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의 숨결
차디찬 새벽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청아는 망루 꼭대기에 위태롭게 엎드려 있었다. 수십 장 아래,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움직이는 거대한 그림자가 아득하게 보였다. 천룡 제국의 서쪽 관문을 지키는 ‘철혈 수송대’. 제국의 심장부로 향하는 보급로의 동맥이었다. 이 동맥을 끊지 못하면, 사막 너머의 변방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불씨는 한 줌 재가 되어버릴 터였다.
‘철컥.’
그녀의 손에 들린 단궁의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빨로 물고 있던 작은 돌멩이를 시위에 걸었다. 활이 아니라 돌멩이를 쏘는 것은 제국군에게 이들의 위치를 쉽게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돌멩이는 파멸의 씨앗이 되어 지정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갈 것이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여명 속에서도, 수송대의 규모는 압도적이었다. 수백 마리의 육중한 짐마차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느릿하게 이동했고, 그 주변을 철갑으로 무장한 제국 기병 수십 명이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선두에는 팔황신무(八荒神武)라 불리는 제국의 정예 기사단 중 하나인 ‘흑룡 기사단’의 깃발이 나부꼈다. 검은 깃발에 수놓인 붉은 용은 피에 굶주린 짐승처럼 일렁였다.
“젠장… 저리도 많다니.”
나직한 목소리가 청아의 귀에 스며들었다. 아래쪽에 매복한 동료 중 한 명인 늙은 늑대, ‘강산’의 목소리였다. 강산은 한때 제국의 광산에서 뼈를 묻었던 광부였다. 제국의 가혹한 수탈에 가족을 잃고, 이제는 이 ‘새벽의 숨결’이라 불리는 반란군의 실질적인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깊은 주름과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그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청아는 고개를 미세하게 끄덕였다. 망루 아래, 황량한 바위산 자락 곳곳에 흩어져 몸을 숨긴 동료들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강산처럼 제국의 압제에 시달린 민초들이었다. 농부, 장인, 떠돌이 상인… 무기를 들기 전에는 누구도 살생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의 손에는 녹슨 검과 날카로운 도끼, 투박한 창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심장에는, 제국에 대한 증오와 빼앗긴 삶을 되찾으려는 맹렬한 의지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수송대가 가장 좁은 협곡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위해 청아와 강산은 며칠 밤낮을 새워 지형을 분석하고, 매복 지점을 선정했다. 협곡은 제국군의 압도적인 병력을 무력화시킬 유일한 장소였다.
“목표, 호송대 중앙. 최고 지휘관.” 청아는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녀의 임무는 지휘관을 암살하여 제국군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이었다. 동시에, 수송대 가장 뒤편에 위치한 ‘특별 보급 마차’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다. 그곳에는 반란군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약재와 식량, 그리고 제국의 기밀 문건이 실려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격렬한 비트가 전신에 퍼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녀의 숨은 고요했다. 모든 감각이 오직 한 점에 집중되었다.
마침내, 수송대의 흑룡 기사단장이 탄 검은색 군마가 협곡의 정중앙에 다다랐을 때였다.
휘이이익!
청아의 손을 떠난 돌멩이가 쏜살같이 날아갔다. 정확히 기사단장의 발밑에 꽂힌 돌멩이는, 미리 설치된 밧줄과 연결되어 있었다. 팽팽하게 당겨진 밧줄이 협곡 양쪽 절벽에 고정된 말뚝을 뽑아냈다.
콰아아앙! 쿠르르릉!
절벽 위에서 미리 준비된 거대한 바위와 통나무들이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렸다. 협곡의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막아버리는 지연 폭발이었다. 흙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제국 병사들의 경악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매복이다! 적들을 섬멸하라!”
흑룡 기사단장의 우렁찬 고함이 흙먼지를 뚫고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쉬이이익! 푸슉!
어둠 속에서 수많은 화살과 투창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제국 병사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혼비백산하여 쓰러져갔다. 이들은 정규군과의 정면 대결이 아닌, 비정규전과 게릴라전에 특화된 ‘새벽의 숨결’ 전사들이었다.
“돌격! 제국의 목을 따러 가자!”
강산의 포효와 함께, 바위 뒤에 숨어있던 수백 명의 반란군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수는 제국군에 미치지 못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정예 부대보다도 강렬했다. 낡은 낫과 곡괭이가 제국군의 번쩍이는 갑옷을 후려쳤다.
청아는 혼란을 틈타 망루에서 쏜살같이 뛰어내렸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의 요정 같았다. 훈련받은 무인도 따라잡기 힘든 경공술, ‘바람의 발걸음’은 절벽의 바위 틈새를 딛고 내려오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사방에서 비명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하아앗!”
두 명의 제국 병사가 청아를 발견하고 창을 겨누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비영각(飛影脚)’!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인 그녀의 발이 병사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퍽! 퍽! 두 병사는 미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녀는 쓰러진 병사의 허리춤에서 단검 하나를 뽑아들었다.
“이 빌어먹을 벌레 같은 놈들이!”
호송대 중앙에서 흑룡 기사단장이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는 붉은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제국 무림의 최고 경지에 이른 고수만이 다룰 수 있다는 ‘흑염검법’의 기운이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불꽃 같은 검기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며 반란군 몇 명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크아악!”
검기에 스친 반란군 병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강산의 눈빛이 흔들렸다. 흑룡 기사단장은 단순한 지휘관이 아니었다. 그는 제국 팔황신무의 최고 실력자 중 한 명인 ‘백산’이었다.
“강산! 물러서시오!” 청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백산의 시선이 청아에게 향했다. “건방진 것. 감히 내 호송대를 습격해?”
그의 검이 청아를 향해 번개처럼 날아왔다. ‘섬광검(閃光劍)’! 눈부신 검광이 협곡을 뒤흔들었다. 청아는 직감적으로 위협을 느꼈다. 피할 수 없다면 막아야 한다. 그녀는 손에 쥔 단검을 휘둘러 검광의 흐름을 비틀려 했다.
치이이잉-!
단검과 검기가 부딪히며 귀청을 찢는 마찰음이 발생했다. 청아의 단검이 녹아내리는 듯한 뜨거움을 느끼며 손목에 격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그녀의 몸이 몇 발자국 뒤로 밀려났다.
“네 주제를 알라! 감히 내 앞에서 검을 휘두르다니!”
백산이 다시 검을 치켜들었다. 그의 내공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며 주변의 흙먼지를 흩날렸다. 그 모습은 흡사 전장을 지배하는 악신과도 같았다.
‘안 돼, 시간을 끌 수 없어.’
청아의 시선은 백산 너머, 특별 보급 마차에 고정되어 있었다. 마차 주변에는 강력한 제국 무사들이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다. 저 마차를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녀는 잠깐의 교전으로 백산과의 실력 차이를 명확히 깨달았다. 정면 대결은 자살행위다.
“강산! 마차! 마차를!” 청아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명으로 가득한 전장에서 간신히 전달되었다.
강산은 백산에게 달려들려는 다른 반란군들을 막아섰다. “안 돼! 마차를 노려라!”
하지만 백산은 이미 청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어디서 기어 나온 잡놈인가 했는데… 보통내기가 아니군. 허나, 내 상대는 못 된다.”
백산이 다시 한번 섬광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더욱 강렬한 검기가 청아의 전신을 감쌌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공격.
그 순간, 청아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의 발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바람의 발걸음’이 극한으로 발휘되었다. 몸을 거의 눕히다시피 하여 검기의 정중앙을 스쳐 지나갔다. 검기가 그녀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태웠지만, 치명상은 피했다.
“흥미롭군.” 백산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청아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백산과의 간격이 벌어진 틈을 타, 그녀는 특별 보급 마차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마치 한 마리의 날렵한 사슴처럼, 그녀는 제국 병사들의 허술한 방어를 뚫고 마차에 도달했다.
“멈춰라!” 마차를 지키던 무사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청아의 목적은 그들과의 교전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차의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거대한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젠장!”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도구를 꺼내 자물쇠에 쑤셔 넣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자물쇠를 해제하려던 찰나, 등 뒤에서 섬뜩한 기척이 느껴졌다.
“거기까지다!”
백산의 목소리였다. 검붉은 검기가 그녀의 등 뒤를 향해 쇄도했다. 피할 수 없다. 막을 수도 없다. 이대로라면 등짝이 두 동강 날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줄기 빛이 백산을 향해 날아들었다.
“크윽!”
백산은 급히 검을 돌려 빛을 쳐냈다. 빛은 작은 투창이었다. 투창은 백산의 검기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지만, 그 충격으로 백산의 공격은 흐트러졌다.
“강산!” 청아의 눈에 희미한 희망이 스쳤다.
강산은 다른 반란군들을 이끌고 백산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방패 삼아 육탄 공격을 감행했다. 백산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목숨을 건 몸부림이었다.
그 틈을 타 청아는 온 힘을 다해 자물쇠를 부쉈다. 콰직! 거대한 자물쇠가 마침내 파열음을 내며 부서졌다. 마차의 문이 열리자, 안에서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가득 쌓여 있을 줄 알았던 약재나 식량 대신, 마차 안에는 텅 빈 상자들과 그 위에 얇은 천으로 덮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청아는 천을 걷어냈다.
그 아래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금빛 비단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주머니를 열자, 안에서는 수십 장의 두루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한 기밀 문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제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새벽의 숨결’ 조직원들의 이름과 거점, 그리고 활동 계획이 상세히 기록된 명부였다.
“이럴 수가…”
청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명부가 제국군의 손에 넘어간다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지금껏 쌓아 올린 반란의 불씨는 일순간에 꺼지고 말 것이다.
그 순간, 백산의 검기가 강산을 비롯한 몇몇 반란군을 동시에 베어버리는 소리가 들렸다.
“크아악!”
강산은 피를 토하며 쓰러졌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청아를 향해 있었다. “청아… 네가… 반드시…”
“강산!”
청아는 마차 안의 명부를 쥐었다. 뜨거웠다. 이 명부는 단순한 종이 조각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이자, 희망이자, 절규였다.
“잡았다!”
백산이 다시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의 검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뻗어왔다.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청아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내가 끝내야 해!’
그녀는 명부를 가슴에 품고, 마차 반대편으로 몸을 던졌다. 콰앙! 마차의 뒷문이 검기에 찢겨 나갔다.
청아의 몸은 협곡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피로 물든 동료들의 얼굴과, 분노에 찬 백산의 모습, 그리고 점점 멀어져 가는 협곡의 풍경이었다.
손에 쥔 명부만이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과연 그녀는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살아남아, ‘새벽의 숨결’을 지켜낼 수 있을까?
협곡 아래로 떨어지는 그녀의 비명은, 수송대의 혼란 속에서 사라져 갔다.
**다음 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