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두 시.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의 심장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 고서가 빼곡한 제1금서고의 가장 깊은 곳은 언제나 깨어 있었다. 눅눅하고 곰팡이 냄새가 희미하게 풍기는 공기. 촛불조차 꺼지지 않은 채 먼지만 쌓여가는 고대 마법학 서적들. 리안은 그 사이를 유령처럼 미끄러져 들어갔다.
“젠장… 시간이 없어.”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닿지 않고 낡은 책장 사이로 흩어졌다. 손가락 끝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과거로의 회귀는 한 번으로 끝나는 도박이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재앙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금기’를 막아야 했다.
손에 든 낡은 양피지 지도를 등잔불 아래 비춰보았다. 희미한 마력으로 새겨진 지도는 학원 건물의 가장 깊은 지하를 가리키고 있었다. 알려진 비상 대피소나 마법 연구 시설의 구역과는 확연히 다른, 전혀 기록되지 않은 미지의 공간. 붉은색 잉크로 덧칠된 ‘절대 접근 금지’라는 경고문은 리안의 심장을 더욱 조여 왔다.
지난 회귀에서, 리안은 그 경고가 단순히 오래된 마법 실험의 잔재 때문이 아님을 깨달았다. 학원의 모든 마력을 지탱하는 끔찍한 진실. 수많은 명망 높은 마법사들을 배출하고, 대륙의 마법 체계를 이끌었던 아르카디아의 영광 뒤에 숨겨진 추악한 그림자.
벽에 붙은 낡은 마력 증폭 장치를 확인했다. 녹슨 톱니바퀴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간신히 돌아가고 있었다. 이 장치는 표면적으로는 학원 전체의 마법 에너지를 분배하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리안은 알고 있었다. 이 장치가 사실은 지하의 ‘그것’으로부터 마력을 끌어올리는, 일종의 흡입구라는 것을.
그때였다. *지이잉—.*
발밑에서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 금서고 전체를 흔드는 듯한, 깊고 불쾌한 울림이었다. 먼지 쌓인 책들이 미세하게 흔들렸고, 등잔불의 심지가 한 번 크게 일렁였다.
“벌써인가?”
리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예정보다 빠르다. 금기의 봉인이 약해지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번에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터였다.
양피지 지도를 따라, 리안은 책장 뒤에 숨겨진 비밀 통로로 향했다. 낡은 마법 잠금장치가 그의 손끝에서 허망하게 풀렸다. 한때는 누구도 열지 못했을 견고한 봉인도, 미래의 지식을 가진 리안에게는 한낱 아이들의 장난감에 불과했다.
통로 안은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리안은 손바닥에 희미한 발광 마법을 걸어 시야를 확보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지하로 이어지는 돌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계단을 밟을 때마다 쩍, 쩍, 하는 마른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마치 누군가의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수십 미터를 내려갔을까. 공기의 밀도가 달라졌다. 습기는 사라지고, 대신 정체불명의 금속성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발밑의 돌계단은 매끄러운 금속 패널로 바뀌어 있었다. 패널 사이의 틈새에서는 푸르스름한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이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학원의 심장부에 숨겨진, 진짜 금단의 영역.
리안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심장은 마치 드럼처럼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 항상 그랬다. 알 수 없는 압력,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울음소리.
*흐읍… 으으…*
귀를 의심했다. 환청이 아니었다. 분명 사람의 목소리였다. 고통에 일그러진, 희미한 신음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러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이 펼쳐진 금속 복도와, 복도 양옆으로 늘어선 정체불명의 문들뿐이었다.
문들은 특이했다. 아무런 손잡이나 잠금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중앙에 복잡한 마법 문양이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희미하게 깜빡였고, 그 안에서 아주 약한 마력이 맥동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리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미래에서 그가 본 것은, 이 학원의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던 끔찍한 행위의 잔혹한 결과였다. 이 문 하나하나가, 지옥의 감옥이었다.
가장 가까운 문 앞에 섰다. 차가운 금속 벽에 손을 짚었다. 손끝에서 스며드는 냉기 너머로, 문양 안에서 뛰는 미세한 맥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또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으윽… 엄마… 아파…*
어린아이의 목소리. 고통에 잠식된, 그러나 필사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였다. 리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설마, 설마 아직도…
이명처럼 머릿속을 맴도는 미래의 기억들. 마력의 폭주, 학원의 붕괴, 그리고 폐허 속에서 발견된, 바싹 마른 미라처럼 변해버린 시체들. 그들은 모두, 마력이 완전히 고갈된 채였다.
리안은 이를 악물었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이 문 뒤에 갇힌 존재들이 완전히 고갈되기 전에, 이 모든 비극의 고리를 끊어야 했다.
그때였다. 복도 끝, 어둠 속에서 푸른색 섬광이 번쩍였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거기 누구냐!”
차가운 목소리가 복도를 가로질렀다. 학원 경비 마법사의 목소리였다. 들켜서는 안 된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리안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금속 벽은 차갑고 매끄러웠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복도 한편에 세워진 거대한 수정 기둥이었다. 기둥 안에서는 푸른색 마력 줄기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학원 전체에 마력을 공급하는, 핵심 마력원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작은 통로가 보였다. 관리용 통로처럼 보이는, 겨우 몸 하나 들어갈 만한 좁은 틈새.
망설일 틈도 없었다. 리안은 몸을 숙여 그 틈새로 기어들어갔다. 먼지와 금속 부스러기가 뺨을 스쳤다. 통로 안은 어둡고 비좁았다. 숨을 죽인 채 몸을 웅크렸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철컥, 철컥.*
마법사의 지팡이 끝이 금속 복도를 짚는 소리였다.
“아무도 없나…?”
낮은 목소리가 바로 리안의 은신처 위를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들키면 끝이다.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미래의 참혹한 재앙을 다시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듯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던 찰나, 문득 코끝을 스치는 냄새가 있었다. 금속성 비린내와는 또 다른, 섬뜩할 정도로 달콤한 냄새. 마치 피비린내 같기도, 아니면 썩은 꽃 내음 같기도 한 기묘한 악취였다.
리안은 고개를 돌렸다. 통로 안쪽,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작은 구멍이었다. 금속 패널 사이에 균열처럼 생긴 틈. 그 틈새 너머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여 리안은 조심스럽게 눈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심장은 멈추는 듯했다.
틈새 너머의 공간. 거대한 홀. 그리고 그 홀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기이한 장치. 수많은 투명한 관들이 사방으로 뻗어 있었고, 그 관 하나하나에 인간의 형상이 흐릿하게 비쳐 보였다.
인간. 아니, 인간이었던 것들.
창백하고 메마른 피부, 생기 없는 눈동자, 그리고 몸을 휘감은 마력 주입/흡입 장치들. 그들은 모두 공중에 부유한 채, 미동도 없이 그곳에 매달려 있었다. 흡사 거대한 누에고치 안에 갇힌 존재들처럼.
그리고 홀의 벽면에는, 붉은 마법 문자들이 피처럼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영혼의 샘’, ‘마력의 근원’, ‘아르카디아의 심장’.
이 모든 것이, 이 지독한 금기가 바로 학원 마력의 원천이었다.
리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미래에서 그는 이 장치의 잔해만을 보았다. 이렇게 온전한 모습으로, 고통받는 존재들이 매달려 있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그때, 장치 중앙에 연결된 가장 굵은 관 하나가 붉은색으로 번쩍였다. 그와 동시에, 관 속의 형상이 고통스럽게 꿈틀거렸다. 마력이 맹렬하게 빨려 들어가는 소리가 환청처럼 리안의 귓가를 울렸다.
“이… 끔찍한…”
리안의 입술에서 겨우 흘러나온 말이었다. 절망과 분노가 뒤섞였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장치가 마지막으로 폭주하는 날, 학원 전체가 붕괴하고 대륙 전체가 마력의 역류로 고통받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폭주의 시작은, 바로 이 ‘희생자’들이 더 이상 마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 순간이라는 것을.
그의 눈에, 가장 어린아이로 보이는 형상이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에, 아직 채 여물지 않은 작은 손가락. 그 아이의 몸에서, 푸른색 마력 광선이 장치로 맹렬하게 흡수되고 있었다. 아이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엄마…*
리안의 심장이 찢어지는 듯했다. 저 아이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었다. 고통 속에서, 필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리안은 주먹으로 벽을 내리쳤다. 이대로는 안 된다. 미래에서 그가 막지 못했던 것은, 이 장치의 폭주가 아니라 이 장치의 존재 자체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끔찍한 금기의 심장부를 두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클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안은 얼어붙었다. 설마, 경비 마법사?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바로 뒤, 통로 입구. 어둠 속에서 빛나는 두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의 주인이 들고 있는, 번쩍이는 지팡이.
“뭘 보고 있는 거지, 학생?”
아르카디아 마법 학원의 학장, 로젠의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상냥한, 그러나 차가운 칼날 같은 목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