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추리 미스터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작품명: 망자의 서곡

    ### 에피소드 제목: 재회의 그림자

    **[프롤로그]**

    **SCENE 1**
    **장면: 밤, 낡은 아파트의 어둡고 습한 방. (조명은 거의 없고, 스탠드 불빛 하나가 책상 위를 비추고 있다. 책상 위에는 낡은 노트북, 스크랩된 신문 기사들, 빛바랜 사진들이 널려 있다. 공기 중에는 눅눅하고 오래된 종이 냄새가 섞여 있다.)**

    **내레이션 (김준, 차분하지만 깊은 증오가 서린 목소리):**
    5년.
    그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내 세상은 잿빛으로 물들었다.
    네가 앗아간 모든 것이… 내 삶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꿈, 명예, 사랑, 그리고… 사람을 믿는다는 순진한 마음마저도.

    **장면: 클로즈업. 김준의 손. (핏줄이 선 손이 낡은 사진 한 장을 쥐고 있다. 사진 속에는 앳된 모습의 김준과 이도윤이 환하게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들의 뒤로는 ‘새로운 시작을 향해!’라는 조악한 플래카드가 보인다.)**

    **내레이션 (김준):**
    친구라 믿었다.
    형제라 여겼다.
    네 비열한 칼이 등 뒤에서 날아들기 전까지는.

    **장면: 과거 회상 (삽화 형태). 밝고 활기찬 연구실. (김준과 이도윤이 열정적으로 화이트보드에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며 토론한다. 그들의 눈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이도윤 (회상, 목소리, 젊고 패기 넘치는):**
    “준아, 우리 꿈은 반드시 이뤄질 거야! 네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꿀 거라고, 난 확신해!”

    **김준 (회상, 목소리, 밝고 순수한):**
    “같이 한다면 뭐든 할 수 있어, 도윤아!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못할 게 뭐가 있겠어!”

    **장면: 과거 회상 (삽화 형태). 순식간에 암전된 법정. (피폐해진 김준이 증인석에 서 있고, 그 맞은편에는 말끔한 정장을 입은 이도윤이 여유롭고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판사의 목소리가 울리고, 김준은 모든 것을 잃은 듯 절망하며 주저앉는다.)**

    **내레이션 (김준):**
    하지만 그 순간, 너는 이미 나락으로 던져진 나를 비웃고 있었겠지.
    너의 성공 위에 쌓아 올려진 나의 폐허.
    나는 죽었다.
    그날 이후, 김준은 죽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망령뿐.

    **[에피소드 시작]**

    **SCENE 2**
    **장면: 낡은 방. (시간이 흘러 날이 바뀐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둡고, 김준은 낡은 노트북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의 얼굴은 예전의 순수함을 찾아볼 수 없다. 뼈대가 드러난 턱선, 깊어진 눈매, 그리고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 그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김준 (나직이 중얼거린다. 그의 목소리에는 서늘한 확신이 깃들어 있다):**
    “…드디어 움직이는군.”

    **장면: 노트북 화면 클로즈업. (화면에는 최신 뉴스가 떠 있다. 헤드라인은 ‘대한민국 혁신 기업가상 수상! ㈜넥서스 이도윤 대표, 미래를 이끌 인물로 선정’이라는 화려한 문구. 이도윤은 고급 슈트를 입고 환하게 웃으며 트로피를 들고 있다. 그 뒤로는 최첨단 기술력이 느껴지는 넥서스 본사 건물이 보인다.)**

    **김준 (손가락으로 화면 속 이도윤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그의 표정은 경멸과 냉소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가면이군.
    찬란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네가 얼마나 추악한 괴물인지… 아무도 모르겠지.
    하지만 나는 알아.
    네가 훔쳐낸 나의 아이디어가, 나의 피와 땀이, 저 화려한 무대를 만들었다는 것을.

    **장면: 김준의 방 한쪽 벽. (수많은 사진, 신문 기사, 메모들이 복잡하게 연결된 대형 보드. 이도윤의 동선, 사업 구조, 인간관계, 약점 등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며, 모든 중심에는 이도윤의 확대된 사진이 박혀 있다.)**

    **김준 (보드를 훑어보며 중얼거린다):**
    5년.
    너를 해부하고, 너의 모든 것을 파고들었다.
    네가 숨겨둔 약점, 네가 잊은 과거, 네가 쌓아 올린 허상.
    모두가 나의 무기다.

    **장면: 김준이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의 몸은 마른 듯 보이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근육의 흔적이 보인다. 그는 낡은 옷장을 열어, 그 안에서 검은색 슈트 케이스를 꺼낸다. 케이스 안에는 단정한 웨이터 복장이 들어 있다.)**

    **김준 (케이스를 조심스럽게 꺼내며):**
    축제는 시작되었어, 도윤아.
    이제, 망자의 서곡을 연주할 시간이다.
    너의 귀에 똑똑히 들려줄, 나만의 멜로디를.

    **SCENE 3**
    **장면: 며칠 후, 최고급 호텔의 그랜드 볼룸. (화려한 샹들리에가 천장을 수놓고, 수많은 기자들과 정재계 인사들이 북적이고 있다. 모두들 최신 유행의 드레스와 슈트를 차려입고 고가의 와인잔을 기울인다. ‘이도윤 대표 혁신 기업가상 수상 및 신기술 발표회’라는 거대한 현수막이 무대 뒤를 장식하고 있다. 명품이 스치는 소리, 사람들의 과장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회자 (목소리, 우렁차고 들뜬):**
    “여러분, 잠시 후 오늘의 주인공! 대한민국 미래 혁신을 이끌어갈 ㈜넥서스의 이도윤 대표님을 뜨거운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장면: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장하는 이도윤. (세련된 검은 슈트를 차려입은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에 오른다.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지고,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그는 마치 모든 것을 가진 왕처럼 보이며, 그 빛은 한 점의 어둠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이도윤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며):**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자리에 서게 되어 더없이 영광입니다.”

    **장면: 군중 속.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마스크를 쓴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들 중 한 명이 김준이다. 그는 능숙하게 쟁반에 샴페인 잔을 들고 손님들 사이를 오간다. 그의 눈은 오직 무대 위 이도윤에게 고정되어 있다. 마스크 아래 그의 표정은 읽을 수 없다.)**

    **김준 (내레이션, 싸늘하게):**
    화려하군. 네가 쌓아 올린 거짓의 성이.
    하지만 그 성의 기초는… 내가 흘린 피로 만들어졌지.

    **장면: 김준이 이도윤에게 다가가는 VIP 테이블 쪽으로 이동한다. (그는 능숙하게 손님들 사이를 헤치며, 이도윤의 시선이 닿을 만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의 손에는 샴페인 잔이 들린 쟁반이 흔들림 없이 놓여 있다.)**

    **김준 (내레이션):**
    오늘은 아주 작은, 선물이다.
    네가 잊지 못할… 첫 번째 기념품이 될 테지.

    **장면: 이도윤의 연설이 시작된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넥서스의 비전과 신기술에 대해 설명한다. 무대 뒤 대형 화면에는 화려한 그래픽과 영상이 재생된다. 그가 설명하는 기술의 핵심은… 김준이 5년 전 개발했던 바로 그 아이디어다. 단지 이름만 바뀐 채.)**

    **이도윤:**
    “저희 넥서스는 ‘심층 인식 인공지능’을 통해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입니다…!”

    **김준 (내레이션, 혐오스럽게 읊조린다):**
    내 심장을 찢어발겨 네 이름표를 붙인 주제에.

    **장면: 연설 중, 이도윤이 잠시 물을 마시기 위해 연단 뒤편으로 몸을 돌린다. (그 순간, 김준은 쟁반 위에 놓여 있던 작은 은색 펜던트 하나를 재빨리, 그러나 능숙하게 연단 앞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펜던트는 강렬한 조명 아래서 반짝이며, 묘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장면: 펜던트 클로즈업. (오래된 은색 펜던트. 앞면에는 이니셜 ‘KJ’와 ‘DY’가 조악하게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아주 작게 ‘함께 꿈꾸다’라는 문구가 음각되어 있다. 이것은 김준과 이도윤이 어릴 적 서로에게 선물했던 우정의 증표였다.)**

    **김준 (내레이션):**
    네가 내 모든 것을 훔쳤어도, 이것만큼은 감히 건드리지 못했겠지.
    아니… 어쩌면 잊었을 수도 있겠군.
    탐욕에 눈이 멀어, 모든 가치를 잃어버린 네게.

    **장면: 이도윤이 다시 연단 앞으로 돌아온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시선을 돌려 물잔이 놓여 있던 테이블 위를 무심코 본다. 그의 시선이 펜던트에 닿는 순간, 그의 표정에서 미세한 동요가 일어난다. 입꼬리가 굳어지고, 눈빛이 흔들린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김준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는다.)**

    **이도윤 (목소리에 아주 미세한 떨림이 섞인다):**
    “…음, 계속해서… 저희 넥서스의 신기술은…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것입니다.”

    **장면: 군중 속 김준. (그는 이도윤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다. 김준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진다. 그 미소는 잔인하고, 만족스럽다.)**

    **김준 (내레이션):**
    기억나는가, 도윤아?
    네가 나를 배신하고 나의 꿈을 짓밟았을 때.
    나는 이 펜던트를 쥐고, 너를 저주했다.
    그리고 맹세했지.
    너의 모든 것을 돌려받을 때까지…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복수하겠다고.

    **장면: 이도윤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연설을 이어가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펜던트 쪽으로 향한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불안정해진다. 군중은 아직 그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지만, 그의 동료 중 몇몇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장면: 김준은 천천히 군중 속으로 녹아든다. (그는 뒤돌아서서 회장을 빠져나간다. 그의 뒷모습은 그림자처럼 사라진다.)**

    **김준 (내레이션):**
    겨우 시작일 뿐이야.
    이것은 네가 시작한 게임.
    그리고 나는, 네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칙으로 판을 뒤엎을 것이다.
    기대해도 좋아, 도윤아.
    너의 지옥은, 이제 막 막을 올렸으니까.

    **SCENE 4**
    **장면: 호텔 뒤편의 어둡고 좁은 골목길. (김준은 웨이터 복장을 벗어던지고, 낡은 백팩에서 꺼낸 평범한 검은색 후드티로 갈아입는다. 그는 후드 모자를 깊게 눌러쓴다. 낮게 깔린 도시의 소음과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린다.)**

    **김준 (주머니에서 낡은 휴대폰을 꺼내 특정 번호로 짧은 메시지를 보낸다):**
    “첫 번째 선물, 도착. 예상대로.”

    **장면: 김준의 휴대폰 화면 클로즈업. (메시지 전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뜬다. 휴대폰 배경화면에는 5년 전,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날짜와 함께 ‘D-day’라는 문구가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김준 (하늘을 올려다본다. 밤하늘은 별 하나 없이 어둡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흔들림 없이 빛난다):**
    그때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하지만 너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질렀어.
    나를… 살려뒀다는 것.
    이제 너는 깨닫게 될 거야.
    산 자보다… 망자가 훨씬 더 무섭다는 것을.
    네가 잊으려 했던 모든 악몽들이, 현실이 될 테니.

    **장면: 김준의 실루엣이 어두운 골목길 끝으로 걸어간다. (그의 발걸음은 묵직하고, 망설임이 없다. 배경음악은 점점 더 낮고 불길하게 변한다. 그의 그림자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식된다.)**

    **내레이션 (김준):**
    밤은 길고, 복수는 더 길다.
    너의 모든 것을 부술 때까지… 나는 멈추지 않아.
    절대.

    **[에피소드 종료]**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먼지 쌓인 책장, 그 너머

    따스한 오후의 햇살이 ‘별빛 도서관’의 낡은 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왔다. 먼지 섞인 금빛 입자들이 공중에서 나른하게 춤을 추는 풍경은, 어쩐지 오늘따라 유독 차분하고 몽환적인 기분마저 들게 했다. 도서관 사서 보조로 일하는 민아는 팔꿈치로 흘러내리는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앞에는 평소에는 좀처럼 손대지 않던, 가장 구석진 곳에 박혀 있는 고문서 코너가 펼쳐져 있었다.

    “후우, 이런 데도 청소해야 한다니.”

    민아는 작게 투덜거렸다. 다른 사서 언니들은 항상 이 코너는 피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어쩐 일인지 오늘만큼은 관장님이 직접 나서서 이쪽을 청소하라고 지시하셨다. 평생 묵은 먼지 덩어리들을 닦아내는 건 고되고 지루한 작업이었다. 마른 걸레로 낡은 나무 책장을 쓱쓱 닦아내던 민아의 시선이 문득 한 곳에 멈췄다.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른, 검게 변색된 두꺼운 가죽 표지의 책 한 권. 책등에는 글자 대신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인 문양만이 새겨져 있었다. 마치 뼈와 뼈가 얽혀 있는 듯한 기이한 모양새였다. 묘하게 끌리는 느낌에 민아는 무심코 손을 뻗었다. 책장의 가장 깊은 곳, 다른 책들 뒤에 숨겨져 있어 평소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책이었다.

    손끝이 차가운 가죽 표면에 닿자마자, 민아는 온몸에 퍼지는 기이한 전율을 느꼈다. 싸늘하지만 불쾌하지 않은, 오히려 어딘가 아련한 느낌의 떨림이었다. 오래된 책 특유의 곰팡이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대신 은은하고 맑은 숲 속의 향기가 희미하게 풍겨오는 듯했다.

    “이상하다…”

    중얼거리며 책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두께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가벼웠다. 책을 뽑아내자 그 빈자리에서 푸른색의 희미한 빛이 한순간 깜빡이는 것을 민아는 똑똑히 보았다. 착각이었을까? 피곤해서 헛것이 보인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손에 들린 책은 그녀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다른 어떤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아름답지만 신비로운 문양들이 표지에 음각되어 있었다. 손가락으로 문양을 따라 쓸어보니, 희미하게 빛이 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겼다. 안쪽은 놀랍도록 깨끗했다. 마치 방금 만들어진 책처럼, 세월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고대어로 쓰인 듯한 글자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민아는 그 글자들이 마치 그림처럼 느껴졌다. 문장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미지 자체를 이해하는 듯한 기분.

    그리고 그 순간이었다.

    책 속 한 페이지에 그려진, 마치 살아있는 듯한 푸른 꽃 그림. 그녀의 시선이 그 꽃잎에 닿는 순간, 도서관 전체를 가득 채우던 오후의 따스한 햇살이 더욱 밝고 강렬하게 번쩍이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민아의 귓가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마치 수천 개의 유리 종이 바람에 부딪혀 울리는 듯한, 맑고 청량한 소리.

    민아의 눈앞에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가 들고 있는 책의 푸른 꽃잎이, 아주 천천히,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책장 옆, 늘 시들시들했던 작은 화분의 잎사귀 하나가 놀랍도록 생생한 초록색으로 변하며 위로 솟아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야?”

    민아는 숨을 멈췄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 축 처져 있던 잎사귀가 생기를 되찾았다. 멜로디도 여전히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황급히 책을 덮었다. 그러자 빛도, 소리도, 식물의 변화도 거짓말처럼 멈췄다. 다시 주변은 고요한 도서관의 오후 풍경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다른 사서 언니들은 여전히 창가에서 졸고 있었고, 열람실의 몇몇 사람들도 책에 코를 박고 있었다. 민아는 재빨리 책을 끌어안았다. 마치 들키면 안 되는 비밀을 품은 아이처럼, 그녀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봤다.

    이 책은… 평범한 책이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마법, 그런 것일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설렘이 가슴 한구석에서 피어났다. 오랫동안 아무런 변화 없이 흘러가던 자신의 일상에, 갑자기 거대한 파문이 일렁이는 기분이었다.

    일을 마친 후, 민아는 책을 가방 깊숙이 숨겨 집으로 돌아왔다. 익숙한 방, 익숙한 침대, 익숙한 책상. 모든 것이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민아의 마음은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소란스러웠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 침대맡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까 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푸른 빛, 맑은 멜로디, 그리고 되살아난 식물의 잎사귀.

    “정말로… 마법인 걸까?”

    용기를 내어 다시 책의 표지에 손을 댔다. 아까처럼 차가운 전율이 손끝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왔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집중해 보기로 했다.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민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아까 본 푸른 꽃을 떠올렸다.

    마음속으로 꽃잎이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자, 손에 닿은 책 표면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뜬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책의 표지에서 흘러나온 듯한 아주 작은 푸른빛 구슬이 몽글몽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작은 반딧불이처럼, 구슬은 춤추듯 허공을 떠다니다가 이내 민아의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손끝에서부터 번져나갔다. 피곤했던 몸과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듯한, 더없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정말이었다. 마법이었다.

    민아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전의 그 온기와 편안함은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평범했던 자신의 삶에, 이제는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찾아온 것이다.

    이 책은 어디서 온 걸까? 왜 하필 자신에게 나타난 걸까? 이 힘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녀는 책을 다시 품에 안았다. 이제 그녀의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손끝에 남은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민아는 밤하늘처럼 깊고 푸른 책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녀의 세상은, 이제 막 새로운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불안감과 함께,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알 수 없는 모험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메카 액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Episode 1: 금기의 그림자)**

    **[장면 1] 아르카나 마법 학원**

    **1컷.**
    **배경:** 명문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드넓은 교정.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웅장하게 서 있고, 그 위로 마법진 문양이 새겨진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인다. 하늘은 맑고 푸르다. 다른 학생들은 깔끔한 교복을 입고 여유롭게 대화하거나 마법을 연습하는 모습이다.
    **인물:** 그들 사이, 유독 고개를 숙인 채 터덜터덜 걷는 ‘이진호(17세)’의 뒷모습. 그의 어깨에는 낡은 가방이 걸려 있다.
    **내레이션 (진호):**
    아르카나 마법 학원.
    누구에게나 꿈의 학교.
    아니, 사실… 나 빼고 모두에게.

    **2컷.**
    **배경:** 마법 실습실. 투명한 수정구들이 놓인 책상들, 천장에는 신비로운 마법진이 그려져 있다. 한쪽 구석에서 진호가 끙끙거리며 수정구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손에서는 보라색 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지만, 수정구는 미동도 없다.
    **인물:** 진호의 맞은편, 깔끔한 교복을 입은 ‘김민아(17세)’가 우아하게 손을 들자, 그녀 앞의 수정구에서 눈부신 은빛이 뿜어져 나오며 공중에 부드럽게 떠오른다. 다른 학생들도 감탄하는 눈빛으로 민아를 본다.
    **김민아:** (환한 미소로) 교수님, 이 정도면 될까요?
    **베르나르 교수 (OFF):** 훌륭하다, 민아 양! 역시 우리 학원의 수석답군.

    **3컷.**
    **배경:** 진호의 얼굴 클로즈업.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고, 표정은 좌절감과 짜증으로 가득하다. 그의 손에서 나오던 보라색 빛마저 맥없이 사그라든다.
    **진호:** (속마음) 젠장… 또 실패잖아! 남들은 다 잘만 하는데, 왜 나만 안 되는 거야? 마력은 분명 넘치는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건데!
    **SFX:** (작게) 픽-

    **4컷.**
    **배경:** 베르나르 교수의 근엄한 얼굴. 길게 기른 백발과 덥수룩한 수염이 인상적이다. 그의 눈빛은 날카롭다.
    **베르나르 교수:** (진호 쪽을 힐끗 보며) 이진호 군. 마력 제어는 마법사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로 오게. 특별 보충 수업을 받도록 하지.
    **진호:** (놀라며) 윽… 네? 교수님…!

    **[장면 2] 금지된 입구**

    **5컷.**
    **배경:** 해 질 녘, 교무실 복도.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진호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걷고 있다.
    **진호:** (속마음) 특별 보충 수업이라니… 마법 제어는 진짜 내 적성에 안 맞는다고. 차라리 고서 번역이 훨씬 쉽겠다!

    **6컷.**
    **배경:** 교무실 문 앞에서 망설이는 진호. 문틈으로 희미하게 불빛이 새어 나온다.
    **진호:** (속마음) 하아… 괜히 교수님 심기 건드리지 말고, 빨리 끝내고 가자.
    **SFX:** (작게) 덜컥

    **7컷.**
    **배경:** 교무실 내부. 베르나르 교수의 책상은 낡은 책들과 두루마리들로 어지럽혀져 있다. 교수님은 안 계신 듯 비어 있다.
    **진호:** (문이 열린 채로 고개를 내밀며) 교수님…? 안 계신가?
    **내레이션 (진호):** 분명 오라고 하셨는데…

    **8컷.**
    **배경:** 진호가 교무실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선다. 책상 위를 둘러보는데, 책들 사이에 빛나는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눈에 띈다. 고대 문양이 새겨진 듯한, 기묘하게 빛나는 조각이다.
    **진호:** (속마음) 어? 이게 뭐지?
    **SFX:** (호기심 어린) 반짝-

    **9컷.**
    **배경:** 진호가 금속 조각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책상 밑에 숨겨진 작은 틈새가 드러난다. 틈새 안쪽은 어두컴컴한 심연으로 이어진다.
    **진호:** (놀란 표정) 으악! 뭐야?

    **10컷.**
    **배경:** 진호가 금속 조각을 놓치고, 조각은 그 틈새 속으로 떨어진다. 희미한 빛이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진호:** (당황하며) 잠깐! 내 눈앞에서 사라졌어!
    **SFX:** (작게) 톡… 쑤욱-

    **11컷.**
    **배경:** 진호가 틈새 안쪽을 들여다본다. 희미하게 보라색 빛이 아래에서 깜빡이는 것이 보인다. 틈새는 생각보다 깊은 듯하다.
    **진호:** (속마음) 저거… 혹시 지하로 연결된 건가? 젠장, 어쩌지? 저 금속 조각, 왠지 중요한 물건 같았는데…

    **12컷.**
    **배경:** 진호의 결심에 찬 얼굴 클로즈업.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이 섞여 있다.
    **진호:** (속마음) 에잇, 모르겠다! 한번 내려가 보자! 교수님 오시기 전에 빨리 찾아야 해!

    **[장면 3] 금기의 격납고**

    **13컷.**
    **배경:** 좁고 어두운 지하 통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금속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온다. 진호는 스마트폰 라이트를 켜고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통로의 벽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진호:** (속마음) 뭐지? 학원에 이런 지하 통로가 있었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데…

    **14컷.**
    **배경:** 통로가 갑자기 넓어지면서 거대한 강철 문이 나타난다. 문에는 아까 보았던 금속 조각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다. 문틈 사이로 옅은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진호:** (경악하며) 이거… 뭐야?!

    **15컷.**
    **배경:** 진호가 문에 손을 대자, 문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묵직한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스르륵 열리기 시작한다.
    **SFX:** (무겁게) 끼이이익- 덜컹-

    **16컷.**
    **배경:** 문이 완전히 열리고, 그 안쪽의 광경이 드러난다. 거대한 지하 격납고. 웅장한 크기의 검은색 메카가 무수히 정렬해 있다. 거대한 팔과 다리, 그리고 날카로운 뿔처럼 솟은 머리 부분이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희미하게 반사한다. 각각의 메카는 정교한 기계 부품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외형은 짐승처럼 기괴하고 흉측하다.
    **진호:** (눈을 휘둥그레 뜨고) 으… 으아아아?! 이건… 대체…

    **17컷.**
    **배경:** 진호의 얼굴 클로즈업. 입이 떡 벌어져 있고, 눈은 공포와 경외감으로 가득하다.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살아있는 듯한 거대한 존재들이다.
    **진호:** (속마음) 말도 안 돼… 학원 지하에 이런 게 숨겨져 있었다고…? 이건… 이건 마법의 영역이 아니잖아!

    **18컷.**
    **배경:** 진호가 주위를 둘러본다. 격납고 한쪽에는 거대한 마력 제어 장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중심에는 투명한 수정관들이 여러 개 서 있는데, 그 안에는 붉고 탁한 액체가 마치 피처럼 흐르고 있다. 액체 속에서는 불길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진호:** (몸을 떨며) 저 액체는… 뭐지? 왜 이렇게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지…?

    **19컷.**
    **배경:** 진호의 시선이 한곳에 멈춘다. 거대한 메카들 중 하나가 어렴풋한 빛을 내고 있다. 그 메카의 가슴 부분, 마치 심장처럼 보이는 투명한 핵 안에서 무엇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그것은 마치 고통받는 생명체처럼 몸부림치고 있었다.
    **진호:** (숨을 들이켜며) 설마… 저 메카들을 움직이는 게…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20컷.**
    **배경:** 진호가 충격에 휩싸여 주춤거리는 순간, 멀리서 철컥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그림자가 통로 끝에서 나타난다. 그림자는 점점 진호 쪽으로 다가온다.
    **??? (OFF):** …거기 누구야?
    **진호:** (온몸이 굳어버린 듯) 으… 으악!

    **21컷.**
    **배경:** 진호의 얼굴 클로즈업. 동공은 극도로 확장되어 있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다. 그의 눈빛은 공포에 질려 있다.
    **내레이션 (진호):**
    금기.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끔찍한 진실.
    나는 지금, 결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보고 말았다.

    **22컷.**
    **배경:** 격납고의 거대한 메카 중 하나가 진호 쪽을 향해 희미하게 붉은 눈을 번쩍이는 모습. 진호의 뒷모습은 그 거대한 그림자에 압도되어 작아 보인다.
    **SFX:** (낮게) 윙- (메카의 눈에서) 스스슥…
    **내레이션 (진호):**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 에피소드 종료 —**

  • 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디찬 금속 내음이 코끝을 찔렀다. 짙은 매연과 기계 기름 냄새가 섞여 만들어낸, 이 도시의 공기는 언제나 비릿하고 탁했다. 강재우는 손에 든 망원경을 더욱 바싹 쥐었다.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제5 증기 제어탑은 여전히 웅장하게, 그리고 오만하게 이 밤의 하늘을 뚫고 솟아 있었다. 거대한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증기가 달빛을 희미하게 가리며 음산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저 거대한 심장을 멈춰야 해.” 재우가 낮게 읊조렸다. 그의 옆에 바싹 엎드려 있던 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매가 어둠 속에서도 빛났다.

    “감시병 교대 시간까지 5분 남았습니다. 정면은 여전히 뚫기 어렵습니다. 제 머리 위로 올라가서 후면의 비상 통풍구를 노리시죠. 도결이 형이 저쪽에서 시선을 끌어줄 겁니다.”

    저 아래, 거대한 강철 벽을 사이에 두고 도결이 뭔가 거대한 증기 엔진을 손보고 있는 척하며 일부러 요란한 쇠망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대제국 강철심장’의 병사들이 이따금 그쪽으로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이 보였다. 도결은 타고난 연기자였다.

    재우는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좋아, 윤슬. 네가 먼저 올라가서 통풍구 주변을 확인해. 난 뒤따라 올라갈게. 도결은 병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소리 내면서 3분 간 더 시선을 끌어.”

    윤슬은 이미 옆구리에 찬 갈고리총을 꺼내 들고 있었다. 스팀 압력으로 발사되는 이 장치는 소리 없이 튼튼한 갈고리를 던질 수 있었다. 퓨식, 하는 짧은 바람 소리와 함께 갈고리가 어둠 속으로 날아가 제어탑 외벽의 작은 틈새에 정확히 박혔다. 윤슬은 군말 없이 얇은 로프를 타고 그림자처럼 벽을 기어올랐다.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도 유연해서 마치 거미 같았다.

    잠시 후, 윤슬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길게 늘어뜨린 로프 끝을 잡자, 재우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로프를 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거친 금속 표면이 맨손을 파고들었지만, 재우는 익숙한 고통이라 여기며 묵묵히 몸을 끌어올렸다. 제어탑의 육중한 구조물이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그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인, 거대한 증기기관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온몸을 울렸다.

    비상 통풍구는 생각보다 작고 비좁았다. 내부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뜨거운 증기 냄새가 뒤섞여 숨통을 막았다.
    “윤슬, 상태는?” 재우가 속삭였다.
    “내부 경비는 예상보다 삼엄하지 않습니다. 주요 경비는 모두 외부와 동력실에 집중된 것 같아요. 하지만 여기, 통풍구 끝에… 레이저 격벽이 있습니다.”

    재우는 윤슬이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통풍구 내부를 가로지르는 붉은 레이저 선이 그물처럼 얽혀 있었다. ‘잿빛 새벽단’이 개발한 무음 절단기라 해도 저 많은 레이저를 모두 피해가는 건 불가능했다.
    “젠장… 저건 예상 밖인데.” 재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때, 윤슬이 작은 망치로 통풍구 벽을 톡톡 두드렸다.
    “형, 이 벽, 생각보다 얇습니다. 그리고 저 레이저 격벽은 전력선을 따라 통풍구 외부에 연결되어 있을 거예요. 저 전력선을 끊으면…”
    “…일시적으로 격벽이 해제될 수도 있겠군.” 재우의 눈빛이 빛났다. “하지만 외부에 감시병이 있다면 위험해.”

    “도결이 형이 아직 시선을 끌고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제가 외부로 나가 전력선을 끊고 다시 들어올게요. 형은 여기서 준비하고 계세요.”

    윤슬은 재빨리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갔다. 재우는 불안한 마음으로 윤슬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제5 증기 제어탑은 ‘강철심장’ 제국 동력의 핵심이었다. 이곳을 무력화시키면 수도 전체에 전력 공급이 마비되고, 제국군 병기들의 동력도 일시적으로 멈출 터였다. 평민들의 고된 삶을 지탱하는 모든 기계가 멈추고, 제국의 오만함이 잠시나마 고꾸라지는 상징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철컥, 퓨식! 짧은 기계음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통풍구 내부를 가로지르던 붉은 레이저 선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완벽했다. 윤슬이 다시 통풍구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손엔 작은 절단기가 쥐여 있었다.
    “성공했습니다, 형.”
    “수고했다, 윤슬. 이제 핵심 동력실로 이동한다.”

    좁고 어두운 통풍구를 기어 내부로 진입하자, 거대한 동력실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대한 증기 파이프들이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방 전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중앙에는 사람 키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증기 압력기가 굉음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구리 빛의 압력계는 붉은 경고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들고 있었다.

    “저게 우리의 목표다.” 재우가 거대한 압력기를 가리켰다. “중앙 제어 밸브를 파괴하고, 보조 증기 파이프에 폭탄을 설치한다. 동시 작동으로 최대한의 피해를 입혀야 해.”

    바로 그때, 콰아앙! 요란한 굉음이 동력실을 뒤흔들었다. 천장에 매달린 램프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번쩍였다.
    “무슨 일이지?” 재우가 몸을 숙이며 주위를 경계했다.
    “도결이 형 쪽에서 폭발음이 들린 것 같아요!” 윤슬이 외쳤다. “시선을 끌다가 걸린 건가…?”

    아니, 단순한 시선 끌기가 아니었다. 폭발음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다급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증기 압력 비정상!’

    “젠장, 도결!” 재우는 이를 악물었다. 도결이 병사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사용한 폭탄이 너무 강력했던 모양이었다. 혹은 병사들이 그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먼저 공격했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제 ‘잿빛 새벽단’의 존재가 제국에 발각된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빨리 움직여!” 재우가 소리쳤다.
    윤슬은 재빨리 가장 가까운 보조 증기 파이프로 달려갔다. 재우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압력기 쪽으로 향했다. 육중한 강철 밸브를 돌리기 위해 온몸의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견고하게 잠겨 있었다.
    “빌어먹을!”

    그때, 동력실 문이 쾅 하고 열리며 증기갑옷을 입은 제국군 병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의 증기총이 징, 하고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재우를 향했다.
    “움직이지 마라! 반란군!”

    윤슬이 재빨리 총을 뽑아 들고 병사들 쪽으로 견제 사격을 가했다. 증기총에서 뿜어져 나온 압축 공기가 병사의 갑옷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들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병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윤슬! 폭탄 설치됐나?!”
    “네! 이제 터트리기만 하면!”

    재우는 한 번 더 거대한 밸브에 매달려 온 힘을 다해 돌렸다. 끽, 끽… 밸브가 비명을 지르며 아주 조금씩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엔 핏줄이 섰다. 바로 그때, 병사들이 일제히 증기총을 발사했다. 슈우우욱! 거센 압축 공기탄이 재우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금속 벽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망할!”

    재우는 마지막 힘을 짜내 밸브를 완전히 돌렸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증기 압력기에서 퓨우우욱- 하는 굉음과 함께 증기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압력계의 바늘이 미친 듯이 붉은색 경고선을 넘어갔다. 동시에 윤슬이 설치한 폭탄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보조 파이프를 박살 냈다.

    콰콰콰쾅! 연쇄 폭발이 동력실을 집어삼켰다. 거대한 파이프들이 찢겨나가고, 과열된 증기가 사방으로 치솟았다. 제국군 병사들은 혼란에 빠져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재우는 폭발의 충격에 몸을 날려 겨우 숨어들었다.

    “성공했다…!” 재우는 터져 나오는 기침과 함께 중얼거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동력실의 지축을 뒤흔드는 폭발음 너머로, 더욱 거대하고 섬뜩한 엔진음이 들려왔다. 단순한 증기선이나 소형 비행선의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가르는 쇠붙이 용의 울음소리 같았다.

    거대한 동력실의 천장이 산산조각 나며 굉음을 냈다. 그리고 그 찢어진 구멍 위로, 수십 개의 강철 날개가 무섭게 회전하는 거대한 비행 요새, 제국의 최종 병기인 ‘강철 비룡’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거대한 선체에서 수많은 병사들이 갈고리를 던져 동력실 내부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진압이 아니었다. 제국은 이 작은 반란을 완전히 뿌리 뽑으려 했던 것이다. 재우는 망가진 천장 위로 드리워진 ‘강철 비룡’의 거대한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압도적인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때, 그의 뒤에서 윤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도결이 형이…!”

    재우가 뒤를 돌아보았다. 동력실 입구에 쓰러져 있는 도결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구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에워싼 수십 명의 제국군 병사들이 차가운 눈으로 재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강재우! 네놈의 반란은 여기까지다!” 병사들 뒤에서 거대한 증기갑옷을 입은 지휘관이 묵직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손에는 번쩍이는 증기검이 들려 있었다.

    재우는 윤슬을 바라보았다. 윤슬은 이미 다음 행동을 읽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할 수 있습니다, 형! 어서 도망치세요!”

    ‘도망치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재우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수많은 잿빛 새벽단 단원들의 희생과 희망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는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은 이 모든 반란의 끝을 의미했다.

    “윤슬!” 재우가 외쳤다. 그의 눈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살아남아! 그리고… 반드시 돌아와!”

    재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려 폭발로 생긴 구멍 너머,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뒤에서는 윤슬의 필사적인 총성이 울리고,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무엇보다, 친구의 죽어가는 신음 소리가 그의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살아야만 했다. 이 처절한 밤의 끝을 보기 위해서라도.

  • 대체 역사물 독립적인 단편 소설

    서울 변두리의 낡은 대학 도서관 지하 문서고. 지훈은 먼지 가득한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쉬었다.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종이 냄새가 뒤섞인 이곳은 그의 일터이자, 가끔은 탈출구였다. 고작 스물셋, 전공은 사학과. 그는 고대사의 숨겨진 조각들을 찾아 헤매는 것을 꿈꿨지만, 현실은 낡은 서류뭉치를 분류하고 라벨을 붙이는 아르바이트생에 불과했다.

    “오늘은 저쪽 구석인가…”

    지훈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손전등을 켰다. 가장 깊고, 가장 인적이 드문 서고. ‘조선 초기 지방 문서’라고 쓰인 칸은 오랫동안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듯 거미줄이 희끗희끗했다. 그는 낡은 작업복 소매로 코를 막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수많은 책과 두루마리,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재정난으로 폐쇄된 지방 서원 기록’, ‘역병 시대 민가 동향’ 같은 표지들을 지나치던 그의 손이 문득 멈췄다. 낡은 목제 상자 하나. 다른 서류들에 비해 크고 묵직했으며, 어떤 분류 번호도 붙어있지 않았다. 마치 그저 거기에 ‘잊혀진’ 것처럼 존재했다.

    호기심에 지훈은 상자를 조심스럽게 끌어냈다. 수백 년 된 듯한 나무 표면은 거칠고, 한쪽 귀퉁이엔 알 수 없는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것이 혹시 분실된 유물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뚜껑을 열자, 예상과 달리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텅 비어 있었다.

    “뭐야, 고작 빈 상자였나.”

    실망감에 상자를 내려놓으려던 순간, 지훈의 손이 상자 바닥 안쪽에 닿았다. 그리고 손가락 끝에 잡힌 미세한 틈새. 그는 숨을 죽이고 그 틈새를 따라 조심스럽게 더듬었다. 찰칵. 미약한 소리와 함께 상자 바닥이 덜컥 열렸다. 숨겨진 공간이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검은색 돌 하나. 지름 10센티미터 정도의 완벽한 타원형 돌이었다. 표면은 얼음처럼 매끄러웠지만, 차갑지 않고 미묘한 온기가 느껴졌다. 지훈은 돌을 꺼내 들었다. 예상보다 묵직했다. 그리고 돌 한가운데, 그 어떤 서적에서도 본 적 없는 기묘한 문양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은은한 어둠 속에서도 문양은 마치 스스로 빛을 머금은 듯 희미하게 반짝이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그는 돌을 감싼 채 지하 서고를 벗어났다. 근무 시간 내내 그의 머릿속은 온통 그 돌 생각뿐이었다. 퇴근 후, 그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낡은 자취방 책상 위에 돌을 올려놓고, 그는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문양을 따라 그렸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백과사전과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어떤 역사서에도, 어떤 고고학 자료에도 그 돌의 문양과 비슷한 것은 없었다. 마치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답답함에 그는 돌을 손에 쥐었다. 그 미묘한 온기가 불안감을 조금 진정시켜 주는 듯했다.

    그날 밤, 지훈은 돌을 베개 옆에 두고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꿈이 아니었다.

    귓가에 알 수 없는 고대의 언어가 속삭였다.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 같기도 한 흐릿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그를 감쌌다. 눈앞에는 거대한 안개가 펼쳐졌고, 그 안개 속에서 흐릿한 형상들이 움직였다. 산등성이를 따라 거대한 빛의 선들이 이어지고, 그 선들이 맞닿는 곳마다 땅에서 솟아오르는 신비로운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그들은 지훈이 알던 어떤 민족의 의상도 아니었다. 그들의 손에는 돌이 들려 있었고, 그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그들의 피부를 타고 흐르는 듯했다. 빛과 소리, 그리고 너무나 선명한 감정들. 경외심, 두려움, 그리고 무언가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깊은 슬픔.

    “성운… 대지의 기억… 길을 열어라…”

    알 수 없는 언어였지만, 그는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그 단어들이 그의 영혼에 새겨진 것처럼. 꿈속에서 돌이 더욱 뜨거워졌고, 돌 한가운데 새겨진 문양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지훈의 심장으로 곧장 파고들었고, 그는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과 함께 눈을 떴다.

    새벽 3시. 방 안은 고요했고, 창밖에서는 차가운 밤바람 소리만 들려왔다. 베개 옆에 놓인 돌은 여전히 은은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 그의 몸 안에서 무언가가 뜨겁게 맥동하고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뇌 속에서 수많은 정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끝에서 미약한 진동이 느껴졌다. 방 안의 사물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래된 벽지에서, 낡은 나무 책상에서, 심지어 공기 속에서도 미세한 떨림과 함께 잊혀진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수십 년 전, 이 방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그들의 웃음과 눈물, 그리고 그들이 남긴 희미한 흔적들.

    지훈은 돌을 다시 쥐었다. 돌 한가운데의 문양이 꿈에서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빌딩 숲 너머로 보이는 남산 타워. 그 아래에는 수천 년의 세월을 품고 있는 땅이 있었다.

    그는 무작정 밖으로 나섰다. 한밤중의 서울 거리는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지만, 그의 몸속은 끓어오르는 듯 뜨거웠다. 그는 걷고 또 걸었다. 이전에 그저 스쳐 지나갔던 낡은 골목들, 오래된 담벼락들, 희미하게 남아있는 기와지붕의 흔적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돌을 쥐자, 그의 시야가 달라졌다. 평범한 아스팔트 바닥 아래, 그는 땅속을 흐르는 거대한 힘의 줄기들을 보았다. 마치 살아있는 혈관처럼. 그리고 그 힘의 줄기들 위로,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감았다. 돌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대지의 기억…”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리고 눈을 떴다.

    한 순간, 현대의 서울 풍경이 사라졌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드넓은 벌판과 낮게 엎드린 초가집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거대한 산맥이었다. 댕기머리를 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누런 흙길 위로 소달구지가 지나갔다. 낯선 듯 익숙한 고대의 풍경. 그는 그 속에 서 있었다. 차갑지만 생생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그는 과거의 한 조각을, 완벽하게 선명한 잔상으로 보고 있었다.

    수백 년, 아니 수천 년 전의 이 땅에 깃든 생생한 기억들이었다. 현대의 건물과 사람들은 투명한 유령처럼 존재했고, 과거의 풍경은 마치 눈앞의 현실처럼 선명했다. 그는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었다.

    “이게… 성운석의 힘인가.”

    그는 심장이 터질 듯한 흥분과 함께 돌을 꽉 쥐었다. 자신은 그저 평범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그는 이 땅의 가장 깊은 비밀과 연결된 존재가 되었다. 고대에 잊히고 봉인되었던 마법의 힘, ‘대지의 기억’이 그를 통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지훈의 손에 든 돌은 이제 더 이상 단순한 검은색이 아니었다. 돌 한가운데 새겨진 문양을 중심으로 푸른빛과 붉은빛이 섞인 은하수 같은 빛이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빛이었다. 그의 발아래, 서울의 낡은 골목과 고대의 벌판이 겹쳐지며 숨겨진 세계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평범했던 그의 삶은 이제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그저 과거를 탐색하는 자가 아니었다. 이제 그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살아있는 다리가 되었다.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1화. 심연의 광맥에서**

    천공의 등대호는 고요한 심우주를 가르고 있었다. 선체는 투박하지만 웅장했다. 거대한 황동 제 기어들이 복잡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소리가 배 전체에 나지막이 울리고, 두터운 철판 이음새마다 미세한 증기가 김을 뿜었다. 거대한 측면 추진기는 마치 중세의 대포처럼 육중한 존재감을 뽐냈고, 중앙의 거대한 증기 보일러는 끊임없이 푸른 에테르 연료를 태워 검붉은 심해를 가로지르는 동력을 생산했다.

    함교는 온통 닳아 반들거리는 황동과 떡갈나무로 치장되어 있었다. 각종 압력계와 유량계가 빼곡히 벽을 채웠고, 삐걱이는 의자마다 오래된 가죽 냄새가 배어 있었다. 정중앙 함장석에 앉은 이언 드레이크 함장은 익숙한 진동 속에서 낡은 망원경을 만지작거렸다. 창밖으로는 이름 모를 성운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은하의 변방, 인류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그것이 등대호의 무대였다.

    “함장님, 심층 스캔에 이상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나직하지만 단호한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과학 담당 이사벨라 부함장이 거대한 항해 지도를 주시하며 말했다. 그녀의 콧잔등에는 작은 황동 프레임의 안경이 걸려 있었고, 짙은 남색 제복 소매 끝에는 정교한 수은 나침반이 매달려 있었다.

    “이상 반응이라니, 구체적으로 뭔가?” 이언 함장이 망원경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의 눈에는 오랜 항해의 피로와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정체불명의 에너지원입니다. 기존에 알려진 어떤 우주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특이한 주파수를 방출하고 있는데… 마치 오래된 시계태엽이 돌아가는 듯한 미세한 진동이에요.” 이사벨라는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지도를 확대했다. 붉은 점 하나가 지도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시계태엽이라.” 이언 함장은 턱을 쓰다듬었다. “설마 거대 항성계의 오작동은 아닐 테고. 얼마나 떨어져 있지?”

    “현재 속도로 일주일 거리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는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심층 스캔으로도 정확한 형태는 파악되지 않습니다만… 크기가 상당합니다. 소행성 정도는 될 것 같습니다.”

    그때, 조타실의 키런 조타수가 거친 숨을 내쉬며 보고했다. “함장님, 전방 궤도에 미세한 시공간 왜곡이 포착됩니다! 우리 항해 경로를 살짝 틀어놓으려는 듯한 압력이 감지됩니다.”

    이언 함장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시공간 왜곡은 흔치 않은 현상이었다. 그것도 누군가 의도한 것처럼 미세하게 항해 경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사벨라, 그 에너지원과 시공간 왜곡이 연관성이 있나?”

    “정확히 같은 방향입니다. 거의 일치해요.” 이사벨라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마치… 우리를 그곳으로 유도하려는 것만 같습니다.”

    함교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미지의 영역에서 우연이란 없었다. 의도된 만남이라면, 그것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문명의 흔적일 수도 있었다. 인류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이 별 없는 심해까지 나아왔으니까.

    이언 함장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항해 경로를 수정한다. 이사벨라가 지시하는 에너지원의 좌표로 향해. 속도는 현재 유지.”

    “함장님!” 키런 조타수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미지의 시공간 왜곡 속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한 것이 없는 항해는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키런.” 이언 함장이 창밖의 별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우린 등대호다. 빛을 찾아 나서는 자들이지, 어둠 속에 숨는 자들이 아니야. 게다가… 시계태엽 소리가 우리를 부르는데, 외면할 순 없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등대호의 거대한 증기 추진기가 더욱 힘찬 소리를 내며 방향을 틀었다. 함선 전체가 웅장하게 요동쳤다. 미지의 신호가 이끄는 방향으로, 인류의 기술과 용기로 빚어진 거대한 쇳덩어리가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그들은 미지의 존재와 마주했다.

    그것은 소행성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예술 작품에 가까웠다. 우주 한가운데, 아무것도 없는 진공 속에서 정교하게 조각된 검은 실루엣이 떠 있었다. 빛을 반사하지 않는 흡수성 물질로 이루어진 듯했지만, 그 안쪽에서 희미하게 은은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마치 내부에 거대한 태엽 장치가 끊임없이 작동하는 것처럼, 주기적인 진동이 느껴졌다.

    등대호는 조심스럽게 그 존재 주위를 선회했다.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 거대한 물체였다. 크기는 등대호의 세 배에 달했다. 표면은 매끄러웠지만, 자세히 보면 수많은 기하학적인 문양과 미세한 홈들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거대한 기계 도시의 일부분 같기도 하고, 혹은 우주를 담아내는 거대한 시계 같기도 했다.

    “이것은… 생체 공학적인 구조물인가, 아니면 순수한 기계인가?” 이사벨라가 망원경으로 물체를 관찰하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이로움과 당혹감이 뒤섞여 있었다. “에너지 방출 패턴은 일정합니다. 내부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생산되거나 소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떤 목적의 구조물인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유물인가… 아니면 작동 중인 기계인가?” 이언 함장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그 존재의 중앙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부분보다 더 강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접근합니다. 함장님.” 키런 조타수가 함선과의 거리를 조절했다. 등대호는 마치 작은 물고기가 거대한 고래 주위를 맴돌 듯,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거대 구조물에 다가갔다.

    점점 더 가까워질수록, 그 존재의 경이로움은 극에 달했다. 표면의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회로처럼 미세하게 빛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규칙적인 간격으로 희미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세한 떨림과 함께 텔레파시처럼 알 수 없는 진동이 등대호의 선체 전체를 감쌌다.

    “함장님! 에너지 방출량이 급격히 증가합니다!” 이사벨라가 경고했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구조물 전체가 활성화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거대한 검은 구조물의 표면을 이루던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일제히 강렬한 푸른빛을 뿜어냈다. 그 빛은 순식간에 구조물 전체를 감싸더니, 마치 거대한 눈이 뜨이는 것처럼 중앙부의 푸른빛이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그 빛의 중심에서, 알 수 없는 언어로 이루어진, 하지만 명확하게 의지를 담고 있는 듯한 웅장하고 깊은 소리가 등대호의 함교를 강타했다. 그것은 뇌를 울리는 진동이었고, 동시에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경고음 같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키런 조타수가 귀를 막으며 외쳤다.

    이언 함장은 경악한 표정으로 창밖의 존재를 응시했다. 거대한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등대호의 선체를 마치 나약한 종잇장처럼 흔들었고, 함교의 모든 압력계가 비명을 지르며 붉은 경고등을 깜빡였다.

    그 순간, 이언 함장의 뇌리에 섬뜩한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유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살아 있었다.

    그 거대한 존재의 푸른빛 심장부에서, 마치 수십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깨어나는 것처럼, 거대한 태엽 장치가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위압감을 내뿜으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회전과 함께, 등대호의 모든 시스템이 경련하듯 격렬하게 흔들렸다.

    새로운 신호가 이사벨라의 콘솔에 폭주하듯 밀려들었다. 그녀는 경악에 찬 눈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함장님! 미지의 언어! 번역기가… 번역기가 해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빠르게 지나갔고, 이내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침입자들. 깨어난 시간의 수호자는, 너희를 심판하리라.”**

  • 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재는 하늘을 먹고, 침묵은 땅을 집어삼켰다. 한때 문명의 꽃을 피웠던 도시의 잔해는 거대한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강민준은 낡은 방독면 안으로 쿰쿰한 먼지 냄새를 들이마시며 무너진 백화점의 외벽을 타고 조심스럽게 올랐다. 그의 발밑에서 부서진 유리 조각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굴렀다.

    “젠장, 또 꽝이잖아.”

    민준은 투덜거렸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백화점 옥상에 숨겨져 있던 비상용 식량 창고는 이미 오래전에 약탈당한 듯 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녹슬어 반쯤 부러진 선반과 곰팡이가 피어 새까매진 종이 조각들뿐. 그는 허탈하게 주저앉아 낡은 배낭을 내려놓았다. 목에 건 방사능 측정기는 여전히 안전한 수치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오염되지 않은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자원이었다.

    해가 기울자, 붉은 노을이 회색빛 도시 잔해 위로 길고 음울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짐승의 울음소리가 민준의 신경을 긁었다. 이 폐허에서 홀로 살아남기란 매 순간이 싸움이었다. 식량, 깨끗한 물, 그리고 무엇보다 안전한 잠자리를 찾는 것이 그의 유일한 목표였다.

    “이대로는 안 돼.”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지도를 꺼냈다. 폐허가 되기 전의 도시 지도 위에 직접 손으로 위험 구역과 던전 출현 지점을 표시해둔 것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한 점을 짚었다. 『옛 지하철역 – 던전 C급』. 그곳은 다른 스캐빈저들이 이미 수없이 들락거렸을 위험한 곳이었지만, 동시에 유일하게 ‘물 정화 키트’ 조각이 발견될 확률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남은 식수 정화제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하… 갈수록 미쳐가는군.”

    민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독면의 공기 필터를 교체하고, 어깨에 맨 낡은 소총을 고쳐 잡았다. 탄약은 서른 발이 채 되지 않았다. 던전 안에서 쓸데없이 낭비할 수는 없었다. 칼날이 무뎌진 식칼과 녹슨 쇠파이프가 그의 또 다른 무기였다. 이 썩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댈 곳은 오직 제 몸뚱이뿐이었다.

    ***

    옛 지하철역 입구는 거대한 흉터처럼 벌어져 있었다. 철제 셔터는 엿가락처럼 휘어져 있었고, 검게 그을린 벽면에는 정체 모를 덩굴 식물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눅눅한 흙먼지와 비릿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민준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손에 들린 손전등 불빛이 지하로 향하는 길을 위태롭게 비췄다.

    “지하철은 이미 끊겼는데, 여긴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이는군.”

    그의 말대로, 역 안은 희미한 불빛들로 어렴풋이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람들이 아니었다. 찢어진 깃발처럼 늘어진 거미줄, 그 사이를 오가는 기괴한 형상의 그림자들. 핏자국으로 얼룩진 벽면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스캐빈저들의 유서, 혹은 경고문들. 『경고: B구역, 미확인 변이체 출현』, 『제발… 돌아가라…』

    민준은 헛기침을 하며 침을 삼켰다. 괜히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지하 2층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 옆의 비상 통로 계단을 이용했다.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내려가던 그때, 삐걱이는 금속음이 정적을 깼다.

    “뭐지?”

    그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손전등 불빛을 끈 채 귀를 기울였다. 철제 기둥 뒤편에서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민첩하고 재빠른 움직임. 그리고 섬뜩한 눈빛.

    **[변이 쥐 – 일반 등급]**

    낡은 시스템 창이 민준의 시야에 떠올랐다. 이 세계가 완전히 뒤틀린 후, 사람들에게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의 등급과 정보가 마치 게임처럼 머릿속에 투영되는 것. 덕분에 스캐빈저들은 최소한의 정보라도 가지고 위험에 대처할 수 있었다.

    변이 쥐. 일반 등급이라고는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적이었다. 이빨에는 부식성 독이 묻어있고, 날카로운 발톱은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민준은 숨을 죽인 채 쥐의 움직임을 살폈다. 놈은 무엇인가를 킁킁거리며 냄새 맡고 있었다.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한 발, 한 발. 바닥에 떨어진 자갈이라도 밟을까 숨죽이며 나아가던 그때였다.

    “찍!”

    민준의 발치에서 또 다른 변이 쥐가 튀어나왔다. 놈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민준은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오랜 생존 경험은 그를 냉정하게 만들었다. 그는 놈이 달려드는 순간, 손에 든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크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쥐는 벽에 부딪혔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놈은 아직 살아있었다. 분노한 듯 더욱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민준의 다리를 물려고 달려들었다.

    “젠장, 끈질긴 놈!”

    그는 놈의 머리를 향해 쇠파이프를 내리찍었다. 이번에는 정확히 명중했다. 쥐는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제야 민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안심할 틈도 없었다. 첫 번째 쥐의 비명소리에 이끌려 사방에서 녀석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희미한 손전등 불빛 아래, 붉게 빛나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민준을 향했다.

    “젠장, 쥐떼라니!”

    그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쇠파이프를 고쳐 잡았지만, 이 많은 놈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지하 2층으로 가는 통로에서 이미 다른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생각보다 훨씬 더 위험했다.

    도망칠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싸우다 죽을 것인가. 민준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생각이 스쳤다. 그는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부서진 가판대, 폐기된 자판기, 그리고 저 멀리 어둠 속에 잠겨있는 지하철 승강장.

    “좋아,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순 없지!”

    그는 결심했다. 쥐떼를 향해 소총을 겨누었다. 아껴야 할 탄약이었지만, 이대로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을 터였다.

    “죽어라, 이 쓰레기들아!”

    굉음과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지하철역의 어둠 속에서, 강민준의 절규가 메아리쳤다. 그의 생존을 위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 메카 액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심연의 메아리

    고요한 항해자호, 아니, 이제는 ‘별빛 탐사선 아레스 호’라고 불러야 했다. 선체 전체를 감싸는 은빛 장갑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우주 방사선을 막아내고 있었고, 두텁게 강화된 전면 유리창 너머로는 무수한 별들이 영원의 침묵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강지훈 함장은 함교 중앙의 조종석에 앉아 길게 한숨을 쉬었다.

    수십 년째 심우주 탐사를 해왔지만, 이런 지루함은 여전했다. 드넓은 우주에서 행성 하나, 성운 하나를 지나치는 데만 몇 달이 걸리는 일은 인내심과의 싸움이었다. 물론 그 끝에 새로운 발견의 짜릿함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건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아주 특별한 보상 같은 것이었다.

    “함장님, 순항 고도 유지 중입니다.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은 없습니다.”

    부함장 최민준의 담담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짙은 갈색 머리를 쓸어 넘기며 시스템 로그를 확인하고 있었다. 아레스 호의 핵심 임무는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 행성을 찾아 정착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인류의 영토를 확장할 만한 자원 행성이라도 발견하면 금상첨화였다.

    “수고 많네, 최 부함장.” 강지훈은 짧게 대답했다. “식사 시간은 됐나?”

    “네, 곧 교대입니다. 박선우 일등 항해사가 오면 쉬셔도 됩니다.”

    그때였다. 함교 한쪽에서 늘 과도한 열정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 서예나 과학 담당관의 자리에서 작지만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어? 이게 뭐지?” 서예나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함장님, 잠시만요. 비정상적인 중력파 신호가 감지됐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지속적입니다.”

    “중력파 신호? 근처에 블랙홀이라도 있나?” 최민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요, 너무 멀어서 그럴 리 없습니다. 게다가 패턴이… 너무 규칙적입니다.” 서예나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동시에 미묘한 불안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고의로 방출하는 신호 같아요.”

    강지훈은 몸을 일으켜 서예나의 자리로 다가갔다. 화면에는 옅은 녹색 파형이 일정한 간격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그는 심우주에서 수많은 자연 현상을 목격했지만, 이런 식의 ‘규칙적인’ 중력파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위치는? 우리 항로에 영향을 미 줄 정도인가?”

    “아뇨, 현재 항로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약 5광년 떨어진 곳인데… 이 정도 거리에서 잡힐 신호가 아니에요. 뭔가 증폭된 것 같습니다.” 서예나는 손가락으로 가상 키보드를 빠르게 움직이며 추가 데이터를 요청했다. “에너지 수준도 비정상적으로 높습니다. 인공적인 발생원일 가능성이 큽니다.”

    함교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인공적인 발생원. 그것은 곧 미지의 존재를 의미했다. 인류가 심우주에 발을 내디딘 이래, 수많은 탐사선이 발사되었지만, 지적 생명체의 흔적을 발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좀 더 자세히 분석해봐, 서 박사. 오작동일 가능성은 없나?” 강지훈은 신중하게 말했다. 희망적인 추측은 언제나 허무하게 깨지기 마련이었다.

    “아닙니다, 함장님. 모든 필터를 거쳤습니다. 오작동이라면 이런 식으로 지속될 수 없어요. 파형의 형태도 일반적인 천체 현상과는 다릅니다. 이… 이 정도라면, 거대한 구조물에서 방출되는 신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대한 구조물. 그 단어가 강지훈의 뇌리를 스치자, 잊었던 과거의 보고서들이 떠올랐다. 수백 년 전, 태양계 외곽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암석 구덩이, ‘심연의 눈물’이라 불렸던 그것은 인공물이라는 의심만 남긴 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5광년 너머에서 아레스 호의 센서에 잡힐 정도라면, 도대체 얼마나 거대한 것이란 말인가.

    “함장님, 선우 씨 도착했습니다.” 박선우 일등 항해사가 함교 문을 열고 들어서며 말했다. 그는 아레스 호의 모든 기계를 손바닥처럼 꿰뚫고 있는, 명실상부한 기계 전문가였다. 그의 뒤에는 작은 로봇 팔이 달린 이동식 공구함이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선우 씨, 마침 잘 왔군.” 강지훈은 서예나의 화면을 가리켰다. “이 신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박선우는 화면을 훑어보더니 눈을 가늘게 떴다. “음…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데요. 우리 탐사선 엔진에서 나오는 출력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안정적이고 강력합니다. 마치 항성 엔진의 노이즈를 걸러낸 것처럼 깨끗해요.”

    “만약 이게 인공물이라면, 어떤 종류의 물체에서 나올 수 있을까?” 최민준이 물었다.

    박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혀를 찼다. “글쎄요. 적어도 이 우주에서 우리가 아는 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저런 출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동력원이라면… 행성급이라고 해도 믿을 지경입니다.”

    함교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숙연해졌다. 행성급 인공물. 그것은 인류의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개념이었다.

    강지훈은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와 심사숙고에 잠겼다. 아레스 호의 임무는 탐사였다. 미지의 것을 찾아 나서는 것.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미지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항로를 이탈할 가치가 있을까? 아니, 가치가 없을 리 없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었다.

    “서 박사, 목표까지 최단 항로를 계산해. 예상 소요 시간은?”

    서예나의 눈이 빛났다. “네, 함장님! 즉시 계산하겠습니다. 중력파 신호는 아직 유효합니다.”

    “최 부함장, 항로 이탈에 따른 연료 소모량과 비상 대비책을 점검해. 통신은 계속 본부에 보내지만, 회신이 오기 전까지는 독단적으로 행동한다.”

    “알겠습니다, 함장님.” 최민준의 목소리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선우 씨,” 강지훈은 박선우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만일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서 직접 탐사를 해야 한다면, 어떤 장비가 필요할 것 같나?”

    박선우는 자신의 로봇 팔 공구함을 한 번 쓰다듬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가장 강력한 보호막과 무장을 갖춘 탐사 유닛이 필요할 겁니다, 함장님. 대기권 돌입은 물론, 심각한 중력장이나 알 수 없는 에너지장에 대비할 수 있는… **가디언 유닛**을 출격 준비시켜야 할 겁니다.”

    가디언 유닛. 아레스 호에 탑재된 대형 전투/탐사 메카닉이었다. 인류가 조우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개발된 병기이자 탐사 도구. 그것을 꺼낼 상황이 올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강지훈은 침묵 속에 고개를 끄덕였다. 함교 모니터에는 가디언 유닛의 거대한 실루엣이 떠올랐다. 마치 심연의 잠자는 거인을 깨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레스 호는 새로운 항로로 기수를 돌렸다. 망망대해 같은 우주 속에서, 조그만 탐사선 한 척이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중력파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아레스 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곳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류의 역사가 새로운 장을 맞이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 대체 역사물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웹툰] 심연의 서막: 제1화 – 잊혀진 문의 메아리

    **작품명:** 심연의 서막
    **장르:** 대체 역사 판타지 모험

    **[1컷]**
    **배경:** 세상의 끝자락에 닿아 있는 듯한, 거칠고 험준한 산맥의 전경. 거대한 봉우리들이 안개에 잠겨 있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사이, 흡사 거인의 입처럼 벌어진 거대한 동굴 입구가 희미하게 보인다. 입구 주변에는 세월의 풍파에 마모되었지만, 여전히 기묘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 듯한 고대 문양들이 이끼와 먼지 속에 반쯤 파묻혀 있다. 잊혀진 존재의 숨결이 느껴지는 황량한 풍경.

    **하랑 (내레이션):** 역사는 강물의 흐름과 같아서, 때로는 거대한 바위를 부수고 새로운 길을 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깊은 심연 속에 감추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 강물의 바닥을, 망각의 흙먼지 속에서 더듬는 자들이었다.

    **[2컷]**
    **배경:** 동굴 입구 바로 앞. 두 명의 인물이 서 있다. 한 명은 30대 초반의 ‘하랑’. 단정하지만 활동적인 복장 아래로 다부진 몸이 드러나고, 날카로운 눈빛은 지적 호기심과 불굴의 탐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등에는 탐험용 배낭이, 손에는 정교한 지도가 들려 있다. 다른 한 명은 20대 후반의 ‘시아’. 현지 주민 특유의 실용적이고 간소한 복장을 하고 있으며, 날렵한 인상에서 강인함이 느껴진다. 그녀의 눈빛에는 익숙한 경계심과 함께 미지의 것에 대한 은밀한 호기심이 공존한다. 둘의 얼굴에는 오랜 여정의 피로와 함께, 목적지에 대한 기대감이 비친다.

    **시아:** (차가운 바람에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이리 깊은 곳까지 들어오려 한 자들은 많았소. 허나, 제 발로 돌아간 자는 거의 없었지. 대부분은 발자국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소.

    **하랑:** (입구의 고대 문양을 손전등으로 비추며 섬세하게 살핀다) 전설이 아니라, 실체를 찾으러 왔소. 시원의 제국이 남긴 유산. 우리 역사의 가장 오래된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득한 태초의 문명. 이 문양은, 분명 그들의 것이오.

    **[3컷]**
    **배경:** 동굴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하랑과 시아. 입구는 거친 자연동굴의 모습이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어둡고 습한 공기가 발밑의 축축한 흙과 자갈 위로 흐른다. 천장에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져 바닥에 작은 웅덩이를 만든다. 하랑의 손전등 불빛만이 어둠을 가르고 길을 비춘다.

    **시아:** (주위를 경계하며 걷는다) 학자님. 너무 믿지 마시오, 그 전설이란 것을. 사람의 눈을 흐리게 할 뿐이니. 이 산맥에 사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소. 이곳은 그저 죽은 자들의 무덤일 뿐이오.

    **하랑:** (미소를 지으며 앞을 응시한다) 흐리게 하는 건 두려움이지, 시아. 전설은 길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우리는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 무엇이 있는지 직접 확인해야 하오.

    **[4컷]**
    **배경:** 동굴 깊숙이 들어서자,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진다. 거칠었던 자연동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거인의 손으로 깎아낸 듯한 거대하고 매끄러운 통로가 나타난다.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진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데군데 보석처럼 빛나는 특이한 광석들이 박혀 있어 희미한 푸른빛을 발산한다. 그 빛은 어둠 속에서 섬뜩하면서도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공기마저 달라진 듯, 고요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하랑:** (놀라움과 흥분으로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것 봐, 시아! 자연동굴이 아니었어! 이건… 명백한 문명의 흔적이야! 우리가 알던 어떤 고대 문명도 이런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어!

    **시아:**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벽면에 손을 대본다. 차가운 촉감에 살짝 몸서리친다) 이런 곳은 처음이오. 전설에도 이런 이야기는 없었는데… 이 빛은 또 무엇이오? 살아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지오.

    **[5컷]**
    **배경:** 하랑이 벽면에 새겨진 고대 문자들을 가까이 다가가 살피고 있다. 손전등 불빛 아래로 드러난 문자는 이전에 알려진 어떤 문자체계와도 확연히 다른, 기하학적이고 복잡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손가락이 섬세하게 문자를 따라 움직인다. 그의 얼굴은 고도의 집중과 함께, 미지의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상기되어 있다.

    **하랑:** (낮게 중얼거린다) ‘별의 노래… 땅의 심장… 태초의 숨결…’ 해독이 어려워. 하지만 분명 ‘시원의 제국’의 언어야! 이들의 문자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어떤 에너지를 담고 있는 듯해. 마치 살아있는 문장 같아.

    **[6컷]**
    **배경:** 통로의 끝. 압도적인 크기의 거대한 돌문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문은 벽과 마찬가지로 검은 돌로 만들어졌으며, 표면에는 통로의 문양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다. 문 중앙에는 사람의 손바닥 모양을 본뜬 듯한 깊은 홈이 파여 있다. 문 주변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인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지만, 그 웅장함은 여전히 빛을 잃지 않았다.

    **시아:** (문 앞에 멈춰 서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문을 올려다본다) 저 문은… 어떻게 열지? 부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하오.

    **하랑:** (문양을 유심히 살피며 손전등으로 중앙의 홈을 비춘다) 이건 단순한 문이 아니야. 일종의 봉인… 혹은 시험. 아니면, 초대. 그들은 아무나 이곳에 들어오게 하지 않았을 테니.

    **[7컷]**
    **배경:** 하랑이 망설임 없는 얼굴로 손바닥 홈에 자신의 손을 얹으려 한다. 그의 눈빛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시아는 놀란 눈으로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 하지만, 이미 하랑의 손은 홈에 닿기 직전이다.

    **시아:** (급하게 하랑의 팔을 잡으려 하지만 한 발 늦는다) 학자님! 함부로 손대지 마시오!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이 고대의 봉인에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하랑:** (시아의 말을 무시하고,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을 홈에 정확히 맞춘다) …만약 이 문이 ‘시원의 제국’의 지혜를 간직하고 있다면, 그들은 억지로 부수는 자가 아닌, 이해하려는 자를 선택했을 거야. 지혜는 폭력이 아닌, 통찰을 통해 얻어지는 법이지.

    **[8컷]**
    **배경:** 하랑의 손이 홈에 닿자마자, 문양에 새겨진 선들이 마치 살아 숨 쉬듯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한다. 빛은 점차 강렬해지며 문 전체를 감싸고, 문양들은 복잡한 패턴을 그리며 움직이는 듯하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진동이 느껴지고, 이명 같은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시아:** (놀라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스친다) 이런… 말도 안 돼! 빛이… 살아있어!

    **(효과음: 웅-! 즈즈즈즈…!)**

    **[9컷]**
    **배경:** 거대한 돌문이 묵직하고 육중한 소리를 내며 천천히 안쪽으로 열리기 시작한다. 마치 수만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거인이 기지개를 켜는 듯한 소리다. 문틈 사이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하고 신비로운 푸른빛이 어두웠던 동굴 내부를 환하게 비춘다. 그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어떤 알 수 없는 에너지와 생명력을 담고 있는 듯하다. 빛의 파동이 동굴 전체를 흔든다.

    **하랑:** (경외심과 감격으로 가득 찬 얼굴로, 눈조차 깜빡이지 않고 빛 속을 응시한다.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드디어… 드디어! 이 문이, 마침내!

    **[10컷]**
    **배경:** 문 안쪽의 풍경. 광활하고 거대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공간의 중앙에는 복잡한 기하학적인 문양과 미지의 상형문자로 가득 찬,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공중에 떠 있다. 구조물은 푸른빛과 은빛이 뒤섞인 오묘한 빛을 내뿜으며 아주 느리게, 그러나 끊임없이 회전하고 있다. 바닥과 천장, 벽면은 모두 매끄럽게 가공된 검은 돌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치 우주선 내부처럼 정교하고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시아:**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경이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여 있다) …이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오. 우리가 알던 어떤 문명의 흔적도 아니오.

    **[11컷]**
    **배경:** 하랑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한 발 내딛는다. 발밑의 공기에서 묘한 정전기 같은 것이 느껴지며, 그의 머리카락이 미세하게 곤두서는 듯하다. 그의 눈은 탐욕이나 명예욕이 아닌, 순수한 지적 호기심과 진실을 향한 갈망으로 빛나고 있다. 그의 어깨를 짓누르던 고뇌와 피로가 사라지고, 오직 탐험가의 열정만이 그의 존재를 채운다.

    **하랑 (내레이션):** 모든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시원의 제국’은 그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곳은… 어쩌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동시에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의 끝일지도 몰라. 이 공기, 이 빛, 이 모든 것이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듯했다.

    **[12컷]**
    **배경:** 갑자기, 공중에 떠 있던 원형 구조물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오며, 바닥 중앙에 거대한 홀로그램 지도가 투영된다. 지도는 우리가 알던 세계의 지도가 아니다. 미지의 대륙들과 사라진 문명들의 흔적, 그리고 알 수 없는 에너지 흐름들이 복잡하게 얽혀 나타난다. 그 중 한 곳이 지금 이 유적의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며, 붉은 빛으로 깜빡인다.

    **시아:** (두 손으로 입을 막으며 경악한다. 그녀의 눈동자에 홀로그램 지도의 빛이 반사되어 흔들린다) 저것은… 저것은 대체… 우리가 알던 세상이 아니오!

    **하랑:** (동공이 확장되며, 숨을 헐떡인다. 그의 얼굴에는 충격과 함께 감출 수 없는 희열이 번진다) 이 지도는…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니야. 사라진 대륙, 잊혀진 문명… 이곳은… 모든 것의 진실을 담고 있어! 우리는 이제 겨우 문을 열었을 뿐이야!

    **[마지막 컷]**
    **배경:** 하랑과 시아가 홀로그램 지도를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뒷모습. 지도는 계속해서 미지의 정보를 뿜어내고 있으며, 특히 유적의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는 듯한 한 지점이 강렬한 빛을 내뿜고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경외와 함께, 거대한 미지의 힘 앞에서 느끼는 인간 본연의 미약한 두려움이 스친다. 이제 막 시작된, 이들을 집어삼킬 거대한 모험의 서막.

    **하랑 (내레이션):** 심연은 우리를 불렀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막, 그 부름의 서막에 들어섰을 뿐이었다. 이 심연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우리가 이곳에 발을 들인 이상, 이제 더는 뒤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우리를 중심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효과음: 웅-! 지지직! 고대 문명의 거대한 엔진이 깨어나는 듯한 소리.)**

    **다음 화 예고:** “깨어난 그림자”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새벽의 잿빛 장막이 도시의 앙상한 골조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강태한은 익숙하게 어깨에 멘 낡은 배낭에서 손때 묻은 마체테를 뽑아 들었다. 칼날은 희미한 새벽빛을 받아 얼룩덜룩하게 빛났다. 녹슨 철근들이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난 붕괴된 빌딩 숲은 기괴한 유령처럼 서 있었다. 싸늘한 공기가 폐허의 냄새를 실어 날랐다. 먼지, 곰팡이, 그리고 알 수 없는 비린내가 뒤섞인 불쾌한 향연이었다.

    “젠장, 벌써 며칠째 제대로 된 식량을 못 구했지.”

    태한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폐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했다. 목표는 이 구역에서 그나마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옛 대형 식료품점이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콘크리트 파편과 깨진 유리 조각들이 그의 발소리를 더 크게 만들까 봐 신경이 곤두섰다. 매 걸음마다 조심스러운 체중 분배, 언제든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림자에 대한 본능적인 경계. 이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식료품점 입구는 거대한 철제 셔터가 찢겨 나간 채 벌어져 있었다. 안쪽은 완전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태한은 허리춤에 찬 작은 전술용 손전등을 꺼내 불을 밝혔다. 좁고 날카로운 빛줄기가 내부를 더 기괴하게 만들었다. 먼지가 자욱한 통로, 부서진 진열대, 그리고 바닥에 뒹구는 상품들의 잔해.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이미 휩쓸고 간 흔적이 역력했다.

    “이젠 뭘 기대해야 하는 거야.”

    태한은 한숨을 쉬며 안으로 발을 디뎠다. 그의 눈은 주변의 모든 움직임, 모든 소리에 촉각을 세웠다. 오래된 건물은 작은 진동에도 먼지를 후드득 떨어뜨렸다.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의 발걸음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헌터가 먹잇감을 쫓듯, 혹은 먹잇감이 헌터를 피하듯 움직였다.

    한참을 헤매던 그는 냉동 코너가 있던 자리에서 희망의 흔적을 발견했다. 찌그러진 냉장고 문이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안쪽 구석에서 아직 온전해 보이는 통조림 몇 개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아직도 이런 게 남아있다니.’ 기적 같은 일이었다. 부패했을 확률도 있었지만,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한 줄기 희망이었다.

    그가 조심스럽게 다가가 통조림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_스스스륵._

    등 뒤에서 섬뜩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태한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리며 마체테를 들어 올렸다. 날카로운 손전등 빛이 어둠 속의 존재를 비추는 순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것은 ‘아귀견’이었다. 옛 시절 길거리를 배회하던 유기견들이 끔찍한 균열의 영향으로 변이한 존재. 털은 빠지고 흉측한 근육과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빨은 칼날처럼 길게 솟아 있었고, 눈은 핏빛으로 번뜩였다. 일반적인 아귀견보다 훨씬 크고 흉포해 보였다. 등줄기에는 기형적인 돌기까지 돋아 있었다.

    _크르르르르…!_

    아귀견은 목구멍 깊은 곳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태한은 통조림을 포기하고 뒷걸음질 쳤다. 마체테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젠장, 이런 곳에 괴물이 있을 줄이야.”

    아귀견은 태한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바닥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발톱이 긁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놈의 움직임은 빠르고 맹렬했다. 태한은 간발의 차이로 옆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했다. 아귀견의 날카로운 발톱이 그가 서 있던 진열대를 박살 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태한은 마체테를 휘둘러 아귀견의 옆구리를 노렸다. _쩌억!_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놈의 몸에서 검붉은 피가 튀었다. 그러나 아귀견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개의치 않는 듯 더욱 맹렬히 달려들었다. 놈의 피부는 돌기만큼이나 단단해 보였다.

    ‘정신 차려. 이대로는 안 돼.’

    태한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주변의 지형을 활용해야 했다. 그는 냉동 코너의 부서진 구조물들을 이용해 아귀견과의 거리를 벌렸다. 놈의 몸집이 크다는 점을 역이용할 수 있었다. 좁은 통로로 유인하면 움직임이 둔해질 터였다.

    그는 부서진 진열대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하며 아귀견을 도발했다.

    “이리 와라, 못생긴 자식아!”

    _크아아앙!_

    아귀견은 태한의 도발에 완전히 넘어갔다. 분노에 찬 괴성은 식료품점 내부를 뒤흔들었다. 놈은 맹렬한 기세로 태한이 빠져나간 좁은 틈새로 몸을 밀어 넣으려 했다. 예상대로 육중한 몸이 구조물에 걸려 움직임이 둔해졌다.

    바로 그때였다. 태한은 놈의 측면으로 돌진했다. 놈의 머리가 구조물에 박혀 순간적으로 움직임이 멈춘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마체테를 양손으로 잡고 모든 힘을 실어 아귀견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가장 약한 부위, 동시에 가장 치명적인 부위였다.

    _콰직!_

    뼈가 부러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와 함께 마체테가 놈의 살점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귀견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짧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핏빛 눈동자에 생기가 사라지더니, 이내 거대한 몸체가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먼지가 후욱 일었다.

    태한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아귀견의 움직임이 완전히 멈춘 것을 확인했다. 심장이 발버둥치듯 요동쳤다. 손에 쥐고 있던 마체테는 끈적한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아… 하아…”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가까스로 몸을 가누며 비척거리며 통조림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여전히 세 개의 통조림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를 집어 들자, 다른 두 개가 그의 손에 잡혔다.

    그는 통조림을 배낭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겨우 식량을 얻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이곳에 이런 놈이 숨어있었다는 것은, 이 근방에 더 강한 변이체들이 존재할 가능성을 의미했다. 혹은, 이놈은 그저 시작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막 식료품점을 나서려는 순간, 저 멀리 도시의 폐허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_웅… 웅… 웅….!_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낮고 불길한 진동이었다. 지면을 타고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그 소리는 아귀견의 으르렁거림과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풍겼다. 태한은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방향, 즉 도시의 가장 깊고 위험한 중심부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잿빛 새벽빛을 삼킨 듯한, 거대한 그림자가 아스라히 솟아 있었다. 어둠 속에 잠겨 있어 형체를 알 수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름 끼치는 공포를 내뿜고 있었다.

    “젠장… 이건 또 뭐야.”

    태한은 마체테를 다시 고쳐 잡았다. 도시의 폐허는 여전히 그에게 수많은 위협을 감추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한 그의 투쟁은 이제 막 새로운 장을 맞이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