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제13화: 황금빛 철창 안의 불꽃놀이 (불청객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한다)

    어둠이 제국의 심장을 잠식하던 밤이었다.

    제국 수도 ‘베리스’의 하늘은 항상 수많은 마법 등불로 밝게 빛났지만, 오늘 밤만큼은 달빛마저 숨을 죽인 듯 침묵했다. 바로 그 침묵 속에서, 낡은 하수도 관을 기어오르던 아린의 손끝은 차갑게 젖어들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망치, 샛별. 위치 확인했어?” 아린이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말투 대신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등 뒤에서 거대한 망치를 둘러맨 망치가 굵은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확인했습니다, 대장. 말씀하신 대로 통신탑 지하 연결 통로가 맞습니다. 파리 한 마리도 못 들어갈 것처럼 막아놨던데, 우리 대장님 발톱엔 어림없죠!”

    키가 작고 날렵한 샛별이 코를 찡긋거리며 덧붙였다. “경비가 삼엄하긴 해요. 쥐새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을 기세인데… 저들이 ‘새벽별’의 진짜 능력을 아직 모르나 봐요.” 샛별은 장난스럽게 손목을 빙글 돌렸다. 그 손목에는 제국군 감시 마법진을 무력화시키는 특제 장갑이 끼워져 있었다.

    아린은 피식 웃었다. 그들의 이름은 ‘새벽별’. 부패한 제국의 어둠 속에서 평민들에게 희망의 새벽을 가져다주려는 반란군이었다. 그리고 오늘 밤, 그들은 제국의 심장부이자 정보의 요충지인 중앙 통신탑을 목표로 삼았다.

    “좋아. 망치, 네가 통로를 열어. 샛별은 감시 마법진을 무력화해. 나는… 오랜만에 제국의 귀를 멀게 해줄게.”

    망치가 거대한 몸집으로 낡은 철문을 향해 다가갔다. 우악스럽게 생긴 문은 몇 년 동안 녹이 슬어 삐걱거렸다.
    *쿠과광!*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망치가 문을 어깨로 들이받았다. 이내 굵은 쇠사슬이 뜯겨나가고,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안쪽으로 쓰러졌다. 먼지가 후욱 일었다.

    “이런, 망치! 좀 살살!” 샛별이 기침을 콜록이며 말했다.

    “크흠, 미안. 너무 신이 나서.” 망치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린은 그들을 지나쳐 먼저 통로 안으로 발을 디뎠다. 어두컴컴한 통로 끝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제국 통신탑의 지하 저장고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자, 그럼 불청객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하지만… 우린 스스로 환영할 줄 아는 멋쟁이니까, 어서 가보자고.”

    ***

    통신탑 내부는 제국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높다란 천장에는 마법 수정으로 만든 샹들리에가 휘황찬란하게 빛났고, 바닥은 대리석으로 번쩍였다. 벽면에는 제국 황가의 문장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아린에게는 그 모든 화려함이 부패한 권력의 역겨운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녀의 임무는 이곳에 잠입해 제국 전역으로 퍼지는 통신망을 마비시키고, 그들이 준비한 가짜 정보를 흘려보내는 것이었다.

    “샛별, 감시탑 경로는?” 아린이 무전 마법진에 대고 속삭였다.

    [좌측 셋, 우측 둘, 그리고 상층부 중앙에 이동형 마법병 한 대가 순찰 중입니다. 대장님 경로는 지금 깔끔해요!] 샛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좁은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발소리가 거의 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 어둠 속을 유영하는 그림자처럼 그녀는 조용히 움직였다. 목표는 32층, 중앙 통신 제어실이었다.

    그녀가 28층에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계단 위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었다. 여러 명의 발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익숙한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곳의 보안이 최근 부쩍 허술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레오폴트 공작은 이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건가?”

    아린은 순간 몸을 굳혔다. 익숙한, 그러나 결코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였다. 제국 제1기사단장, 카이젤. ‘푸른 늑대’라는 별명처럼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남자. 동시에 그녀가 몇 번이고 신경전을 벌였던, 그리고 어쩌면…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제국의 가장 유능한 기사.

    ‘젠장, 왜 하필 지금이야?’

    카이젤은 레오폴트 공작의 비리와 부정부패를 암암리에 조사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황제에게 충성하는 맹렬한 기사였다. 그의 존재는 아린에게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웅크려 좁은 계단통의 어둠 속으로 숨어들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카이젤 일행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카이젤 단장님, 공작께서는 외부의 위협보다는 내부의 기강 확립에 더 신경 쓰고 계신다고….” 한 부하의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들려왔다.

    “쓸데없는 소리. 제국이 안정적인 건 황제 폐하의 위엄과 백성들의 평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허나 지금, 그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 카이젤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발소리가 멈췄다. 그들이 아린이 숨은 층계참에 도착한 것이 분명했다.
    *슥.*
    그때였다. 카이젤의 부하 중 한 명이 아린이 숨어 있던 비상 통로 입구 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아린은 숨을 멈췄다. 완벽하게 숨었다고 생각했지만, 제1기사단의 눈썰미는 달랐다.
    그 순간, 아린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답게, 그녀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기지를 발휘했다.

    아린은 작게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는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금은 익살스럽게 외쳤다.
    “어머나, 죄송합니다! 제가 길을 좀 잃어서요. 혹시… 이 부근에 가장 멋진 남자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정적.

    카이젤과 그의 부하들이 일제히 손전등을 아린이 서 있는 쪽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비상 탈출구 문을 살짝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민 아린은, 방금 막 치장이라도 하고 온 듯 화려한 귀족 아가씨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위장 마법으로 완벽하게 변장한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작은 베일을 쓴 모자를 얹었고,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아가씨? 이곳은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구역입니다.” 카이젤의 부하 중 한 명이 당황한 듯 물었다.

    카이젤은 가늘어진 눈으로 아린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이 마치 레이저처럼 그녀를 꿰뚫는 듯했다.
    “길을 잃었다고요? 이 새벽에, 통신탑 28층 비상 계단에서요?” 카이젤의 목소리에는 의심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아린은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네, 맞아요! 사실… 황자 전하를 뵈러 왔거든요. 제가 좀 길치라… 혹시, 그분 어디 계신지 아세요? 아, 혹시 제가 황자 전하를 찾으러 왔다는 걸 아시면, 엄청 기뻐하시겠죠?” 아린은 일부러 들떠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카이젤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황자 전하는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황자 전하의 개인 저택이 아닙니다. 이만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빨리 사라지라는 무언의 압력이었다.

    아린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정말요? 어쩐지, 여기 있는 분들은 전부 황자 전하처럼 멋있지 않더라고요. 물론, 카이젤 단장님은… 음… 조금은 근접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녀는 카이젤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카이젤은 이 여인의 대담함에 순간 당황한 듯 보였다. 그의 옆에 있던 부하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어색하게 웃음을 참았다.

    “이곳에 더 이상 머무르시면 강제로 퇴거 조치될 수 있습니다.” 카이젤의 목소리에는 경고의 기색이 역력했다.

    “강제 퇴거라니… 그렇게 매정하게 나오시면 저도 섭섭해요. 제가 오죽하면 이런 곳까지 찾아왔겠어요? 그분께 꼭 전해야 할 중요한… ‘비밀스러운 메시지’가 있단 말이에요.” 아린은 목소리를 낮춰 비밀스럽게 속삭였다. 그러면서 카이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카이젤은 그녀의 갑작스러운 접근에 뒷걸음질 치려다 멈칫했다. 그 순간 아린의 손이 찰나의 스침으로 그의 팔을 스치며 지나갔다. 미묘한 전류가 흐른 듯했다.
    ‘됐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순식간에 카이젤의 망토에 아주 작은 발신 마법진 표식을 남겼다. 이 표식은 샛별의 장치와 연동되어 카이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저기, 저… 죄송하지만 단장님, 혹시 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발을 떼지 못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아린이 능청스럽게 눈웃음을 치며 물었다.

    카이젤의 얼굴에 미묘한 경련이 스쳐 지나갔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아린의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당신은… 지금 당장 이곳에서 사라지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묘하게 흔들리는 동공을 아린은 놓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더 버티면… 저에게 반하실까 봐 두려우신 거겠죠? 그럼 이만 물러갈게요. 단장님도 조심하세요. 밤길이 험하잖아요.” 아린은 능글맞게 웃으며 다시 비상 탈출구 문을 닫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아린은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휴… 간 떨어질 뻔했네.” 그녀는 재빨리 복장을 원래대로 돌리고 샛별에게 무전을 보냈다.
    “샛별! 망치! 카이젤 단장님께 작은 선물 하나 드렸으니, 이제 우리 본업에 집중하자고!”

    [대장님, 무사하셨군요! 망치가 엄청 걱정했습니다! 선물이라니… 무슨 선물인데요?] 샛별의 목소리에서 궁금증이 뚝뚝 떨어졌다.

    “음, 아주… 밀착감이 뛰어난 선물이라고 할까? 이제 카이젤 단장님이 어디로 가든, 우리가 따라갈 수 있게 됐어. 그에게는 뜻밖의 손님이 되겠지. 그럼, 예정대로 32층 중앙 제어실로 간다!”

    아린은 다시금 어둠 속을 유영하는 그림자가 되어 중앙 통신탑의 심장부를 향해 나아갔다. 그녀의 입가에는 비장함과 함께 장난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제국의 심장부에 불어넣을 혼란과 함께, 뜻밖의 로맨틱한 소용돌이가 시작될 것만 같았다.

    **다음 화에 계속.**

  • 메카 액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아크엔젤”의 조종석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오직 전방의 홀로그램 스크린만이 차가운 푸른빛을 토해내며 미지의 도시 외곽을 비추고 있었다. 강민준의 손은 조작 패드 위에서 미동도 없이 굳어 있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그의 시선은 일말의 흔들림도 없었다. 심장이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고동쳤다. 이 침묵은 언제나 폭풍 전야였다.

    폐허가 된 도시는 죽음처럼 고요했다. 바람조차 숨죽인 듯, 무너진 고층 빌딩의 앙상한 뼈대만이 달빛을 받아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며칠 전, 이곳에서 정체불명의 집단이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 뒤를 쫓아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단순한 추적이 아니었다. 놈들의 흔적은 너무나도 익숙했고, 그 익숙함은 민준의 심장을 조여오는 족쇄와 같았다.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리며 스크린에 붉은 점들이 일제히 떴다. “확인, 세 기. 접근 속도 양호.” 민준의 목소리는 기계적인 필터를 거쳐 평온하게 들렸지만, 그의 안에는 이미 살의가 끓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먹잇감에 대한 굶주림.

    오른손의 조작 레버를 틀자, “아크엔젤”의 거대한 몸체가 유기체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등에 장착된 추진기가 불을 뿜으며 기체를 공중으로 솟구치게 했다. 아래로는 폐허가 된 건물의 잔해가 점점이 펼쳐져 있었다. 적기는 표준형 경량 전투 메카, ‘스파르탄’이었다. 현우 놈이 애용하던 모델 중 하나. 그 자식은 늘 가벼운 기체로 상대를 농락하는 걸 즐겼지. 역겨운 기억이 민준의 뇌리를 스쳤다.

    ‘이현우.’ 이름 석 자가 입안에서 쓴맛으로 굴러다녔다. 한때는 그 이름이 세상의 전부이자 가장 굳건한 방패였다. 그와 함께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그가 내 등에 칼을 꽂았던 날,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지하 깊숙한 곳으로 던져 넣었던 그날. 내가 쓰러진 자리에 보란 듯이 서서, ‘강민준, 너는 이미 끝났어.’라고 비웃던 그 잔인한 미소가 생생했다. 그리고 이 손으로, 이 기체로 다시 기어 올라오는 데는 지옥 같은 세월이 걸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친구가 아니었다. 그저 파괴해야 할 대상, 그의 존재 자체를 소멸시켜야 할 숙적일 뿐.

    “목표, 락온. 사격 허가.”

    민준은 조작 패드의 버튼을 누르는 대신, 직접 왼손의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아크엔젤”의 왼쪽 팔에 내장된 고밀도 플라즈마 캐논이 번뜩이며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첫 번째 ‘스파르탄’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몸통 한가운데가 녹아내리며 고철 덩어리가 되어 추락했다. 폭발음은 폐허 속에서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두 번째, 세 번째 기체는 동시에 기동하며 민준을 향해 기관포를 난사했다. 굉음과 함께 수많은 탄환이 “아크엔젤”의 단단한 외갑을 강타했지만,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민준의 기체는 단순한 전투 메카가 아니었다. 복수를 위해 모든 것이 개조되고 강화된, 살아있는 증오 그 자체였다. 그 어떤 공격도 “아크엔젤”의 진격을 막을 순 없었다.

    “하찮은 놈들.”

    민준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아크엔젤”은 맹렬한 속도로 돌진하며 두 번째 ‘스파르탄’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 그의 오른팔에서 예리한 칼날이 튀어나와 적기의 관절부를 정확히 꿰뚫었다. 철이 찢어지는 비명과 함께 ‘스파르탄’은 제동력을 잃고 뱅글뱅글 돌며 추락했다. 조종사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마지막 ‘스파르탄’은 겁에 질린 듯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했다. 무너진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민준의 추격을 뿌리치려 애썼다. 하지만 민준은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추격은 순식간이었다. “아크엔젤”은 거대한 발로 도주하는 ‘스파르탄’을 짓밟았고, 조종석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기체는 완전히 침묵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민준은 “아크엔젤”을 멈춰 세웠다. 정적이 다시 찾아왔지만, 그의 마음속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쓰러진 ‘스파르탄’들의 잔해를 스캔하자, 예상대로 특정 소속 마크가 감지되었다. ‘새벽의 파수꾼.’ 현우 놈이 수장으로 있는 용병단의 표식이었다.

    “결국 이 길로 들어섰군, 현우.” 민준은 낮게 읊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조롱이 섞여 있었다. “네가 감히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이었다.”

    스캔 보고서가 계속 올라왔다. 파괴된 기체 중 한 대의 통신 기록에서 의미심장한 암호화된 메시지가 발견되었다. 민준은 즉시 복구 작업을 지시했다. 몇 초 후, 흐릿한 음성이 조종석을 채웠다. 간헐적으로 끊기는 음성은 조급함과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기체 파괴. 세 대 모두… 제압당했습니다. 통신 두절… 목표는… 확실히 강민준입니다. 그의 기체는… 우리의 표준 사양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보고합니다. ‘정의의 기사’ 출격… 현우 대장님께서 직접…”

    민준의 심장이 철렁했다. ‘정의의 기사’. 현우가 직접 조종하는 기체의 이름이었다. 망각의 늪 속에서 그의 뇌리에 선명히 각인된 그 이름. 그가 가장 아끼던, 그리고 가장 강력했던 기체. 복수의 칼날을 갈던 내내, 가장 마지막에 베어버릴 최종 목표였다.

    스크린에 새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거대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다. 접근 속도는 이전의 ‘스파르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단순한 전투 메카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거대한 맹수가 사냥감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은 폭발적인 속도.

    “놈이 온다.” 민준의 입꼬리가 비틀어졌다. 증오와 기대, 그리고 어딘가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미묘한 감정이 뒤섞인 미소였다. “이현우, 네가 직접 나올 줄은 몰랐는데. 반갑다, 친구.”

    “아크엔젤”의 메인 엔진이 더욱 맹렬하게 불을 뿜기 시작했다. 거대한 메카의 그림자가 폐허가 된 도시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이제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를 삼키러 왔다. 그리고 민준은 그 그림자를 피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는 그 그림자 속에서 춤을 추려 하고 있었다. 복수의 칼날을 든 채.

    “오랜만이다, 이 배신자 새끼야.”

    민준의 손이 다시 한번 조작간을 굳게 쥐었다. 모든 계기판이 최대치로 치솟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 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차가운 돌바닥에 몸을 일으켰을 때, 뼈마디마다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텅 비어버린 왼쪽 눈구멍은 시릴 정도로 차가운 허공을 응시했고, 한때 검을 쥐었던 오른손목은 뒤틀린 흉터만 남긴 채 기형적으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았다고 해야 할까. 그저, 죽지 못했다.

    피 냄새가 났다. 내 것인지, 아니면 이 지독한 동굴에 스며든 오래된 살육의 잔해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손상되지 않은 오른손으로 축축한 바닥을 짚었다. 거친 돌기가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내 안의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분노. 그래, 그것만이 나를 이 어둠 속에서 숨 쉬게 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카인…”

    갈라진 목소리가 동굴 벽에 부딪혀 희미하게 울렸다. 그 이름은 혀끝에서 썩어 문드러지는 독약 같았다.

    나는 기억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잿빛 전쟁터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던 나를 그가 발견했다. 햇살처럼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던 소년. 서로의 등 뒤를 기꺼이 맡기며 수많은 밤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쌍성(雙星)’이라 불렸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두 개의 별. 세상은 우리를 영웅이라 불렀고, 우리는 기꺼이 그 짐을 짊어졌다. 적이 아무리 거대하고 강력해도, 우리가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었다.

    어리석게도.

    그날의 기억이 불현듯 머릿속을 찢고 들어왔다. 거대한 악마, ‘그림자 군주 모르그스’와의 결전. 멸망 직전의 세계를 구하기 위한 마지막 싸움이었다. 나는 선봉에 서서 길을 열었고, 카인은 내 뒤에서 강력한 성스러운 마법으로 전장을 지배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모르그스의 심장을 꿰뚫는 순간까지도, 나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느껴진 섬뜩한 한기.

    *스걱.*

    뼈를 긁고 들어오는 칼날의 감각은, 전신이 마비될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동시에 심장을 꿰뚫는 듯한 엄청난 충격이 나를 덮쳤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거대한 모르그스의 육체는 이미 힘을 잃고 무너져 내리는 중이었고, 나는 그 거대한 그림자에 파묻혔다.

    쓰러지기 직전, 나는 뒤를 돌아봤다. 칼날을 쥔 카인의 얼굴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아니, 오히려 옅은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승리자의 미소이자, 동시에 나의 죽음을 축하하는 악마의 미소였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이젠, 내가 유일한 영웅이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뜨거운 피가 뿜어져 나왔고,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짓눌리는 시야 속에서, 수많은 기사단원들이 카인을 향해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내가 쓰러진 잔해를 등진 채, 카인을 구원자라 칭송하고 있었다.

    “흐… 흐흐흐…”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몰랐겠지. 자신들의 구원자가, 진정한 구원자의 등에 칼을 꽂아 넣은 배신자라는 것을. 모르그스의 죽음은 카인의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마지막 일격으로 인한 것이었다. 나는 그림자 군주의 심장에 칼을 꽂은 채 죽어갔고, 카인은 그 피 묻은 검을 뽑아낸 뒤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해낸 것처럼 위장했다. 그리고 나를 그림자 군주의 시체와 함께 역사 속으로 파묻어 버렸다.

    수많은 날들을 어둠 속에서 헤맸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끌어낸 것은, 알 수 없는 존재의 그림자였다. 그것은 형체도 없이 흐릿했지만, 내 안의 분노를 연료 삼아 나를 생사의 경계에서 붙잡아 두었다. 나는 육체의 절반을 잃었지만, 더 강한 무엇인가를 얻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어둠의 마법, 그것이 내 육체를 새롭게 구축했다. 살점은 뜯겨 나갔고, 뼈는 부러졌지만, 그 위에 덧씌워진 것은 차가운 그림자의 힘이었다.

    “카인.”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목소리는 아까와 달랐다. 깊은 동굴의 바닥에서 솟아오른 듯한, 낮고 음산한 울림이 담겨 있었다. 오그라든 오른손목 대신, 손상되지 않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것은 이내 단단한 그림자의 칼날로 응축되었다. 길고 날카로운, 마치 밤의 심장에서 뽑아낸 듯한 칼날.

    나는 일어섰다. 몸의 절반은 여전히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지만, 다른 절반은 차갑게 얼어붙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나의 시신이 묻혔을 모르그스의 그림자 속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쌍성’의 한쪽 날개가 아니었다. 나는 복수의 화신, 어둠의 심장이었다.

    동굴 입구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 빛을 향해 걸어갔다. 한때 나를 밝혀주었던 햇살 같은 빛이 아니라, 내가 꺼뜨려야 할 빛이었다. 카인은 지금쯤 화려한 왕궁에서, 영웅이라는 이름 아래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을 터였다. 그는 나를 잊었을까? 아니, 잊었든 말든 상관없다.

    나는 잊지 않았다. 심장에 박혔던 칼날의 감각, 등 뒤에서 느껴졌던 싸늘한 시선, 그리고 그의 입술이 속삭였던 잔혹한 문장. 모든 것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제, 내가 유일한 악몽이 되어줄게.”

    검은 칼날이 내 의지에 따라 섬광처럼 번뜩였다. 차가운 그림자가 내 주변을 감쌌다. 밖으로 나가자, 숲의 고요함이 나를 맞았다. 한때는 평화로웠던 이 세상이, 이제는 나의 피와 증오로 물들게 될 터였다. 카인의 영광은 허상에 불과했다. 나는 그 허상을 찢고, 그의 영혼을 조각낼 것이다.

    내 복수의 서막이, 지금 막 시작되었다.

  • 에픽 하이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만화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밤의 심장] – 1화. 금지된 별빛

    **[장면 1]**

    **배경:** 달빛이 쏟아지는 ‘숨겨진 달의 숲’. 고대 엘시아 왕국의 경계와 그림자 부족의 영토가 맞닿는 곳. 숲은 신비롭고 고요하며, 거대한 고목들이 하늘을 찌르고, 희미한 빛을 내는 이끼들이 바위를 덮고 있다. 숲 한가운데, 수천 년 된 듯한 거대한 나무 ‘밤의 심장’이 솟아있다. 칠흑 같은 밤, 숲은 온갖 생명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연출:**
    *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은빛 실루엣이 빠르게 움직인다.
    * 망토를 깊게 눌러쓴 채 숲 속을 조심스럽게 헤치며 나아가는 이리엘의 모습.
    * 나뭇가지에 걸린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며 번민하는 표정을 드러낸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불안과 기대로 흔들린다.

    **이리엘 (내레이션):**
    (속삭이듯, 떨리는 목소리)
    이리엘… 너는 지금, 가장 어리석고, 가장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엘시아의 피를 이어받은 공주가, 감히… 밤의 부족의 전사와…

    **이리엘:**
    (숨을 고르며, 주변을 살핀다. 미세한 마법의 기운이 그녀의 손끝에서 맴돌며 경계를 감지한다.)
    젠장… 또 경비대의 순찰 경로가 바뀌었잖아. 이대로 가다간 새벽을 맞이하겠어.

    **이리엘 (내레이션):**
    불가능한 사랑.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규율이, 신들의 맹세가, 피의 역사가… 우리를 갈라놓으려 한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어. 그를 향한 이 마음은, 어떤 금기도 넘어서는 거대한 파도와 같으니까.

    **연출:**
    * 이리엘이 깊은 숨을 내쉬며 결심한 듯 고개를 든다.
    * 그녀의 손에서 푸른 빛의 마법진이 작게 일렁이며, 주변의 마나 흐름을 바꾼다.
    * 그녀의 몸이 희미하게 빛나며 그림자 속으로 더욱 깊이 스며드는 듯 사라진다.

    **이리엘:**
    (작게 중얼거린다.)
    카이젠… 부디 무사히…

    **[장면 2]**

    **배경:** ‘밤의 심장’ 나무 아래. 나무는 거대한 동굴처럼 움푹 파여 있고, 그 안에 어렴풋한 그림자가 서 있다. 주변에는 은은한 밤꽃 향기가 퍼져 있고, 숲의 깊은 정적이 흐른다.

    **연출:**
    * 거대한 나무의 품처럼 움푹 파인 공간. 그 안에 그림자처럼 서 있는 카이젠.
    * 그의 눈은 밤의 어둠에 익숙한 맹수처럼 빛나며, 고요한 숲을 응시한다.
    * 카이젠의 얼굴에 기다림과 희망이 교차한다.

    **카이젠 (내레이션):**
    (낮고 굵은 목소리)
    달빛이 저리도 눈부시건만, 내게는 오직 너만이 별이다, 이리엘. 네가 없는 밤은 영원한 어둠과 같아.

    **연출:**
    * 어둠 속에서 갑자기 이리엘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난다.
    * 그녀는 망토를 벗어던지고 카이젠에게 달려간다.

    **이리엘:**
    (숨을 헐떡이며)
    카이젠… 늦어서 미안해요. 경비가…

    **카이젠:**
    (한 걸음 다가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다. 그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하다. 망설임 없이 그녀를 품에 안는다.)
    괜찮아. 네가 오는 길은 항상 가시밭길이었으니. 네 숨소리가 들리는 순간,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다.

    **이리엘:**
    (그의 품에 안기며 한숨을 내쉰다. 그의 품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생명력에 안도감을 느낀다.)
    당신을 보지 못했다면, 이 모든 짐을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엘시아의 공주라는 무게는, 가끔 저를 숨 막히게 해요.

    **카이젠:**
    (그녀의 은빛 머리카락에 뺨을 비비며, 숲의 바람처럼 부드럽게 속삭인다.)
    너는 내 심장의 빛이야, 이리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나를 이끄는 유일한 별. 우리의 밤은 언제나 짧지만, 그 짧은 순간이 내 삶의 전부다.

    **연출:**
    * 두 사람이 서로를 껴안은 채 고요한 미소를 짓는다.
    *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실루엣이 하나로 겹쳐진다.

    **이리엘:**
    그대도… 이곳까지 오는 길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부족의 시선은…

    **카이젠:**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본다.)
    내 부족은 너를 알지 못해. 엘시아의 잔인함만을 들었을 뿐. 하지만 너는 다르다. 너는 모든 편견을 부수는 존재. 만약 그들이 너를 알게 된다면…

    **이리엘:**
    (미소 짓는다.)
    두렵지 않아요. 우리가 함께라면.

    **카이젠:**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그래, 함께라면.

    **[장면 3]**

    **배경:** 두 사람이 서 있는 ‘밤의 심장’ 나무 주변. 정적을 깨고 갑자기 숲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멀리서 땅이 울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기묘한 어둠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연출:**
    * 갑자기 숲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 카이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한다.
    * 그는 본능적으로 이리엘을 보호하듯 자신의 뒤로 감싼다.
    * 나무 뿌리 틈새에서 검고 끈적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카이젠:**
    (낮게 으르렁거린다.)
    이건… 심상치 않아. 어둠의 균열인가…

    **이리엘:**
    (긴장하며 마법을 준비한다.)
    아니… 균열이라기보다는… 억눌렸던 마나가 폭주하는 것 같아요. 이 ‘밤의 심장’ 나무는 고대부터 막대한 마나를 품고 있었죠. 아마…

    **연출:**
    * 땅이 크게 한번 울리며 ‘밤의 심장’ 나무의 껍질 일부가 갈라진다.
    * 그 갈라진 틈에서 검은 액체 형태의 그림자 괴물들이 기어 나온다. 크기는 작지만 뾰족한 발톱과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지고 있다.

    **이리엘:**
    (놀란 듯 손을 들어 막으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다.)
    이런! ‘어둠의 잔영’들이잖아! 이 숲에서 이런 존재가 깨어나다니…!

    **카이젠:**
    (허리춤에서 부족의 상징이 새겨진 거대한 양날 도끼를 뽑아든다. 그의 근육이 꿈틀거린다.)
    걱정 마, 이리엘. 내가 막을게!

    **연출:**
    * 카이젠이 그림자 괴물들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다.
    * 도끼가 휘둘러질 때마다 검은 그림자들이 찢겨나가며 사라진다. 그의 움직임은 빠르고 강력하다.
    * 하지만 괴물들은 끝없이 솟아나오고, 카이젠 혼자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리엘:**
    (자신을 보호하려는 카이젠의 등을 보며 눈을 감았다 뜬다. 그녀의 눈동자가 푸른빛으로 빛나며 마법진이 그녀의 주변에 빠르게 그려진다.)
    안 돼요! 저건 단순한 괴물이 아니에요. 마나의 덩어리예요!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밤의 심장’ 나무의 마나를 불안정하게 만든 근원을 찾아야 해요!

    **카이젠:**
    (괴물들을 베어내며)
    어디에 있지?!

    **이리엘:**
    (손을 뻗어 나무의 갈라진 틈을 가리킨다.)
    저기… 나무의 가장 깊은 곳. 마나의 핵이 불안정해졌어요. 내가 저 마나를 안정시켜야 해요! 시간을 벌어줘요, 카이젠!

    **카이젠:**
    (그녀의 결심에 고개를 끄덕인다. 망설임 없이 괴물들 사이로 뛰어들어 더욱 격렬하게 싸운다.)
    믿는다, 이리엘!

    **연출:**
    * 이리엘이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한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 마나가 주변을 밝힌다.
    * 그녀의 손끝에서 여러 개의 푸른 마법구가 생성되어 그림자 괴물들에게 날아간다. 마법구는 괴물들을 묶거나 잠시 마비시킨다.
    * 그 사이, 이리엘은 나무의 갈라진 틈새로 손을 뻗는다. 고통스러운 표정이 그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간다.
    * 카이젠은 온몸으로 이리엘을 보호하며 그림자 괴물들과 맞선다. 그의 등은 피와 땀으로 얼룩지기 시작한다.
    * 그림자 괴물 중 가장 큰 녀석 하나가 카이젠의 방어선을 뚫고 이리엘에게 돌진한다.

    **카이젠:**
    (경악하며 외친다.)
    이리엘!!!

    **연출:**
    * 카이젠은 온몸을 던져 이리엘 앞을 막아선다. 괴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어깨를 깊게 할퀸다.
    * 그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가 숲에 울려 퍼진다.
    * 이리엘의 눈이 번쩍 뜨인다. 그녀의 얼굴에는 분노와 슬픔, 그리고 강한 의지가 떠오른다.

    **이리엘:**
    (울부짖듯 외친다.)
    카이젠!! 안 돼!

    **연출:**
    * 이리엘의 몸에서 폭발적인 푸른 마나가 뿜어져 나온다.
    * 그녀의 손이 나무의 갈라진 틈 깊숙이 닿자, 나무 전체가 푸른빛으로 번쩍인다.
    * 불안정하던 ‘밤의 심장’ 나무의 마나가 진정되기 시작한다.
    * 동시에, 모든 그림자 괴물들이 비명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진다.

    **이리엘:**
    (마법을 마무리하며 카이젠에게 달려간다.)
    카이젠! 괜찮아요?!

    **카이젠:**
    (어깨를 부여잡고 피식 웃는다.)
    별것 아니야… 네가 무사하면 됐다.

    **이리엘:**
    (그의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눈물을 글썽인다. 그녀의 손에서 치유의 마법이 발현되어 상처를 감싼다.)
    흐르는 피는 별것 아닌 게 아니에요! 당신이 얼마나 다쳤는지…

    **카이젠:**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댄다.)
    너의 마법은 늘 따뜻해. 엘시아의 마법이 차갑고 계산적이라던 소문은 거짓이었어.

    **이리엘:**
    (고개를 떨군다.)
    모든 엘시아가 그런 건 아니에요…

    **[장면 4]**

    **배경:**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함. ‘밤의 심장’ 나무는 다시 평온을 되찾았지만, 주변에는 전투의 흔적이 남아있다. 부러진 나뭇가지들과 검은 재의 흔적. 새벽이 동트기 시작하며 멀리서 희미한 여명이 번져온다.

    **연출:**
    * 두 사람은 서로에게 기댄 채 앉아있다.
    * 이리엘은 카이젠의 상처를 치료한 후,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 카이젠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다.
    * 어둠이 걷히며 숲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난다. 아름답지만, 동시에 위험을 품고 있는 공간.

    **이리엘:**
    (나지막이 속삭인다.)
    우리의 사랑은… 늘 이런 식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네요. 한 발짝만 잘못 디뎌도… 모든 것이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요.

    **카이젠:**
    (그녀를 더욱 단단히 끌어안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만날 것이다, 이리엘. 부족의 족장으로서, 나는 매 순간 책임과 의무를 느낀다. 하지만 너와 함께하는 순간만큼은…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난 진정한 나를 느껴.

    **이리엘:**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마주 본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엘시아의 공주로서, 저는 왕국의 미래를 짊어져야만 해요. 하지만 그 모든 역할 속에서,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신의 곁에서, 당신의 그림자가 아닌, 당신의 빛이 되는 것.

    **카이젠:**
    (씁쓸하게 웃는다.)
    밤의 부족의 그림자가, 엘시아의 빛과 사랑에 빠지다니. 세상이 알면 우리를 미쳤다고 하겠지.

    **이리엘:**
    세상이 뭐라고 하든… 우리의 마음이 진실인걸요.

    **연출:**
    * 두 사람의 시선이 깊게 교차한다. 그들의 눈빛에는 서로를 향한 변치 않는 사랑과 함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섞여 있다.
    * 그때, 카이젠이 시선을 돌려 바닥의 흙을 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다.
    * 그의 얼굴에서 피가 싹 가신다.

    **카이젠:**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이건…

    **연출:**
    * 카이젠의 손이 떨리는 채로 흙 속에 박혀 있는 것을 집어 든다.
    * 그것은 정교하게 세공된 은 장식의 단검이었다. 그 단검의 손잡이에는 엘시아 왕실의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 그리고 단검의 옆에는, 갓 피어난 듯한 푸른색 ‘별무리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엘시아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꽃.

    **이리엘:**
    (그 단검과 꽃을 보고 경악한다.)
    이건… 우리 왕실의… 어떻게 여기에…

    **카이젠:**
    (단검을 꽉 쥔다. 그의 눈빛이 맹수처럼 격렬하게 번뜩인다.)
    누군가가… 우리의 흔적을 따라온 거야. 우리의 만남을…

    **연출:**
    * 카이젠의 손에 들린 단검과 이리엘의 놀란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 멀리서 동이 트며 숲의 가장자리에 붉은빛이 번져온다. 그 빛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불길한 징조처럼 보인다.

    **이리엘 (내레이션):**
    우리의 금지된 별빛은, 과연 이 새벽의 어둠을 뚫고 계속 빛날 수 있을까. 아니면… 이 단검처럼, 우리를 갈라놓을 날카로운 파멸의 전조일까.

    **[1화 끝]**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고요를 깨는 속삭임

    별빛 책방은 늘 고요했다. 창가로 쏟아져 들어오는 아침 햇살은 먼지 한 톨까지 투명하게 비추며, 낡은 책들의 페이지 위에서 잔잔하게 춤을 추었다. 갓 내린 따뜻한 커피 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여,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선사하곤 했다. 나는 은채였다. 이 고요한 공간의 주인이자,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을 사랑하는 사람. 오늘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열된 책들을 정리하며 작은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책방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 그러나 늘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손님. 서하람이었다. 부스스한 머리카락은 마치 이제 막 잠에서 깬 듯 제멋대로 뻗쳐 있었고, 얇은 카디건 아래로는 구겨진 티셔츠가 슬쩍 보였다. 한 손에는 언제나처럼 읽다 만 두꺼운 고전 소설이 들려 있었다. 그는 늘 이곳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하람은 대뜸 책장 사이를 훑어보며 말했다. “은채 씨, 혹시 토마스 브라운 경의 ‘사이클롭스의 고양이’ 개정판, 19세기 중반에 출판된 초판본이 들어왔습니까? 그 표지 그림에 숨겨진 암호가 이번에 새로 해독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만.”

    나는 얕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람 씨, 그건 너무 전문적인데요. 여긴 동네 책방일 뿐이에요. 게다가 그런 희귀본이 여기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는 실망한 기색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군요. 그럼 어쩔 수 없죠. 대신, 은채 씨가 직접 끓인 얼그레이 홍차 한 잔은 있겠죠?”

    나는 익숙하게 찻주전자에 물을 데우고, 그가 늘 앉는 창가 자리로 따뜻한 찻잔을 내밀었다. 하람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한 모금 마시더니, 그의 눈빛이 책방 유리창 너머로 향했다. 그 시선 끝에는 늘 그가 보곤 했던 평화로운 동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책방 문이 다시 한 번 요란하게 열렸다. 이번엔 김 형사였다. 늘 잔뜩 구겨진 얼굴에 어딘가 조급함이 섞여 있었다. 그는 하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서 군! 자네 여기 있었군! 큰일 났어!”

    김 형사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그는 한 손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내 테이블에 놓인 홍차를 한 번에 들이켰다. “사건이야. 아주 이상한 밀실 살인.”

    “밀실 살인이라니요?”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이 작은 동네에서 살인 사건이라니. 그것도 밀실이라니.

    김 형사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한 번 내려쳤다. “오늘 아침, 동네 끝자락에 있는 오래된 인형 공방 말이야. 거기 주인, 정 노인이 죽은 채로 발견됐어. 문제는 말이지, 안에서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는 거야. 창문도 안에서 잠겨 있었고, 환기구는 너무 작아서 사람이 드나들 수조차 없어.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고, 도난당한 물건도 없어. 순전히 밀실이야!”

    정 노인이라니. 가끔 우리 책방에 들러 그림책을 사 가시곤 했던 분이었다. 무뚝뚝했지만, 그 눈빛은 늘 따뜻했던.
    하람은 홍차를 마시던 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의 늘어져 보이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스쳤다. 마치 오래된 퍼즐 조각을 발견한 아이처럼, 호기심과 집중이 뒤섞인 빛이 그의 눈에 떠올랐다.

    “흥미롭군요.” 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차분하고 낮게 울렸다.

    김 형사는 하람의 반응을 보더니 안도한 듯했다. “그래, 자네밖에 없어. 당장 가세!”

    나는 얼떨결에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별빛 책방을 나와 몇 블록을 지나자, 오래된 인형 공방 앞에 경찰차들이 빼곡히 세워져 있었다. 노란색 폴리스 라인이 어지럽게 쳐져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었다. 평화롭던 동네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그림자였다.

    공방 안은 예상대로 혼란스러웠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나무 인형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작업 도구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정 노인이 쓰러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본 것은 시신보다, 그 방 자체였다. 창문은 쇠창살 안쪽에서 잠겨 있었고, 묵직한 나무 문은 안쪽에서 걸쇠로 단단히 잠겨 있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누가 봐도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완벽한 밀실.

    김 형사가 답답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미치겠어. 유서는 없고, 자살 흔적도 없어. 그런데 안에서 문은 걸려 있었고…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람은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먼지, 벽의 낡은 그림, 천장의 거미줄, 그리고 정 노인이 쓰러진 위치까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훑었다. 한참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김 형사님.”

    “왜, 서 군. 뭔가 발견했나?”

    하람은 대답 대신 공방 한쪽 구석에 놓인, 미처 다 만들지 못한 인형의 팔을 가리켰다. 나무로 깎아 만든 팔은 손가락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이 인형의 팔, 다른 인형들보다 유독 매끈하군요.”

    김 형사는 황당하다는 듯 하람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게 중요해? 인형 팔이 매끈하든 말든, 밀실 살인이야!”

    하람은 김 형사의 반응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희미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그 매끈한 인형 팔이 감추고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미 꿰뚫어 본 것처럼.

    나는 그저 하람의 옆에 서서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고요하던 나의 일상은, 그렇게 한순간에 밀실 속 그림자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침착하고 예리한 시선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작은 안정감을 주었다. 마치 복잡한 퍼즐이 곧 풀릴 거라는 무언의 약속처럼.

  •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잿빛 먼지가 덮인 하늘 아래, 강진우는 폐허가 된 도시의 심장부로 조심스럽게 발을 들였다. 녹슨 철골과 바스러진 콘크리트 잔해들이 거대한 뼈대처럼 흉물스럽게 솟아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상점가의 흔적은 이제 그저 썩어가는 시체와도 같았다. 그의 목표는 저 멀리, 기형적으로 주저앉은 ‘신세계’라는 간판이 걸린 거대한 백화점 건물이었다.

    “젠장, 또 여기로 오게 될 줄이야.”

    진우는 낮게 중얼거렸다. 스크래치 투성이의 마스크 안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몇 달 전, 이곳에 발을 들였다가 죽을 뻔한 기억이 생생했다. 놈들은 마치 건물의 그림자처럼 숨어 있었다. 이번에는 달라야 했다. 식량도, 약품도 바닥이었다.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낡은 방탄 조끼는 제 기능을 할지 의문스러웠고, 손에 든 반자동 소총은 묵직했지만 탄창은 절반도 채워져 있지 않았다. 등에 멘 배낭 속에는 겨우 물 한 병과 몇 개의 에너지바, 그리고 만일을 대비한 칼이 전부였다.

    백화점 입구는 거대한 이빨 빠진 아가리처럼 뻥 뚫려 있었다. 자동문은 진작에 파손되어 어디론가 사라졌고,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별처럼 흩어져 있었다. 진우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는, 발소리를 죽인 채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내부는 지독한 먼지와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햇빛이 부서진 천장에서 희미하게 쏟아져 내려와, 썩어가는 마네킹들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고급스러웠을 진열대들은 텅 비어 있었고, 그 위에 쌓인 먼지는 수십 년의 시간을 말해주는 듯했다.

    “아무것도 없네.”

    진우는 1층을 훑어보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생존자들이 다녀간 흔적이 역력했다. 찢어진 옷가지, 빈 통조림 캔, 그리고 바닥에 굳어버린 검붉은 얼룩. 그 얼룩을 볼 때마다 진우의 심장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누군가의 마지막 흔적.

    그는 더욱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소총을 든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런 곳에서는 작은 소음도 죽음을 부를 수 있었다. 숨소리마저 멎는 듯한 고요 속에서, 그의 귀는 미세한 움직임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때였다. 텅 빈 화장품 코너의 한 진열대에서 무언가 번뜩였다. 유리 조각이 아니라, 금속성의 작은 반짝임이었다. 진우는 천천히 다가가, 흐릿한 조명 아래 그것을 확인했다.

    자세히 보니, 한때 향수병이 놓여 있었을 진열대 가장자리에 긁힌 자국이 선명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갓 떨어진 듯한 핏방울이 말라붙어 있었다. 검붉은 얼룩과는 달랐다. 이건, 최근의 흔적이었다.

    “젠장.”

    진우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누가 다녀간 걸까? 다른 생존자일까, 아니면… 놈들일까?

    그 순간, 머리 위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 2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진우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놈들이었다. 분명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벽 뒤에 숨겼다. 소총을 바짝 당겨 쥐었다. 놈들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했다. 하지만 소리는 하나뿐이었다. 한 마리인가? 아니면 유인책인가?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놈들이 이 층으로 내려오기 전에 위로 올라가야 했다. 이 거대한 폐허 속에서 놈들에게 쫓기다간, 결국엔 막다른 곳에 몰릴 게 뻔했다.

    진우는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여 낡은 에스컬레이터로 향했다. 작동하지 않은 지 오래된 에스컬레이터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삐걱이는 금속 소리가 그의 심장을 옥죄었다.

    2층에 발을 디디자마자,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가 진우를 덮쳤다. 피와 썩은 살, 그리고 곰팡이가 뒤섞인 듯한 지독한 악취였다. 분명 놈들이 가까이 있었다.

    내부는 1층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옷가지들이 널브러진 의류 코너 사이로, 찢어진 마네킹들이 팔다리가 부러진 채 널려 있었다. 진우는 소총을 비스듬히 들고 전방을 주시했다.

    그때였다. 시야 한쪽 끝, 거울처럼 빛나는 쇼윈도에 비친 희미한 형체. 길고 비정상적으로 꺾인 팔다리, 굽은 허리. 머리에는 뿔처럼 솟아오른 뼈 조각들.

    진우는 숨을 멈췄다. 놈은 ‘추적자’ 변종이었다. 놈들은 다른 변종들과 달리 소리에 민감하고, 느리지만 집요하게 먹잇감을 추적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놈들이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추적자가 나타났다는 건, 주변에 다른 놈들도 있다는 뜻이었다.

    놈은 쇼윈도 반대편, 꽤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진우를 보지는 못했지만, 놈의 기형적인 머리가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마치 공기 중의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것처럼.

    진우는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절대 먼저 움직여선 안 된다. 놈의 움직임을 파악해야 했다. 놈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의 목숨은 위태로워질 터였다.

    추적자는 갑자기 고개를 꺾어 진우가 숨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마치 그의 심장 소리를 듣기라도 한 듯이. 그리고는 천천히, 마치 먹잇감을 감상하듯이,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덜컹.’

    그 소리는 1층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였다. 놈은 이미 진우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 그 핏방울은, 이놈이 떨어뜨린 것이었으리라.

    진우는 이를 악물었다. 피할 수 없는 싸움이었다. 소총을 들어 놈의 머리를 겨냥하려는 순간, 그의 뒤편에서 또 다른 ‘덜컹’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훨씬 가까운 곳에서. 마치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진우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늦었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또 다른 추적자의 그림자가 그의 목덜미를 향해 길게 뻗어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공기를 갈랐다.

    “크악!”

    진우는 몸을 옆으로 던져 간신히 피했지만,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찢어진 방탄 조끼 틈새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두 마리였다. 놈들은 그를 사이에 두고 포위하고 있었다. 놈들의 찢어진 입에서 끔찍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진우는 쓰러진 자세 그대로 소총을 놈들을 향해 겨냥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그는 이 지옥 같은 백화점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놈들의 그림자가 점점 더 그를 덮쳐왔다. 진우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었다. 쏴야 했다. 지금 당장. 하지만 어디를 쏴야 할까? 어떤 놈을 먼저 쓰러뜨려야 할까? 그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 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새벽은 언제나 장엄했다. 거대한 수정 첨탑들은 아침 햇살을 받아 무지개 빛으로 부서졌고, 학생들은 부유 마법으로 교정 위를 유영하며 강의실로 향했다. 그러나 강태율에게 그 모든 화려함은 낡은 종이 한 장처럼 무덤덤하게 느껴졌다. 그는 언제나 저 완벽한 풍경 어딘가에 숨겨진 작은 균열을 찾아 헤매는 아이였다.

    “강태율! 또 딴생각이야?”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뚫고 들어왔다. 옆자리에 앉은 한세아였다. 은테 안경 너머로 그녀의 눈매는 칼날처럼 날카로웠지만, 왠지 모르게 걱정이 배어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마법 서책 ‘에테르 기초론’의 페이지를 쉼 없이 넘기고 있었다.

    “무슨 소리. 완벽하게 집중하고 있었거든.”

    태율은 피식 웃었지만, 그의 시선은 창밖의 구름다리를 떠돌고 있었다. 구름다리 너머에는 학원 설립자들의 거대한 석상이 늘어서 있었고, 그 석상들 아래, 바위투성이 절벽 깊숙한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 하나가 희미하게 보였다. 저곳은 ‘잊힌 심층부’라 불리며, 학생들이 접근 금지된 구역이었다.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해라. 이따가 ‘원소 분석’ 실기 시험인 거 잊었어? 또 최하위 찍을 셈이야?” 세아가 한숨을 쉬었다. “넌 대체 왜 이렇게… 아르카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는 거야?”

    “어울리는 게 뭔데?” 태율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 고리타분한 이론들? 아니면 밤낮없이 마력에 매달리는 미친 사람들? 난 그냥… 좀 더 흥미로운 걸 찾고 있을 뿐이야.”

    그의 말에 세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는 태율의 ‘흥미로운 것’이 보통은 문제를 일으키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야, 혹시 너 어제 그 소문 들었어?” 세아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사서 보조로 일하는 애가 그랬는데… 지하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대.”

    태율의 눈이 번뜩였다. “이상한 소리라니?”

    “뭐, 웅얼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기계음 같기도 하대. 밤마다 들린다고 하더라. 기분 나빠서 못 자겠다고 난리더라니까.”

    세아는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태율의 머릿속에서는 어제 본 학원 설계도가 스쳐 지나갔다. 학원의 가장 오래된 도서관 지하에 ‘폐기물 처리장’이라는 명목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 규모가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 단순히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한 구조였다. 게다가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거의 봉인되다시피 했다.

    “사서 보조라면… 지하 서고 쪽 이야기인가?” 태율이 중얼거렸다.

    “응. 다들 오래된 학원 괴담 정도로 치부하더라. 지하 서고 끝에는 ‘금기 연구실’이 숨겨져 있다느니, 그곳에서 과거의 위대한 마법사들이 실종됐다느니 하는.” 세아는 몸을 떨었다. “하지만 난 그런 미신 같은 건 안 믿어.”

    태율은 대답 없이 턱을 쓰다듬었다. 미신이라… 하지만 아르카나 학원에는 너무 많은 ‘미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미신들 대부분은 어딘가에 실체가 숨겨져 있었다.

    그날 오후, 태율은 ‘원소 분석’ 실기 시험에서 간신히 낙제를 면했다. 세아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곧장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폐쇄된 지 오래된 ‘고대 마법 문서 보관실’이었다. 공식적으로는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만, 태율에게는 이미 여러 개의 우회로가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낡은 복도를 따라 걸을수록 습하고 서늘한 공기가 피부에 와 닿았다. 마력으로 밝혀진 길은 희미했고, 벽에는 오래된 먼지와 거미줄이 엉겨 있었다. 마침내 보관실의 육중한 문이 나타났다. 육안으로는 단순한 낡은 문처럼 보였지만, 태율의 ‘감각 마법’은 미세한 마력 보호막을 감지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손끝에 마력을 모았다.

    “젠장, 이런 곳에까지 보안 마법이라니.”

    복잡한 마력 흐름을 역추적해 봉인을 해제하는 데 성공하자, 문은 스르륵 열렸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렸고, 태율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섰다. 보관실 내부는 어둠으로 가득했다. 그의 손끝에서 작은 빛 구슬이 떠올라 내부를 밝혔다.

    수많은 오래된 서책들과 두루마리들이 빽빽하게 쌓여 있었다. 먼지가 자욱했지만, 관리되지 않았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지런했다. 태율은 한참을 헤매다 서고의 가장 안쪽, 다른 서책들과는 다르게 검은색 철제 띠로 봉인된 낡은 목함 하나를 발견했다. 목함 위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강력한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태율은 조심스럽게 목함의 봉인을 풀었다. 철제 띠가 스르륵 풀리자,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 섬뜩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목함 안에는 낡은 양피지 두루마리 하나와 수정으로 만든 듯한 작은 단말기가 들어 있었다. 양피지는 너무 오래되어 글자가 희미해져 있었지만, 단말기는 마치 어제 만들어진 것처럼 깨끗했다.

    그는 단말기를 집어 들었다. 손에 닿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단말기 중앙의 검은 수정이 희미하게 빛나더니, 고대 문자들이 화면에 떠올랐다.

    `[접근 코드 입력 바랍니다.]`

    태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암호화된 장치였다. 이런 곳에 숨겨져 있을 정도면 단순한 물건이 아닐 터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봤다. 양피지에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낡아 해독하기 어려웠다.

    그때, 등 뒤에서 희미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지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진동은 일정하고 규칙적이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지하 깊은 곳에서 숨 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진동과 함께, 아주 희미하게, 마치 물속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우우웅… 웅… 콰직…`

    세아가 말했던 그 ‘이상한 소리’였다. 폐기물 처리장이라던가, 지하 서고 끝의 금기 연구실이라던가… 태율의 머릿속에서 파편들이 하나로 맞춰지기 시작했다.

    진동은 점점 더 강해졌다. 보관실의 낡은 서책들이 희미하게 떨리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서 알 수 없는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졌다. 단말기의 검은 수정은 더욱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는 단말기를 든 채 바닥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는 확실히 아래에서 올라왔다. 아주 깊은 곳에서. 그리고 그 소리 속에는 단순한 기계음 이상의, 무언가 생체적인 리듬이 섞여 있는 듯했다.

    갑자기, 단말기 화면의 고대 문자 옆에 새로운 문장이 깜빡이며 나타났다.

    `[에너지원 감지. 지하 층간 이동 프로토콜 활성화 대기 중.]`

    태율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지하 층간 이동’? 이 단말기는 단순한 정보 기기가 아니었다.

    그 순간, 보관실 한쪽 벽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철판이 드러났다. 철판은 아무런 문고리도, 잠금장치도 없었지만, 중앙에 마치 마력 코어를 삽입하는 듯한 원형 홈이 파여 있었다. 그리고 그 홈은, 태율이 들고 있는 단말기의 검은 수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크기였다.

    그는 천천히 단말기의 검은 수정을 그 홈에 가져다 댔다. 망설임도 잠시, 묘한 끌림에 이끌려 단말기를 끼워 넣었다.

    `철컥!`

    단말기가 홈에 완벽하게 결합되자, 거대한 철문이 이글거리는 붉은빛과 함께 천천히 옆으로 미끄러져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스며드는 것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었다. 눅눅하고 축축한, 그리고 쇠 비린내가 섞인 역겨운 공기였다. 그리고 그 너머로,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나선형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의 벽면은 알 수 없는 금속 재질로 되어 있었고, 곳곳에는 이해할 수 없는 문양과 함께 녹슨 파이프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그 통로의 가장자리에서 흘러내리고 있는 끈적하고 검붉은 액체였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피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아래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는 이제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수천, 수만 개의 목소리가 한데 엉켜 토해내는 비명 같기도 하고, 무언가 거대한 존재가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것은 심장을 옥죄는 공포 그 자체였다.

    강태율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학원의 오래된 괴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진실이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지하에는, 단순한 폐기물 처리장 따위가 아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금기가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금기의 문이 그의 눈앞에서 열렸다.

    새로운, 그리고 끔찍한 세계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시간의 조각」 1화 – 검은 돌의 속삭임

    **[장면 1: 평범한 일상 속, 이지후]**

    **1.1. 새벽녘, 낡은 원룸**
    * **컷:** 좁고 낡은 원룸 창문으로 희미한 새벽빛이 새어 들어온다. 창틀에는 먼지가 내려앉아 있고, 책상 위에는 컵라면 용기와 전공 서적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침대에는 이불을 대충 걷어찬 채 잠들어 있는 남자, 이지후(23세).
    * **지후 (독백):** (무기력한 목소리) 또 하루의 시작이라니.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지독하게 평범한 하루.

    **1.2. 지옥철 속의 지후**
    * **컷:** 출근 시간의 지옥철.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찬 지하철 칸. 지후는 다른 승객들에게 밀려 겨우 서 있다. 그의 표정에는 피곤함과 약간의 짜증이 서려 있다.
    * **지후 (독백):** 숨 쉬기도 버거운 이 도시 속에서, 나는 그저 평범한 먼지 한 톨일 뿐. 특별할 것도, 기대할 것도 없다. 그저 오늘 알바비나 제때 들어오기를 바랄 뿐이지.

    **1.3. 거리의 풍경**
    * **컷:** 북적이는 도심의 거리. 고층 빌딩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인다. 지후는 그 인파 속에서 홀로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한 모습으로 걷는다. 그의 어깨에는 낡은 백팩이 걸려 있다.
    * **지후 (독백):** 모두가 무언가를 쫓아다니는 것 같다. 성공? 행복? 나는 그저 오늘 하루를 버티는 것에 급급한데.

    **[장면 2: 고물상 ‘시간의 조각’]**

    **2.1. 낡은 고물상 입구**
    * **컷:** 낡고 허름한 건물들 사이에 끼어 있는 고물상 ‘시간의 조각’. 간판은 글자가 반쯤 지워져 있고, 유리창 너머로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다. 건물 외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다.
    * **지후:** (멈춰 서서 간판을 올려다본다) 폐업이라… 어쩐지 아쉽네. 그래도 꽤 쏠쏠했는데.

    **2.2. 고물상 내부**
    * **컷:** 고물상 안. 코끝을 찌르는 곰팡이와 퀴퀴한 먼지 냄새가 가득하다. 낡은 가구, 빛바랜 액자, 깨진 도자기들이 무질서하게 쌓여 있다. 한쪽 구석, 먼지투성이 안경을 쓴 고물상 사장 김만복(60대, 약간의 등 굽음)이 낡은 신문을 읽고 있다.
    * **지후:** 사장님, 왔습니다.
    * **김 사장:** (신문 너머로 눈길도 주지 않고) 어, 지후 왔냐. 오늘은 지하 창고 정리 좀 해줘. 이번 달까지만 영업하고 문 닫을 거라. 싹 비워내야지.
    * **지후:** (한숨을 쉬며) 네… 또 그 지하에요?

    **2.3. 지하 창고 입구**
    * **컷:** 고물상 뒤편에 있는 좁고 가파른 계단.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지후가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아래에서 습하고 차가운 공기가 올라온다.
    * **지후 (독백):** 지하 창고라… 언제나 으스스하고, 또 언제나 무언가 숨겨져 있을 것 같은 느낌.

    **2.4. 지하 창고 내부**
    * **컷:** 지하 창고의 전경. 어둡고 습기가 가득한 공간. 곰팡이가 벽을 타고 기어오르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켜켜이 쌓인 먼지 속에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온갖 잡동사니들이 웅크리고 있다.
    * **지후:** (손전등을 켜며) 흐읍… 여전히 꿉꿉하네. (콜록거린다)

    **[장면 3: 우연한 발견]**

    **3.1. 잡동사니 속의 지후**
    * **컷:** 지후가 두꺼운 면장갑을 끼고 낡은 상자들을 하나씩 뒤지기 시작한다. 거미줄이 얼굴에 달라붙고, 오래된 먼지가 공기 중으로 피어오른다.
    * **지후:** (투덜거림) 여기는 대체 뭘 이렇게 모아놨담… 버릴 건 시원하게 버려야지.
    * **컷:** 낡은 인형, 빛바랜 사진첩, 녹슨 쇠붙이들이 담긴 상자를 들어 올린다. 지후의 얼굴에는 지루함이 역력하다.

    **3.2. 수상한 나무 상자**
    * **컷:** 쌓여 있던 상자들 가장 아래에, 다른 것들과 달리 묘하게 묵직하고 견고해 보이는 나무 상자가 보인다. 겉면에는 흙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지만, 그 아래로 알 수 없는 형태의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느껴진다.
    * **지후:** (흥미를 느끼고 쪼그려 앉아) 이건 또 뭐야? 다른 것들이랑은 좀 다른데…
    * **컷:** 지후가 상자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다. 예상보다 훨씬 무겁다. 상자는 손때가 묻어 윤이 나다 못해 검게 변해 있었고, 이음새 부분은 정교하게 짜 맞춰져 있었다.

    **3.3. 상자 안의 비밀**
    * **컷:** 지후가 뚜껑을 열기 위해 상자의 잠금장치를 찾지만, 어떤 자물쇠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뚜껑과 몸통을 잇는 부분에 희미하게 눌린 자국이 있다. 지후가 본능적으로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본다.
    * **효과음:** (묵직하게) 텅-!
    * **컷:** 작게 튀어 오르듯 뚜껑이 열린다. 상자 안에는 빛바랜 붉은 벨벳 천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검은 천에 싸인 무언가가 놓여 있다.
    * **지후:** (놀라 눈을 크게 뜨며) 으음?

    **3.4. 검은 돌의 등장**
    * **컷:** 지후가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걷어낸다. 그 아래에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 돌이 모습을 드러낸다.
    * **돌의 묘사:** 돌은 마치 밤하늘을 응축한 듯 깊고 검은색을 띠고 있으며, 표면은 매끄럽고 차갑다. 하지만 차가움과 동시에 묘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하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돌의 표면에 새겨진 정교하고 신비로운 문양들이다. 마치 고대어처럼 보이기도 하고,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하다.
    * **지후:** (숨을 들이쉬며) …이건 또 뭐야. 돌멩이치고는 꽤 멋진데? 이런 건 박물관에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장면 4: 마법의 각성]**

    **4.1. 돌과의 접촉**
    * **컷:** 지후가 검은 돌을 손에 든다. 돌은 생각보다 묵직하고, 손에 닿는 감촉이 예사롭지 않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돌 표면의 신비로운 문양들을 조심스럽게 쓸어본다.
    * **효과음:** (아주 희미하게, 낮은 웅웅거리는 소리) 으으으음…
    * **컷:** 지후의 손가락이 문양 중 가장 중심에 있는 듯한 표식을 스치자, 돌에서 미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어두운 지하 창고가 푸르스름한 빛으로 희미하게 물든다.
    * **지후:** (눈을 휘둥그레 뜨며) 헉?!

    **4.2. 빛의 고동**
    * **컷:** 지후는 놀라 돌을 떨어뜨릴 뻔하지만, 돌이 마치 그의 손바닥에 달라붙은 듯 강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을 받는다. 푸른빛은 점점 강렬해지고, 낮은 웅웅거림은 고동치는 소리로 변한다.
    * **효과음:** (점점 커지는 웅웅거림, 심장 박동 소리) 쿵- 쿵- 쿵-!
    * **컷:** 지하 창고 안의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진다. 주변의 낡은 물건들이 푸른빛을 받아 희미하게 떨리는 듯하다. 먼지가 춤을 추듯 공중에 떠오른다. 지후의 몸에도 묘한 전율이 흐른다.

    **4.3. 스쳐 지나가는 환상**
    * **컷:** 지후의 눈앞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간다.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빼곡히 들어선 고대 도시의 모습,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줄기, 그리고 사람들의 경외감에 찬 표정.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고 혼란스러워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
    * **지후 (독백):** (머리가 울리는 듯한 통증) 이게… 대체… 뭐야…?
    * **효과음:** (아주 희미하게, 오래된 메아리처럼 들리는 속삭임) “마침내… 깨어나는가…”

    **4.4. 빛의 소멸, 혼돈의 잔상**
    * **컷:** 강렬했던 푸른빛이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웅웅거리던 소리도 멎고, 창고는 다시 고요하고 어두운 침묵 속에 잠긴다. 검은 돌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지후의 손에 묵직하게 들려 있다.
    * **지후:**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크게 뜨고) 하아… 하아… (돌을 바라본다)
    * **컷:** 지후의 손바닥에는 방금까지 돌이 내뿜었던 푸른 문양의 희미한 잔상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고 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다.

    **[장면 5: 혼돈의 끝, 새로운 시작]**

    **5.1. 침묵 속의 지후**
    * **컷:** 지후는 숨을 고르며 검은 돌을 바라본다. 주변은 다시 평범하고 낡은 지하 창고일 뿐이다. 모든 것이 환각이었던 것처럼.
    * **지후 (독백):**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내가 잘못 본 건가?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거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어…
    * **컷:** 그는 다시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본다. 잔상은 사라졌지만, 묘한 감각이 남아 있다. 마치 손바닥 아래에 무언가 숨겨져 있는 듯한, 따뜻한 기운.

    **5.2. 주머니 속의 비밀**
    * **컷:** 지후는 왠지 모르게 이 돌을 이곳에 두고 갈 수 없다는 강렬한 충동을 느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검은 돌을 자신의 낡은 백팩 주머니 깊숙이 넣는다. 돌이 그의 주머니 속으로 사라지자, 작은 푸른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 **지후 (독백):** (결심 어린 표정) 이게 뭔지,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내야 할 것 같아.

    **5.3. 지하 창고를 나오며**
    * **컷:** 지후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지하 창고 계단을 올라온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이전의 무기력함 대신 미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어두운 지하 창고는 그의 등 뒤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드리운다.
    * **컷:** 지후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는 그의 모습. 주머니가 희미하게 푸른빛을 머금고 있는 듯한 연출.
    * **지후 (독백):** 그날, 이지후의 평범했던 일상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리고 그 파편들 속에서,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삶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앞으로 그의 앞에 펼쳐질 세상은, 지금까지 그가 알던 것과는 완전히 다를 것이었다.


    **[1화 끝]**

  • 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그림자의 가장자리

    빛의 도시, 엘리안은 언제나 축복받은 은빛 햇살 아래 잠들어 있었다. 거대한 백색 탑들이 하늘을 꿰뚫고 솟아올라, 그 사이를 흐르는 수정처럼 맑은 강물은 순수한 생명의 노래를 불렀다. 이곳은 아리엘족의 보금자리였다. 태초의 빛에서 태어났다고 믿어지는, 영혼까지 맑은 이들. 그들은 그림자 한 점 없는 삶을 찬미했다.

    그러나 이레인은 달랐다. 그녀는 스물 해 남짓한 생애 내내, 완벽한 엘리안의 빛 속에서도 가끔 그림자의 존재를 느꼈다. 모두가 외면하는, 빛이 닿지 않는 어둠의 파동을. 특히 서쪽 경계에서 몰려오는 끈적하고 눅진한 기운은 밤마다 그녀의 여린 심장을 죄어왔다.

    “이레인, 또 거기 서 있는 거니?”

    등 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온화한 목소리에 그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엘리안의 가장 높은 탑, 생명의 전당 테라스였다. 수정 난간 너머로 펼쳐진 무한한 빛의 향연을 뒤로하고, 그녀의 시선은 늘 서쪽의 짙은 안개에 닿아 있었다. 그곳은 잊혀진 늪지대. 아리엘족에게는 금단의 땅이자, 카이젠족의 그림자가 시작되는 곳이었다.

    “어머니, 저는… 저 너머의 고통이 느껴져요. 마치 거대한 생명이 서서히 병들어가는 것처럼.”

    어머니는 이레인의 가느다란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것은 너의 몫이 아니란다, 내 딸아. 그림자는 빛이 다스릴 수 없는 영역. 우리의 역할은 그저 이 빛을 지키는 것뿐이다.”

    이레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작은 파문이 일렁이고 있었다. 그녀는 아리엘족 중에서도 특별한 ‘정화자’의 능력을 타고났다. 단순히 질병을 치유하는 것을 넘어, 대지의 고통, 생명의 불균형을 감지하고 정화하는 힘. 그리고 그 힘은 서쪽에서 오는 기운을 그저 ‘악’으로만 치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것은 마치… 썩어가는 상처처럼, 고통에 몸부림치는 존재의 아우성처럼 느껴졌다.

    며칠 밤낮을 고민하던 이레인은 결국 금기를 깨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모두가 잠든 새벽녘, 영혼을 감추는 은빛 망토를 두르고 홀로 생명의 전당을 나섰다. 평생 빛만을 밟고 살아온 이에게 어둠으로 향하는 길은 낯설고 두려웠다. 엘리안의 경계를 벗어나자마자, 찬란하던 빛은 거짓말처럼 힘을 잃었다. 공기는 차갑고 축축했으며, 아름답던 식물들은 기괴하게 뒤틀린 형태로 변해 있었다.

    “이곳은… 정말 살아있는 지옥 같아.”

    이레인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늪지대 특유의 썩은 흙냄새와 이름 모를 들짐승의 울음소리가 그녀의 오감을 마비시켰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망토를 더욱 단단히 여몄다. 발밑은 미끄러웠고, 수시로 튀어나오는 검은 덩굴들은 마치 살아있는 촉수처럼 그녀의 발목을 휘감으려 했다.

    그녀는 정화자의 감각에 의지해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강한 고통이 느껴지는 곳. 가장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
    한참을 헤치고 나아가자, 늪지대 한가운데에 기이하게 솟아오른 바위산이 나타났다. 그곳은 주변의 늪과는 달리 메마르고 삭막했으며, 검은 수정들이 뾰족하게 박혀 섬뜩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이레인의 온몸을 얼어붙게 할 만큼 강력한 그림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두려움에 주저하던 이레인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이곳까지 온 이유를 잊지 말자.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검은 수정 사이의 좁은 틈새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더욱 무겁고 탁했다. 빛 한 점 없는 동굴 속에서, 오직 그녀의 영혼만이 희미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동굴 깊숙한 곳, 거대한 검은 수정의 뿌리처럼 뻗어 나간 바위 위에 한 남자가 기대어 있었다.
    그는 카이젠족이었다.
    이레인은 숨을 헙 들이켰다. 전설과 그림책에서만 보던 존재. 아리엘족의 완벽한 아름다움과는 정반대에 선, 어둠을 닮은 피조물. 그의 피부는 잿빛이었고, 뾰족한 턱선과 날카로운 콧대는 짐승 같은 야성미를 풍겼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은 마치 심연의 어둠처럼 흘러내렸고,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검은 날개가 접혀 있었다. 날개에는 찢겨나간 듯한 흉터가 선명했고, 간간이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부상당해 있었다.
    이레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상처로 향했다. 단순히 물리적인 상처가 아니었다. 찢겨나간 날개 깃 사이로 검고 탁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끔찍한 종류의 마법이었다.

    카이젠 남자의 눈이 천천히 열렸다. 심연을 닮은 검은 눈동자. 그 눈은 이레인을 발견하자마자 번개처럼 섬뜩한 빛을 뿜어냈다. 죽음의 기운이 뒤섞인 듯한 차가운 살기가 동굴 안을 가득 메웠다. 이레인은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공포.

    “…너는… 대체….”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목소리. 카이젠 남자는 몸을 일으키려 애썼지만, 상처 때문인지 비틀거렸다. 그때, 이레인의 눈에 그의 손목에 묶인 사슬이 들어왔다. 검은 수정으로 만들어진 사슬은 그의 손목을 꿰뚫고 있었고, 그 고통 때문에 그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듯했다.

    이레인은 망설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도망쳐야 했다. 카이젠족은 아리엘족의 오랜 숙적. 그들을 향한 연민은 곧 죽음과 배신으로 이어질 것이었다. 어머니의 경고가 귓가를 맴돌았다. ‘그림자는 빛이 다스릴 수 없는 영역.’

    하지만 동시에, 정화자의 감각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저것은 단순한 악의가 아니야. 저 고통은… 너무나 깊고 끔찍해서, 외면할 수 없어. 마치 온 세상의 어둠이 한데 뭉쳐서 울부짖는 것 같았다.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검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이레인은 한 순간 모든 것을 잊었다. 증오도, 경고도, 두려움도. 오직 그 눈 속에서 읽히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슬픔만이 그녀를 붙잡았다.

    “내가… 도와줄 수 있어.”

    이레인 자신의 입에서 나온 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았다. 그의 눈에 일순 경계심과 함께 미세한 동요가 스쳐 지나갔다.

    카이젠 남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거칠었지만, 이전의 살기는 조금 옅어져 있었다.

    “너는… 아리엘인가.”

    그 질문에 이레인은 망토를 움켜쥐었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이 들통난 순간이었다. 그는 분명 그녀를 죽이려 할 것이다. 아니면, 더욱 끔찍한 방법으로 고통을 줄 수도.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의 시선은 그녀의 망토 너머, 희미하게 빛나는 그녀의 손끝에 머물렀다. 정화자의 빛.

    “어째서….”

    그는 물었다. 어째서 너는 이곳에 왔는가. 어째서 감히 내 앞에 나타났는가. 어째서 나를 돕겠다고 하는가. 수많은 질문이 그 한마디에 담겨 있었다.

    이레인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그녀는 금기를 깨고,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 와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그저… 고통을 외면할 수 없을 뿐이야.”

    그녀는 천천히 그에게 한 발짝 다가섰다. 발밑의 자갈이 부서지는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카이젠 남자는 여전히 경계심을 거두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막으려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 피어난, 아주 작은 빛.
    두 종족의 경계에서, 금지된 운명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었다.
    이레인의 손이 그의 찢겨진 날개로 향했다.

  • 오컬트 호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제목: 잊혀진 지하]**

    **[1. 뤼미에르 마법 아카데미, 중앙 도서관]**

    **[배경]** 고풍스러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으로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는 웅장한 도서관 내부. 빼곡한 책장 사이로 먼지가 춤추고, 여기저기 흩어져 앉은 학생들이 마법 서적을 읽고 있다. 공기 중에는 낡은 종이와 마법 잉크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있다.
    **[컷 1]** 아린이 두꺼운 ‘고대 마법학 개론서’를 턱을 괴고 쳐다보고 있다. 눈은 책에 있지만, 시선은 허공을 향해 멍하니 떠다닌다. 그녀의 표정은 지루함과 약간의 불만으로 가득하다.
    **[컷 2]** 옆자리에 앉은 지아가 아린을 툭 친다. 지아는 반쯤 펼쳐진 마법 서적들 사이에 파묻혀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필기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간의 주름과 함께 학구열이 느껴진다.

    **지아:** (작게 속삭이며) 야, 아린. 또 딴생각해? 벌써 중간고사 코앞이야. 이번에 낙제하면… 으으, 생각하기도 싫어. ‘추방의 마법’이라도 걸릴지 몰라!

    **아린:** (한숨 쉬며) 지루해 죽겠어. 고대 마법 이론은 매번 읽어도 머리에 안 들어와. 다 외워야 하는 게 진짜 짜증 나. 내가 이러려고 마법 학교 온 줄 알아?

    **지아:** (풋, 하고 웃으며) 그럼 네가 좋아하는 전설이나 괴담이나 읽지 그래? 아니면 교수님들 몰래 ‘금지된 서가’라도 뒤져보던가.

    **아린:** (눈을 반짝이며) 금지된 서가? 설마 그 이야기? 교장 선생님이 특별히 봉인해 뒀다는 그곳? 거기 진짜 있는 거야?

    **지아:** (책상 아래로 발로 아린을 툭 찬다) 쉿!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냥 농담이야. 거긴 우리 같은 평범한 학생들은 꿈도 못 꿀 곳이야. 감히 발 한 번 잘못 들이면 퇴학이라고. ‘재앙의 마법’이라도 걸려 있을지 모른다고!

    **아린:** (고개를 갸웃) 근데 왜 봉인했을까? 그냥 낡고 위험한 마법 서적들 때문일까? 아니면… 뭔가 숨겨진 게 있는 걸까? 지하라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잖아. 으스스한 소리가 들린다는 얘기도 들었고.

    **지아:** (눈을 굴리며) 아아, 또 그 망상병 도졌네. 지하는 그냥 낡은 창고잖아. 잡동사니들이나 쌓여있는 곳. 도서관 사서들도 접근 꺼려 하는 그냥 칙칙하고 습한 곳이라고. 내가 거기 청소하는 거 본 적 있는데, 진짜 벌레도 많고…

    **아린:** 그래도 뭔가 이상해. 왜 굳이 ‘출입 금지’ 표시까지 해놨을까? 단순히 낡은 창고라면 그럴 필요가 없잖아. 뭔가…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해.

    **[컷 3]** 아린이 고개를 돌려 책장 너머, 도서관 한쪽 구석에 있는 굳게 닫힌 낡은 철문을 응시한다. 문에는 닳아버린 붉은 글씨로 ‘관계자 외 출입 금지’라고 쓰여 있고, 그 위로는 희미한 마법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지아:** (다시 책에 집중하며) 몰라, 몰라! 그냥 우리 할 일이나 하자. 얼른 이거 외우고 실습 준비해야지. 어차피 우린 3학년 될 때까지 지하 탐험 같은 건 꿈도 못 꿔.

    **아린:** (중얼거린다) 3학년이 되어야만 지하에 내려갈 수 있다… 도대체 그 지하에 뭐가 있길래?

    **[2. 심야의 도서관, 그리고 우연한 발견]**

    **[배경]** 자정이 넘은 시간. 뤼미에르 마법 아카데미의 중앙 도서관은 어둠에 깊이 잠겨 있고, 달빛만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온다.
    **[컷 4]** 아린이 손전등을 켜고 조심스럽게 책장 사이를 걷고 있다. 그녀의 발걸음은 망설이는 듯하지만, 결국 ‘금지된 서가’와 철문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아린의 독백]** (작게) 지아는 맨날 겁만 많아서… 직접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단 말이지. 그 낡은 지하 문이 계속 신경 쓰여. 그냥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꾸 머릿속을 맴돌아…

    **[컷 5]** 아린이 낡은 철문 앞에 섰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덧대어진 자물쇠에는 오래된 마법 봉인이 걸려 있는 것이 보인다. 봉인에서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며, 강력한 마력이 느껴진다.
    **아린:** (한숨) 역시 쉽게 열릴 리가 없지. 이렇게 강력한 봉인 마법이라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잖아. 내가 배운 초급 봉인 해제 마법으로는 꿈도 못 꿀 수준이야.

    **[컷 6]** 아린이 손전등을 들어 철문 주변의 벽을 비춘다. 무심코 벽을 쓸던 그녀의 손에 다른 벽돌들과는 달리 살짝 튀어나온 낡은 벽돌 하나가 느껴진다. 벽돌의 표면은 마모되어 있었지만, 미세한 균열 사이로 희미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듯하다.
    **아린:** (눈을 가늘게 뜨며) 이건… 뭐야? 다른 벽돌이랑 다르잖아.

    **[컷 7]** 아린이 그 벽돌을 잡아당기자, ‘슥-‘ 하는 소리와 함께 벽돌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다. 그리고 동시에, 닫혀있던 철문 옆의 벽에 작게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다른 벽돌 하나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가면서 작게 공간이 생겨난다. 아주 작은,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만한 구멍. 마치 비밀번호를 입력하는 장치처럼 보인다.
    **아린:** (놀라 눈이 커진다. 흥분으로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낀다.) 이런 게 있었다고?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야.

    **[컷 8]** 아린이 손전등을 구멍 안으로 비추자, 안쪽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깜빡이는 것을 본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복잡하게 얽힌 마법 회로의 일부였다. 고대 마법의 잔재가 느껴진다.
    **아린:** (숨을 들이켠다) 봉인 마법이 걸린 게 문이 아니라… 이 장치였어? 그럼 저 철문은 단순한 장식이었단 말인가? 이걸 풀면… 지하로 가는 문이 열리는 거야?

    **[컷 9]** 아린이 벽돌을 만지작거린다. 문득, 그녀의 손에 쥐고 있던 ‘고대 마법학 개론서’가 손전등 불빛에 비친다. 그녀는 책 표지에 그려진 마모된 문양을 보다가, 벽에 새겨진 희미한 문양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섬뜩한 전율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아린:** (중얼거린다) 이건… 고대 학파의 문양? 설마… ‘마인드리스 콜렉터’에 나왔던 그 금지된 문양…

    **[3. 카이와의 만남]**

    **[배경]** 다음 날 아침, 뤼미에르 마법 아카데미 복도. 등교하는 학생들로 북적이는 시간. 활기찬 마법의 기운이 복도를 채운다.
    **[컷 10]** 아린이 전날 밤 발견한 벽돌과 문양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며 걷고 있다. 그녀의 표정에는 어젯밤의 미스터리가 아직 가득하다.
    **아린의 독백:** 그 문양… 분명히 고대 학파에서 금기시했던 마법과 관련된 거였는데. ‘봉인’과 ‘희생’을 뜻하는… 어렴풋이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컷 11]** 복도 모퉁이를 돌던 아린이 누군가와 ‘쿵!’ 소리와 함께 부딪힌다. 그녀의 ‘고대 마법학 개론서’가 바닥에 떨어지고, 페이지가 우수수 펼쳐진다.
    **아린:** 앗! 죄송합니…

    **[컷 12]** 고개를 들자, 눈앞에 선배 카이가 서 있다. 그는 항상 무표정하고 차가운 인상으로 유명하며, 아카데미 내에서도 수석 마법사로 인정받는 엘리트다. 아린은 그를 어려워한다.
    **카이:** (차가운 시선으로 아린을 내려다본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얼음장 같다.) 조심하지.

    **[컷 13]** 카이가 바닥에 떨어진 아린의 책을 주워준다. 그의 시선이 책 표지의 문양에 잠시, 아주 찰나의 순간 동안 머문다. 아린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서 미세한 동요가 스쳐 지나간 것을 보았다.
    **아린:** (재빨리 책을 받아들며) 감사합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카이:** (아무 말 없이 돌아서려는 순간, 다시 아린에게 시선을 던지며) 그 책… 흥미롭군. 요즘 학생들은 그런 고리타분한 것에 관심이 없던데.

    **아린:** (당황하며) 아… 그냥… 어제 도서관에서요… 우연히…

    **카이:** (아린에게 다시 시선을 던지며, 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경고의 뉘앙스를 담고 있었다.) 너무 깊이 파고들진 마.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 특히… ‘그곳’에 대해서라면.

    **[컷 14]** 카이는 말을 마치고 아린을 지나쳐 유유히 복도를 걸어간다. 그의 뒷모습이 뭔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아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린:** (카이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곳’이라니… 선배는 대체 뭘 알고 있는 거지? 설마… 그 지하를 말하는 건가? 내가 어젯밤 봤던 그 문양과 관련이 있는 거야…?

    **[4. 지하로 향하는 길]**

    **[배경]** 그날 밤, 다시 심야의 도서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오직 아린과 지아의 숨소리만이 들린다.
    **[컷 15]** 아린이 조심스럽게 철문 앞에 서 있다. 옆에는 잔뜩 겁먹은 지아가 서 있다. 지아의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다.
    **지아:** (떨리는 목소리로) 아린아, 정말 괜찮겠어? 괜히 호기심 때문에… 퇴학당하면 어떡하려고! 교장 선생님한테 들키면 진짜 큰일이야! 거기엔 저주라도 걸려 있을지 몰라!

    **아린:** (단호하게) 괜찮아. 난 저 봉인이 문이 아니라 장치에 걸려 있다는 걸 알아냈어. 그리고 이 책… 어제 카이 선배도 뭔가 아는 눈치였고. 난 반드시 확인해야겠어. 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지. 학교의 이 모든 위대함 뒤에… 무슨 비밀이 있는지!

    **지아:** (한숨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그래도 난 도저히 못 들어가겠어. 무슨 일 생기면… 도망칠 수도 없고! 나 정말 무섭단 말이야!

    **아린:** (미소 지으며) 괜찮아. 넌 밖에서 망만 봐줘. 만약 누가 오면 바로 신호 줘. 절대 문 안으로 들어오지 마. 내가 혼자 갈게.

    **[컷 16]** 아린이 어제 발견한 벽돌을 다시 당긴다. ‘딸깍’ 소리와 함께 벽의 구멍이 다시 나타난다. 그녀는 ‘고대 마법학 개론서’에 그려진 문양의 순서대로 손가락으로 벽돌들을 조심스럽게 누른다. 그녀의 손가락은 긴장으로 미세하게 떨린다.
    **[컷 17]** ‘위이잉-!’ 하는 낮은 기계음과 함께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문틈 사이로 퀘퀘한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갑고 음산한 기운이 새어 나온다. 마치 오랜 시간 갇혀 있던 악취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지아:** (작게 비명을 지르며) 꺄악! 열렸어! 아린아, 돌아가자! 왠지 섬뜩해! 뭔가 나쁜 기운이 느껴져!

    **아린:** (문이 완전히 열린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녀의 눈은 호기심과 긴장,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다.)

    **[컷 18]** 철문 너머, 어둠 속에 잠긴 좁고 가파른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시야에서 사라질 만큼 깊숙이 지하로 뻗어 있었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검붉은 액체가 흥건하고, 벽에는 기이하고 섬뜩한 문양들이 잔뜩 새겨져 있다. 문양들은 마치 고통받는 존재의 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컷 19]** 아린이 주저 없이 계단으로 발을 내딛는다. 그녀의 손전등 불빛이 어두운 계단을 흔들리며 비춘다. 지아는 뒤에서 겁에 질려 “아린아! 안 돼!”라고 그녀를 부르지만, 아린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그녀는 마치 어떤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보인다.
    **아린의 독백:** (심장이 쿵쾅거린다) 이 아래… 대체 뭐가 있는 거지? 학교의 가장 깊은 곳에…

    **[컷 20]** 아린의 손전등 불빛이 어두운 지하 공간을 비춘다.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펼쳐진 것은 낡은 창고가 아니었다. 거대한 원형 공간. 한가운데에는 섬뜩한 붉은색의 마법진이 거대하게 그려져 있고, 마법진 중앙에는 봉인된 듯한 거대한 검은색 수정이 박혀 있다. 수정에서는 희미한 맥동이 느껴지는 듯하며, 주변의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른다.

    **[컷 21]** 아린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공포와 경악이 뒤섞인 표정이다. 마법진 주변의 벽에는 수많은 사슬 자국과 함께, 마치 무언가가 필사적으로 탈출하려 몸부림친 듯한 긁힌 형체들이 얼핏 보인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아주 미약하게, 낮은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신음처럼, 혹은 오래된 원한처럼 들린다.

    **아린:**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이건… 도대체… 뭐야…?

    **[컷 22]** 아린이 수정에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거대한 검은 수정이 ‘팟!’ 하고 강렬한 붉은빛을 내뿜는다. 동시에 지하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억눌려왔던 듯한 거대한 비명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강타한다. 그 비명은 인간의 것이 아닌, 태고적 존재의 절규처럼 들렸다.

    **[최종 컷]** 공포에 질려 눈을 크게 뜬 아린의 얼굴 클로즈업. 그녀의 눈동자에는 충격과 함께 끔찍한 진실이 비친다. 비명 소리가 지하를 가득 채우고, 그녀의 뒤로 열려있던 철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 아린은 완전히 갇혔다.

    **[다음 에피소드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