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새벽의 노래: 도시의 심장이 속삭이다
**[시작]**
**장면 1: 어둠이 드리운 심장 (Heart Shrouded in Darkness)**
**시간:** 늦은 밤, 새벽이 오기 직전.
**장소:** 철혈제국 수도, ‘아르카디아’의 최하층 구역 ‘잿빛 거리’.
**시각 자료 (Storyboard Suggestion):**
* **패널 1:** 아르카디아의 전경.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황금빛 상층부 건물들이 별빛처럼 빛난다. 하지만 그 아래로는 거대한 암흑이 도시를 집어삼킨 듯 드리워져 있다. 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하층부의 불빛들이 마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처럼 보인다. 삭막함과 화려함의 극명한 대비.
* **패널 2:** 잿빛 거리의 좁은 골목. 낡고 녹슨 철골 구조물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그 사이로 희미한 네온사인 간판들이 깜빡인다. 습기와 오염된 공기로 가득 차 있으며, 저 멀리서 주기적으로 들려오는 상층부의 웅장한 기계음이 하층부의 고요를 깨뜨린다. 골목의 바닥은 오물과 빗물이 뒤섞여 끈적하다.
* **패널 3:** 유나(19, 여)의 뒷모습. 낡고 해진 후드 재킷을 걸치고 고물상들이 모여 있는 길거리를 조용히 걷는다. 그녀의 작은 손에는 오래된 공구 가방이 들려 있다.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단단하고 결의에 차 있다.
* **패널 4:** 유나의 시점. 낡은 공중화장실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실종자 수배 전단’. 대부분 어린아이들의 사진이며, ‘실종 원인: 제국 산업 공병대 차출’이라는 문구가 작게 적혀 있다. 전단 위에는 새로 붙여진 듯한 ‘임시 통행 금지’ 안내문이 덮여 있다. 빗물에 젖어 글씨가 번져 있다.
**대본:**
**내레이션 (유나의 독백):**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저들의 황금빛 성벽 아래, 우리는 잿빛 그림자처럼 살아간다. 숨 쉬는 것조차 사치인 곳. 이곳이, 철혈제국의 심장, 아르카디아의 밑바닥이다. 상층부의 눈부신 불빛이 만들어낸 기나긴 그림자, 그게 바로 우리 하층민들의 삶이다.
**(유나, 낡은 골목을 걷는다. 축축한 바닥에 고인 웅덩이가 그녀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저 멀리서 상층부의 거대한 기중기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유나 (나지막이, 웅덩이 건너편의 벽에 붙은 전단지를 보며):**
…또 한 명인가.
**(유나는 전단지 속 아이의 해맑은 얼굴을 무심코 올려다본다. 빗물에 번져 흐릿한 얼굴이 오늘따라 더욱 가슴을 저미는 듯하다.)**
**유나 (내면):**
제국 산업 공병대 차출. 겉으로는 그럴듯한 이름이지만, 실상은 제국의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모품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저 아이도 결국, 상층부의 거대한 기계에 톱니바퀴 하나쯤으로 갈려버리겠지. 부모의 절규는 그저 바람결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질 뿐.
**(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낡은 철골 구조물 사이, 겨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좁은 틈새를 익숙하게 지나친다. 이윽고 작은 낡은 작업장 앞에 멈춰 선다. ‘렌즈와 기어’라는 간판이 불빛도 없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유나가 녹슨 문을 두드린다.)**
**유나:**
렌? 문 열어. 나야, 유나.
**(잠시 후,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렌(19, 남)이 얼굴을 빼꼼 내민다.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에, 그의 얼굴에는 늘 장난기 어린 미소가 걸려 있다. 잠에 취한 듯 부스스한 머리.)**
**렌:**
어, 유나! 이렇게 늦게까지 뭘 하다 와? 오늘 수확은 좀 있었어? 또 제국 순찰대 피해서 개고생한 거 아니야? 밤새도록 나 혼자 연구하게 하려고 일부러 늦게 온 거 아니지?
**유나:**
(안으로 들어서며, 어깨에 걸린 가방을 내려놓는다)
뭘 하다 오긴. 네가 부탁한 ‘잊힌 잔해’ 조각들 찾느라 헤매다 왔지. 순찰대는 뭐, 언제나처럼 성가셨고. 딱히 특별한 건 없었어. 너야말로 잠도 안 자고 뭘 그렇게 만지고 있었던 거야?
**(유나는 고물 더미로 가득 찬 작업장을 둘러본다. 희미한 작업등 아래, 렌이 낡은 기계를 조립하고 있다. 작업대 위에는 반쯤 먹다 남은 딱딱한 빵 조각들이 널려 있다.)**
**렌:**
이야, 대단한데! 내가 말한 그 ‘에테르 응축기’ 조각들? 그거 이제 도시 외곽에서도 찾기 힘들 텐데. 역시 ‘잿빛 거리의 그림자’ 유나다워. 네 눈썰미는 진짜 최고라니까. 제국 놈들이 놓친 보물을 귀신같이 찾아내잖아!
**(렌은 유나가 내민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그의 눈이 광적으로 반짝인다. 낡은 천으로 조각들을 닦아내자, 숨겨져 있던 미세한 문양이 드러난다.)**
**유나:**
그림자는 무슨. 그냥 눈썰미가 좀 좋은 것뿐이야. 그런데 네가 말한 ‘잊힌 잔해’라는 게 대체 뭐야? 그냥 낡은 고철 덩어리처럼 보이는데, 왜 그렇게 찾으러 다니는 거야? 그렇게 대단한 거면 제국 놈들이 벌써 싹 쓸어갔을 거 아니야?
**렌:**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을 살짝 찌푸린다)
음… 이건 말이지, 제국 놈들이 절대 알려주지 않는 ‘진짜’ 고대 기술의 흔적들이야. 상층부 마법사들이 휘두르는 저 요란하고 파괴적인 마법과는 차원이 다른, 우리 하층민들의 피와 땀이 스며든 기술이지. 이걸 잘만 조합하면… 제국의 시스템을 뒤흔들 수도 있어.
**(렌이 말을 흐리며 낡은 부품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부품에서 아주 미세한 푸른빛이 깜빡인다. 유나는 그걸 응시한다. 묘한 끌림을 느낀다.)**
**유나 (내면):**
(저 빛… 나는 가끔 이런 ‘속삭임’을 느껴. 이 도시의 낡은 벽돌 속에서, 쓰레기 더미 아래에서, 사람들의 희미한 표정 속에서… 잊힌 것들의 미세한 떨림 같은 것. 이건 렌에게 말해본 적 없는 나만의 비밀이다. 마치 도시가 나에게만 말을 거는 것 같아.)
**렌:**
뭐해? 어서 앉아. 내가 특별히 암시장 상인에게서 구해온 ‘버섯 스튜’가 있다고. 오늘 밤새 연구해야 하니까 든든하게 먹어야지! 이걸 먹고 나면 또 다른 잔해의 위치가 번뜩 떠오를지도 몰라!
**(렌이 낡은 냄비에 담긴 검붉은 스튜를 데우기 시작한다. 퀘퀘한 작업장에 따뜻하고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연기가 작업등 아래로 피어오른다.)**
**유나:**
(작게 미소 지으며)
버섯 스튜? 네 요리 실력은… 믿을 수 없는데. 저번에 네가 끓인 건 진짜 엿 같았어.
**렌:**
에이, 내 손맛을 무시하지 마! 이건 진짜 황금 레시피라고! 이거 한 그릇이면 피로가 싹 가신다고! 자, 마시자마자 잠들지 말고! 내가 대단한 걸 만들고 나면 제일 먼저 너에게 보여줄게!
**(둘은 낡은 탁자에 마주 앉아 스튜를 먹기 시작한다. 잠시나마 이 암울한 도시의 밑바닥에서 얻을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평화의 순간이었다.)**
—
**장면 2: 제국의 폭풍 (Imperial Storm)**
**시간:** 다음 날 오후.
**장소:** 잿빛 거리의 시장통.
**시각 자료 (Storyboard Suggestion):**
* **패널 1:** 활기 넘치던 잿빛 거리 시장통이 갑작스러운 공포에 휩싸인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노점상들의 물건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멀리서 들려오는 우렁찬 발걸음 소리와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시장통의 활기를 집어삼킨다.
* **패널 2:** 제국 순찰대 병사들(완전무장한 검은 갑옷, 얼굴을 가린 헬멧)이 일렬로 거리를 행진한다. 그들의 발걸음은 일사불란하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그들 중 선두에 선 ‘집정관 카셀’은 더욱 거대하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어깨에는 제국의 문양이 선명하다.
* **패널 3:** 카셀의 클로즈업. 헬멧 바이저 너머로 보이는 냉혹하고 무감각한 눈빛. 그의 손에는 붉은색 제국 깃발이 꽂힌 징수 영장이 들려 있다. 그의 입가에는 경멸에 찬 비웃음이 걸려 있다.
* **패널 4:** 유나의 시점. 한 할머니가 노점에서 힘들게 번 돈을 제국 병사들에게 빼앗기고 절규한다. 병사들이 할머니를 거칠게 밀치고, 할머니는 바닥에 쓰러진다. 그 옆에 깨진 유리병에서 붉은 약물이 흘러나와 바닥에 번진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허망하게 허공을 더듬는다.
* **패널 5:** 유나의 얼굴 클로즈업. 분노와 무력감이 뒤섞인 표정. 그녀의 눈빛에서 미세한 푸른빛이 깜빡인다. 주변의 소음 속에서도 그녀에게만 들리는 듯한, 도시의 희미한 속삭임이 점차 선명해진다. 무언가가 그녀의 내면에서 꿈틀거린다.
**대본:**
**(시장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활기차다. 낡은 천막 아래 상인들은 목청껏 물건을 팔고, 행인들은 북적이며 싼 값의 먹거리를 찾는다. 유나는 렌에게 필요한 부품을 구하기 위해 분주히 상인들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퀘퀘한 냄새 속에서도 삶의 생기가 느껴지는 곳.)**
**상인 1:**
이봐 아가씨, 여기 신선한 ‘지하수 열매’가 최고야! 오늘 막 채집한 거라고! 오늘만 특가!
**상인 2:**
‘강철 거미’ 껍질! 녹슬지 않는 갑옷 재료! 싸게 줄게! 하층민의 유일한 방패 아니겠어!
**(갑자기, 시장통 저 멀리서 웅장한 금속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사람들의 얼굴에 공포가 스친다. 활기 넘치던 시장통이 순간 정지한 듯 고요해진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한다.)**
**군중:**
저건… 제국 순찰대잖아!
젠장, 또 무슨 일이야! 도대체 얼마나 더 빼앗아가려는 거야!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제국 병사들이 일렬로 들어선다. 그들의 발소리는 마치 심장을 쿵쾅거리는 북소리처럼 하층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그들의 선두에는 더욱 화려하고 위압적인 갑옷을 입은 ‘집정관 카셀’이 서 있다. 그의 뒤로 보이는 거대한 제국 함선이 하늘을 가로막고 있다.)**
**집정관 카셀:**
(증폭된 목소리, 광장 전체에 울려 퍼진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권위가 가득하다.)
아르카디아 하층민들에게 고한다! 오늘부로 제12구역, ‘잿빛 거리’ 전역은 제국의 긴급 자원 징수 지역으로 선포되었다! 모든 재화와 자원은 제국에 귀속될 것이며, 이를 거부하는 자는 반역자로 간주, 즉시 처형될 것이다! 저항은 무의미하다!
**(사람들의 얼굴에 절망과 분노가 스친다. 웅성거림이 커지자, 병사들이 소란을 진압하기 위해 무기를 휘두른다. 둔탁한 금속음과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뒤섞인다.)**
**유나 (내면):**
긴급 자원 징수? 말도 안 돼… 어제까지 아무 말도 없었잖아! 대체 무슨 꿍꿍이야! 저들의 긴급은 언제나 우리에게는 죽음과 마찬가지였다.
**(병사들이 노점상들을 무자비하게 밀치고 물건들을 빼앗기 시작한다. 거칠게 뒤엎어진 상자들에서 과일과 채소가 쏟아져 나와 짓밟힌다. 한 할머니 상인이 필사적으로 자신의 약초 상자를 붙들고 버틴다. 그녀의 눈은 이미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하다.)**
**할머니:**
안 돼! 이건 내 전 재산이야! 손대지 마! 이걸로 겨우 손주 약값을 마련하려고…! 이 약초가 없으면 우리 손주가 죽는단 말이야!
**병사 1:**
(할머니를 거칠게 밀치며)
시끄럽다! 제국의 명령에 거역하는 건가, 노인네! 너 같은 하찮은 목숨 따위 제국에는 아무런 가치도 없어!
**(할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군다. 약초 상자가 쏟아지고, 유리병이 깨지며 붉은 약물이 바닥에 스며든다. 피처럼 붉은 약물이 잿빛 바닥에 번져 나간다. 유나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녀의 주먹이 떨린다. 분노로 인해 온몸이 떨린다.)**
**유나 (내면):**
저들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아. 우리의 삶도, 고통도… 전부 먼지처럼 취급할 뿐이야. 우리에겐 숨 쉬는 것조차도 허락된 것이 아니었나.
**(그 순간, 유나의 귀에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마치 도시의 벽과 바닥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수많은 절규와 분노의 파동. 그것은 단순한 소음이 아니었다. 어떤 방향성을 지닌, 거대한 힘의 흐름 같았다. 마치 도시의 영혼이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 분노와 슬픔을 토해내는 듯했다.)**
**유나 (내면):**
(이 속삭임… 늘 느끼던 것이지만, 오늘따라 더 선명하고 격렬해. 마치… 내 안의 무언가를 일깨우는 것처럼. 내 안에 잠자던 분노가 이 속삭임과 함께 깨어나는 것 같아.)
**(유나는 분노에 찬 눈으로 집정관 카셀을 노려본다. 카셀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손에 든 징수 영장을 흔들며 비웃고 있다. 그의 눈빛은 하층민들을 벌레 보듯 경멸하고 있다.)**
**집정관 카셀:**
(비웃듯이)
이깟 하층민들의 재화가 얼마나 된다고. 그저 상층부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쓸 고철에 지나지 않지. 감히 제국의 자비로운 통치에 불평하는 자들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제국은 너희에게 숨 쉴 공기조차도 허락해준 위대한 존재다!
**(카셀의 말에 유나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녀의 손에서 쥐고 있던 낡은 공구가 순간적으로 푸른빛을 발하는 듯했지만, 곧 사라진다. 유나는 이를 눈치채지 못한다. 다만, 온몸에 알 수 없는 뜨거운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유나 (내면):**
자비로운 통치? 이 말도 안 되는 오만함… 이대로는 안 돼. 더 이상은.
—
**장면 3: 새벽의 그림자 (Shadows of Dawn)**
**시간:** 그날 밤.
**장소:** 잿빛 거리 외곽의 버려진 지하수로.
**시각 자료 (Storyboard Suggestion):**
* **패널 1:** 어둡고 습한 지하수로. 낡은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를 깬다. 멀리서 희미한 횃불 빛이 보인다. 지하의 음습한 공기가 시각적으로 느껴진다.
* **패널 2:** 카인(40대, 남)의 모습. 낡은 가죽 코트를 입고, 한쪽 눈에는 오래된 상처 자국이 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작은 칼로 나무 조각을 다듬고 있다. 그의 표정은 냉철하지만, 어딘가 깊은 고뇌와 피로가 담겨 있다.
* **패널 3:** 유나가 조심스럽게 지하수로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 그녀의 눈에 비치는 카인과 몇몇 그림자 같은 사람들. 그들은 낡은 옷을 입고 있지만, 눈빛만은 살아있다. 그들의 눈빛에는 각기 다른 사연과 결의가 담겨 있다.
* **패널 4:** 카인이 유나를 꿰뚫어 보는 듯한 시선. 유나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다.
* **패널 5:** 유나의 손바닥에 희미하게 떠오르는 푸른 빛. 카인이 그것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 미세한 놀라움이 스친다.
**대본:**
**(분노와 무력감에 휩싸여 밤늦도록 거리를 헤매던 유나는, 문득 렌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이 도시의 어둠 속에는… 제국에 맞서는 희망의 그림자들이 숨어있어.’ 그녀는 무작정 렌이 알려주었던, 잿빛 거리 외곽의 버려진 지하수로로 향했다.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해야만 했다.)**
**(낡은 철문을 열고 들어선 지하수로는 예상보다 훨씬 어둡고 습했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유나는 개의치 않았다. 발소리를 죽이며 나아가자, 이윽고 멀리서 희미한 횃불 빛과 함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선명했다.)**
**(그곳에는 열댓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 유나와 비슷한 처지의 하층민들로 보였다. 그들 한가운데에는, 한쪽 눈에 깊은 상처 자국이 있는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바로 ‘카인’이었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날카로웠다.)**
**카인:**
(나지막하고 건조한 목소리, 그러나 힘이 실려 있다)
…알고 있다. 오늘 제국의 수탈은 그 어느 때보다 가혹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곤 잿더미와 절망뿐이지. 하지만 우리의 분노만으로는 저들의 강철 성벽을 부술 수 없다. 우리는 이 도시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조용하게 움직여야 한다. 새벽이 오기 직전의 어둠처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유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분노와 함께 희미한 희망이 싹트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눈에서 자신과 같은 절망, 그리고 불굴의 의지를 보았다.)**
**유나 (내면):**
이들이… 렌이 말했던 그 ‘새벽의 노래’인가? 이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게 하려는 자들…
**(유나가 더 가까이 다가가자, 카인의 시선이 번개처럼 그녀에게 꽂혔다. 그의 눈은 마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카인:**
거기 낯선 그림자. 누구냐. 이 어둠 속으로 스며든 이유는 뭐지? 이 만남이 우연이라고 생각하나?
**(모든 시선이 유나에게 향했다. 그녀는 움찔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뒤돌아 도망칠 수는 없었다. 할머니의 절규가 귓가를 맴돌았다.)**
**유나:**
…저는 유나입니다. 잿빛 거리에서 태어나, 잿빛 그림자처럼 살아왔습니다. 오늘, 제국의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저도 이 도시의 한 조각으로서, 무언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카인:**
(유나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냉정하다.)
분노는 쉽게 타오르지만, 쉽게 꺼지는 불꽃과도 같다. 제국에 대한 증오만으로는 이 길을 걸을 수 없어. 너에게는 무엇이 있지? 그저 분노뿐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라도?
**유나:**
(망설이다가,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본다. 손바닥에 미약한 떨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간다.)
저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 도시의… ‘속삭임’ 같은 것을요. 낡은 벽돌 틈새에서, 버려진 기계 속에서… 마치 이 도시가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습니다. 숨겨진 길을 알려주거나, 잊힌 것들의 흔적을 보여주는 것처럼…
**(카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진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유나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아챈다. 그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했다.)**
**카인:**
(유나의 손을 뒤집어 보더니, 그녀의 손바닥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푸른 빛을 발견한다.)
이건… ‘하층의 속삭임’… 정말이었군. 아주 미약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군. 도시의 숨결이 너를 통해 흐르고 있어.
**반란군 1:**
대장님, 저 아이는… 혹시 그 능력을 가진 건가요?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는…
**카인:**
(유나를 다시 응시하며, 그의 얼굴에 희미한 기대감이 스친다.)
그래. 아주 오래전부터 하층민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 도시의 영혼과 공명하여, 잊힌 길을 찾고, 잠든 힘을 깨우는 능력. 너는 그걸 타고났군. 이 도시가 너를 선택했어.
**유나:**
(혼란스러운 표정)
이게… 힘인가요? 저는 그저 환청이나 환각인 줄 알았습니다. 그저 내가 너무 예민해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카인:**
제국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환상’이라 치부한다. 자신들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말이지. 하지만 이 도시는… 살아있어. 그리고 너는 그 도시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자 중 하나다. 이건 축복이자…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카인이 유나의 손을 놓는다.)**
**카인:**
좋다. 만약 네가 진정으로 이 길을 걷고 싶다면… 너의 그 ‘속삭임’을 우리를 위해 써라. 제국의 감시망을 뚫고,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을 찾아낼 수 있다면… 그게 너의 첫 시험이다. 너의 능력이 단순한 환상이 아님을 증명해 봐라.
—
**장면 4: 첫 발걸음 (First Step)**
**시간:** 다음 날 새벽.
**장소:** 잿빛 거리와 상층부 연결 통로가 위치한 제11구역 경계선.
**시각 자료 (Storyboard Suggestion):**
* **패널 1:**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잿빛 거리와 상층부로 통하는 거대한 철문이 보인다. 철문은 낡고 거대하며, 틈새마다 녹이 슬어 있다. 철문 주변에는 제국 병사들이 삼엄하게 경비하고 있다. 감시용 드론들이 느릿하게 하늘을 배회한다.
* **패널 2:** 유나가 좁고 어두운 골목길에 숨어 철문을 관찰한다. 그녀의 눈빛은 비장하다. 후드를 깊게 눌러썼지만, 결의에 찬 눈빛은 감춰지지 않는다. 긴장감이 팽배하다.
* **패널 3:** 유나의 시점. 철문 아래 낡은 배수관 틈새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인다. ‘하층의 속삭임’이 그녀에게 길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 빛은 마치 그녀의 심장 박동과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 **패널 4:** 유나가 배수관 틈새로 조심스럽게 몸을 밀어 넣는다. 몸을 웅크린 채 좁은 통로를 기어가는 모습. 그녀의 얼굴에는 결의에 찬 표정. 옷깃이 낡은 철골에 스치며 거슬리는 소리가 난다.
* **패널 5:** 렌이 지하수로 입구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의 손에는 낡은 통신 장비가 들려 있다. 그는 끊임없이 손톱을 물어뜯으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 **패널 6:** 유나가 어두운 통로 끝에서 상층부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낡은 사다리를 발견한다. 사다리 위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녀가 그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빛은 그녀의 손에 닿아 아련하게 빛난다.
**대본:**
**(카인이 유나에게 내린 첫 번째 임무는 간단했다. 제11구역 경계선에 위치한, 상층부와 하층부를 연결하는 오래된 보안 시스템의 취약점을 찾아내는 것. 겉으로 보기에는 난공불락 같아 보였지만, 카인은 분명히 ‘잊힌 길’이 존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국이 완벽하다고 착각하는 곳일수록 허점이 있기 마련이라고.)**
**(유나는 새벽 일찍 렌의 작업장에서 나왔다. 렌은 그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배웅했다. 그의 눈에는 밤새 잠들지 못한 피로가 역력했다.)**
**렌:**
야, 유나. 진짜 괜찮겠어? 그 철혈제국의 감시망이 얼마나 촘촘한데… 혹시 위험하면 바로 도망쳐야 해! 잡히면 끝이야! 내가 카인 아저씨한테 가서 네가 너무 어리다고 말해볼까?
**유나:**
(피식 웃으며, 렌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다)
걱정 마. 내가 누군데. ‘잿빛 거리의 그림자’잖아.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잖아.
**(유나는 자신의 손을 살짝 쥐었다. 그곳에서 희미한 힘의 떨림이 느껴지는 듯했다. 그녀의 내면에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유나:**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 마치 도시 전체가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유나는 렌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제11구역 경계선은 거대한 철문과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낡은 철문은 수십 년간의 오염과 부식으로 인해 검게 변해 있었다. 주기적으로 제국 병사들의 순찰이 이어졌고, 감시용 드론들이 음산한 소리를 내며 하늘을 맴돌았다. 숨을 죽이고, 유나는 은밀하게 움직였다.)**
**유나 (내면):**
젠장, 카인 아저씨 말처럼 쉽지 않겠는데. 이렇게 삼엄한데 어디 틈이 있다고… 제국 놈들은 저 거대한 벽으로 우리를 가둬두려 하는구나.
**(유나는 한참 동안 철문 주변을 살폈다. 낡은 벽돌 틈새, 녹슨 파이프라인, 거대한 철문 아래의 미세한 균열… 그녀의 시야 속에서, 평범한 것들이 서서히 다른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희미한 푸른 실들이 얽히고설켜 길을 안내하는 것처럼. 도시의 심장이 그녀에게 속삭이는 듯, 숨겨진 길을 가리켰다.)**
**유나 (내면):**
(이게… ‘하층의 속삭임’인가? 도시가 나에게 길을 보여주고 있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살아있는 것처럼.)
**(그녀의 시선은 철문 아래,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낡은 배수관 틈새에 닿았다. 육안으로는 그저 막혀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유나의 ‘속삭임’은 그곳에서 희미한 푸른빛의 잔영을 포착했다. 마치 오래된 숨겨진 통로가 자신을 부르는 듯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나:**
(숨을 들이쉬며)
찾았다…
**(유나는 주위를 살폈다. 마침 순찰대 병사들이 모퉁이를 돌자, 그녀는 재빨리 몸을 웅크려 낡은 배수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었다. 좁고 차가운 통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흙냄새와 물 냄새가 뒤섞여 역했다. 옷이 더러워지고, 피부에 차가운 습기가 달라붙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기어갔다. 몸은 불편했지만, 마음속에서는 묘한 확신이 차올랐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며 어두운 통로를 안내했다. 유나는 자신이 도시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시의 영혼이 그녀를 통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기어갔을까, 이윽고 통로 끝에서 희미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낡은 철제 사다리였다. 사다리 위로는 상층부로 통하는 것으로 보이는 작은 뚜껑이 있었다. 오염된 지하수로와는 다른, 맑고 차가운 공기가 느껴졌다.)**
**유나 (내면):**
성공했어…! 이곳이, 상층부로 가는 길…!
**(유나는 힘겹게 사다리를 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굳건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잿빛이 아니었다. 푸른 새벽의 빛이 깃든 듯했다.)**
**유나 (내면):**
이게 시작이야. 이 도시의 심장이 다시 뛰게 할… ‘새벽의 노래’를 부를 첫 발걸음.
**(허리에 찬 낡은 통신 장치가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냈다. 카인과의 교신이었다. 유나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통신 장치를 꺼내 귀에 댔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그 속에는 확신이 있었다.)**
**카인 (무전 너머, 희미하게):**
유나, 상황은? 듣고 있나? 아직 아무런 신호도 없는데…
**유나 (떨리는 목소리지만 확신에 차서):**
네, 카인 아저씨. 찾았습니다. 상층부로 통하는… 잊힌 길을요. 이 도시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었어요.
**(어두운 통로 끝에서 희미하게 비쳐 드는 새벽의 빛이 유나의 얼굴을 비췄다. 그녀의 눈빛은 이제 더 이상 잿빛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 속에는 작지만 강렬한, ‘새벽의 노래’가 담겨 있었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