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타임슬립 (시간여행)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거대한 크리스탈 첨탑이 하늘을 꿰뚫고 솟아 있었다.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상징이자, 동시에 이 모든 마법 문명의 심장부라 불리는 곳이었다. 유진은 그 첨탑 아래, 웅장한 도서관의 낡은 책상에 앉아 푹 한숨을 쉬었다. 찢어질 듯한 머리통을 부여잡고 눈앞의 마법 역사서를 노려봤지만, 글자들은 지렁이처럼 꿈틀거릴 뿐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젠장, 또 낙제점인가.”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낡은 종이 냄새와 먼지 냄새, 그리고 희미한 마법의 기운이 섞인 도서관 공기에 스며들어 사라질 뿐이었다. 유진은 아르카나 학원 최고의 수재들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그의 마력은 늘 간당간당했고, 실전 마법 수업에서는 늘 사고를 쳤다. 오늘도 변이 마법 수업에서 연금술 가마를 터뜨리는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미스터 로젠 교수의 불호령과 함께 특별 봉사 활동이라는 명목으로 고대 자료실 정리라는 끔찍한 형벌이 떨어졌다.

    “이게 봉사냐, 고문이지.”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바로 잊힌 지식과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욕,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이었다. 덕분에 실전은 젬병이어도 이론 과목에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다. 특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고대 마법의 역사나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자료를 파고드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어쩌면, 그 특이한 재능이 그를 이 ‘특별 봉사 활동’으로 이끈 것인지도 몰랐다.

    로젠 교수는 낡은 자료실의 문을 열어주며 으스스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유진, 네가 맡을 곳은 제2 서고의 가장 깊은 곳이다. 다른 자료들은 건드리지 말고, 오직 ‘봉인된 시간의 기록’ 카테고리만 정리하도록 해. 그리고… 절대, 벽 너머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라. 이곳은 역사가 깊은 곳이니, 으스스한 소리가 들려도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만 해라.”

    유진은 어딘가 모르게 섬뜩한 로젠 교수의 눈빛에 잠시 몸을 움츠렸다. 그의 경고는 단순한 주의를 넘어선 무언가였다. ‘벽 너머의 소리’라니. 고작 낡은 자료실에 무슨 귀신이라도 나온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의 호기심은 이미 발동된 후였다.

    먼지 가득한 제2 서고는 학원의 여느 화려한 공간과는 달리, 오래된 나무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거미줄이 여기저기 쳐져 있고, 책들은 제멋대로 꽂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진은 건네받은 목록을 들고 ‘봉인된 시간의 기록’이라는 표지가 붙은 책장을 찾아 깊숙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벽 너머에서, 아주 희미하지만 확실히 들려오는 소리.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낮고 불규칙한 박동음이었다.

    유진은 순간 몸을 굳혔다. 로젠 교수의 경고가 뇌리를 스쳤지만, 그의 호기심은 두려움을 압도했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서고의 가장 안쪽, 낡은 책장들 뒤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을 따라 가자, 텅 빈 공간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 다른 책장들보다 훨씬 낡고 거대한, 하지만 아무런 책도 꽂혀 있지 않은 거대한 벽장이 서 있었다.

    그 벽장 뒤의 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벽은 다른 곳보다 유난히 두꺼웠고, 고대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래 전에 기능을 상실한 듯, 문양의 색은 바래고 일부는 깨져 있었다. 유진은 벽에 귀를 대었다.
    **쿵… 쿵… 쿵…**
    소리는 이제 훨씬 선명하게 들렸다. 그 안에서 무언가 거대하고 끔찍한 것이 살아 숨 쉬는 듯한 박동이었다. 단순히 벽 너머의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벽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유진은 손을 뻗어 벽의 문양을 더듬었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차갑고 거칠었다. 그때, 그의 손끝에 미세한 마력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봉인. 그것도 아주 강력하고 오래된 봉인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불안정했다. 균열이 있었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홀린 듯, 벽장 뒤에 가려져 있던 낡은 마법 서적 한 권을 발견했다. 먼지를 털어내자, 표지에는 알아보기 힘든 고대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겨우 해독할 수 있었던 것은 ‘크로노스 레퀴엠: 금지된 시간의 제단’이라는 문구였다.

    유진은 책을 펼쳤다. 안에는 삐뚤빼뚤한 필체로 기록된 경고와 함께, 아르카나 학원 지하에 숨겨진 ‘시간의 심장’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학교는 영원히 번성할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시간의 조각들을 먹어치워야만 한다. 금지된 제단이, 금지된 문이 열리면,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혼돈에 빠질 것이니, 절대… 그곳을 건드리지 마라.*

    그는 손에 땀을 쥐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학원의 눈부신 번영 뒤에 이런 끔찍한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는 말인가? 시간의 조각? 그게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크로노스 레퀴엠’의 필자는 공포에 질린 채 경고하고 있었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벽을 바라봤다. 그 경고가 이 벽을 가리키는 것임을 직감했다. ‘시간의 심장’이 이곳 벽 너머에, 바로 이 봉인 아래에 있었다. 봉인은 이미 오래 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불길한 기운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쿵… 쿵… 쿵-!**
    박동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벽에 새겨진 고대 마법 문양이 희미하게, 그리고 불규칙적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지만, 발은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호기심, 아니, 어쩌면 진실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그를 끈질기게 붙잡고 있었다.

    그는 홀린 듯 벽에 손을 다시 대었다. 균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이 그의 손끝을 타고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차갑고, 날카롭고, 동시에 기묘하게 이끌리는 감각이었다. 그때, 벽에 새겨진 마법 문양들이 갑자기 눈부시게 폭발하듯 빛나기 시작했다.

    **쿠우우우웅-!!!**

    서고 전체가 굉음과 함께 흔들렸다. 벽의 균열이 순식간에 확장되었고, 유진이 손을 댄 바로 그 지점에서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구멍 너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 그 자체의 격렬한 흐름 같았다. 색과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수한 조각들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왔다.

    유진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몸이 순간적으로 무중력 상태가 된 것처럼 떠올랐고, 그를 향해 쏟아져 들어오는 시간의 파편들은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틀어버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마법 방어막을 소환하려 했으나, 찰나의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의식이 찢겨 나가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의 몸은 뚫린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어지러움 속에서, 그는 간신히 눈을 뜨려 애썼다. 그의 시야에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은, 구멍 너머에 있는 거대한 장치였다. 낡고 거대한, 하지만 활성화된 마법 장치. 그리고 그 장치의 중심에서 흐느적거리는, 인간의 형상과 흡사하지만 섬뜩하게 뒤틀린 **무언가**였다.

    **파앗-!**

    마지막 의식이 끊어지는 순간, 유진은 정신을 차렸다. 그는 여전히 벽에 뚫린 구멍 앞에 서 있었다. 장소는 똑같았다. 낡은 서고, 벽의 구멍, 그리고 그 너머의 기이한 장치. 하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공기. 공기의 질감이 달랐다. 곰팡이 냄새는 여전했지만, 어딘가 희미하게 타는 듯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장치. 장치는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 있던 뒤틀린 무언가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훨씬 더 끔찍하게 변이된, 뼈와 살이 뒤엉킨 괴생명체가 끊임없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유진은 눈을 비볐다. 구멍 가장자리를 살펴보자, 낡은 마법 문양 대신 전혀 다른, 하지만 역시 고대처럼 보이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것은, 구멍 옆에 놓인 작은 석판이었다. 그 위에는 이 시대의 달력과 같은 형태로, 분명히 쓰여 있었다.

    **[아르카나 성력 742년 11월 12일]**

    유진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아르카나 성력 1072년이 아니었다. 무려 330년 전의 과거였다. 벽 너머의 금기가 그를 삼켰고, 시간마저 뒤틀어버린 것이다.

    “이게… 대체… 무슨…!”

    그의 목소리는 미약한 떨림과 함께 공중에 흩어졌다. 끔찍한 금기가 숨겨진 곳. 그곳은 단순한 비밀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을 먹어치우고, 모든 것을 뒤틀어버리는 존재였다. 유진은 꼼짝없이, 금지된 과거의 한가운데에 던져진 것이었다.

  • 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회색빛 하늘 아래, 금속성 광택을 뿜어내는 저택은 거대한 기계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저택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서재, 그 육중한 강철 문은 굳게 닫힌 채 비극적인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톱니바퀴와 증기 파이프가 복잡하게 얽힌 벽면, 놋쇠로 장식된 선반 위에는 이름 모를 기계 부품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늘어서 있었다. 공기 중에는 미세한 기름 냄새와 함께 차갑고 묵직한 죽음의 기운이 감돌았다.

    “강혁 탐정님, 드디어 오셨군요.”

    김 경감의 목소리는 평소의 쾌활함을 잃고 낮게 깔려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거듭된 실패와 피로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이미 수많은 경찰관들이 저택을 들락날락하며 발자국을 남겼지만, 이 밀실의 수수께끼만큼은 누구도 풀지 못했다.

    강혁은 묵묵히 서재 문을 응시했다. 은색 머리카락이 그의 앙상한 뺨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금색 모노클 너머의 눈은 이미 문고리부터 벽면의 미세한 흠집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훑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언제나처럼 낡고 기름때 묻은 가죽 가방이 들려 있었다.

    “피해자는 박선우 경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이 도시 최고의 발명가이자 거대 증기 엔진 기업의 수장이었죠.” 김 경감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 서재에서 홀로 작업 중이었고, 아침에 비서가 발견했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창문은 특수 합금 쇠창살로 막혀 있었죠.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완벽한 밀실입니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
    “시신은요?”

    “안에 있습니다. 아직 손대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들어가기 전에 확인했습니다만… 아무리 봐도 외부 침입이 불가능합니다. 문, 창문, 심지어 증기 배관까지 전부 막혀있었고, 그 어느 곳도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틈은 없었습니다.”

    강혁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문에 다가섰다. 그는 육중한 강철 문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금속의 울림이 그의 귀를 통해 뇌로 전달되는 듯했다. 이어서 그는 모노클을 들어 올리고 문틈과 잠금장치, 심지어 문을 지탱하는 경첩까지 세밀하게 관찰했다. 복잡한 기계식 잠금장치에는 미세한 먼지조차 끼어 있지 않았다. 완벽했다.

    김 경감은 그를 안으로 안내했다. 서재는 발명가의 작업실답게 온갖 기계와 도구들로 가득했다. 천장에는 거대한 놋쇠 시계가 복잡한 톱니바퀴를 드러낸 채 째깍거리고 있었고, 벽면에는 증기압을 측정하는 게이지들이 섬세한 바늘을 흔들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작업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박선우 경이 머리를 기댄 채 쓰러져 있었다.

    박선우의 얼굴은 평화로웠지만, 그의 등에는 섬뜩한 상처가 나 있었다. 피는 거의 흐르지 않았고, 등 중앙에 아주 작고 정교한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마치 아주 가는 송곳으로 정확하게 심장을 관통한 것 같았다.

    강혁은 시신에 가까이 다가섰다. 그는 모노클을 조정하며 상처 부위를 면밀히 살폈다. 그의 눈이 움직일 때마다 빛이 모노클 렌즈 위를 미끄러졌다.
    “흠… 특이한 상처로군요.”

    “네. 육안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상처입니다. 보통의 칼이나 총상과는 다릅니다. 주변에는 혈흔도 거의 없습니다. 외부 출혈은 거의 없지만, 내부 장기는 완전히 손상된 것으로 보입니다. 부검 결과가 나와야겠지만, 고열과 고압이 동반된 관통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강혁은 시신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소리 없이 부드러웠다. 그는 바닥의 먼지, 공기의 흐름, 미묘한 온도 변화까지 온 감각으로 포착하는 듯했다. 그는 작업대 위에 놓인 온갖 발명품들을 유심히 살폈다. 미완성된 증기 엔진 부품들, 정교하게 가공된 놋쇠 기어들, 그리고 한쪽에 놓인, 사람 팔뚝만 한 크기의 기묘한 자동 인형(오토마톤)이 눈에 들어왔다.

    자동 인형은 금속과 나무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섬세한 톱니바퀴들이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팔 부분에는 아주 가늘고 뾰족한 은색 바늘이 장착되어 있었다. 마치 정밀한 조각이나 각인 작업을 위한 도구 같았다. 그 옆에는 작은 증기 게이지가 부착되어 있었는데, 바늘은 ‘0’을 가리키고 있었다.

    강혁은 그 자동 인형 앞에서 멈춰 섰다. 그는 가방에서 작은 돋보기와 미세한 진동을 감지하는 장치를 꺼냈다. 그는 자동 인형의 팔을 살피고, 바늘 끝을 돋보기로 들여다봤다. 바늘 끝에는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미세한 응고된 액체 흔적이 남아 있었다.

    “김 경감.” 강혁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그의 눈은 번뜩였다. “이 자동 인형에 연결된 증기압 시스템은 어디입니까?”

    김 경감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자동 인형 말입니까? 글쎄요, 박 경이 취미 삼아 만들던 것이라… 특별한 증기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자체 동력으로 움직였을 겁니다.”

    “자체 동력이라….” 강혁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는 자동 인형 옆에 놓인 작은 압력 게이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0’.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진동 감지 장치는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발생했지만, 강력했던 충격의 여파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작업대 주변을 둘러봤다. 박선우의 마지막 작업 흔적들을 찾아 나섰다. 작업대 한구석, 먼지 쌓인 놋쇠 부품들 사이에 아주 작고 빛나는 것이 놓여 있었다. 강혁은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정교한 톱니바퀴였다. 다른 톱니바퀴들과는 달리, 한쪽 이빨이 아주 미세하게 손상되어 있었다.

    “이 방은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살인자가 이 방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혹은, 이미 안에 있었을 수도 있죠.” 강혁은 톱니바퀴를 김 경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떨림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살인자가 *직접* 이 방에 들어올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김 경감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강혁은 자동 인형을 가리켰다. “김 경감, 이 자동 인형의 증기압 게이지는 지금 ‘0’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톱니바퀴를 보십시오. 이 이빨의 손상은 갑작스럽고 강력한 회전력, 혹은 압력에 의해 발생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말이죠.”

    그는 시신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박선우 경의 상처는 고열과 고압이 동반된 관통상입니다. 그리고 이 자동 인형의 팔에 달린 바늘은 충분히 그런 상처를 만들 수 있을 만큼 날카롭고 튼튼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이 바늘이 박선우 경의 등을 찔렀느냐는 것입니다.”

    강혁은 작업대 옆에 놓인 작은 제어반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복잡한 다이얼과 스위치들이 달려 있었다.
    “박선우 경은 이 자동 인형을 제어하는 자신만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재 밖에서 작동시킬 수 있는 일종의 무선 제어 장치였을 겁니다. 이 자동 인형의 동력은 자체 증기 엔진이 맞지만, 그 압력을 순간적으로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보조 장치가 작업대 아래에 숨겨져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제어 장치를 이용해 이 자동 인형을 조작한 겁니다.”

    김 경감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그럼… 살인자는 이 방에 들어오지 않고, 저 자동 인형을 원격으로 조작해서 박선우 경을 살해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정확합니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동 인형은 박선우 경이 가장 아끼던 발명품 중 하나였을 겁니다. 그는 아마도 이 인형의 정밀한 움직임을 테스트하고 있었겠죠. 그리고 살인자는 그 틈을 노린 겁니다. 서재 밖에서, 이 자동 인형의 제어 신호를 가로채거나, 혹은 미리 해킹하여 살인 명령을 입력한 겁니다. 순간적인 과부하가 걸려 이 작은 톱니바퀴가 파손되었고, 그 힘으로 바늘은 박선우 경의 심장을 관통했습니다.”

    강혁은 자동 인형의 게이지를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이 게이지는 지금 ‘0’을 가리키지만, 살해 직전에는 최고치를 넘어섰을 겁니다. 그리고, 범인은 이 자동 인형의 전원 자체를 꺼버린 거죠. 증기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증거는 모두 은폐됐습니다. 완벽한 밀실 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김 경감은 경악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강혁의 눈은 이미 서재의 문 너머, 저택의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강혁은 다시 가방에서 작은 공구 세트를 꺼내며 말했다. “과연 누가, 이 박선우 경의 정교한 시스템을 해킹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 저택의 어디에, 그 무선 제어 장치와 해킹 흔적이 남아있을까요?”

    강혁은 자동 인형의 복잡한 뚜껑을 열기 시작했다. 그의 손놀림은 거침없이 정교했다.
    “이 살인자는, 박선우 경의 가장 소중한 것을 이용해 그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그 범인은… 이 저택의 구조와 박선우 경의 발명품에 대해 저보다도 더 잘 아는 인물일 겁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재의 거대한 놋쇠 시계가 ‘땡, 땡, 땡’ 하고 정각을 알리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마치,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듯, 차갑고 길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강혁의 손에는, 자동 인형의 내부에서 찾아낸, 정교하게 숨겨진 아주 작은 발신기가 들려 있었다.

  • 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지하 벙커 깊숙한 곳, 희미한 마나등이 축축한 벽을 비추는 훈련장이었다. 리아나는 식은땀으로 젖은 이마를 훔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손바닥에서 빛나는 작은 결정들이 공중에 떠올랐다가, 그녀의 의지에 따라 부드럽게 흩어지며 사라졌다. 투명하고 날카로운 조각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유려하게 움직였다.

    ‘이걸로 충분할까?’

    불안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지상에선 지금도 크루아 제국의 중장갑 비행정들이 아르카나의 밤하늘을 가르고 있을 터였다. 저 위는 압제와 공포의 심장이었다. 모든 것을 짓누르는 거대한 제국의 그림자. 그리고 이곳, 지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붉은 새벽의 벙커는 그 심장에 맞서 싸우려는 작은 희망의 그림자였다.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무거운 강철 문이 열리고, 차가운 지하 공기와 함께 카인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굳건했지만, 오늘은 그 아래 드리운 피로가 더욱 짙었다. 단단하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빛은 그가 짊어진 무게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했다.

    “리아나. 준비는 됐나?”

    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이 볼에 달라붙어 살짝 간지러웠다.
    “네, 카인 대장님. 다만… 아직 제 결정 마법이 제국의 방벽을 뚫을 만큼 강해졌는지는….”

    카인은 말없이 리아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굳건한 온기가 불안하게 흔들리던 리아나의 마음을 붙잡아 주었다.
    “네 힘은 단순히 파괴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정교함과 타이밍, 그리고 은밀함. 그게 바로 네 무기다. 기억해라.”

    그는 더 이상 말없이 몸을 돌려 벙커 깊숙한 곳, 작전실로 향했다. 리아나는 그의 뒤를 따랐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음속에선 수많은 질문과 걱정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자신이 과연 이 막중한 임무를 해낼 수 있을까. 작은 마법소녀의 힘으로 거대한 제국에 맞설 수 있을까.

    작전실은 이미 분주했다. 붉은 새벽의 핵심 전술팀원들이 홀로그램 지도를 둘러싸고 있었다. 복잡하게 얽힌 아르카나의 지하 통로들과 지상의 주요 건물들이 선명하게 투영되어 있었다. 그 중심에는 늘 그렇듯 차분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의 미라가 서 있었다. 그녀의 손놀림에 따라 홀로그램은 빠르게 정보를 갱신했다.

    카인은 지도 앞에 섰다.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지만, 그 안에 담긴 분노는 뜨거웠다.
    “오늘 밤, 크루아 제국은 아르카나 중앙 광장에서 ‘단죄의 의식’을 거행할 것이다.”
    리아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단죄의 의식’. 제국의 잔혹함을 상징하는 공개 처형식이었다.
    “수백 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본보기로 처형될 거다. 시민들의 사기를 꺾고, 감히 제국에 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려는 수작이지.”

    미라가 중앙 광장의 홀로그램을 확대했다. 광장 주변은 이미 제국군 병력으로 가득했고, 그들의 중갑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 반응은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할 정도로 강력했다. 거대한 처형대가 광장 중앙에 솟아 있었다. 그 위에는 이미 수십 명의 사람들이 묶여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리아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저들을… 저대로 둘 수는 없었다.

    “우리의 임무는 두 가지다.” 카인이 단호하게 말했다. “첫째, 가능한 한 많은 수감자를 구출한다. 둘째, ‘붉은 새벽’의 메시지를 광장에 울려 퍼뜨려라. 제국이 아무리 우리를 짓밟으려 해도, 자유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리아나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수백 명. 그들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었다. 자신의 결정 마법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발휘되어야 했다.

    “하지만… 제국은 최근 ‘추적자’들을 풀었습니다.” 미라가 불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지도 위에 몇 개의 붉은 점을 찍었다. “강화된 마수들입니다. 마법 에너지 반응을 감지하고 추격하죠. 리아나 님의 마법을 쓰면… 바로 노출될 겁니다.”

    리아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약점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추적자들은 보통 마나 방출량이 큰 공격 마법사들을 노렸다. 자신은 주로 방어와 교란에 특화된 마법이었지만, 그래도 마력을 사용하면 추적자들의 시야에 잡힐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더욱 네가 필요하다.” 카인이 리아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확신으로 가득했다. “정교하고 섬세한 결정 마법으로, 그 추적자들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광장의 방벽에 균열을 만들고, 인파 속에서 혼란을 일으켜라. 그리고… 메시지가 송출될 때까지 시간을 벌어라.”

    리아나는 고개를 들었다. 카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에게 거는 신뢰를 읽었다. 이 어깨에 지워진 무게가 단순히 부담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붉은 새벽의 희망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리아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작전 브리핑이 끝난 후, 리아나는 지급받은 특수 제작된 경량 전투복을 입었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반사하지 않는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검은색 슈트.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외부 환경으로부터 마나 흐름을 은폐하는 데 특화된 디자인이었다. 평소의 반짝이는 변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화려함보다 실용성이 우선이었다. 허리춤에는 비상용 마나석이 단단히 매달려 있었다. 언제라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리아나는 어둠 속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봤다. 이제는 더 이상 연약한 소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그녀는 결연한 눈빛으로 자신을 마주 보고 있었다.

    “기억해라, 리아나.” 카인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들려왔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붉은 새벽이, 그리고 모든 억압받는 이들이 너와 함께한다.”

    리아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내쉬었다. 망설임은 사라졌다. 이제는 오직 각오뿐이었다.

    작전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붉은 새벽의 정예 요원들이 어둠 속에서 그림자처럼 지하 통로를 미끄러져 나갔다. 리아나는 그들 사이에 섞여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심장은 쿵, 쿵, 하고 크게 울렸다. 하지만 이제는 공포가 아닌, 임무에 대한 강한 의지가 그 박동을 채우고 있었다.

    통로 저편에서 희미하게 진동이 느껴졌다. 멀리서 들려오는 제국군 비행정의 굉음이 지하까지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때, 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찢었다.
    “대장님! 지하 탐지망에 이상 반응이 감지됐습니다! 제국군이…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의 통로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리아나는 눈을 크게 떴다.
    벌써?
    그녀의 눈앞에 드리운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차가운 공기가 피부를 스쳤다.
    놈들이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 타임슬립 (시간여행)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검은 심장의 그림자

    **제 14화: 덫은 이미 놓여졌다**

    “크윽…!”

    핏물이 고인 시야는 과거의 악몽처럼 일렁였다.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이던 나는, 눈앞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 그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절규조차 허락되지 않던 그 순간, 내 손은 이미 피로 얼룩져 있었다. 하지만 그 피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의 전부였던 것을 빼앗아 간, 그 잔혹한 배신의 대가였다.

    시간은 돌고 돌아, 나는 다시 이곳에 서 있었다. 그 지옥 같은 미래가 펼쳐지기 직전의, 온전한 과거. 하지만 내 심장은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 복수. 오직 그 단어만이 나의 모든 세포를 지배하고 있었다.

    유리창 너머,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에서 이정우가 샴페인 잔을 들고 능글맞게 웃고 있었다. 재벌 3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유쾌한 농담을 던지는 그의 모습은, 한 치의 죄책감도 없이 그저 성공가도를 달리는 젊은 사업가로 보였다. 그래, 그게 과거의 나를 기만했던 이정우의 완벽한 가면이었다.

    “강서준, 너는 내 최고의 친구잖아!”

    귓가에 맴도는 그 위선적인 목소리에 나는 이를 악물었다. 친구?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그 단어를 다시 입에 담을 수 있을까. 나의 모든 것을 빼앗고,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주제에.

    손목시계의 초침이 느리게 움직였다. 7시 30분. 계획된 시간이었다.
    나는 와인 잔을 기울여 붉은 액체를 한 모금 마셨다. 혀끝에 맴도는 쌉쌀한 맛이, 내 마음속에 똬리를 튼 증오와 묘하게 어울렸다.

    그때, 저 멀리서 한 남자가 이정우에게 다가갔다. 키는 작지만 눈빛이 날카로운, 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투자 전문가, 박선우 이사였다. 내가 며칠 밤낮으로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가 이정우에게 접촉하도록 교묘하게 판을 짠 인물이었다. 박선우는 마치 오랜 숙제를 끝내듯이 이정우에게 작은 서류철 하나를 건넸다.

    “이정우 대표님, 말씀하신 자료입니다.”

    이정우는 무심하게 서류철을 받아 들었다. 그 안에는 내가 조작한, 완벽하게 그럴싸한 투자 제안서가 들어 있었다. 앞으로 6개월 안에 급부상할 것처럼 포장된, 실상은 백지수표나 다름없는 허상뿐인 ‘신기술 개발 투자’ 건이었다. 과거의 나는 이정우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처참하게 무너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이정우가 그 함정에 빠질 차례였다.

    이정우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뜩였다. 그는 서류철을 펼쳐 대충 훑어보더니, 씨익 웃으며 박선우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 박 이사님은 역시 뭘 좀 아시는 분이야. 이거, 물건이 되겠어!”

    박선우는 빙긋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이정우가 아닌, 복잡한 인파 속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나를. 그는 나의 의도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나를 따르는 자들이 과거에는 나를 파멸로 이끌었지만, 이제 그들은 나의 충실한 도구가 되었다. 내가 시간 여행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지만, 내가 보여주는 ‘미래 정보’의 압도적인 정확성 앞에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따랐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박선우의 눈빛이 순간 미묘하게 흔들렸지만, 이정우는 그들의 짧은 교감 따위는 알아차릴 리 없었다. 그는 이미 장밋빛 미래에 사로잡혀 있었다.

    “자, 그럼 저희 새로운 투자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 잔 더 해야지!”

    이정우는 의기양양하게 잔을 높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도 박수갈채를 보내며 그의 열정에 동조했다. 그들은 알지 못했다. 지금 이정우가 들고 있는 잔이, 사실은 그의 파멸을 위한 독배라는 것을.

    나는 주머니에서 작은 기기를 꺼냈다.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하자, 박선우가 이정우에게 건넸던 서류철의 내용이 내 스마트폰 화면에 깨끗하게 나타났다. 완벽하게 위조된 수치와 데이터, 그리고 이정우의 서명란까지. 모든 것이 치밀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이정우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성공에 대한 기대감과 자만이 가득했다. 아직도 그는 자신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태양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의 뒤에는 이미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내가 드리운 그림자.

    나는 천천히 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이제 시작이었다.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단숨에 모든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네가 가진 모든 것을 갉아먹을 것이다. 고통스러운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게 만들고, 네가 나에게 느꼈던 그 좌절감과 무력감을 뼛속 깊이 새겨주겠어.

    창밖으로 어둠이 깊어지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로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하지만 내 안은 이미 불길 같은 복수심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정우, 네가 나를 배신했던 그날부터, 너의 심장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그림자는 이제 너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이다.

    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차갑고 섬뜩한 미소였다.

    네가 나에게서 빼앗아 간 것들을, 이제 너의 심장으로 되돌려줄 시간이다.

    ***

    “젠장, 이게 무슨…!”

    며칠 뒤, 이정우의 사무실에서는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은 불같이 붉어져 있었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손에 든 뉴스 기사는 그의 지분을 무려 30%나 날려버릴 재앙을 예고하고 있었다.

    “신기술 개발 프로젝트, 치명적 결함 발견! 관련 투자 기업 줄도산 위기!”

    박선우가 건넸던 바로 그 ‘신기술’에 대한 기사였다. 기사 속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명확하게 기술되어 있었고, 그 결함은 내가 과거에 겪었던 그 프로젝트의 실패 원인과 정확히 일치했다.

    “거짓말이야! 말도 안 돼!”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기사를 구겼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와 분노로 흔들렸다. 그가 투자한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대표님, 주주총회 소집 요청서가 도착했습니다.”

    비서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이정우에게는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소집 요청서를 받아 들었다. 그 안에는 그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구들이 가득했다.

    그는 문득 며칠 전 파티에서 만났던 박선우의 눈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등 뒤에 느껴졌던 묘한 시선을. 그때는 단순한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의도된 그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그는 진실을 알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최고의 친구’라 믿었던 강서준의 설계라는 것을.

    창밖은 여전히 어두웠다. 하지만 이정우의 세상은 이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심장 속에서, 이제 막 차가운 절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절망의 씨앗을 심은 이는, 지금쯤 어디에선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을 터였다.

    나는 조용히 내 차의 시동을 걸었다. 내비게이션에는 다음 목적지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정우의 몰락을 위한 다음 단계.

    복수는 차갑게 식혀 먹어야 제맛이라 했던가.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악셀을 밟았다. 밤의 장막이 나를 감쌌다. 복수의 밤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마법소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무림 마법소녀: 별의 각성

    **에피소드 1: 운명의 서막**

    **[씬 1]**

    **[장소]** 무림맹 본산, 천공 연무장 / 낮

    **[상황 묘사]**
    광활한 천공 연무장. 수천 명의 무림 고수들이 운집해 있다. 각 문파의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거대한 석상들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중앙에는 수십 장 높이의 검은 비석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에는 무림맹주와 각 대문파의 문주들이 엄숙한 표정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서늘한 기품을 뿜어내는 ‘천화신녀’와 거만하게 팔짱을 낀 채 비웃듯 좌중을 훑는 ‘흑룡문주’의 모습도 보인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폭우가 쏟아질 듯 어둡고 무겁다.

    **[내레이션] (무림맹주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
    천하 강호는 혼돈의 시대에 당도했다. 무림의 균형은 무너지고, 정의는 땅에 떨어져 피로 물들었다. 더 이상은… 이 비극을 좌시할 수 없다.

    **[무림맹주]**: (단상 위로 뚜벅뚜벅 걸어 나오며, 비석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의 손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비석에 닿자, 묵직한 진동과 함께 비석에서 오색 섬광이 뿜어져 나온다.)
    천년 만에 봉인된 고문서가 열리고, ‘운명의 시험 무림대회’의 서막이 올랐음을 천하에 고하노라!

    **[액션]**
    섬광이 흩어지자, 비석의 표면에 고대 문자들이 마치 살아 움직이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동시에 연무장 전체를 휘감는 웅장하면서도 알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무림인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무림맹주]**: (목소리에 힘을 주어, 연무장 전체에 울려 퍼지게 외친다)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강호 천하의 운명을 결정할 ‘천하 옥패’를 쥐게 될 것이다! 패권을 쥐어 백 년 태평성대를 열 것인가, 혹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심연의 시대를 부를 것인가…! 그 모든 것은 오직 우승자의 손에 달려있다!

    **[상황 묘사]**
    웅성거림은 이내 거대한 함성으로 변한다. 경악과 탐욕, 야망이 뒤섞인 무림인들의 눈빛이 번뜩이며 오간다. 흑룡문주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제멋대로의 야망을 드러내고, 천화신녀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흑룡문주]**: (작게 읊조리며, 입꼬리를 올린다)
    크크… 결국 올 것이 왔군. 천하 옥패라… 이번엔 내 차지다.

    **[천화신녀]**: (눈을 가늘게 뜨며, 주먹을 꽉 쥔다)
    천하의 운명이 걸린 일… 결코 사악한 자들의 손에 넘어가게 두지 않겠다.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내레이션]**
    천하를 뒤흔들 거대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이제 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씬 2]**

    **[장소]** 별꽃 무관, 허름한 마당 / 며칠 후, 아침

    **[상황 묘사]**
    한적한 산골 마을 어귀, 낡고 허름한 ‘별꽃 무관’이 보인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나무로 만든 간판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은 듯 글자가 희미하다.
    어린 소녀, 아린(17세)이 낡은 목검을 들고 서툴게 기본 자세를 연습하고 있다. 몇 번이고 휘둘러도 자세는 불안정하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표정은 어딘가 우울하고 자신감 없어 보인다.

    **[아린]**: (혼잣말, 내레이션)
    에휴… 또 틀렸어. 발끝은 더 벌리고, 허리는 더 숙이고… 말로는 쉽지. 별꽃 무관의 마지막 제자가 나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야. 사부님은 언제쯤 나에게 제대로 된 초식을 가르쳐 주실까. 맨날 똑같은 기본 자세만… 내가 정말 재능이 없는 건 아닐까?

    **[액션]**
    아린이 깊은 한숨을 쉬며 목검을 내려놓는다. 그때, 무관 안채에서 은사부(50대 중반, 인자하지만 어딘가 덧없어 보이는 표정)가 걸어 나온다. 그의 손에는 낡은 주전자와 찻잔 두 개가 들려있다.

    **[은사부]**: (온화한 미소로)
    아린아, 또 한숨 쉬느냐. 수련은 마음을 비우는 과정인데, 그렇게 한숨만 쉬어서야 언제 ‘별의 기운’을 느낄 수 있겠느냐.

    **[아린]**: (고개를 푹 숙이며)
    사부님… 저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지난번에도 옆 마을 망치 대장간 막내아들한테도 졌는걸요. 그 아이는 굳이 배우지 않아도 힘이 세던데… 제가… 정말 별꽃 무관을 이을 자격이 있을까요? 죄송해요, 사부님…

    **[은사부]**: (아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의 눈빛에 아련함이 스친다)
    으음, 망치 대장간 막내아들이라… 그 녀석은 어릴 때부터 타고난 괴력이 있었지. 세상에는 타고난 강자도 있지만, 아린 너는 너만의 ‘별’을 품고 있단다. 언젠가 그 별이 빛을 발할 날이 올 테니,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아린]**: (고개를 갸웃하며,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별이요…? 저는… 제 안에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저 약하기만 한데…

    **[은사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민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빛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단다. 자, 힘들 땐 따뜻한 차 한 잔 마시며 마음을 다스려보렴. 별꽃 무관의 차는 늘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지 않느냐.

    **[상황 묘사]**
    은사부가 아린에게 따뜻한 차를 건넨다. 아린은 차를 받아 마시며 잠시 평온을 찾지만, 무림맹에서 들려온 ‘운명의 시험 무림대회’ 소식에 대한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작은 무관의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다. 그저 약한 자신으로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에 아린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진다.

    **[씬 3]**

    **[장소]** 별꽃 무관, 마당 / 같은 날, 오후

    **[상황 묘사]**
    평화로운 오후,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먼지가 풀풀 날리며 무관 앞에 건장한 사내들 몇 명이 들이닥친다. 그들의 옷에는 검은 용 문양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흑룡문’의 문파복이다. 그들의 선두에는 거칠고 험악한 인상의 ‘흑룡문 호법’이 서 있다.

    **[흑룡문 호법]**: (말에서 내려 거만한 자세로 무관을 둘러보며, 혀를 찬다)
    크크… 여기가 그 유명한 ‘별꽃 무관’인가? 꼴이 말이 아니군. 쯧쯧.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허물덩어리로군.

    **[액션]**
    은사부가 놀라 마당으로 나선다. 아린도 당황하여 사부님 뒤에 서서 무사들을 경계한다.

    **[은사부]**: (침착하게, 그러나 목소리에는 미약한 떨림이 섞여 있다)
    무슨 일로 이 누추한 곳까지 찾아오셨는지요, 흑룡문 여러분.

    **[흑룡문 호법]**: (코웃음을 치며, 은사부의 낡은 도복을 업신여기듯 훑어본다)
    무슨 일이냐고? 흥! 이 근방 일대의 소유권이 이제 흑룡문으로 넘어왔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나? 무림맹주께서 명하신 ‘운명의 시험 무림대회’를 준비하려면 새로운 수련장이 필요해서 말이야. 너희 같은 군소 문파 따위가 감히 이 좋은 터를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아린]**: (놀라서 뛰쳐나오려다 은사부의 제지로 멈춘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곳은 저희 별꽃 무관의 터입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흑룡문 호법]**: (아린을 힐끗 보며 비웃듯)
    꼬맹이는 빠져! 흥, 별꽃 무관? 이름만 거창할 뿐, 멸문이나 다름없는 곳 아니냐! 쓸데없는 객기 부리지 말고 순순히 땅을 내놓고 사라져라. 그렇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다! 아니, 죽을 수도 있지!

    **[액션]**
    흑룡문 무사들이 위협적으로 검을 뽑아든다. 날카로운 쇳소리가 공기를 가른다. 은사부는 아린을 뒤로 감추며 낡은 목검 대신 몸을 막아선다.

    **[은사부]**: (단호하게, 그러나 온몸이 미세하게 떨린다)
    이곳은 저희 선조들의 피와 땀이 깃든 곳입니다. 설령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내어줄 수 없습니다!

    **[흑룡문 호법]**: (비웃으며, 손짓으로 무사들에게 명령한다)
    오호라? 늙은이가 제법 허세가 있군. 좋다, 그렇다면… 힘으로라도 빼앗아주마! 저 늙은이를 당장 끌어내! 아주 혼쭐을 내줘라!

    **[액션]**
    흑룡문 무사들이 은사부에게 달려든다. 은사부는 낡은 검을 뽑아들지만, 수적으로나 실력으로나 역부족이다. 그는 곧 무사들에게 제압당하고 만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은사부가 힘없이 쓰러진다. 무사들은 쓰러진 은사부에게 발길질을 시작한다.

    **[아린]**: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사부님! 안 돼요! 멈춰요!

    **[상황 묘사]**
    아린의 눈앞에서 은사부가 뭇매를 맞고 쓰러진다. 평화로웠던 무관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아린의 주먹이 꽉 쥐어진다. 눈물이 차오르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다. 분노와 절망,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그녀를 덮친다. 주위의 모든 소리가 희미해지고, 오직 은사부의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그녀의 귓가를 파고든다.

    **[내레이션] (아린의 목소리, 떨리고 격렬하게)**
    안 돼…! 사부님…! 내 유일한 가족인데…! 이대로 당할 수는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싫어…! 힘… 힘이 필요해…! 이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씬 4]**

    **[장소]** 별꽃 무관, 마당 / 같은 시간

    **[상황 묘사]**
    은사부가 쓰러진 모습을 본 아린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그 눈물 속에는 이전에 없던 강렬한 빛이 스치고 지나간다.
    아린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마치 밤하늘에 별이 뜨듯, 은은하게 빛나는 작은 점들이 그녀의 몸 주변을 맴돈다. 땅에 떨어져 있던 낡은 목검이 바르르 떨리더니, 손잡이에 박혀있던 작은, 보이지 않던 ‘별’ 모양의 장식이 눈부신 빛을 발한다.

    **[흑룡문 호법]**: (놀라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뭐, 뭐지?! 저 꼬맹이에게서… 무슨 기운이…?! 이건… 무공의 기운이 아니야!

    **[액션]**
    아린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점점 강해진다. 빛은 마치 은하수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형상으로 아린의 몸을 감싸 안는다. 그녀의 칠흑 같던 머리칼은 밤하늘처럼 검고 빛나는 별들로 흩날리며 길게 늘어지고, 허름했던 도복은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별꽃 문양의 무복으로 변한다. 손에는 목검 대신, 은은한 푸른빛을 발하는 ‘별꽃 월영검’이 들려 있다.
    그녀의 눈동자는 밤하늘의 별처럼 깊고 반짝인다. 온몸에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롭고 강렬한 기운이 넘쳐흐른다.

    **[변신 효과음]**: 샤라라랑! 츠으으으응-! 휘이이잉-!

    **[내레이션] (변신한 아린의 강렬하고 단호한 목소리)**
    별의 기운이여… 지금, 나의 존재를 밝혀라!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를 위해…!

    **[상황 묘사]**
    변신이 완료된 아린은 더 이상 나약한 소녀가 아니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서 내려온 별의 화신 같다. 그녀의 주변은 신비로운 별빛으로 가득 차 있다. 흑룡문 무사들은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친다.

    **[씬 5]**

    **[장소]** 별꽃 무관, 마당 / 같은 시간

    **[상황 묘사]**
    별의 힘으로 변신한 아린(별꽃 아린)이 흑룡문 무사들을 노려본다. 그녀의 눈빛은 단호하고 강렬하며, 그 안에 뜨거운 분노가 담겨 있다.

    **[별꽃 아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공중에 울려 퍼진다)
    감히… 저희 사부님과… 소중한 무관에… 손을 대다니…! 용서할 수 없어!

    **[흑룡문 무사 1]**: (겁에 질려 몸을 떨며 뒷걸음질 친다)
    저, 저게 뭐야…! 귀신인가?! 저런 기운은 처음 봐!

    **[흑룡문 호법]**: (당황했지만 애써 허세를 부리며 침착한 척한다)
    흥! 별 이상한 마법을 쓰는군! 하지만 무림의 고수들에게 그런 허접한 속임수가 통할 줄 아느냐! 모두 덤벼라! 저 요사스러운 것을 당장 제압해라!

    **[액션]**
    흑룡문 호법의 명령에 따라 무사들이 달려든다. 그들의 검이 별꽃 아린을 향해 번개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별꽃 아린은 이전의 아린이 아니다. 그녀의 움직임은 별똥별처럼 유려하고 빠르다.

    **[별꽃 아린]**: (월영검을 가볍게 휘두르며)
    별꽃 월영검… ‘밤하늘의 춤!’

    **[액션]**
    아린이 검을 휘두르자, 은은한 푸른색 별빛 궤적이 마치 밤하늘의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그려지며 무사들을 휘감는다. 무사들은 별빛에 닿자마자 강력한 충격파에 밀려나 공중으로 붕 뜨며 여기저기 나뒹군다. 그들은 직접적인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전신을 강타당한 듯한 전율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통증에 신음한다.

    **[흑룡문 호법]**: (눈을 크게 뜨며 경악한다)
    말도 안 돼! 저런 기운은…! 단순한 무공이 아니야! 이건… 이건…!

    **[별꽃 아린]**: (쓰러진 무사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가며, 월영검 끝을 호법의 목에 겨눈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다시는… 저희 무관에 발붙일 생각 마세요. 그리고… 저희 사부님께… 진심으로 사과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다음엔 이 검이 당신의 목을 스쳐 지날 겁니다.

    **[흑룡문 호법]**: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크, 크으… 알겠습니다! 다,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살려주십시오…!

    **[상황 묘사]**
    흑룡문 호법과 무사들은 혼비백산하여 부랴부랴 도망친다. 그들의 등 뒤로 아린의 푸른 별빛이 번뜩이며 경고하듯 빛난다. 먼지가 걷히고, 고요함이 다시 무관을 감싼다.

    **[내레이션] (별꽃 아린의 목소리, 결의에 차 있다)**
    나는… 별꽃 아린. 앞으로 이 별꽃 무관을, 그리고 나의 소중한 모든 것을 지킬 것이다!

    **[씬 6]**

    **[장소]** 별꽃 무관, 마당 / 잠시 후

    **[상황 묘사]**
    흑룡문 무사들이 사라지고, 아린의 몸을 감싸던 찬란한 별빛이 서서히 옅어진다. 아린의 화려했던 무복은 다시 허름한 도복으로, 별꽃 월영검은 낡은 목검으로 돌아온다. 변신이 풀리자 아린은 모든 기운이 빠져나간 듯 휘청거린다. 몸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 한다.

    **[액션]**
    은사부가 간신히 몸을 일으켜 아린에게 다가온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스러운 기색과 함께, 깊은 연민과 설명할 수 없는 자랑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은사부]**: (아린을 부축하며, 그녀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감싼다)
    아린아… 괜찮으냐…? 많이 힘들지…?

    **[아린]**: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흑룡문 녀석들이… 너무 심하게…

    **[은사부]**: (아린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본다)
    나는 괜찮다. 네가 무사히 지켜주었으니. 그런데… 네가… 너의 안에 잠들어 있던 ‘별의 힘’이 드디어 깨어났구나.

    **[아린]**: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별의 힘이요…? 사부님, 방금… 저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요…? 제 몸에서 빛이 나고… 검도… 갑자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마치… 마치…

    **[은사부]**: (아린의 말을 이어받으며, 작게 미소 짓는다)
    오래전, 별꽃 무관의 선조들은 ‘별의 기운’을 다루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었단다. 하늘의 별자리를 읽고, 그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여 무공과 마법을 결합하는… 특별한 능력이었지. 하지만 그 힘은 점차 사라지고, 오직 ‘운명의 시련’을 마주한 자만이 그 힘을 각성할 수 있다고 전해져 내려왔지. 아린아… 너는 그 힘을 각성한 최초의 아이일 게다.

    **[아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그럼 제가… 방금 했던 게… 마법… 인가요…? 제가… 마법을 쓴 건가요…?

    **[은사부]**: (따뜻하게 아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래. 어쩌면 네가… 천하의 운명을 바꿀 ‘별의 마법소녀’가 될지도 모르겠구나. 무림의 격랑 속에서… 네 별이 가장 밝게 빛날지도.

    **[상황 묘사]**
    아린은 혼란스럽고 당황스럽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서 설명할 수 없는 희망과 책임감을 느낀다. 약하기만 했던 자신이, 누군가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른다.
    산골 깊은 곳의 작은 무관에, 이제 막 새로운 운명의 서막이 열렸다. 천하를 건 무림대회,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날 한 소녀의 별꽃 마법.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내레이션] (아린의 목소리, 점차 결연해진다)**
    나는 그저 평범한 아린이었다. 힘없는 무관의 제자… 하지만 이제… 내 안에 잠든 별의 기운이, 나에게 새로운 운명을 속삭인다. 무림의 격랑 속에서, 나는 과연… 빛을 발할 수 있을까? 사부님과 이 무관을…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강호를… 지켜낼 수 있을까?

    **[마지막 컷]**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린의 뒷모습. 그녀의 눈빛은 아직 불안하지만, 그 안에 강인한 결의가 비친다. 멀리, 무림맹 본산의 방향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운명의 시험 무림대회’를 알리는 봉화가 보인다. 그 봉화는 마치 아린의 심장처럼, 어둠 속에서 불꽃을 튀기며 타오르고 있다.

    **[에피소드 종료]**

  • 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청룡호, 현재 위치. 은하계 3만 광년 외곽, 미탐사 구역 ‘망각의 심연’ 진입 중. 모든 시스템 정상. 이변 없음.」

    단정한 목소리가 함교의 적막을 갈랐다. 우주선 ‘청룡호’는 검은 벨벳처럼 끝없이 펼쳐진 심우주를 가르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은 이름 없는 성운의 희미한 잔광뿐, 생명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그것이 바로 청룡호의 임무였다.

    “진아,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이 에너지 패턴은… 통상적인 자연 현상과는 거리가 멀어.”
    선장 박무진의 묵직한 목소리가 의자에 앉아 홀로그램 화면을 응시하던 항해사 이진아에게 향했다. 그의 눈은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의 오랜 경험이 빚어낸 직관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진아는 미간을 찌푸린 채 패드를 조작했다.
    “선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전례 없는 감마선 폭발 직후, 극저주파 대역에서 비정상적인 공명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자연 발생적인 에너지는 분명히 아닙니다. 명백히… 인공적인, 혹은 인공적이었던 겁니다.”
    그녀의 목소리 끝에 묘한 긴장감이 실렸다. 우주탐사 10년 차, 그녀도 이런 패턴은 처음이었다.

    “인공적인?” 박선장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곳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에서?”

    그때, 함교 한쪽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이며 깜빡였다.
    `신호 강화! 원인 불명!`
    알림 메시지가 섬광처럼 번개처럼 화면을 뒤덮었다.

    “선장님! 방금 전까지 희미했던 신호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좌표… 좌표 확인됩니다!” 이진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맹렬히 움직였다. “시각 센서 개방! 잠재적 위협 분석 시작합니다!”

    박선장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접근해. 모든 함내 보안 시스템 가동. 외부 스캔은 최고 해상도로.”

    스피커에서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신호가 송출되기 시작했다. 스크린 속, 검은 우주 한가운데에서 희미한 윤곽이 서서히 드러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빛의 왜곡인가 싶었지만, 윤곽은 점점 더 선명해지며 거대한 형태로 시야를 압도했다.

    “저건… 구조물인가?” 박선장의 목소리에 감탄과 경계가 동시에 섞여 있었다.
    “말도 안 돼…” 이진아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스크린에 잡힌 것은, 말 그대로 ‘거대’했다. 마치 우주를 떠다니는 거대한 산맥 같기도 하고, 혹은 암흑 물질로 빚어낸 신의 조각상 같기도 했다. 매끄러운 곡선과 날카로운 각이 불규칙하게 뒤섞여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거대한 하나의 형태로 합쳐져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 표면이었다. 금속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유기적이고, 암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인공적인 질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딘 듯 표면 곳곳에 알 수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들은 마치 살아 숨 쉬는 듯, 스크린 너머로도 희미한 기운을 내뿜는 것 같았다.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선들은 특정 규칙성을 띠고 있었으나, 그 의미를 해독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고대의 주술문자 같기도, 어떤 생명체의 신경회로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싸는 것은… 압도적인 정적이었다. 수만 년, 어쩌면 수억 년 동안 우주를 표류하며 모든 소리를 흡수한 듯한 침묵.

    “누가 저런 걸… 대체 언제부터 저기에…” 이진아가 중얼거렸다.

    박선장은 한참 동안 말없이 스크린을 노려봤다. 그의 심장이 거칠게 고동쳤다. 단순히 과학적인 발견을 넘어선, 어떤 위대한 미스터리의 예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

    몇 시간 뒤, 청룡호는 정체불명의 구조물 상공에 정지했다. 거대한 그림자가 청룡호의 함체를 집어삼킬 듯 드리워졌다. 함내 브리핑 룸에는 탐사팀이 모여 있었다.

    박선장이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에는 구조물의 정밀 스캔 이미지가 띄워져 있었다.
    “현재까지 파악된 정보입니다. 구조물의 길이는 대략 100km, 폭은 30km에 달합니다. 내부는 수많은 층과 통로로 이루어져 있고, 특정 구역에서 비정상적인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방사능 수치는 낮지만, 정체불명의 기운이 계속 감돌고 있습니다.”

    과학팀장 최박사가 안경을 고쳐 쓰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장님, 이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입니다! 수천 년, 어쩌면 수백만 년 전의 외계 문명 유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 기묘한 문양들을 보십시오. 제가 추측컨대 저것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닙니다. 어떤 정보를 담고 있거나… 아니면 에너지의 흐름을 제어하는 장치일 겁니다!”

    최박사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학자로서 그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그때, 탐사팀의 일원인 보안팀장 한진혁이 냉철하게 제동을 걸었다. 그는 우주 특수부대 출신으로, 강인한 체구와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베테랑이었다.
    “최박사님, 흥분은 이해하지만, 미지의 외계 구조물입니다. 내부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생명체가 있을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방어 시스템이 작동할 수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 인류에게 해가 되는 병기일 수도 있습니다.”

    “한팀장 말이 맞아.” 박선장이 최박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로 진입한다. 탐사팀은 나, 이진아 항해사, 최박사, 그리고 한팀장이다. 만약 내부에서 어떤 위협이 감지되면, 무조건 철수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선장님.” 모두가 일제히 답했다.

    ***

    탐사용 셔틀 ‘밤까마귀’가 거대한 구조물의 표면으로 향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압도적인 규모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표면에 뚫린 거대한 균열, 혹은 입구처럼 보이는 곳으로 셔틀이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내부는 마치 거대한 동굴 같았다. 인공적인 빛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암흑 속에서, 셔틀의 전등만이 길을 밝혔다. 벽면은 외부와 마찬가지로 기묘한 문양들로 가득했다. 이진아가 함내 스크린을 통해 내부 지도를 띄웠다.

    “선장님, 내부 공기는 분석 결과, 호흡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하지만 미량의 알 수 없는 입자가 감지됩니다. 유기체와 무기체의 중간 단계… 생체 광물질인 것 같습니다.”

    “생체 광물?” 최박사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저 거대한 구조물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건가? 아니면 살아있는 광물로 만들어졌거나!”

    셔틀은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를 한참 동안 헤치고 들어갔다. 끝없는 미로 같았다. 이따금씩 바닥에서 솟아오른 뾰족한 암석들이 셔틀의 날개를 스칠 듯 다가왔다.

    “선장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진아가 고요하게 말했다.

    셔틀이 서서히 착륙했다. 전등이 꺼지자, 주위는 다시 짙은 어둠에 잠겼다. 외부 공기를 흡입하는 소리가 적막을 깼다. 탐사팀은 각자 개인 장비를 착용하고 셔틀 문을 열었다.

    내부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광활했다. 돔 형태로 펼쳐진 거대한 공간은 그 어떤 건축 양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형태였다. 천장은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고, 사방을 둘러싼 벽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모든 시선을 잡아끄는 존재가 있었다.

    “저건… 대체…” 한진혁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거대한 비석이 서 있었다. 아니, 비석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생명력이 넘쳤다. 높이만 해도 수십 미터에 달하는 그것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는 투명한 결정체 같으면서도, 동시에 거대한 나무뿌리처럼 뒤엉킨 모습이었다. 결정체 내부에서는 실핏줄처럼 가느다란 빛줄기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그 빛줄기들이 모여 알 수 없는 문양들을 형성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신경계를 투명한 유리관 안에 가둬 놓은 듯했다.

    그리고 그 심장부에서,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고동’이 느껴졌다.
    두근. 두근.
    마치 거인의 심장이 뛰는 듯한, 아주 느리고 묵직한 고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 기운은… 이전에도 느껴본 적 없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입니다.” 한진혁이 무릎을 꿇고 결정체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이 결정체에 닿으려는 찰나, 박선장의 제지가 떨어졌다.
    “한팀장! 섣불리 접촉하지 마!”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최박사가 한진혁보다 먼저, 마치 홀린 듯 결정체를 향해 다가갔다. 그의 눈은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이 에너지는! 이 압도적인 기운은! 이건 단순한 유물이 아니야! 살아있는 지식의 보고이자, 우주의 비밀이 담겨 있는 초월적인 존재다!”

    최박사가 결정체의 푸른 표면에 손을 뻗었다. 그의 손끝이 결정체에 닿는 순간.

    **즈즈즈즈읏-!**

    마치 정전기가 방출되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공간을 갈랐다.
    결정체 내부의 푸른 빛줄기들이 일제히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고동 소리는 더욱 커지고 빨라졌다.

    “크아아아악!”
    최박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의 몸이 경련하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결정체 주변에 새겨진 모든 문양들이 섬광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는 듯했다.

    “선장님! 전자기장에 이상 발생! 모든 통신 두절! 시야 왜곡이 심합니다!” 이진아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빛과 소리에 파묻혀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한진혁은 주저앉은 최박사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최박사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어떤 것이 끌어당겨지는 듯한, 혹은 유물의 기운이 그의 몸을 침투하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었다.

    박선장은 총을 뽑아 들었지만, 어디에 겨눠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최박사!”

    결정체는 이제 거대한 심장처럼 폭주하고 있었다. 내부의 빛줄기들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며 문양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 문양들은 단순히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리며 공간 속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쿠우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땅을 뒤흔들었다. 결정체 중앙에서 한 줄기 강렬한 푸른 빛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빛줄기가 닿은 천장에서는 거대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균열 사이에서,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고 있었다.

    “선장님… 저 위를… 보세요…” 이진아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떨렸다.

    박선장이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균열 사이로 보이는 것은…
    수많은 눈동자였다.
    거대하고 불길한, 알 수 없는 존재의 눈동자들이었다.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그의 눈동자를 집어삼키는 순간, 박선장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어떤 이미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고대의 전사들, 기이한 무술을 펼치는 그림자들, 그리고 세상을 뒤덮을 듯한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칼날.

    유물은… 단순히 깨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봉인을 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 뒤에 숨겨져 있던 것은…
    단순한 외계 문명이 아니었다.

    `고대의 무(武)가… 깨어난다.`

    박선장의 의식 속에서, 알 수 없는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결정체는 더욱 격렬하게 고동쳤고, 푸른 빛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그리고 균열 너머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것은… 형태 없는 그림자였다.
    하지만 그 그림자로부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강대한 무인(武人)의 정신이 깨어나는 듯한,
    압도적인 영압(靈壓)이었다.

    “철수… 철수해…!!!” 박선장이 비명처럼 외쳤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최박사는 푸른 빛 속에서 기이한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비틀었고, 결정체는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심연의 조각, 그 속에 잠들어 있던 힘이…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SF (공상과학)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잿빛 하늘 아래, 한 줄기 섬광

    **[장면 1: 카이론-7의 폐허]**

    **#1**
    **배경:** 광활하고 황량한 카이론-7 행성. 붉고 거친 흙먼지가 바람에 날려 시야를 흐리게 한다. 낡고 녹슨 철 구조물들이 폐허처럼 널려 있고, 그 사이로 무너진 건물 잔해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있다. 하늘은 항상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태양조차 흐릿하게 보인다. 멀리, 거대한 아크론 제국의 채굴 시설들이 마치 금속성 괴물처럼 땅을 파고드는 모습이 아득하게 보인다. 그 시설들 위로는 제국의 순찰선 ‘스톰체이서’ 몇 대가 둔중한 소음을 내며 날아다닌다.

    **#2**
    **캐릭터:** 세라 (20대 초반의 여성). 낡고 헤진 작업복 차림. 얼굴과 팔에는 기름때와 흙먼지가 묻어있지만, 또렷한 눈빛은 주변의 폐허와 대조적으로 살아있다. 그녀는 허리춤에 찬 공구 주머니에서 스패너를 꺼내, 거대한 폐기물 더미 속에 파묻힌 기계 잔해를 살피고 있다. 주변에는 그녀가 이미 분해했거나 수리 중인 듯한 각종 부품들이 널려있다.

    **세라 (독백, 생각):** (씁쓸한 미소) “하늘은 언제나 이 모양이군. 잿빛… 꼭 우리네 삶 같아라.”

    **#3**
    **장면:** 세라가 능숙하게 기계의 회로를 들여다본다. 그녀의 손놀림은 정확하고 빠르다. 녹슨 전선들을 잘라내고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한다. 작은 전동 드릴 소리가 폐기물 더미 사이를 울린다.

    **세라 (독백, 생각):** “이 낡은 ‘마코-31’ 동력 조절기도 언젠간 빛을 볼 날이 있겠지. 제국 놈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것들도, 누군가에겐 소중한 자원이 된다는 걸 모를 거야.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거겠지.”

    **#4**
    **장면:** 저 멀리서 ‘스톰체이서’ 한 대가 유난히 낮은 고도로 날아와 세라가 있는 폐기물 구역 상공을 지나친다. 그들의 강력한 탐지 스캐너가 땅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세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폐기물 뒤에 몸을 숨긴다.

    **세라 (독백, 생각):** “젠장… 너무 가까워. 괜히 눈에 띄었다간 골치 아파진다.”

    **#5**
    **장면:** 순찰선이 지나가고, 세라는 다시 몸을 일으킨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가 편다. 폐기물에서 찾아낸 고철 부품 하나를 허리춤 주머니에 넣는다. 그녀의 눈빛에 결연한 의지가 스친다.

    **세라 (독백, 생각):** “하지만 영원히 숨어 지낼 수는 없어. 언젠가는… 이 잿빛 하늘을 찢어내야지.”

    **[장면 2: 세라의 은신처]**

    **#6**
    **배경:** 세라의 은신처. 폐기물 구역 깊숙한 곳, 낡은 지하 벙커를 개조한 공간이다. 내부에는 최소한의 생활 도구와 함께 각종 공구, 부품, 컴퓨터 모니터들이 어지럽게 놓여있다. 한쪽 벽에는 행성 지도가 걸려있고, 몇몇 지점에는 붉은색으로 표시가 되어있다. 공간은 비좁지만 아늑하고, 무엇보다 외부의 감시에서 안전해 보인다.

    **#7**
    **장면:** 세라가 수리하던 기계 부품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는다. 모니터에는 알 수 없는 암호화된 데이터들이 빠르게 스크롤되고 있다. 그녀는 능숙하게 키보드를 조작한다.

    **세라:** “어디 보자… 어제 ‘붉은 심장’ 구역의 에너지 흐름은… 여전히 불안정하군. 제국 놈들이 채굴량을 또 늘렸나?”

    **#8**
    **장면:** 갑자기 컴퓨터 화면 한구석에 작은 아이콘이 깜빡인다. 암호화된 통신 요청이다. 세라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친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수락 버튼을 누른다.

    **#9**
    **화면 분할:** 한쪽에는 세라의 얼굴, 다른 한쪽에는 통신 상대의 얼굴이 나타난다. 통신 상대는 ‘카이’ (30대 초반 남성). 그는 다부진 체격에 짧게 깎은 머리, 그리고 얼굴 한쪽에 희미한 흉터가 있다. 그의 뒤편으로는 희미하게 다른 기계음이 들리는 듯하다.

    **카이 (통신 화면 너머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세라, 들리나? 접선 코드는 ‘여명’.”

    **세라 (침착하게):** “들려, 카이. 코드 확인. ‘잿빛 새벽’이지?”

    **카이:** “좋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사냥개’ 작전이 실패했다. 피해가 컸어.”

    **#10**
    **장면:** 세라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눈빛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다.

    **세라 (낮은 목소리로):** “결국… 이번에도… 제국 놈들의 방어망이 더 강화된 건가?”

    **카이:** “그래. 이번엔 새로운 모델의 감시 드론이 투입됐더군. ‘매의 눈’이라 불리는 녀석들인데, 일반 스캐너로는 탐지가 거의 불가능해.”

    **세라 (놀란 듯):** “매의 눈? 그런 게 벌써 실전 배치됐다고? 그건 아직 시험 단계라고 들었는데…”

    **카이:** “제국은 항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한 발 앞서 나가지. 하지만 우리도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어. 오히려 이번 실패가 더 큰 기회를 만들었다.”

    **#11**
    **장면:** 카이가 통신 화면 너머로 손가락으로 공중에 무언가를 그리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카이:** “제국은 이번 ‘사냥개’ 작전의 실패를 빌미로 ‘코어-R3’ 구역의 병력을 일시적으로 재배치할 거야. 보급선도 대규모로 조정될 테고. 바로 그때가 우리가 노려야 할 때다.”

    **세라 (미간을 찌푸리며):** “‘코어-R3’… 그곳은 제국의 핵심 보급 기지 아닌가? 엄청난 위험이 따를 텐데.”

    **카이:** “알아. 하지만 그만큼 얻을 것도 크다. 제국은 다음 주에 ‘에이테르 결정체’를 운반할 예정이야. 대량으로. 그 결정체는… 우리 ‘여명단’의 존재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물건이다.”

    **#12**
    **장면:** 세라의 눈빛이 흔들린다. ‘에이테르 결정체’라는 말에 그녀의 표정에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희망과 함께 엄청난 부담감이 공존하는 듯하다.

    **세라:** “에이테르… 그것만 있다면….”

    **카이 (강조하며):** “그래, 세라. ‘매의 눈’ 드론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 정보가 그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중요한 정보들도.”

    **#13**
    **장면:** 카이는 세라의 표정을 주시하며 잠시 침묵한다. 그리고는 결심한 듯 말을 이어간다.

    **카이:** “이번 임무의 핵심은 ‘기술’이다. 제국의 방어 시스템을 뚫고, 정보를 빼내는 것. 세라, 네가 필요해. 가장 정교하고 은밀하게 침투할 수 있는 자는 너뿐이다.”

    **[장면 3: ‘여명단’의 비밀 회의실]**

    **#14**
    **배경:** ‘여명단’의 비밀 회의실. 세라의 은신처보다는 넓지만, 역시 낡고 허름한 지하 시설이다. 원형 테이블에 몇 명의 요원들이 모여 앉아있다. 각자 다른 복장과 표정을 하고 있지만, 모두의 눈빛에는 비장함과 결의가 서려있다.

    **#15**
    **장면:** 카이가 테이블 중앙에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켜자, ‘코어-R3’ 구역의 정교한 3D 지도가 허공에 떠오른다. 제국의 거대한 물류 센터와 주변 방어 시설들이 상세하게 표시되어 있다.

    **카이:** “이것이 ‘코어-R3’의 최신 배치도다. 제국의 물류 중심지이자, 은하계 각지로 보급품이 나가는 관문이지. ‘에이테르 결정체’는 다음 주 화요일, 행성 시간으로 0300시에 이곳으로 입고될 예정이다.”

    **요원 1 (굵은 목소리로):** “0300시라면… 경계가 가장 삼엄할 때 아닌가? 한밤중에 기습도 어려울 테고.”

    **요원 2 (날카로운 목소리로):** “그 시간에 ‘에이테르’를 운반한다는 건, 그만큼 제국도 이 물건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다. 분명 특별 호위대가 붙을 거야.”

    **#16**
    **장면:** 세라가 지도에 표시된 특정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다.

    **세라:** “문제는 이겁니다, 카이. ‘코어-R3’는 최신 전자기장 방어막 ‘아이기스’ 시스템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현재 우리 기술로는 내부 침투는 거의 불가능해요. 게다가 새로운 ‘매의 눈’ 드론까지.”

    **카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 하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세라, 네가 폐기물 구역에서 찾아낸 구형 ‘타겟-X’ 스캐너 모듈을 기억하나?”

    **세라 (살짝 놀란 듯):** “네? 그 낡은 것을 말씀이십니까? 제국이 30년 전에나 쓰던 구식 모델인데요.”

    **카이:** “바로 그거다. 제국은 최신 기술만을 믿는다. 하지만 그들은 구식 기술에 대한 대비는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어. ‘타겟-X’ 모듈을 역설계해서 ‘아이기스’ 시스템의 약점을 파고들 수 있는 ‘침투 파동’을 만들 수 있다면…?”

    **#17**
    **장면:** 회의실에 모인 요원들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빛난다. 세라는 다시 지도를 응시한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복잡한 회로들이 빠르게 재조립되는 듯하다.

    **세라 (천천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가능성은 있습니다. ‘아이기스’의 초기 설계도에 접근할 수 있다면, 구형 모듈의 주파수와 융합해서 역으로 시스템을 교란시킬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요. 게다가 결정체를 확보하려면 ‘매의 눈’ 드론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알아내야 합니다.”

    **요원 3 (비장하게):** “시간이 없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어. 우리는 더 이상 제국의 노예로 살 수 없다.”

    **#18**
    **장면:** 모든 요원들이 세라를 바라본다. 그들의 시선에는 믿음과 함께, 이 모든 임무의 성패가 그녀에게 달려있다는 무거운 기대감이 담겨있다.

    **카이 (세라를 바라보며):** “세라, 이번 임무는 ‘여명단’의 미래가 걸려있어. 네게 모든 것을 맡긴다. 0300시, ‘코어-R3’에 침투하여 ‘에이테르 결정체’를 확보해라. 그리고 거기서 ‘매의 눈’ 드론의 약점을 찾아내야 해.”

    **#19**
    **장면:** 세라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잿빛 하늘 아래, 한 줄기 섬광처럼 타오르는 강렬한 결의가 느껴진다.

    **세라 (나지막하지만 단호하게):** “알겠습니다. 제가 해내겠습니다. 이번엔 반드시… 성공해야만 합니다.”

    **[장면 4: 결의]**

    **#20**
    **배경:** 세라의 은신처. 그녀는 밤늦도록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책상 위에는 수많은 부품들과 설계도가 널려있고, 몇 대의 모니터에서는 복잡한 데이터들이 쉼 없이 흘러간다. 커피 잔은 이미 비어 있다.

    **#21**
    **장면:** 세라가 작은 ‘타겟-X’ 모듈을 들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그녀의 손은 지쳐 보이지만, 집중력은 최고조에 달해있다. 그녀는 마침내 작은 스위치를 조작한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듈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세라 (독백, 생각):** “이 낡은 고철 덩어리 속에… 희망이 숨어있을 줄이야. 제국 놈들이 절대 상상 못 할 방법으로… 이 시스템을 뚫어낼 수 있어.”

    **#22**
    **장면:** 그녀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잠시 눈을 감는다. 어린 시절, 제국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부모님의 모습, 그리고 황량한 폐허 속에서 홀로 남겨진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얼굴에 비장함이 떠오른다.

    **세라 (독백, 생각):** “나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야. 카이론-7의 모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이 잿빛 하늘 아래 새로운 여명을 가져올 거야.”

    **#23**
    **장면:** 모니터에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나타난다. [D-3 02:45:32]. 세라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소형 침투 드론과 해킹 장비들을 꼼꼼하게 점검한다. 그녀의 손길에는 망설임이 없다.

    **세라:** (드론의 센서를 닦으며) “나를 믿어, 작은 새야. 이번엔 반드시, 자유를 향해 날아오를 테니까.”

    **#24**
    **장면:** 세라가 창밖을 내다본다. 잿빛 구름 너머로 희미하게 달빛이 비치는 듯하다. 그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눈만이 강렬하게 빛난다.

    **세라 (독백, 생각):** “이번 임무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이 거대한 제국의 심장에, 작은 균열을 낼 것이다. 반드시.”

    **[에피소드 종료]**

  • 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잔해 속의 그림자

    잿빛 먼지가 가득한 골목길을 미나는 느릿하게 걸었다. 낡은 방독면이 부서진 도시의 비릿한 공기를 겨우 걸러냈지만,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곰팡이와 철근의 녹 냄새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찢어진 망토 자락이 그녀의 다리에 휘감기며 삐걱거리는 발걸음을 더욱 위태롭게 했다. 등 뒤에는 하준이 낡은 배낭을 고쳐 메고 잔뜩 움츠린 채 따라오고 있었다. 소년의 작은 그림자가 무너진 건물들의 거대한 그림자에 삼켜질 듯 일렁였다.

    “미나 누나, 정말 여기 뭐가 있긴 한 걸까요?” 하준의 목소리가 방독면 안에서 먹먹하게 울렸다. 늘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미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폐허가 된 메트로 병원에 구호 물자가 남아있다는 소문은 일주일 전부터 떠돌던 것이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바닥난 지금, 그들은 이 미친 소문이라도 쫓을 수밖에 없었다. 단 하나의 물병과 부스러진 건빵 몇 조각이 전부였다. 며칠 전부터 하준의 기침 소리가 잦아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목에는 닳고 닳은 가죽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한때는 반짝였을 보석은 이제 탁한 유리 조각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여전히 그녀의 유일한 무기이자 희망이었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미나가 아직 살아 숨 쉬는 이유.

    길게 늘어선 고층 빌딩들은 마치 거대한 뼈대처럼 앙상하게 서 있었다. 유리창은 모두 깨지고 텅 빈 눈동자처럼 뚫려 있었다. 어떤 건물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았다. 발아래는 깨진 벽돌과 시멘트 조각, 그리고 정체 모를 끈적한 유기물이 뒤섞여 밟을 때마다 눅눅한 소리를 냈다.

    “조심해. 이 구역은 ‘그림자’들이 자주 출몰해.” 미나가 나지막이 경고했다. 그림자들은 이 황폐한 세계를 떠도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었다. 형체가 없는 연기 같다가도 끔찍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여 모든 것을 파괴했다.

    하준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미나의 뒤로 바싹 붙었다. 소년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그 속에는 자신을 지키는 누나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깃들어 있었다. 미나는 그 믿음이 무겁고 아팠다. 자신조차 제대로 지켜낼 수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저주에 가까웠다.

    메트로 병원 건물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병원’이라는 단어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건물 외벽은 검은 덩굴식물에 뒤덮여 있었고, 입구는 거대한 쇳덩이와 시멘트 조각들에 막혀 있었다. 억지로 만든 작은 틈 사이로 습한 어둠이 뿜어져 나왔다.

    “이게… 병원이라고요?” 하준이 숨을 삼켰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봐야 확실히 알 수 있지.” 미나는 팔찌를 움켜쥐었다. 손목에서 희미한 온기가 전해졌다.

    그녀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냥꾼처럼 예리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너무 조용했다. 이 구역의 공기처럼 눅진하고 불길한 침묵이 그들을 짓눌렀다. 미나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틈새로 먼저 몸을 들이밀었다.

    내부는 지독한 악취로 가득했다. 썩은 시체의 냄새, 약품 냄새, 그리고 무언가 눅진한 것이 타는 듯한 역겨운 냄새. 미나는 닳아빠진 휴대용 전등을 켰다. 좁고 가는 빛줄기가 어둠을 가르자, 길게 찢어진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장은 무너져 내려 철근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의료기기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조심해, 하준. 밟는 것마다 소리가 나.”

    하준은 웅크린 채 미나의 뒤를 따랐다. 소년의 심장 박동 소리가 마치 북소리처럼 미나의 귀에 울렸다. 복도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그들은 문이 반쯤 열린 병실 앞에 섰다. 전등을 비추자 안쪽에서 녹슨 쇠침대가 드러났다. 그 위에는 이불 대신 거대한 검은 덩굴이 뒤덮여 있었다.

    “여기까진 그냥 폐허잖아…” 하준이 실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미나의 귀에 아주 작은, 그러나 명확한 소리가 들려왔다. *스슥, 스스슥.* 마치 거대한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소리였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하준의 팔을 잡아챘다.

    “쉿!”

    하준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소년의 얼굴이 방독면 안에서 하얗게 질렸다.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이제는 복도 저편에서 어둠이 춤을 추는 듯한 기이한 움직임이 보였다. 그것은 그림자들이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셀 수 없이 많은 그림자들이 복도 양쪽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이건 함정이야!” 미나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평소의 그림자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그들이 이곳에 올 것을 알고 기다렸던 것처럼.

    미나는 하준을 등 뒤로 숨겼다. 그리고 망토 아래 손목의 팔찌를 움켜쥐었다. 팔찌의 보석이 붉은빛을 띠며 희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준, 내가 시간을 벌게! 저쪽 문으로 뛰어! 무조건 도망쳐!”

    “싫어요! 누나 혼자 둘 수 없어요!” 하준이 작은 몸을 떨며 외쳤다.

    “잔말 말고 뛰어! 이건 명령이야!” 미나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그림자들의 형체가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과 비늘, 그리고 텅 빈 눈동자가 전등 불빛에 섬뜩하게 빛났다.

    *콰아앙!*

    미나가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동시에 손목의 팔찌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변신!” 그녀의 몸을 감싸던 낡은 망토와 옷이 빛과 함께 흩어지고, 대신 순백의 전투복과 갑옷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등 뒤에는 날개처럼 빛나는 마법진이 펼쳐졌다. 주변을 밝히는 빛의 힘은 잠시나마 그림자들을 움츠러들게 했다.

    “빛의 검!”

    그녀의 손에 거대한 빛의 검이 생성되었다. 미나는 망설임 없이 가장 가까이 다가온 그림자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날카로운 빛의 궤적이 그림자의 몸을 두 동강 냈다.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그림자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그 뒤를 이어 더 많은 그림자들이 달려들었다.

    *콰쾅! 쿠르릉!*

    미나의 마법은 화려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효율성만을 추구했다. 그녀는 빛의 검으로 그림자들의 맹공격을 막아내며 하준에게 소리쳤다. “빨리 도망쳐, 하준!”

    하준은 미나의 외침에 뒤돌아섰다. 틈새로 들어왔던 출구가 막혀 있었다. 하지만 병실 문 저편으로 희미하게 다른 복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년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필사적으로 그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미나는 복도 중앙에 서서 사방에서 몰려드는 그림자들을 상대했다. 빛의 검은 그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그림자들을 베어냈다. 그러나 수는 압도적이었다. 그녀의 빛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았다. 매번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몸속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복도 끝에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일반적인 그림자들과는 달랐다. 육중한 몸에 뼈가 튀어나온 팔, 그리고 머리에는 붉게 빛나는 수정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코어’ 그림자였다. 그것은 주변의 그림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듯했다.

    코어 그림자가 거대한 발을 내딛자 병원 건물이 통째로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와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미나는 간신히 몸을 피했다. 코어 그림자는 다른 그림자들을 방패 삼아 미나에게 다가왔다. 놈의 움직임은 느려 보였지만, 한 번 휘두르는 팔에는 엄청난 파괴력이 실려 있었다.

    “크윽!”

    미나는 빛의 검으로 놈의 공격을 막아냈지만, 충격파에 의해 몇 미터나 뒤로 밀려났다. 손목의 팔찌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코어를 제거해야 해.

    그녀는 온몸의 힘을 쥐어짜냈다. “집중… 빛!”

    미나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빛이 순식간에 그녀의 빛의 검 끝으로 모여들었다. 검 끝에서 거대한 빛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주변의 그림자들이 그 강렬한 빛에 움찔하며 물러섰다. 코어 그림자도 잠시 주춤했다.

    “하아아앗!” 미나는 빛의 구체를 코어 그림자를 향해 던졌다.

    *콰콰콰콰앙!*

    눈을 뜰 수 없는 섬광과 함께 엄청난 폭발음이 병원 내부를 뒤흔들었다. 벽이 갈라지고, 천장의 잔해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거대한 코어 그림자는 폭발의 중심에서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주변의 작은 그림자들도 연기처럼 흩어졌다.

    미나는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녀의 변신은 풀리고, 원래의 낡은 옷차림으로 돌아왔다. 팔찌는 탁한 유리 조각처럼 빛을 잃은 채였다.

    “미나 누나!”

    복도 끝에서 하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잔해를 헤치고 미나에게 달려왔다.

    “괜찮아요? 다쳤어요?” 하준의 눈은 걱정으로 가득했다.

    미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제 도망쳐야 해. 건물이 무너지고 있어.”

    그들은 다시 잔해가 쏟아지는 복도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병원 내부가 전체적으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붕괴 직전에 이른 것 같았다. 그들은 겨우겨우 병원 뒷문으로 보이는 작은 틈새를 찾아 탈출에 성공했다.

    바깥은 회색빛 저녁노을이 깔려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지친 몸을 스쳤다. 미나는 하준의 어깨에 기대어 겨우 숨을 몰아쉬었다. 몸속의 모든 힘이 고갈된 느낌이었다. 물자는 커녕, 겨우 목숨만 부지한 셈이었다.

    “이제… 어쩌죠?” 하준의 목소리에 깊은 절망이 묻어났다.

    미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잿빛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붉은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희망이 아니었다. 끔찍한 공포였다.

    왜냐하면, 방금 전 그들이 겨우 탈출해 나온 메트로 병원 건물의 가장 높은 층에서… 붉게 빛나는 수정 하나가 그들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방금 미나가 파괴했던 코어 그림자의 머리에 박혀 있던 것과 똑같은 형태였다.

    코어는… 단 하나가 아니었다. 혹은, 불완전하게 파괴된 코어가 다시 재생하고 있는 것일까.

    미나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여정은, 결코 끝날 수 없는 악몽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 잿빛 도시는, 아직도 그들에게 수많은 그림자를 품고 있었다.

  • 좀비 아포칼립스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회색빛 하늘 아래, 세상은 거대한 무덤이었다. 한때는 온갖 소음과 활기로 가득했던 길 위에는 부서진 자동차와 깨진 유리 조각들만이 흩어져 있었다.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은 스산한 비린내와 썩어가는 흙먼지를 실어 날랐고, 그 바람이 닿는 곳마다 낡은 상점의 간판들이 기괴한 비명처럼 삐걱거렸다. 태양이 뜬 지 한참인데도 도시는 어둠 속에 잠긴 듯 으스스했다.

    그 거대한 정적을 깨고, 쩌억, 쩌억. 둔탁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렸다. ‘벽제 지식 요새’라고 불리는 옛 대학교 도서관 건물. 높다란 철조망과 콘크리트 장벽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그곳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작은 섬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모여 만든 마지막 보루 중 하나.

    도서관 3층 복도. 거친 숨을 몰아쉬는 한 사내가 낡은 해머를 휘둘러 부서진 벽돌을 깨고 있었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창문 하나 없는 이곳의 복도는 24시간 내내 낡은 발전기가 돌리는 희미한 전등 불빛 아래 어슴푸레했다. 사내의 등 뒤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만은 살아남고자 하는 맹렬한 의지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였다. 찢어지는 듯한 비명 소리가 복도 끝에서 터져 나왔다.
    “꺄아아악! 살려줘! 살려줘요!”
    날카로운 비명은 굳게 닫힌 문 너머에서 울려 퍼졌고, 복도를 가득 채우던 쩌억거리는 소리는 순식간에 멎었다. 작업 중이던 사내의 손에서 해머가 툭, 떨어졌다.
    모든 시선이 비명이 터져 나온 곳으로 향했다. 2층 의료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의료실 문은 평소에도 굳게 잠겨 있었지만, 지금은 내부에서 무언가로 막힌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밖에는 의료 담당인 박선영 박사가 벌벌 떨며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공포로 가득했다.
    “문이 안 열려요! 김 팀장님이… 김 팀장님이 안에서 대답이 없어요!”

    김 팀장. ‘김상훈’. 그는 벽제 지식 요새의 핵심 인물이자, 바깥 세상으로 나가 보급품을 찾아오는 수색팀의 리더였다. 카리스마 넘치고 추진력 강한 성격 덕분에 많은 이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지만, 때로는 거친 언행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그런 그가 의료실에 갇혀 있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은 일제히 굳어졌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먼저 달려온 건 이 요새의 실질적인 리더인 이지성 팀장이었다. 굳게 닫힌 문을 한 번 훑어본 그의 얼굴에는 불안감이 스쳤다.
    “문이 안 열립니다. 안에서 뭘로 막아놓은 것 같아요. 김 팀장님에게 이상이 생긴 것 같습니다.” 박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막혀 있다고? 김 팀장이 왜? 젠장, 다들 문 부술 준비해! 망치 가져와!”

    몇 명이 달려가 도끼와 쇠지레를 가져왔다. 쿵, 쿵, 쿵. 육중한 문에 도끼날이 박히고 쇠지레가 틈새를 비집고 들어갔다. 나무와 금속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가 이어졌다. 한참의 사투 끝에 마침내 문이 굉음과 함께 안쪽으로 쓰러졌다.

    쓰러진 문 안쪽에는 낡은 의료용 침대가 겹쳐져 문을 막고 있었다. 침대 몇 개를 겨우 치우고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의료실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멸균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곳이라 평소에도 정리가 잘 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고요하고 깨끗했다. 창문은 두꺼운 철판으로 안에서 완전히 막혀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할 만한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상훈의 시신이 있었다.

    그는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채 미동도 없었다. 왼쪽 가슴팍에는 시뻘건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고, 그 피는 바닥의 하얀 타일 위로 끔찍한 검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마치 웅덩이 같았다. 그의 옆에는 깨진 주사기가 떨어져 있었다.
    “맙소사…”
    박선영 박사가 비명을 삼키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지성 팀장의 얼굴은 돌처럼 굳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이지성 팀장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안에서 문을 막아놓고… 창문도 안에서 잠겨 있고…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어요. 김 팀장님 혼자였습니다.” 한 생존자가 말했다.
    다른 생존자가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가리켰다.
    “자살입니까? 김 팀장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겁니까?”
    누군가의 나지막한 질문에 박선영 박사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에요! 김 팀장님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게다가 저건, 진통제 주사기예요! 자살 도구가 될 수 없어요!”

    혼란이 의료실을 집어삼켰다. 바깥 세상은 좀비들로 가득한 지옥이었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일 싸우고 고통받았지만, 최소한 서로를 죽이는 일은 없었다. 아니, 적어도 직접적인 살인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가장 안전해야 할 요새 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그것도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체 누가, 어떻게 김 팀장님을 죽인 거지?”
    “범인은 아직 이 안에 있는 거 아니야?”
    “아니, 이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어! 창문도 마찬가지고! 그럼 김 팀장님이 스스로 죽었다는 말밖에 안 되잖아!”
    “하지만 박 박사님 말로는 자살이 아니라고…”

    점점 더 격해지는 논쟁과 공포의 분위기 속에서, 이지성 팀장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요새 전체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 모두에게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강태준을 불러와.” 이지성 팀장이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강태준이요? 그 사람을 부르자고요?”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도 답을 찾지 못할 거야. 강태준이라면… 강태준이라면 뭔가 알 수 있을지도 몰라.”

    강태준. 요새 사람들은 그를 ‘은둔자’라고 불렀다.
    세상이 지옥으로 변하기 전, 그는 대학교수였다. 범죄 심리학과 행동 분석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과 섞이기보다는 책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에 더 몰두했다. 아포칼립스 이후에도 그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도서관 가장 구석에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책과 씨름하며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의 지식은 때때로 요새의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곤 했지만, 그의 괴팍하고 냉소적인 성격 탓에 아무도 그와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그를 지금 불러야 한다니, 사람들의 얼굴에는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잠시 후, 낡은 코트 차림의 남자가 의료실 문턱에 섰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묘하게도 초점이 흐릿한 듯하면서도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한 눈이었다.
    의료실 안의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그가 나타나자마자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숨소리마저 죽였다.

    강태준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진 문과 침대를 한 번 훑어보더니, 천천히 의료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하고 신중했다. 마치 박물관의 유물을 감상하는 학자처럼, 그는 시신 주위를 몇 바퀴 돌며 주변을 관찰했다. 바닥의 핏자국, 깨진 주사기, 벽에 걸린 엑스레이 필름, 굳게 막힌 창문, 그리고 천장의 희미한 전등까지. 그의 시선은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스캔하는 듯했다.

    이지성 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 교수님… 김 팀장님이 살해당했습니다. 보시다시피, 문은 안에서 막혀 있었고, 창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외부인의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자살이거나…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강태준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김상훈의 시신을 살짝 건드렸다.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는 피해자의 굳은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주저앉아 핏자국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쓸어보았다.

    갑자기, 그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김상훈의 손.
    굳게 쥐어진 오른손 주먹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고개를 숙여 주먹을 자세히 살폈다. 주먹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무언가 있었다. 강태준은 조심스럽게 그의 주먹을 펴 보려 했지만, 시신은 이미 굳어 버린 상태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핏자국, 주사기, 그리고 굳게 쥐어진 주먹.
    그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시선은 다시 한번 방 전체를 빠르게 훑었다.
    창문, 문, 천장, 바닥, 그리고 시신…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강태준의 입술이 마침내 열렸다.
    “이 방은…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네, 교수님. 그래서 다들 혼란스러운 겁니다.” 이지성 팀장이 답했다.
    강태준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자살이 아니라는 박 박사의 말은 맞습니다. 김상훈은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습니다.”
    박선영 박사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누가?”

    강태준은 의료실 중앙에 서서 천천히 주변을 돌아보았다.
    “범인은…”
    그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이 안에 있었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된 순간, 강태준은 싸늘하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김상훈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기 직전, 이 밀실 안에서 살해당했습니다. 하지만… 살해한 존재는 이 방에서 사라졌습니다.”

    마치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그의 말이 의료실을 감싼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사라졌다고요? 그럼 범인은 귀신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누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강태준은 그 질문에 대답 대신 시신을 가리켰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갔습니다. 아니,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밀실 안에서, 그는 살인을 저질렀고… 증발했습니다. 흔적도 없이 말이죠.”
    그리고는 모두를 향해 싸늘하게 덧붙였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밀실에서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김상훈을 죽였으며, 아무도 모르게 이 방을 나갔습니다. 그것도 안에서 잠긴 문과 창문을 뚫고 말이죠.”

    그의 마지막 말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밀실 살인. 그것도 좀비 아포칼립스 시대에, 가장 안전해야 할 요새 안에서 벌어진 불가능한 살인.
    강태준은 모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그의 눈빛만이 차갑게 빛나며, 마치 눈앞의 광경 뒤에 숨겨진 거대한 비밀을 이미 꿰뚫어 본 듯했다.

    “그 트릭을 밝혀내야겠군요.”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지만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꽃처럼 모두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 이세계 전생 (Isekai)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챕터 1: 심연의 부름**

    별들의 바다는 고요했다. 수십억 년을 떠돌던 먼지와 가스 구름마저 침묵하는, 그야말로 우주의 심장부였다. 인류의 항성간 탐사선 ‘별의 심장’호는 그 심연 속에서 점멸하는 외로운 빛줄기 같았다. 3년 7개월. 지구를 떠나 안드로메다 은하를 향한 무모한 여정의 한가운데서, 승무원들은 이미 시간의 개념마저 흐릿해진 듯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미지의 영역을 향한 끊임없는 전진뿐이었다.

    “함장님, 류진입니다. 전방 344-알파 섹터에서 미확인 에너지 반응이 감지되었습니다.”
    정적을 깬 건 항해사 류진의 살짝 상기된 목소리였다. 중앙 통제실의 홀로그램 스크린은 여전히 검은 우주를 배경으로 수많은 데이터와 항로 예측선을 띄우고 있었다. 류진은 푸른빛으로 빛나는 콘솔 앞에 앉아 손가락을 빠르게 움직이며 데이터를 재차 확인했다.
    함장 이한은 고개를 들어 류진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은 길고 긴 여정의 피로를 숨기지 못했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날카롭게 빛났다.
    “미확인 반응? 오작동 아니겠나? 이 구역은 지금까지 어떤 문명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은 청정 구역이었잖나.”
    과학 담당 서아 박사가 옆에서 데이터 패드를 들여다보며 반문했다. 그녀의 단정한 회색 유니폼은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었고, 침착한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설명할 수 없는 호기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
    “아닙니다, 박사님. 오작동은 아닙니다. 장비는 완벽하게 작동 중이며, 반응은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분석 결과, 기존에 알려진 어떤 자연현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주파수 대역도, 파동의 형태도… 전혀 새로운 패턴입니다.” 류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우주라는 거대한 정적 속에서 찾아낸 작은 파동은 그에게 새로운 자극이 분명했다.
    이한 함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제실을 가로질러 류진의 콘솔로 다가갔다. 그의 뒤로 서아 박사도 따라붙었다. 스크린에 표시된 그래프와 수치들은 확실히 이례적인 패턴을 보이고 있었다.
    “최대 배율로 스캔하고, 접근 속도를 늦춰. 서아 박사는 모든 과학 장비를 가동시켜. 이게 뭔지 알아내야 해.”
    함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별의 심장’호의 거대한 엔진은 미세한 굉음을 내며 속도를 줄였다. 동시에 선체 외부에 장착된 수많은 센서들이 잠에서 깨어난 듯 활동을 시작했다.

    별의 심장호는 거대한 검은 광물 덩어리처럼 우주를 미끄러져 나아갔다. 수십 분 후, 홀로그램 스크린에 희미한 그림자 하나가 포착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우주선 센서가 잡아낸 먼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배율이 높아질수록 그 형태는 점점 선명해졌다. 희미했던 실루엣은 점차 불가능한 기하학적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세상에…” 서아 박사의 입에서 낮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 나타난 것은 거대한 다면체였다. 매끄럽고 검은 표면은 주변의 빛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듯했으며, 기묘하게 뒤틀린 육각형과 오각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크기는 소행성 하나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했다. 마치 누군가 우주 공간 자체를 찢어 발겨 만든 예술 작품 같았다.
    “구조가… 완전히 비대칭적입니다. 하지만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습니다. 마치 의도적으로 무질서하게 설계된 것 같아요.” 류진이 분석 결과를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는 경외심과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그리고 이 에너지 반응은 표면에서부터 방출되고 있습니다. 아주 미약하지만, 지속적으로요. 기존에 알려진 그 어떤 물질의 에너지 패턴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한 함장은 스크린에 고정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수십 년간 우주를 떠돌며 수많은 현상을 목격했지만, 이런 형태의 물체는 처음이었다. 인위적인가? 아니면 자연의 극단적인 장난인가? 하지만 그의 직감은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고 속삭였다.
    “근접 탐사 드론을 발사해. 모든 데이터를 수집하고, 물리적 접촉은 금지한다. 혹시 모를 오염이나 공격에 대비해.”
    함장의 명령에 따라 작은 탐사 드론 한 대가 ‘별의 심장’호의 발사관에서 조용히 미끄러져 나왔다. 드론은 거대한 미지의 구조물 주위를 선회하며 스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하기 시작했다. 통제실 안의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인 채, 거대한 미지의 존재를 응시했다.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왔다. 서아 박사는 눈을 깜빡이는 것조차 잊은 채 화면을 주시했다.
    “표면은 알려지지 않은 금속 합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높고, 강합니다. 현재까지 인류가 개발한 어떤 합금보다도요. 방어막이나 보호층도 없이 이런 환경에서 온전히 존재하고 있다니…”
    “내부 구조는?” 이한 함장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드물게 흥분이 섞여 있었다.
    “내부… 내부는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비어 있다기보다는… 공간 자체가 뒤틀려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내부를 스캔하는 것 같아요. 측정이 불가능한 위상 변화가 감지됩니다.”
    서아 박사의 목소리에 당혹감과 동시에 과학자의 본능적인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빠르게 콘솔을 스쳐 지나갔다.
    홀로그램 스크린은 거대한 다면체의 내부를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물질적인 공간이라기보다는, 색색의 빛이 뒤엉켜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에너지 덩어리에 가까웠다. 어둡고 깊은 우주 한가운데서, 그 내부는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듯한,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이었다.
    “이건… 유물이군요.” 이한 함장이 나직이 읊조렸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와 불안감이 교차했다. “누군가가, 혹은 무엇인가가 만든 겁니다. 그것도 우리 인류의 상식을 뛰어넘는 존재가.”
    그때였다. 다면체의 표면이 번쩍였다. 주변의 모든 별빛을 흡수하던 검은 표면이, 한순간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빛은 점점 강렬해지더니, 거대한 유물을 중심으로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우주 공간으로 폭발하듯 퍼져나갔다. 파동은 초신성 폭발을 연상시킬 정도로 강력했다.
    “함장님! 에너지 반응이 폭주합니다! 모든 시스템이 불안정합니다! 실드가 버티지 못합니다!” 류진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키보드를 두드렸지만, 경고음은 더욱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별의 심장’호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조약돌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통제실의 조명들이 깜빡거리다 꺼지기를 반복했다. 선내 모든 경보음이 통제실을 가득 메웠다.
    “비상 출력으로 전환! 유물에서 멀어져! 즉시 회피 기동!” 이한 함장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유물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파동은 순식간에 ‘별의 심장’호를 집어삼켰다. 선체 전체가 눈부신 빛에 잠식당하는 동시에, 통제실의 모든 스크린이 지직거리며 꺼졌다.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다면체 내부의 뒤틀린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섬광이었다.
    이한 함장의 눈앞이 하얗게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미지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끔찍하고도 몽환적인 감각에 휩싸였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사라지고, 그의 의식은 무한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