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늘 같았다. 끝없이 펼쳐진 칠흑의 바다, 별무리조차 희미하게 번지는. 카시오페아 호는 그 심연을 유영하는 작은 섬이었다. 320일째, 지구로부터 아득히 먼 심우주 탐사 임무. 사령관 이수현은 늘 같은 시간에 함교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했다. 무한한 고독과 고요함 속에서, 기계음만이 규칙적으로 울리는 것이 유일한 생명 신호였다.
“사령관님, 정찰 드론에서 이상 신호가 감지되었습니다.”
평온을 깨뜨린 것은 항해사 박준서의 목소리였다. 늘 차분하던 그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수현은 즉시 몸을 꼿꼿이 세웠다. ‘이상 신호’라는 단어는 이 광활한 어둠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불길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정보 분석. 원인은?” 수현의 목소리는 고요했지만, 지휘관으로서의 날카로움이 묻어났다.
“분석 중입니다. 일반적인 공간 왜곡이나 소행성 잔해가 아닙니다. 에너지… 뭔가 인위적인 에너지 패턴입니다. 지금까지 탐사된 어떤 종류의 기술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화면이 순식간에 바뀌고, 붉은색 경고 표시와 함께 복잡한 그래프가 춤추기 시작했다. 주파수, 파동, 밀도… 모든 수치가 비정상이었다. 수현의 눈썹이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이런 유형의 신호는 탐사 역사상 단 한 번도 보고된 적이 없었다.
“지윤 박사, 지금 바로 함교로.” 수현은 통신을 통해 과학부 총책임자 최지윤 박사를 호출했다. 이런 미지의 상황에서 그녀의 통찰력은 필수였다.
최지윤 박사는 머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채 달려왔다. 그녀의 눈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경이로움과 불안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만큼이나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이게… 대체 뭐죠, 사령관님? 이런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아야 합니다.”
“알고 싶어서 박사를 부른 겁니다.” 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위치는? 거리는?”
준서가 재빨리 좌표를 띄웠다. “여기입니다. 현재 위치에서 2AU, 예상 이동 경로는… 없습니다.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2AU. 광대한 우주에서 거의 코앞이나 다름없는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는 건, 분명 무언가가 그 존재를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접근하겠습니다.” 지윤이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연구자의 본능이었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준서가 우려를 표했다. 그의 눈은 스크린 위 경고등에 머물러 있었다. “정체불명의 신호, 그것도 이런 깊은 우주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프로토콜을 위반합니다.”
수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은 스크린 위, 미약하게 반짝이는 붉은 점에 머물러 있었다.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인류가 이만큼 멀리까지 와서, 이런 미지의 존재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탐사는 인류의 숙명이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모든 방어막 최대로 올리고, 비상 탈출 경로 확보해.” 수현의 결정이 내려지자, 함교 내 공기는 더욱 팽팽하게 조여졌다. 긴장감이 손에 잡힐 듯했다.
카시오페아 호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미지의 심연 속으로 파고들었다. 몇 시간 후, 망원 센서에 흐릿한 형체가 잡히기 시작했다. 거대한… 검은 그림자.
“젠장…” 준서의 입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박혀 있었다. “이건… 소행성이 아닙니다. 인공 구조물 같습니다.”
스크린이 확대되자, 모두는 숨을 들이켰다. 그곳에는 어떤 별빛도 흡수하는 듯한 완벽한 칠흑의 물질로 이루어진, 거대한 직육면체 구조물이 떠 있었다.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카시오페아 호가 그 옆에 서면 작은 먼지처럼 보일 정도였다. 표면은 매끄러웠고, 어떤 문양이나 이음새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통째로 하나의 물질에서 깎아낸 것처럼 보였다.
“측정 불가… 모든 센서가 먹통입니다.” 지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장비를 더듬었다. “열감지, 전자기 파동, 중력장… 아무것도 읽히지 않아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모든 빛과 정보를 집어삼키는 듯한 위압적인 존재감으로.
수현은 함선과 구조물 사이의 거리를 최대한 좁히도록 지시했다. 안전 거리 내에서, 그 불가사의한 존재를 탐색해야 했다.
“표면 스캔 시도합니다. 손상될 가능성… 50% 이상입니다.” 준서가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위험을 경고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진행해.” 수현은 망설이지 않았다. 미지에 대한 갈망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카시오페아 호의 정찰 드론이 발사되었다. 소형 탐사선을 조종하는 지윤의 손길은 정교했다. 드론은 거대한 검은 구조물에 아주 천천히 다가갔다. 그 거리가 좁혀질수록, 함교 내부에는 묘한 저주파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귀가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이었다.
‘웅…….’
함교의 조명이 미세하게 깜빡였다. 스크린의 영상이 일렁였다.
“시스템 불안정! 전력 역류 감지됩니다!” 준서가 다급하게 외쳤다. “사령관님, 뭔가 우리 에너지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물러서!” 수현이 명령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드론이 거대한 구조물 표면에 닿는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카시오페아 호를 강타했다.
“크아악!”
온몸이 흔들렸다. 스크린은 백색 섬광으로 뒤덮였다. 눈을 감았다 떴을 때, 수현은 자신이 잠시 다른 공간에 떨어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찰나의 순간, 그의 시야에는 끝없는 검은 공간에 무수히 많은, 그러나 결코 같은 형태가 아닌, 기하학적 도형들이 질서 없이 떠다니는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모든 도형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뒤틀리며, 끝없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묘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사령관님! 괜찮으십니까?!” 준서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왔다.
머리가 맑아지자, 현실이 돌아왔다. 함교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여기저기서 경보음이 울리고, 패널에서는 스파크가 튀었다.
“지윤 박사! 드론은?!” 수현이 소리쳤다.
지윤은 간신히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드론… 드론이… 사라졌습니다.”
스크린에는 드론의 신호가 끊긴 마지막 지점만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검은 구조물은… 미세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내부에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처럼. 칠흑 같은 표면에, 고대 문자 같은 기이한 문양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사령관님, 보십시오!” 준서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메인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카시오페아 호의 현재 시간이 표시되어 있었다.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5]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6]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7]
…
그리고 갑자기, 숫자들이 미친 듯이 뒤섞이며 역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4]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3]
[현재 시간: 2542년 10월 27일 14:37:02]
…
[현재 시간: 2541년 05월 12일 09:12:33]
…
[현재 시간: 2540년 01월 01일 00:00:01]
…
“말도 안 돼!” 지윤이 비명을 질렀다. 그녀의 눈은 경악으로 크게 뜨여 있었다.
시간이… 역행하고 있었다. 함선 내부의 모든 시계가 미친 듯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외부 센서에서는 더 이상 칠흑의 구조물이 감지되지 않았다. 오직 무한한 어둠만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준서!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 거지?! 외부는?!” 수현은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을 찾으려 애썼다.
준서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모든 좌표가 초기화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여긴 어디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외부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방금 전 그 구조물도 사라졌습니다!”
주변의 별들이 흐릿해지고, 이내 모든 것이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창밖은 아무것도 없는, 마치 우주의 시작과 끝이 만나는 곳처럼 공허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 수현의 시선은 다시 한번 스크린의 시간으로 향했다. 숫자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과거로 향하고 있었다.
[현재 시간: 23세기…]
[현재 시간: 22세기…]
[현재 시간: 21세기…]
“우리가… 우리가 어디로 가는 거죠, 사령관님?” 지윤의 목소리가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수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눈앞에는 아득히 먼 과거로 향하는 시간의 흐름만이 섬광처럼 아른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뇌리에는 찰나의 순간 스쳐 지나갔던 기하학적 도형들의 환영이 다시 떠올랐다. 그것들이 혹시… 시간의 조각들이었을까?
카시오페아 호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미지의 시간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