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장: 푸른 산자락 아래, 운명의 서곡

    청량한 가을바람이 깃발을 나부끼는 가운데, 거대한 경기장 주위로 모인 인파의 웅성거림은 마치 숨 쉬는 바다처럼 일렁였다. 이곳은 ‘운명제천 무도회’가 열리는 성스러운 땅, 세상의 운명이 걸렸다는 비장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묘하게도 비장함보다는 설렘과 온화함이 감도는 곳이었다. 거대한 석벽으로 둘러싸인 아레나는 웅장했지만, 주변의 물결치듯 일렁이는 푸른 산맥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냈다. 관중석은 반질반질한 나무로 정교하게 짜여 있었고,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은 마치 축제에라도 온 듯 들뜬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쟁쟁한 무림 고수들부터, 순박한 마을 주민들, 그리고 부모의 손을 꼭 잡은 채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까지, 모두가 이 역사적인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높은 관중석 한구석, 햇살이 따스하게 쏟아지는 자리에 아리라는 이름의 소녀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화려한 비단옷 대신 흙먼지 묻은 듯 자연스러운 색의 무명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칼은 느슨하게 땋아 어깨로 흘러내렸다. 아리의 시선은 드넓은 경기장의 중앙도, 전설적인 무사들의 입장 통로도 아닌, 발치에서 떨어진 곡식 알갱이를 쪼아 먹는 작은 참새 한 마리에 가 있었다. 참새는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부리를 움직였다.

    ‘천하의 운명이 달린 대회라는데, 저 참새는 제 한 끼 걱정뿐이구나.’

    아리는 작게 미소 지었다. 거대한 숙명 앞에서도 변치 않는 생명의 평범함, 그것이 아리에게는 늘 경이로웠다. 그녀는 작은 참새가 배를 채우는 모습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품속에서 작은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그 안에는 직접 말린 향긋한 허브잎과 이름 모를 작은 씨앗들이 담겨 있었다. 손끝으로 부드럽게 씨앗 몇 개를 집어 참새 가까이에 놓아주자, 참새는 경계하는 듯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용감하게 다가와 씨앗을 물고 파닥이며 날아갔다.

    그때, 경기장 중앙에서 웅장한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둥, 둥, 둥! 북소리는 사람들의 심장을 직접 울리는 듯했고, 그제야 아리는 참새에게서 시선을 떼고 경기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드디어 대회의 막이 오르는 순간이었다.

    “존경하는 무림인 여러분, 그리고 이 뜻깊은 자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운명제천 무도회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진행자는 수려한 말솜씨로 대회의 의의를 설명했다. 천하의 평화를 위해, 잃어버린 조화의 힘을 되찾기 위해, 무예의 정수를 넘어선 진정한 ‘도(道)’를 가려낼 자리라고 했다.

    설명이 끝나자, 드디어 출전자들의 입장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입장한 이는 ‘철권대사’라 불리는 거한이었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에 대지가 울리는 듯했고, 굳건한 바위처럼 단단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좌중을 압도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수련으로 단련된 고독함과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등장에 경외심을 담아 숨죽였다. 철권대사는 쩌렁쩌렁한 기합과 함께 경기장 중앙에 우뚝 섰다. 그야말로 부동의 산과 같은 존재였다.

    다음으로 등장한 이는 ‘유류대사’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파였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는 마치 물 위를 미끄러지듯 유연하고 가벼웠다. 풍파를 겪어온 흔적이 역력한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져 있었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두 눈은 온화함과 지혜로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경기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향해 반짝이는 눈빛으로 손을 흔드는 아이를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순간, 압도적인 철권대사의 기운 속에서도 유류대사의 온화한 기파가 파문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강함의 형태가 저리도 다를 수 있구나. 아리는 고요히 생각했다.

    이름만 들어도 무림을 뒤흔드는 고수들이 차례로 입장할 때마다 경기장은 환호와 탄식, 그리고 감탄사로 가득 찼다. 아리는 그들의 기운과 움직임을 조용히 관찰했다. 모두가 각자의 ‘도’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진행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자, 다음은 마지막 참가자입니다! 아직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내면에 깃든 고요하고도 깊은 힘은 이미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숲의 숨결을 품은, ‘숲의 아이’ 아리!”

    그 순간, 경기장 전체가 술렁였다. ‘숲의 아이’라는 이름은 생경했지만, 무엇보다도 마지막 참가자가 저렇게 어리고 평범해 보이는 소녀라는 사실에 모두가 놀란 듯했다. 아리 자신도 이름이 불리자 들고 있던 작은 바구니를 놓칠 뻔하며 화들짝 놀랐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잘못 불린 것은 아닌가 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모두의 시선은 이제 자신에게로 향해 있었다.

    철권대사는 놀란 듯 눈썹을 치켜떴고, 다른 고수들도 의아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오직 유류대사만이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아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네가 올 줄 알았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리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드러운 햇살이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숨을 크게 들이쉬자 싱그러운 풀내음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녀는 작은 바구니를 챙겨 들고, 마치 숲길을 걷듯 조심스럽지만 흔들림 없는 발걸음으로 경기장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철권대사 옆에 서자, 아리의 키는 그의 허리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작아 보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거대한 기운들을 모두 품어 안는 듯한 고요함이 그녀에게서 흘러나왔다.

    진행자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회 규칙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번 무도회는 단순히 강한 힘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무예의 정수이자, 마음의 경지, 그리고 생명의 조화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진정한 도’를 찾는 길이라고.

    아리는 진행자의 말을 듣는 내내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의 눈은 푸른 하늘과 멀리 펼쳐진 산맥을 향했다. 그리고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이곳에 싸우러 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아리에게는 참새 한 마리가 배를 채우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또 다른 길을 찾아가는 여정일지도 몰랐다. 고요한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제1화: 낡은 돌담 아래 숨 쉬는 기척

    늦은 오후의 햇살은 늘 그렇듯 옅은 금빛으로 세상을 물들였다. 은하의 발걸음은 익숙한 등굑길을 벗어나,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원 뒤편의 좁은 오솔길로 향했다. 퀴퀴한 흙냄새와 싱그러운 풀 내음이 뒤섞인 공기는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고요한 평화를 선사했다. 그녀는 늘 이 시간을 좋아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워내고, 오롯이 자신의 숨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길섶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제멋대로 피어 있었고,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속삭이듯 자그마한 소리를 냈다. 은하는 낡은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에 맞춰 느릿하게 걷다가, 문득 시선을 빼앗겼다. 저만치 보이는 건 수십 년은 족히 넘어 보이는 늙은 버드나무 한 그루였다. 굵고 뒤틀린 가지들이 축 늘어져 마치 거대한 녹색 폭포 같았고, 그 아래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은 돌담이 허물어지듯 자리하고 있었다.

    “저런 게 아직도 있었네.”

    중학교 시절, 담력 훈련이랍시고 친구들과 어울려 찾아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저 으스스하고 낡은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고즈넉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 속의 작은 섬 같았다.

    버드나무 아래에는 이끼가 두껍게 덮인 큼직한 돌멩이 몇 개가 무심하게 놓여 있었다. 은하는 자연스레 그중 하나에 다가가 손을 얹었다. 차가운 이끼의 감촉은 예상과 달랐다. 순간, 손바닥 아래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한 온기가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낯선 감각에 그녀는 눈을 깜빡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는 서늘한 기운을 내뿜는 돌이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에 손을 떼었다 다시 올려보니,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한 온기가 전해졌다. 마치 돌멩이 안에 작은 생명체가 잠들어 있다가, 그녀의 손길에 깨어나는 것처럼. 묘한 이끌림에 은하는 돌 위에 가볍게 손가락을 문질렀다. 거친 이끼의 표면 너머로 느껴지는 건 단단한 돌의 감촉이 아니라, 미세하게 진동하는 무언가였다.

    그때였다. 그녀의 손바닥과 맞닿은 돌멩이 표면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였다. 마치 반딧불이 날개를 퍼덕이듯,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 내가 잘못 봤나?”

    은하는 눈을 비볐다. 분명히 보았다. 푸른색, 아니, 에메랄드색에 가까운 영롱한 빛. 환각인가? 늦은 오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면서 착시 현상을 일으킨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설렘 반, 두려움 반의 기분으로 은하는 다시 돌멩이에 손을 얹었다. 이번에는 좀 더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순간,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통해 스며들어오는 그것은 단순한 온기가 아니었다. 부드러운 물결처럼 그녀의 혈관을 타고 흐르며,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깨우는 듯한 신비로운 감각이었다.

    눈을 뜨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그녀의 손이 닿아 있는 돌멩이에서, 그리고 그 주변의 낡고 허물어진 흙바닥에서,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작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힘없이 말라 있던 이름 모를 풀줄기들이 순식간에 푸르스름한 생기로 가득 차 올랐다. 연둣빛 새싹들은 여린 몸을 흔들며 마치 갓 태어난 아기처럼 빛을 향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새싹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아주 미세한, 반짝이는 빛의 입자들이었다. 마치 공기 중에 작은 별가루라도 흩뿌려진 것처럼, 황홀하고도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빛의 입자들은 새싹들 주위를 맴돌다가 스르르 공기 중으로 녹아들었다.

    은하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 모든 것이 꿈인가? 아니면 환영?

    그녀는 떨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거두었다. 그러자 새싹들은 방금 전까지 타오르던 생기를 조금씩 거두고, 다시 원래의 푸르른 모습으로 돌아왔다. 빛의 입자들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흔적은 분명했다. 말라 비틀어져 있던 풀들이 싱그러운 연둣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흙 위에는 작은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은하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평범한 손. 하지만 손바닥 안쪽에서 아직도 옅게 남아있는 따뜻한 잔열이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뭘 한 거지?”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그녀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질 만큼 떨리고 있었다. 낡은 돌담 아래, 거대한 버드나무의 그늘 속에서, 은하의 일상은 찰나의 순간에 균열이 생겼다. 그 균열 사이로, 그녀는 아주 오래된, 하지만 이제 막 깨어난 듯한 숨겨진 마법의 기운을 느꼈다. 심장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뛰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일 리 없었다. 그녀의 삶은, 이제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 같았다.

  • 다크 판타지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심연의 그림자 기록

    **장르:** 다크 판타지

    **핵심 줄거리:** 잊혀진 고대 지하 유적, ‘그림자 심연’의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카인과 엘리아의 모험. 고대 문명의 끔찍한 진실과 마주하며 인류의 운명을 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장면 1]

    **장면 제목:** 잊혀진 입구

    **배경:** 삭막한 황무지, 불모의 땅. 거대한 균열이 지면을 가르고 있다. 회색빛 하늘 아래, 바람이 찢어진 천처럼 울부짖는다.

    **시간:** 해 질 녘.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한다.

    **(내레이션)**
    이 세상에 알려진 모든 역사는, 어쩌면 거대한 장막 뒤에 감춰진 진실의 조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시간, 존재해서는 안 될 지식들이 묻혀 있는 곳. 그곳은 침묵 속에서 숨 쉬며, 감히 다가서는 자들에게 저주를 속삭인다.

    **[등장인물]**

    * **카인 (Kain):** 고고학자이자 탐험가. 30대 초반. 날카로운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 낡았지만 잘 관리된 가죽 재킷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의 등에는 고대 문자가 새겨진 부러진 석판 조각이 묶여 있다. 지식에 대한 갈망과 과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다.
    * **엘리아 (Elia):** 용병. 20대 후반. 민첩하고 실용적이다. 가벼운 갑옷과 등에 멘 대형 석궁, 허리에 찬 짧은 검이 그녀의 능력을 보여준다. 현실적이고 냉철하지만, 카인에게 미묘한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

    **(장면 시작)**

    **EXT. 황무지 – 일몰**

    황량한 바람이 먼지를 흩날린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붉은 피를 토하듯 저물어가고 있다. 불길한 적색 빛이 하늘과 땅을 물들이는 가운데, 한 점처럼 작은 두 인물이 거대한 균열의 가장자리에 서 있다.

    카인은 망원경을 내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균열은 단순한 지형이 아니었다.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억지로 찢겨 나간 듯, 그 가장자리는 칼로 자른 것처럼 날카롭고 인위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아래는 오직 짙은 어둠만이 존재했다.

    **카인**
    “이것이야말로… ‘그림자 심연’의 입구인가.”

    그의 목소리는 경외와 기대, 그리고 어렴풋한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오랜 시간 그를 괴롭혔던 수수께끼의 시작이었다. 그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요동쳤다.

    엘리아는 한 발자국 떨어져 균열의 깊이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은 망원경 없이도 날카롭게 어둠 속을 꿰뚫으려는 듯했다. 등에 멘 석궁의 현을 점검하던 그녀가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엘리아**
    “입구라기보단, 지옥으로 가는 뻥 뚫린 구멍 같군요. 아니면 거인의 상처든가.”

    그녀는 카인을 힐끗 바라봤다. 카인의 얼굴에는 희미한 흥분이 감돌고 있었다. 그가 좇는 것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라는 것을 엘리아는 알고 있었다. 그의 모든 탐험은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집착, 그리고 어쩌면 그 문명이 남긴 저주에 대한 갈증에서 비롯되었다. 지식에 대한 그의 갈망은 광기에 가까웠다.

    **카인**
    “전설에 따르면, 이 아래에는 아득한 옛날, 빛의 신들조차 닿지 못했던 시대에 번성했던 고대 왕국의 유적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지하 깊숙한 곳에서, 시간의 흐름마저 잊은 채 말이지.”

    엘리아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비웃음이라기보다는 오랜 탐험 동료에게 보내는 익숙한 체념에 가까웠다.

    **엘리아**
    “그래서 ‘빛의 신들조차 닿지 못했다’는 말이, ‘감히 발을 들이지 못했다’는 뜻으로 들리는군요. 전설은 언제나 듣기 좋게 포장되기 마련이니까요.”

    그녀는 허리춤에서 밧줄을 꺼내 단단한 바위에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실용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녀는 이 여정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했지만, 마음속 깊이 끓어오르는 불길한 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엘리아**
    “어쨌든, 전설이든 저주든, 오늘 밤은 그림자 속에서 잠들게 될 겁니다. 내려갈 준비는 되셨습니까, 교수님?”

    카인은 그녀의 ‘교수님’이라는 호칭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학회에서 추방당한 지 오래였다. 그의 주장이 너무나도 이단적이고,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등 뒤에 묶인 석판 조각은 학회가 ‘이단’이라며 그에게서 빼앗으려 했던 유일한 증거였다.

    **카인**
    “준비는… 늘 되어 있지. 엘리아. 자네야말로, 어둠 속의 그림자와 친구가 될 준비가 되었나?”

    엘리아는 밧줄 매듭을 단단히 조이며 말했다.

    **엘리아**
    “그림자는 돈을 주지 않아요. 교수님. 하지만 그림자 속에 숨은 위험은 제가 먹고사는 이유죠.”

    그녀는 먼저 균열 안으로 발을 디뎠다. 낡은 횃대를 점화하자, 주황색 불꽃이 어둠을 간신히 밀어내며 희미한 시야를 제공했다. 균열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거대한 종유석들이 고드름처럼 매달려 있었고, 축축한 바위벽에는 기괴한 무늬들이 새겨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곰팡이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성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장면 2]**

    **장면 제목:** 심연으로의 하강

    **배경:** 거대한 지하 균열의 내부. 끝없이 이어지는 좁고 깊은 통로들. 습하고 어두움.

    **시간:** 밤.

    **(내레이션)**
    한 걸음 한 걸음, 그들은 지상의 모든 소리와 단절되어갔다. 바람의 울음소리도, 먼지 흩날리는 소리도 사라지고, 오직 자신들의 숨소리와 장비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이곳은 생명이 허락되지 않은 죽은 공간, 그러나 동시에 무언가 숨 쉬고 있는 듯한 기이한 생동감이 감도는 곳이었다. 그 모든 것이 그들의 존재를 짓누르는 듯했다.

    **INT. 지하 균열 – 심야**

    엘리아가 밧줄을 타고 능숙하게 내려가고, 카인이 그 뒤를 따랐다. 밧줄이 지면에 닿은 것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이었다. 땅에 발을 디디자, 차가운 습기가 온몸을 감쌌다. 횃대의 불꽃은 습기 때문에 흐릿해졌고, 공기는 곰팡이와 흙먼지, 그리고 알 수 없는 쇠 비린내가 뒤섞인 냄새로 가득했다.

    **카인**
    “공기가… 무겁군. 단순한 지하 동굴과는 달라.”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벽에 손을 댔다. 거친 바위 질감 아래, 희미하게 빛을 머금은 듯한 검은 광물들이 박혀 있었다.

    **엘리아**
    “산소가 부족한 건 아닌데, 뭐랄까… 폐가 압박받는 느낌이군요. 고대의 저주라도 내려앉은 겁니까?”

    그녀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로록… 또로록…” 규칙적인 물방울 소리가 정적을 깨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물소리마저도 어딘가 기분 나쁜 리듬을 타고 있는 듯했다.

    카인은 자신의 휴대용 램프를 켜서 주변을 비췄다. 램프의 빛이 닿는 곳마다, 믿을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균열의 벽은 자연적인 바위가 아니라, 정교하게 다듬어진 거대한 검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돌들은 이음새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맞물려 있었고, 표면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촘촘하게 새겨져 있었다.

    **카인**
    “이건… 자연적인 균열이 아니었어. 거대한 통로를 만들기 위해 땅을 찢어낸 흔적이다. 어떤 기술로 이런 짓을…?”

    그의 눈은 문양들을 훑었다. 기하학적인 도형들과 함께, 날개 달린 뱀의 형상, 혹은 촉수를 가진 기이한 생명체의 그림들이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어떤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맥동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단순히 새겨진 그림이 아니라, 어떤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한 영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엘리아**
    “글쎄요. 적어도 인간의 기술은 아니겠죠. 이 아래로 얼마나 더 내려가야 하는 겁니까?”

    그녀는 램프 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그림자를 감지했다. 본능적으로 석궁을 겨눴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환각인가? 아니, 이곳의 공기가 그녀의 오감을 기만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카인**
    “문양의 흐름을 봐서는, 이곳은 일종의 봉인된 통로 역할을 했을 게 분명해. 중앙으로 향할수록 그 의미가 짙어질 것이다.”

    그는 손에 든 석판 조각을 벽에 새겨진 문양에 대보았다. 놀랍게도 석판의 깨진 단면이 벽의 문양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 마치 퍼즐의 한 조각처럼. 석판에서 느껴지던 미세한 진동이 갑자기 강렬해졌다.

    **카인**
    “이런…!”

    카인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손에 있던 석판 조각이 벽의 문양과 접촉하자, 벽 전체에 새겨진 문양들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검은 돌에서 푸른색과 보라색이 섞인 오묘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섬뜩한 저음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가 깨어나는 듯한 소리였다.

    **엘리아**
    “교수님! 대체 뭘 건드린 겁니까?!”

    웅웅거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마치 땅속 깊은 곳에서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진동으로 변했다. 바닥이 흔들리고, 천장에서 작은 돌들이 떨어져 내렸다. 두 사람의 몸이 진동에 의해 휘청거렸다.

    **카인**
    “이건… 활성화되고 있어! 이 유적 전체가 깨어나는 중이야!”

    그 순간,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의 한 부분이 마치 거대한 문처럼 갈라지기 시작했다. 묵직한 마찰음을 내며 돌덩이들이 옆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더니, 그 아래에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드러났다. 그 심연에서는 방금까지 벽에서 뿜어져 나오던 것과 같은 오묘한 빛이 어둠을 뚫고 올라왔다. 그 빛은 아름답다기보다는,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불경하고 끔찍한 색이었다.

    **엘리아**
    “빌어먹을! 또 함정입니까?!”

    **카인**
    “함정이라기보다는… 안내 문이다! 저 아래에, 우리가 찾던 심연의 중심부가 있을 것이다!”

    카인의 얼굴에는 위험을 경고하는 기색과 함께, 억누를 수 없는 광적인 희열이 번져 있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미지의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그 거대한 심연의 입구를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이성이 아닌, 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갈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엘리아는 이마를 찌푸렸다. 그녀는 저 빛깔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름답다기보다는 불경하고, 영혼을 빨아들일 것 같은 기분 나쁜 색이었다. 그러나 카인의 눈빛에서 후퇴는 없다는 것을 읽었다. 그녀는 그를 따라 이곳까지 왔고, 이제는 이 진실의 끝을 봐야만 할 것 같았다.

    **엘리아**
    “좋아요.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하지만 조심하세요, 교수님. 이런 곳에서 너무 많은 ‘희열’은 곧 ‘파멸’을 의미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녀는 석궁을 다시 단단히 쥐고, 천천히 새로 열린 심연의 입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빛이 뿜어져 나오는 어둠 속으로, 미지의 세계로의 또 다른 하강이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레이션)**
    그들은 알지 못했다. 발아래 펼쳐진 심연이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님을. 그곳은 잊혀진 시간 속에서 잠들어 있던, 세상을 뒤흔들 만한 끔찍한 진실을 품고 있는 거대한 봉인이었음을. 그리고 그 봉인을 깨뜨린 대가가 무엇이 될지,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감히 신의 영역을 침범하려 한 인간들의 어리석음은, 언제나 파멸로 귀결되어 왔다.

    **[장면 3]**

    **장면 제목:** 잊혀진 도시의 그림자

    **배경:**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거대한 동굴 또는 지하 도시의 외곽. 기이한 건축물들과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빛나는 유물들이 곳곳에 보인다. 공기는 더욱 무겁고, 알 수 없는 소리들이 희미하게 들려온다.

    **시간:** 심야

    **(내레이션)**
    심연은 그들을 삼키고 토해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더 이상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미지의 공간, 죽은 도시의 폐허이자, 잊혀진 문명의 숨통이었다. 이곳의 공기는 모든 것을 침식하는 독처럼 느껴졌고, 벽에 새겨진 무언의 외침은 듣는 자의 정신을 갉아먹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속삭임은 환청처럼 뇌리를 파고들었다.

    **INT. 지하 도시 외곽 – 심야**

    새로운 통로를 통해 내려온 카인과 엘리아는 경외와 경악이 뒤섞인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그들은 거대한 지하 공동의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아래로는 끝없이 펼쳐진, 이해할 수 없는 건축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물들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다. 검은색과 짙은 보라색이 뒤섞인 결정체 같기도 하고, 혹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뼈대 같기도 한 기이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떤 건물은 하늘로 솟구쳐 오르다 만 첨탑처럼 기형적으로 뒤틀려 있었고, 또 어떤 건물은 거대한 촉수가 뻗어나간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모든 건축물에서 미약하게나마 오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인 양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일렁이는 빛은 마치 망자의 불꽃처럼 기괴하게 아름다웠다.

    **엘리아**
    “세상에… 이게 정말… 인간들이 만든 겁니까?”

    엘리아의 목소리에는 드물게 경외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은 사방을 분주하게 살폈다. 이런 곳이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터였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미지의 존재를 깨울 수도 있다는 강렬한 예감이 그녀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카인은 말없이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의 눈동자는 빛을 받아 형형하게 빛났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고동쳤지만, 얼굴은 돌처럼 차분했다.

    **카인**
    “아니. 어쩌면… 인간이 아니거나, 혹은 우리가 알던 ‘인간’과는 다른 존재들이겠지. 저 건축 양식은 이 세계의 그 어떤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저들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에 있었던 걸지도 몰라.”

    그는 손에 든 석판 조각을 굳게 쥐었다. 석판에서 희미하게 전해지는 진동이, 이 도시 전체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와 공명하는 듯했다. 마치 오랜 시간 잊혔던 혈육이 재회하는 것처럼, 석판은 강렬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원형 광장이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육중한 검은색 제단이 솟아 있었는데, 그 위에는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거대한 수정 구슬이 놓여 있었다. 수정 구슬은 도시 전체를 밝히는 빛의 근원처럼, 가장 강렬한 보라색 광채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빛은 지하의 어둠을 밀어내고, 도시의 기괴한 윤곽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카인**
    “저곳이야. 저 제단이 이 모든 것의 핵심일 게 분명해. 저 수정을 통해 도시의 에너지가 흐르고 있어.”

    그는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엘리아가 그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흔들렸다.

    **엘리아**
    “잠깐. 뭔가 느껴집니다. 땅이 울리는 듯한… 발소리 같기도 하고.”

    그녀는 석궁을 장전하고 주위를 경계했다. 도시의 기이한 건축물 그림자 사이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희미한 램프 빛으로는 그 형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확실히 거대한 존재였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공포가 밀려왔다.

    **카인**
    “정신체… 아니면 고대의 수호자일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냉철했지만,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미지의 존재와 마주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열망했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가 평생을 찾아 헤매던 진실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네 개의 거대한 팔을 가진 기계 생명체였다. 혹은 생체 병기. 온몸이 검은색 금속과 뼈대가 뒤섞인 듯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고, 관절마다 푸른빛이 번쩍였다. 그 얼굴에는 아무런 이목구비도 없었지만, 붉게 빛나는 두 개의 눈만이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의 모습은 고대 문헌에 기록된 ‘밤의 괴수’와 흡사했다.

    괴물의 움직임은 기괴하면서도 날렵했다. 그것은 지면에 거의 닿지 않는 듯 부유하듯이 움직이며, 순식간에 그들에게 다가왔다. 발소리가 아닌, 묵직한 공기의 파동이 느껴졌다. 주변의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마저 들렸다.

    **엘리아**
    “젠장! 역시 아무것도 없는 곳은 없지! 준비하세요, 교수님!”

    엘리아는 망설임 없이 석궁을 발사했다. 화살은 정확히 괴물의 붉은 눈을 향해 날아갔지만, 괴물은 마치 예견이라도 한 듯, 거대한 팔 중 하나를 휘둘러 화살을 쳐냈다. 금속성 파열음과 함께 화살은 산산조각이 났다.

    괴물은 팔을 휘둘러 그들이 서 있던 바닥을 강타했다. 거대한 충격과 함께 주변의 기이한 건축물들이 흔들렸다. 카인과 엘리아는 간신히 몸을 피했다. 바닥에 균열이 생기고, 작은 돌들이 아래 심연으로 떨어져 내렸다.

    **카인**
    “이건… 단순한 골렘이 아니야! 지능을 가지고 있어!”

    괴물은 낮은 기계음 같은 소리를 내며 팔을 뻗었다. 팔 끝에서 보라색의 섬광이 번쩍이더니, 지면을 향해 파괴적인 에너지 파동을 쏘아냈다. 파동이 지나간 자리는 검게 그을리며 돌들이 녹아내렸다. 마치 산성액을 뿌린 듯한 끔찍한 흔적이었다.

    엘리아는 몸을 날려 파동을 피하며 외쳤다.

    **엘리아**
    “지능이 있든 없든, 이걸 부숴야 한다는 건 변함없군요! 약점을 찾아야 합니다!”

    카인은 벽에 새겨진 문양들과 괴물의 움직임을 번갈아 살폈다. 고대 문명의 유물, 그리고 그것을 지키는 존재. 분명 연결고리가 있을 터였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가 등 뒤에 묶고 다니던 석판 조각, 그리고 주변 건축물들의 문양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카인**
    “저 괴물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 저건 봉인의 문양과 유사해! 약점은… 에너지의 흐름이다!”

    그는 등 뒤에 묶여 있던 석판 조각을 꺼내 들었다. 석판은 도시 전체의 에너지에 반응하여 더욱 강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엘리아**
    “에너지의 흐름이라니? 저걸 어떻게 건드린다는 거죠?!”

    괴물은 다시 한번 강력한 에너지 파동을 모으고 있었다. 이번에는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거대한 에너지가 응축되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했다.

    **카인**
    “저 제단! 저 제단이 이 도시의 모든 에너지를 제어하고 있어! 저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흐름이 저 괴물에게도 연결되어 있을 거야!”

    카인은 결심한 듯, 석판을 든 채로 괴물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의 눈은 오직 괴물의 몸체에 새겨진 문양만을 향했다.

    **엘리아**
    “교수님!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그는 괴물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괴물의 거대한 몸체에 석판 조각을 힘껏 내리쳤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석판이 괴물의 표면에 박히며 틈새에 고정되었다. 석판에 새겨진 문양이 괴물의 문양과 맞물리자, 오묘한 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그러자 놀랍게도, 괴물의 몸을 감싸던 보라색 에너지의 흐름이 잠시 혼란스러워지는 듯했다. 붉은 눈의 빛이 흔들리고, 기계음이 더욱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괴물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화되었다.

    **카인**
    “됐어! 엘리아! 저 괴물의 움직임이 느려졌어! 약해졌을 때 공격해야 해! 저 제단에 연결된 에너지를 흐트러뜨리는 거야!”

    엘리아는 카인의 말에 따라 거대한 석궁을 괴물의 약해진 관절을 향해 쏘았다. “콰앙!” 화살이 정확히 관절에 박히자, 괴물의 몸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검은 금속과 뼈대가 부서지며, 괴물은 고통스러운 기계음을 내뱉었다. 괴물의 사지가 뒤틀리며 불규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은 비틀거리며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곧, 더욱 격렬한 에너지 파동을 모으기 시작했다. 석판이 박힌 자리에서 균열이 생기더니, 더욱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괴물이 흡수했던 석판의 에너지가 되려 폭주하는 듯했다.

    **카인**
    “젠장! 봉인이 풀리고 있어! 저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그는 괴물의 몸에서 석판을 뽑아내려 했지만, 이미 석판은 괴물의 에너지에 완전히 흡수되어버린 듯했다. 석판을 통해 괴물의 봉인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봉인을 깨뜨리는 촉매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거대한 원형 광장 중앙의 수정 제단에서, 더욱 강렬한 보라색 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도시 전체의 빛이 갑자기 증폭되더니, 모든 건축물들이 격렬하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지하 공동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울리기 시작했다.

    **엘리아**
    “이건… 뭔가가 더 깨어나고 있어! 이대로는 안 됩니다!”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하늘로 솟구치며, 지하 공동의 천장을 뚫고 나갈 기세로 폭주했다. 그리고 그 빛의 중앙에서, 무언가 거대한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은 방금 쓰러뜨린 괴물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어둠과 빛이 뒤섞인 혼돈의 존재, 고대 문명이 봉인했던 ‘그림자 심연’의 진정한 수호자, 혹은 창조자였을지도 모르는 존재였다. 그 형체는 마치 모든 생명체의 공포를 한데 모아 빚어낸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내레이션)**
    그들의 모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잊혀진 문명의 미스터리는 더욱 깊은 심연으로 그들을 끌어들였고, 그 심연의 끝에는 인류의 상식을 뛰어넘는 끔찍한 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자 심연의 진정한 비밀은, 과연 그들의 이해를 벗어난 공포일까, 아니면 인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열쇠일까? 이 미지의 존재 앞에서, 그들의 선택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컷 아웃]**

  • 크툴루 신화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제목: 회색 지평선의 메아리 (Echoes of the Grey Horizon)**

    **[장면 전환]**

    **씬 1: 잿빛 도시의 입구**

    **[배경 묘사]**
    수십 년 전, ‘세계의 균열’ 사건 이후 모든 것이 멈춰버린 도시.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빌딩들이 앙상한 유령처럼 솟아 있다. 끊어진 고가도로의 잔해가 거대한 뱀처럼 땅에 처박혀 있고, 그 아래로는 먼지 폭풍이 회색 안개처럼 끊임없이 휘감고 있다. 공기는 시큼한 금속 냄새와 썩은 흙먼지 냄새로 가득하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검게 물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컷 1]**
    프레임 중앙, 먼지 쌓인 차들을 넘고 있는 한 인물이 보인다. 등에는 낡고 닳은 배낭이 메어져 있고, 한 손에는 녹슨 철근을 개조한 몽둥이가 들려 있다. 길고 마른 체형이지만, 자세는 놀랍도록 강인해 보인다. 얼굴은 먼지와 피로 얼룩져 있지만, 깊은 눈은 흔들림 없이 전방을 주시하고 있다. 모자 끝으로 삐져나온 머리카락은 길고 검다.

    **[내레이션 – 지혜]**
    _세상은 끝났다. 이 말을 들은 게 벌써 몇 년 전이었던가. 아니, 이 말이 현실이 된 게 몇 년 전이었던가._
    _이 폐허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몇몇 미친 무리들과, 그리고… 나 같은 것들 뿐이다._

    **[컷 2]**
    지혜의 발 아래, 깨진 보도블록 틈새로 말라비틀어진 풀 한 포기가 고집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주변에는 부서진 유리 조각과 이름 모를 기계 부품들이 널려 있다. 화면 구석에는 녹슨 비상구 표지판이 기울어져 간신히 매달려 있다.

    **[내레이션 – 지혜]**
    _나는 왜 살아 있을까. 의미 같은 건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단지 숨통이 붙어 있으니, 몸뚱이가 움직이니… 그저 움직일 뿐이다._
    _오늘도 나는 먹을 것을 찾아, 아니,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_

    **[컷 3]**
    지혜의 클로즈업. 턱 끝에 마른 핏자국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눈은 피로에 절어 있지만, 그 안에는 묘한 불꽃이 타오른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멀리 보이는 거대한 그림자를 응시한다. 그곳은 한때 번화했던, 지금은 ‘고요한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기괴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심지어 일반적인 변이체조차 잘 나타나지 않는다는 소문이 도는 곳.

    **[내혜레이션 – 지혜]**
    _고요한 구역. 미친놈들이 지어낸 이름 치고는 꽤나 그럴듯하다._
    _그곳엔 이상한 침묵이 흐른다 했지. 그리고… 뭔가 ‘다른’ 것들이 있다고._
    _하지만 이제 두려워할 것도 딱히 없다. 어차피 모든 곳이 지옥이니까._
    _그리고 오늘, 나는 그 침묵 속에서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는 죽는다._

    **[지문]** 지혜, 낡은 방독면을 꺼내 얼굴에 쓴다. 탁한 시야가 그녀의 시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고가도로의 잔해를 넘어, 잿빛 도시의 심장부로 향한다.

    **[효과음]** (철컥, 방독면 쓰는 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울리는 알 수 없는 삐걱거리는 소리)

    **[장면 전환]**

    **씬 2: 낡은 백화점, 빛의 착란**

    **[배경 묘사]**
    한때 화려했을 거대한 백화점 내부.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내려 철근이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고, 바닥은 먼지와 파편,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이물질로 뒤덮여 있다. 층층이 에스컬레이터는 끊어져 위태롭게 매달려 있고, 한때 옷과 장신구로 가득했을 매대는 이제 텅 비어 있거나, 뒤틀린 마네킹 조각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서 있다. 외부의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하고, 지혜의 헤드램프만이 좁은 시야를 밝힌다.

    **[컷 1]**
    지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신발 밑창에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밟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그녀는 몽둥이를 바닥에 짚어가며, 폐허의 안정성을 시험한다. 공기 중의 먼지가 헤드램프 빛에 반사되어 작은 은하수처럼 반짝인다.

    **[내레이션 – 지혜]**
    _백화점. 한때는 희망과 욕망이 가득했던 곳. 지금은 죽음과 절망만이 남았다._
    _그 흔적들… 너무나도 익숙하고, 동시에 너무나도 이질적이다._

    **[컷 2]**
    그녀는 무너진 매대를 지나, 어딘가에 위치했을 약국이나 식료품 코너를 찾고 있다. 헤드램프 불빛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났다가 기이하게 수축하는 것을 본다.

    **[지문]** 지혜, 잠시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내레이션 – 지혜]**
    _이상하다. 그림자가…_
    _내 눈이 피곤한 건가. 아니면 저 먼지 때문에 착시가 일어나는 건가._

    **[컷 3]**
    한쪽 벽면에는 낡은 포스터가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다. 포스터 속 모델의 얼굴은 검게 변색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지만, 입꼬리는 기괴하게 치켜 올라간 것처럼 보인다. 지혜는 그 옆을 지나치며 손에 쥔 몽둥이를 더욱 꽉 쥔다.

    **[지문]** 지혜, 마침내 ‘드러그 스토어’라고 적힌 간판이 기울어진 입구를 발견한다. 그나마 손상되지 않은 통로를 따라 안으로 들어간다. 바닥에는 깨진 약병 조각들이 흩어져 있고, 눅눅한 종이 뭉치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내레이션 – 지혜]**
    _그래, 여기야. 이 정도면 아직 쓸만한 게 남아 있을지도 몰라._
    _정체불명의 감염 치료제, 아니면 적어도 소독약이라도._

    **[컷 4]**
    지혜가 선반을 뒤지기 시작한다. 부서지지 않은 서랍을 열고 닫는 소리가 고요한 공간을 깨뜨린다. 그때, 헤드램프의 불빛이 미묘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빛이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기 자체가 빛을 굴절시키는 것처럼 일렁인다.

    **[내레이션 – 지혜]**
    _빛이… 왜 이러지? 전력 문제인가?_
    _아니, 여기엔 전력 자체가 없잖아._

    **[컷 5]**
    선반 끝, 먼지 쌓인 진열장 안에서 앰플 몇 개가 발견된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그것들을 꺼낸다. 그때,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낮은 진동음이 귓가에 울리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아주 멀리서 움직이는 듯한 소리.

    **[효과음]** (타닥, 약병 떨어지는 소리) (웅- 아주 낮게 울리는 진동음)
    **[내레이션 – 지혜]**
    _환청인가? 아니, 분명히 들려._
    _이 폐허에, 저런 소리가 날 만한 건 없어._

    **[장면 전환]**

    **씬 3: 왜곡된 공간, 기어오는 시선**

    **[배경 묘사]**
    백화점 내부의 약국 코너. 선반들은 더욱 뒤틀려 있고, 바닥의 그림자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어둡고 깊게 드리워져 있다. 공기는 무겁고 탁하며, 낮은 진동음은 이제 귓가를 직접 때리는 듯하다. 헤드램프의 빛은 여전히 이상하게 일렁이며, 사물의 윤곽을 불분명하게 만든다.

    **[컷 1]**
    지혜는 앰플을 품에 넣으려다 말고, 고개를 든다. 진동음은 점점 더 커지고, 이제는 온몸으로 느껴진다. 그녀의 시야 한쪽에서, 먼지가 일렁이는 것 너머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스쳐 지나간다. 마네킹의 잘린 팔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움직이는 착시가 일어난다.

    **[지문]** 지혜, 눈을 가늘게 뜨고 그곳을 응시한다.
    **[내레이션 – 지혜]**
    _젠장, 착시라고… 착시일 거야._
    _너무 오래 혼자 다녔어. 지쳤으니까._

    **[컷 2]**
    그러나 그것은 착시가 아니었다.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사물들이 일렁인다. 진열장의 유리벽이 물결처럼 일렁이며 뒤편의 선반을 왜곡시킨다. 마치 공기 중에 거대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그 아지랑이 너머로, 기괴한 색상의 조각들이 찰나에 번쩍였다 사라진다. 인간의 눈으로 인식할 수 없는, 동시에 인식해버린 듯한, 형언할 수 없는 색깔들.

    **[내레이션 – 지혜]**
    _아니… 이건…_
    _내 눈이 망가진 게 아니야._

    **[컷 3]**
    진동음은 이제 고막을 찢을 듯한 불쾌한 소음으로 변한다. 백화점의 한쪽 벽면, 멀리 떨어진 기둥 부근에서, 공간 자체가 뒤틀리는 것을 목격한다. 회색 콘크리트 벽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일그러지고, 그 안에서 검은 심연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착각이 든다. 심연은 마치 수많은 눈동자가 박힌 거대한 입처럼, 모든 빛과 소리를 빨아들이는 듯하다.

    **[효과음]** (웅- 거대한 저음의 진동음이 뼈를 울린다) (끼이이익- 유리 긁는 소리 같은 고주파음)
    **[내레이션 – 지혜]**
    _저건… 뭐야?_
    _저건… 분명히 ‘아니야’._

    **[컷 4]**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공포가 목을 조여왔다. 검은 심연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를 서서히 드러낸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냈다. ‘그것’은 형태가 없었다. 끊임없이 변형되는,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형태의 집합체였다. 그것의 움직임은 물리 법칙을 무시하는 듯했다. 마치 우주가 찢겨진 틈새로 엿보이는 절대적인 ‘외부’의 존재처럼.

    **[지문]** 지혜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녀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내레이션 – 지혜]**
    _저건… 나를 보고 있다._
    _눈이 없는데… 나를 보고 있어. 나를 ‘탐색하고’ 있어._
    _나라는 존재의 의미 자체를… 의문하고 있어._
    _내 존재가, 저것에게는… 무의미한 오류 같은 것일 뿐이야._

    **[컷 5]**
    ‘그것’이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속도로 지혜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간은 더욱 심하게 왜곡되고,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온갖 환각과 환청이 뒤섞인다. 의미 없는 숫자들의 나열, 존재하지 않는 언어의 속삭임,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외압이 정신을 짓누른다. 그녀의 이성이 얇은 실처럼 끊어질 위기에 처한다.

    **[내레이션 – 지혜]**
    _도망쳐야 해!_
    _이건 싸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_
    _이건… 날 죽이는 게 아니라, 날 ‘지우려고’ 하는 거야._

    **[지문]** 지혜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몽둥이가 손에서 떨어진다. 그녀는 그저 살기 위해, 정신이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내달린다.

    **[효과음]** (쿵, 몽둥이 떨어지는 소리) (지혜의 거친 숨소리) (점점 커지는 불쾌한 진동음과 고주파음)

    **[장면 전환]**

    **씬 4: 필사의 도주, 짧은 안식**

    **[배경 묘사]**
    백화점 밖, 여전히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폐허의 거리. 지혜가 뛰쳐나온 곳은 무너진 버스 잔해와 콘크리트 파편들이 뒤섞인 공터였다. 여전히 먼지는 자욱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진동음은 희미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컷 1]**
    지혜는 간신히 백화점 입구를 벗어나, 무너진 버스 차체 밑으로 몸을 던진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몸을 웅크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쉰다. 심장은 마치 터질 듯이 고동치고, 온몸의 근육은 경련하듯 떨린다. 방독면은 이미 벗어던졌고, 그녀의 얼굴은 땀과 먼지로 범벅되어 있다. 눈은 충혈되어 있고, 동공은 여전히 확장된 채다.

    **[효과음]** (지혜의 거친 숨소리) (흐읍, 하아, 흐읍, 하아) (심장 박동 소리 – 쿵, 쿵, 쿵!)
    **[내레이션 – 지혜]**
    _살았다…_
    _간신히… 살았다._

    **[컷 2]**
    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덜덜 떨며 흐느낀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액체가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방금 전 겪었던 ‘그것’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며, 이성을 갉아먹으려 한다. 보았던 그 색깔, 들었던 그 소음, 느꼈던 그 시선…

    **[내레이션 – 지혜]**
    _대체… 저건…_
    _신이 있다면 저런 걸 만들었을 리 없어._
    _저건 신이 아니라… 신의 ‘이빨’ 같은 거야._
    _세상을 찢어발기기 위해 존재했던…_

    **[컷 3]**
    지혜는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품속에서 낡고 녹슨 금속 펜던트를 꺼낸다. 한때는 반짝였을 그것은 이제 희미한 무늬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녀는 그것을 손에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펜던트의 한쪽 면에는 알아보기 힘든 작은 글씨로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지문]** 지혜의 얼굴에 희미하지만 강한 의지가 스쳐 지나간다. 공포로 가득했던 눈빛 속에, 살아남고자 하는 불꽃이 다시 피어난다.
    **[내레이션 – 지혜]**
    _나는 아직 살아 있어._
    _미치지 않았어. 아직은._
    _이 악몽 같은 세상에서, 나는 아직 나 자신으로 남아 있어._

    **[컷 4]**
    펜던트를 다시 품속에 넣은 지혜는 천천히 숨을 고른다. 버스 밑 좁은 틈새로 들어오는 잿빛 햇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춘다. 그 빛은 희망적이지 않고, 그저 존재할 뿐이다. 그녀는 먼지투성이의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내레이션 – 지혜]**
    _오늘도 나는 살아남았다._
    _그리고 내일도, 살아남아야 할 거야._
    _무엇을 위해? 그 질문에 답할 수는 없다._
    _하지만… 그저 살아 있으니까._
    _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이 폐허 속에서는 의미이니까._

    **[컷 5]**
    지혜는 버스 밑에서 나와 몸을 일으킨다. 헤드램프는 사라졌지만, 그녀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 깊고 날카로워져 있다. 그녀는 다시 몽둥이를 집어 들고, 잿빛 하늘 아래 펼쳐진 폐허를 응시한다.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지만, 이제 그녀의 목적은 명확하다.

    **[내레이션 – 지혜]**
    _저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 나는 간다._
    _이 끔찍하고 아름다운, 망가진 세상 속에서…_
    _나는 나의 생존을, 나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증명할 것이다._

    **[효과음]** (먼지 바람 소리) (지혜의 단단한 발걸음 소리 – 터벅, 터벅)


    **[에피소드 종료]**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아르카디아 마법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마법사 지망생들의 심장을 뛰게 하는 곳. 고색창연한 탑들과 수정처럼 빛나는 강의실, 그리고 고대 마법의 기운이 서린 도서관까지. 겉보기엔 완벽한 마법의 전당이었다. 하지만 이서준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거대한 위선처럼 느껴질 때가 잦았다.

    “젠장, 또 이론 수업이라니. 실전 훈련은 언제쯤 해보라는 거야?”

    공중 부양 마법으로 겨우 몸을 지탱하며 복도를 걷던 서준은 옆으로 휙 스쳐 지나가는 고급 비행 마차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학원 엘리트들은 저런 식으로 이동한다. 자신처럼 구석진 기숙사에서 중앙 타워까지 자력으로 걸어 다니는 학생은 드물었다.

    그날도 따분한 ‘고대 마법사 열전’ 강의를 피해 비상 통로 계단을 오르내리던 중이었다. 낡은 복도를 지나, 학생들이 거의 사용하지 않는 서관 최하층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훈련실 몇 개와 창고가 전부였다. 학원 기록에도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명시된 곳.

    “흥, 이곳엔 그래도 쉴 공간은 좀 있겠지.”

    서준은 벽에 걸린 낡은 태피스트리를 무심코 손으로 스쳤다. 먼지가 풀썩 일었다. 쾌쾌한 곰팡이 냄새 속에서, 손끝에 닿는 감촉이 이상했다. 나무 벽이 아니라, 그 안쪽에 빈 공간이 있는 듯한 울림.

    그는 호기심에 태피스트리를 걷어냈다. 낡은 벽돌들 사이,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 문양이 보였다. 잠금 마법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봉인한 흔적이 역력했다. 왜? 평범한 창고라면 굳이 이런 강력한 봉인이 필요 없을 터였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의 특기였다. 봉인된 것을 풀어내고,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것. 그는 품속에서 작은 만능 마법 도구를 꺼냈다. 손가락을 움직여 마나를 불어넣자, 도구 끝에서 푸른빛이 일렁였다.

    “흠, 학원 기록 어디에도 이곳에 대한 정보는 없었는데 말이야.”

    봉인 마법은 꽤나 고난이도였다. 수십 개의 마법 회로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이미 수많은 금지된 마법 구조를 분석해 온 터였다. 그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빨랐다. 지지직, 투닥투닥. 작은 마법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마침내,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의 마법 문양이 빛을 잃었다. 그리고 서서히 벽돌들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며,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드러났다.

    차가운 공기가 후욱 끼쳐 나왔다. 곰팡이 냄새가 아닌, 쇠붙이와 알 수 없는 화학 물질이 섞인 듯한 묘한 냄새였다. 서준은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그의 내면에 잠재된 호기심은 그 모든 경고를 무시하게 했다. 그는 소형 발광 마법을 걸어 손끝에 작은 빛 구슬을 띄웠다.

    쿵, 쿵, 쿵. 심장이 발걸음에 맞춰 울렸다. 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벽은 더 이상 낡은 벽돌이 아니었다. 매끄럽고 차가운 금속 패널로 바뀌어 있었다. 학원의 어떤 공간과도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입구 같았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수십 층은 족히 될 거리였다. 마침내 통로는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졌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서준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곳은 고대 유적도, 숨겨진 보물 창고도 아니었다.
    거대한 돔 형태의 공간, 천장에는 수많은 파이프와 케이블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기계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차가운 금속 광택과 희미하게 깜빡이는 제어판의 불빛들이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첨단 시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뭐야?”

    서준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학원 지하에 이런 장소가 숨겨져 있을 줄이야. 모든 기계에서 규칙적인 웅웅거림이 울려 퍼졌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마나 입자와 함께, 무언가 정제되고 있는 듯한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으로 갈수록 기계들은 더욱 거대해졌다. 거대한 원통형의 장치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그 중 몇몇은 투명한 강화 유리로 만들어져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서준은 그것을 보았다.

    투명한 원통형 용기 안에는 푸른빛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 무언가가, 아니, *누군가*가 떠 있었다.
    핏기 없는 피부, 가늘게 감긴 눈. 언뜻 보면 잠들어 있는 사람 같았지만, 온몸에 복잡한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희미하게 빛나는 마나 회로가 피부 위로 불거져 있었다. 마치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듯한 섬뜩한 모습이었다.

    서준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건 단순한 마법 실험체가 아니었다.
    아니, 기다려. 저 얼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그가 자세히 보려 한 순간이었다.
    기계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이 잠시 붉게 변하더니, 투명한 용기 속 인물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마치 고통에 시달리는 듯한, 혹은 깨어나려 애쓰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그때였다.
    “누구야?!”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서준의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쳤다. 몸이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류하민이었다. 학생회장이며 학원 최상위 엘리트. 그 완벽한 얼굴에 차갑고 잔혹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의 한 손에는 마력이 응축된 마법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이서준… 네가 왜 여기에.” 하민의 눈빛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서준을 꿰뚫었다.

    서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하민의 눈에 담긴 혐오와 경계심 뒤로, 희미한 공포의 그림자를 보았다. 하민의 시선이 잠시 투명한 용기 안의 인물에게 향했다가, 다시 서준에게로 돌아왔다. 마치 그곳에 있는 것이 하민에게도 ‘금기’임을 아는 듯한 눈빛이었다.

    도망쳐야 해.
    서준의 이성적인 판단이 본능적인 공포에 휩쓸려 작동했다. 그는 빛 구슬 마법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터뜨려 하민의 시야를 가렸다.

    “크윽!” 하민이 눈을 찡그리며 잠시 뒤로 물러서는 틈을 타, 서준은 전속력으로 되돌아온 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하민의 강력한 추격 마법이 느껴졌다. 꽝! 쾅! 하며 벽이 흔들렸다.
    서준은 정신없이 도망쳤다. 통로를 지나, 봉인했던 벽으로 향했다.
    그는 간신히 벽 틈새로 몸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벽을 다시 닫으려 마법을 걸던 찰나,
    아까 본 투명 용기 속 인물의 얼굴이, 방금 보았던 류하민의 얼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는 섬뜩한 깨달음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동시에, 닫혀가는 벽 틈으로 들려오는 하민의 목소리.
    “네놈… 죽고 싶지 않으면, 본 것을 전부 잊어라. 아니, 이미 늦었군. 감히, ‘제5 연구동’의 비밀을 건드리다니….”

    제5 연구동?
    서준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숨겼다.
    그제야 그는 알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마법학원 지하에 숨겨진 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혹은 무너뜨릴 수도 있는, 거대한 악몽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그 악몽의 한가운데, 류하민이 서 있었다. 아니, 류하민 같은 누군가가…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마치 류하민의 복제품처럼 잠들어 있는 존재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몸을 떨던 서준은, 품에서 떨어진 작은 데이터칩 하나를 발견했다. 방금 전 그 혼란 속에서, 무언가를 훔쳐왔나? 칩 표면에는 희미하게 ‘Project: Chimera’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챕터 1. 잿더미 위를 걷다**

    도시의 심장은 이미 오래전에 멈췄다. 잿빛 빌딩 숲은 거대한 무덤처럼 솟아 있었고, 부서진 아스팔트 위에는 먼지와 침묵만이 가득했다. 한때 활기 넘치던 도로들은 뒤집힌 차량들과 이름 모를 잔해들로 엉망진창이었다. 바람은 찢겨진 현수막 조각들을 휘날리며 스산한 비명을 질렀다. 어디선가 녹슨 쇠붙이가 끼익거리는 소리, 그리고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무감각해질 지경인 끔찍한 신음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지훈은 낡은 백팩을 고쳐 메고 주저앉은 상가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뜨거운 태양이 머리 위에서 작열했지만, 그의 눈은 한 점 얼음처럼 차가웠다. 오늘 얻은 건 고작 통조림 세 개와 반쯤 썩은 물 한 병이 전부였다. 턱없이 부족했다. 특히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젠장.”

    갈라진 입술 새로 짧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어딘가 물을 찾을 만한 곳이 있어야 하는데. 그의 시선은 부서진 육교 너머로 향했다. 저 멀리, 간판만 겨우 남아 있는 대형 마트 건물이 보였다. 위험했다. 대형 마트는 언제나 ‘그것들’의 안락한 보금자리이자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최악의 함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목마름은 그 어떤 공포보다 강력한 동기였다.

    지훈은 허리춤에 찬 낡은 등산용 칼의 손잡이를 한 번 쥐었다 놨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옥상 가장자리로 향했다. 녹슨 사다리를 타고 삐걱거리는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신경은 온통 주변의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바람 소리, 무너지는 잔해 소리, 그리고… 희미한 신음 소리. 그것들은 언제나 멀리 있지 않았다.

    툭.

    오래된 유리 조각을 밟았는지 작은 소리가 났다. 지훈은 순간 몸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굳게 닫힌 계단실 문 너머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찢어진 천으로 감싼 쇠 파이프가 묵직하게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동반자이자 방패였다.

    마침내 지상에 발을 디뎠을 때, 그는 곧장 마트를 향하지 않았다. 건물 뒤편의 주차장 쪽으로 우회했다. 이곳은 상대적으로 덜 부서져 있었고, 외부에서 침입하기에도 더 용이해 보였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주차장 입구는 뒤집힌 차량들로 막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로 희미한 그림자들이 어른거렸다. 놈들이었다.

    “젠장, 놈들이 벌써 자리 잡았군.”

    이를 악물었다. 정면 돌파는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그는 최대한 몸을 낮춰 폐차들 사이를 기어갔다. 엔진이 없는 텅 빈 차체 안에서 썩은 내와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훅 끼쳐왔다. 코를 막고 겨우 버텼다. 언제나 역겨운 냄새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건물 벽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

    *크르르르…*

    귓가에 바싹 다가온 끔찍한 소리에 지훈은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 부서진 승합차의 창문 너머로 텅 빈 눈동자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핏발 선 눈, 축 늘어진 턱, 그리고 희번덕이는 이빨. ‘그것’이었다. 죽은 지 오래인 시체가 움직이는 기괴한 존재.

    몸이 경직될 틈도 없었다. 승합차 문이 덜컹거리는 동시에, 그것이 쇠사슬 끊듯 튀어나왔다. 썩어 문드러진 손이 그의 어깨를 향해 뻗어왔다.

    휘익!

    지훈은 간발의 차이로 몸을 피했다. 놈의 손가락 끝이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역겨운 살점이 뜯겨나가는 듯한 비릿한 냄새가 순간적으로 그의 후각을 강타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놈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더니, 다시 비정상적인 속도로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는 움직임, 오직 식욕에만 충실한 움직임이었다. 지훈은 이를 악물고 쇠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비명 대신 끔찍한 쉰 소리가 터져 나왔다. 놈은 잠시 주춤했지만, 뼈가 부러진 듯한 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달려들었다. 죽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존재였다.

    지훈은 한 발 물러서며 놈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파이프를 강하게 그러쥐었다. 두 번째 공격은 더 정확하고 치명적이어야 했다. 놈의 움직임이 흐트러지는 순간을 노렸다.

    *콰직!*

    놈이 달려들며 팔을 뻗는 순간, 지훈은 모든 힘을 실어 파이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놈의 턱에 정확히 박혔다.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주변에 울려 퍼졌다. 놈은 균형을 잃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놈은 축 늘어진 몸을 꿈틀거리며 다시 기어오르려 했다.

    “죽어라, 제발.”

    지훈은 놈의 머리에 파이프를 내리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고, 놈의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축 늘어진 사체를 내려다보며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겨우 한 마리였다. 하지만 매번 이랬다. 공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역겨움은 쌓여만 갔다. 그는 구역질을 참고 놈의 시체에서 멀리 떨어졌다. 이 이상 머무는 것은 위험했다. 시체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는 다른 놈들을 불러 모으기 충분했으니까.

    마침내 마트 뒤편의 직원 출입구에 도착했다. 철문은 녹슬고 삐걱거렸지만, 용접으로 막혀 있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그는 문틈으로 안을 살폈다. 어두컴컴한 창고 안은 적막했다. 적막은 때로 가장 위험한 신호였다.

    철컥.

    조심스럽게 빗장을 풀고 문을 열었다. 곰팡내와 함께 희미한 썩은 내가 코를 찔렀다. 먼지 쌓인 선반과 쓰러진 박스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저 안쪽 어딘가에, 어쩌면… 생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의 목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발걸음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크르르르… 으으으으…*

    무언가가, 아니, 무언가들이 움직이는 소리. 그것들은 분명 이 마트 안에 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매복해있던 놈들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듯했다.

    지훈의 온몸의 털이 쭈뼛 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재빨리 몸을 숨길 곳을 찾았지만, 이미 늦은 걸까?

    창고 안쪽 깊숙한 곳에서, 수십 개의 그림자들이 느릿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어둠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시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정확히 지훈이 있는 곳을 향하고 있었다.

    “젠장….”

    지훈은 꽉 쥐었던 파이프를 더 강하게 그러쥐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생존기는, 오늘도 이렇게, 또다시 절망적인 막을 올리고 있었다.

  • 추리 미스터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연재 웹소설: 그림자 속 속삭임**

    **1화: 낡은 시간의 파편**

    오후 세 시 반, 낡고 부서진 창문 틈으로 기어든 햇살이 먼지 낀 공기를 찢고 있었다. 지훈은 마른 기침을 토해내며 플래시를 비췄다. 삐걱이는 발소리가 음산하게 울리는 폐가, 아니, 한때는 이 지역 유지의 저택이었으나 이제는 시간의 손길에 완전히 잠식당한 유령 같은 공간. 천장의 회반죽은 여기저기 거대한 얼룩처럼 벗겨져 있었고, 벽에 걸려 있었을 액자의 흔적만이 희미한 사각형으로 남아 있었다.

    지훈은 낡은 카메라를 든 채 비틀거리는 바닥을 조심스럽게 디뎠다. 그의 취미는 잊혀진 공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쇠락한 미학, 시간에 갇힌 이야기들. 하지만 이곳은 여느 폐가와는 다른 묘한 기운을 풍겼다. 집 안을 채운 곰팡이 냄새와 눅진한 공기 속에서, 아주 오래된 나무와 흙냄새가 섞여 희미하게 풍겨왔다.

    “젠장, 이건 뭐… 박물관이 아니라 유물 발굴 현장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표는 이 저택의 서재였다. 소문에 따르면, 이 집의 마지막 주인이 광적인 고문헌 수집가였다고 했다. 비록 대부분의 책은 이미 도난당했거나 썩어 문드러졌겠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거대한 나무 문짝이 겨우 버티고 서 있는 서재로 들어섰다. 플래시 빛에 드러난 서재는 말 그대로 책들의 무덤이었다. 곰팡이가 피어 회색으로 변한 책들이 선반에서 무너져 내렸고, 바닥은 이미 삭아버린 종이 조각들과 바스러진 가죽 표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낡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훈은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거대한 벽난로가 눈에 띄었다. 검게 그을린 벽돌 사이, 유독 한 벽돌이 다른 것보다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그의 발길이 멈췄다. 왠지 모르게 시선이 그곳에 꽂혔다.

    “이게 뭐야….”

    무심코 손을 뻗어 튀어나온 벽돌을 만졌다. 차갑고 거친 표면. 살짝 힘을 주어 밀어보니, 예상외로 벽돌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난로 옆 벽이 ‘그륵’ 하는 소리를 내며 작게 움직였다.

    그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숨겨진 공간이었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런 곳에 비밀 통로가 있을 줄이야. 벽돌을 다시 당기자 벽의 일부가 안쪽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좁고 어두운 틈이 생겼다. 먼지 냄새와 함께 섬뜩한 냉기가 훅 끼쳐왔다.

    플래시를 틈새 너머로 비췄다. 좁은 공간,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듯했다. 실망하려는 찰나, 빛이 닿은 구석에서 작은 나무 상자 하나가 보였다. 손때 묻은 갈색 나무,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지훈은 상자를 꺼내기 위해 몸을 숙였다. 차가운 공기가 그의 살갸을 스쳤다. 상자를 들어 올리자, 생각보다 묵직했다. 손안에서 느껴지는 질감은 매끄러웠고,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딘 듯한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는 먼지를 털어내고 상자를 유심히 살폈다. 잠금장치는 없었다. 대신 앞면에 아주 작고 정교한 은색 고리가 박혀 있었다. 고리를 살짝 당기자,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상자 뚜껑이 열렸다.

    안에는….

    검은색 돌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보석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평범한 조약돌도 아니었다. 달걀만 한 크기에 흠집 하나 없이 매끄러운 표면. 빛을 반사하지 않고 모든 것을 흡수하는 듯한 칠흑 같은 색깔. 마치 밤하늘의 모든 어둠을 응축해 놓은 것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돌을 잡았다. 손가락이 닿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한기가 전신을 감쌌다. 돌은 너무나 차가워서, 마치 살아있는 얼음 덩어리를 쥐고 있는 듯했다. 동시에, 귓가에 아주 희미한, 마치 심해의 파도 소리 같은 낮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환청이겠지, 생각하며 그는 돌을 꽉 쥐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검은 돌은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상자에 담겨 있던 다른 어떤 것도 찾지 못했기에, 이 돌이 유일한 발견이었다. 그는 책상 위에 돌을 올려두고 노트북 화면을 켰다. 폐가에서 찍은 사진들을 확인하면서도, 그의 시선은 자꾸만 돌에게로 향했다.

    거실에서 TV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은 주말 드라마 삼매경이셨다. 평화로운 일상. 하지만 그의 손끝은 여전히 돌의 차가움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뭘까.”

    그는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다 못해 아릿한 감각이 손을 타고 올라왔다. 순간, 책상 위 스탠드 불빛이 ‘팟’ 하고 흔들렸다. 그 뒤를 이어, 방 안의 전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형광등처럼, 간헐적으로 빛을 잃었다가 되찾았다.

    지훈은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그런가? 최근 며칠 밤샘이 잦았다.

    그는 돌을 다시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아주 짧은 섬광이 스쳤다. 번개처럼 빠르게 사라진 찰나의 빛.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의 한 프레임처럼, 그의 시야 한구석에 형언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과 함께 거대한 구조물의 잔상이 박혔다가 사라졌다.

    “뭐야….”

    그는 당황했다. 환각인가? 그는 손에 들린 돌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검은 돌멩이.

    그는 손안에 쥐고 있던 돌을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방 안의 조명은 안정되었다. 스탠드도, 전등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설마. 우연이겠지.

    지훈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그의 마음 한구석을 갉아먹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돌을 집어 들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불빛의 깜빡임. 이번에는 더 격렬했다. 스탠드와 전등이 미친 듯이 점멸하더니, 급기야 컴퓨터 모니터까지 ‘치지직’ 소리를 내며 화면이 일렁였다.

    “젠장!”

    그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돌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눈길이 향한 곳은 침대 옆에 놓여 있던 작은 유리 탁자였다. 그 위에 올려져 있던 낡은 탁상시계가, 마치 망치로 내리친 듯 유리 덮개가 완전히 깨져 있었다. 돌이 떨어진 곳과는 제법 떨어진 위치였다.

    지훈은 얼어붙었다. 탁상시계의 유리 파편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그리고 깨진 시계 사이에서, 얇고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는 천천히 깨진 시계로 다가갔다. 푸른빛은 시계 안에 박혀있는 작은 부품, 아니, 부품처럼 생긴 아주 작은 조각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돌멩이에서 발산되던 냉기가 응축된 듯, 그 조각은 주변 공기를 차갑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섬뜩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찾았느냐….*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는, 하지만 분명히 언어의 형태를 띠고 있는 소리. 그것은 귓가를 파고드는 바람 소리 같기도 했고, 수천 개의 벌레가 한꺼번에 기어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마찰음 같기도 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갑작스러운 혼란과 함께, 어둡고 거대한 힘의 감각이 훅 밀려들어 왔다.

    몸 안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누구야…?”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방 안에는 그 혼자였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부모님의 TV 소리는 여전히 평화로웠다.

    하지만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선명해졌다.

    — *힘이… 너를 부른다….*

    이번에는 더욱 또렷했다. 고요한 방 안에서, 오직 자신에게만 들리는 속삭임. 그는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은 돌이 보였다. 그 돌에서 아주 희미하게,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검은 빛줄기가 깜빡이는 것을 그는 똑똑히 보았다.

    그때였다. 거실에서 갑자기 쿵, 하는 굉음이 들렸다. 이어서 부모님의 놀란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지훈은 속삭임을 뒤로하고 방문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그의 눈에 비친 복도는 이미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집 안의 모든 불빛이 꺼져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거실 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와 함께, 낮고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계음 속에서, 다시금 그 속삭임이 들려왔다.

    — *늦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그가 그 검은 돌을 발견한 순간부터였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 그의 손에 묻은 먼지와 함께, 피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목: 잿빛 도시, 붉은 흔적**

    무너진 고가도로 아래, 그림자는 더욱 짙었다. 강민은 낡은 방독면 너머로 희뿌연 시야를 좁혔다. 발밑에 깔린 콘크리트 조각들이 사그락거리는 소리만이, 죽은 듯 고요한 이 도시에서 유일한 생명처럼 들렸다. 그의 오른손은 닳고 닳은 강철 단도를 꽉 쥐고 있었다. 손잡이 부분에 덧댄 천 조각은 이미 땀으로 축축했다.

    “젠장, 아무것도 없군.”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방독면 안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사흘째였다. 식량은 바닥났고, 물도 겨우 한 모금 남았다. 이대로라면 굶어 죽거나, 갈증에 시달리다 정신을 잃고 저 아래에서 기어 다니는 ‘이형체’들의 밥이 될 터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저 멀리, 기형적으로 솟아오른 철골 구조물을 응시했다. 과거에는 마천루라 불렸을 그것은 이제 거대한 괴물의 앙상한 뼈대 같았다.

    강민의 발길이 멈춘 곳은 한때 대형 마트였던 잔해였다. 유리창은 모두 깨져나가 검은 아가리처럼 뻥 뚫려 있었고, 상품 진열대는 뒤집히거나 녹슬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이 황폐한 세상에서, 한때 사람들이 북적였던 곳은 여전히 찾아볼 가치가 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운이 좋으면 통조림 하나라도 건질 수 있었으니까.

    “윽… 냄새.”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방독면조차 뚫고 들어왔다. 피와 썩은 내, 그리고 금속이 타는 듯한 비린내가 뒤섞인 악취였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자세를 낮췄다. 이 냄새는 단순히 썩은 물건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의 흔적이었다.

    벽면에는 거대한 발톱 자국이 선명했다. 콘크리트가 깊게 파여 있었고, 핏자국이 검붉게 말라붙어 있었다. 오래된 흔적은 아니었다. 며칠, 아니 어쩌면 불과 몇 시간 전의 것일 수도 있었다. 강민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왜 하필 여기야.”

    그는 발소리를 죽이며 내부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진열대가 쓰러져 만들어진 미로 같은 공간을 통과하자, 한때 신선 식품 코너였을 법한 곳이 나타났다. 다른 곳보다 천장이 낮고, 냉기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던 두꺼운 벽이 견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강민은 단도를 고쳐 쥐고 숨을 멈췄다. 폐쇄된 공간에서 빛이 새어 나온다는 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저 안에 있다는 뜻이었다. 인간이라면 경계해야 하고, 이형체라면 죽여야 했다.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굶주림은 용기를, 혹은 무모함을 안겨주었다.

    천천히, 그는 벽에 등을 붙이고 모퉁이를 돌아섰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강민의 눈이 가늘어졌다.

    거대한 몸집의 이형체가 보였다. 짐승 같기도 하고, 인간 같기도 한 기괴한 형상. 비늘 박힌 피부는 검푸른 색이었고, 여섯 개의 팔은 제각기 다른 종류의 날카로운 무기로 변형되어 있었다. 눈은 없었지만, 머리 곳곳에 돋아난 더듬이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주변을 탐색하는 듯했다. 그 괴물의 심장이었던 자리에는 푸른빛을 띠는 수정 같은 물질이 박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물 앞에는, 인간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한 명, 두 명… 최소 세 명 이상이었다. 모두 처참하게 찢겨 있었고, 시신 옆에는 낡은 배낭과 녹슨 총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분명, 그들 역시 이 마트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었던 거다.

    괴물은 꿈틀거리는 더듬이로 시신을 훑어내리고 있었다. 먹잇감을 확인하는 듯한 움직임에 강민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저것은 단순한 이형체가 아니었다. 뭔가 *특별한* 존재였다. 일반적인 이형체들은 이렇게 시체를 탐색하지 않았다. 그저 찢어발기고 삼키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강민은 조용히 몸을 숨겼다. 이곳에서 싸우는 건 미친 짓이었다. 저 거대한 몸집과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 그리고 수정 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은 강민의 모든 감각을 경고로 채웠다. 그는 싸움이 아닌 생존을 택해야 했다. 조용히, 이곳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답이었다.

    그가 발소리를 죽여 다시 미로 같은 공간을 빠져나가려던 찰나였다.

    “…흐읍.”

    희미한 신음소리가 정적을 찢고 들어왔다. 강민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쿵, 하고 격렬하게 울렸다. 괴물의 발치에 널브러진 시신 더미 속에서, 아주 작게,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살아있는 인간. 그것도 어린아이의 작은 그림자였다.

    괴물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 여전히 더듬이로 다른 시신들을 탐색하고 있었다. 아이는 상반신이 벽에 기댄 채,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팔을 감싸 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 괴물의 공격을 피하려다 다친 모양이었다.

    강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 아이를 외면하고 그냥 갈 것인가? 아니면…

    그는 거칠게 숨을 들이켰다. 이 잔혹한 세상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기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강민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목격했고, 그들의 죽음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을 뿐이었다.

    망설임은 짧았다. 이형체의 더듬이가 아이가 숨어있는 시신 더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야! 거기 움직이지 마!”

    그의 목소리가 튀어나오자마자, 괴물의 더듬이가 멈췄다. 여섯 개의 팔이 동시에 반응하며 강민 쪽을 향했다. 수정 핵에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번뜩였다. 괴물은 눈이 없었지만, 강민의 존재를 정확히 포착한 듯 보였다.

    “크르르르…!”

    괴물의 입에서 짐승 같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천장의 잔해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아이는 놀란 듯 눈을 뜨고 강민을 바라봤다. 그 작은 눈동자에는 공포와 희망이 뒤섞여 있었다.

    강민은 이미 후회할 틈도 없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단도를 고쳐 쥐고 괴물을 노려봤다.
    “젠장…!”

    그가 내뱉은 짧은 탄식과 함께, 괴물이 거대한 몸집을 이끌고 덮쳐들었다. 폐허가 된 마트 안에서, 피할 수 없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 싸움에서 살아남는다면, 그 아이는 그의 짐이 될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생각조차 사치였다. 오직 살아야만 했다. 아이를 살리든, 자신만 살든.

    강민은 몸을 낮추고, 으르렁거리는 괴물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격렬하게 뛰었다.
    잿빛 도시의 한구석에서, 붉은 피가 다시 흐를 참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 가상현실 게임 (VRMMO)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불타는 심연의 서곡

    **장면: 망자의 나락, 깊은 곳**

    [어둡고 음침한 던전. 핏빛으로 물든 해골들이 널려 있고,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들이 벽을 기어 다닌다. 희미한 횃불 빛이 간신히 앞을 비추는 가운데, 한 인물이 무표정한 얼굴로 거대한 그림자 야수를 베어 넘기고 있다.]

    **내레이션 (이한):**
    그날 이후, 나의 세계는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믿음과 배신. 빛과 어둠.
    그리고… 살아남은 나.

    [거대한 야수가 비명을 지르며 재로 변한다. 묵직한 대검을 든 사내, ‘이한’의 검 끝에서 검붉은 기운이 스멀거린다.]

    **이한:**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의 눈빛은 지쳤지만, 그 안에 사그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젠장… 또 나왔네.

    **띠링!**

    **[‘나락의 그림자’를 처치했습니다.]**
    **[‘영혼 조각’을 획득했습니다.]**
    **[고유 패시브 스킬 ‘심연의 각인’이 활성화됩니다.]**
    **[‘힘’ 스탯이 1 증가합니다.]**
    **[‘민첩’ 스탯이 1 증가합니다.]**

    [이한은 무덤덤하게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의 손에 들린 대검은 낡고 투박했지만, 수없이 많은 생명을 거두어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이한 (독백):**
    고작 1포인트.
    누군가에겐 아무것도 아닌 수치겠지만…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다.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유일한 희망.

    [그의 뇌리에서 한때 찬란했던 과거의 조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장면: 회상 – 여명 기사단의 성채**

    [따뜻한 햇살이 쏟아지는 화려한 길드 성채. 길드원들이 환하게 웃으며 서로 축하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젊은 ‘이한’과 ‘최민혁’. 어깨동무를 하고 활짝 웃고 있다.]

    **최민혁:**
    (이한의 어깨를 툭 치며)
    이야, 이한! 역시 네가 없었으면 이 ‘여명 기사단’은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거야! 퀘스트도, 레이드도, 네 손에 걸리면 그냥 끝이잖아!

    **이한:**
    (쑥스러운 듯 웃으며)
    무슨 소리야, 민혁아. 네가 길드 운영이랑 전략 짜는 걸 얼마나 잘하는데. 우린 그냥… 같이 가는 거지.

    **최민혁:**
    (씨익 웃으며)
    그럼! 당연히 같이 가야지! 우리 꿈이 뭔데? ‘아르카나: 리버스’ 최고의 길드가 되는 거잖아!

    [최민혁의 눈이 반짝였다. 그 눈에는 순수한 열정과 우정이 가득해 보였다.]

    **이한 (내레이션):**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그 반짝임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 탐욕의 가면이었다는 것을.

    **장면: 회상 – 길드 회의실**

    [어두워진 회의실. 길드 마스터 자리에 앉은 최민혁이 싸늘한 표정으로 이한을 내려다보고 있다. 주변에는 길드의 핵심 간부들이 서늘한 시선으로 이한을 노려보고 있다.]

    **최민혁:**
    (정색하며)
    이한. 변명은 필요 없어. ‘태초의 심장’을 멋대로 매각하려 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야. 증거도 확실하고.

    **이한:**
    (분노에 찬 목소리로)
    뭐? 매각? 말도 안 돼! 난 그런 적 없어! 민혁아, 이게 무슨 소리야? 너도 알잖아! ‘태초의 심장’은 우리 길드의 근간이라고! 내가 그걸 팔 리가 없잖아!

    **최민혁:**
    (비웃듯이)
    네가 길드 해킹을 시도하다 적발당했다고 보고가 올라왔어. 그리고 그 모든 정황이 네 행적과 일치하고. 이한, 넌 더 이상 우리 ‘여명 기사단’의 일원이 아니야.
    (손짓하자, 길드 간부들이 이한에게 달려든다.)

    **이한:**
    (저항하려 하지만, 수적으로 압도당한다)
    민혁아! 최민혁! 너 지금… 도대체 무슨 짓을…!

    **최민혁:**
    (냉정한 목소리로)
    강제 길드 추방. 그리고 모든 길드 자산 회수.
    (이한을 외면하며)
    그게 네 최후다.

    [이한의 캐릭터가 모든 아이템을 빼앗긴 채, 마치 빈 껍데기처럼 길드 성채 밖으로 내던져졌다. 시스템 알림이 그의 눈을 가득 메웠다.]

    **띠링!**

    **[길드 ‘여명 기사단’에서 추방되었습니다.]**
    **[길드 창고에 보관된 모든 아이템이 회수됩니다.]**
    **[모든 길드 기여도가 초기화됩니다.]**
    **[더 이상 ‘여명 기사단’의 길드 버프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이한 (내레이션):**
    그 순간, 내 심장은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온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깨달았다.
    죽을 수는 없다는 것을.
    죽어서도, 이 복수를 끝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장면: 망자의 나락, 현재**

    [이한은 다시 눈앞의 던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한:**
    (독백)
    최민혁… 그리고 ‘여명 기사단’.
    너희가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 나락에서 새로운 힘을 찾았다.

    [이한이 낡은 대검을 번쩍 들어 올리자, 검은 기운이 검날을 휘감았다. 그의 몸에서 희미하게 검붉은 아우라가 피어올랐다.]

    **띠링!**

    **[고유 스킬 ‘영혼 포식’이 활성화됩니다.]**
    **[나락의 기운에 오염된 몬스터의 영혼을 흡수하여 ‘어둠’ 스탯을 획득합니다.]**

    [땅바닥에서 기어 나오는 뼈다귀 전사들이 이한에게 달려들었다. 이한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에게 달려갔다. 그의 움직임은 투박하지만, 죽음을 각오한 듯 빠르고 정확했다.]

    **이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검을 휘둘러 뼈다귀 전사들을 연달아 베어넘긴다. 피 대신 검은 재가 흩날린다.)
    어리석은 놈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적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공격을 피하지 않고 받아내면서도, 오직 적의 약점만을 노리는 냉혹한 전투 방식이었다.]

    **콰직! 쨍그랑!**

    [마지막 뼈다귀 전사가 산산조각 나며 쓰러졌다. 이한은 전투의 여파로 거칠어진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한 (독백):**
    이 ‘심연의 각인’은 나를 점점 더 강하게 만들었다.
    평범한 레벨업이 아닌, 진정한 각성으로 이끄는 힘.
    고통과 절망 속에서 얻어낸… 유일한 나의 무기.

    [시스템 알림이 다시 떴다.]

    **띠링!**

    **[고유 패시브 스킬 ‘심연의 각인’이 활성화됩니다.]**
    **[‘어둠’ 스탯이 1 증가합니다.]**
    **[현재 ‘어둠’ 스탯: 15 / 100]**
    **[‘어둠’ 스탯 100 달성 시, 고유 능력 ‘나락의 심장’이 개방됩니다.]**

    [이한은 메시지를 훑어본 후,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이한:**
    (나지막이)
    아직 멀었어.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던전의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어둠 속으로, 이한의 그림자가 천천히 사라져 간다. 그의 등 뒤로, 죽음의 기운이 더욱 짙게 깔렸다. 이한의 눈빛은 마치 심연의 바닥에서 솟아난 불꽃처럼, 복수를 향한 맹렬한 의지로 이글거렸다.]

    **이한 (독백):**
    최민혁…
    네가 나락으로 던져버린 내가…
    이제 그 나락에서 기어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되찾아줄 테니.
    기다려라.

    [장면이 점점 어두워지며, 이한의 결연한 옆모습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1화 끝]**

  • 좀비 아포칼립스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썩은 물비린내와 먼지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지혁은 낡은 마스크 위로 습기를 내뱉으며 손전등 불빛을 좌우로 흔들었다. 까맣게 변색된 천장, 무너진 선반 사이로 엉겨 붙은 거미줄, 그리고 발밑에서 바스러지는 유리 조각들. 이곳은 한때 풍요를 자랑했던 대형 마트의 잔해였다.

    “오빠, 저기.”

    수아의 목소리가 어둠을 찢고 날아들었다. 지혁은 반사적으로 손전등을 그녀가 가리키는 곳으로 돌렸다. 통조림 코너. 엉망진창으로 파헤쳐진 선반들 사이로, 기적처럼 온전한 깡통 몇 개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희망의 빛 같은 착각이었다.

    “조심해. 발소리.”

    지혁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이곳은 너무 고요했다. 살아있는 소리라곤 자신들의 숨소리, 그리고 어딘가에서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뿐. 그 고요함이 되려 더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짐승 같은 그림자들.

    수아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너진 진열장 틈새를 살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손으로 깡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옥수수 통조림. 캔 뚜껑의 녹슨 흔적이 세월의 무게를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먹을 만할 터였다. 이런 세상에서 옥수수 한 캔은 황금보다 귀했다.

    그때였다.

    멀리서, 아주 희미하게, 무언가가 *끄으응…* 하고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혁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착각일까? 아니, 그는 수없이 들어온 소리였다. 망가진 세상이 내는 가장 흔한, 그리고 가장 끔찍한 소리.

    수아도 그 소리를 들었는지, 들고 있던 깡통을 허둥지둥 배낭에 넣었다.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저쪽인가…?”

    지혁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 즉 마트 입구 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놈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어서 나가야 해. 수아.”

    지혁은 수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는 것이 가장 안전했다. 하지만 발소리가 거슬렸다. 깨진 유리 조각들이 경고음처럼 울렸다. 그들이 나아가려던 순간, 등 뒤에서 더 선명한 소리가 들렸다. *크르르르…*

    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젠장, 입구 쪽이 아니라 안쪽이었다니!

    “뒤쪽이야!”

    수아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마트 안에 울렸다. 지혁은 몸을 돌렸다. 손전등 불빛이 거친 움직임에 흔들렸다. 그 빛이 한 무리의 그림자 위를 스쳤다. 적어도 서너 마리. 찢어진 옷자락, 일그러진 얼굴, 축 늘어진 사지. 그리고 그들의 눈은 어둠 속에서 굶주린 짐승처럼 번득였다.

    놈들이 동시에 지혁과 수아를 향해 달려들었다. 고요했던 마트가 순식간에 악몽의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썩은 살점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수아, 도망쳐! 내가 막을게!”

    지혁은 배낭에서 미리 준비해 둔 쇠 파이프를 꺼내 들었다. 녹슬고 묵직한 파이프가 손에 익숙하게 감겼다. 첫 번째 달려든 놈의 머리를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놈의 몸이 뒤로 휘청였다. 하지만 곧 다시 몸을 추스르며 달려들었다. 이빨이 드러난 입이 악취를 풍기며 쩍 벌어졌다.

    수아는 오빠의 말을 듣고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이미 다른 두 마리가 그녀의 퇴로를 막고 있었다. 놈들의 손이 그녀를 향해 뻗어왔다. 수아는 주저 없이 품속에서 작은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햇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창백한 날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오빠…!”

    그녀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지혁은 수아에게 향하는 놈들을 막기 위해 몸을 돌리려 했지만, 이미 첫 번째 놈이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쇠 파이프를 휘두를 공간조차 부족했다.

    좁은 통로, 시야를 가리는 어둠, 그리고 사방에서 조여오는 악몽 같은 그림자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손에 쥔 쇠 파이프가 무겁게 느껴졌다. 놈들의 신음 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숨 막히는 순간, 지혁의 눈에 문득, 무너진 선반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비상구 표지가 들어왔다. 저곳까지 갈 수만 있다면…

    하지만 놈들이 지척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놈들의 신음 소리와는 다른, 묵직하고 규칙적인, *쿵, 쿵, 쿵* 하는 발소리였다.
    누군가 오고 있었다.
    놈들 외의 또 다른 존재가.

    지혁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놈들과의 싸움은 고사하고, 또 다른 ‘변수’의 등장이라니.
    젠장.

    발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어둠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놈들은 그 그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굶주림에 미쳐 날뛰던 감염자들의 움직임이 순간 정지했다.
    지혁은 간신히 놈들의 공격을 피하며 무너진 선반 뒤로 몸을 숨겼다. 손전등 불빛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마트 통로를 가로질러 들어섰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하고, 감염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정돈된 움직임을 지닌, 섬뜩한 존재였다.
    온몸을 검은 보호구로 감싼 그것의 눈에서 붉은 섬광이 번뜩였다.
    놈들과 지혁, 그리고 수아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그 존재의 시선이 마치 지옥의 심연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지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차라리 놈들과 싸우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