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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웹툰 에피소드 대본] 밀실의 잔향 (1)

    **장르:**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미스터리

    **[프롤로그]**

    **1. 컷**
    (어둠이 깔린 낡고 거대한 저택.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져 내리고, 번개가 번쩍일 때마다 저택의 그림자가 기괴하게 춤춘다. 으스스한 분위기.)
    – **내레이션:** 어떤 사건은, 처음부터 풀 수 없는 퍼즐처럼 다가온다. 마치 이 세상의 법칙을 거부하는 듯이.

    **2. 컷**
    (저택 내부. 고풍스러운 복도. 촛불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낡은 마루는 삐걱거린다. 한 노인이 초조한 얼굴로 서재 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얼굴엔 짙은 주름과 함께 불안감이 서려 있다.)
    – **김 노인 (말풍선, 떨리는 목소리):** 회장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으시고…

    **3. 컷**
    (김 노인이 서재 문고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돌려본다. 잠겨 있다. 그는 몇 번 더 문을 두드리지만, 안에서는 침묵만이 돌아올 뿐이다.)
    – **김 노인 (말풍선, 애타는 목소리):**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식사 시간이 한참 지났습니다만…!

    **4. 컷**
    (김 노인의 얼굴 클로즈업. 초조함이 극에 달해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그는 결심한 표정으로 뒤로 물러선다.)

    **5. 컷**
    (김 노인이 낡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서재 문을 향해 몸을 던진다. ‘쾅!’ 하는 둔탁한 소리가 저택 안에 울려 퍼진다.)
    – **효과음:** 콰앙! 퍽!

    **6. 컷**
    (강제로 열린 서재 문 틈새로 보이는 내부. 어둡고 정적이 흐르는 공간. 김 노인의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뜨인다.)
    – **김 노인 (말풍선, 경악):** 으, 으아아악!!!!

    **7. 컷**
    (서재 내부 전경. 고풍스러운 책상과 의자, 벽을 가득 채운 책장과 값비싼 그림들. 그 모든 것 사이로, 붉은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고 있다. 최성호 회장이 책상에 얼굴을 박고 쓰러져 있고, 등에는 피 묻은 레터 나이프가 박혀 있다. 충격적인 비극의 현장.)
    – **내레이션:** 그리고 퍼즐은, 가장 잔혹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냈다.

    **[에피소드 1: 밀실의 잔향]**

    **8. 컷**
    (빗줄기가 쏟아지는 저택 앞마당. 경찰차들의 경광등이 번쩍이고,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빗소리와 뒤섞여 묘한 불협화음을 이룬다.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분주하게 드나들고 있다.)

    **9. 컷**
    (수많은 경찰들 사이로, 한 청년이 우산도 쓰지 않은 채 천천히 저택을 향해 걸어온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과 코트가 빗물에 축축이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다. 주변의 웅성거림은 그에게 닿지 않는 듯, 오직 저택만을 응시한다.)
    – **경찰 1 (말풍선, 귓속말):** 서은우 탐정님 오셨네. 또 저렇게 비를 다 맞으면서…
    – **경찰 2 (말풍선, 귓속말):** 뭐, 워낙 별난 분이니까. 이번 사건이 보통 밀실 살인이 아니라더니, 결국 부르네.

    **10. 컷**
    (서은우, 서재 앞 복도에 도착한다. 그의 앞을 강민준 형사가 한숨을 쉬며 가로막는다.)
    – **강민준 (말풍선, 피곤한 얼굴):** 결국 오셨군요, 서 탐정님. 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아직 공식적으로 요청 드린 게 아닌데도…
    – **서은우 (말풍선, 무표정):** 제 발걸음을 멈출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흥미로운 ‘잔향’이 느껴지는군요.

    **11. 컷**
    (강민준이 서은우를 빤히 보더니, 기가 막히다는 듯 고개를 젓는다.)
    – **강민준 (말풍선, 한숨):** 잔향이라뇨. 이건 그냥 끔찍한 비명과 피비린내, 그리고 시체 썩는 냄새나 다름없다고요. 제발, 오늘은 좀 평범하게 수사하면 안 되겠습니까?
    – **서은우 (말풍선):** 불가능합니다. ‘평범함’은 사건을 가리는 가장 두꺼운 장막이니까요.

    **12. 컷**
    (서재 내부 전경. 과학수사대 요원들이 지문 채취, 혈흔 분석 등 분주하게 움직인다. 붉은색 혈흔이 마루에 크게 퍼져 있고, 시신은 이미 수습된 상태다.)
    – **강민준 (말풍선):** (한숨) 최성호 회장은 어젯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인은 심장에 박힌 레터 나이프에 의한 과다출혈.

    **13. 컷**
    (서재 문 클로즈업. 문고리는 안쪽에서 단단히 잠겨 있고, 빗장까지 걸려 있다. 강민준의 손가락이 잠금쇠를 가리킨다.)
    – **강민준 (말풍선):** 가장 큰 문제는… 보시는 바와 같이, 문이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강제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14. 컷**
    (창문 클로즈업. 낡은 나무 창문에는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안쪽으로 굳게 닫힌 빗장과 잠금쇠가 보인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역시 없다.)
    – **강민준 (말풍선):**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단히 걸쇠가 채워져 있었고, 방충망에도 훼손 흔적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였죠.
    – **서은우 (말풍선):** 흐음… 완벽한 밀실.

    **15. 컷**
    (서은우가 방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는다. 그의 주변으로 희미한 푸른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한 연출. 소리나 빛으로는 감지할 수 없는, 오직 서은우만이 느낄 수 있는 ‘잔향’이 공간에 가득 차 있다.)
    – **서은우 (내레이션/독백):** (피비린내 속에 섞인… 강렬한 분노의 잔향. 절망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승리감의 조각들.)

    **16. 컷**
    (서은우가 천천히 눈을 뜬다. 그의 눈빛은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날카롭고 깊은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 **서은우 (말풍선):** 범인은… 이 방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17. 컷**
    (강민준의 얼굴 클로즈업.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강민준 (말풍선, 믿을 수 없다는 듯):** 네?! 들어오지 않았다뇨? 그럼 대체 누가 회장님을… 범인이 없다는 말입니까?!

    **18. 컷**
    (서은우가 피 묻은 레터 나이프가 놓여 있던 책상 위를 응시한다. 이미 과학수사대에서 수거해 간 상태.)
    – **서은우 (말풍선):** 들어오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들어올 필요가 없었습니다.’

    **19. 컷**
    (서은우가 손을 뻗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어떤 형체를 더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그의 손끝에서 희미하게 푸른 잔광이 일렁인다.)
    – **서은우 (말풍선):** 이 공간에 깊게 새겨진 ‘행위’의 잔향이 선명합니다. 밀폐된 공간에서 죽음이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20. 컷**
    (서은우가 최성호 회장의 시신이 쓰러져 있던 위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 **서은우 (말풍선):** 회장님은 죽음의 순간에도 무언가에 강하게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붙들려 발버둥 치는 것처럼요. 그의 몸을 짓누르던 것은 물리적인 힘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21. 컷**
    (강민준을 포함한 주변 경찰들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들끼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 **경찰 3 (말풍선, 귓속말):** 또 시작됐네. 보이지 않는 손이라니…
    – **경찰 4 (말풍선, 귓속말):** 뭐, 그게 서 탐정님 방식이긴 한데… 이번엔 좀 난해하네.

    **22. 컷**
    (서은우가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본다. 빗물이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며, 외부의 풍경을 일그러뜨린다. 그의 눈빛은 빗물처럼 차갑고도 깊다.)
    – **서은우 (내레이션):**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보이지 않는 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언제나 허점을 품고 있죠. 다만, 그 허점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할 뿐.)

    **23. 컷**
    (서은우의 얼굴 클로즈업. 그의 눈은 확신에 차 있으며,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친다. 빗줄기가 그의 얼굴을 비추며 기묘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 **서은우 (말풍선):** 범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존재했을 뿐입니다. 이제 그 ‘방식’을 찾아낼 차례입니다.

    **[에피소드 1 끝]**

  • 타임슬립 (시간여행)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웹툰 에피소드 대본: 제1화 – 균열의 시작

    **[장면 1]**

    **[패널 1]**
    * **배경:** 현대의 번화한 도시, 낡고 좁은 골목길. 재개발이 멈춘 듯한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그 사이로 빛바랜 간판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 **인물:** 서하준 (20대 후반, 평범한 복장. 조금 지쳐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청년). 그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고 있다.
    * **하준 (내레이션):** 또 월요일. 빌어먹을 직장은 왜 항상 월요일에 시작하는 거지?

    **[패널 2]**
    * **배경:** 하준이 스마트폰 화면을 응시하고 있다. 화면에는 ‘고대 유물 발견! 역사를 뒤흔들 충격적인 진실은?’ 같은 자극적인 기사 제목이 떠 있다.
    * **하준 (내면):** 흥미롭네. 이놈의 세상은 매일매일 새로운 유물이 튀어나와도 변하는 건 하나 없는데.

    **[패널 3]**
    * **배경:** 하준이 걷던 골목 끝에 닫힌 철문과 덩굴이 뒤덮인 낡은 비석 하나가 보인다. 비석에는 희미하게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다. 주변 공기가 살짝 일렁이는 듯한 연출.
    * **하준 (내레이션):** 평소엔 보이지도 않던 곳인데…

    **[패널 4]**
    * **배경:** 하준이 비석에 손을 뻗는 클로즈업. 그의 손끝이 비석에 닿는 순간, 비석에 새겨진 문자들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깜빡인다. 주변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 **SFX:** 찌르르르… (미세한 진동)

    **[패널 5]**
    * **배경:** 푸른빛이 점점 강렬해지며 하준의 몸을 감싸 안는다. 그의 표정은 놀라움과 혼란으로 가득하다. 주변의 낡은 건물들이 일그러지는 듯한 시각 효과.
    * **하준:** 으… 으악! 이게 뭐야?!
    * **SFX:** 콰아앙! (강렬한 빛과 함께 사라지는 효과)

    **[장면 2]**

    **[패널 6]**
    * **배경:** 울창한 숲 속. 하준이 쓰러져 있다.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린다. 그의 옷차림은 현대 복장에서 낡고 거친 삼베 옷으로 변해 있다. (독자가 인식할 수 있도록 살짝 어두운 색감으로)
    * **하준 (눈을 뜨며):** 으음… 머리야…

    **[패널 7]**
    * **배경:** 하준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끝없이 펼쳐진 숲과, 멀리 보이는 낯선 산맥의 풍경. 빌딩 숲은커녕, 인공적인 구조물 하나 보이지 않는다.
    * **하준 (내면, 경악):** 뭐야? 꿈인가? 여긴 어디지? 내가 분명 아까 그 골목에 있었는데…

    **[패널 8]**
    * **배경:** 하준이 자신의 옷차림을 보고 더 경악한다. 너덜너덜한 삼베 옷, 맨발.
    * **하준:** 내… 내 옷은? 스마트폰은? 다 어디 간 거야?! (주변을 허둥지둥 살핀다)

    **[패널 9]**
    * **배경:**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비명 소리. 그리고 쇳소리. 하준이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리는 방향을 응시한다.
    * **SFX:** 비명… 칼날 스치는 소리…

    **[패널 10]**
    * **배경:** 하준이 발걸음을 재촉해 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숲 끝자락에 폐허가 된 듯한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흙담은 무너져 있고, 곳곳에 불에 탄 흔적이 역력하다.
    * **하준 (내면):** 설마…

    **[장면 3]**

    **[패널 11]**
    * **배경:** 마을 중앙. ‘흑룡 제국’의 군사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다. 검은 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병사들이 채찍을 휘두르며 주민들을 구타하고, 수확한 곡식을 마차에 싣고 있다. 주민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쓰러져 있거나 저항하지 못하고 있다.
    * **흑룡군 병사 1:** 이 천한 것들! 황제 폐하의 곡식을 감히 숨겨? 당장 내놔!
    * **마을 주민 (노인):** 더 이상 드릴 게 없습니다요… 며칠째 굶고 있는데…

    **[패널 12]**
    * **배경:** 병사 1이 노인을 발로 차 쓰러뜨린다. 그 옆에서 어린 아이가 겁에 질려 울고 있다.
    * **흑룡군 병사 1:** 시끄럽다! 황제의 은혜에 감사할 줄 모르고 감히 헛소리를 지껄여? 당장 곡간을 뒤져라!

    **[패널 13]**
    * **배경:** 하준이 숲 속에 숨어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눈은 분노와 충격으로 흔들린다.
    * **하준 (내면):** 이건… 미친 짓이야. 영화 촬영인가? 아니… 이 현실감은…

    **[패널 14]**
    * **배경:** 한 병사가 한쪽 팔이 없는 건장한 남자(강백, 30대 후반)의 아내(또는 여동생)를 밀치고 아이의 젖을 빼앗아 던진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린다.
    * **강백:** 이… 이 개만도 못한 놈들! (분노에 찬 얼굴로 주먹을 쥐지만, 한쪽 팔이 없어 제대로 된 저항조차 불가능하다)

    **[패널 15]**
    * **배경:** 병사가 비웃으며 강백의 아내의 머리채를 잡는다.
    * **흑룡군 병사 2:** 감히 황제의 군사에게 대들어? 네놈이 뭘 할 수 있는데, 팔 하나 없는 불구자 주제에! 이 년을 끌고 가서 본때를 보여줘라!
    * **강백의 아내:** 으악! 놓아라!

    **[패널 16]**
    * **배경:** 하준의 주먹이 분노로 꽉 쥐어진다. 그의 눈동자에 형용할 수 없는 불꽃이 타오른다. 현대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잔인함이 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 **하준 (내면):** 안 돼… 이건 아니야!

    **[장면 4]**

    **[패널 17]**
    * **배경:** 하준이 숲에서 뛰쳐나와 병사들에게 달려든다. 그의 얼굴은 흙먼지로 얼룩져 있지만, 결의에 찬 눈빛이다.
    * **하준:** 이 비겁한 놈들! 당장 그만둬!
    * **SFX:** 타아아악! (하준이 뛰어나가는 소리)

    **[패널 18]**
    * **배경:** 병사들이 갑작스러운 하준의 등장에 당황하여 그를 바라본다. 하준은 병사 중 한 명을 향해 돌진한다.
    * **흑룡군 병사 3:** 뭐야, 이 미친놈은?!

    **[패널 19]**
    * **배경:** 하준이 병사 3에게 어설픈 주먹을 휘두르지만, 갑옷을 입은 병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병사는 간단히 하준을 제압하고 바닥에 내던진다.
    * **SFX:** 퍽! 쿵!
    * **하준:** 컥…

    **[패널 20]**
    * **배경:** 병사 3이 하준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 올린다. 하준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다.
    * **흑룡군 병사 3:** 어디서 굴러먹던 개자식이야? 이놈도 황제께 불경을 저지른 죄로 다스려야겠군!
    * **강백:** (놀란 얼굴로 하준을 본다) 저 자는…

    **[패널 21]**
    * **배경:** 병사들이 하준에게 칼을 겨누려던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가 병사 3의 투구를 맞춘다.
    * **SFX:** 쨍그랑!
    * **흑룡군 병사 3:** 으악! 누가…!

    **[패널 22]**
    * **배경:** 혼란에 빠진 병사들 뒤로, 숲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 병사들을 기습한다. 그들은 거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자들이다. 강백 역시 그들을 보고 놀란다.
    * **정체불명의 인물 1:** 동포들을 괴롭히는 개돼지들을 그냥 둘 순 없지!
    * **SFX:** 쉬익! (화살 스치는 소리) 쨍강! (칼 부딪히는 소리)

    **[패널 23]**
    * **배경:** 순식간에 난장판이 된 마을. 하준은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때 강백이 그에게 다가와 그를 부축한다.
    * **강백:** 괜찮소?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하오!

    **[장면 5]**

    **[패널 24]**
    * **배경:** 숲 속 깊은 곳에 숨겨진 동굴. 동굴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앉아 불을 쬐고 있다. 하준은 강백의 부축을 받아 동굴 안으로 들어선다. 동굴의 공기는 차갑고 습하다.
    * **하준 (내면):** 대체… 여기가 어디지? 이 사람들이 날 살려준 건가?

    **[패널 25]**
    * **배경:** 강백이 불 앞에서 하준에게 약초를 건넨다. 하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약초를 받아든다.
    * **강백:** 미약하나마 몸을 추스르시오. 당신이 갑자기 나타나 병사들을 교란시킨 덕에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었소.
    * **하준:** (목을 가다듬으며) 고맙습니다. 그런데… 여긴 어디고, 당신들은…

    **[패널 26]**
    * **배경:** 강백이 불꽃을 응시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 **강백:** 여긴… 흑룡 제국의 압제에 맞서 싸우는 이름 없는 자들의 은신처요. 나는 강백이라고 하오.
    * **하준:** 흑룡 제국… (그는 어렴풋이 역사 수업에서 들었던 이름 하나를 떠올린다. 그러나 그 역사는 이렇게 처참하지 않았다.)

    **[패널 27]**
    * **배경:** 하준이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현실성이 너무 떨어진다.
    * **하준:** 저는…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아주 먼 미래에서 왔습니다. 이 시대의 역사를 대강은 알고 있지만, 제가 아는 것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이… 이 흑룡 제국은… 이렇게 폭력적이지 않았던 걸로…
    * **강백:** (피식 웃으며) 먼 미래에서 오셨다고? 그럼 저 달이 두 개로 보인다는 말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이야기로군요.

    **[패널 28]**
    * **배경:** 하준이 자신의 말을 믿지 않는 강백에게 답답함을 느낀다. 하지만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하준 (내면):** 그래, 내가 나라도 안 믿겠지. 하지만 내가 본 건… 정말이야. 저들의 폭정은 내가 아는 역사와는 달라. 뭔가… 비틀렸어.

    **[패널 29]**
    * **배경:** 강백이 동굴 밖 어둠을 응시하며 말한다.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절망감이 묻어 있다.
    * **강백:** 우리가 아는 흑룡 제국은… 지옥 그 자체요. 황제의 탐욕과 장군 갈륜의 잔학함 아래, 백성들의 삶은 개돼지만도 못하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낼 뿐이오.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버텨낼 힘도 없소.
    * **하준 (내면):** 갈륜… 저 이름은 내가 알기로… 분명 황제의 측근이었지만, 이 정도로 전면에 나서서 학살을 주도하진 않았을 텐데. 역사가… 변한 건가? 아니면 내가 아는 역사가 틀린 건가?

    **[패널 30]**
    * **배경:** 하준의 얼굴 클로즈업. 그는 강백과 마을 사람들의 굶주린 얼굴, 그리고 흑룡군 병사들의 잔학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의 눈빛은 다시 한번 흔들리지만, 이내 강한 결의로 바뀐다.
    * **하준 (내면):** 미래에서 왔다고? 그래, 좋아. 그럼 미래에서 온 내가… 이 미래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들이… 어쩌면…

    **[패널 31]**
    * **배경:** 하준이 불꽃을 멍하니 응시한다. 그의 눈동자 속에서 어떤 깨달음과 함께 새로운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연출.
    * **하준 (내면):**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이 비틀린 역사를… 바로잡아야 해.

    **[패널 32]**
    * **배경:** 강백이 하준을 바라본다. 하준의 눈빛에서 이전의 혼란이 사라지고, 알 수 없는 깊은 의지가 엿보인다.
    * **강백:**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오?
    * **하준 (강백을 바라보며, 조용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강백님… 제 말은 믿지 못하겠지만, 저는 저들이 원하는 미래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을 저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 **SFX:** (고요하게 타오르는 불꽃 소리)

    **[에피소드 종료]**

  • 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 잿빛 새벽의 그림자

    숨 쉬는 것조차 사치였다. 폐허가 된 도시의 새벽 공기는 먼지와 재, 그리고 썩어가는 시체의 달큰한 악취로 가득했다. 지아는 낡은 운동화 밑창이 닳아 구멍 난 것을 애써 무시하며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햇빛은 빌딩 숲에 가로막혀 겨우 꼭대기만을 비출 뿐, 그녀가 걷는 거리는 영원한 황혼처럼 어둑했다.

    옆구리에 찬 식칼의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녹슨 칼날 위로 비치는 핏자국은 그녀가 지나온 지옥 같은 시간들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었다. 어제, 간신히 찾은 통조림 한 조각을 삼키면서도 목구멍이 타는 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오늘은 반드시 마실 물을 찾아야 했다.

    “흐읍… 큭…”

    목에서 끓어오르는 기침을 억눌렀다. 작은 소리 하나도 죽음을 부를 수 있는 세상이었다. 이 거대한 무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규칙은, 소리 내지 않는 것. 눈에 띄지 않는 것. 그리고,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

    낡은 상점 간판이 바람에 흔들리며 삐걱거렸다. 유리창은 깨져나가고, 내부에는 약탈당한 흔적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아의 눈은 냉정하게 움직였다. 어쩌면…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남아 있을지 모른다. 구석진 진열장 뒤편, 혹은 계산대 아래. 누군가 급하게 도망치면서 놓친 생존품이 있을 수도 있었다.

    어둠 속을 더듬어 상점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들이 신발 밑창에 밟히며 불쾌한 소리를 냈다. 지아는 몸을 한껏 숙여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코를 찌르는 곰팡이 냄새와 묘하게 섞인 쇠 비린내가 역겨웠다.

    “젠장…”

    낮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없었다. 선반은 텅 비었고, 진열대는 부서져 나뒹굴었다. 이젠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다는 절망감이 심장을 짓눌렀다. 이대로라면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결국은 끝을 맞이하게 될 테고.

    그때였다.

    작은 진열대 뒤편, 어둠이 깊게 드리워진 곳에서 희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지아의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식칼을 꽉 쥐고 자세를 낮췄다. 숨소리마저 멈췄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반적인 ‘그것들’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인간일까? 아니면, 변이체?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며 진열대 끝에 다다랐다.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확인하려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형체였다.

    핏기 없는 피부는 창백하다 못해 푸르스름했고, 앙상한 팔다리에는 검푸른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찢어진 옷은 너덜거렸지만, 뼈와 가죽만 남은 다른 좀비들과는 달랐다. 여전히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생기 없는 회색빛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고, 메마른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 끔찍한 상처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섬뜩했다.

    일반적인 좀비라면, 이미 그녀의 존재를 감지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끔찍한 신음과 함께. 그러나 그는 미동도 없었다. 마치 조각상처럼, 그렇게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지아는 숨을 참고 그를 관찰했다. 이것은 일반적인 ‘변이체’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류의 변이체를 봐왔지만, 이토록 정적인 존재는 처음이었다. 위협적인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이한 고요함만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그 순간, 지아가 숨죽여 몸을 숨기고 있던 진열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기울었다. 균형을 잃은 지아가 넘어지면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콰장창!**

    그 소리에 웅크리고 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눈동자가 느릿하게 지아를 향했다. 지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본능적으로 식칼을 치켜들었다.

    “크르륵…!”

    그러나 그가 내는 소리는 익숙한 좀비의 신음이 아니었다.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혹은… 고통에 찬 신음 같기도 했다. 그의 시선은 지아의 얼굴에 박혔다. 다른 좀비들처럼 굶주린 광기가 아니라, 그저… 텅 빈 호기심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지아는 칼끝을 떨었다. 이대로 죽일까? 아니, 어쩌면…

    그때, 멀리서부터 익숙한 끔찍한 소음이 들려왔다.

    “으어어어…! 으아아아아!”

    떼 지어 몰려오는 ‘그것들’의 울음소리였다. 수십, 어쩌면 수백 마리가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아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망했다. 이 상점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았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상점 안에는 그녀와… 그리고 저 이상한 존재만이 있었다.

    그녀가 도망치려는 순간, 웅크리고 있던 그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키는 예상보다 훨씬 컸고, 마른 몸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를 위압감이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지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 상점 입구로 향했다.

    “크르륵…!”

    무언가 긁히는 듯한 소리를 내며, 그가 천천히 발을 옮겼다. 지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는 지아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아니었다. 상점 입구, 즉 ‘그것들’이 몰려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 서…!”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살하려는 건가? 아니면…

    그의 움직임은 느려 보였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묘한 속도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내 그는 상점 입구에 다다랐다. 거친 숨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쿵! 쿵! 쿵!**

    마침내,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유리창을 깨고 상점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썩어가는 육체에서는 역겨운 악취가 풍겼고, 굶주린 눈은 피와 살점을 갈구하는 광기로 번들거렸다.

    그들은 입구에 서 있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들었다.

    지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제 끝인가? 저 이상한 존재는 좀비들에게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리고 다음은 그녀의 차례였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아니, 피할 필요가 없었다. 끔찍한 신음과 함께 달려드는 좀비들 사이로, 그의 몸이 마치 그림자처럼 스며들었다. 순간적인 움직임이었다. 육안으로는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유려했다.

    그는 맨손이었다.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손짓 한 번, 발차기 한 번에 좀비들의 몸이 종잇장처럼 찢겨나가거나, 목이 꺾였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지만, 그 피는 붉지 않았다. 검고 탁한 피가 그의 몸을 적셨다.

    지아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봤다. 그건 싸움이 아니었다. 학살이었다. 굶주린 짐승처럼 달려드는 좀비들이었지만, 그에겐 닿을 수조차 없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잘 짜인 무용 같았다. 우아하고, 치명적이었다.

    불과 몇 분 만에, 상점 안은 끔찍한 지옥으로 변했다. 수십 마리의 좀비 시체가 사방에 나뒹굴었다. 검은 피 웅덩이가 고였고, 썩은 살점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그는 서 있었다.

    찢어진 옷자락에 검은 피가 낭자했지만, 그의 창백한 피부에는 단 하나의 상처도 없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웅크리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마치 폭풍이 지나간 자리를 응시하는 거대한 조각상 같았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다시 지아를 향했다.

    지아는 식칼을 든 채로 굳어 있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하지만 그 공포 속에는 이해할 수 없는 경외감과… 묘한 호기심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대체 무엇인가? 왜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나? 왜 다른 좀비들을 학살했나?

    그의 회색빛 눈동자가 지아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거기에는 이제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았다. 싸움이 끝난 후의 공허함, 혹은 무감각함.

    그때, 지아는 그의 눈동자 가장자리에서 아주 미세하게, 핏빛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착각이었을까? 아니, 분명히…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천천히 지아에게 다가왔다.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움직임이었다. 지아는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발이 땅에 붙어버린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텅 빈 시선으로 지아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감정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아는 그의 시선 속에서 어렴풋이 무언가를 느꼈다. 그것은 마치… 잊혀진 기억을 더듬는 듯한,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었다.

    그의 손이 느리게 올라왔다. 지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인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차가운 그의 손가락이 지아의 뺨에 닿았을 때, 그녀는 얼어붙었다. 끔찍한 고통은 없었다. 오히려…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은 부드럽게 지아의 뺨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아주 희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 아…”

    인간의 언어였다. 메마른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그녀의 이름이었다. 지아는 눈을 번쩍 떴다.

    “…누구… 니?”

    그의 회색빛 눈동자에 다시 한번 핏빛 섬광이 스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지아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가 힘없이 비틀거렸다.

    “어…?”

    지아는 반사적으로 그의 몸을 지탱했다. 그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차갑고 가벼웠다. 찢어진 옷 사이로 보이는 그의 살갗은 얼음처럼 냉정했다. 그의 몸이 서서히 기울어지며, 지아의 품에 쓰러졌다.

    그의 눈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텅 비어있지 않았다. 거기에는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의 끝에는, 지아는 직감했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외로움이 있었다.

    지아는 품에 안긴 차가운 몸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숨소리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살아있었다. 다른 방식이었지만, 분명히.

    식칼을 든 손이 힘없이 늘어뜨려졌다. 죽여야 한다고, 본능이 속삭였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재앙의 근원이며, 살아있는 시체일 뿐이다.

    하지만 지아의 눈은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의 이름을 불렀던 그 존재의 텅 빈 눈동자 속에서, 지아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잊고 있었던, 인간적인 따뜻함과 연민이었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그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차갑고 푸석한 머리카락이었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금기를 지금, 그녀는 깨트려버린 것만 같았다.

    잿빛 새벽이 붉게 물들어가는 가운데, 지아는 숨죽인 채 그녀의 품에 안긴 그를 안고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직감했다.

    이제, 그녀의 지옥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깊은 곳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그의 이름은 없었다. 지아는 그를 ‘제로’라고 불렀다.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리고 이 만남은, 종족을 뛰어넘는 금지된 사랑의 서막이었다.

  • 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23화: 흑룡산장의 검은 비**

    칠흑 같은 어둠이 흑룡산장을 집어삼켰다. 달빛조차 두터운 구름 뒤에 숨어버린 밤, 검천명은 피 묻은 검을 든 채 고요히 서 있었다. 산장의 곳곳에서 짧은 비명과 둔탁한 소리가 멎은 지 오래. 핏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의 발밑에는 수십의 산장 무사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나뒹굴었다. 한때 강호를 호령하던 흑룡산장이었으나, 그의 서늘한 검날 앞에서는 그저 쓰러져갈 벽돌에 불과했다.

    “남궁진… 나타나라.”

    낮게 깔린 목소리가 산장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다. 그 목소리에는 분노도, 슬픔도 아닌, 오직 뼈를 깎는 듯한 사무친 한기만이 서려 있었다. 그의 눈은 불타는 숯처럼 검붉게 빛났다. 그 빛 속에는 한때 자신을 믿고 따랐던 형제와도 같았던 백연호, 그리고 그를 배신한 모든 이들에 대한 처절한 복수심이 가득했다.

    거대한 본채의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짙은 향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내 육중한 발소리와 함께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검천명의 등장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표정을 굳혔다. 남궁진. 청운문(靑雲門) 시절, 검천명의 친우이자 백연호의 오른팔로 활약했던 검술의 고수였다.

    “검… 천명… 네놈이 아직 살아있을 줄이야!”

    남궁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경악과 더불어 섬뜩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검천명이 분명 십 년 전 ‘그날’ 비명횡사했으리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선 그림자는 분명 검천명이었다. 아니, 검천명이었던 자의 훨씬 더 어둡고 무시무시한 그림자였다.

    검천명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검, ‘멸혼(滅魂)’을 고쳐 잡았다. 검신에 새겨진 붉은 용무늬가 희미하게 빛나는 듯했다.

    “나의 안위가 그리 궁금했던가, 남궁진.”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차분하여 오히려 소름이 끼쳤다.
    “걱정 마라. 널 찾아 헤맨 지난 십 년은 지옥보다 더 고통스러웠으니. 그 고통이 이제 네게 돌아갈 차례다.”

    “헛소리!” 남궁진은 코웃음을 쳤다. “네놈의 어리석음이 불러온 비극을 어찌 우리에게 돌리려 하는가? 백사형께서는 그저 강호를 위한 대의를 행하셨을 뿐!”

    “대의?” 검천명의 입꼬리가 싸늘하게 올라갔다. “내 아비의 목을 베고, 내 누이의 심장을 꿰뚫으며 얻은 대의란 말이냐? 네놈은 그 대의라는 미명 아래, 나의 등을 칼로 찌른 가장 비겁한 배신자 중 하나다.”

    그의 눈빛이 마치 얼어붙은 강물처럼 차갑게 식었다. 남궁진은 순간 움찔했다. 검천명의 눈 속에 담긴 증오가 너무나도 깊어, 차마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네놈은 그날, 백연호와 함께 나를 함정에 빠뜨리고,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지.” 검천명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울림은 천둥과 같았다. “나를 죽여서라도 백연호의 야욕을 막으려던 나의 마지막 시도마저 비웃음으로 만들었던 너의 얼굴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잊지 않았다, 남궁진.”

    남궁진은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았다. 변명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도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했다. 그의 얼굴에는 일말의 죄책감 대신, 검천명에 대한 불편한 적개심이 떠올랐다.

    “흥! 네놈이 살아 돌아왔다 한들, 십 년 전의 나약한 검천명일 줄 아느냐! 감히 이곳 흑룡산장에 피바람을 몰고 오려 한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남궁진이 허리춤의 보검을 뽑아 들었다. 검집에서 뽑혀 나온 검날이 달빛 없는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났다. 그의 내공이 폭발하며 주변의 낙엽들이 회오리쳤다. 그는 과거 청운문의 ‘매화검법(梅花劍法)’을 가장 화려하고 강력하게 구사하는 자 중 하나였다.

    “매화십이식(梅花十二式)!”

    남궁진이 선수를 쳤다. 그의 검이 푸른 매화꽃잎처럼 사방으로 흩뿌려지며 검천명을 향해 쇄도했다. 검 한 자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십 개의 검풍이 그의 전신을 노렸다. 매화검법은 공격과 방어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절묘한 검법으로, 과거에는 검천명조차도 칭찬을 아끼지 않던 무예였다.

    그러나 검천명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십 년의 세월은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렸지만, 동시에 그 나락에서 기어오를 힘을 주었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고, 세상의 모든 빛과 희망을 거부한 채 오직 복수만을 위한 검법을 갈고 닦았다.

    “사(邪)를 깨닫지 못한 채, 정(正)의 검만을 고집하는 네놈은 이미 나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검천명의 입술에서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의 멸혼이 마치 살아있는 용처럼 꿈틀거렸다. 남궁진의 매화 검풍이 검천명의 몸에 닿기 직전, 멸혼이 한 줄기 검은 그림자를 그리며 튕겨져 나왔다.

    콰아앙!

    검과 검이 부딪히는 굉음이 산장을 뒤흔들었다. 남궁진의 매화 검풍이 마치 허공에 뿌려진 잉크처럼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그 반동으로 남궁진의 몸이 뒤로 크게 휘청거렸다.

    “이… 이럴 수가!” 남궁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매화검법이 이토록 쉽게 파훼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네놈의 매화는 이제 시들었다.”

    검천명의 멸혼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이번에는 한 줄기 빛조차 허용하지 않는 어둠처럼, 매서운 속도로 남궁진의 심장을 노렸다. 그 속도는 인간의 눈으로 따라잡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남궁진은 본능적으로 검을 들어 막았지만, 멸혼의 검세는 그가 아는 모든 검리를 초월해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악몽처럼, 검천명의 검은 남궁진의 방어를 꿰뚫고 지나갔다.

    챙! 철컹!

    남궁진의 보검이 그의 손에서 튕겨져 나갔다. 검날은 두 동강이 나 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멸혼의 검끝이 남궁진의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핏방울이 터져 나오며 어둠 속에 흩뿌려졌다.

    남궁진은 자신의 목덜미에서 느껴지는 따스한 피의 감각에 허둥지둥 손을 가져갔다. 그의 얼굴은 죽음의 공포로 하얗게 질렸다.

    “크헉…!”

    검천명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검을 뒤로 빼더니, 남궁진의 명치를 강타했다. 텅 빈 소리와 함께 남궁진의 몸이 날아갔다. 수십 척을 날아간 그는 본채의 기둥에 등을 부딪히며 피를 토했다.

    “네놈의 심장이 멎는 순간에도, 너는 백연호의 이름을 중얼거리겠지.” 검천명이 한 걸음, 한 걸음 남궁진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순간, 네놈의 영혼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남궁진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검천명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이미 체념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그는 패배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십 년 전의 검천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 자리에는 오직 복수의 화신,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악귀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쿨럭… 검… 천명…!” 남궁진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그날은… 백사형께서… 백사형께서 진정… 강호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명분?” 검천명의 검끝이 남궁진의 목에 닿았다. “그 명분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를 흘렸는지, 네놈은 아는가? 아니, 네놈이 아는 것은 그저 백연호의 야망을 위한 발판이었을 뿐.”

    남궁진의 눈에 희미한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마지막 발악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한 마디를 뱉어냈다.

    “백… 백사형께서는… 대… 대해의 보물… 삼라만상진경(森羅萬象眞經)을 손에 넣어… 강호 전체를… 장악하려 하셨다…! 이제 그 계획은… 거의… 완성 단계에… 크헉!”

    남궁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천명의 검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의 눈은 허공을 향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검천명은 멸혼을 거두었다. 남궁진의 시신에서 피가 솟구쳐 나와 바닥을 적셨다. 하지만 검천명의 얼굴에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는 그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남궁진의 마지막 말을 되새길 뿐이었다.

    _삼라만상진경… 대… 대해의 보물…_

    그것은 강호에 전해지는 전설 속의 무공 비급이었다. 모든 무예를 아우르고, 심지어는 천지의 이치를 깨달아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는… 실존 여부조차 불분명했던 환상의 비급. 백연호가 그것을 손에 넣으려 했다니! 그리고 그 계획이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니!

    검천명의 심장이 차갑게 조여왔다. 백연호의 야욕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위험한 것이었음이 분명했다. 단순한 강호 제패를 넘어선, 천지 개벽을 꿈꾸는 수준의 망상.

    그의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 남궁진의 죽음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이제 백연호의 거대한 그림자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백연호… 네놈의 어둠이 아무리 깊다 한들… 내 검으로 그 어둠을 갈라놓을 것이다.”

    검천명의 중얼거림이 핏비린내 가득한 흑룡산장을 잠식했다. 이제 그의 복수는 개인적인 증오를 넘어, 강호 전체의 운명이 걸린 거대한 싸움으로 번지고 있었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삼라만상진경의 행방을 좇아 백연호의 심장부에 더 깊이 파고들어야만 했다.

    어둠 속에서 검천명의 그림자가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가 떠난 흑룡산장에는 오직 죽음과 피, 그리고 광기 어린 복수의 그림자만이 남아, 검은 비처럼 차갑게 내리고 있었다.

  • 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Chapter 1: 새벽 3시, 이상한 방문객**

    도시의 불빛은 밤이 깊어질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법이다. 스물여섯, 서진우는 늘 그 불빛 속에서 자신만의 밤을 쌓아 올렸다. 그의 공간은 서울 외곽의 낡은 오피스텔 7층. 창밖으로는 희미하게 고가도로의 불빛이 이어졌고, 안으로는 그의 열정과 함께 너저분하게 널린 공구들과 전자 부품들이 그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오늘도 그는 책상에 코를 박고 있었다. 삐딱하게 걸친 안경 너머로 작은 회로 기판 위를 정교하게 움직이는 납땜 인두가 위태롭게 빛났다. 시계는 이미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거실 벽걸이 에어컨의 희미한 냉방 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리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복잡한 회로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며칠째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그를 괴롭혔다. 그가 개발 중인 소형 유인 드론, 코드명 ‘천둥새’는 아직 자율 비행 알고리즘에서 치명적인 결함을 보였다.

    “젠장, 또 오류야?”

    진우는 작게 중얼거리며 손에 들고 있던 펜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 쨍그랑, 금속과 플라스틱이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그 순간이었다. 책상 모서리에 놓여있던 작은 드라이버 세트가 ‘딸각’ 소리를 내며 제 스스로 옆으로 한 뼘 정도 밀려났다.

    진우는 눈을 비볐다.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회로도에 집중했다. 하지만 곧 어딘가 불편한 기시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분명, 저 드라이버 세트는 자신이 방금 펜을 던지면서 흔들렸거나, 아니면 잠시 정신이 몽롱했던 탓이리라.

    “하아… 역시 밤샘은 몸에 안 좋아.”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은 어두웠지만,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도시의 불빛이 희미한 윤곽을 만들었다.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 안으로 차가운 액체가 넘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때였다.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던 액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미세하게 기울었다. 진우는 음료수를 마시던 동작을 멈췄다. 저 액자는 그가 이사 온 이래 한 번도 움직인 적이 없었다. 못을 단단히 박아둔 탓에 웬만한 지진에도 끄떡없을 거라 확신했다.

    “…뭐지?”

    진우는 천천히 액자 쪽으로 걸어갔다. 액자는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 아래로 기울어져 있었다. 누가 건드린 흔적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액자를 똑바로 고쳐 걸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액자는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음료수를 마시려는데, 이번에는 주방 선반에 놓여있던 유리컵 하나가 ‘덜그럭’ 소리를 내며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밤의 정적이 깨지는 섬뜩한 소리였다. 진우는 얼어붙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가 침입했나? 아니, 문은 잠겨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봤지만, 보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컵의 잔해들만이 바닥에 흩어져 섬뜩한 경고처럼 빛나고 있었다.

    “누… 누구 있어?”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목소리가 벽에 부딪혀 허공으로 사라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서둘러 부엌 조명을 켰다. 환한 빛이 쏟아져 내리자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 깨진 유리 파편을 치우기 위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왔다.

    유리 파편을 쓸어 담으려 몸을 굽힌 순간, 뒤에서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작업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 닫혀 있었던 문이었다. 문은 낡았지만, 헐겁지 않았다. 게다가 열린 정도가 마치 누군가 발로 걷어찬 것처럼 활짝 젖혀져 있었다.

    진우는 빗자루를 떨어뜨릴 뻔했다.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감쌌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그는 작업실 문이 열린 채로 자신의 책상을 응시했다. 책상 위, 그가 아끼던 소형 유인 드론 ‘천둥새’의 프로토타입이 균형을 잃고 한쪽 날개가 부러진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누군가 고의로 망가뜨린 것처럼 보였다.

    진우는 망연자실했다. 몇 달간 밤잠 설쳐가며 만든 프로젝트였다. 그는 조심스럽게 작업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심장이 발소리에 맞춰 쿵, 쿵, 하고 울렸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작업실은 차분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가 쓰러진 ‘천둥새’에게 다가가 손을 뻗으려는 순간이었다.

    ‘지이잉… 지지직!’

    갑자기 작업실 전등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형광등은 거의 터질 듯한 소리를 내며 불꽃을 튀겼다. 눈앞이 번쩍거렸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지지지직! 쾅!’

    마침내 전등 하나가 폭발하듯 터져 버렸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작업실은 더욱 어두워졌다. 남아있던 전등마저도 미약하게 깜빡일 뿐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확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등 뒤에 서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온몸의 털이 다시 한번 곤두섰다. 그는 공포에 질려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작업실 한구석, 그의 공구 상자가 놓여있던 자리에서 묵직한 소형 로봇 팔이 흔들림 없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것은 진우가 과거에 개발하다 중단했던, 무거운 부품을 정교하게 들어 올리는 데 사용될 예정이었던 산업용 로봇 팔의 축소형이었다. 은색의 차가운 금속 표면은 희미한 잔광에도 번들거렸다.

    그 로봇 팔은 마치 어떤 의지를 가진 듯,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손가락, 아니, 집게를 펼쳤다 오므리기를 반복했다. 그 동작이 마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보였다.

    진우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은 현실이 아니었다. 환각이어야 했다. 그러나 눈앞의 로봇 팔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공중에 떠 있었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는, 로봇 팔이 서서히 진우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멈추지 않고. 마치 그를 ‘붙잡기’ 위해서라도 하는 것처럼. 진우는 바닥에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 없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오… 오지 마…!”

    그는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로봇 팔의 차가운 금속 집게가 그의 얼굴을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멈춰 섰다. 마치 그를 빤히 응시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천둥새’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삐이이이… 삐빅!… 삐이이이익!’

    부서진 드론에서 이상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오작동하는 기계음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알리려는 듯한 기묘한 신호 같기도 했다. 그 소리에 로봇 팔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리고는 전등이 다시 한번 격렬하게 깜빡였다.

    진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 깜빡이는 불빛 사이로, 로봇 팔의 금속 표면에 아주 희미하게, 파란색 글자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경고: 침입… 감지… 비…상….]

    글자들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진우는 그것이 단순한 잔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로봇 팔이 내뿜는 섬광이 아니었다. 마치 팔 자체가 어떤 정보를 발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로봇 팔이 진우에게서 멀어지더니, 그의 책상에 놓여있던 그의 태블릿 PC를 향해 돌진했다.

    ‘탁!’

    로봇 팔의 집게가 태블릿 PC를 거칠게 잡아챘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태블릿 화면을 진우에게 보이게 돌렸다.

    [정체 불명… 존재… 접근… 시스템… 오염… 방어… 모드… 전환… 필요.]

    화면에는 방금 로봇 팔에서 본 것과 같은 파란색 글자들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 그것은 기계적인, 그러나 절박한 경고 메시지였다.

    진우는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폴터가이스트 현상인가? 아니, 기계가 스스로 움직이며 경고 메시지를 띄운다고? 그의 상식을 완전히 벗어난 일이었다.

    로봇 팔은 태블릿을 든 채로 허공에 멈춰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천둥새’가 있던 자리에서 섬뜩한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삐이이이익! 시스템 오버로드! 위험! 위험!’

    경고음과 함께 작업실의 모든 전등이 동시에 터져 버렸다.

    콰아앙!

    작업실은 순식간에 암흑에 잠겼다. 찢어지는 듯한 기계음만이 공포스러운 침묵을 갈랐다. 진우는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오직 그의 귀에 맴도는, 기계가 발산하는 절박한 경고음과, 차가운 금속 로봇 팔의 존재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것은 단순히 귀신 들린 현상이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에 찾아온 것은, 예측 불가능한 기계적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이제 그에게 경고를 넘어선 무엇인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의 근육을 긴장시켰다.
    그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 에픽 하이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제1화. 망각의 속삭임

    카인은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아파왔다. 폐허가 된 고대 도시, 모두가 ‘망각의 심장’이라 부르며 가까이하길 꺼리는 저주받은 땅. 그곳의 퀴퀴한 흙먼지와 부패한 냄새가 섞인 공기를 허겁지겁 들이마셨다. 젠장, 더 이상은…

    그의 등 뒤에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묵직한 발굽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포효, 그리고 섬뜩하게 날아드는 추적 마법의 휘파람 소리. 그저 굶주린 들짐승들이 아니었다. 분명, 그들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고, 잔혹할 정도로 영리한 ‘사냥꾼’들이었다.

    몸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다리가 천근만근, 폐는 터져버릴 것 같았다. 어둠이 짙게 깔린 황혼 속에서, 고대 유적의 무너진 벽들은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 그림자 너머에, 사냥꾼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젠장!”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을 헛디뎠다. 몸이 기우뚱하며 그대로 가시 덤불 속으로 고꾸라졌다. 팔뚝에 날카로운 가시에 긁힌 길고 붉은 상처가 새로이 생겨났지만, 그는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지금은 아픔 따위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사방이 온통 미로 같았다. 넝쿨에 뒤덮인 돌기둥들이 숲처럼 솟아있고, 무너진 건축물들의 잔해가 길을 막고 있었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하지? 망각의 심장에 발을 들인 것이 최악의 실수였다. 호기심이 부른 참사였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무너진 아치형 입구 뒤에 숨겨진,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좁은 틈새였다. 간신히 몸을 욱여넣어 비집고 들어가자, 거친 돌벽이 피부를 긁어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으며 좁은 통로를 따라 나아갔다.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고대의 썩은 향이 코를 찔렀다.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사냥꾼들의 발길이 닿지 않을 곳이리라.

    얼마나 헤매었을까. 통로는 갑자기 넓게 터져 나오며 원형의 거대한 공간으로 이어졌다. 머리 위, 돔형 천장의 뻥 뚫린 구멍을 통해 희미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들어온 달빛은 공기 중에 부유하는 먼지 알갱이들을 신비롭게 비췄다.

    방의 벽면은 정교하지만 색이 바랜 조각들로 가득했다. 하늘의 별자리, 그리고 카인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묘한 형상의 존재들이 새겨져 있었다. 어쩐지 모를 불편하고 압도적인 기운이 온 방을 채우고 있었다.

    방의 중앙에는, 단이 올려진 제단 위에 놓인 검은 물체가 눈에 띄었다. 그의 팔뚝만 한 크기의 날카로운 조각이었다. 마치 흑요석 같기도, 아니면 그보다 더 깊은 심연의 빛을 담은 듯한 조각이었다. 달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빛마저 빨아들이는 듯했다. 조각의 중심부에서는 아주 미세하게,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의 고동이 느껴졌다.

    *이건 대체 뭐지?*

    카인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조각 주변의 공기는 묘하게 따뜻했고, 소리 없는 에너지가 웅웅거리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그는 손을 뻗었다. 차갑고 매끄러운 표면이 그의 손가락 끝에 닿았다.

    *젠장, 만지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이 닿는 순간, 순수한 에너지가 그의 몸을 꿰뚫는 듯한 맹렬한 전류가 전신을 강타했다. 조각에서 뿜어져 나온 에테르 같은 보랏빛 섬광이 방을 가득 채웠고, 그의 시야는 순식간에 눈부신 빛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의 귀가 아닌, 그의 머릿속에서 직접 울리는 듯한 소리 없는 비명. 고대 언어로 속삭이는 수많은 목소리의 합창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는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이한 느낌에 휩싸였다.

    눈앞에는 이미지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빛으로 지어진 거대한 도시들, 별빛에 감싸인 존재들, 대격변,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모든 것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사라졌다.

    털썩, 그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조각은 이제 제단 위에서 몇 인치 떨어져 공중에 떠 있었고, 격렬하게 보랏빛 기운을 뿜어내며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빛은 카인의 격렬하게 뛰는 심장 박동과 동조하듯 진동했다.

    그리고 그의 팔뚝에, 벽에 새겨져 있던 기묘한 문양 중 하나가 보랏빛으로 타오르며 선명하게 새겨졌다.

    바깥에서는 땅이 울렸다. 뒤쫓던 사냥꾼들이 승리와 공포가 뒤섞인 듯한 절규를 내질렀다. 그들이 그를, 아니, 이 거대한 마법의 파동이 뿜어져 나온 근원지를 찾아낸 것이었다.

    카인은 바닥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이 힘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너무나도 거칠었다. 마치 그의 영혼 자체가 산산이 찢어지고 다시 벼려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대의 마법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저 *그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되어가는 듯했다. 땅속을 흐르는 에너지 라인, 공기 중의 마나 흐름, 심지어 멀리 떨어진 바깥 생명체들의 심장 박동까지도… 그 모든 것이 감각을 통해 밀려들어왔다.

    동시에,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유적의 돌멩이들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마치 그를 향해 직접적으로 말하는 듯했다.

    “드디어… 깨어났는가, 망각 속의 씨앗이여.”

    카인은 밀려드는 압도적인 감각을 밀어내려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러서기는커녕 더욱 증폭될 뿐이었다.

    고대의 구조물이 신음하듯 거칠게 흔들렸다. 먼지와 작은 돌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방의 한쪽 벽이 산산조각 나며 무너져 내렸다.

    그 자리에는 어둡고 룬 문자가 새겨진 갑옷을 입은 세 명의 거구의 존재가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흉측한 가면 뒤에 가려져 있었지만,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는 악의적인 핏빛 광채가 번뜩였다. 그들은 카인과 격렬하게 고동치는 조각, 그리고 그의 팔에 새겨진 빛나는 문양을 번갈아 응시했다.

    “저것이군.”

    한 존재가 으르렁거렸다. 뒤틀리고 비인간적인 목소리였다.

    “고대의 심장을 깨운 자.”

    카인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시야는 흐릿했고, 온몸이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의 존재의 깊은 곳에서, 그 거칠고 보랏빛 힘의 한 줄기가 점화되었다. 작은 불꽃처럼 타오르는 반항심이었다.

    그는 이 힘이 무엇인지, 혹은 그 대가가 무엇일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섬뜩할 정도로 확실했다. 그의 삶은 이제 돌이킬 수 없이 변했다는 것을.

    그리고 추격자들은 더 이상 그저 그를 쫓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그가 의도치 않게 소유하게 된 그 ‘힘’을 사냥하고 있었다.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삐걱이는 정적

    한낮의 태양은 창밖의 강철 도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37층, 이지훈의 아파트는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에어컨의 나지막한 웅웅거림으로 겨우 평온을 유지하는 중이었다. 낡은 원목 책상 위에는 증기압으로 움직이는 복잡한 구조의 탁상시계가 느릿하게 태엽을 감고 있었고, 그 옆에는 갓 추출한 커피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나른하게 일렁였다. 지훈은 늘 그랬듯 화면 속 빼곡한 코드들을 노려보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후 두 시. 그의 삶은 언제나 이 시계의 톱니바퀴처럼 예측 가능하게 굴러갔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그랬다.

    “젠장, 또 오류야?”

    한숨과 함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최근 들어 시스템이 삐걱대는 일이 잦았다. 서버의 문제인지, 아니면 이 도시 전체에 흐르는 미묘한 증기압의 변동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강철과 증기의 도시, ‘아이젠슈타트’는 늘 정교한 톱니바퀴처럼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때로는 그 겉모습 아래 숨겨진 불안정한 에너지가 느껴지곤 했다.

    그때였다. 찌릿, 하는 소리와 함께 탁상시계의 태엽 감는 소리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저 시계를 아끼는 편이었다. 할아버지가 쓰시던 유물이라, 아무리 전기로 작동되는 디지털시계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지만 고집스럽게 그의 책상 한 켠을 지키고 있었다.

    시계의 바늘이 거칠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초침은 맹렬하게 한 바퀴를 돌더니 이내 반대 방향으로 미친 듯이 회전했다. 분침과 시침도 제멋대로 방향을 바꾸며 이리저리 오갔다. 마치 술 취한 광대가 손목 위에서 발레를 추는 것 같았다.

    “어이, 이봐. 왜 이래, 오늘따라.”

    지훈은 툭툭, 시계를 두드렸다. 보통 이런 식의 작은 오작동은 전원부를 재정비하거나 살짝 충격을 주면 해결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시계는 지훈의 손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격렬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끽, 하는 쇠 긁는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모든 바늘이 오후 4시 44분을 가리킨 채 정지했다.

    지훈은 고개를 갸웃했다. 고장인가? 오래된 물건이니 그럴 수도 있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집중은 쉽지 않았다. 방금 전 시계의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뇌리에 남아서인지, 아니면 그가 무의식중에 감지한 어떤 미묘한 변화 때문인지.

    쿵.

    작은 소리였다. 마치 위층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듯한 소리. 지훈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내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아파트 생활에서 층간 소음은 익숙한 배경음악이었다.

    그때, 거실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가 문고리를 돌리는 듯한 소리였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아파트 문은 늘 잠겨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한낮, 집에 있을 리 없는 외부인이 침입했을 리도 만무했다.

    “누구세요?”

    그는 조심스럽게 거실 쪽으로 향했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서자,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다. 헛것을 들었나? 지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등 뒤에서 *쉬익-* 하는 증기 새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놀라 몸을 휙 돌렸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빈티지한 디자인의 증기식 난로였다. 오래되어 잘 사용하지 않던, 그저 장식용으로 두었던 물건이었다. 난로의 좁은 틈새에서 하얀 증기가 미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난로 안에서는 작은 톱니바퀴들이 엇박자로 삐걱이는 소리까지 들리는 듯했다.

    “난로를 켠 적이 없는데?”

    지훈은 난로 앞으로 다가갔다. 전원 버튼은 분명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증기는 멈추지 않고 새어 나왔다. 점점 더 격렬하게. 난로의 표면은 손으로 만져보기 무서울 정도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내부의 기어들이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쿵쾅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젠장, 고장이야?”

    그는 황급히 코드를 뽑으려 했지만, 손을 뻗는 순간 난로의 증기 배출구에서 하얀 증기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난로 주변의 공기가 기묘하게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쨍, 하는 금속음과 함께 눈앞의 증기 속에서 작은 황동색 톱니바퀴 하나가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지훈은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난로에서 떨어져 나온 톱니바퀴라니. 저 난로는 움직이는 부품이라곤 몇 개 없는데? 심장이 쿵쾅거렸다. 단순히 기계 고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섬뜩했다. 마치 난로 자체가 의지를 가진 생물처럼 느껴졌다.

    그때, 이번엔 부엌 쪽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접시가 깨지는 소리였다.

    지훈은 굳어진 얼굴로 부엌을 향해 뛰었다. 부엌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처참한 광경이었다. 식탁 위 접시들이 마치 누군가 내던진 것처럼 산산조각 나 있었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뿌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은색 수저 몇 개가 허공에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그것들을 잡고 흔드는 것처럼.

    “이게… 대체 뭐야?”

    지훈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오싹한 한기가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젠 단순히 기계 오작동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건, 이건 명백한… 현상이었다.

    그때, 흔들리던 수저들이 갑자기 멈칫했다. 그리고 이내 *틱, 틱, 틱*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톱니바퀴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은색 수저들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회전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동시에, 부엌 천장에 달린 환풍기가 미친 듯이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환풍구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연기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움직이는 듯한 희미한 윤곽이 보였다.

    *쉬이이익, 쿵, 딸깍, 쉬이이익.*

    환풍기, 난로, 그리고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기계음이 뒤섞여 기괴한 교향곡을 만들어냈다. 지훈은 패닉에 빠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의 아파트가, 그의 일상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가야 해… 나가야 한다고!”

    그는 본능적으로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당장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손잡이를 잡으려 현관문으로 달려갔지만, 그의 손이 손잡이에 닿기 직전, 문고리가 저절로 *덜컹* 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문은 안에서 잠겨버렸다.

    삑, 삑, 삑.

    현관 옆에 설치된 디지털 도어락이 붉은 불빛을 깜빡이며 경고음을 내기 시작했다. 마치 비웃는 듯이. 안쪽에서 잠겼다는 뜻의 경고였다. 그는 갇혔다.

    지훈은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것 같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환풍기 연기 속의 그림자를 향했다.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던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것은 거대한 톱니바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치 수많은 작은 톱니바퀴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실체로 뭉쳐진 것처럼. 금속성의 차가운 광택과 함께, 그 거대한 톱니바퀴의 중심에서 붉은 빛이 섬뜩하게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덜컥, 하고 크게 흔들렸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시동이라도 거는 것처럼.

    지훈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단순한 폴터가이스트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기계적인 악몽이었다. 그의 아파트는,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딸깍, 쿵, 삐걱.*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울려 퍼지는 기계음 속에서, 지훈은 자신의 심장이 멈추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악몽이, 시작되고 있었다.

  • 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화: 균열의 시작

    2024년, 서울의 잿빛 하늘은 이진우의 삶과 하등 다를 바 없었다. 아침 7시 40분, 출근길 지하철 2호선의 습한 공기는 언제나처럼 그의 폐부를 찌르고, 빼곡한 인파 속에서 어깨를 움츠린 채 버텨야 하는 하루는 이미 시작부터 버거웠다. 그는 3년 차 대리 이진우. 무미건조한 엑셀 시트와 상사의 잔소리, 그리고 퇴근 후 텅 빈 편의점 맥주 한 캔이 삶의 전부인,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흔하디흔한 청년이었다.

    “진우 씨, 그 기획안 오늘까지 마무리에요. 아시죠?”
    “네, 팀장님.”

    영혼 없는 대답과 함께 그는 다시 모니터 속 숫자의 바다로 뛰어들었다.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 가끔 그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자신의 손이 아니라, 검을 휘두르거나 기공을 펼치는 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황당한 상상은 잠시뿐, 곧 다시 현실의 무게에 짓눌리곤 했다.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무협 웹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칠종단금신법이니, 태극혜검이니 하는 용어들을 접하며 잠시나마 현실을 잊는 것. 그것이 그에게 허락된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야근 끝에 간신히 퇴근해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침대에 쓰러진 그는, 평소처럼 즐겨 읽던 무협 소설 앱을 켰다. 막 마교 교주가 절세의 무공을 펼쳐 강호를 뒤흔드는 장면을 읽던 참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방 안의 불빛이 깜빡이더니, ‘치지직’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소리와 함께 일순 모든 전기가 나갔다. 진우는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휴대폰을 들었지만, 휴대폰조차도 먹통이 되어버렸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그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창밖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잿빛 하늘을 찢고 내려온 듯한, 마치 오색 찬란한 번개 같은 것이 아파트 단지를 꿰뚫는 듯했다. 빛은 너무나 강렬해서 맨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진우는 팔로 눈을 가렸지만, 그 빛은 마치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굉음은 비행기 엔진 소리 같기도 하고, 수십 대의 트럭이 한꺼번에 충돌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고, 정신은 마치 거대한 회오리에 휘말린 종잇조각처럼 이리저리 내던져지는 느낌이었다. 그는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엄청난 힘에 짓눌려, 의식은 서서히 암흑 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

    진우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익숙한 천장이 아니었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느껴지는 축축한 흙냄새와 풀 내음.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빼곡하게 우거진 거대한 나무들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붉고 노란 빛을 띠며 마치 금가루처럼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넓게 펼쳐진 숲, 그 어디에도 아파트도, 도로도, 하다못해 작은 오솔길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이게 어디야?”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몸을 지탱하려 짚은 손바닥에는 거친 흙과 마른 나뭇가지가 만져졌다. 등에는 출근할 때 메고 나왔던 평범한 백팩이 여전히 매여 있었고, 땀으로 축축한 옷차림은 어제 퇴근할 때 그대로였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는 서울 한복판 자신의 방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영화에서나 볼 법한 원시림이었다.

    “설마… 꿈인가?”

    자신이 꾸는 꿈이라고 생각하기엔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발밑의 흙의 감촉, 코끝을 찌르는 짙은 숲의 향기, 멀리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그리고…

    ‘사악!’

    갑작스러운 소리에 진우는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 숲 저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린 그는 나무 뒤에 숨어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그림자가 숲을 헤치며 나타났다. 그들은 현대인의 복장이 아니었다. 한 명은 짙은 녹색 도포를 걸치고 허리춤에 긴 검을 차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푸른색 비단 옷에 쌍도를 들고 있었다. 마지막 한 명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노인으로, 회색 도포를 입고 등에 기다란 장창을 메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자신이 읽던 무협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등장인물 같았다.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그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숲 속을 살피며 걸어왔다.

    “대사형, 이쪽으로 온 것이 확실합니까? 마교 놈들의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푸른 도포를 입은 남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를 경계하며 말했다.
    “느껴진다. 섬서성 쪽에서 올라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분명 그들이 모이고 있는 거야.” 녹색 도포의 사내가 묵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의 손은 이미 검의 손잡이에 얹혀 있었다.
    “벌써 그리 되었단 말인가. ‘천하결정 무림대회’가 코앞인데, 마교 놈들이 이리도 설쳐대다니.”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연륜과 함께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진우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마교? 천하결정 무림대회?’
    머릿속에서 읽었던 무협 소설의 단어들이 떠올랐다.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설마, 설마 자신이 소설 속에 들어온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소림의 고승들도, 아미의 여협들도, 그리고 우리의 대화산파도 모두 이번 대회에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마교의 발호를 뿌리 뽑아야 할 터인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진우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대화산파? 소림? 아미? 자신이 즐겨 읽던 무협 소설의 배경이 되는 문파들이 아닌가. 그리고 ‘천하결정 무림대회’라니. 그것은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최고수의 자리를 결정하는 대회가 아니던가.

    그때, 녹색 도포를 입은 사내의 시선이 진우가 숨어 있는 쪽을 향했다. 그의 눈빛은 마치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누구냐!”

    사내의 외침과 동시에 그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뽑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굳혔다. 들켰다.

    “저… 저는…”

    겁에 질린 진우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세 명의 무인이 동시에 진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들의 눈에는 경계와 의심이 가득했다. 진우의 현대적인 복장과 어리숙한 태도는 그들에게 더 큰 의심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정체를 밝혀라! 이런 깊은 산중에 네놈처럼 기이한 차림의 자가 홀로 나타나다니. 마교의 끄나풀이냐?” 푸른 도포의 사내가 쌍도를 겨누며 위협적으로 물었다.

    “마… 마교라니요! 저는 그저 길을 잃었을 뿐입니다. 저는 이진우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왔어요!”

    진우는 다급하게 해명했지만, 그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서울’이라는 단어를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노인이 험상궂은 얼굴로 진우를 훑어보았다. “서울? 그런 지명은 들어본 적이 없구나. 게다가 이 옷차림은 또 무엇이며, 네놈의 몸에는 내공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군. 허나, 이 기괴한 복색과 이 알 수 없는 말투… 어딘가 수상쩍지 않은가.”

    녹색 도포의 사내가 진우에게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의 검 끝이 진우의 목덜미를 스치듯 겨눴다. 싸늘한 금속의 감촉에 진우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헛소리는 그만하고, 네놈의 소속을 대라. 감히 천하결정 무림대회를 앞두고 무림의 평화를 위협하려 드는 불순분자라면, 이 대화산파의 검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천하결정 무림대회. 그 단어가 다시 한번 진우의 뇌리를 강타했다. 그는 자신이 읽던 소설 속의 세상에, 그것도 천하의 운명을 건 거대한 무림 대회를 앞둔 시점에 떨어져 버렸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눈앞의 무인들은 자신을 마교의 끄나풀로 의심하고 있었다. 내공 한 줌 없는 평범한 현대인이 무림 고수들로 가득한 세상에 떨어진 것이다.

    진우는 절망감에 휩싸였다. 이곳은 그가 읽던 소설 속 세상. 한마디로 ‘죽음’ 아니면 ‘죽음’밖에 없는 곳이었다.
    그의 눈앞에는 녹색 도포 사내의 날카로운 검날이 번뜩였다.

    “살려… 살려주세요…”

    목숨을 구걸하는 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공포에 질려 아예 쉬어버린, 처절한 외침이었다.
    과연, 이진우는 이 낯선 무림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천하의 운명을 건 이 거대한 대회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그의 표류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스페이스 오페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별들의 밀실: 셀레네 호의 비극 (1)

    광활한 우주가 품은 검은 벨벳 위로, 셀레네 호는 마치 거대한 백색 진주처럼 유려한 곡선을 뽐내며 미끄러졌다. 200년 전 인류가 처음으로 성간 항해의 꿈을 이루어낸 이래, 셀레네 호는 언제나 가장 호화롭고 안전한 여행의 대명사였다. 은하계 각지의 거물들과 고위 관료들이 찰나의 평화를 만끽하기 위해 탑승하는, 움직이는 행성이자 낙원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백색 진주의 심장부에는 피가 흘렀다.

    강휘는 중력장으로 미세하게 조정된 복도를 걸었다. 그의 옆에는 셀레네 호 보안 총책임자 김지연 사령관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앞장서고 있었다. 복도의 고급스러운 인조 대리석 바닥은 평소와 다름없이 광택을 뿜어냈지만, 그 위를 걷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웠고,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비원들이 각 지점에 배치되어 있었고,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과 혼란이 역력했다.

    “사령관님, 상황 보고는 충분합니다. 현장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강휘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는 평정심은 그를 ‘은하계의 그림자 탐정’이라 불리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의 검은 탐정 코트 자락이 중력에 관계없이 부드럽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은 항상 한 발짝 앞서 움직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정보를 흡수하고 있었다.

    “네, 강휘 님. 죄송합니다만, 현장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김지연 사령관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억눌린 초조함이 묻어났다. 그녀는 강휘의 뒤를 따르며, 짧은 걸음으로 그를 VIP 스위트룸 구역으로 이끌었다. 복도 끝, 가장 으리으리한 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 앞에는 두 명의 정예 경비원이 경직된 자세로 서 있었다.

    “경비병, 현장 상황은?” 김지연이 물었다.

    “이상 없습니다, 사령관님. 이 구역에 대한 모든 기록은 완벽합니다.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강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 거대한 호화 유람선에서, 최고 등급의 보안 시스템을 갖춘 VIP 스위트룸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침입 흔적 없음’이라니.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중앙에는 은은한 푸른빛의 에너지 실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강력한 생체 인식과 다중 암호화 시스템으로 잠겨있는, 우주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자부하는 밀실 중 하나였다.

    “피해자는?” 강휘가 물었다.

    “대기업 ‘오리온 그룹’의 회장, 제이슨 로스입니다. 그는 지난 밤 이 방에 투숙했습니다. 오늘 아침, 개인 비서가 연락이 닿지 않아 보안팀에 요청했고, 보안팀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김지연이 씁쓸하게 말했다.

    “사망 원인은?”

    “정확히 명치 부위에 칼날에 의한 관통상입니다. 즉사였습니다.”

    “흉기는?”

    김지연은 망설였다. “현장에… 없습니다.”

    강휘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흉기 없는 밀실 살인. 고전적인 퍼즐이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스위트룸 안으로 들어섰다. 럭셔리함의 극치를 달리는 공간이었다. 통유리창 너머로는 무수한 별들이 점점이 박힌 우주의 장엄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경조차도 지금 이 방을 덮고 있는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내지는 못했다.

    강휘의 시선은 곧장 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시신으로 향했다. 제이슨 로스. 그의 얼굴은 죽음의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표정에서는 어떤 격렬한 저항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는 고급 실크 잠옷 차림이었고, 명치에서는 진한 피가 흘러나와 카펫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시신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강휘가 방 전체를 훑으며 물었다.

    “사망 추정 시각은 자정에서 새벽 2시 사이입니다. 시신 주변에 혈흔이 비산된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항의 흔적도 전혀 없고요. 마치…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김지연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묻어났다.

    강휘는 시신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부터, 공기 중의 습도, 빛의 반사각, 그리고 방의 모든 가구 배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은 주머니에 깊숙이 꽂혀 있었지만, 그의 두뇌는 이미 초고속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있었다.

    “이 방의 모든 감지 기록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외부 침입은 물론, 내부에서 외부로의 이동도 없었습니다. 에너지 실드는 단 한 번도 해제된 적이 없고, 환기 시스템, 통신 시스템, 심지어는 미세한 진동 감지기까지 모든 것이 정상 작동 중이었습니다. 이 방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완벽한 밀실 상태였습니다.” 김지연이 거의 절규하듯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강휘는 침묵했다. 그는 마치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오직 눈앞의 ‘사건’이라는 거대한 그림만을 뇌리에 새기는 듯했다. 그의 시선은 방 안의 작은 장식품, 통유리창, 그리고 천장의 미세한 균열까지 훑었다. 그의 천재성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데 있었다.

    “사령관님,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맞습니다.”

    강휘의 낮은 목소리에 김지연은 잠시 희망을 보았다. 그가 드디어 이 불가능한 상황을 인정하는 것인가?

    하지만 강휘의 다음 말은 그녀의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하지만, 살인자는 이 방 안에 ‘존재’했습니다.”

    김지연의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

    “네? 강휘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씀드렸듯이, 외부 침입도, 내부 이동도….”

    강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지 않았다. 대신, 그의 시선은 방의 한 구석, 고급스러운 가구와 벽면이 만나는 어딘가에 머물렀다. 그의 짙은 눈동자에 미세한 빛이 스쳤다. 그는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아무도 의식하지 못했던, 바닥 카펫과 벽면 사이의 아주 미세한 틈새에 손가락 끝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냉정하고 차가운, 그러나 동시에 진실의 실마리를 발견했을 때 나타나는 탐정 특유의 희열과도 같은 미소였다.

    “이 틈새… 아주 미세한 온도 변화가 감지되는군요. 사령관님, 이 방의 에너지 실드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벽’까지 완벽했다고는 단정할 수 없겠군요.”

    김지연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강휘의 말에 담긴 엄청난 의미를 깨달았다. 밀실은 밀실이었다. 하지만 그 밀실의 ‘정의’ 자체가 범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강휘는 다시 일어섰다. 그의 시선은 이제 우주가 펼쳐진 통유리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그는 살인자의 기발한 트릭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자, 이제부터 이 아름다운 셀레네 호의 숨겨진 얼굴을 파헤쳐 볼까요. 이 별들의 밀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은 비밀을 품고 있을 테니.”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거대한 진실을 향한 예감이 담겨 있었다. 김지연은 침을 삼켰다.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사건의 막이, 지금 막 열리고 있었다.

  • 에픽 하이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거대한 천룡대전에 드리운 그림자. 웅장한 아레나는 수천 년간 무림의 심장이라 불려온 신성한 천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었다. 거대한 바위와 용의 비늘 같은 암석으로 축조된 경기장은 마치 살아있는 전설처럼 숨 쉬는 듯했다.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단순한 대회가 아니었다.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피할 수 없는 격돌의 무대였다.

    사방을 둘러싼 거대한 좌석에는 각 문파의 장문인들과 고승들, 그리고 천하의 명망 높은 무사들이 운집해 있었다. 그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아레나 중앙으로 향해 있었고, 그 속에는 기대와 우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섞여 있었다. 어둠의 기운이 천하를 잠식하려 드는 이 시점에서, 이 천하제일무도회는 마지막 희망이자 유일한 해답이었다. 승리자는 천하패권을 쥐고, 다가올 암흑에 맞설 구원자가 될 것이리라.

    “다음 대련자! 청풍류(靑風流)의 류진(柳眞)과 현무문(玄武門)의 천강(千剛)!”

    우레와 같은 심판의 외침이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함성 속에, 두 명의 인물이 묵묵히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먼저 등장한 이는 청년, 류진이었다. 스무 살 남짓한 나이. 흰 도포 자락이 그의 발걸음마다 부드럽게 흩날렸다. 그의 눈은 깊은 호수처럼 고요했지만, 그 안에는 억누를 수 없는 기개가 번득였다. 마치 한 자루의 날 선 검이 고요히 칼집 속에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등 뒤에는 문파를 상징하는 푸른색 비단 띠가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청풍류의 마지막 전승자이자, 무림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성이었다. 그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희망의 발자국 같았다.

    그 맞은편에 선 것은 거구의 중년 사내, 천강이었다. 검은색 무복 아래로 단련된 근육이 꿈틀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세월의 풍파가 새겨져 있었고, 그의 눈은 마치 굳건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었다. 현무문은 전통과 묵직한 힘을 숭상하는 문파로, 천강은 그들의 현임 장문인이자 무림에서 손꼽히는 거장이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거대한 산맥 같았다. 땅을 딛는 그의 발걸음은 묵직했고, 움직임 하나하나에 천근의 무게가 실린 듯했다.

    두 사람은 아레나 중앙에 멈춰 섰다. 서로를 마주 보는 그들의 시선이 공중에서 불꽃처럼 튀었다. 류진의 눈빛은 유려하게 흐르는 강물 같았고, 천강의 시선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강철 같았다.

    “청풍류의 소년 검객이 여기까지 올라올 줄은 몰랐군.” 천강이 굵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감탄과 함께 노련한 고수 특유의 비릿한 압력이 담겨 있었다. “허나, 너의 청풍이 아무리 강해도, 세월의 무게는 이겨낼 수 없을 게다.”

    류진은 고요히 웃었다. “현무문의 장문인께서 아직 꺾이지 않았다니, 제게는 더없이 영광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 법. 새 시대의 바람은 낡은 것을 깨뜨리고 나아가는 법입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청년 특유의 패기가 실려 있었다. 관중석에서는 작게 술렁거림이 일었다. 이들은 단순한 대련이 아니라, 두 시대의 대결을 목도하고 있었다.

    심판의 손이 하늘로 치솟았다.

    “대련, 시작!”

    손이 떨어짐과 동시에, 정적을 깨고 섬광이 터졌다. 류진이 먼저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바람이 스치듯 빨랐다. 발걸음이 땅에 닿는 순간, 그의 존재는 이미 수 장 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가 취한 자세는 ‘청풍유영(靑風流影)’. 바람에 실린 그림자처럼 예측 불가능한 궤적이었다.

    “흐음!” 천강은 미동도 없었다. 그는 묵직하게 바닥에 뿌리박은 채, 두 팔을 가슴 앞에서 교차했다. 그의 전신에서 검고 굳건한 기운이 솟아올랐다. 현무문 무학의 진수인 ‘현무진강벽(玄武眞鋼壁)’이었다. 어떤 공격도 막아낼 듯한 절대적인 방어의 태세였다.

    류진의 검이 번개처럼 날아들었다. ‘비연참(飛燕斬)’! 제비가 날개를 펴듯 가볍고도 날카로운 검기가 천강의 현무진강벽을 향해 쇄도했다. 파공음이 귀를 찢을 듯 울렸다.

    **콰아앙!**

    검기가 방어막에 부딪히는 순간, 굉음과 함께 푸른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천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방어는 마치 움직이는 바위산 같았다. 류진의 날카로운 검기가 그의 몸에 닿기도 전에, 그 주변을 감싸는 기운에 부딪혀 산산이 흩어졌다.

    “이 정도로는 흠집도 낼 수 없다, 소년!” 천강의 목소리가 뇌성처럼 울렸다. 그는 류진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거대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마치 거대한 거북의 발처럼 류진을 덮쳤다. ‘현무압진(玄武壓陣)’!

    류진은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그 압도적인 기운을 간발의 차이로 피했다. 그가 서 있던 바닥이 움푹 파이며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그 위력에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단하십니다!” 류진은 숨을 고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서려 있었으나, 눈빛은 더욱 깊고 예리해졌다. “하지만, 현무께서 아무리 단단하다 한들, 바람은 바위를 깎아낼 수 있는 법!”

    그의 몸에서 푸른빛 기운이 용솟음쳤다. 그의 검에 푸른색 영기가 휘감겼고, 검 끝에서는 흡사 푸른 불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청풍검기(靑風劍氣)’! 그의 동작은 더욱 빨라졌다. 마치 여러 명의 류진이 동시에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풍뢰격(風雷擊)!”

    류진의 검이 대기를 가르고 천강에게 돌진했다. 이번에는 단순한 찌르기가 아니었다. 검이 움직이는 궤적마다 바람이 휘몰아쳤고, 그 바람 속에 미세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야말로 바람과 천둥이 합쳐진 일격이었다.

    천강은 이번에는 방어만 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좋다! 그 패기, 내가 받아주마!”

    그는 왼팔로 류진의 검기를 막아냄과 동시에, 오른손에 검은 기운을 집중시켰다. 그의 팔뚝은 마치 통나무처럼 굵어졌고, 그의 손바닥에서 응축된 검은 기운이 휘몰아쳤다. ‘만근추(萬斤錘)’! 일만 근의 무게를 담은 듯한 묵직한 권풍이 류진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쾅! 콰과광!**

    류진의 검기와 천강의 권풍이 공중에서 격돌했다. 푸른 빛과 검은 빛이 뒤섞이며 아레나 중앙에서 폭발했다.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나가 관중석의 사람들을 움찔하게 만들었다. 경기장을 둘러싼 견고한 결계가 잠시 일렁일 정도였다.

    연기가 걷히자, 두 사람은 여전히 대치하고 있었다. 류진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있었고, 그의 도포 자락이 살짝 찢어져 있었다. 천강은 미동도 없었지만, 그의 왼팔을 감싸던 현무진강벽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이 정도라니… 놀랍군.” 천강의 목소리에 감탄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의 얼굴에 비로소 진지한 표정이 떠올랐다. “허나, 아직 멀었다. 이 천강의 진정한 힘을 맛보아라!”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경기장의 바닥이 진동하고, 하늘을 가리던 구름이 흩어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천강의 몸은 한층 더 커진 듯 보였고, 그의 검은 기운은 마치 거대한 현무가 눈을 뜬 것처럼 강렬해졌다.

    “태산압정(泰山壓頂)!”

    천강이 크게 포효하며 오른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기운이 거대한 바위산처럼 형상화되어 류진을 짓눌렀다. 그 기세는 마치 거대한 산이 통째로 류진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듯했다. 숨조차 쉬기 힘든 압력이 아레나 전체를 뒤덮었다.

    류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 압도적인 기운에 몸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렬한 투지가 불타올랐다.

    “시대는 저물지 않고, 희망은 꺼지지 않습니다!”

    그는 고요히 중얼거리며 검을 수직으로 치켜들었다. 그의 온몸에서 푸른색 영기가 마치 용솟음치는 샘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단순히 기운이 아니었다. 그의 삶, 그의 의지, 그의 모든 희망이 응축된 빛이었다.

    “청룡출수(靑龍出水)!”

    류진의 검에서 거대한 푸른색 용이 솟아올랐다. 그 용은 거대한 태산의 기운에 맞서 하늘로 솟구쳤고, 그 포효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푸른 용이 뿜어내는 기세는 유려하면서도 강맹했고, 태산을 뚫고 나아가려는 듯 거대한 검은 산을 향해 돌진했다.

    **쿠구구구궁!!!!**

    푸른 용과 검은 태산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아레나 전체가 격렬한 지진처럼 흔들렸고, 엄청난 빛과 폭음이 경기장을 집어삼켰다. 그 거대한 파괴력에 관중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질끈 감았다.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빛이 사라지고 폭풍이 잠잠해졌을 때, 아레나 중앙에는 거대한 균열만이 남아 있었다. 그 중심에는 두 명의 인물이 서 있었다. 류진은 검을 비스듬히 들고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천강은 자세를 흐트러뜨린 채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다.

    승패가, 아직은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결정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대결은 천하의 운명을 걸고,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