (나이 불명, 20대 후반 추정의 외모)

    제로는 덩굴 너머의 미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듯했지만, 이내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옮긴다. 마치 주변의 다른 감염자들을 통제하려는 듯, 손가락을 튕기는 듯한 미세한 동작을 취한다. 다른 감염자들은 제로의 움직임에 따라 으르렁거리며 숲 속 깊숙이 사라진다.

    미나, 숨을 죽인다. 제로의 행동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저건 다른 감염자들과는 다르다. 명백히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제로,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가만히 주위를 둘러본다. 그리고는 미나가 숨어 있는 덩굴 쪽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그의 핏발 선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난다.

    미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선다. 들켰다.

    하지만 제로는 아무런 공격적인 움직임 없이, 그저 조용히 미나를 응시할 뿐이다. 그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읽히지 않는다. 그저, 깊은 심연 같은 눈빛만이 미나를 꿰뚫는다.

    [음악: 긴장감 속에서 서서히 멜로디가 바뀌는, 미스터리하면서도 슬픈 피아노 선율]

    미나는 방아쇠에 걸린 손가락에 힘을 준다. 언제든 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제로,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 순간, 그의 입술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을 미나는 놓치지 않는다. 마치 무언가를 말하려다 만 것처럼.

    그리고는, 제로의 시선이 미나의 눈을 떠나, 그녀의 어깨 뒤쪽, 덩굴 너머의 깊은 숲 속을 향한다.
    제로의 눈빛에 미세한 변화가 스친다. 경고, 혹은… 염려?

    그가 갑자기 몸을 돌려 숲 속으로 사라진다. 다른 감염자들이 사라진 방향과는 반대였다.
    미나, 혼란스럽다.

    **미나:** (작게 중얼거린다)
    “…뭐지? 왜 날 공격하지 않았지?”

    그녀는 제로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본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봤던, 깊고 어두운 숲 속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SCENE 3**
    **INT. 폐허가 된 식물원 – 숲 속 깊은 곳 – 낮**

    [음악: 긴장감 유지, 그러나 더 조용하고 탐색적인 분위기]

    미나,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제로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다가,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봤던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나아간다. 직감적으로 그쪽이 더 위험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발밑에는 썩은 낙엽과 부러진 나뭇가지가 뒹굴고, 이끼 낀 돌들이 미끄럽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가던 미나의 눈에, 부서진 온실의 벽 틈새로 보이는 희미한 빛이 들어온다.

    그곳은 한때 식물원의 연구실이었을 법한 공간이었다. 유리창은 깨져 있고, 낡은 책상과 장비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미나, 숨을 들이켠다.

    낡은 철제 캐비닛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여성이다. 상처투성이지만, 감염자는 아니었다. 아직 살아있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미 의식이 희미한 듯, 가늘게 숨만 쉬고 있다. 옆구리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고, 그 옆에는 찢어진 붕대가 널브러져 있다.

    **미나:** (경악하며)
    “이런…!”

    그때, 여성의 발치에 놓인 작은 나무 조각이 미나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뭇조각에는 조악하게 깎인 꽃 모양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핏물에 얼룩진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바로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미나, 소총을 돌려세우며 즉시 자세를 취한다.

    **미나:**
    “누구…!”

    그곳에는 조금 전 헤어졌던 제로가 서 있었다. 그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손에는 방금 전 여성이 떨어뜨렸을 법한, 또 다른 나무 조각이 들려 있다. 그 나무 조각에는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의 작은 꽃이 새겨져 있었다.

    미나, 혼란스럽다. 제로의 핏발 선 눈동자가 미나와 여성, 그리고 자신이 들고 있는 나무 조각을 번갈아 응시한다. 그의 행동은 마치… 여성을 ‘보호’하려 했던 것처럼 보인다.

    **미나:**
    “너… 저 여자를 알고 있나?”

    제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미나를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어딘가 애처로운 빛을 띠고 있었다.
    여성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미나를 보며, 제로의 앙상한 손이 천천히 움직인다. 그가 들고 있던 나무 조각을, 조심스럽게 미나의 발치에 놓는다.

    [음악: 연민과 의문을 담은 멜로디로 전환]

    미나는 그 나무 조각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다시 제로를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이 없지만, 그의 눈빛은 마치 간절한 부탁을 하는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미나, 직감한다. 이 감염자는… 이 여성을 살리고 싶어 한다.

    **미나:** (믿을 수 없다는 듯)
    “네가… 날 이곳으로 유인한 거야? 이 여자를 구해달라고?”

    제로는 고개를 숙인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 하지만 미나는 그것이 긍정임을 안다.
    그 순간, 여성의 몸이 경련을 일으킨다. 상처가 악화되고 있었다.

    **미나:**
    “젠장…!”

    미나는 결심한다. 이 괴물을 믿을 수는 없지만, 눈앞의 생명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미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의료 키트를 꺼낸다. 소독약과 붕대, 바늘과 실.

    제로는 미나의 움직임을 묵묵히 지켜본다. 그의 눈빛은 단 한 번도 미나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미나는 여성의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한다. 능숙하게 소독하고, 바늘로 살점을 꿰매고, 붕대로 감싼다.

    [효과음: 천을 찢는 소리, 실로 꿰매는 소리, 고통에 신음하는 여성의 소리]

    그 과정 내내, 제로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지켜본다.
    치료가 끝나자, 미나는 지친 한숨을 내쉰다. 여성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숨소리는 한결 고르게 들렸다.

    미나, 다시 제로를 바라본다.
    제로는 이제 더 이상 애처롭거나 간절해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의 눈빛에는… 아주 미세한 안도감, 그리고 어쩌면… 감사의 빛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음악: 잔잔하고 따뜻한 피아노 선율이 희미하게 흐른다]

    그때, 숲 속 깊은 곳에서 또 다른 감염자들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까보다 훨씬 더 가까이, 그리고 많았다.

    **미나:** (깜짝 놀라며)
    “이런, 들켰나 봐!”

    미나는 소총을 움켜쥔다. 여성을 데리고 이 상황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성은 당분간 이곳에 숨겨두고, 자신은 감염자들을 유인해야 한다.
    하지만 제로는 미나의 앞을 막아선다.

    **미나:**
    “비켜! 내가 유인할게. 저 여자는… 네가 지켜야지!”

    제로는 고개를 젓는다. 그리고 자신의 손목을 보여준다. 찢어진 피부 아래로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다른 감염자들에게서 나는 끔찍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미나, 깨닫는다. 제로는 ‘같은 편’이었다. 그는 감염자 무리의 일원이었기에, 그들의 냄새를 이용하여 다른 감염자들을 유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일반 감염자들보다 훨씬 빠르고 기민했다.

    제로는 미나의 손에 마체테를 쥐여준다. 그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 접촉에서 미나는 알 수 없는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는, 제로가 여성에게 다가가, 여성의 얼굴에 자신의 앙상한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갖다 댄다. 마치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처럼, 한참을 머무른다.

    [음악: 애잔함이 고조된다]

    제로, 이내 뒤돌아 선다. 그리고는 미나에게 마지막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 눈빛에는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부탁, 희망,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

    그리고 제로는, 감염자들이 몰려오는 숲 속 깊은 곳으로, 미련 없이 달려들어 사라진다.
    [효과음: 제로가 달려가는 거친 발소리, 멀리서 들리는 감염자들의 광기 어린 울부짖음]

    미나는 제로가 사라진 곳을 한참 바라본다. 마체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미나:**
    “…살아남아, 제로.”

    [음악: 비장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이 최고조에 이른다]

    미나는 다시 여성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여성은 아직 의식을 찾지 못했지만, 그녀의 얼굴은 한결 편안해 보였다.
    미나는 여성의 옆에 앉아, 조용히 숲 속에서 들려오는 감염자들의 소리와, 그 사이를 헤집는 제로의 움직임을 듣는다.
    이 모든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괴물이 인간을 구한다? 그것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하지만 미나의 심장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어쩌면, 이 황폐한 세상 속에서… 그녀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를, 희미한 희망의 빛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카메라, 미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새로운 의문과, 아주 작은 기대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내레이션 (미나의 속삭이는 목소리):**
    _세상은 여전히 지옥이었다. 하지만 지옥의 심장부에서, 나는 한 줄기 빛을 보았다. 그것은 어둠 속을 헤매는 괴물의 눈빛에서 시작된, 금지된 흉터였다. 그리고 그 흉터는, 알 수 없는 심장 박동을 만들어내고 있었다._

    **FADE OUT.**

    ### **에필로그 (추후 전개 예상):**

    미나는 여성을 치료하고, 여성이 의식을 되찾자 그녀가 제로의 여동생, 혹은 연인이었음을 알게 된다. 제로는 감염 초기, 가족을 지키려다 자신도 감염되었지만, 강한 의지력으로 이성을 완전히 잃지 않은 ‘특수 개체’였다. 그는 언젠가 완전히 인간으로 돌아올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으며, 인간과 감염자의 경계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미나와 제로는 여러 번 조우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를 쌓아간다. 제로는 인간의 언어를 조금씩 회복하고, 미나는 그의 고독과 인간성을 알아본다. 다른 생존자들은 제로를 위험한 괴물로 취급하며 둘을 위협하고, 일반 감염자들은 제로의 이질적인 존재를 감지하고 공격하려 한다.

    결국, 미나는 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와 함께 종족을 뛰어넘는 도피를 시작한다. 그들의 사랑은 황폐한 세상 속에서 가장 위대하고도 비극적인 꽃을 피울 것이다. 과연 그들은 이 세상에서 금지된 사랑을 지켜내고, 함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혹은, 둘 중 하나는, 혹은 둘 다, 이 잔혹한 세상의 먹이가 될까?

  • 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아니, 카인. 대체 왜 거기서 ‘하품’을 해?”

    한여름은 팔짱을 낀 채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카인을 노려봤다. 푹신한 카페 소파에 몸을 파묻은 카인은 초콜릿 라떼 거품을 입술에 묻힌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품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 아닌가. 이 정도 집중력 저하는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라고 판단했다.”

    “평범한 모습 좋아하시네! 눈깔이 뽑혀라 하품을 하냐? 그것도 내가 ‘우리 여름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고~’ 하는 장면에서! 누가 보면 내가 재미없는 얘기해서 너 지루해 죽는 줄 알겠어!”

    “하지만 너는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않나. 지루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어젯밤 ‘그 문제’로 자료 조사를 하느라 밤을 새워서.”

    카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름은 냅다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탁’ 쳤다. 주변 테이블에서 일제히 시선이 꽂혔지만 여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쉬잇! ‘그 문제’라는 말은 금지어라고 했지! 옆에 귀 달린 놈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카인은 여름의 호들갑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캔하듯 훑었다. 일반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찰나의 순간이었다.

    “염려 마라, 여름. 이 카페에서 우리의 정체를 알 만한 존재는… 없다.”

    카인의 말에 여름은 한숨을 쉬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꼭 뭔 일이 터지더라.”

    여름은 괜히 주변을 둘러봤다. 따뜻한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평범한 카페 풍경이었다. 창가에 앉은 노부부가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젊은이들이 간간이 보였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너무나도 평화로워서 오히려 불안했다.

    그때였다. 카페 문이 ‘딸랑’ 소리를 내며 열렸다. 키 크고 마른 체구의 남자가 들어섰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고, 얇은 안경 너머로 날카로운 눈빛이 빛났다. 그의 손에는 낡은 서류 가방이 들려 있었다. 남자는 두리번거리더니 카인과 여름이 앉은 테이블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여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 이상해.’

    남자는 멀리 떨어진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굳이 이 넓은 카페에서 우리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을 선택하다니. 그리고 커피 한 잔 시키지도 않고 가방만 무릎에 올린 채 우리 쪽을 흘깃거렸다.

    여름은 얼른 카인의 정강이를 툭 쳤다.

    “야, 저 남자 좀 봐. 아까부터 우리 쪽만 보고 있는 것 같지 않아?”

    카인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남자를 봤다.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여름은 카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왜? 뭐야? 너 아는 사람이야? 설마… ‘그쪽’ 사람?”

    카인은 시선을 돌려 여름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평소보다 더 깊이를 알 수 없는 색으로 변했다.

    “알려줄 수 없다.”

    “뭐? 지금 그걸 비밀이라고 해? 야, 너 진짜…!”

    여름은 목소리를 낮춰 카인을 다그쳤다.

    “지금 저 아저씨가 우리 쪽을 감시하는 것 같단 말이야! 너 혹시… 또 뭐 규칙 어긴 거 있어?”

    카인은 한숨처럼 짧은 숨을 내쉬었다. “규칙은 어기지 않았다. 다만, 그가 나를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감찰부’ 소속의 박 검은. 그는… 원칙주의자다.”

    “감찰부? 원칙주의자? 망했네! 야, 그럼 우리 들킨 거 아니야? 어떡해? 네가 인간이랑 어울려 다니면 안 되는 규정이 있었잖아! 그것도 나랑! 여자랑!”

    여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크게 말해버렸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휴.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인간과 교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지 않다. 다만, ‘과도한 감정 교류’는 경계 대상이다. 그리고 너는…”

    카인의 시선이 여름의 눈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여름의 뺨을 발그레하게 만들 만큼 뜨거웠다. 여름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나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감정 교류’ 대상이지.”

    여름의 심장이 다시 ‘쿵’ 했다. 이번에는 불안함 때문이 아니라, 카인의 달콤한 목소리 때문이었다. 망할! 이런 상황에서 로맨틱한 멘트를 날리다니! 그 박 검은인지 뭔지 하는 아저씨가 다 듣겠네!

    “지금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잖아!” 여름은 다급하게 속삭였다. “어떻게 해야 해? 저 아저씨 뭔가 서류 같은 걸 꺼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박 검은는 가방에서 얇은 수첩과 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카인과 여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좋다. 그럼 지금부터 우리는… ‘막역한 사업 파트너’ 관계다.”

    “뭐? 사업 파트너? 갑자기?” 여름은 황당했다. “무슨 사업? 우리 지금 카페에서 데이트 중이었잖아! 초콜릿 라떼 마시면서!”

    “초콜릿 라떼는 뇌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지금부터 우리는 아주 중요한 ‘사업 기획’을 논의하는 중이다.”

    카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했다.

    “내가 시그널을 주면, 자연스럽게 따라와라.”

    여름은 어리둥절했지만, 카인의 진지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다른 방법도 없었다.

    카인은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안경을 고쳐 쓰는 시늉을 했다. 물론 그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목소리를 한 톤 낮춰 말했다.

    “하 대표님. 지난번 기획안 검토는 잘 되셨습니까?”

    여름은 숨이 턱 막혔다. 하 대표님이라니! 내가 언제부터 대표가 됐어! 그리고 카인 너, 목소리가 평소보다 세 톤은 더 낮아졌잖아! 완전 변조 수준이잖아!

    하지만 여름은 카인의 눈빛이 보내는 ‘따라와’라는 메시지에 필사적으로 맞춰주기로 했다.

    “아… 카 이사님. 네, 물론이죠.” 여름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 애썼다. “음… 검토 결과… 아주 고무적이었습니다.”

    ‘고무적’이라는 단어를 뱉으면서 여름은 속으로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싶었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저는 특히 ‘프로젝트 페르세포네’의 초기 시장 진입 전략이 인상 깊었습니다. 하지만…”

    카인은 말을 흐리며 찻잔을 들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박 검은 쪽으로 향했다. 박 검은는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하지만, 재정적인 측면에서 저희가 감당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저희는 아직 신생 기업이니 말이죠.”

    ‘프로젝트 페르세포네’라니! 여름은 카인의 창의력에 감탄했다. 그리고 카인이 제법 자연스럽게 ‘척’ 하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는 분명 평소에는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었다.

    여름은 얼른 생각했다. 신생 기업? 재정? 좋아, 내가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주지.

    “음… 카 이사님의 우려도 일리는 있습니다.” 여름은 허세를 부리듯 턱을 괴었다. “하지만 저는 이번 프로젝트의 잠재력을 믿습니다. 초기 투자는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핵심 기술… 즉, ‘시공간 왜곡을 통한 입체적 콘텐츠 구현 기술’은 시장을 뒤흔들 것입니다.”

    여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시공간 왜곡? 입체적 콘텐츠? 완전 허무맹랑한 소리 아닌가? 하지만 그럴수록 더 그럴싸하게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름은 더 과장해서 말했다.

    카인은 눈썹을 살짝 올렸다. 여름의 기발한(?) 거짓말에 그도 살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관리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 대표님의 통찰력은 항상 저를 감탄하게 합니다. 하지만…”

    그때였다. 박 검은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 들린 수첩과 펜이 여름의 눈에 확 들어왔다. 그가 천천히 우리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름의 심장이 발뒤꿈치까지 곤두박질쳤다.

    ‘젠장, 들켰어!’

    카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박 검은에게 향해 있었다.

    “저는… 아직도 그 기술의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특히 사용자들의 ‘정신적 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심각할 수 있습니다.”

    카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낮게 깔렸다. 그의 말 속에는 여름에게 보내는 은밀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했다.

    안전성? 정신적 안정? 심각할 수 있다?

    여름의 머릿속에서 전구가 ‘번쩍’ 하고 켜졌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을 이 기술의 ‘위험성’으로 포장해서 도망갈 구실을 만들고 있는 거야!

    박 검은가 거의 테이블까지 다가왔다. 그의 눈빛은 매서웠고, 입술은 굳게 다물려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여름과 카인을 가리키려는 듯했다.

    바로 그때, 여름은 벌떡 일어섰다.

    “카 이사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여름은 과장된 동작으로 카인에게 손을 내저었다. “저희 ‘(주)숨바꼭질’은 단 한 번도 안정성을 간과한 적이 없습니다! 저희의 기술은 그 어떤 사용자에게도 ‘정신적 데미지’를 입히지 않습니다!”

    여름은 말을 쏟아내며 카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끌었다.

    “젠장, 이 문제는 지금 당장 본사로 돌아가서 다시 논의해야겠습니다! 더 이상은 저도 못 참겠습니다!”

    카인은 여름의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잠시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여름에게 몸을 맡겼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고 테이블을 돌아 뛰쳐나갔다. 박 검은가 팔을 뻗어 막으려 했지만, 여름은 그의 팔을 휙 피하며 외쳤다.

    “카 이사님, 빨리요! 저희의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저런 의심 가득한 시선은 저희에게 모욕적입니다!”

    카인은 여름에게 끌려가다시피 하며 카페 문으로 향했다. 여름은 박 검은가 뒤에서 뭔가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젠장, 망할 감찰부! 감찰은 무슨 감찰이야! 우리 사업 방해하지 마!” 여름은 거의 울부짖는 수준으로 외치며 카인과 함께 카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딸랑-!’

    카페 문이 닫히고, 시끄러운 서울의 거리가 우리를 맞았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은 채 무작정 뛰었다. 종로의 번잡한 거리를 숨이 턱에 차도록 달렸다. 뒤에서 박 검은가 쫓아오는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작은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낡은 상가 건물들 사이로 숨겨진 좁은 길이었다. 그제야 여름은 멈춰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망할…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네.”

    카인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여름을 바라봤다. 그의 붉은 눈동자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서려 있었다.

    “하 대표님. 방금 그 ‘시공간 왜곡을 통한 입체적 콘텐츠 구현 기술’과 ‘(주)숨바꼭질’은…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여름은 여전히 숨을 헐떡이며 카인의 팔을 ‘퍽’ 하고 때렸다.

    “지금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너 진짜 사람 심장 쫄깃하게 만드는 데 재주 있다! 근데, (주)숨바꼭질? 너도 그 순간에 맞춰서 대단했다, 진짜!”

    카인은 여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위기 상황에서는 너의 순발력이 항상 나를 놀라게 한다. ‘정신적 데미지’라는 표현도 아주 적절했어.”

    “닥쳐! 이 모든 게 다 너 때문이잖아! 대체 뭘 그렇게 규칙을 어겨서 그 아저씨가 너를 감시하는 거야? 솔직히 말해 봐! 또 몰래 인간 드라마 봤지? 아니면…”

    여름은 문득, 카인의 손을 잡고 있던 자신의 손을 깨달았다. 아직까지 카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그의 손은 따뜻하고, 조금은 거칠었다.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는 온기였다.

    여름은 황급히 손을 놓으려 했지만, 카인이 여름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단단하게 잡아왔다.

    카인의 붉은 눈동자가 여름의 눈동자를 깊이 들여다봤다. 골목길에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여름아.”

    카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속삭이듯 울렸다. 아까의 진중한 ‘이사님’ 목소리가 아닌, 여름만이 아는 다정하고 낮은 목소리였다.

    “나는… 단 한 번도 규칙을 어긴 적이 없다.”

    그는 여름의 엄지손가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다만… 너와의 ‘과도한 감정 교류’는… 감찰부에게는 어쩌면 ‘규칙 위반’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

    여름의 심장이 다시 ‘쿵’ 했다. 이번에는 너무나도 확실한 설렘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와 이 감정을 나누는 것을…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카인은 여름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그의 눈빛은 짙은 그림자 속에서도 변치 않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저런 감찰부 녀석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쫓아다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금지된 사랑’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금지된 사랑.

    여름은 그 말이 가진 무게감과 동시에, 이상하게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그 어떤 위험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할 건데?” 여름은 목이 메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속 도망 다닐 거야?”

    카인은 여름을 향해 활짝 미소 지었다. 그의 미소는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처럼 밝았다.

    “아니. 도망 다니는 것은 재미없다.”

    그는 여름의 손을 더욱 단단히 잡으며 앞을 향해 걸어갔다. 좁은 골목길을 벗어나 햇살이 드는 큰길로 나섰다.

    “우리가 금지된 사랑을 나눈다면, 더더욱 들키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리고… 이 금지된 사랑을 더더욱 대담하게 나누어야겠다.”

    여름은 카인의 당찬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담하게 나누어야겠다니. 이 남자, 정말 매력적이다.

    하지만 곧 현실적인 문제가 떠올랐다.

    “야! 근데 그럼 (주)숨바꼭질은 어떡하고! 프로젝트 페르세포네는? 그 ‘시공간 왜곡 기술’은?”

    카인은 여름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다음 데이트 때 ‘기술 개발 회의’를 하면서 논의해 보지.”

    “이게 지금… 데이트냐, 회의냐!”

    여름은 카인의 등짝을 때렸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가득했다. 박 검은인지 뭔지 하는 감찰부 아저씨는 분명 앞으로도 끈질기게 따라다닐 것이다. 하지만… 뭐, 어때.

    ‘이 금지된 사랑, 더 재밌어질 것 같네.’

    여름은 카인의 손을 잡은 채, 활짝 웃으며 다음 걸음을 내디뎠다. 이 금지된 로맨틱 코미디는 이제 막 시작일 뿐이었다.

  • 에픽 하이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달그림자 대도서관의 가장 깊은 곳, 먼지 낀 서가들 사이를 오가는 것은 리엘의 일상이었다. 그는 스무 해 가까이 이 거대한 지식의 전당에서 잡일을 도맡아왔다. 낡은 책등에서 풍겨 나오는 아득한 세월의 냄새, 희미하게 들려오는 고서의 바스락거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문자의 숲. 리엘은 그 모든 것을 사랑했지만, 동시에 막연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삶은 책 속의 영웅들처럼 빛나지 않았고, 고작해야 낡은 지식을 분류하고 옮기는 일에 갇혀 있었다.

    어느 날, 대도서관의 최고 서기관, 엘라가 리엘을 불렀다. 백발이 성성한 엘라는 날카로운 눈으로 리엘을 꿰뚫어 보며 말했다. “리엘, ‘아카눔 최하층’을 정리해야 한다. 몇백 년간 봉인되어 있던 곳이니, 각오 단단히 하고 가거라.”

    아카눔 최하층. 그 이름만으로도 리엘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곳은 대도서관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구역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대도서관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존재했던 고대의 유적 위에 지어졌다고 했다.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았고, 들어간 자는 대부분 괴이한 경험을 하거나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며칠 후, 리엘은 덜컹거리는 녹슨 철문을 열고 아카눔 최하층으로 발을 들였다.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횃불의 불꽃이 어둠 속에서 휘청이며 길고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고, 선반에는 손때 묻지 않은 두꺼운 서책들이 마치 잠들어 있는 괴물처럼 꽂혀 있었다. 수백 년간 아무도 만지지 않았다는 말이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리엘은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기 시작했다. 고대의 먼지는 마치 시간 자체의 잔해처럼 무겁고 축축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을까. 그는 최하층의 가장 구석진 곳, 다른 선반들과는 달리 아무것도 꽂혀 있지 않은 텅 빈 공간을 발견했다. 이상하게도 그곳만은 주변의 습기와 먼지로부터 자유로운 듯 깨끗했다. 리엘은 호기심에 손을 뻗어 벽면을 더듬었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차가운 금속이 피부에 닿는 듯한 묘한 감각이 전신을 훑었다. 동시에 벽면에 새겨진 고대 문자 중 하나가 희미하게 빛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착각이었을까. 리엘은 다시 한번 벽을 눌렀다. 이번에는 손바닥 전체로.

    “크으읍!”

    벽이 안으로 밀려들어 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가 서 있던 바닥의 일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윽고 텅 비어 있던 벽면의 안쪽에서 돌출된 작은 받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받침대 위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한 권의 책이 놓여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오래된 회색 장정의 서책일 뿐이었다. 제목도, 저자도, 아무런 표식도 없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감추기 위한 위장 같았다.

    리엘은 책을 조심스럽게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가벼웠지만, 그의 손바닥에 닿는 순간 묘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마치 책 안에 우주가 들어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책은 차가웠지만, 동시에 심장에서 시작된 듯한 미세한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의 심장이 불안하게 고동쳤다.

    “이게 대체… 뭘까.”

    그는 조심스럽게 표지를 넘겼다. 첫 장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였다. 실망감과 동시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스쳤다. 다음 장, 그 다음 장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페이지가 비어 있었다.

    ‘고작 빈 책이라니.’

    그가 책을 덮으려던 찰나,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마지막 페이지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치 거대한 스위치가 켜진 것처럼, 책 전체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리엘은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몸을 감싸는 빛은 따뜻하고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듯한 전율을 안겨주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리엘은 여전히 아카눔 최하층의 그곳에 서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수많은 빛의 실타래가 엉키고 설킨 채 눈앞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공기 중의 미세한 입자들, 벽을 이루는 돌멩이의 구성, 심지어 그의 손끝에 있는 생명의 기운까지도, 모든 것이 셀 수 없는 빛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세상을 이루는 근원의 언어를 직접 보는 듯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리엘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빛의 실타래 중 하나에 닿자, 실타래는 그의 의지에 따라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그는 그것을 모아 작은 구슬 형태로 만들었다. 구슬은 그의 손바닥 위에서 영롱하게 빛나며 춤을 추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모든 것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 무한한 가능성의 감각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문득 자신이 들고 있던 회색 서책을 내려다보았다. 책은 여전히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무한한 힘을 그가 인지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단순한 지식의 보관소가 아니었다. 세상의 근원을 열어주는 열쇠이자, 만물의 맥동을 이해하게 하는 매개체였다.

    리엘은 가슴이 터질 듯한 흥분과 동시에 막대한 책임감에 사로잡혔다. 그는 고작 대도서관의 이름 없는 견습 사서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손에, 세계의 비밀이 쥐어져 있었다. 이 힘은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그리고 과연, 그는 이 거대한 힘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카눔 최하층의 어둠 속에서, 작은 빛의 구슬 하나가 리엘의 손 위에서 찬란하게 빛났다. 그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변해버렸다. 세상은 그에게 거대한 비밀을 드러냈고, 그는 이제 그 비밀을 품고 살아갈 존재가 되었다.

  • SF (공상과학)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2화: 보이지 않는 손**

    자정.
    민준은 침대 위에서 뒤척였다. 이불을 목까지 끌어당겼지만,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은 멈출 줄 몰랐다.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아니, 잠을 잘 수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고요한 아파트 안에서, 심장이 불규칙하게 쿵쾅거리는 소리만이 귓속을 채웠다. 벽에 걸린 디지털 시계가 붉은 숫자를 깜빡이며 00:01을 알렸다. 그 순간, 거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민준은 순간 숨을 멈췄다. 망할. 또 시작인가.
    처음엔 옆집 소음인 줄 알았다. 아니, 착각이겠거니 애써 외면했다. 주방에서 컵이 제멋대로 떨어져 깨지고, 잠든 사이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을 때도, 그저 오래된 건물의 노후화나 제멋대로 작동하는 시스템 오류라고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 없었다.

    침대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맨발이 차가운 마루에 닿자 소름이 돋았다. 거실 쪽에서 느껴지는 묘한 냉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방금 들린 소리는 분명 가구와 같은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누구 없어요?”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가 지나치게 떨렸다. 자신이 내뱉은 물음에도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아파트엔 민준 혼자였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거실 한가운데를 비추고 있었다. 민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쓰러져 있는 소파 테이블이었다. 방금 들린 소리의 근원이 분명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잡지들과 리모컨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이게… 대체…”

    민준은 테이블을 일으켜 세우려 다가갔다. 그 순간, 테이블 바로 옆에 놓여 있던 플로어 스탠드의 전구가 갑자기 ‘팟’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버렸다. 짧은 섬광과 함께 거실은 다시 암흑에 잠겼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민준은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전구가 터진 건가? 아니, 저렇게 갑작스럽게 터질 리가. 이건 분명…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밀려들었다. 마치 얼음장 같은 손이 목덜미를 스치는 듯한 섬뜩한 감각에 민준은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그 불쾌한 시선이.

    그때였다. 주방 쪽에서 ‘달그락 달그락’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누군가가 칼을 갈고 있는 듯한 끔찍한 마찰음이었다. 민준은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주방과 거실을 잇는 통로 저편, 냉장고 문이 천천히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하는 소리가 뼈 속까지 파고들었다.

    이어 냉장고 문이 활짝 열리더니, 안에 있던 유리병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쨍그랑! 쨍그랑!’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튀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만해!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민준은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두려움에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신, 주방에서 떨어지는 물건들의 소리는 더욱 격렬해졌다. 접시들이 선반에서 쏟아지고, 식기들이 서랍 밖으로 튀어나와 바닥을 굴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폭주하듯 주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민준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는 현관문으로 향해 달려갔다. 이 아파트를 벗어나야 했다. 당장.

    현관문에 다다라 손잡이를 잡았다. 차가운 금속이 손바닥에 닿았다. 비틀어 열려는 순간, 손잡이가 제멋대로 덜컹거렸다. 잠금장치가 여러 번 풀렸다 잠기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문이 열리지 않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문을 안에서 굳게 잠가버린 것처럼. 민준은 필사적으로 손잡이를 돌리고 밀쳤지만, 문은 굳건했다.

    “안 돼! 열어! 열어란 말이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쾅! 하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등 뒤, 거실 중앙에서 갑자기 TV가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켜졌다. 화면에는 아무런 방송도 나오지 않고, 오직 섬뜩한 노이즈만이 가득했다. 백색 소음이 커다란 볼륨으로 거실을 채웠다.

    그 노이즈 속에서, 희미하게 무언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한 음성. 그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노이즈로 가득 찬 TV 화면이 자신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TV 화면의 노이즈가 일렁이더니, 희미하게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검은 그림자.
    사람의 형상이었다. 비틀리고 뭉개진, 거무스름한 잔상. 그 형상이 민준을 향해 천천히 팔을 뻗는 듯했다.

    민준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은 불가능했다. 그는 오직 본능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으아아악!”

    그의 비명 소리가 아파트의 모든 적막을 깨트렸다. 그러나 그 비명은, 노이즈와 함께 들려오는 기괴한 속삭임에 의해 서서히 잠식되어 갔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손은 더욱 강하게 민준의 발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이 지옥 같은 밤은, 과연 끝날 수 있을까.

  • 크툴루 신화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그림자 제국

    **장르:** 크툴루 신화, 다크 판타지, 반란 서사

    **시놉시스:**
    오랜 세월 동안 찬란한 영광을 누려온 거대한 제국, ‘아르카디아’. 그 이름과는 달리 제국의 심장은 썩어 문드러졌다. 황궁의 사치와 향락은 끝없이 이어지고, 백성들의 피땀은 거대한 건축물과 기이한 제례 의식에 바쳐진다. 평범한 삶을 살던 자들은 굶주림과 억압에 시달리며, 가끔 밤하늘을 수놓는 기괴한 빛과 저 멀리 황궁 심층부에서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울림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꺼져가는 희망 속에서도 작은 불꽃은 피어나는 법. 제국 변방의 빈민가에서, 억압받던 평민들이 반란의 깃발을 들기 시작한다. 그들은 단순히 자유를 갈망하는 것을 넘어, 제국의 번영 뒤에 숨겨진 추악하고 끔찍한 진실, 즉 광대한 제국이 고대 우주의 공포와 맺은 기형적인 계약에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이것은 부패한 거대 제국에 맞서는 평민들의 처절한 투쟁이자, 동시에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는 심연의 공포에 맞서는 절망적인 싸움이다.

    **등장인물:**

    * **카이 (Kai):** 20대 중반. 제국의 병사들에게 가족을 잃은 전직 석공. 묵묵하고 결단력 있는 성격. 강인한 의지와 뛰어난 전술적 감각을 지녔다.
    * **엘라 (Ella):** 60대 초반. 제국 깊숙한 곳의 비밀을 아는 노파. 약초꾼이자 주술사로, 제국의 기이한 종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현명하지만 비밀스럽다.
    * **지아 (Jia):** 10대 후반. 재빠르고 영리한 고아 소녀. 빈민가 출신으로, 약자들을 돕는 일에 열정적이다. 뛰어난 민첩성으로 정보원 역할을 맡는다.
    * **황제 칼리스 7세 (Emperor Kallis VII):** 아르카디아 제국의 현 황제. 겉으로는 위엄 있지만, 광기와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다. 제국의 영광을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다.
    * **대사제 베레노스 (High Priest Berenos):** 제국 종교의 수장. 황실의 그림자이자, 제국의 어둠을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인물. 황제마저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프롤로그]**

    **SCENE 1**
    **INT. 아르카디아 제국, 수도 ‘아자토스’ 빈민가 – 밤**

    **[음악: 비참하고 억압적인 현악기 선율. 멀리서 들려오는 황궁의 화려한 축제 소리.]**

    **카메라:** 불안하게 흔들리며, 앙상한 손이 바구니를 뒤적이는 모습을 클로즈업한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거칠게 갈라져 있다. 바구니 안에는 썩은 채소 조각과 딱딱한 빵 부스러기 몇 개가 전부다.

    **[SOUND: 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황궁의 둔탁한 축포 소리.]**

    한 사내, **카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간다. 그는 낡고 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있다. 굶주림으로 움푹 들어간 눈은 주변의 잿빛 풍경만큼이나 메말라 있다. 그의 시선은 허름한 움막들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 끝, 저 멀리 밤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황궁의 첨탑을 향한다. 황궁의 창문들에서는 붉은색과 금색의 현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둔탁한 축포 소리가 빈민가의 적막을 깨트린다.

    **카메라:** 카이의 시선을 따라 황궁 첨탑으로 줌인. 첨탑 꼭대기에서는 기묘한 문양이 새겨진 거대한 수정 구슬이 희미하게 푸른빛을 발하고 있다.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미세하게 꿈틀거린다.

    **[SOUND: 황궁의 화려한 음악과 빈민가의 스산한 바람 소리가 대조적으로 겹친다.]**

    **카이:** (작게 읊조리며) 빌어먹을 황제 같으니.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친 숨소리에 묻혀 사라진다.

    **카메라:** 시점은 다시 빈민가 골목으로 돌아온다. 앙상한 체구의 아이들이 흙바닥에 주저앉아 낡은 인형을 가지고 놀고 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희망보다는 체념이 먼저 비친다. 한 어머니는 텅 빈 가마솥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SOUND: 아이들의 굶주린 울음소리, 기침 소리.]**

    **SCENE 2**
    **EXT. 황궁 앞 광장 – 낮**

    **[음악: 웅장하고 위압적인 제국군 행진곡.]**

    **카메라:** 광대한 황궁의 위용을 보여주는 와이드 샷. 대리석 기둥과 금빛 장식이 번쩍이는 거대한 건축물이 시선을 압도한다.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기대감보다는 불안감과 피로로 가득하다.

    제국의 병사들이 광장을 가로지른다. 그들은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뾰족한 투구를 쓰고 있으며, 허리에는 긴 검을 차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은 절도 있고 위압적이다. 병사들의 등 뒤로는 거대한 수레가 끌려오는데, 수레 위에는 형형색색의 비단으로 감싸인 거대한 돌덩이들이 실려 있다. 돌덩이들은 희미하게 푸른빛을 발하고 있다.

    **카메라:** 수레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얼굴을 클로즈업. 굶주림에 지치고 고된 노동에 시달린 흔적이 역력하다. 몇몇은 돌덩이를 바라보며 눈을 찌푸린다.

    **시민1:** 또 저 기이한 돌이군. 대체 저걸 어디에 쓰는 거지?
    **시민2:** 황궁 심층부에 있는 ‘심연의 제단’에 바치는 거라더군. 대사제님께서 직접 관장하시는 신성한 의식에 쓰인다고…
    **시민3:** 신성한 의식? 그 빌어먹을 의식 때문에 우리 자식들은 굶어 죽어가는데!

    **[SOUND: 시민들의 웅성거림, 병사들의 창 부딪히는 소리.]**

    병사들 중 하나가 시민 3의 어깨를 거칠게 밀친다.

    **병사:** 감히 불경스러운 말을 지껄이느냐! 황제 폐하의 영광을 위해 바쳐지는 신성한 공물이다! 입 다물고 경의를 표해라!

    시민 3은 비틀거리며 넘어지고, 주변 사람들은 눈치를 보며 시선을 피한다.

    **카메라:** 광장 한쪽 구석에 서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지아**의 모습. 낡은 두건을 쓴 그녀의 눈은 날카롭게 빛난다. 그녀의 손에는 훔친 것으로 보이는 사과 하나가 들려 있다. 그녀는 사과를 한입 베어 물려다 멈칫하고, 주변의 굶주린 아이들을 힐끗 돌아본다. 이내 그녀는 사과를 반으로 쪼개어 가장 어린아이에게 건넨다.

    **지아:** (작게 속삭이며) 먹어.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마.

    아이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지아를 바라보다가, 이내 허겁지겁 사과를 받아든다.

    **SCENE 3**
    **INT. 빈민가 지하 은신처 – 밤**

    **[음악: 낮게 깔리는 긴장감 있는 배경음악.]**

    **카메라:** 어두컴컴한 지하 은신처. 낡은 촛불 하나가 겨우 내부를 밝히고 있다. 벽에는 허름한 천들이 걸려 있고, 탁자 위에는 낡은 지도와 기이한 문양들이 그려진 양피지들이 널려 있다. 카이, 엘라, 그리고 지아가 모여 앉아 있다.

    **엘라:** (잔뜩 주름진 손으로 양피지를 가리키며) 제국의 황제들은 대대로 이 의식을 이어왔다. 저 푸른 돌들은 ‘심연석’이라 불리며, 대지 깊숙한 곳,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채취된다. 그리고 황궁 심층부에 있는 ‘어둠의 제단’으로 옮겨져…

    **카이:** (날카롭게) 그게 대체 뭐에 쓰인다는 겁니까? 그 빌어먹을 돌 때문에 수많은 백성이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 죽어 나갔습니다. 내 아버지도…

    카이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그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한다.

    **엘라:** (나지막이) 힘이다. 헤아릴 수 없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힘. 제국이 이토록 광대하고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심연의 존재’와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황제를 통해 힘을 빌려주고, 그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한다.

    지아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엘라를 바라본다.

    **지아:** 요구하다니요? 뭘요? 저 돌을요?

    **엘라:** (고개를 젓는다) 돌은 그저 통로일 뿐.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잠시 말을 멈춘다. 그녀의 눈빛에 섬뜩한 기색이 스친다.) …인간의 혼과 정신, 그리고 이 세계의 질서 그 자체다. 저들이 요구하는 것은 점점 더 커지고, 황제는 그 요구를 채우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는 것이다. 제국이 번영할수록, 심연의 존재는 더욱 강해지고, 이 세계는 점점 더 그들의 그림자에 잠식될 것이다.

    **카메라:** 엘라의 이야기에 세 명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카이의 얼굴에는 혼란스러움과 함께 짙은 결심이 떠오른다. 지아는 두려움에 몸을 떨지만, 동시에 눈빛에 불꽃이 피어난다.

    **카이:** 말도 안 돼… 그런 허황된 이야기를 믿으라는 겁니까?

    **엘라:** (단호하게) 내 눈으로 보았다. 황제의 광기, 대사제의 기이한 의식, 그리고 밤마다 황궁 심층부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울음소리까지. 그것은 단순한 부패가 아니다.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무언가가 제국을 지배하고 있다. 황제는 그저 꼭두각시일 뿐, 진정한 주인은… 심연 속에 잠들어 있는 존재다.

    **[SOUND: 멀리서 들려오는 황궁의 둔탁한 진동음. 은신처의 촛불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카이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마치 그의 발밑, 아니 도시 전체의 심장부가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것만 같다.

    **카이:** 그래서… 우리는 어쩌자는 겁니까? 저런 상대와 싸우자는 겁니까?

    **엘라:** (카이의 눈을 응시하며)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우리가 침묵한다면, 제국은 결국 심연의 늪에 완전히 잠길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생존자이자, 마지막 저항자들이다.

    **지아:** 하지만… 너무 거대해요. 황제는 신과 같고, 그 군대는 끝이 없어요.

    **카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얼굴에 강인한 의지가 번뜩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어도, 이 썩어 문드러진 제국의 심장을 찔러보는 것뿐. 설령 실패하더라도, 이대로 죽는 것보단 나아.

    **카메라:** 카이의 그림자가 촛불에 길게 드리워진다. 그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어둠에 맞서는 작은 횃불처럼 보인다.

    **[음악: 비장하고 결의에 찬 선율로 전환.]**

    **SCENE 4**
    **EXT. 빈민가 뒷골목 – 새벽**

    **카메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빈민가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카이와 지아가 빠르게 움직인다. 그들은 낡은 옷차림에 얼굴을 가리고 있다.

    **지아:** (숨을 헐떡이며) 다음 주 초승달 밤, ‘어둠의 제단’에서 대규모 의식이 열릴 거래요. ‘심연석’을 대량으로 바치는… 제국 병사들의 경비가 삼엄해질 거예요.

    **카이:** 예상했던 바다. 우리가 노릴 기회도 그때뿐이다. 제단으로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파악해야 해. 엘라님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 의식이 이 모든 부패의 근원이겠지.

    **카메라:** 지아가 갑자기 멈춰 서서 어두운 벽 틈새를 가리킨다. 그 틈 사이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온다.

    **지아:** 저기예요! 제가 어릴 때, 친구들과 숨바꼭질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황궁의 지하수로와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그때는 무서워서 더 깊이 들어가 보진 못했지만…

    카이는 벽 틈새를 유심히 살펴본다. 틈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새어 나오며, 알 수 없는 비릿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긴다.

    **카이:** (결심한 듯) 좋아. 지아, 네가 앞장서라.

    **SCENE 5**
    **INT. 황궁 지하수로 – 새벽**

    **[음악: 음산하고 긴장감 넘치는 배경음악. 물 흐르는 소리, 알 수 없는 희미한 울림.]**

    **카메라:** 어둡고 습한 지하수로. 천장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른다. 카이와 지아가 낡은 랜턴 하나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전진한다. 물은 무릎까지 차오르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첨벙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지아:** (속삭이며) 제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깊어요… 정말 황궁과 연결되어 있을까요?

    **카이:** (주변을 경계하며) 연결되어 있어야만 해.

    수로는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이어진다. 벽에는 오래된 이끼와 함께 기이한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다.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카메라:** 문양을 클로즈업.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비상식적인 형상들이 뒤얽혀 있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혼돈의 미학이다.

    **[SOUND: 흐느끼는 듯한 낮은 울림이 멀리서 들려온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

    지아가 갑자기 멈춰 선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크게 뜨여 있다.

    **지아:** (몸을 떨며) 카이 오빠… 저 소리…

    카이 역시 그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짐승의 울음소리도, 바람 소리도 아니었다. 마치 광활한 심연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가 고통스럽게, 혹은 굶주린 듯 울부짖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인간의 정신에 직접적으로 파고드는 듯한 섬뜩함을 지니고 있었다.

    **카메라:** 수로 끝에서 희미하게 붉은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인다. 빛과 함께,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들이 벽에 어른거린다.

    **카이:** (랜턴을 든 손이 미세하게 떨린다) 저곳인가…

    그들은 조심스럽게 빛이 새어 나오는 곳으로 다가간다. 거대한 석문이 앞을 막고 있다. 석문에는 아까 벽에서 보았던 것과 똑같은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문양의 틈새로 붉은빛이 강렬하게 뿜어져 나온다.

    **카메라:** 석문 중앙의 문양이 마치 살아있는 눈동자처럼 깜빡이는 것을 클로즈업. 그 눈동자는 알 수 없는 깊이를 담고 있으며, 보는 이의 영혼을 빨아들일 듯하다.

    **[SOUND: 섬뜩한 쿵, 쿵, 쿵… 하는 진동이 울린다. 심장이 박동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지아:** (숨을 죽이며) 저 안에서… 대체 뭐가…

    카이는 천천히 석문에 손을 뻗으려다 멈칫한다. 그의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전율이 전신을 휘감는다. 그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의 문턱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카이:** (자신에게 되뇌듯) 물러설 수 없어…

    그는 이를 악물고 석문에 귀를 기울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둔탁한 진동과 함께, 수많은 목소리가 동시에 웅얼거리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었다. 그것은 주문 같기도 하고, 통곡 같기도 하며, 때로는 절규처럼 들렸다. 그 소리는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음에도, 듣는 자의 정신을 좀먹는 듯했다.

    **카메라:** 카이와 지아의 얼굴을 클로즈업. 공포와 동시에 알 수 없는 매혹에 이끌린 듯한 복합적인 표정이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문 너머의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압도적인 두려움이 공존한다.

    **[음악: 절정으로 치닫는 불협화음의 배경음악. 인간의 정신을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음향 효과.]**

    **카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지아, 잠시 기다려.

    카이는 주머니에서 낡은 단검을 꺼내 석문 틈새에 조심스럽게 넣어본다. 틈새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그는 단검을 빼내고, 석문 옆을 손으로 더듬는다. 무언가 튀어나온 돌기가 그의 손에 잡힌다. 그는 돌기를 힘껏 누른다.

    **[SOUND: 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석문이 천천히 옆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카메라:** 석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쪽의 광경이 드러난다. 거대한 동굴 형태의 공간이다. 중앙에는 기괴하게 조각된 제단이 솟아 있고, 그 위에는 거대한 ‘심연석’이 놓여 있다. 심연석은 붉은빛을 발하며 희미하게 고동치고 있다. 제단 주변으로는 수많은 황궁 병사들과 검은 로브를 두른 대사제들이 무릎을 꿇고 알 수 없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들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눈동자에는 섬뜩한 광기가 서려 있다.

    그리고 그들 너머, 동굴 가장 깊숙한 곳…

    **카메라:** 심연석 너머의 어둠 속. 거대한 촉수들이 희미한 붉은빛 속에서 꿈틀거린다. 촉수들은 마치 세상의 모든 공포를 응축해 놓은 듯한 비정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그 끝은 시야에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져 있다. 그 촉수들 사이로, 헤아릴 수 없는 수의 눈동자들이 무수히 반짝인다. 그 눈동자들은 인간의 것을 닮았지만, 동시에 완전히 이질적이고 냉혹하다.

    **[SOUND: 수많은 목소리가 뒤섞인 웅얼거림이 거대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인간의 정신을 찢어발기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대사제 베레노스:** (제단 앞에서 팔을 높이 들고,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외친다) 오오, 헤아릴 수 없는 그분! 심연의 주인께 찬미를! 이 제국의 모든 영광은 당신의 이름 아래 바쳐지리니! 우리의 피와 살, 영혼을 받아주소서!

    대사제 베레노스의 광기 어린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의 눈은 핏발이 서 있고, 입가에는 피거품이 맺혀 있다. 그는 거대한 촉수를 향해 비틀거리며 걸어간다.

    **카메라:** 카이와 지아의 얼굴. 충격과 공포로 얼어붙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단순한 제국의 부패를 넘어선, 우주적이고 근원적인 공포의 실체였다. 그 공포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하며,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붕괴될 것만 같다.

    **지아:** (작게 신음하며) 으… 으아아아…

    지아가 뒤로 물러서려 하자, 카이가 그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다. 그의 얼굴 또한 공포로 창백하지만, 그 속에는 이제 명확한 투쟁의 결의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괴물과, 이 괴물을 숭배하는 제국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카이:** (눈을 감았다 뜨며, 결심에 찬 목소리로 속삭인다) 이 악마 같은 놈들… 내가… 반드시…

    **카메라:** 카이의 결연한 눈빛이 클로즈업된다. 그 눈빛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작은 불꽃과 같다. 그리고 그 불꽃 너머로, 기괴한 심연의 존재가 어렴풋이 형상을 드러내는 것을 보여주며, 화면은 점차 어두워진다.

    **[음악: 웅장하고 불길한 코러스와 함께, 인간의 절규와 같은 사운드가 뒤섞여 절정에 달하고, 이내 모든 소리가 암전과 함께 사라진다.]**


    **[에필로그]**

    **카메라:**
    완전히 어두워진 화면 위로, 낡은 양피지에 쓰인 고대 문자가 천천히 떠오른다.

    **[텍스트:**
    **”별들이 바른 위치에 올 때, 그들은 강림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 선과 악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리라.”**
    **- 알 수 없는 고대 기록 중에서 -**

    **[음악: 모든 것이 끝났지만, 여전히 심연의 공포가 가시지 않은 듯한 섬뜩한 여운을 남기며, 천천히 페이드아웃.]**

  • 마법소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제13장: 봉인된 밤의 진실**

    별빛이 부서진 조각처럼 흩뿌려진 창문 너머로, 어둠이 깊어진 학원 도서관의 첨탑이 고독하게 솟아 있었다. 명문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상징과도 같은 그곳은 언제나 고요와 신비로움을 머금고 있었지만, 오늘 밤만큼은 숨 막히는 긴장으로 가득했다.

    “유나, 대체 무슨 일이래?”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오나의 목소리에도 유나는 답할 여유가 없었다. 심상치 않은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옅은 보랏빛 눈동자는 이미 평소의 느긋함을 지우고, 예리하게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도서관 최상층, 엘드린 교수의 개인 서재였다. 고대 룬 문자 연구의 권위자이자 은둔자처럼 지내던 그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비보가 학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학원 치안을 담당하는 알렉스 교수가 굳은 얼굴로 브리핑했다. “서재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교수님 특유의 룬 잠금장치인데, 그의 마나 서명과 전용 열쇠로만 열 수 있는 거죠. 그 열쇠는… 교수님 손 근처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알렉스 교수는 서재 문을 가리켰다. 금속과 마법 문자가 뒤섞인 낡은 문은, 마치 모든 비밀을 봉인한 듯 견고하게 닫혀 있었다.

    “창문은요?” 피오나가 물었다.

    “높은 곳인데다, 강력한 마법 방어막과 쇠창살로 이중 봉인되어 있습니다. 침입의 흔적은 전혀 없어요. 내부에서 자물쇠를 부수려 한 흔적도 없고요. 완벽한 밀실입니다.” 알렉스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유나는 이미 눈을 감고 서재 전체를 감싸는 마나의 흐름을 읽고 있었다.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는, 섬세한 마나의 실타래들이 그녀의 망막에 잔상처럼 펼쳐졌다. 엘드린 교수의 마나 서명은 방 곳곳에 옅게 남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마지막 순간의 비명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사인은요?” 유나가 물었다.

    “강력한 아케인 에너지 집중 공격. 심장을 정확히 관통했습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즉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렉스의 설명에 피오나가 짧은 비명을 삼켰다.

    유나는 한 발짝 더 문에 다가섰다. 손바닥을 문에 대자, 차가운 금속 너머로 룬 문자의 고동이 느껴졌다. 안에서 잠긴 것과 같은 마나 흐름. 마치 엘드린 교수 본인이 문을 걸어 잠근 듯한 완벽한 마나 서명이었다.

    ‘이상해…’

    유나는 문을 타고 흐르는 마나의 잔류를 더 깊이 탐색했다. 확실히, 문을 잠근 마나의 흔적은 엘드린 교수 본인의 것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뒤틀린 느낌이 들었다. 마치 완벽한 그림자를 보다가, 아주 작은 왜곡을 발견한 듯한 불쾌감이었다.

    “유나, 뭘 발견했어?” 피오나가 그녀의 옆으로 다가왔다.

    유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잠긴 마나는 분명 교수님 본인의 것이야. 하지만… 그 타이밍이 너무 늦어. 공격 마나의 잔류는 순간적이고 강렬하게 끊겼는데, 이 잠금 마나는 그로부터 아주 미세하게, 하지만 확실히 시간 차이를 두고 발동된 흔적이 있어.”

    “그게 무슨 뜻이야? 교수님이 죽고 나서 스스로 문을 잠갔다는 거야?” 피오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아니.”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게 불가능하니까 밀실 살인이 된 거겠지. 중요한 건… 누가 ‘교수님처럼’ 문을 잠갔느냐는 거야.”

    그녀의 눈에 섬광이 스쳤다. 마나의 잔류를 뒤쫓아 서재 내부를 ‘보는’ 것. 그녀의 특수 마법인 ‘별빛 만화경’이 발동하자,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듯한 마나의 흔적들이 다채로운 색상으로 서재 내부를 채색했다.

    엘드린 교수가 책상에 쓰러지는 순간, 격렬한 아케인 마나가 터져 나간 흔적, 그리고 그로부터 아주 짧은 순간 뒤…

    유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녀는 서재 한구석에 있는, 낡고 먼지 쌓인 복잡한 장치에 시선을 고정했다. 금속과 수정, 그리고 룬 문자가 새겨진 그 장치 주변에서, 엘드린 교수의 마나 서명이 주기적으로, 희미하게 발산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듯.

    “저건… ‘마나 에코 투영기’잖아!” 피오나가 경악했다. “교수님이 연구하던 마법 장치! 자신의 마나 서명을 저장하고, 특정 조건이 되면 투영해서 마치 본인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간단한 마법을 발동하게 하는… 미완성 마법이라고 들었는데?”

    유나가 눈을 떴다. “미완성이 아니었나 보네. 아니, 완벽히 작동하지 않더라도, 이 정도 트릭에는 충분했을 거야.”

    알렉스 교수가 이마를 짚었다. “그게 밀실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죠?”

    유나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드디어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엘드린 교수님은 매일 밤 11시, 자신의 연구실 문을 직접 잠그는 습관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장치는 교수님의 마나 서명을 특정 조건에 맞춰 투영하는 장치입니다. 아마 교수님은 이 장치를 이용해 매일 밤, 자신의 마나 서명을 이용해 자동으로 문을 잠그는 실험을 해왔겠죠.”

    “그럼… 범인이 그 장치를 이용했다는 겁니까?” 알렉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범인은 서재 안으로 침입해 교수님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의 몸에서 열쇠를 가져와… 교수님 손 근처에 놓았을 겁니다.” 유나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나서 범인은 서재를 빠져나왔습니다. 문을 완전히 닫지 않은 채, 아니면 문이 잠기기 직전의 상태로 말이죠.”

    “그럼 어떻게 문이 잠겼다는 거죠?” 피오나가 초조하게 물었다.

    “엘드린 교수님은 자신이 살해당하기 직전, 또는 아주 짧은 간극 동안, 습관처럼 매일 발동하던 ‘마나 에코 투영’을 작동시켰을 겁니다. 살해범이 교수님의 연구를 알고 이 장치를 미리 조작했거나, 혹은 교수님이 죽어가면서 본능적으로 발동한 마지막 마나 잔류가 이 장치를 자극한 거죠. 그리고 그 장치가, 교수님의 마나 서명을 투영하여 문을 안에서 잠그는 룬 마법을 발동시킨 겁니다.”

    알렉스 교수의 얼굴에 충격이 스쳤다. “죽은 사람이, 아니, 죽은 사람의 마나 흔적이 스스로 문을 잠그게 했다는 말입니까? 범인은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간 거고요?”

    “정확해요.”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나 에코 투영기가 문을 잠그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아도 0.5초에서 1초 정도의 간극이 있었을 겁니다. 범인은 그 짧은 시간 동안 서재를 빠져나와 문을 닫았고, 외부에서는 마나 에코가 발동하여 문이 ‘안에서’ 잠긴 것처럼 보이게 만든 거죠.”

    “그럼 밀실은… 마법적으로 만들어진 착시였단 말입니까?” 피오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트릭에 마법이 사용되었을 뿐, 결국은 인간의 탐욕과 지략으로 만들어진 밀실이었죠.” 유나의 눈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누가 엘드린 교수의 은밀한 연구와 이 장치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지, 그리고 교수님의 마나 에코 투영기를 조작할 수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겁니다. 밀실의 비밀은 풀렸으니, 이제 범인의 그림자가 드러날 차례네요.”

    밤은 깊어가고, 도서관 첨탑에는 차가운 달빛만이 고요히 내렸다. 유나의 별빛 만화경은 이제 다음 실마리를 향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 봉인된 밤의 진실은,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것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