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스팀펑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제목: 증기 심장의 잔해**
    **부제: 구역 7의 그림자**

    **에피소드 1**

    **[1.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 – 낮]**

    화면 가득, 녹슨 철골 구조물과 깨진 유리창이 즐비한 폐허가 된 도시의 전경이 펼쳐진다. 붉은빛이 감도는 짙은 잿빛 스모그가 하늘을 뒤덮고 있어 햇빛조차 희미하다. 멀리서 거대한 증기 배관이 내뿜는 ‘쉬이이익-‘ 하는 증기음이 들린다. 화면 하단에는 낡은 철판과 버려진 기계 부품들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작지만 단단해 보이는 거주지가 보인다. ‘철의 둥지’라는 푯말이 바람에 흔들린다.

    **나레이션 (제이):**
    이곳은 우리가 ‘잿빛 도시’라 부르는 곳. 모든 것이 멈춘 지 오래지만, 증기만은 쉬지 않고 흐른다. 마치 도시의 죽은 심장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2. ‘철의 둥지’ 외곽 – 낮]**

    낡은 금속 외벽에 기대어 한 인물이 서 있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제이’. 닳고 닳은 가죽 재킷에 낡은 비행 고글을 이마 위로 올려 쓰고 있다. 등에는 잔뜩 기계 부품이 채워진 투박한 배낭을 메고, 허리춤에는 다용도 렌치와 밧줄이 감긴 갈고리총이 달려 있다. 그의 옆에는 허리 높이까지 오는 낡은 증기 동력 스쿠터가 세워져 있다.

    **제이 (독백):**
    오늘도 그래야만 하는 날. 철의 둥지 창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식량도, 연료도 모두 간당간당하다.

    **[3. 제이의 얼굴 클로즈업 – 낮]**

    고글 아래로 보이는 제이의 눈은 피곤하지만 날카롭다. 입술을 굳게 다문다.

    **제이 (독백):**
    특히 ‘증기핵’이 문제다. 이 도시의 유일한 피, 모든 기계를 움직이는 에너지원. 찾지 못하면… 모두가 굶거나 얼어 죽을 거다.

    **[4. 제이, 증기 스쿠터를 타고 폐허 속으로 – 낮]**

    제이가 증기 스쿠터의 시동을 건다. ‘쿠구궁… 퍽! 칙칙칙-‘ 하는 소리와 함께 흰 증기를 내뿜으며 스쿠터가 움직인다. 제이는 익숙하게 스쿠터를 조종하며 녹슨 철골과 무너진 잔해 사이를 헤쳐 나간다. 그의 등 뒤로 ‘철의 둥지’가 점점 멀어진다.

    **[5. 구역 7 진입 – 낮]**

    폐허가 더욱 심해지는 구역으로 들어선다. 주변의 건물들은 더욱 높고 거대하며, 기괴하게 휘어져 있다. 곳곳에 ‘구역 7 – 접근 금지’라고 붉은 페인트로 칠해진 낡은 표지판들이 보인다. 증기 파이프가 여기저기 찢겨나가 뜨거운 증기가 ‘쉬이이익’ 소리를 내며 뿜어져 나오고 있다. 땅에는 검붉은 증기가 응결된 웅덩이들이 널려 있다.

    **제이 (독백):**
    구역 7. 예전에는 대규모 생산 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이라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죽은 거인의 무덤이지. 그리고 동시에, 탐욕스러운 고물상들의 지옥이기도 하다.

    **[6. 제이, 낡은 공장 입구 앞 – 낮]**

    스쿠터를 세운 제이가 고글을 내리고 낡은 공장 건물을 올려다본다. 다른 구역의 건물들과는 달리 외벽이 비교적 온전해 보이지만, 입구는 거대한 철문이 기묘하게 뜯겨나가 내부가 드러나 있다. 공장 안쪽에서 희미하게 ‘웅- 웅-‘ 하는 낮은 기계음이 들리는 듯하다.

    **제이:**
    (혼잣말) …이런 곳에 아직 누가 손을 대지 않았다니. 운이 좋은 건가, 아니면…

    제이의 시선이 공장 입구 옆, 벽에 새겨진 희미한 로고에 머문다. 톱니바퀴와 깃털이 합쳐진 문양이다.

    **제이 (독백):**
    옛날 ‘강철 깃털사’ 공장이었군. 듣기로는 가장 진보된 증기핵 생산 설비를 가졌다고 했는데.

    **[7. 공장 내부 진입 – 낮]**

    제이가 조심스럽게 공장 안으로 들어선다. 내부 또한 거대한 공간이다. 먼지가 두껍게 쌓인 거대한 기계 설비들이 규칙적으로 늘어서 있다. 천장에서는 끊어진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고, 바닥에는 녹슨 톱니바퀴와 나사들이 흩어져 있다. 고요함 속에서 제이의 발걸음 소리만이 ‘타박 타박’ 울려 퍼진다.

    **제이 (독백):**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여태껏 이 정도 규모의 공장 중에 이렇게 깨끗하게 보존된 곳은 없었는데…

    **[8. 증기핵 생산 라인 발견 – 낮]**

    제이가 안쪽으로 더 깊숙이 들어간다. 이윽고 거대한 생산 라인 앞에 멈춰 선다. 라인 위에는 작업이 중단된 채 방치된 증기핵들이 보인다. 아직 에너지 잔량이 남아 있는 듯, 희미하게 푸른빛을 내고 있다.

    **제이:**
    (놀란 듯) 찾았다… 이 정도면 철의 둥지 모두가 한 달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가 배낭을 내려놓고 가장 가까운 증기핵 하나를 조심스럽게 집어 든다. 생각보다 따뜻하고 묵직한 감촉에 안도감이 밀려온다.

    **[9. 이상 징후 – 낮]**

    그때였다.
    공장 안쪽,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거대한 기계 설비 하나가 ‘끼이이익… 콰앙!’ 하는 굉음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녹슨 증기 밸브가 돌아가며 굵은 증기를 내뿜고, 낡은 체인이 삐걱이며 거대한 톱니바퀴를 돌린다.

    **제이:**
    (경계하며) …뭐지?

    제이가 황급히 허리춤의 갈고리총에 손을 댄다.

    **[10. 증기괴의 등장 – 낮]**

    어둠 속에서 붉은 눈 두 개가 번뜩인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낡은 증기 엔진과 날카로운 철판 조각으로 이루어진, 짐승과 같은 형상. 마치 여러 기계를 짜깁기 한 듯 기괴하다. 온몸에서 과열된 증기를 ‘쉬이이익, 푸슈슈슉’ 내뿜으며, 땅을 울리는 ‘쿵, 쿵’ 소리를 내며 제이를 향해 다가온다. 그 이름은, ‘증기괴’.

    **제이 (독백):**
    젠장… 증기괴라고? 이젠 이런 것들까지 여기서 기어 다니는군!

    **[11. 제이의 도주와 반격 시도 – 낮]**

    증기괴가 앞발을 들어 올려 바닥을 내리찍자, ‘쾅!’ 하는 굉음과 함께 파편들이 튀어 오른다. 제이는 재빨리 몸을 날려 피한다.

    **제이:**
    (달리며) 망할! 속도가 장난이 아니잖아!

    증기괴는 끈질기게 제이를 추격한다. 제이는 복잡한 생산 라인 사이를 곡예하듯 뛰어넘고, 좁은 통로를 통과하며 간신히 거리를 벌린다.

    **제이 (독백):**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면 승부는 무리다. 저 철판 덩어리를 뚫을 방법은 없어.

    그의 눈에 천장에 매달린 낡은 운반용 체인과 도르래들이 들어온다.

    **제이:**
    그래…!

    제이가 갈고리총을 꺼내 조준한다. ‘챙!’ 하는 금속음과 함께 갈고리가 날아가 천장의 굵은 철골에 박힌다.

    **[12. 고공 액션 – 낮]**

    제이가 밧줄을 타고 순식간에 공중으로 몸을 날린다. 증기괴는 으르렁거리며 제이가 매달린 아래에서 발버둥 친다. 뜨거운 증기가 제이의 발밑까지 뿜어져 올라온다.

    **제이 (독백):**
    (공중에서 매달린 채) 이 녀석… 증기압이 너무 높아! 과부하 상태인가?!

    증기괴의 몸체 곳곳에서 붉은빛이 깜빡인다. 과열된 증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낡은 부품들이 ‘덜그럭 덜그럭’거린다.

    **[13. 위기 – 낮]**

    제이가 착지할 곳을 찾다가 발밑의 불안정한 철판 더미를 본다. 그때, 증기괴가 거대한 팔을 휘둘러 제이가 매달린 철골을 강타한다. ‘콰아아앙!’ 철골이 휘어지고, 제이는 균형을 잃고 아래로 떨어진다.

    **제이:**
    크윽!

    떨어지는 순간, 제이는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옆에 매달려 있던 낡은 증기 파이프를 붙잡는다. ‘쉬이이익-‘ 뜨거운 증기가 파이프의 작은 균열 사이로 뿜어져 나와 그의 손을 훑고 지나간다.

    **[14. 일격 필살의 기회 – 낮]**

    증기괴는 제이가 완전히 바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천천히 그에게 다가온다. 제이는 파이프에 매달린 채 자신의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보일러실로 이어지는, 열려진 통로가 있었다. 통로 안에서는 끓어오르는 증기 소리가 ‘부우우웅- 쉬이이익!’ 하고 격렬하게 들려온다.

    **제이 (독백):**
    그래… 저기다! 과부하된 녀석에겐… 저게 딱이지!

    제이가 허리춤에서 다용도 렌치를 꺼내 든다. 그의 눈이 번뜩인다.

    **[15. 증기괴 유인 – 낮]**

    제이가 파이프에 매달린 채 발로 바닥의 낡은 철판을 ‘텅! 텅!’ 소리 나게 찬다. 증기괴가 그 소리에 반응하며 고개를 돌린다.

    **제이:**
    이 멍청한 고철 덩어리야! 날 잡고 싶으면 따라와 봐!

    제이가 파이프를 따라 능숙하게 이동하며 통로 쪽으로 향한다. 증기괴가 ‘그르르릉’ 소리를 내며 그를 뒤쫓는다.

    **[16. 보일러실에서의 결전 – 낮]**

    제이가 통로를 지나 보일러실로 뛰어든다. 거대한 증기 보일러들이 위협적으로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제이는 보일러실 중앙에 있는, 거대한 메인 밸브를 발견한다.

    **제이 (독백):**
    이거다… 이걸 열면…!

    증기괴가 보일러실 안으로 들이닥친다. 제이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메인 밸브로 달려간다. 증기괴의 거대한 팔이 제이를 향해 내리쳐진다.

    **제이:**
    (이를 악물고) 늦었어!

    ‘끼이이이익!’ 제이가 렌치로 밸브를 힘껏 돌린다. 보일러 내부의 증기압이 급격하게 상승한다. ‘쿠구구구궁!’ 하는 엄청난 진동과 함께 보일러들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17. 폭발과 탈출 – 낮]**

    증기괴가 제이의 바로 뒤까지 따라붙었을 때, 보일러의 안전 밸브들이 ‘파아아앙! 콰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간다. 고압의 증기가 사방으로 폭발하듯 뿜어져 나오면서 보일러실 전체가 하얀 증기로 뒤덮인다.

    제이는 폭발의 충격파를 피해 몸을 날려 열린 통로 밖으로 간신히 탈출한다. 등 뒤에서 거대한 ‘콰아아앙!’ 하는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공장 전체가 진동한다.

    **[18. 탈출 후 – 낮]**

    제이가 공장 밖으로 굴러떨어진다. 온몸이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고, 팔에는 뜨거운 증기에 그을린 붉은 자국이 선명하다. 숨을 헐떡이며 뒤를 돌아본다. 공장 입구에서는 검은 연기와 함께 증기가 쉬지 않고 뿜어져 나온다. 증기괴의 기계음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제이 (독백):**
    (안도의 한숨) 해냈다…

    그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 와중에도 그의 손에는 아까 챙겨둔 증기핵 세 개가 꽉 쥐어져 있다. 그리고 손에 잡힌 다른 작은 파편 하나. 증기괴의 몸체에서 떨어져 나온 듯한, 낡았지만 어딘가 정교하고 낯선 모양의 톱니바퀴 조각이었다.

    **[19. 톱니바퀴 클로즈업 – 낮]**

    클로즈업된 톱니바퀴는 일반적인 기계 부품과는 다르게, 표면에 미세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고, 중심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수정 조각이 박혀 있다.

    **제이 (독백):**
    (톱니바퀴를 바라보며) 이건… 전에 본 적 없는 부품인데. 이 괴물이 단순한 고철 덩어리는 아니었던 건가…

    **[20. 제이의 뒷모습 – 낮]**

    제이가 낡은 스쿠터에 몸을 싣고 다시 철의 둥지를 향해 출발한다. 그의 뒷모습 위로 잿빛 도시의 스모그가 더욱 짙게 깔린다. 손에 든 톱니바퀴 조각이 햇빛에 반사되어 잠시 반짝인다.

    **제이 (독백):**
    어쨌든… 오늘은 살았다. 그리고 내일도… 또 그래야만 하겠지. 이 빌어먹을 도시에서. 하지만… 이 톱니바퀴는 대체 뭘까?

    **[에피소드 1 끝]**

  • 무협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애니메이션 대본 & 스토리보드: 불꽃 속에서 피어난 원한(怨恨)

    **제목:** 나락의 검(劍), 복수의 그림자

    **장르:** 무협, 복수극

    **시놉시스:** 한때 천검문(天劍門)의 쌍벽이자 친형제 같던 련(煉)과 강(剛). 그러나 강(剛)의 비틀린 야망은 련(煉)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천검문은 피로 물들었다. 모두가 련(煉)이 죽었다 믿는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 련(煉)의 심장에는 오직 복수만이 남았다. 죽음보다 깊은 고통 속에서, 그는 새로운 무(武)를 깨우치고 그림자처럼 돌아와, 천검문을 장악한 친구이자 원수에게 피의 심판을 내리려 한다.

    ### **1부: 그림자, 불꽃에 춤추다**

    **씬 1: 천검문의 밤, 피로 물든 잔향**

    **장면 번호:** 001

    **장면 요약:** 강(剛)이 지배하는 천검문의 야경. 그 고요를 찢고 나타나는 련(煉)의 그림자.

    **등장인물:**
    * 련(煉) (과거의 빛을 잃고 복수에 불타는 검사)
    * 강(剛) (천검문을 장악한 야심가)
    * 천검문 무사들

    **(음향: 멀리서 들려오는 밤벌레 소리, 바람 소리.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금속음)**

    **지문:**
    * **[화면: 깊은 밤, 달빛이 드리운 천검문의 전경. 웅장한 기와지붕과 고즈넉한 정원들이 스산하게 빛난다. 카메라는 천검문의 가장 높은 누각, ‘천룡루(天龍樓)’를 비춘다.]**
    * **[화면: 천룡루의 창 너머로, 화려하지만 어딘가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연회가 펼쳐지고 있다. 강(剛)이 상석에 앉아 호탕하게 웃고, 주변에는 그의 측근들이 아부하듯 앉아있다.]**
    * **[화면: 연회장의 밝은 불빛과 대비되는 어두운 그림자가 천룡루의 지붕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한다. 그림자의 주인, 련(煉)의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그의 얼굴은 반쯤 가려져 있지만, 싸늘하게 빛나는 눈만이 그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 **[화면: 련(煉)의 손이 천룡루 처마 끝의 기와를 조용히 짚는다. 손가락 끝의 굳은살과 핏자국이 그의 지난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그의 시선은 연회장의 강(剛)에게 고정되어 있다.]**
    * **[화면: 강(剛)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는 여전히 호탕하게 웃고 있지만, 문득 시선을 돌려 어둠 속 어딘가를 응시하는 듯하다. 그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 **[화면: 련(煉)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난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치 “강…!” 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 **[화면: 련(煉)의 망토 자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련(煉)이 아니다. 온몸에서 서늘한 살기(殺氣)가 뿜어져 나온다.]**

    **씬 2: 깨진 잔, 찢겨진 맹세**

    **장면 번호:** 002

    **장면 요약:** 연회장에 나타난 련(煉). 강(剛)과의 첫 대면과 과거 회상.

    **등장인물:**
    * 련(煉)
    * 강(剛)
    * 천검문 무사들

    **(음향: 연회장의 소란스러운 웃음소리, 기생들의 노랫소리. 갑자기 깨지는 술잔 소리. 날카로운 정적.)**

    **지문:**
    * **[화면: 연회가 한창인 천룡루. 강(剛)이 술잔을 들고 건배를 제의하려는 찰나, 갑자기 연회장 한가운데의 거대한 창문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 **[화면: 유리 파편이 흩날리는 슬로우 모션 속에서, 련(煉)이 그림자처럼 연회장 안으로 착지한다. 그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는 검은색 도포를 입고, 얼굴은 깊은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 **[화면: 연회장의 모든 이들이 얼어붙는다. 기생들의 비명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강(剛)의 잔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깨진다. ‘쨍그랑!’ 하는 소리가 정적을 더욱 강조한다.]**
    * **[화면: 련(煉)이 고개를 든다. 달빛이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며, 그의 섬뜩한 눈빛과 비틀린 입꼬리가 드러난다. 그의 눈은 오직 강(剛)만을 향해 있다.]**

    **련(煉):** (차갑고 낮은 목소리) 오랜만이군, 강.

    **지문:**
    * **[화면: 강(剛)의 얼굴이 충격과 경악으로 일그러진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술에 취해 붉어졌던 얼굴이 삽시간에 창백해진다.]**
    * **[화면: 강(剛)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허리춤의 검에 닿는다. 주변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련(煉)을 에워싼다.]**

    **강(剛):** (떨리는 목소리) 네… 네가 어떻게…? 련…!

    **지문:**
    * **[화면: 련(煉)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의 발걸음마다 주변 무사들이 움찔거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는 무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오직 강(剛)만을 노려본다.]**

    **련(煉):** 죽었어야 할 내가, 살아 돌아왔다. 이 검은… 너의 목을 베기 위해, 나락에서 다시 벼려진 검이다.

    **지문:**
    * **[화면: 련(煉)이 품속에서 검을 뽑아든다. 그의 검은 마치 먹을 머금은 듯 검고, 칼날은 섬뜩할 정도로 빛난다. 검을 뽑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오랜 수련의 흔적이 느껴진다.]**

    **(음향: 과거 회상 장면으로 전환되는 몽환적인 효과음)**

    **지문:**
    * **[화면: (회상 – 과거) 화창한 낮, 어린 시절의 련(煉)과 강(剛)이 천검문의 푸른 수련장에서 함께 웃으며 검을 겨루고 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순수한 열정과 우정이 가득하다.]**

    **강(剛, 과거):** (환하게 웃으며) 하하! 련, 너의 검은 언제나 날카롭구나! 언젠가 천하제일의 검객이 될 거야!

    **련(煉, 과거):** (장난스럽게 웃으며) 우리 둘이 함께라면 못할 것이 무엇이겠나! 천검문의 영광은 우리 손에 달렸어!

    **지문:**
    * **[화면: (회상 – 과거) 두 소년이 땀을 흘리며 수련하다가, 함께 냇가에 앉아 물을 마신다. 강(剛)이 련(煉)의 어깨를 툭 치며 웃는다.]**

    **강(剛, 과거):** 영원히 함께하자, 벗!

    **련(煉, 과거):**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영원히!

    **(음향: 회상 장면이 사라지고 현재의 연회장 소리로 돌아오는 날카로운 효과음)**

    **지문:**
    * **[화면: (현재) 련(煉)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진다. 과거의 순수했던 맹세와 현재의 배신이 그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련(煉):** (비웃듯) 영원히? 그 영원은, 네가 나를 배신하고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순간 깨졌다.

    **강(剛):** (분노에 찬 목소리로) 닥쳐라!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너만 없었다면, 이 천검문은 온전히 내 것이었을 텐데!

    **지문:**
    * **[화면: 강(剛)의 얼굴이 분노와 함께 불안감으로 뒤섞인다. 그는 련(煉)의 존재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위협한다고 느끼는 듯하다.]**
    * **[화면: 강(剛)이 허리춤의 검을 완전히 뽑아든다. 그의 검은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련(煉)의 검과는 달리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剛):** 감히 죽지 않고 돌아와 내 영광을 더럽히다니! 당장 저자를 베어라!

    **지문:**
    * **[화면: 주변의 천검문 무사들이 일제히 련(煉)에게 달려든다. 그들의 검이 번뜩인다. 카메라는 련(煉)의 검은 검과 달려드는 무사들의 검을 번갈아 비춘다.]**

    **씬 3: 피의 춤, 그림자의 검무**

    **장면 번호:** 003

    **장면 요약:** 련(煉)과 무사들의 격렬한 전투. 련(煉)의 압도적인 무공과 비정함.

    **등장인물:**
    * 련(煉)
    * 강(剛)
    * 천검문 무사들

    **(음향: 강렬한 금속 마찰음, 칼바람 소리, 고통스러운 신음 소리, 련(煉)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

    **지문:**
    * **[화면: 달려드는 수십 명의 무사들 사이로 련(煉)이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그의 검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유연하고 빠르다.]**
    * **[화면: 련(煉)의 검이 한 무사의 검을 쳐내자, 무사의 검은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된다. 련(煉)의 검은 멈추지 않고, 무사의 목덜미를 스쳐 지나간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 **[화면: 련(煉)의 발이 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른다. 공중에서 몸을 한 바퀴 회전하며, 그의 검이 원형으로 빛나는 궤적을 그린다. 주변의 무사들이 동시에 쓰러진다.]**
    * **[화면: 련(煉)의 무공은 과거의 ‘정통 검법’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의 동작에는 정교함과 함께 예측 불가능한 잔혹함이 배어 있다. 그의 검 끝에서는 검은 내공(內功)이 섬광처럼 뿜어져 나온다.]**
    * **[화면: 한 무사가 련(煉)의 등 뒤를 노리지만, 련(煉)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팔을 뒤로 뻗는다. 그의 검이 무사의 복부를 정확히 꿰뚫는다. 무사의 눈이 충혈되고,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진다.]**
    * **[화면: 강(剛)이 떨리는 눈으로 련(煉)의 싸움을 지켜본다. 과거의 련(煉)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공포에 질린다.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함께 과거의 죄책감이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강(剛):** (경악에 찬 목소리) 말도 안 돼… 저런 무공은… 대체 어떻게…!

    **지문:**
    * **[화면: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다. 피와 비명이 난무하고, 련(煉)은 그 혼돈의 중심에서 홀로 빛나는 죽음의 무희처럼 검을 휘두른다.]**
    * **[화면: 련(煉)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그는 마치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무사들을 베어 넘긴다. 그의 얼굴에 피가 튀지만, 그는 닦아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 **[화면: 련(煉)이 마지막 무사를 쓰러뜨린 후, 그의 검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연회장에는 그와 강(剛)만이 마주보고 서 있다. 바닥에는 쓰러진 무사들의 시신이 널려 있다.]**

    **련(煉):** (낮은 숨을 몰아쉬며) 이제… 너와 나, 둘뿐이다.

    **지문:**
    * **[화면: 련(煉)의 검은 검에서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며 연회장 전체를 휩쓴다. 강(剛)은 그 압도적인 살기에 눌려 주춤거린다.]**
    * **[화면: 강(剛)이 이를 악문다. 그의 눈에도 살기가 돌기 시작한다. 과거의 우정을 완전히 끊어내고, 이제는 오직 승자만이 살아남는 싸움임을 직감한다.]**

    **강(剛):** (분노에 찬 목소리로) 감히 나에게… 이런 수치를 주다니! 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네놈을 완전히 끝장내 주마! 네놈을 살려둔 것이 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지문:**
    * **[화면: 강(剛)이 검을 들어 올린다. 그의 검에서 푸른색 내공이 뿜어져 나오며, 연회장의 어둠을 잠시 밝힌다.]**
    * **[화면: 두 남자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힌다. 증오와 복수, 그리고 과거의 그림자가 뒤얽힌다.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씬 4: 그림자와 푸른 빛의 충돌**

    **장면 번호:** 004

    **장면 요약:** 련(煉)과 강(剛)의 처절한 결투. 각자의 무공과 내면의 갈등이 충돌한다.

    **등장인물:**
    * 련(煉)
    * 강(剛)

    **(음향: 검이 부딪히는 굉음, 내공이 충돌하는 파열음, 바닥이 부서지는 소리, 두 남자의 거친 숨소리.)**

    **지문:**
    * **[화면: 강(剛)이 먼저 공격한다. 그의 검은 마치 푸른 번개처럼 빠르게 련(煉)에게 쇄도한다. ‘천검문 정통 검법’의 화려함과 위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강(剛):** (외치며) 천룡비상(天龍飛翔)!

    **지문:**
    * **[화면: 강(剛)의 검 끝에서 푸른 검강(劍罡)이 용처럼 솟아올라 련(煉)을 덮친다. 련(煉)은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련(煉):** (냉소적으로) 고작 그 정도인가. 네 야망은 이토록 빈약했단 말이냐?

    **지문:**
    * **[화면: 련(煉)의 검은 검에서 검은 내공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온다. 푸른 용의 검강과 검은 기운이 충돌하며 거대한 폭풍을 일으킨다. 연회장의 탁자와 의자들이 날아가고, 벽에 균열이 생긴다.]**
    * **[화면: 련(煉)의 검이 강(剛)의 검을 쳐낸다. ‘카앙!’ 하는 굉음과 함께 강(剛)의 몸이 뒤로 밀려난다. 련(煉)의 힘은 강(剛)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듯하다.]**
    * **[화면: 련(煉)은 그림자처럼 강(剛)의 빈틈을 파고든다. 그의 검은 직선이 아닌, 비정형적인 곡선과 예측 불가능한 궤적으로 강(剛)을 압박한다.]**

    **련(煉):** 나락에서 수없이 검을 벼려왔다. 네가 나에게 선물한 고통은, 이 검의 날을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다!

    **지문:**
    * **[화면: 련(煉)의 검이 강(剛)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강(剛)의 도포가 찢어지고, 붉은 피가 배어 나온다. 강(剛)의 얼굴에는 고통과 함께 굴욕감이 스쳐 지나간다.]**
    * **[화면: 강(剛)이 이를 갈며 다시 반격한다. 그는 자신의 모든 내공을 검에 실어 련(煉)에게 쏟아붓는다. ‘천검문의 문주’로서의 자존심과 두려움이 뒤섞인 공격이다.]**

    **강(剛):** (악을 쓰며) 크아악! 난 천검문의 문주다! 네놈 같은 나락의 폐물에게 질 수는 없어! 천검삼식(天劍三式) – 천공파(天空破)!

    **지문:**
    * **[화면: 강(剛)의 검이 하늘을 가르듯 위로 솟구친다. 거대한 푸른 검기가 천룡루의 지붕을 뚫고 하늘로 치솟는다. 그 여파로 연회장 안의 모든 것이 흔들린다.]**
    * **[화면: 련(煉)은 피하지 않는다.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깊어진다. 그는 자신의 검을 땅에 박아 넣는다.]**

    **련(煉):** (낮은 목소리로) 나락의 검식… 만상귀진(萬象歸盡).

    **지문:**
    * **[화면: 련(煉)의 검을 중심으로 검은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바닥의 깨진 파편들을 빨아들인다. 검은 소용돌이는 거대한 회오리처럼 솟아올라 강(剛)의 푸른 검기를 맞이한다.]**
    * **[화면: 검은 회오리와 푸른 검기가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연회장의 모든 것이 부서져 날아가고,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음이 울린다.]**
    * **[화면: 먼지와 파편이 가라앉자, 폐허가 된 연회장의 중앙에 두 남자가 서 있다. 강(剛)은 무릎을 꿇고 검을 짚고 겨우 버티고 있으며, 련(煉)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서 있다.]**
    * **[화면: 강(剛)의 검은 금이 가 있고, 그의 몸은 피투성이다. 그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련(煉)의 검은 여전히 검은 빛을 뿜어내며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강(剛):** (피를 토하며) 쿨럭… 말도 안 돼… 이럴 수가…

    **지문:**
    * **[화면: 련(煉)이 천천히 강(剛)에게 다가간다. 그의 발소리가 폐허의 정적 속에서 더욱 크게 울린다. 강(剛)은 고개를 들어 련(煉)을 올려다본다.]**

    **련(煉):** 네가 나에게 준 고통은… 단순히 몸의 상처가 아니었다. 내 영혼을 불태우고, 모든 것을 재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재 위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

    **지문:**
    * **[화면: 련(煉)의 눈빛이 마치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그의 검이 강(剛)의 목을 겨눈다.]**

    **련(煉):** 이제… 네가 나락으로 떨어질 차례다.

    **씬 5: 피의 단죄, 그리고 남겨진 그림자**

    **장면 번호:** 005

    **장면 요약:** 련(煉)의 최종 복수. 강(剛)의 죽음과 련(煉)의 허무함.

    **등장인물:**
    * 련(煉)
    * 강(剛)

    **(음향: 날카로운 검이 살을 가르는 소리, 고통스러운 비명, 그리고 모든 것을 삼키는 듯한 정적.)**

    **지문:**
    * **[화면: 련(煉)의 검이 강(剛)의 목을 향해 떨림 없이 내려간다. 강(剛)의 눈이 크게 뜨이고, 그 안에는 두려움, 후회, 그리고 체념이 뒤섞여 있다.]**

    **강(剛):** (마지막 힘을 짜내듯) 련… 우리… 우리가…

    **지문:**
    * **[화면: 강(剛)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련(煉)의 검이 그의 목을 단번에 베어낸다. ‘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강(剛)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된다.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 **[화면: 강(剛)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그의 머리는 련(煉)의 발치에 떨어진다. 그의 눈은 여전히 련(煉)을 향하고 있지만, 아무런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 **[화면: 련(煉)의 검 끝에서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강(剛)의 시신을 내려다본다. 그의 얼굴에는 복수의 쾌감 대신 깊은 허무함만이 서려 있다.]**
    * **[화면: 련(煉)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폐허가 된 천검문을 둘러본다.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오직 파괴와 죽음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달빛이 그의 창백한 얼굴을 비춘다.]**

    **련(煉):**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끝났나…? 모든 것이… 끝났는가…

    **지문:**
    * **[화면: 련(煉)의 손에서 검은 검이 스르륵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챙!’ 하는 소리가 폐허 속에서 처량하게 울린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힘도 남아있지 않은 듯하다.]**
    * **[화면: 련(煉)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린다. 그것은 복수의 눈물이 아닌,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슬픔과 공허함이 담긴 눈물이다.]**
    * **[화면: 련(煉)이 천천히 폐허를 벗어난다. 그의 그림자가 달빛 아래 길게 드리워진다. 그는 더 이상 과거의 련(煉)도, 복수를 위해 살던 련(煉)도 아니다. 그는 이제 방랑하는 그림자일 뿐이다.]**
    * **[화면: 카메라는 점점 멀어지는 련(煉)의 뒷모습을 비춘다. 폐허가 된 천검문의 잔해 위로 스산한 바람이 불고, 련(煉)의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 **[화면: (마지막 클로즈업) 련(煉)이 떠난 자리, 바닥에 떨어진 검은 검의 손잡이에 새겨진 ‘련(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옆에는 피 묻은 강(剛)의 얼굴이 차갑게 식어있다.]**

    **(음향: 모든 소리가 사라지고, 오직 처량한 바람 소리만이 남는다. 슬프고도 웅장한 배경 음악이 서서히 깔린다.)**

    **- END -**

  • 로맨틱 코미디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제목: 폐허에서 피어나는 로맨스 (가제)**

    **[에피소드 1: 낯선 잔해 속, 불시착한 웃음]**

    **#1. 폐허가 된 도시 외곽 – 오후**

    어둡고 거친 흙먼지가 자욱한 하늘. 잿빛 건물 잔해들이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바람 소리만이 휩쓸고 지나가는 황량한 풍경. 태양은 힘없이 빛을 잃었고,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붉은빛이 번져 있었다.

    무너진 마트의 뼈대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가는 한 사람. **지아(20대 중반, 여성)**다. 낡았지만 기능적인 작업복 차림에, 허리춤에는 다용도 칼집과 파우치가 달려 있다. 등에는 제법 큼직한 배낭을 메고 손에는 녹슨 철근 탐지기를 들고 있다. 그녀의 눈빛은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며 경계심으로 가득하다.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들과 금속 파편들을 능숙하게 피하며 걷는다.

    탐지기에서 ‘삐빅- 삐빅-’ 경고음이 울린다. 지아가 멈춰 서서 바닥을 응시한다. 굳게 다문 입술 위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온다.

    **지아 (독백)**
    “젠장, 또 깡통인가.”

    하지만 그녀는 망설임 없이 허리춤에서 작은 삽을 꺼내 들고 땅을 파기 시작한다. 흙먼지가 날리지만 개의치 않는다. 한참을 파내려가자, 희미하게 반짝이는 금속 물체가 드러난다.

    **지아**
    “…이건?”

    흙을 털어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찌그러진 스테인리스 도시락 통이었다.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지아**
    “젠장, 며칠째 식량도 못 찾고 있어. 이젠 하다하다 깡통만 나오네.”

    도시락 통을 배낭 옆 그물망에 대충 집어넣는다. 혹시 모를 재활용 가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녀는 다시 탐지기를 들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 도시의 폐허는 그녀의 생존 터전이자, 동시에 지긋지긋한 무덤이었다.

    **지아 (독백)**
    “어디든 좋으니, 쓸만한 거 하나만… 하다못해 깨끗한 물이라도.”

    그때, 멀리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쨍그랑!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낮게 깔리는 어딘가 익숙한 노랫소리가 섞여 들린다. 지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진다. 이런 폐허에서 노래라니? 게다가 저 소리는… 뭔가 부서지는 소리인데.

    지아는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숨긴다. 폐건물의 깨진 창문 틈으로 몸을 납작하게 붙이고 조심스럽게 안을 엿본다.

    **#2. 폐건물 내부 – 지아의 시점**

    무너진 벽과 잔해들이 가득한 넓은 홀. 천장은 일부 무너져 햇빛이 드문드문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 아래, 한 남자가 낡은 삽을 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바닥을 파고 있다.

    **하루(20대 중반, 남성)**는 꽤 멀끔한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 군데군데 흙먼지가 묻어 있다. 얼굴은 희고 말끔한 편인데,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과 잔뜩 헝클어진 머리가 그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그의 입에서는 묘하게 밝은, 템포가 빠른 노래가 흥얼거리고 있다. 노래 가사는 잘 들리지 않지만, 멜로디만큼은 명랑하기 그지없다.

    **하루**
    “이야압! 자, 자, 한 삽 더! 이정도면 나올 때도 됐는데… 으챠!”

    그가 힘껏 삽질을 하자, 바닥에 깔려 있던 콘크리트 조각들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박살 난다. 그리고 동시에, 삽 끝에 뭔가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하루는 삽을 내려놓고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파낸 곳을 들여다본다. 그곳에는…

    …낡고 삭은 배관 파이프가 툭 튀어나와 있었다.

    **하루**
    “…………………..아, 또 파이프네.”

    그의 얼굴에 방금까지 넘치던 활기찬 기색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실망한 어깨가 축 처진다.

    **하루 (독백)**
    “분명 이 근처였는데… 어렸을 때 할머니랑 같이 심었던 감나무가… 아니, 감나무가 아니라 밤나무였나?”

    그는 한숨을 쉬며 주저앉아 낡은 파이프를 툭툭 건드린다.

    **지아 (독백)**
    “…미쳤나? 여기서 나무를 심었다고?”

    지아는 황당한 표정으로 하루를 노려본다. 저런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가 폐허 한복판에서 삽질을 하고 있다니. 게다가 삽으로 바닥을 부수고 있다. 생존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행위였다.

    하루가 다시 일어선다. 땀을 닦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지아가 얼른 몸을 숨긴다.

    **하루**
    “아… 목마르다. 물이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는 주머니에서 낡은 수통을 꺼내 흔들어본다. 안에서는 텅 빈 소리만 울린다. 하루는 한숨을 쉬며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그때, 그의 시선이 지아가 숨어 있는 창문 쪽으로 향한다. 지아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하루가 멈칫하더니, 갑자기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든다.

    **하루**
    “어? 저기요! 혹시 살아있는 사람인가요?!”

    지아는 망설였다. 들켰다. 어쩔 수 없지. 그녀는 몸을 일으켜 창문 밖으로 조용히 걸어 나온다.

    **지아**
    “…누구세요.”

    지아는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하루를 노려본다. 하루는 그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하루**
    “와, 다행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 보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요! 저는 하루라고 합니다. 혹시… 저기, 혹시 물 좀 있으신가요?”

    하루는 해맑게 웃으며 지아의 배낭 쪽을 가리킨다.

    **지아**
    “…없어요.”

    지아는 단호하게 대답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저런 한가한 소리를 하는 자에게 물을 줄 여유 같은 건 없었다. 하루의 얼굴에 실망감이 스쳤지만, 이내 특유의 낙천적인 표정으로 돌아온다.

    **하루**
    “아하하, 역시 없겠죠. 다들 귀하니까… 혹시 이 근처에 물 찾을 만한 곳은 없었을까요? 제가 이 근처에서 어렸을 때…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루는 갑자기 입을 다물고는 멋쩍게 웃었다. 지아는 그의 황당한 말에 기가 막혔다. 이 폐허에서 어렸을 때라니, 그는 대체 언제 사람이고 어디서 온 사람이란 말인가.

    **지아**
    “뭘 찾으러 온 건데요. 이 폐허에서.”

    **하루**
    “아, 저는…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랑 같이 심었던 나무를 찾고 있어요! 분명 이 근처였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네요.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하루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지아를 바라본다. 폐허 한복판에서 나무를 찾는다니. 지아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지아**
    “여기서요? 나무는커녕 돌멩이 하나 찾기도 힘든데요.”

    **하루**
    “그렇죠? 근데 저는 정말 중요해서… 혹시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물도 좀 찾고, 그 나무도 같이 찾아주시면 제가 뭘 좀 드릴 수 있을 텐데…”

    하루는 말끝을 흐리며 지아의 눈치를 본다. 지아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었다.

    **#3. 폐건물 내부 – 또 다른 소리**

    그때, 건물 바깥에서 ‘크르르릉’ 하는 낮고 위협적인 소리가 들려온다. 지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는다.

    **지아**
    “젠장…!”

    그녀는 황급히 허리춤의 칼집에서 녹슨 철 파이프를 빼 들었다. 하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본다.

    **하루**
    “…무슨 소리죠?”

    **지아**
    “당신 같은 멍청이들이 바닥을 부수고 다니니까 소리가 나는 겁니다. 도망칠 준비나 해요.”

    지아는 하루에게 으르렁거렸다. 건물 입구 쪽에서 흙먼지가 피어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길들여지지 않은 개과 동물 한 마리가 으르렁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주변 폐허를 떠도는 유기견 무리의 우두머리일 터였다. 굶주림에 눈이 뒤집힌 녀석은 거친 숨을 내쉬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하루**
    “…와, 쟤 좀 무섭게 생겼네요.”

    **지아**
    “말하지 마! 시선을 끌지 마!”

    지아는 하루의 팔을 붙잡고 벽 뒤로 숨겼다. 그녀는 파이프를 꽉 쥐었다. 상대는 최소 성인 남자만큼이나 크고 포악해 보였다. 혼자서 상대하기는 버거울 수 있다.

    괴수가 ‘크르르르르…’ 낮게 으르렁거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왔다. 발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지아 (독백)**
    “젠장, 하필 지금 이럴 때…!”

    그때, 하루가 갑자기 벽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하루**
    “저기요, 야옹아! 미안한데, 혹시 먹을 거 있으면 저희 좀 주면 안 될까요? 저희 배가 너무 고파서…”

    하루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홀 안에 울려 퍼졌다. 괴수는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지아는 경악에 찬 눈으로 하루를 노려봤다.

    **지아**
    “미쳤어?!! 저게 야옹이로 보여?!”

    괴수는 하루의 말에 더 성이 난 듯, ‘크아아앙!’ 하고 포효하며 그대로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하루**
    “히이익! 진짜 달려오네요?!”

    하루는 비명을 지르며 다시 벽 뒤로 숨었다. 괴수는 벽을 향해 거칠게 몸을 부딪혔다. ‘쿵!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벽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지아**
    “이 멍청아! 다 네 탓이야!”

    지아는 칼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저런 거대한 짐승에게는 칼 한 자루로는 역부족이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그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무너진 철근, 부서진 벽돌 더미…

    그때, 하루가 갑자기 지아의 어깨를 붙잡았다.

    **하루**
    “지아 씨! 저 뒤에! 저기 괜찮을 것 같아요!”

    하루가 가리킨 곳은 홀 한쪽에 자리한, 꽤 견고해 보이는 작은 지하실 입구였다. 굳게 닫힌 철문이 보였다.

    **지아**
    “지하실? 저길 어떻게 알아?!”

    **하루**
    “아,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랑 숨바꼭질할 때… 아니, 그것보다 일단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하루는 지아의 말을 끊고 지하실 문을 향해 먼저 달려갔다. 지아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를 따라 뛰었다. 괴수는 으르렁거리며 두 사람의 뒤를 쫓았다.

    간발의 차이로 지하실 문 앞에 도달한 하루가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낡고 녹슨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하루**
    “으아! 안 열리는데요?!”

    괴수가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지아는 재빨리 뒤돌아서서 칼을 휘둘렀다. 괴수는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물러섰다.

    **지아**
    “비켜! 멍청아!”

    지아는 하루를 밀쳐내고 자신이 문을 열기 위해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역시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아는 이를 악물었다.

    **지아 (독백)**
    “젠장, 이러다 다 죽겠어!”

    그때, 하루가 갑자기 옆에 굴러다니는 낡은 쇠지렛대를 집어 들더니, 지하실 문틈에 끼워 넣었다.

    **하루**
    “잠시만요! 이렇게 하면 될 거예요!”

    그는 온 힘을 다해 쇠지렛대를 아래로 내리눌렀다. ‘끼이이익… 콰앙!’ 낡은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간신히 열렸다. 하루는 거의 동시에 지아의 손목을 잡아끌고 지하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루**
    “자! 들어왔어요!”

    지하실 안은 습하고 어두웠지만, 일단 안전해 보였다. 하루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을 다시 닫으려 애썼다. 괴수가 문틈으로 코를 들이밀며 으르렁거렸다.

    **지아**
    “빨리 닫아!”

    지아는 하루를 도와 문을 닫으려 했지만, 괴수의 힘이 워낙 강해 쉽지 않았다. 그때, 하루가 갑자기 문 옆에 있는 낡은 빗장을 발견했다.

    **하루**
    “어? 여기 빗장이 있었네요!”

    그는 재빨리 빗장을 내렸다. ‘철컥!’ 문이 완전히 잠겼다. 밖에서 괴수가 문을 긁고 들이받는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지아와 하루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4. 지하실 내부**

    어둠 속, 지아가 꺼낸 작은 손전등이 비좁은 지하실 내부를 비춘다. 벽은 곰팡이로 얼룩져 있었고, 오래된 상자와 잡동사니들이 가득했다. 먼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하루는 안도감에 푸스스 웃었다.

    **하루**
    “휴… 살았다. 다행이에요, 지아 씨. 덕분에.”

    지아는 하루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지아**
    “덕분은 무슨! 다 당신 탓에 벌어진 일인데!”

    **하루**
    “에이, 그래도 마지막엔 제가 빗장을 찾아냈잖아요!”

    하루는 해맑게 웃으며 손전등 불빛 아래에서 흙 묻은 얼굴을 쓱쓱 문질렀다. 지아는 한숨을 쉬었다. 저런 천하태평한 얼굴을 보니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지아**
    “…근데 이 지하실은 어떻게 알았어요? 아까부터 자꾸 어렸을 때 얘기는 하고.”

    하루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루**
    “사실… 제가 어렸을 때 여기서 살았어요. 이 건물이 제가 살던 아파트였거든요.”

    지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지아**
    “뭐…요?”

    **하루**
    “할머니가 항상 그랬어요. 힘들고 무서울 때, 숨을 곳이 필요하면 이 지하실로 오라고.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요. 그래서… 문득 생각나서 찾아왔는데, 정말 있었네요.”

    하루의 눈빛에 씁쓸함과 동시에 아련한 그리움이 스쳤다. 지아는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이 황량한 세계에서 ‘어렸을 때 살았던 집’이라는 이야기는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를 잊거나,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었다.

    **지아**
    “그래서… 그 나무는.”

    **하루**
    “아, 맞다! 그 나무! 할머니가 제가 태어나던 해에 기념으로 심었다고 하셨거든요. 꼭 찾고 싶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저희 이 지하실에서 하룻밤 묵어가죠? 그리고 내일 아침에 저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물도 찾아드릴게요. 분명 이 근처 어딘가에… 저만의 비밀 급수처가 있을 거예요!”

    하루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지아에게 애원하듯 말했다. 지아는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봤다. 며칠째 식량도, 제대로 된 물도 찾지 못했다. 그의 ‘비밀 급수처’라는 말에 혹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저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에게 내일을 맡기는 것이 옳은 일인지 의문스러웠다.

    **지아 (독백)**
    “이 남자는… 재앙인가, 행운인가.”

    지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지금 당장 이 지하실에서 벗어날 방법도 없었다. 밖에는 굶주린 괴수가 으르렁거리고 있을 터.

    **지아**
    “…밤새 조용히 해.”

    **하루**
    “오오! 진짜요?! 고마워요, 지아 씨! 그럼 제가 따뜻한 물이라도 끓여 드릴까요? 불 피울 건 없고,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랑 같이 비상용으로 넣어둔… 아, 아니다. 그것보다 지아 씨, 혹시 저기 있는 상자 한번 열어볼까요? 할머니가 중요한 건 여기 넣어뒀다고 하셨는데!”

    하루는 벌써부터 들뜬 목소리로 상자 쪽으로 몸을 돌렸다. 지아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른세수를 했다.

    **지아 (독백)**
    “내일이… 과연 올까?”

    낡은 지하실의 작은 불빛이 두 사람을 비췄다. 바깥 세상은 여전히 위험했지만, 이 좁고 답답한 공간에선 묘한 온기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다음 화에 계속]**

  • SF (공상과학)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애니메이션 대본 & 스토리보드: 성천무회록 – 천공의 맹약

    **장르:** SF, 무협 (SF 무협)
    **핵심 줄거리:**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고수들의 무술 대회

    **SCENE 1**

    **INT. 천공 아레나 – VIP 관람석 – 낮**

    **[화면 설명]**
    수만 명의 관중이 운집한 거대한 천공 아레나의 VIP 관람석. 돔 형태로 된 투명한 강화 유리 너머로 아득히 펼쳐진 푸른 창공이 보인다. 아레나 중앙에는 육각형 형태의 무대가 떠 있고, 주변은 영롱한 에너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대 위에는 아직 아무도 없다. 관중들은 기대감에 들떠 웅성거린다.

    가장 좋은 자리에, 얼음처럼 차가운 인상의 **설아(SEOL-AH)**가 앉아 있다. 그녀의 새하얀 도복 자락이 미세한 진동에 따라 우아하게 흔들린다. 그녀의 눈은 무대를 응시하고 있지만, 그 시선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듯하다. 곁에는 무뚝뚝한 표정의 시종이 서 있다.

    **설아**
    (나지막이)
    이번 대회의 ‘공명 균열’ 지표는… 역대 최악이다. 천공의 맹약은 정말로 한계에 다다른 건가.

    **시종**
    소저, 아직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성천무회’는 언제나 예상을 뒤엎는 힘을 찾아냈으니까요.

    설아는 대답 없이 고개를 젓는다. 그녀의 시선은 관중석의 번잡함 대신 무대 너머의 아득한 지평선, 그 너머에 드리워진 어두운 기운을 향한다.

    **[오디오]**
    웅성거리는 관중 소리, 나지막한 전자음.

    **SCENE 2**

    **INT. 천공 아레나 – 경기장 입구 통로 – 낮**

    **[화면 설명]**
    경기장 입구의 어두운 통로. 고요한 긴장감이 감돈다.
    등 뒤에 커다란 목검을 멘 **류진(RYU JIN)**이 서 있다. 그의 도복은 낡고 소박하며, 다른 참가자들의 화려한 ‘기력 강화 의복’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주변의 으리으리한 장식과 최첨단 장비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두리번거린다.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순진하고 어리숙한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그의 옆을 지나가던 다른 참가자들이 류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비웃는 듯한 시선을 보낸다.

    **참가자 A**
    저게 이번 대회 참가자라고? 길 잃은 어린애가 아니었고?

    **참가자 B**
    (비웃듯)
    하긴, ‘성천무회’ 규정상 모든 ‘영맥 등록자’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 무슨 저런… 변두리 출신 냄새가 물씬 풍기는 애송이가.

    류진은 그들의 수군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주변을 신기한 듯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맑고 평온하다.

    **[오디오]**
    참가자들의 비웃는 듯한 속삭임. 멀리서 들려오는 경기장의 환호성.

    **SCENE 3**

    **INT. 천공 아레나 – 중계석 – 낮**

    **[화면 설명]**
    경기장 중앙 무대 위, 홀로그램으로 구현된 ‘성천무회’ 로고가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중계석에는 활기 넘치는 캐스터 **박(캐스터 박)**과 냉철한 해설가 **진(해설 진)**이 앉아 있다.

    **캐스터 박**
    자, 여러분! 드디어 대망의 ‘성천무회’! 천하의 운명을 걸고 펼쳐지는 무림의 향연! 그 웅장한 막이 오릅니다! 저는 캐스터 박입니다!

    **해설 진**
    안녕하십니까, 해설 진입니다. ‘성천무회’는 단순한 무술 대회가 아닙니다. ‘공명 붕괴’의 위협으로부터 천하를 수호할 ‘천명수호자’를 가리는 신성한 의식이죠. 오늘 우리는 그 첫걸음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캐스터 박**
    맞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경기! 강력한 우승 후보! ‘적운검’ 아란 선수와… 네? 저기… 류진 선수군요!

    **[화면 전환]**
    아란의 멋진 프로필 영상이 홀로그램으로 떠오른다. 그녀는 날렵한 검술로 에너지를 베어 가르는 모습이다. 이어서 류진의 프로필은… 텅 빈 화면에 이름만 덩그러니 떠 있고, 구석에 작고 흐릿한 이미지 파일 하나만 보인다.

    **해설 진**
    ‘적운검’ 아란 선수! 명문 ‘화랑검문’의 직계 계승자로, ‘적운류 검법’의 계승자입니다. 그녀의 검기(劍氣)는 구름처럼 변화무쌍하며, 그 파괴력은 일찍이 ‘기류 측정기’를 넘어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류진 선수…는… 음…

    **캐스터 박**
    (당황하며)
    네, 해설 진님, 류진 선수는… ‘영맥 등록’ 기록 외에는 특이사항이 없네요! 어딘가… 잊힌 변방의 ‘영맥’ 계승자로만 등록되어 있습니다!

    **해설 진**
    이런 경우는 드뭅니다. ‘성천무회’는 철저한 사전 검증을 통해 참가자를 선별하는데, 류진 선수의 데이터는… 거의 백지에 가깝군요. 혹시…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것일까요?

    **캐스터 박**
    아무튼! 이 극적인 대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선수 입장!

    **SCENE 4**

    **INT. 천공 아레나 – 무대 위 – 낮**

    **[화면 설명]**
    경기장 무대 위로 한쪽에서는 **아란(ARAN)**이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그녀는 붉은색 검복을 입고 있으며, 허리에는 반투명한 에너지 블레이드가 매달려 있다. 그녀의 등 뒤에는 거대한 ‘기류 에너지 망토’가 바람에 펄럭인다. 그녀는 관중들의 환호에 가볍게 손을 흔든다.

    다른 한쪽에서는 **류진**이 목검을 멘 채 어색하게 발을 옮긴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순진하고, 오히려 긴장감보다는 신기함이 가득하다. 그는 아란의 화려한 등장과 관중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아란은 류진을 한심하다는 듯 힐끗 본다.

    **아란**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네가 이번 내 상대로군. 운이 없었구나, 애송이.

    류진은 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심판 (HOLOGRAPHIC VOICE)**
    양 선수, 정중앙에 위치하십시오!

    **[화면 전환]**
    아란과 류진이 무대 중앙에 선다. 심판의 홀로그램이 공중에 떠오른다.

    **심판 (HOLOGRAPHIC VOICE)**
    자, 성천무회 제1경기! ‘적운검’ 아란 대 ‘무명’ 류진! 시작!

    심판의 선언과 동시에, 무대의 에너지 장벽이 푸른색으로 빛난다.

    **[오디오]**
    심판의 날카로운 선언. 관중들의 함성.

    **SCENE 5**

    **INT. 천공 아레나 – 무대 위 – 낮**

    **[화면 설명]**
    경기 시작과 동시에, **아란**은 허리춤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뽑아 든다. 블레이드는 붉은색 에너지를 뿜어내며 웅웅거리는 소리를 낸다. 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류진에게 돌진한다.

    **아란**
    (섬뜩하게)
    이것이 ‘화랑검문’의 힘이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자, 붉은색 에너지의 검기가 폭풍처럼 류진을 향해 날아간다. ‘적운류 검법’의 첫 번째 기술인 ‘적운 쇄파(赤雲碎破)’다. 검기가 지나가는 자리의 공기가 일그러진다.

    **류진**은 여전히 목검을 멘 채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날아오는 검기를 멍하니 바라보는 듯하다.
    관중들이 경악한다. 중계석의 해설 진도 미간을 찌푸린다.

    **해설 진**
    이건… 너무 무모한데요! 첫 공격부터 ‘적운 쇄파’라니! 류진 선수,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류진은 피하지 않는다.
    아란의 붉은 검기가 류진에게 닿기 직전,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빛난다.
    그의 몸에서 미세한 푸른색 에너지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오른손을 뻗어 마치 공기 중의 거대한 실타래를 잡듯이 아란의 검기를 쥐는 듯한 동작을 취한다.

    **[화면 효과]**
    류진의 손이 닿는 순간, 붉은색 검기가 갑자기 흔들리며 형태가 일그러진다. 마치 살아있는 에너지를 움켜쥐어 방향을 바꾸는 것처럼.

    류진은 잡은 검기를 빙글 돌려 아란이 서 있던 발밑으로 내리찍는다.
    콰앙!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아란의 발밑에서 폭발하며, 무대의 일부가 부서진다. 아란은 간신히 몸을 피하며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란**
    (경악)
    말도 안 돼… 내 검기를… 조종했다고?

    **캐스터 박**
    어어어? 지금 뭔가요?! 아란 선수의 ‘적운 쇄파’가… 류진 선수의 손짓 한 번에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이럴 수가!

    **해설 진**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저것은… 단순한 기류의 흐름을 읽는 것을 넘어선 경지입니다. 상대방의 기류에 간섭하여 그 흐름을 제어하는… ‘역류 조작’인가요?! 하지만 저렇게 완벽하게?!

    **[화면 전환]**
    VIP 관람석의 설아가 눈을 가늘게 뜬다. 그녀의 표정에 처음으로 흥미가 서린다.

    **설아**
    ‘역류 조작’… 고서에서나 보던 기술인데. 저 정도 수준이라면…

    **SCENE 6**

    **INT. 천공 아레나 – 무대 위 – 낮**

    **[화면 설명]**
    당황한 **아란**은 다시 자세를 잡고 류진을 노려본다. 그녀의 눈에 오만함 대신 살짝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아란**
    (이를 악물고)
    건방진! 어디서 감히! ‘적운 뇌전각(赤雲雷電脚)’!

    아란이 발을 구르자, 그녀의 다리에서 붉은색 전기가 튀기며 무대를 가로질러 류진에게 순식간에 다가간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속도다. 그녀는 무릎으로 류진의 복부를 찍어 누르려 한다.

    **류진**은 이번에도 가만히 서 있다. 아란의 무릎이 닿기 직전, 그의 몸에서 푸른색 에너지가 번쩍이며, 그의 몸이 마치 액체처럼 흘러 아란의 공격을 미끄러지듯 흘려보낸다.
    아란의 무릎이 류진의 몸을 통과하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난다.

    **[화면 효과]**
    류진의 몸이 일렁이며 아란의 공격을 흡수하거나 우회하는 듯한 특수 효과. 마치 파도가 바위를 감싸듯.

    아란은 자신의 공격이 허공을 가르자 균형을 잃고 휘청거린다.
    류진은 부드럽게 몸을 돌려, 아란의 등 뒤로 이동한다. 여전히 목검은 등에 맨 채다.

    **캐스터 박**
    또! 또 피했습니다! 아니, 이건 피했다고 하기엔 너무 신기한데요?! 마치 류진 선수가 공격 자체와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해설 진**
    이것은… ‘영맥 진동 동화’! 상대방의 기류 진동에 자신의 영맥을 완벽히 동기화시켜, 공격을 흘려보내는 초월적인 방어 기술입니다! 저렇게 완벽한 동화는 저도 살면서 처음 봅니다! 저 선수는 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화면 전환]**
    VIP 관람석의 설아는 팔짱을 끼고 류진을 응시한다.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빛이 서려 있다.

    **설아**
    ‘영맥 진동 동화’… 저 기술은… ‘고대 문명’ 시절, ‘대공명 시대’의 전설적인 무공에 언급되어 있던 것인데… 설마 그 후예인가?

    **SCENE 7**

    **INT. 천공 아레나 – 무대 위 – 낮**

    **[화면 설명]**
    **아란**은 분노와 당혹감에 휩싸인다. 그녀는 다시 류진에게 몸을 돌리며 외친다.

    **아란**
    (악에 받쳐)
    이 자식이…! 감히 나를 농락해?! ‘적운 발화(赤雲發火)’!

    아란의 몸에서 붉은색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며 무대 전체를 뒤덮는다. 주변의 기류가 격렬하게 요동친다. 그녀의 에너지 블레이드가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 이것은 ‘화랑검문’의 최종 비기 중 하나다.

    **해설 진**
    크아악! 아란 선수가 ‘적운 발화’를! 이것은 자신의 기류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주변 공간 자체를 파괴하는 기술입니다! 류진 선수, 위험합니다!

    류진은 이번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아란의 폭발적인 기류가 류진에게 쇄도한다.
    하지만 류진은 가만히 서서 눈을 감는다. 그의 주변에서 푸른색 에너지가 회오리치듯 솟아오른다.

    **[화면 효과]**
    아란의 붉은 에너지가 류진을 덮치지만, 류진의 몸 주변에서 피어난 푸른 회오리가 붉은 에너지를 감싸고 돌며 서서히 색을 바꾸기 시작한다. 붉은색과 푸른색이 뒤섞이며 보라색으로 변하고, 이내 푸른색이 우세해진다. 마치 붉은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처럼.

    **캐스터 박**
    말도 안 돼! 류진 선수가 아란 선수의 ‘적운 발화’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아니, ‘전환’하고 있습니다!

    **해설 진**
    (경악에 목소리가 떨리며)
    저것은… ‘영맥 변환’! 상대방의 기류를 자신의 영맥으로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전설 속의 기술입니다! 이것은 이미 ‘성천무회’의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저 젊은이는 대체… 무엇입니까?!

    **[화면 전환]**
    아란은 자신의 에너지가 사라지고 오히려 류진의 푸른 에너지가 자신을 역으로 덮쳐오자,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짓는다. 그녀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으며, 에너지 블레이드를 놓친다.

    **아란**
    (절규)
    말도 안 돼… 이건… 있을 수 없어…!

    류진은 천천히 눈을 뜬다. 그의 눈동자는 방금 흡수하고 변환한 아란의 붉은 기류 때문에 잠시 붉게 빛나는 듯하다.
    그는 등에 멘 목검을 뽑아 든다. 목검은 아무런 에너지도 방출하지 않는 평범한 나무 조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 목검을 아란의 미간에 살며시 갖다 댄다.

    **류진**
    (아란의 눈을 보며 나지막이, 하지만 단호하게)
    당신은… 천하의 흐름을 방해하고 있어. 그만.

    류진의 말과 함께, 그의 목검 끝에서 미세한 푸른색 에너지가 뿜어져 나와 아란의 이마에 닿는다.
    아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모든 에너지가 일순간에 사라지고, 그녀는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심판 (HOLOGRAPHIC VOICE)**
    경기 종료! 승자, 류진!

    **[오디오]**
    경기 종료 선언.
    수만 명의 관중들이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가, 이내 폭발적인 환호와 혼란스러운 웅성거림으로 뒤섞인다.
    환호는 류진을 향한 경외감, 웅성거림은 그의 정체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하다.

    **SCENE 8**

    **INT. 천공 아레나 – VIP 관람석 – 낮**

    **[화면 설명]**
    **설아**는 멍하니 무대를 바라본다. 그녀의 얼음 같던 표정에 균열이 생긴다. 놀라움, 경외심, 그리고 어딘가 깊은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한 표정이다.

    **설아**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영맥 변환’… 그리고 ‘천하의 흐름’… 그 말은…

    그녀의 시선은 류진에게 고정된다. 류진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아란이 쓰러진 곳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표정은 다시 순진한 소년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시종**
    소저… 저자는… 대체…

    설아는 시종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난다.

    **설아**
    (결심한 듯)
    그를 조사해. 그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의 ‘영맥’에 대해. 저 힘은… ‘공명 붕괴’를 막을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공명 붕괴’의 원인일지도.

    **[화면 전환]**
    무대 위, 수많은 환호 속에서 홀로 고요한 류진의 모습. 그의 등에 매인 낡은 목검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의 순진한 얼굴 아래,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오디오]**
    관중들의 혼란스러운 함성.
    웅장하면서도 미스터리한 분위기의 배경 음악이 흐르며, 다음 대결에 대한 기대감과 류진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고조된다.

    **FADE OUT.**

  • 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팔각정의 검은 그림자, 매화의 투정

    “아, 망할. 진짜 망했네!”

    매화는 육포를 오물거리다 말고 번개처럼 몸을 일으켰다.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기암절벽, 그 끝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그 소나무 가지 위, 세상 편한 자세로 대자로 뻗어 잠들어 있던 그녀였다. 쨍한 햇살이 눈을 찔렀지만, 더 눈을 찌르는 것은 머리 위로 솟아오른 태양의 위치였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누가 봐도 ‘오후’였다.

    “아악! 오늘이 예선 등록 마감일이잖아!”

    어제 밤새 술잔치를 벌이며 제자들이랍시고 데려온 덩치 큰 사내들 셋과 함께 허풍을 떨다가 그만 과음한 탓이었다. 매화문은 작고 볼품없는 문파였지만, 기개만큼은 천하제일이라고 자부하는 그녀였다. 문제는, 그 기개가 종종 망각이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 무릎 꿇는다는 점이었다.

    그녀의 발밑으로는 아찔한 절벽 아래로 운해가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며칠 전부터 사부님이 귓등에 딱지가 앉도록 강조했던 ‘천하제일 무림대회’ 예선 등록. 우승자에게는 무림맹주의 지위와 함께 천하의 운명을 좌우할 절대무공 비급의 열람 권한이 주어지는, 그야말로 무림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행사였다. 비록 매화문 같은 듣보잡 문파에는 그림의 떡이라 여겨졌지만, 사부님은 “이번 기회에 우리 매화문의 이름을 천하에 떨쳐야 한다!”며 비장하게 소리치셨다.

    물론, 비장의 각오를 한 매화는 지금 이 순간, 지각으로 대회장 문턱도 못 밟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부님, 제발 저를 용서하세요…!”

    급하게 몸을 던져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공중에 몸을 던지는 아찔한 광경이었지만, 매화의 얼굴에는 일말의 불안감도 없었다. 아니, 불안할 틈도 없었다. 떨어지는 와중에도 등에 짊어진 보따리 속에서 간밤에 남은 육포 조각을 찾아 입에 밀어 넣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녀의 몸은 절벽을 따라 솟아난 삐죽한 돌출부와 나무줄기를 딛고 번개처럼 내려갔다. 마치 발이 땅에 닿은 듯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매화문의 경공술 ‘낙매비천’ (落梅飛天)은 그 어떤 문파의 경공술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의 기술이었다. 비록 매화문이 소규모 문파라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수백 미터 아래, 숲이 우거진 평지에 도착한 매화는 망설임 없이 발길을 돌렸다. 대회장은 삼백 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금부터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도 마감 시간인 해시(亥時) 직전이나 겨우 도착할까 말까 한 거리였다.

    “젠장, 젠장, 젠장!”

    육포 조각이 어느새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매화는 입맛을 쩝 다시며 다시 보따리를 뒤졌다. 어제 남겨놓은 주먹밥이 있었던가. 주먹밥… 주먹밥! 없다!

    “세상에, 내 주먹밥 어디 갔어?! 흑룡방 놈들이 다 처먹었나!”

    지각보다 더 심각한 사태에 매화는 비명을 질렀다. 그녀에게 있어서 끼니를 거르는 것은 무림의 존폐 문제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그녀는 다시 경공술을 전개했다. 이번엔 평소보다 배는 빠르게, 그야말로 발에 불이 붙은 듯 달렸다. 스쳐 지나가는 숲과 들판이 한 폭의 그림처럼 번개같이 사라졌다.

    * * *

    천하제일 무림대회는 황제가 직접 하사한 ‘용성각(龍星閣)’에서 개최되었다. 용성각은 무림맹의 본거지이기도 했으며, 평소에는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는 성지였다. 하지만 대회 기간 동안에는 예외였다. 오늘따라 용성각 앞마당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각 문파의 기라성 같은 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는 문파원들, 그리고 이 역사적인 순간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모인 강호의 방랑객들까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었다.

    번화한 길거리에는 온갖 주전부리 장수들이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손님을 끌고 있었다. “따끈따끈한 호빵이오! 무림 고수도 반한 그 맛!” “시원한 식혜 한 사발! 갈증 해소에 최고!”

    하지만 이 모든 활기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용성각 입구에 길게 늘어선 줄은 사뭇 진지한 기운을 풍겼다. 대회 예선 등록을 위한 줄이었다. 각 문파의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이며, 그들의 위용을 과시했다. 소림, 무당, 화산, 개방… 이름만 들어도 무릎이 절로 꿇리는 정파의 거두들부터, 강호의 뒷골목을 주름잡는 사파의 맹주들까지. 수많은 고수들이 저마다의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천검문(天劍門)’의 줄이었다. 그들은 모두 새하얀 도포를 입고 있었으며, 등에 짊어진 검집에서는 서늘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감히 그 누구도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줄의 맨 앞에는, 마치 태산처럼 우뚝 서 있는 한 사내가 있었다.

    ‘천검무제(天劍武帝)’라 불리는 천무(天武)였다.

    수려한 용모는 차가운 칼날 같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은 마치 검은 심연을 품고 있는 듯했다. 그의 온몸에서는 절제된 강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그것만으로도 주변의 모든 잡음이 사라지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는 인물이었다.

    “천무님께서 드디어 등록하시는군!”
    “역시 천검문의 후계자다운 위용이십니다.”
    “저 강기!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군!”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천무의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그의 시선은 오직 용성각의 문을 향해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비켜! 비키라고! 살려줘요, 이대로 가다간 굶어 죽어! 아니, 등록 못 해 죽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요란한 비명 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한곳으로 향했다.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한 작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이고, 옷차림은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등에 짊어진 보따리는 이리저리 덜렁거렸고, 그 속에서 알 수 없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매화였다.

    그녀는 마치 쏜살같이 날아든 화살처럼 등록 줄을 뚫고 쇄도했다. 앞서가던 문파원들은 혼비백산하며 비명을 질렀다. “저건 또 뭐야!” “미친 여자 아니야?!”

    “죄송합니다! 제가 좀 급해서요!” 매화는 외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오직 등록대만을 향해 있었다. “이대로 가면 우리 매화문의 명예가… 아니, 내 목숨이 위태로워!”

    결국, 그녀는 가장 먼저 등록대 앞에 서 있던 천무의 등 뒤에 ‘쿵’ 하고 부딪혔다.

    “으악!”

    매화는 그대로 나뒹굴 뻔했지만, 천무의 등은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굳건했다. 그 충격에도 불구하고 천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매화를 응시했다.

    차가운 시선, 무표정한 얼굴. 거기에는 불쾌함도,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음 같은 시선만이 매화를 꿰뚫었다.

    매화는 그제야 자신이 거대한 사고를 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하얀 도포 위에 선명하게 찍힌 자신의 흙먼지 묻은 손자국이었다. 그리고 그 손자국 바로 아래에는 천검문의 문양, 즉 거대한 검 한 자루가 수놓아져 있었다.

    “어… 저기… 죄송합니다…”

    매화는 급하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했다. “제가 너무 급해서 그만… 손이… 발이… 아니, 정신이 없어서…”

    천무는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그 침묵은 주변의 소음마저 삼켜버릴 듯한 압도적인 침묵이었다. 마치 시퍼런 검날이 목에 닿은 듯한 위압감에 매화는 침만 꿀꺽 삼켰다.

    그때, 천검문의 제자로 보이는 한 사내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이 천한 것! 감히 천검무제께 무례를 범하다니! 당장 무릎 꿇고 사죄하지 못할까!”

    천검문의 제자는 손을 들어 매화의 멱살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손이 매화에게 닿기도 전, 천무가 손짓으로 제자를 제지했다.

    “그만.”

    짧고 단호한 한마디였다. 제자는 놀란 듯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천무는 다시 매화를 돌아보았다.

    “급한가 보군.”

    무표정한 얼굴에서 툭 던져진 말이었다. 매화는 고개를 더 숙였다.

    “네… 네! 예선 등록이 마감 시간 직전이라… 제가 정말, 정말 급해서 그랬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천무는 매화의 산발이 된 머리와 흙먼지투성이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잠시,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짧은 순간이어서, 매화는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들어가라.”

    그는 등록대 쪽으로 턱짓을 했다. 뜻밖의 반응에 매화는 얼떨떨했다.

    “네? 저… 저보고 먼저 들어가라는 말씀이십니까?”

    천무는 아무 말 없이 매화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내가 농담하는 것 같으냐?’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매화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번개처럼 등록대로 달려갔다. “저… 저 매화문(梅花門) 매화(梅花)입니다! 등록해 주세요!”

    등록을 담당하던 무림맹원은 매화의 꼴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지만, 천무가 자신보다 먼저 양보했다는 사실에 놀라 얼른 등록 서류를 내밀었다. 매화는 손이 떨리는 와중에도 서둘러 이름을 쓰고 도장을 찍었다. 해시까지는 아직 한 시진(兩時間) 정도 남았지만, 이미 마음속에서는 마감 시간이 임박한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휴우… 살았다!”

    가까스로 등록을 마친 매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덕분에 늦지 않았군.”

    천무였다. 그가 매화의 등 뒤에 서 있었다. 매화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천무는 이미 자신의 등록을 마치고 돌아보는 길이었다.

    “네? 아, 아닙니다! 제가 폐를 끼쳤는데 무슨 그런 말씀을…”

    “첫 번째 경기에서 만나면 봐주지 않겠다.”

    천무의 차가운 눈빛이 매화를 향했다.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매화는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에는 ‘절대 지존’의 자리를 향한 강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하하… 당연하죠! 저도 봐주지 않을 겁니다!”

    매화는 애써 웃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젠장, 저런 괴물과 붙으면 뼈도 못 추릴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얼른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천무는 여전히 매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매화의 보따리로 향했다.

    “무엇이 들었기에 그리 급했나.”

    매화는 순간 당황했다. 그녀의 보따리에는 주먹밥도, 육포도 없었다. 아까 육포는 이미 다 먹어버렸고, 주먹밥은 흑룡방 놈들이 훔쳐 먹은 게 분명했다. 대신 그녀의 보따리 속에는…

    “아, 이건… 제 비장의 무기입니다!”

    매화는 얼른 보따리를 등 뒤로 감췄다. 사실 비장의 무기랍시고 들고 다닌 것은, 사부님이 직접 담그신 ‘매화주’였다. 매화주만 있다면 어떤 고수든 이길 수 있다고 사부님은 늘 말씀하셨지만, 그 ‘이긴다’는 의미가 물리적인 승리를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취해서 정신을 잃는다는 것인지 매화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비장의 무기라.”

    천무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재미있다는 듯한 미묘한 변화였다.

    “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음번에 만나게 되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매화는 자신도 모르게 허세를 부렸다. 천무는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그의 입가에 다시 한번 희미한 미소가 스치는 듯했다.

    “기대하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돌아서서 유유히 사라졌다.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그의 걸음걸이는 군더더기 없이 우아했다.

    매화는 그가 사라지는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거렸다. 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망했어! 첫 경기에서 저런 괴물을 만나면 어떡하지?!”

    그녀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어쩐지 오늘 하루가 험난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게다가 너무 배고파… 어제 그놈들 육포를 왜 다 뺏어 먹었지?”

    배고픔과 함께 천무의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이번 대회, 매화문의 명예는 고사하고, 자기 목숨이나 부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알 수 없는 기대감 같은 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지루한 무림 생활에 드디어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이었다.

    (1장 끝)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아르카나 마법 학원: 숨겨진 속삭임과 첫 번째 균열

    ## 에피소드 1: 깊은 곳의 속삭임

    **장면 1: 아르카나 마법 학원 – 교정** – 오전

    **샷 1:** 광활한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전경을 비춘다.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이 푸른 하늘 아래 솟아 있고, 마법으로 가꾸어진 정원에는 형형색색의 마법 꽃들이 만개해 있다. 그 위로 작은 요정들이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며 날아다닌다. 따스한 햇살이 교정을 비추고, 학생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내레이션 (시아 – 부드러운 목소리):**
    아르카나 마법 학원. 이곳은 꿈과 희망이 피어나는 곳.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이 선망하는, 지상에서 가장 빛나는 배움의 터전이다. 나 시아에게도 그랬다.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교정은 언제나 나를 안아주는 포근한 품과 같았으니까.

    **샷 2:** 교정 벤치에 앉아 마법 서적을 읽고 있는 시아의 모습. 그녀는 평범한 교복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서 작은 빛을 발하는 듯하다. 책에 집중하던 시아의 눈이 문득 창문 밖으로 향한다.

    **시아 (내레이션):**
    적어도, 그날 아침까진 그랬다.

    **샷 3:** 시아의 시선이 향하는 곳. 오래된 석탑 건물 한 귀퉁이,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작은 문이 살짝 비친다. 문에는 낡은 자물쇠가 걸려있고, 주변은 왠지 모르게 어둡고 음침하다. 학생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인 듯, 주위에 아무도 없다.

    **(지문 – 시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희미하게 들려오는, 마치 울림과 같은 낮은 소리가 시아의 귀에만 들리는 듯하다. 화면에 미세한 파동 효과가 나타났다 사라진다.)**

    **시아 (혼잣말):**
    …방금… 무슨 소리였지?

    **샷 4:** 유나가 활기찬 발걸음으로 시아에게 다가온다. 유나의 주위에는 작은 바람 요정이 맴돌며 그녀의 머리카락을 살랑거린다.

    **유나:**
    시아! 여기서 뭐 해? 벌써 3교시 시작할 시간 다 됐어!

    **샷 5:** 유나의 등장에 시아가 화들짝 놀라며 책을 덮는다.

    **시아:**
    어, 유나! 미안, 잠깐 딴생각을… 너는 벌써 와 있었네.

    **유나:**
    응! 오늘 실전 마법 수업, 비행 마법 실습인 거 알지? 내가 얼마나 연습했는지 보여줄게! 분명 에이스는 나일 거야! (어깨를 으쓱하며)

    **샷 6:** 유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시아가 피식 웃는다.

    **시아:**
    그래, 유나는 언제나 에이스였지. 나는 그냥 낙오하지 않기만 해도 성공일 텐데.

    **유나:**
    에이, 무슨 소리야! 시아도 충분히 잘하잖아. (시아의 팔을 잡아끌며) 빨리 가자! 안 그러면 레오나르도 교장 선생님께 또 혼난다?

    **(지문 – 유나에게 이끌려 시아는 석탑 건물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 여전히 그곳에서는 희미한 울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시아의 눈빛에 복잡한 감정이 스친다.)**

    **시아 (내레이션):**
    평소라면 유나의 활기찬 에너지에 금세 나도 들떴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도, 그 오래된 문에서 들려오던 묘한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마치… 누군가가 깊은 곳에서 나를 부르는 것처럼.

    **장면 2: 아르카나 마법 학원 – 마법 비행 실습장** – 오전

    **샷 7:** 드넓은 잔디밭 위, 수십 명의 학생들이 각자의 빗자루를 들고 서 있다. 상공에는 이미 몇몇 학생들이 능숙하게 날아다니고 있다. 교장 레오나르도가 단상에 서서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표정은 엄격하지만, 어딘가 인자한 느낌도 준다.

    **교장 레오나르도:**
    자, 학생 여러분! 오늘은 비행 마법 실전의 날입니다! 바람과 하나 되어, 여러분의 잠재력을 마음껏 펼치십시오! 단, 절대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유의하십시오! 특히, 학원 북쪽의 ‘금지된 숲’과 ‘고대 연구동’ 쪽으로는 접근을 엄금합니다! 명심하십시오!

    **샷 8:** 레오나르도 교장의 경고에 학생들이 일제히 “네!” 하고 대답한다. 시아와 유나도 빗자루 옆에 서서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유나는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이고, 시아는 약간 긴장한 듯 보인다.

    **유나:**
    우와! 드디어 내 실력을 뽐낼 시간이야! 시아, 너도 파이팅!

    **시아:**
    으응… (빗자루를 꼭 쥔다)

    **샷 9:** 학생들이 차례로 빗자루에 올라탄다. 유나는 가볍게 공중으로 떠올라 우아하게 선회한다. 그녀의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린다.

    **유나:**
    하하! 이 정도는 기본이지!

    **샷 10:** 시아도 빗자루에 올라타 주문을 외운다. 그녀의 빗자루가 불안하게 흔들리며 겨우 몇 미터 위로 떠오른다. 다른 학생들은 이미 저만치 앞서 날아가고 있다.

    **(지문 – 시아의 얼굴에 살짝 당황한 기색이 스친다. 바람이 그녀의 몸을 휘청이게 만든다.)**

    **시아 (혼잣말):**
    젠장, 오늘도 영 감이 안 잡히네…

    **샷 11:** 시아가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동안, 그녀의 시야 한쪽 끝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작은 빛을 내는 나비 요정이다. 일반적인 요정들과는 다른, 창백하고 투명한 날개를 가진 요정이다. 요정은 마치 시아를 이끄는 것처럼, 금지된 숲 쪽으로 향하는 듯하다.

    **시아:**
    어? 저건…

    **샷 12:** 시아는 무심코 요정을 쫓아간다. 그녀의 빗자루는 불안정하게 요동치며, 점점 교장이 경고한 금지 구역의 경계에 가까워진다. 유나는 이미 멀리 날아가 다른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다.

    **(지문 – 요정이 금지된 숲의 가장자리에 있는, 덩굴로 뒤덮인 낡은 석벽 틈새로 사라진다. 시아는 무의식적으로 그 틈새를 향해 날아간다.)**

    **시아 (내레이션):**
    분명 교장 선생님의 경고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그 순간 내 눈은 오직 그 희미한 빛에 홀려 있었다. 마치 그 빛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홀린 듯이 말이다.

    **장면 3: 아르카나 마법 학원 – 금지된 숲 입구** – 오전

    **샷 13:** 시아가 도착한 곳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난, 좁고 어두운 길목이다. 넝쿨과 이끼가 잔뜩 낀 낡은 석벽이 길게 늘어서 있고, 그 사이사이에 작은 문이나 틈새가 보인다. 방금 사라졌던 요정은 보이지 않는다.

    **(지문 – 갑자기 빗자루가 고장 난 듯 아래로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시아가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는다.)**

    **시아:**
    꺄악! 이, 이게 뭐야?!

    **샷 14:** 시아가 가까스로 나무에 부딪히지 않고 땅에 착지하지만, 빗자루는 산산조각 난다. 시아는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아 빗자루 파편을 망연히 바라본다.

    **시아:**
    내 빗자루…! 어떡해… 망했어… 교장 선생님께 혼나겠지?

    **(지문 – 그 순간, 아까 그 석탑 건물에서 들려왔던 것과 비슷한, 낮고 묘한 울림이 땅속에서부터 진동하며 올라오는 것을 시아가 느낀다. 진동은 점점 강해지고, 주변의 이끼 낀 돌들이 미세하게 흔들린다. 시아는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핀다.)**

    **시아 (혼잣말):**
    또 이 소리… 아까 그 소리랑 똑같아…

    **샷 15:** 시아의 시선이 한곳에 꽂힌다. 넝쿨에 덮여 거의 보이지 않던, 오래된 철문이 진동과 함께 아주 미세하게 열리는 것을 본다. 문틈 사이로 어둠과 함께 묘한 푸른빛이 새어 나온다.

    **(지문 – 시아는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조심스럽게 철문에 다가간다. 문틈으로 스며 나오는 푸른빛은 흡사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린다.)**

    **시아 (내레이션):**
    금지된 곳.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 본능적으로 외치는 경고를 무시하고, 내 발은 홀린 듯 그 빛을 향해 움직였다. 마치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처럼…

    **샷 16:** 시아가 철문에 손을 대자, 문이 스르륵 열린다. 안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 나온다. 문 너머는 길고 어두운 통로였다. 푸른빛은 통로 안쪽 깊숙한 곳에서 새어 나오는 듯하다.

    **(지문 – 시아가 망설이다가,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문이 ‘끼이익’ 소리를 내며 다시 닫힌다. 시아는 완전히 어둠 속에 갇힌다. 그녀의 표정은 공포와 불안, 그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감으로 뒤섞여 있다.)**

    **시아 (내레이션):**
    그곳은 분명 내가 아는 아르카나 학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햇살이 가득하고 요정들이 춤추는 교정의 아름다움과는 전혀 다른, 깊고 차가운 침묵이 지배하는 곳.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듣고 말았다. 무언가가 흐느끼는 듯한, 혹은 고통받는 듯한… 희미하지만 분명한 속삭임을.

    **장면 4: 아르카나 마법 학원 – 지하 통로** – 낮

    **샷 17:** 어둠 속. 시아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휴대용 마법 등불을 꺼내 빛을 밝힌다. 좁고 습한 돌 통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벽에는 오래된 마법 문양들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지만, 오랜 세월로 마모되어 의미를 알 수 없다.

    **시아:**
    (작은 목소리로) 대체… 여긴 어디지? 학원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나?

    **(지문 – 벽에 새겨진 마법 문양들이 시아의 등불 빛에 닿자, 순간적으로 푸른색으로 섬광처럼 빛났다 사라진다. 시아가 깜짝 놀라 주춤거린다.)**

    **시아 (혼잣말):**
    이 문양… 어딘가 익숙한데…

    **샷 18:** 시아가 통로를 따라 걷는 동안, 지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점점 선명해진다. 그것은 마치 수많은 영혼이 동시에 내는 낮은 신음소리 같기도 하고, 거대한 무엇인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한 진동 같기도 하다. 시아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한다.

    **시아 (내레이션):**
    심장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이 끔찍한 소리의 근원을 확인하고 싶은 충동이 나를 지배했다.

    **샷 19:** 통로의 끝에 거대한 철문이 나타난다. 문은 낡았지만, 그 크기만으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다. 문 중앙에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동시에 불길한 느낌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다. 문틈 사이로 아까 봤던 푸른빛이 강하게 새어 나오고 있다.

    **(지문 – 시아가 문에 다가간다. 문에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이 시아의 얼굴을 비춘다. 그녀의 눈에 비친 빛은 슬픔과 고통으로 가득 찬 듯하다. 시아는 손을 뻗어 문에 새겨진 마법진을 만진다.)**

    **시아:**
    이 마법진… 이건… 봉인 마법진이잖아?

    **(지문 – 시아의 손이 마법진에 닿는 순간, 마법진 전체가 밝은 푸른빛으로 섬광처럼 빛난다. 동시에 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신음소리가 갑자기 거세진다. 마치 봉인이 일시적으로 약해진 듯, 혹은 봉인된 존재가 시아의 접촉을 감지한 듯하다.)**

    **시아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
    흐읍!

    **샷 20:** 시아가 놀라 손을 떼지만, 이미 늦었다. 푸른빛은 그녀의 손을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시아의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그녀는 마치 다른 존재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처럼, 문 너머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지문 – 시아가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녀의 귓가에 수많은 목소리들이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환청이 들린다. “우리를… 구해줘…”, “자유를…”, “고통스러워…”)**

    **시아 (신음하며):**
    흐윽… 아파… 이건… 이건 너무 끔찍해…

    **샷 21:** 그때, 뒤에서 조용히 다가온 인기척이 느껴진다. 시아는 몸을 돌린다. 어둠 속에 한 남자가 서 있다. 그는 학원 교복을 입고 있지만, 어딘가 허름하고 낡은 옷차림이다. 그의 눈빛은 깊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슬픔이 담겨 있다. 그는 바로 선배인 엘리엇이다.

    **엘리엇:**
    (낮고 차분한 목소리) 결국… 이곳까지 왔군.

    **샷 22:** 엘리엇의 등장에 시아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푸른빛이 희미하게 감돌고 있다.

    **시아:**
    선배…? 여긴… 대체…

    **엘리엇:**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돼, 시아. 이곳은…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진실이 잠들어 있는 곳이야.

    **샷 23:** 엘리엇이 문 쪽을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연민과 함께 깊은 체념을 담고 있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푸른빛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꿈틀거린다.

    **시아:**
    (떨리는 목소리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이 소리… 이 고통은 뭐예요?

    **엘리엇:**
    (숨을 깊게 들이쉬며) 이곳은 아르카나 학원의… 가장 깊은 곳. 그리고 가장 어두운 비밀이 봉인된 곳이다. 이 학원의 모든 마법이… 모든 영광이… 이곳의 희생 위에서 꽃피우고 있지.

    **샷 24:** 엘리엇의 말에 시아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그녀는 다시 문을 바라본다. 문 너머에서 들려오던 고통스러운 속삭임이 더욱 크게 들리는 듯하다.

    **시아 (내레이션):**
    아르카나 학원. 빛과 희망의 상징이라 불리던 그 이름 아래, 이토록 끔찍한 어둠이 숨겨져 있었다니. 이 희미한 속삭임은 대체 무엇이며, 이 문 너머에는 어떤 금기가 잠들어 있는 걸까? 그리고 엘리엇 선배는…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내 평화로웠던 일상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균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지문 – 시아의 눈동자가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그녀의 얼굴에는 충격과 혼란, 그리고 결의가 뒤섞인 표정이 스친다. 화면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에피소드 1 끝]**

  • 메카 액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지배하는 이 행성에서, 제국은 태양 그 자체였다. 거대한 도시들은 하늘을 꿰뚫는 첨탑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그림자는 지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렸다. 평민들의 삶은 언제나 그 그림자 아래였다. 허락된 자원, 허락된 숨결. 모든 것이 제국의 자비 아래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림자가 짙어질수록, 그 틈새에서 피어나는 작은 불꽃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 민초의 반란군이었다.

    “재하, 응답하라. 목표 지점까지 3분 남았다. 제국군 정찰기는 탐지되지 않지만, 경계 태세는 유지해.”

    낡은 통신 장치를 통해 미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차분하고 정확한 그녀의 음성은, 이 망가진 세상 속에서 유일한 나침반 같았다. 내 기체 ‘바람칼’의 콕핏 안은 좁고 답답했지만,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건 비좁은 공간 탓만은 아니었다.

    “알았다, 미나. 이쪽은 이상 무. ‘사냥개’들도 준비 완료다.”

    나는 조종간을 꽉 쥐었다. 바람칼은 제국군의 최신 기체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구형 모델이었다. 십 년도 더 된 산업용 굴착기를 개조하고, 낡은 장갑판을 덧대어 겨우 전투형으로 탈바꿈시킨 녀석. 하지만 내 손끝에서 이 녀석은 어떤 제국군 기체보다도 빠르게 반응했다. 녀석의 심장이나 다름없는 구형 동력로는 쇠를 깎아내는 듯한 거친 소리를 내며 전신으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주변의 어둠 속에서는 내 소대원들의 기체들이 그림자처럼 따라붙고 있었다. ‘들개’라고 불리는 그들의 기체들 역시 바람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투박하고, 낡았지만, 그 안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을 품은 조종사들이 타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 제국의 심장을 긁어내기 위해 나섰다.

    목표는 제국군 제3수송대의 에너지 셀 보급 행렬이었다. 이 행성 중심부의 고원 지대에서 채굴된 고순도 에너지 셀은 제국군의 주력 메카들의 동력원이었다. 그 보급로를 끊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목표 확인. 이동 경로에 진입했다.”

    미나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렸다. 전방의 스크린에 희미하게 점멸하는 제국 수송대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거대한 수송 메카 세 대를 중심으로, 전투형 기체 두 대가 호위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적은 숫자였다. 그들은 우리가 이 정도로 깊숙이 침투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제국은 우리를 항상 ‘하찮은 벌레’로 취급했으니까.

    “이봐, 재하. 이건 쉬운 싸움이 될 것 같은데?”

    동료 중 한 명, ‘망치’라고 불리는 건장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기체 ‘쇠망치’는 거대한 양손 해머가 특징이었다.

    “방심하지 마, 망치. 제국은 언제나 우리 예상을 뛰어넘는 수를 둔다. 계획대로, 기습 공격에 집중한다. 수송 메카의 후미를 노려.”

    나는 냉철하게 지시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잠복해 있었다. 고원 지대의 울퉁불퉁한 바위 틈새는 완벽한 은신처가 되어주었다. 제국 수송대가 충분히 가까워지기를 기다렸다.

    때는 왔다.

    “지금이다! 전원 돌격!”

    내 외침과 함께 바람칼이 튀어나갔다. 낡은 동력로가 한계까지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스크린 너머로 제국군 호위 메카들이 뒤늦게 우리를 인지하고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바람칼의 왼팔에 달린 개조된 고속 기관포가 불을 뿜었다. ‘타타타타탕!’ 붉은 섬광이 어둠을 갈랐고, 선두에 서 있던 제국군 호위 메카의 다리 관절부에 정확히 명중했다. 금속 파편이 튀고, 불안정하게 비틀거렸다. 망치와 다른 소대원들도 각자의 무기를 들고 돌격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수송 메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반란군 놈들! 감히!”

    제국군 조종사의 격앙된 목소리가 통신망을 통해 흘러나왔다. 그들의 기체는 매끄럽고, 강력했다. 우리 기체보다 두 배는 큰 덩치에 빛나는 합금 장갑은 총알을 튕겨낼 듯했다. 하지만 우리는 숫자가 적어도 집요했다.

    나는 첫 번째 호위 메카가 비틀거리는 틈을 타 옆을 스쳐 지나가며 재빨리 수송 메카의 후미로 파고들었다. 내 목표는 수송 메카 자체였다. 바람칼의 오른팔에 장착된 굴착용 드릴이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금속을 뚫는 섬뜩한 소리가 전장을 채웠다.

    “재하, 제국군 증원 병력이 감지됐다! 예상보다 빠르다! 후방에서 세 기체가 접근 중!” 미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역시나 제국은 만만치 않았다.

    나는 드릴을 수송 메카의 약한 장갑판에 깊숙이 박아 넣었다. ‘끼이이익!’ 굉음을 내며 장갑이 찢어지고 내부의 전선들이 끊어졌다. 거대한 수송 메카가 비명을 지르듯 주춤거렸다. 에너지 셀이 들어있는 격납고에 도달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등 뒤에서 거대한 충격이 느껴졌다. ‘콰아앙!’ 바람칼이 휘청거렸다. 스크린에는 선명한 제국군의 문양이 박힌, 거대한 전투 메카의 모습이 들어왔다. 최신예 ‘제국 기사’ 모델이었다. 순식간에 나타난 증원 병력이었다.

    “하찮은 벌레 놈들. 감히 제국의 자산에 손을 대다니. 여기서 너희의 반란은 끝이다!”

    저음의, 오만함이 가득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지배했다. 그들의 기체는 은빛으로 빛나며 위압적인 아우라를 뿜어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미나, 시간 얼마나 벌 수 있지?”

    “최대한 버텨야 해! 격납고 해제까지는 적어도 2분! 동료들은 호위 메카들을 붙잡고 있지만, 제국 기사 모델은 너 혼자 감당해야 할 거야!”

    2분. 그 짧은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제국 기사는 거대한 칼날을 휘두르며 맹렬히 공격해왔다. ‘쉭!’ 바람칼은 간발의 차이로 칼날을 피했지만, 강력한 에너지가 주변 공기를 갈랐다. 오래된 장갑판이 그 충격에 미세하게 진동했다.

    “재하! 왼쪽 팔, 약점 노출!” 망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그는 이미 첫 번째 호위 메카를 박살 내고 새로운 적과 맞서고 있었다.

    나는 망치의 조언대로 제국 기사의 공격 틈새를 노려 왼팔의 에너지 방출구를 향해 고속 기관포를 쏘아댔다. ‘타타타타탕!’ 섬광이 터졌지만, 두꺼운 장갑은 흠집 하나 내지 못했다. 씨발, 역시 안 통하나!

    하지만 포탄은 그의 왼팔 방어 시스템을 순간적으로 과부하 시켰다. 방어막이 미세하게 깜빡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좋아!”

    나는 바람칼을 맹렬히 전진시켰다. 제국 기사는 당황한 듯 잠시 주춤했다. 그 순간, 나는 바람칼의 어깨에 숨겨진 작은 로켓 추진기를 점화했다. ‘퓨우우우웅!’ 낡은 기체가 예상치 못한 속도로 튀어 올라, 제국 기사의 거대한 몸통에 그대로 부딪혔다.

    ‘꽝!’

    충격파가 주변을 흔들었다. 바람칼은 제국 기사의 단단한 장갑 위를 미끄러지듯 올라타, 그대로 그 기체의 어깨 부위에 장착된 고출력 레이저 포대를 향해 드릴을 꽂아 넣었다.

    ‘위이이이잉! 뿌드드득!’

    금속이 비명을 지르며 찢어졌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었고, 제국 기사는 비명을 질렀다.

    “이 비겁한 놈이! 당장 떨어져!”

    제국 기사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나는 조종간을 꽉 쥐고 드릴을 놓지 않았다. 제국 기사의 강력한 무기 중 하나인 레이저 포대가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재하! 격납고 해제 완료! 에너지 셀 확보 중! 후퇴 준비해!” 미나의 기쁜 외침이 들렸다.

    나는 재빨리 드릴을 뽑아내고 제국 기사의 어깨에서 뛰어내렸다. 제국 기사는 한쪽 어깨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휘청거렸다. 격분한 조종사는 이성을 잃고 맹렬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감히 내 기체에 상처를 내다니!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겠다!”

    나는 그의 거친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뒤로 물러섰다. 이미 에너지 셀은 확보되었다.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전원, 에너지 셀 확보! 후퇴한다! 집결 지점으로!”

    내 명령에 동료들도 일제히 제국군으로부터 거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제국군은 당황한 듯했지만, 우리는 이미 승기를 잡고 물러나는 중이었다.

    어둠 속으로 우리는 다시 그림자처럼 사라졌다. 뒤에서는 제국군 기체들의 격렬한 포격 소리가 울렸지만, 이미 거리는 충분히 벌어져 있었다.

    ***

    안전 구역에 도착했을 때, 바람칼은 여기저기 긁히고 찌그러져 있었다. 동력로는 간신히 버티고 있었고, 장갑판 곳곳에서는 식지 않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모두 수고했다. 큰 피해 없이 임무 완수야.” 미나가 우리를 맞이하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는 안도의 빛이 스쳐 지나갔지만,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확보한 에너지 셀들이 격납고로 옮겨지는 것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임무로 우리는 한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시간을 버는 일일 뿐이었다.

    “제국 기사, 생각보다 강력하더군. 다음엔 더 힘들겠어.” 나는 콕핏에서 내려와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온몸이 쑤셨다.

    “그들도 학습하겠지. 하지만 우리도 매번 강해지고 있어, 재하.” 미나가 말했다. 그녀는 확보한 에너지 셀들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에너지 셀이 우리의 빛이 되기를.”

    그녀의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함께 굳건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우리가 탈취한 제국의 에너지는 마치 작은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거대한 제국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르지만, 우리는 결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이 작은 불꽃이 언젠가 거대한 불길이 되어 제국의 그림자를 태워버릴 그날까지.

    “그래. 언젠가는.”

    나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잿빛 지평선 너머의 어둠을 응시했다. 우리 앞에는 여전히 험난한 길이 놓여 있었지만, 내 가슴속에서는 꺼지지 않는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의 심장에 박힌 작은 가시, 그것이 바로 우리였다.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청운학원 지하, 금단의 심연

    청운학원, 그 이름만으로도 천하의 모든 영기(靈氣)가 모여든다는 찬란한 명문. 수많은 수련자들이 이곳에서 도(道)를 닦고, 신선의 경지를 꿈꿨다. 하지만 스물다섯 번째 학년, 류진에게 청운학원은 그저 끝없는 과제와 시험, 그리고 지독한 영기 감별 훈련의 연속이었다.

    “젠장, 또 틀렸어! 이 정도 영기 응집도면 분명히 상급 영초(靈草)여야 하는데 왜 자꾸 하급으로 뜨는 거지?”

    류진은 코앞에 놓인 수정구슬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한밤중, 학원 도서관 구석에 자리 잡은 고문헌 열람실. 낡은 탁자 위에는 정체불명의 영초 샘플들이 널려 있었고, 그의 손에는 온갖 영초의 효능과 특성이 빼곡히 적힌 두꺼운 고서가 들려 있었다. 내일 오전까지 이 영초들의 정확한 등급을 판별해 제출해야 하는 까다로운 과제였다.

    “후으… 머리 식힐 겸 좀 걸어야겠어.”

    류진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길고 긴 복도 끝, 늘 잠겨 있던 낡은 문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오래된 자물쇠와 거미줄이 잔뜩 엉켜 있어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곳. 학원 측에서도 ‘오래된 창고이니 접근 금지’라고만 했을 뿐, 딱히 감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류진은 호기심에 이끌려 조용히 문에 다가섰다. 손잡이를 잡자, 예상치 못한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녹슨 자물쇠가 툭, 하고 떨어져 나갔다.

    “어… 열려 있네?”

    등골에 한기가 스쳤지만, 알 수 없는 끌림에 그는 문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흙냄새가 코를 찔렀다. 좁고 어두운 통로. 손바닥에 희미한 영기를 모아 작은 빛을 만들었다. 빛이 닿는 곳마다 먼지가 수북이 쌓인 고서들과 낡은 수련 기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게 뭐야, 도서관 지하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그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걷자,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육중한 문에는 알아볼 수 없는 고대의 문자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손으로 문자를 훑자, 싸늘한 기운이 손끝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졌다. 단순한 문자가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묘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때였다. 류진의 발밑에서 ‘삐그덕’ 하는 소리와 함께 낡은 마루판이 아래로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흐읍!” 짧은 비명과 함께 몸의 균형을 잃고 아래로 추락했다. 다행히 깊지 않은 곳이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일어나보니,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공간에 떨어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푸른 영기가 주변을 감쌌다. 눅진한 공기, 희미하게 들려오는 낮고 규칙적인 ‘쉬이이익, 쉬이이익’ 하는 소리.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는 소리 같았다.

    “여긴 대체… 어디지?”

    류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은 지하 동굴 같은 모습이었다. 천장과 벽은 투박한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곳곳에 알 수 없는 문양들이 섬뜩하게 새겨져 있었다. 바닥에는 푸른 영기가 흐르는 수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고, 그 수로를 따라 기이한 형태의 제단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제단들 위에 놓인 것이었다. 투명한 수정관들이 수직으로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는… 액체에 잠긴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거대한 벌레나 기이한 영수(靈獸)의 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류진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건… 사람…?”

    수정관 안에 있는 것은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잠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핏기 없는 얼굴, 축 늘어진 사지. 그리고 그들의 가슴팍에는 거대한 바늘 같은 것이 박혀 있었다. 바늘 끝에서부터 희미한 빛의 실타래가 이어져 수정관 아래의 수로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쉬이이익… 쉬이이익….’

    그 소리는 수정관 안의 존재들이 내쉬는 마지막 숨결이자, 동시에 그들의 영기가 뽑혀 나가는 소리였다. 수정관 안의 사람들은 모두 젊은 남녀였다. 그들의 표정에는 고통과 체념이 뒤섞여 있었고, 류진은 그들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보았다. 살아있었다. 의식은 없지만, 분명 살아있는 생명체들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류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청운학원 지하에 이런 끔찍한 곳이 존재할 줄이야. 이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이토록 잔혹하게 영기를 착취당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발걸음을 떼어 다른 수정관으로 향했다. 가장자리에 놓인 한 수정관 안의 사람은 다른 이들과는 조금 달랐다. 여윈 몸, 창백한 얼굴. 하지만 그녀의 가슴팍에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빛의 실타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류진은 그녀의 얼굴이 낯익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연화 선배…?”

    연화. 청운학원 최고 수재로 꼽히던, 신선의 경지에 가장 가깝다는 평을 듣던 선배였다. 몇 년 전, 연화 선배는 돌연 학원에서 사라졌다. 학원 측에서는 ‘선계로의 승천을 시도하다 실패하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공표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이곳에서 끔찍하게 영기를 착취당하고 있었다.

    류진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승천은 거짓말이었다. 학원은 연화 선배를 비롯한 수많은 재능 있는 수련자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영기를 뽑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왜? 무엇을 위해서?

    그때, 저편 어둠 속에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까지 내려올 줄은 몰랐군, 청운학원의 미약한 영혼이여.”

    몸이 굳어버렸다. 류진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살기에 온몸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섬뜩한 목소리의 주인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도포를 입은 노인. 그의 얼굴은 주름져 있었지만, 눈빛은 형언할 수 없는 차가움과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그는 류진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학원의 그 어떤 스승보다도 강한 영기(靈氣)를 뿜어내고 있었다.

    “너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노인이 손을 들자, 공간 전체의 영기가 일렁였다. 류진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 노인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 지하 공간의 모든 끔찍한 일의 배후일 터였다. 그는 이대로 이곳에서 죽음을 맞을 수는 없었다. 연화 선배와 다른 모든 이들의 희생이, 이 모든 끔찍한 진실이 영원히 묻히게 할 수는 없었다.

    “이… 이 악마 같은 짓을…!” 류진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노인은 싸늘하게 웃었다. “악마? 아니,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선(仙)의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금기라고? 어리석은 자여. 이 세상 모든 위대한 업적은 금기를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되는 법.”

    그의 말에 류진은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느꼈다. 영혼을 착취하는 것을 두고 ‘선의 경지’라니. 광기였다.

    노인의 손에서 검은 영기 덩어리가 뿜어져 나와 류진을 향해 날아들었다. 류진은 필사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뒤이어 폭발음과 함께 그가 서 있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이대로는 죽을 뿐이었다.

    “젠장…!”

    류진은 이를 악물고, 아까 자신이 떨어진 구멍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이곳을 벗어나, 이 끔찍한 진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청운학원의 감춰진, 금단의 심연을!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으냐!” 노인의 목소리가 등 뒤를 쫓아왔다.

    류진은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쿵! 몸이 아까 떨어진 지점의 바닥에 부딪혔다. 위에서 무언가 쫓아오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그는 뒤돌아볼 새도 없이 다시 도서관 지하의 낡은 통로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심장은 터질 듯이 울렸고, 폐는 찢어질 듯 아팠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문득, 류진의 눈에 섬광처럼 떠오른 것은 학원 지하 지도를 만들 때 보았던 오래된 기록이었다. 도서관 지하 창고 깊숙한 곳에 ‘봉인된 구역’이라는 표기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는 그저 낡은 장부 속 잊힌 공간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그의 등 뒤에서 쫓아오는 그림자와, 수정관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아까 그가 떨어지기 전 보았던 거대한 석문이었다. 석문 전체에서 희미하게 고동치는 듯한 영기가 느껴졌다. 노인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서는 저곳을 이용해야 했다. 그는 무작정 석문을 향해 돌진했다. 손을 뻗어 석문에 새겨진 고대 문양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을 강하게 밀었다.

    “으아아악!”

    그의 영기가 문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격통이 온몸을 휩쓸었다. 동시에 ‘쿠우우우우웅!’ 하는 거대한 소리와 함께 육중한 석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틈으로 뿜어져 나오는 더욱 강력하고 섬뜩한 영기에 류진은 정신을 잃을 뻔했다. 이곳은… 또 다른 심연이었다.

    석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어둡고 거대한 동굴 형태의 공간. 그리고 그 중앙에는…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거대하고 검붉은 무언가가 끊임없이 박동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수십 개의 수정관들이 마치 꽃잎처럼 둘러싸여 있었고, 각 수정관 안에는 방금 보았던 영기 착취의 흔적이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가장 큰 충격은, 그 거대한 심장 같은 것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영기가 아니었다. 생명과 죽음을 초월한, 금기의 존재가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안 돼! 그곳은…!” 노인의 다급한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와 함께 경악이 서려 있었다.

    류진은 이 기회뿐이라 생각하고, 거대한 석문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노인은 순간 망설이는 듯했으나, 이내 류진을 쫓아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닫히는 순간, 류진은 마지막으로 노인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더욱 끔찍한 금기의 공간 속으로 사라졌다. 청운학원 지하, 그 어둠 속에서 잠들었던 고대의 금기가 다시 한번 깨어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류진은 이제 그 금기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의 운명은, 그리고 이 학원의 진실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심장이, 마치 그 거대한 검붉은 심장처럼, 미친 듯이 고동치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의 입구였다.

  • 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김민준, 정신 차려!”

    날카롭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순간, 멍하니 벽에 붙은 거미줄을 감상하던 내 시야에 한예진 선배의 얼굴이 가득 들어찼다. 오, 여신이시여. 거미줄 감상 같은 따위의 저급한 행위에 빠져있던 나 같은 필부에게 어찌 이리 눈부신 존재가…

    “네? 아, 네! 선배!”

    나도 모르게 허리를 90도로 숙여 인사했다. 선배의 갸우뚱하는 표정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젠장, 또 병신 짓 했다!*

    한예진 선배. 우리 학교 경영학과 3학년,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학교 최고의 인기인. 그리고 김민준, 경영학과 2학년, 존재감은 먼지만도 못한 모태솔로 아싸. 이런 우리가 왜 같이 이 낡아빠진, 햇볕조차 제대로 들지 않는 학교 별관 지하 자료실에 박혀 있느냐고? 그건 다 빌어먹을 ‘근대 한국 사회의 미신적 현상 연구’ 조별 과제 때문이었다. 나는 분명 평화롭게 혼자 과제하다 학점만 잘 받는 게 목표였는데, 조원 랜덤 배정의 신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셨다.

    “김민준, 너 혹시 나한테 불만 있어?”

    선배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내 심장이 발목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뇨! 절대요! 감히 제가 어떻게 선배님께! 그저 선배님의 미모에 압도되어 잠시… 황홀경에 빠져…”

    “닥쳐.”

    단호한 한마디에 내 변명은 칼같이 잘려나갔다. 선배는 이마를 짚었다.

    “지금 우리가 찾고 있는 건 ‘개화기 경성 지역에 퍼졌던 미신 관련 기록’이야. 그런데 너는 지금 몇 분째 벽에 붙은 거미줄이랑 책장 먼지랑 영혼의 대화를 나누고 있잖아.”

    “죄송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그런 기록은 안 보이고… 이 오래된 책들 사이에 제가 원하는 로맨스 소설이 숨어있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잠시…”

    “하아… 됐어. 이쪽 책장 내가 볼 테니까, 너는 저 안쪽 구석에 있는 봉인된 책장 좀 봐. 아마도 옛날 사학과에서 쓰던 자료들일 거야. 먼지 장난 아닐 테니까 마스크 꼭 쓰고.”

    선배는 투덜거리면서도 나에게 마스크를 건네주었다. *크으, 역시 우리 예진 선배… 츤데레 매력까지 완벽해…!* 혼자 감동하고 있는데 선배가 다시 째려봤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얼른 가봐.”

    “네!”

    나는 마스크를 황급히 쓰고, 선배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별관 지하 자료실의 가장 안쪽, 빛 한 점 제대로 닿지 않아 음침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낡은 나무 책장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책장과 책장 사이의 좁은 통로에는 이름 모를 물건들이 마치 유물처럼 쌓여 있었다. 발자국 소리조차도 크게 울릴 만큼 고요했다.

    “여긴 도대체 몇 년이나 사람이 안 들어왔던 거지….”

    나는 조심스럽게 책장을 살펴보았다. 대부분 한문으로 쓰여 있거나, 알아보기 힘든 옛 한글로 쓰인 서적들이었다. 제목조차 해독하기 어려운 것들이 태반이었다. 과연 이곳에서 우리가 찾는 자료가 나올까? 의심 반, 체념 반으로 손을 뻗어 한 권 한 권 책 등을 훑어 내려갔다.

    그때였다.

    손가락이 닿은 책장의 한 부분이 삐걱, 하고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어…?”

    나는 움찔하며 손을 뗐다. 낡은 책장 안쪽에서 뭔가가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책장의 옆면을 자세히 살펴보니, 다른 책장들과는 다르게 나무판이 덧대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아주 희미한 선이 보였다. 마치 비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설마. 설마 이게 진짜…!

    어렸을 때 봤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에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 선을 따라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생각보다 쉽게 틈이 벌어지며, 낡은 나무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안쪽으로 열렸다.

    먼지 냄새, 그리고 묘하게 달콤하면서도 알 수 없는 풀 향기가 코를 찔렀다. 문이 열린 틈 사이로 보이는 것은 작은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공간 한가운데, 낡은 나무 탁자 위에 놓인… 검은색 상자 하나.

    상자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가로 세로 30센티미터 정도 되는 정육면체 모양의 나무 상자였다. 표면은 닳아 해졌지만, 자세히 보면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동그라미 안에 별이 그려져 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곡선들이 얽혀 있기도 했다. 마치 고대의 주술 문양 같았다.

    “선배!”

    나는 저도 모르게 선배를 불렀다.

    “왜? 뭐 찾았어?”

    선배의 목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선배의 모습이 어두운 통로 저편에서 나타났다. 선배는 내 뒤편으로 와서 열린 비밀 공간을 들여다보았다. 선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뭐야? 이런 곳이 있었어?”

    선배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상자에 다가갔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불안했지만, 선배의 뒤를 따랐다. 우리는 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이거… 혹시… 유물 같은 건가?”

    선배가 조심스럽게 상자의 뚜껑에 손을 얹었다. 그때였다.

    *화르륵!*

    상자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갑자기 푸른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동시에 자료실 전체의 전등이 깜빡이며 꺼졌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우리는 동시에 움찔했다.

    “어? 정전인가?”

    선배가 당황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휴대폰 손전등을 켜려고 주머니를 뒤졌다. 그때, 푸른빛을 내던 상자가 갑자기 덜컥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뚜껑이 저절로 열렸다.

    상자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비어 있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네? 실망이다.”

    선배가 김이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상자 안쪽 바닥에 희미하게 그려진 문양… 그것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려 몸을 기울이는 순간, 내 손이 미끄러지면서 상자 안으로 쑥 빠져버렸다.

    “어어어?!”

    찰나의 순간, 손바닥에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느껴졌다. 통증은 아니었지만, 마치 심장이 손바닥에서 뛰는 듯한 이상한 감각이었다. 동시에 상자 바닥의 문양이 폭발하듯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콰아아아앙!*

    귀청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자료실 전체가 흔들렸다.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지고, 책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선배가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달라붙었다.

    “김민준! 괜찮아?! 이게 무슨…!”

    빛이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휴대폰 손전등 빛을 비추자, 자료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무너진 책장, 흩어진 책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는 나와 선배.

    “으… 으음…”

    내 손바닥은 여전히 뜨거웠다. 나는 손을 들어 살펴보았다.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런데…

    “선배, 저… 저기요…!”

    나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듯 눈을 크게 떴다. 선배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래, 민준아? 너 혹시 다쳤어?”

    선배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그 순간, 선배의 머리 위에… 분홍색 하트가 뿅 하고 나타났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공중에 둥실 떠 있었다!

    “선… 선배! 머리 위에… 하트가…!”

    나는 손가락으로 선배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으로 머리를 더듬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듯했다.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없는데?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선배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였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내 눈에는 보였다. 분홍색 하트가 선배의 정수리 위에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마치 게임 캐릭터의 호감도 표시처럼!

    그때, 내 손바닥에서 다시 뜨거운 감각이 느껴졌다. 나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선배의 어깨를 잡았다.

    “선배, 진짜예요! 제 눈에는 보여요! 뭔가… 뭔가 잘못된 것 같아요!”

    내 손이 선배의 어깨에 닿는 순간, 선배 머리 위에 있던 분홍색 하트가 갑자기 크기를 키우더니 *팝!* 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버렸다. 동시에 선배의 얼굴이 갑자기 새빨개지며, 선배의 입에서… 믿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김민준… 너… 너 자꾸 그렇게 가깝게 다가오면… 내가… 내가 너 좋아서 미칠 것 같잖아!”

    선배의 말에 나는 얼어붙었다. 텅 빈 자료실에 선배의 고백 같은 외침이 크게 울려 퍼졌다. 내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이건… 이건 내가 상상하던 로맨틱 코미디 전개와는 너무 다르잖아?!

    내 손바닥은 여전히 뜨거웠다. 그리고 그 뜨거움과 함께, 나는 무언가를 ‘알아버린’ 듯한 기이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마치… *손에 닿은 사람의 가장 강렬한 감정을 잠시 증폭시키는 힘* 같은 것을…

    눈앞의 한예진 선배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주저앉아 버렸다.

    젠장, 이 고대의 마법의 힘, 어쩐지 시작부터 대형 사고다! 그것도 내 인생 최고 난이도의 로맨틱 코미디로!

    “선… 선배…? 방금 그건…!”

    나는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선배의 얼굴은 이제 삶아놓은 문어처럼 새빨개져 있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엄청난 비밀과 함께 어떻게 이 혼돈을 헤쳐나가야 할까? 그리고 선배의 저 고백 아닌 고백은… 진심이었을까? 아니면 그저 마법의 장난이었을까?

    망했다. 진짜 망했다. 내 평범한 대학 생활은 오늘부로 끝났다.

  • SF (공상과학)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프롤로그: 검은 하늘 아래에서**

    진우는 익숙한 쇳내와 잿가루 냄새를 들이마셨다. 돔 형태의 상층도시를 지탱하는 거대한 강철 기둥들 사이로, 그들의 주거지인 하층 구역은 늘 어둠에 잠겨 있었다. 태양 빛은 먼지와 스모그로 가득한 대기를 뚫지 못했고, 그 대신 천장에 박힌 인공 조명들이 푸른색과 오렌지색의 기괴한 빛을 내뿜으며 칙칙한 풍경을 더 음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진우는 허리까지 오는 폐기물 더미 속에서 낡은 전선 뭉치를 끌어냈다. 그의 손은 기름때와 굳은살로 범벅되어 있었지만, 미세한 금속 조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움직임은 정교했다.

    “진우, 그거 쓸모 있냐?”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목소리에 진우는 고개를 돌렸다. 가람이었다. 동갑내기 친구이자 몇 안 되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존재. 가람의 얼굴 역시 먼지와 땀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언제나 불꽃처럼 살아 있었다.

    “이 정도면 쓸만하지. 회로 하나만 건져도 오늘 저녁은 걱정 없겠어.” 진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가람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의 낡은 작업복 주머니를 툭툭 쳤다. “꽝이다. 이젠 찌꺼기조차 찾기 힘들어. 제국놈들이 바닥까지 긁어가는군.”

    ‘제국놈들’. 아스텔라 제국. 광활한 우주를 지배하는 거대한 철권. 그들의 눈에는 하층민들은 그저 소모품이거나, 아니면 없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제국은 드높은 상층 도시에서 황금빛 비단에 싸여 유유자적하는 귀족들과 기사들의 땅이었고, 하층민들의 삶은 닳고 닳은 강철과 부식된 회로, 그리고 끝없는 노동으로 이루어진 지옥이었다.

    그때였다. 웅장한 굉음이 진우와 가람의 귓가를 강타했다. 멀리서부터 제국 순찰대 드론의 묵직한 프로펠러 소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소리가 커질수록 하층 구역의 모든 움직임이 얼어붙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재잘거림도, 낡은 기계들의 삐걱거림도 멈췄다. 오직 굉음만이 거대한 폐허 속을 울렸다.

    “또 뭐야?” 가람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지고 경계심이 스쳤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몰라. 요즘 들어 순찰이 더 잦아졌어.”

    회색빛 철골 구조물 사이를 가르며 거대한 순찰 드론 한 대가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번쩍이는 갑옷을 입은 제국 기사들이 착륙했다. 그들의 갑옷은 하층 구역의 칙칙한 배경과 대비되어 더욱 눈부시게 빛났다. 다섯 명의 기사들이 아무런 감정 없는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그들의 손에는 번개처럼 푸른빛을 내뿜는 에너지 소총이 들려 있었다.

    선두에 선 기사가 차가운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작업 중지! 신원 스캔을 실시한다!”

    공포가 퍼져나갔다. 신원 스캔은 늘 불길한 징조였다. 누군가는 끌려갔고, 누군가는 사라졌다. 이유를 묻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진우는 가람과 함께 몸을 숙여 폐기물 더미 뒤에 숨었지만, 그들의 존재는 이미 드론의 열 감지기에 포착된 지 오래였다.

    “나와라! 반항 시 현장에서 즉결 처형이다!”

    진우는 가람의 팔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숨어봐야 소용 없어.”

    결국 그들은 다른 하층민들과 함께 공터로 끌려 나왔다.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진우와 가람처럼 폐기물을 뒤지거나 낡은 기계를 수리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그들의 얼굴에 역력했다.

    기사들이 뿜어내는 위압감 속에서, 한 기사가 조그만 단말기를 들고 사람들의 정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이름, 직업, 거주지 확인. 거부 시 처벌 대상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 채 순순히 스캔을 받았다. 제국에 반항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그때,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한 여인이 기사에게 애원했다.

    “저, 제발… 제 아이가 너무 아파서… 약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여인의 목소리는 간절했지만, 기사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기사는 그저 차가운 시선으로 여인을 응시할 뿐이었다.

    “제국 법규에 따라, 모든 하층민은 지정된 구역 밖으로 이동할 수 없다. 스캔을 거부하면 구금 조치될 것이다.”

    여인은 울먹였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이는 기침을 하며 축 늘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가람이 참지 못하고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저기요! 애가 죽어가잖아요! 제발 좀…”

    가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기사 중 한 명이 잽싸게 에너지 소총을 겨누며 가람을 바닥에 쓰러트렸다. “닥쳐라! 제국 법규를 모욕하는 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는다!”

    강렬한 에너지 충격이 가람의 옆구리를 강타했고, 그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쓰러졌다. 진우는 분노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에 붉은 불꽃이 일렁였다. 저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제국의 법규를 읊는 기계에 불과했다.

    “가람아!” 진우는 달려가려 했지만, 옆에 있던 노인이 급하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죽고 싶으냐! 참아야 한다…!”

    노인의 눈빛은 비참할 정도로 공허했다. 수십 년간 제국의 억압 속에서 살아온 이들의 체념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아까 아이를 안고 있던 여인 옆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조용히 손에 쥐고 있던 낡은 도구를 바닥에 떨어트렸다. 둔탁한 금속 소리가 침묵을 깼다. 기사들이 그 남자를 노려봤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노인의 그것과는 달랐다. 체념이 아닌,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 안에 담겨 있었다.

    “우리도… 인간이다.” 남자가 쥐어짜듯 말했다. “숨만 쉬고 사는 짐승이 아니야.”

    기사들은 남자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들에게 하층민의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선두에 섰던 기사가 단말기를 다시 들어 올렸다.

    “불법 무기 소지 및 제국 기사에게 위협을 가한 죄로… 즉결 처형한다.”

    남자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검은 스모그로 뒤덮인, 상층 도시의 화려한 빛조차 가려버린 암흑의 하늘을.

    푸른 섬광이 번쩍였다.

    진우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소멸했다. 흔적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의 비명조차 터져 나오지 못했다. 공포가 목구멍을 짓눌렀다.

    “이것이 제국의 법이다. 명심하도록.” 선두 기사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캔을 재개한다. 다음은 누구냐.”

    기사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스캔을 계속했다. 진우는 쓰러져 신음하는 가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방금 전 사라진 남자가 서 있던 자리의, 검게 그을린 바닥을.

    그는 무릎을 꿇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한 남자의 마지막 얼굴, 그리고 그 남자가 말했던 한 마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우리도 인간이다.*

    그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억압받는 모든 하층민들의 피 속에서 잠자고 있던 불씨였다. 진우의 심장 속에서 그 불씨가 격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거대한 제국의 철권 아래 짓밟혀도 사라지지 않는, 작은 불꽃.

    검은 하늘 아래, 또 한 번의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밤은, 이전과는 다를 것이었다. 진우는 고개를 들어 상층 도시를 올려다봤다. 그곳에는 탐욕과 거짓으로 쌓아 올린 찬란한 성이 빛나고 있었다.

    그 성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순간을, 진우는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