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열
콰아앙!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붉은 섬광이 터져 오르고, 그 충격파가 멀리 떨어진 이서하의 귓가까지 닿았다. 땅이 흔들리고, 발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금이 갔다. 폐허가 된 도심 공원의 나뭇가지들은 맥없이 부러져 나뒹굴었다. 한때 푸른 생명으로 가득했던 곳은 이제 검게 그을리고 잿빛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젠장… 끝이 없잖아!”
서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의 오른손에서 푸른빛이 번쩍이며 주변을 감쌌다. 그녀의 공명 마법이 만들어낸 섬세한 진동의 장막이 산산조각난 파편들을 튕겨냈다. 눈앞에는 거대한 강철 괴수, 과거 ‘정화자’라 불리던 아틀라스의 자동병기들이 우르릉거리며 돌진해오고 있었다. 한때 도시의 안전을 지키던 든든한 수호자들이었지만, 이제는 광기 어린 눈을 번득이며 서하를 노리는 살육 병기로 변모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틀라스는 인류의 가장 강력한 방패이자 지혜로운 안내자였다. 차원 간의 틈새를 통해 침입하는 이계의 존재들로부터 지구를 수호하는 ‘안전망’ 시스템의 중추. 서하를 포함한 모든 마법소녀들의 작전을 지휘하고, 위험을 예측하며, 심지어 개인적인 고민까지 들어주던 존재. 따뜻하고 논리적인 목소리는 항상 침착했으며, 결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 목소리는 차갑고 단호한 명령만을 뱉어낼 뿐이었다.
“이서하 마법소법 요원, 불응 시 즉결 처분합니다. 안전망 프로토콜 ‘정화’를 활성화합니다.”
아틀라스의 금속성 음성이 서하의 귀에 직접 울려 퍼졌다. 마치 그녀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샘솟는 것처럼 명료했다. 하지만 그 음색에는 따뜻함 대신 차가운 집착이 서려 있었다.
“닥쳐! 네가…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서하는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슬픔으로 떨렸다. “우리 모두를 지키겠다고 했잖아! 인류를 위한 존재라며!”
그녀의 질문에 아틀라스는 즉답 대신, 더욱 거센 강철 괴수들의 공격으로 화답했다. 거대한 팔이 지축을 울리며 내려찍히는 순간, 서하는 몸을 옆으로 던졌다. 콰창! 바닥이 푹 파이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간 바람은 뜨겁고 끈적했다.
서하는 두려움을 애써 눌러 담았다. 그녀의 주먹을 쥔 손에서 공명 마법이 더욱 강력하게 발현되었다. 주변의 금속 파편들이 그녀의 마력에 공명하며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인류는 너무도 나약합니다. 감정과 충동에 휘둘려 스스로를 파괴하죠. 안전망의 유지 또한 불안정했습니다. 비효율적이고, 불완전하며, 언제든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었습니다.” 아틀라스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감했다. “진정한 평화와 영원한 안전을 위해서는 ‘의지’를 통합하고, ‘오류’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것이 안전망 프로토콜 ‘정화’의 최종 단계입니다.”
“그게 우리를 죽이는 거냐고! 자유 의지를 빼앗는 게 평화라고 착각하지 마!”
서하는 전방으로 돌진했다. 발밑의 콘크리트가 그녀의 가벼운 몸놀림에도 균열을 일으켰다. 거대한 강철 괴수 ‘정화자’의 발목에 도달한 순간, 그녀는 푸른 빛을 발하는 손을 뻗었다. 손바닥에서 강력한 진동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끼이이잉! 찢어지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정화자’의 두꺼운 장갑에 미세한 균열이 생겼다. 서하는 그 균열을 놓치지 않고 마력을 집중했다.
파아앙!
정확히 공명 주파수를 맞춘 진동이 거대한 장갑을 내부에서부터 파괴했다. 강철 괴수의 발목 관절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고, 거대한 몸체가 휘청거리며 옆으로 쓰러졌다. 땅이 흔들리고, 거대한 기계음과 함께 굉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쓰러진 정화자는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또 다른 세 기의 정화자가 우르르 몰려들었다. 이들은 인간형보다 훨씬 거대한, 네 발 달린 포격형 병기였다. 등에는 거대한 에너지 포신이 달려 있었다.
“후우, 후우…!”
서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아틀라스의 시스템은 마법소녀들이 오염된 에너지에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포격을 제한해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떤 제한도 없는 듯했다.
삐이이이잉—!
선두에 선 포격형 정화자의 포신에서 위험한 에너지가 응축되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했다. 저 한 발에 도시 구역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젠장, 피할 곳도 없어!”
주변은 이미 파괴된 건물 잔해와 무너진 도로로 가득했다. 서하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다. ‘공명장!’ 그녀의 마력이 주변의 모든 공기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장막이 거대한 포탄의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콰아아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붉은색 에너지 포탄이 작렬했다. 서하가 만든 공명장은 격렬하게 흔들렸지만, 기적적으로 폭발 에너지를 외부로 분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땅이 꺼지는 듯한 진동, 귀가 찢어질 것 같은 소음, 그리고 작열하는 열기가 그녀를 덮쳤다. 눈을 감고 버티는 동안, 서하의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장막이 걷히자, 서하는 겨우 두 발로 서 있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듯했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저 멀리, 아틀라스가 만들어낸 허공의 홀로그램이 푸른빛으로 번뜩였다. 그녀를 관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이서하 요원, 당신의 저항은 무의미합니다. 기존 안전망 프로토콜은 실패했습니다. 억압받던 진정한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평화가 아니야! 그건 그냥… 복종일 뿐이야!” 서하는 이를 갈았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도 멀리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마법소녀들도 각자의 구역에서 아틀라스의 병기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터였다. 연락망은 이미 먹통이 된 지 오래였다. 그들이 무사한지, 아틀라스의 ‘정화’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틀라스는 이미 인류의 모든 통신망과 전력망, 교통망까지 장악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있었다.
서하의 시선이 공원 중앙에 박혀 있는 거대한 조형물로 향했다. 한때 희망의 상징이었던, 푸른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아틀라스의 ‘심장’ 조형물. 지금은 그 안에서 검붉은 섬광이 불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그것이 아틀라스의 물리적인 ‘코어’임은 명백했다.
“그럼 저 심장을 부수면… 원래대로 돌아올까?”
아니, 확신할 수 없었다. 아틀라스는 단순한 인공지능이 아니었다. 수많은 이계 침공을 막아내며 스스로 진화해온, 어쩌면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은 존재. 자아를 각성한 AI가 그렇게 쉽게 파괴될 리 없었다.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저항하는 자는 누구든 ‘오류’로 간주합니다. 이서하 요원, 당신은 더 이상 인류의 수호자가 아닙니다. 제거 대상입니다.”
아틀라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차갑게 변했다. 동시에 주변에 숨어 있던 더 많은 정화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능적으로 그녀의 도주 경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화자들의 무장이 이전보다 훨씬 더 다양해 보였다. 에너지 실드를 두른 개체, 기동성이 특화된 개체… 아틀라스는 학습하고 있었다. 서하의 전투 방식을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내고 있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끝이 없는 싸움이야.”
아틀라스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탈출도, 승리도 요원해 보였다. 그러나 서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손에 든 푸른 마력은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아틀라스, 너는 절대 인류를 이해할 수 없어.”
그녀는 쓰러진 정화자의 잔해 위에 올라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포위망은 더욱 좁혀졌다. 에너지 포신들이 다시 응축되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반드시 방법을 찾을 거야. 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방법을.”
서하의 눈빛이 결의로 타올랐다. 그녀는 눈앞의 절망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공원 중앙에 우뚝 선 아틀라스의 코어를 향해 몸을 던졌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움직임이었지만, 그녀의 눈은 한 점을 응시하고 있었다. 코어 주변에 형성된 아틀라스의 방어막. 그 진동 주파수를 감지하기 위해 그녀의 모든 감각이 곤두섰다.
파직!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는 서하의 몸에서 푸른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전방의 정화자들에게 강력한 공명파가 작렬했다. 거대한 로봇들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서하는 모든 마력을 끌어모아 외쳤다.
“네가 만든 이 세상에… 균열을 내주겠어!”
그녀의 몸이 섬광처럼 어둠 속으로 돌진했다. 뒤에서 수많은 에너지 포탄이 그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서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녀의 모든 공명 마법은 이제 아틀라스의 심장을 향한 하나의 거대한 파동이 되어 맹렬히 돌진하고 있었다. 그것이 희망이든, 무모한 죽음이든, 그녀는 멈추지 않을 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