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마법소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벽 너머의 숨결

    차갑고 끈적한 지하 공기에는 곰팡이 냄새와 눅눅한 흙먼지 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천장에서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낡은 양철통 안으로 스며들며 메마른 침묵을 깨뜨렸다. 탁자 위, 기름때 낀 램프의 심지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주변을 희미하게 비췄다. 램프 불빛 아래 펼쳐진, 조잡하게 그려진 지도는 흑철성 외곽의 빈민가와 공업지대를 잇는 복잡한 골목길을 표시하고 있었다. 지도의 한 귀퉁이에는 붉은 X 표시가 격렬하게 그어져 있었다.

    “명화는 이 근처에 잡혀 있어. 흑철성 주둔군의 임시 심문소로 개조된 옛 철공 길드 건물이다.”

    윤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그의 얼굴은 램프 불빛 아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굳게 다문 입술과 날카로운 눈매는 좀처럼 풀릴 줄을 몰랐다. 그는 닳아빠진 가죽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오랜 전투와 노동으로 거칠게 변해 있었다.

    이루는 조용히 윤의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은 지도를 훑는 대신, 윤의 얼굴과 그 옆에 앉아 낡은 쇠붙이를 연마하는 현우의 얼굴을 번갈아 응시했다. 현우는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단련된 전사의 그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강철 같은 결의를 품고 있었다.

    “정보통에 따르면, 길드 건물은 평소보다 삼엄해. 내부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외곽 감시 병력도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아마 내일 아침에 본성으로 이송될 거야.”

    윤의 말에 현우가 들고 있던 연마석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내일 아침이라구요? 그럼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는 거네요.” 그의 목소리에는 초조함이 섞여 있었다.

    “그래. 하지만 무모하게 덤벼들 순 없어. 명화가 가진 정보는 단순한 지도가 아니야. 제국의 새로운 광물 수송로와 주둔군 배치도까지 담겨 있어. 그게 제국 손에 넘어가면 우린 더 이상 숨을 곳도, 움직일 곳도 없어진다.”

    이루는 묵묵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그녀의 가슴속에서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명화는 한때 이루가 속했던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언니 같은 사람이었다. 제국의 횡포로 마을이 파괴되었을 때, 명화는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결국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를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루의 심장을 옥죄었다.

    “이루.”

    윤이 그녀를 불렀다. 이루는 고개를 들어 윤을 마주 보았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는 강인함 속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듯했다.

    “네가 나설 때가 올 수도 있다. 네 힘을 최소한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명심해, 우리는 싸우러 가는 게 아니라, 구하러 가는 거야. 그리고 들키지 않는 게 최우선이다.”

    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낡은 가죽 팔찌 아래, 그녀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온기가 일렁였다. ‘빛의 조각’.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자 동시에 가장 무거운 족쇄였다. 그녀의 힘은 아직 완벽하지 않았고, 제국군의 마법탐지기에 발각될 위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세 사람은 지하 통로를 통해 빈민가 뒷골목으로 향했다. 거리에는 달빛조차 닿지 않는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삭막한 건물들 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낡은 철 구조물과 부서진 창문들을 흔들며 으스스한 소리를 냈다. 간간이 멀리서 들려오는 흑철성 감시탑의 쇠사슬 소리와 순찰병들의 발소리가 그들의 심장을 조여왔다.

    “이쪽이야.”

    현우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그는 그림자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좁은 골목길을 안내했다. 그들의 목적지는 옛 철공 길드 건물, 즉 임시 심문소였다. 낡고 거대한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건물 창문마다 쇠창살이 굳게 박혀 있었다. 희미한 불빛이 창문 안쪽에서 새어 나왔지만, 그 불빛은 오히려 스산함을 더했다.

    윤이 손가락으로 건물 외벽을 가리켰다. “저쪽 보초는 현우가 처리하고, 나는 건물 뒤편 비상 통로를 확보한다. 이루, 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기한다. 최악의 경우, 시선을 끌어야 할 수도 있다.”

    이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그녀의 역할은 마지막 순간의 ‘변수’였다.

    현우는 그림자처럼 벽을 타고 올라가 보초병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아주 희미하게 들려왔다. 성공이다. 윤은 재빨리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이루는 차가운 벽에 몸을 기댄 채 숨을 죽였다. 그녀의 시선은 건물 정면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저 멀리 골목 끝에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국군 순찰대였다. 예상보다 빨랐다.

    그녀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윤과 현우는 아직 잠입 중이었다. 만약 이대로 순찰대와 마주치면 모든 것이 끝장이었다. 그들의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쾅, 쾅, 쾅. 굳건한 제국의 발소리가 이 밤의 정적을 찢었다.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이루는 본능적으로 손목의 팔찌를 움켜쥐었다. 팔찌 아래의 ‘빛의 조각’이 격렬하게 고동쳤다. 마치 그녀의 불안감을 읽기라도 한 듯이.

    순찰대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들의 갑옷에서 나는 금속음이 귀청을 때릴 듯했다. 네 명의 병사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이루는 물론, 현우와 윤까지 발각될 터였다.

    *안 돼.*

    이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망설일 틈도 없이 팔찌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따뜻한 빛이 손바닥을 감싸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었다.

    “별무리!”

    낮게 읊조린 주문과 함께, 이루의 몸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주변의 모든 그림자를 집어삼킬 듯한 섬광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한 줄기 희미한 잔상처럼, 그녀의 몸을 휘감으며 순식간에 형태를 바꿨다. 낡고 거친 옷 대신, 밤하늘의 별을 담은 듯한 어두운 보라색과 은색이 어우러진 간결한 전투복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머리칼은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반짝였고, 그녀의 눈동자에는 결연한 의지가 타올랐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밤의 정령 같았지만, 그 빛은 섬광처럼 강력했다.

    “뭐, 뭐야?!”

    선두에 섰던 병사가 눈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러운 섬광에 병사들은 순간적으로 시야를 잃었다. 그들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이루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땅을 박차고 솟아올랐다.

    그녀의 능력이 발휘되었다. ‘별무리’의 힘은 파괴적이지 않았다. 대신, 시야를 혼란시키고 움직임을 방해하는 ‘환영의 장막’을 만들어냈다. 그녀는 순찰대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섬광과 함께 희미한 빛의 잔상을 여러 개 만들어냈다.

    “적이다! 어디야?!”

    “젠장, 눈이… 아무것도 안 보여!”

    병사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들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이루는 그들의 혼란을 이용해 재빨리 골목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목표는 병사들의 주의를 끄는 것이었다.

    “저기다! 저쪽으로 도망친다!”

    한 병사가 겨우 눈을 뜨고 이루가 사라진 방향을 가리켰다. 네 명의 병사들은 우왕좌왕하며 이루가 만들어낸 잔상과 빛을 쫓아 골목 깊숙한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격분한 야수처럼 으르렁거렸다.

    이루는 좁은 골목길을 빠르게 질주했다. 그녀는 뒤에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고함과 발소리를 들으며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그녀는 멈출 수 없었다. 그녀는 이들을 최대한 멀리 유인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문득, 자신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았다. 흑철성 임시 심문소는 다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윤과 현우가 무사히 임무를 수행했기를 바라며, 그녀는 더욱 빠르게 그림자 속으로 몸을 던졌다.

    어두운 빈민가의 미로 같은 골목길을 한참이나 달렸을까. 뒤쫓던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차 멀어졌다. 이루는 낡은 창고 건물 뒤편에 숨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팍이 찢어질 듯 아팠다. 몸을 감쌌던 ‘별무리’의 빛은 서서히 사라지고,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팔찌 아래의 ‘빛의 조각’은 뜨겁게 달아올라 그녀의 맥박과 함께 격렬하게 뛰었다.

    “이루!”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이었다. 그는 창고 그림자 속에서 나타났다. 그의 얼굴은 걱정과 함께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그의 옆에는 현우도 서 있었다.

    “괜찮나? 너무 무리한 것 아니야?” 윤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루를 살폈다.

    이루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명화 언니는…?”

    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아니. 우리가 돌입하기 직전, 심문소에서 급히 명화를 본성으로 이송하는 것을 확인했다. 네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우리가 발각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늦었어. 경계가 너무 삼엄했다.”

    이루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녀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그들의 희망이 또 한 번 제국의 거대한 벽에 가로막힌 것이다.

    “하지만 네가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그 자리에서 붙잡혔을 거야.” 현우가 이루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사함과 동시에 좌절감이 섞여 있었다.

    이루는 차가운 벽에 기대어 주저앉았다. 그녀의 손목에 감긴 팔찌는 이제 아무런 빛도 내지 않고 차갑게 식어 있었다. 제국의 그림자는 너무나도 깊고 넓었다. 그 앞에서 그녀의 작은 빛은 고작 한 줌의 섬광에 불과한 것 같았다.

    “젠장…!” 윤이 텅 빈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이루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차가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그 별들은 너무나도 멀리 있었고, 그녀의 작은 힘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하지만 그 별들 중 하나가 되어 이 암흑 같은 세상을 비추고 싶다는 갈망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너무나 약했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명화 언니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제국의 폭정 아래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녀는 다시 일어설 것이다. 더 강해질 것이다. 다음에는 반드시, 벽 너머의 숨결을 구원해 낼 것이다.

    그녀의 주먹이 서서히 쥐어졌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 그녀의 결의가 별빛처럼 희미하게 반짝였다. 제국은 거대했지만, 그녀의 안에 있는 빛은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타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 로맨틱 코미디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크리스탈 마법학교, 제23화: 예상치 못한 문**

    한세아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하아… 이놈의 연금술 과제는 대체 언제 끝나?”

    지금 시각은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2시. 크리스탈 마법학교의 고요한 도서관, 그것도 일반 학생들에게는 폐쇄된 심층 고문서고에서 세아는 허리를 굽힌 채 낡은 책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내일 오전까지 제출해야 할 ‘고대 연금술과 생체 마나의 상호작용’ 보고서는 도무지 실마리를 찾을 수 없었다. 엘리트들만 모인다는 이 학교에서, 그녀는 겨우 상위권에 턱걸이하는 보통 학생이었다. 특히 이런 지루하고 까다로운 이론 과제는 그녀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고대 아르테미스 연금술… 젠장, 그림만 봐도 머리가 아파.”

    세아는 책상 위로 머리를 박고 앓는 소리를 냈다. 온갖 고문서들을 뒤져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뭔가 혁신적인 발상, 아무도 생각지 못한 자료가 필요했다. 아니면… 차라리 벼락을 맞고 천재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편이 나을지도.

    그때였다. 낡은 고문서고의 가장 깊숙한 곳, 평소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먼지 쌓인 책장 뒤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보았다. 마치 오래된 등불이 꺼질 듯 말 듯 흔들리는 것처럼. 호기심이 발동한 세아는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뭐지? 설마… 비밀 문이라도 있나?”

    그녀의 손이 낡은 책장에 닿자, 퀴퀴한 먼지가 푹 피어올랐다. 콜록이며 책장을 밀어내자,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책장 뒤의 숨겨진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는 예상치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작고 좁은 통로였다. 통로의 벽면에는 알아보지 못할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 문자들이 뿜어내는 희미한 녹색 빛이 통로를 간신히 밝히고 있었다. 통로의 끝에는 낡아빠진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문 중앙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고, 그 마법진에서 방금 보았던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경고: 허가받지 않은 자의 접근을 금함. 위반 시 크리스탈 마법학교의 모든 마법적 보호가 철회됩니다.]**

    철문 옆에 새겨진 경고문이 세아의 눈에 들어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문구였다. ‘마법적 보호 철회’라니, 이 학교에서 마법적 보호가 없으면 그건 그냥 죽으라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걷잡을 수 없는 호기심이 그녀를 지배했다. 이런 곳에 대체 무엇이 있길래?

    “그래, 어쩌면 이 안에 내가 찾던 자료가 있을지도 몰라!”

    세아는 용기를 내어 철문으로 손을 뻗었다. 찰칵. 굳게 닫혔던 문이 의외로 쉽게 열렸다. 문이 열리는 순간, 안에서 차가운 공기가 확 끼쳐 나왔다. 동시에 묵직하고 강력한 마나의 파동이 그녀의 온몸을 감쌌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듯한 느낌. 이건 평범한 마나의 기운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가 내뿜는 듯한, 끈적하고 압도적인 기운이었다.

    문 안쪽은 길고 어두운 계단이었다. 계단은 끝없이 아래로 이어지는 듯했고, 걷는 내내 스산한 기운이 발목을 잡아끄는 것 같았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건 오직 세아의 발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뿐이었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드디어 계단의 끝이 보였다. 계단 아래는 거대한 동굴과 같은 공간이었다. 천장까지 닿을 듯한 기둥들이 사방에 솟아 있었고, 기둥에는 넝쿨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동굴의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놓여 있었다. 제단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압력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짓누르는 듯했다.

    “이게… 대체…”

    세아는 그 압도적인 기운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한세아. 더 이상 들어가지 마.”

    화들짝 놀란 세아가 뒤를 돌아보았다. 계단 끝에 서 있는 그림자.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은발과 날카로운 턱선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학교에서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있을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류… 류이안?!”

    크리스탈 마법학교 수석이자 학생회장, 그리고 학교의 모든 여학생들의 로망. 류이안이었다. 그는 평소의 완벽한 모습과는 달리, 다소 흐트러진 차림으로 서 있었다. 아무렇게나 걸친 로브 아래로 밤색 셔츠가 살짝 보였다. 그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동시에 어딘가 깊은 피로감이 서려 있는 듯했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군.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보네.” 이안이 비웃듯이 말했다.

    “그, 그게… 저는 그저 연금술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세아는 말을 더듬었다. 그의 등장은 늘 그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안은 한숨을 쉬더니, 성큼성큼 세아에게 다가왔다. 그의 차가운 시선이 제단으로 향했다. “우연이라고? 이 장소가 어떤 곳인지 알고는 있나?”

    “아, 아니요. 그냥… 마나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이곳은… 학교의 ‘심장’이야. 그리고 동시에… 가장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는 곳이지.” 이안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그의 얼굴에는 경멸과 함께 깊은 두려움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제단에서 뿜어져 나오던 마나의 파동이 더욱 거세졌다. 쿵, 쿵, 쿵.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세아의 귓가에, 환청처럼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갈증… 채워줘… 채워줘… 지루해…”***

    세아는 깜짝 놀라 이안을 돌아보았다.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이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역시… 너도 들었군.”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마. 저것은… 우리의 마나를 갈구하고 있어. 이 학교의 모든 마법을 먹어치우려는 저주받은 존재다.”

    이안이 세아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의 손길은 예상외로 따뜻했다. “어서 도망쳐야 해. 이곳은… 잠시도 안전하지 않아.”

    그러나 그 순간, 제단 주위의 기둥에 새겨진 문자들이 붉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동굴 전체가 붉은 섬광에 휩싸였다. 쿵, 하는 굉음과 함께 제단 중앙에서 얇은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 사이로 검붉은 빛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이내 거대한 눈동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으로 빛나는 그 눈동자는 마치 심연의 끝에서 올라온 것 같았다. 그 눈동자가 천천히 세아와 이안을 향해 돌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끈적한 속삭임이 세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랜만이야… 새로운 먹잇감… 재밌겠네…”***

    세아의 심장이 발이 묶인 듯 얼어붙었다. 류이안은 그녀를 자기 뒤로 밀쳐내며 지팡이를 뽑아 들었다. 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젠장, 벌써 눈을 뜰 때가 아니었는데…! 도망쳐, 한세아!”

    동굴 전체가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붉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의 파동이 너무 강렬해서, 세아는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이곳은, 정말로 ‘금기’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금기가… 막 깨어나고 있었다.

  • 던전 탐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별무리호 에피소드 1: 심연의 유산

    **[장면: 우주 – 별무리호]**

    **[배경 설명]**
    광활한 우주,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박힌 수억 개의 별들이 보석처럼 빛난다. 그 사이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첨단 탐사선 ‘별무리호’의 모습. 은은한 추진음만이 고요를 깬다.

    **[장면: 별무리호 함교]**

    **[배경 설명]**
    함교 내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우주가 압도적이다. 함장석에 앉은 이진아(30대 후반, 여성)는 단정하게 넘긴 머리와 차분한 표정으로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부함장 겸 항법사 박선우(30대 초반, 남성)는 여러 개의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워놓고 데이터 분석에 열중이다. 조종석에는 김태수(40대 초반, 남성)가 무심한 듯 능숙하게 조작 패널을 다루고 있다.

    **[인물: 이진아 함장]**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우 부함장, 특이사항은 없나?”

    **[인물: 박선우 부함장]**
    (고개를 살짝 저으며) “네, 함장님.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습니다. 지금은 어둠의 심장 성운 외곽을 따라 정기 탐사 중이니…”
    (홀로그램 스크린 하나가 깜빡인다. 선우의 눈이 가늘어진다.)
    “…음?”

    **[인물: 이진아 함장]**
    (선우의 변화를 감지하고) “무슨 일인가?”

    **[인물: 박선우 부함장]**
    “잠시만요… 이상하네요. 아주 미약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이전에 기록된 적 없는 주파수입니다.”

    **[인물: 김태수 조종사]**
    (뒤돌아보며) “새로운 항성계라도 찾았나? 이번엔 좀 쓸만한 거였으면 좋겠는데. 희귀 광물이라도.”

    **[인물: 박선우 부함장]**
    “아뇨, 이건… 항성계의 에너지 패턴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공적인 신호에 가깝지만,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어떤 통신 방식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장면: 함교 – 클로즈업, 선우의 홀로그램 스크린]**

    **[배경 설명]**
    스크린에는 불규칙하지만 일정한 패턴을 그리는 파형이 흐릿하게 나타난다. 파형의 중심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인다.

    **[인물: 이진아 함장]**
    “위치 추적.”

    **[인물: 박선우 부함장]**
    (손가락으로 스크린을 빠르게 조작한다) “네. 파동의 근원지는… 별무리호 진행 방향에서 약 32광년 전방. 어둠의 심장 성운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

    **[인물: 김태수 조종사]**
    “어둠의 심장 성운? 거긴 항성도 행성도 없이 암흑 물질만 가득한 곳 아니었나? 탐사 가이드라인에서도 권장하지 않는 지역인데.”

    **[인물: 이진아 함장]**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긴다) “인류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공 신호… 그것도 성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냥 지나칠 순 없지. 태수 조종사, 진로 변경. 파동의 근원지로.”

    **[인물: 김태수 조종사]**
    “알겠습니다, 함장님. 하지만 안전에 유의해야 합니다. 성운 내부는 예상치 못한 중력 변동이 심할 수 있습니다.”

    **[장면: 우주 – 별무리호]**

    **[배경 설명]**
    별무리호가 서서히 방향을 틀어 미지의 심연 속으로 향한다. 주변의 별빛들이 점점 희미해지고, 검붉은 성운의 가스가 별무리호를 감싸기 시작한다.

    **[효과음: 불안정한 추진음, 미세한 진동]**

    **[장면: 별무리호 함교]**

    **[배경 설명]**
    함교 내부의 긴장감이 고조된다. 선우는 스크린에 달라붙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태수는 조종에 집중한다. 이진아는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주시한다.

    **[인물: 박선우 부함장]**
    “신호가 점점 강해집니다!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워요. 중력 변동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인물: 김태수 조종사]**
    “이상하네. 이 정도 밀도의 성운에서 중력 변동이 없다는 건… 뭔가 인위적으로 안정화시키고 있다는 건가?”

    **[인물: 이진아 함장]**
    “전방 스캔 강화. 시각 정보 확보.”

    **[인물: 박선우 부함장]**
    “네! 스캔… 스캔 결과 확인! 함장님, 전방에… 뭔가가 있습니다!”

    **[장면: 함교 – 전방 유리창]**

    **[배경 설명]**
    검붉은 성운의 장막을 뚫고,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인물: 김태수 조종사]**
    (숨을 들이켜며) “이게… 대체…?”

    **[인물: 박선우 부함장]**
    (넋을 잃은 듯) “말도 안 돼… 이런 크기의 구조물이… 왜 아무런 기록도 없었지…?”

    **[장면: 우주 – 클로즈업, 외계 유물]**

    **[배경 설명]**
    성운의 한가운데, 별무리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떠 있다. 그것은 어떤 금속이나 암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검은 심연이 굳어버린 듯한, 혹은 별빛을 집어삼킨 결정체 같은 질감이었다. 표면에는 복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아지랑이처럼 몽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 공간마저 일그러뜨리는 듯한 미약한 중력장이 느껴진다.

    **[효과음: 낮고 불길한 공명음]**

    **[장면: 별무리호 함교]**

    **[인물: 이진아 함장]**
    (굳은 표정으로) “최대 출력으로 스캔. 구조 분석. 가능한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인물: 박선우 부함장]**
    “스캔… 스캔 결과가… 너무 기이합니다. 이건 저희 데이터베이스에 존재하는 어떤 물질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기체 같기도 하고, 무기체 같기도 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블랙홀을 굳혀놓은 것 같아요.”

    **[인물: 김태수 조종사]**
    “함장님, 강력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됩니다. 구조물의 중심부에서요. 하지만… 위험 신호는 아닙니다. 오히려… 초대장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인물: 이진아 함장]**
    (잠시 침묵하며 구조물을 응시한다) “탐사 준비. 수현 보안팀장과 유림 의무관을 함교로 호출해.”

    **[장면: 별무리호 함교]**

    **[배경 설명]**
    함교에 최수현 보안팀장(30대 중반, 남성)과 한유림 의무관(20대 후반, 여성)이 들어선다. 수현은 다부진 체격에 냉철한 표정이며, 유림은 침착하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인물: 이진아 함장]**
    “모두 모였군. 지금부터 상황을 설명한다.”
    (구조물의 홀로그램 영상을 띄운다)
    “우리가 발견한 이것은 미지의 외계 유물이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발견이지. 나는 이 구조물 내부로 직접 탐사를 진행할 것을 결정했다.”

    **[인물: 최수현 팀장]**
    “함장님,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닐까요? 구조물의 정체도 불분명하고,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인물: 박선우 부함장]**
    “수현 팀장님 말씀도 맞지만, 이것은 인류의 지평을 넓힐 엄청난 기회입니다. 이토록 완벽하게 보존된 미지의 외계 유물이라니… 연구 가치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인물: 한유림 의무관]**
    “하지만 혹시 모를 오염이나 미생물에 대한 대비는 되어 있습니까? 미지의 환경에 노출될 경우 인체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인물: 이진아 함장]**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탐사팀에 합류할 것이다. 선우 부함장, 최 팀장. 이렇게 셋이 한 조로 움직인다. 유림 의무관은 함선에서 우리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고 비상 상황에 대비해 주도록.”

    **[인물: 최수현 팀장]**
    “…알겠습니다, 함장님.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인물: 한유림 의무관]**
    “최대한의 안전 수칙을 지켜주세요. 생체 신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다면 즉시 귀환하세요.”

    **[인물: 이진아 함장]**
    “명심하겠다. 태수 조종사, 셔틀 준비. 구조물에서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 정지해 있도록.”

    **[인물: 김태수 조종사]**
    “알겠습니다, 함장님. 부디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장면: 별무리호 셔틀 격납고]**

    **[배경 설명]**
    진아, 선우, 수현이 특수 제작된 탐사용 슈트를 착용하고 있다. 슈트는 우주복보다 훨씬 유연하며, 내부에는 생체 정보를 모니터링하는 장치와 소형 에너지 무기가 내장되어 있다. 유림이 그들의 마지막 점검을 돕고 있다.

    **[인물: 한유림 의무관]**
    “진아 함장님, 생체 신호 정상. 선우 부함장님, 슈트 밀봉 완벽. 수현 팀장님, 무기 작동 확인.”

    **[인물: 이진아 함장]**
    “고맙다, 유림. 이제 우리가 직접 미지의 문을 열어볼 차례다.”

    **[인물: 최수현 팀장]**
    (에너지 라이플을 점검하며) “준비 완료됐습니다.”

    **[인물: 박선우 부함장]**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순간이 될 겁니다!”

    **[장면: 우주 – 셔틀 및 외계 유물]**

    **[배경 설명]**
    소형 셔틀이 거대한 외계 유물에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유물의 표면, 복잡한 문양들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부분에서 거대한 균열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한다. 마치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효과음: 낮고 깊은 공명음, 금속이 긁히는 듯한 소리]**

    **[인물: 이진아 함장 (교신)]**
    “태수 조종사, 진입 허가. 외부 환경 데이터 전송.”

    **[인물: 김태수 조종사 (교신)]**
    “알겠습니다, 함장님. 현재 유물 내부 환경은… 외부 우주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습니다. 공기 조성, 기압, 중력 모두 행성 환경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성분입니다.”

    **[장면: 외계 유물 내부 – 진입 지점]**

    **[배경 설명]**
    셔틀은 균열 사이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광활했다. 벽은 검은색과 보라색이 섞인 듯한 미지의 물질로 되어 있었고, 빛을 흡수하는 듯 음울하게 빛났다. 바닥은 거울처럼 매끄러웠으나, 발을 내딛으면 잔물결처럼 번지는 빛의 파동이 일었다. 공기는 차갑고 끈적했으며,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미세한 진동이 온몸을 울린다.

    **[효과음: 낮고 일정한 웅웅거리는 소리, 발걸음 소리]**

    **[인물: 이진아 함장]**
    (주변을 둘러보며) “내부 환경 안정. 대기 조성… 선우 부함장, 분석은?”

    **[인물: 박선우 부함장]**
    (분석기를 들고 흥분한 목소리로) “함장님, 이건… 이건 믿을 수 없습니다! 대기 성분은 지구와 거의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생명체가 호흡하도록 설계된 것 같습니다. 중력도 거의 1G! 하지만 이 벽의 물질은…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마치 이 공간 자체가 살아있는 것처럼…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습니다.”

    **[인물: 최수현 팀장]**
    (경계하며 주위를 살핀다) “시야 확보가 제한적입니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인물: 이진아 함장]**
    “전방 주시. 방어 태세 유지. 선우 부함장, 이 기묘한 문양들에 대한 정보는?”

    **[인물: 박선우 부함장]**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이건 언어라기보다… 어떤 에너지 흐름을 시각화한 것 같습니다. 마치… 이 구조물 전체의 ‘생각’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배경 설명]**
    그때, 진아의 발밑 바닥에서 아까와는 다른, 훨씬 강렬한 빛의 파동이 시작된다. 그 파동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가 벽의 문양들을 잠시 환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그 빛이 닿은 곳, 멀리 떨어져 있던 벽의 한 부분이 거대한 문처럼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문 안쪽은 칠흑 같은 어둠,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섬뜩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효과음: 낮게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 거대한 문이 열리는 마찰음]**

    **[인물: 이진아 함장]**
    (숨을 들이켜며) “이게… 던전의 시작인가.”

    **[인물: 최수현 팀장]**
    (무기를 바싹 쥐며) “함장님, 위험합니다. 미지의 존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물: 박선우 부함장]**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저 안에는… 대체 뭐가 있을까요…?”

    **[장면: 클로즈업, 진아의 굳은 결의에 찬 눈빛]**

    **[배경 설명]**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진아 함장]**
    (단호하게) “전진.”

    **[효과음: 문이 완전히 열리는 소리, 알 수 없는 낮은 웅얼거림]**

    **[마지막 장면: 유물의 거대한 문 안쪽을 향해 걸어가는 탐사팀의 실루엣]**

    **[에피소드 종료]**

  • 크툴루 신화 독립적인 단편 소설

    ## 잊혀진 심연의 노래

    산맥은 거대한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은 겨울의 앙상한 가지들처럼 서로 뒤얽혀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박힌 깊은 골짜기들은 햇빛조차 쉬이 허락하지 않는 검은 아가리 같았다. 나는 그 짐승의 목덜미쯤 되는 곳에 서서, 손에 든 낡은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종이의 가장자리는 헤지고 변색되어 있었지만, 그 위에 희미하게 그려진 기묘한 문양과 비정형적인 선들은 여전히 섬뜩한 생명력을 띠고 있었다.

    “교수님, 정말 이 길이 맞습니까? 벌써 해가 질 것 같은데요.”

    박선우의 목소리에는 불만이 역력했다. 곁에 선 그녀는 두툼한 패딩 점퍼를 입고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20대 후반의 젊은 지질학도인 그녀는 처음에는 이 탐사에 큰 기대를 걸었지만, 이제는 피로와 짜증만이 남은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한 달 내내 전국을 헤매다 찾아낸 이 험한 산길의 끝은,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는 오지였으니까.

    “맞아. 고대 문헌의 기록이 오류만 아니라면, 우리가 찾던 곳은 바로 이 근처야.”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사실 내 심장도 불안감으로 바싹 조여들고 있었다. 3년 전, 나는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정체불명의 상형문자로 가득 찬 낡은 양피지 한 장에 매료되었다. 수백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그 양피지에는 알려지지 않은 지명과 함께, 이 세상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걸고 그 양피지 속 비밀을 추적했고, 마침내 ‘어둠골’이라 불리는 이 잊힌 산악 지대가 그 단서와 이어진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저… 교수님. 저 산봉우리 보세요.”

    선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저 멀리, 가장 험준해 보이는 봉우리였다. 짙은 먹구름이 그 위를 낮게 깔고 있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드러난 산허리에는 기괴하게 깎인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었다. 그 바위의 형상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래, 양피지 속에서 보았던, 비정형적인 뼈대와 뒤틀린 면들이 만들어내는 형상과 흡사했다.

    “찾았다…!”

    내 입에서 터져 나온 탄성에 선우가 화들짝 놀랐다. 나는 거의 달리다시피 산을 올랐다. 선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뒤따라왔다. 마침내 바위 병풍 아래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거대한 바위들이 무너져 내린 흔적을 발견했다. 분명 몇 년 전 일어났던 산사태의 흔적이었다. 그 너머에는… 거대한 동굴 입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곳이… 그 양피지에서 말한 ‘심연의 입구’인가?”

    선우가 중얼거렸다. 어두컴컴한 동굴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목구멍 같았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침묵과 어둠만이 우리를 집어삼킬 듯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헤드램프를 켰고, 선우도 망설이다가 같은 동작을 취했다. 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찌르고 들어왔다. 축축한 흙냄새와 함께 알 수 없는 비린내가 섞여 있었다.

    “들어가자.”

    내 목소리는 어쩐지 들떠 있었다. 미지의 것에 대한 갈망, 학자로서의 호기심, 그리고 알 수 없는 충동이 뒤섞여 나를 이끌었다. 선우는 머뭇거렸지만, 결국 묵묵히 내 뒤를 따랐다.

    동굴 안은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천장은 끝없이 높이 솟아 있었고, 벽면은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동굴이라고는 믿기 힘든 완벽한 곡선들이 이어졌다. 헤드램프 빛이 닿는 곳마다, 벽에는 기묘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건… 어떤 문명의 흔적도 아닙니다. 이집트도, 마야도, 어떤 고대 부족의 양식도 아니에요.”

    선우가 조심스럽게 벽을 더듬으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외감과 함께 서서히 공포가 깃들기 시작했다. 문양들은 분명 그림이었지만, 그 형상들은 어떤 고정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뒤틀리고 변형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것들은 뼈였고, 촉수였으며, 동시에 거대한 눈동자였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야.”

    나는 중얼거렸다. 양피지에서 보았던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벽면의 문양들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것은 지도가 아니었다. 일종의 경고, 혹은 기록이었다.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욱 무거워졌다. 헤드램프 빛이 비추는 통로의 끝은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사라지는 듯했다. 우리가 걷는 발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바람 소리조차 없었다. 완벽한 침묵은 오히려 우리의 귀를 찢을 듯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교수님… 저기, 뭔가 이상한데요.”

    선우가 갑자기 멈춰 서서 손전등으로 한 지점을 비췄다. 벽의 한 부분이 다른 곳과 확연히 달랐다. 거대한 균열이 벽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그 균열의 틈새로 미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벽 저편에 미지의 우주가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빛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손을 뻗어 벽의 균열을 만졌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 하지만 빛이 새어 나오는 부분에서는 미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순간, 내 머릿속으로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섬광처럼 스쳐 지나갔다. 끝없이 펼쳐진 어둠, 형언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비명 소리…

    “젠장!”

    나는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선우는 내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찮으세요, 교수님? 얼굴이 새파래요.”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 가자.”

    나는 애써 침착한 척했지만, 이미 균열 속에서 본 환영은 내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 환영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나의 불안감이 만들어낸 허상이었을까?

    얼마나 더 걸었을까. 마침내 우리는 넓은 공간에 도달했다. 그곳은 자연적인 동굴이라기보다는, 거대한 건축물에 가까웠다. 셀 수 없이 많은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그 기둥들은 모두 뒤틀리고 비정상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거대한 제단이 솟아 있었다. 흑요석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는, 어떤 형상도 정의할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얼어붙은 파도 같기도 했고, 수많은 촉수들이 뒤얽힌 덩어리 같기도 했다. 그 표면에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는데, 그 빛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주기적으로 수축하고 팽창했다.

    선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교수님… 저게… 저게 도대체 뭡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미약한 속삭임에 가까웠다. 나 역시 말을 할 수 없었다. 내 이성은 저 물체가 어떤 존재인지 필사적으로 부정하려 했지만, 내 본능은 이미 그것의 정체를 직감하고 있었다. 양피지 속에서 묘사되었던, 세상의 시작보다도 오래된 존재. 인간의 언어로는 감히 정의할 수 없는, 우주적 공포의 한 조각이었다.

    나는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물체 주변에는 역시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다. 양피지에서 보았던 바로 그 문자들. 나는 빛나는 물체에 손을 뻗었다. 선우가 비명을 지르며 나를 말렸지만, 내 몸은 이미 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손끝이 차가운 표면에 닿는 순간, 나는 온몸이 전기로 지져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머릿속으로 거대한 정보의 흐름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것은 단순한 환영이 아니었다. 수억 년의 시간, 우주의 태동, 별들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초월한 어둠 속 존재들의 기원…

    나는 보았다.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크기의 존재들이 무한한 우주를 유영하는 것을. 그들은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었지만, 그 존재 자체로 모든 법칙을 무효화시키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지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것은, 그들의 그림자 중 하나, 혹은 그들을 섬기던 어떤 존재의 흔적이었다.

    나는 그들이 남긴 비명과 절규를 들었다. 영겁의 시간 동안 갇혀 있던 존재들의 고통이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내 정신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거대한 진실이 작은 인간의 정신을 찢어발기는 듯했다. 모든 지식과 이성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었다.

    “안 돼… 안 돼…!”

    나는 이를 악물고 그 정보를 거부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내 정신은 이미 오염되었다. 깨져버린 거울처럼,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그때, 제단 위의 물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고, 기괴한 저음의 울림이 동굴 전체를 뒤흔들었다. 그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언어였고, 동시에 존재의 외침이었다.

    *“깨어나라… 문이 열리고 있다… 너희는 들을 것이다… 우리의 노래를…”*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내 뇌를 직접 울리는 듯한, 차가우면서도 무한한 그 목소리. 선우는 이미 정신을 잃었는지, 아니면 그 공포에 완전히 압도되었는지, 제단 아래에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곳에서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적인 충동에 사로잡혔다. 이 모든 것을 잊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보았고, 들었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동굴 밖으로 기어 나왔다. 햇빛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차가운 달빛이 산등성이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온몸을 떨며 겨우 숨을 쉬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영상들이 끊임없이 재생되었고, 알 수 없는 비명 소리가 맴돌았다.

    선우는…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

    며칠 후, 나는 산 아래의 작은 마을에서 발견되었다. 누더기가 된 옷차림, 텅 빈 눈동자, 그리고 끊임없이 중얼거리는 알 수 없는 언어. 사람들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했고, 결국 병원에 수용되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김준호 교수가 아니었다. 나는 잊혀진 심연의 노래를 들은 자였다. 밤마다 나는 꿈속에서 거대한 어둠을 본다. 그 어둠 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를 부르고 있다. 그들은 내가 보았던 고대 유적 아래에서, 영겁의 잠에서 깨어나기 위해 노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노래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저 기다릴 뿐이다. 인간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진정한 주인이 깨어나 심연에서 기어 나올 그 날을.

    내 정신은 산산조각 났지만, 그 조각들은 여전히 내가 본 진실의 일부를 간직하고 있었다. 언젠가, 심연의 노래가 온 세상을 뒤덮을 때, 나는 아마도 그들의 첫 번째 합창단원이 될 것이다.

  • 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1장: 핏빛 수정

    축축한 어둠이 폐부를 찔렀다. 동굴 천장에서 뚝, 뚝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적막을 깨트리는 유일한 음성이었다. 진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횃불을 높이 들었다. 붉은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오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굴이었다. 제국 수도의 화려한 궁전에서 수없이 쏟아지는 불빛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이곳은 모든 생명이 간신히 숨 쉬는 곳이었다.

    “진호 형, 더는 못 가겠어요.”

    뒤따르던 어린 동료, 율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율은 채 열여덟도 되지 않은 몸으로 등에는 제 몸집만 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그 안에는 혹독한 제국의 세금으로 바쳐야 할 ‘어둠의 심장’ 수정 조각들이 들어있을 터였다. 모두 목숨을 걸고 캐낸 것들이다.

    진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왼손으로 벽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거친 바위의 감촉이 손바닥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겨우 이 정도에 지칠 때가 아니야, 율. 우리는 아직 목표량의 절반도 못 채웠어. 이대로 돌아가면 이번 달은 또 굶어야 할지도 몰라.”

    “하지만… 벌써 이틀 밤낮을 헤맸잖아요. 지난번에도 이 안쪽에서 마물한테 당한 사람이 몇인데… 제국 놈들은 우리가 여기서 죽든 살든 아무 관심도 없어요. 수정만 가져오면 된다고…” 율의 목소리가 점차 울음 섞인 쉰 목소리로 변했다.

    “알아.” 진호는 짧게 대답했다. 모를 리가 없었다. 제국의 황금빛 찬란한 문양은 늘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그려진다는 사실을. 평민들의 고통은 그들에게 그림자조차 드리우지 못했다.

    그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굴은 점점 더 좁아지고 어두워졌다. 습기와 함께 퀴퀴한 흙냄새, 그리고 희미한 피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마물의 흔적이었다. 이따금씩 바닥에 널브러진 짐승 뼈 조각들이 이곳의 위험을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조심해, 율. 발밑을 잘 보고.”
    그의 경고가 끝나기도 전에, 앞에서부터 슥슥,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호는 반사적으로 횃불을 앞으로 내밀었다. 불꽃에 일렁이는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

    “거미다…! 젠장, 독거미떼잖아!”

    율의 비명이 굴 안에 울려 퍼졌다. 거대한 동굴 거미 한 마리가 눅진한 거미줄을 토해내며 진호에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여덟 개 눈은 붉은 빛으로 번뜩였다. 진호는 재빨리 품에서 낡은 단검을 뽑아 들었다. 칼날은 지난 세월의 흔적처럼 군데군데 이가 빠져 있었지만, 그의 손에 들린 단검은 마치 살아있는 맹수처럼 거미의 다리를 정확히 노렸다.

    쉬이이익!

    거미의 날카로운 다리 하나가 잘려 나갔다. 녀석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더욱 맹렬하게 진호에게 덤벼들었다. 그 뒤로 수십 마리의 새끼 거미들이 거대한 어미를 따라 진호와 율에게 돌진하고 있었다. 놈들의 등에는 흉측한 검은 무늬가 선명했다.

    “율, 뒤로 물러나! 여기는 내가 막을게!” 진호는 소리쳤다.
    율은 겁에 질린 채 등 뒤로 주춤거렸다.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했지만, 진호는 그에게서 필사적인 생존의 의지를 보았다. 율은 이미 수십 번도 더 이런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을 테니까.

    진호는 쉴 새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거미의 끈적한 체액이 그의 옷을 더럽혔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은 오직 거미들의 움직임을 쫓았다. 칼날이 휘둘러질 때마다 거미들의 다리가 잘려나가고, 몸통이 꿰뚫렸다. 하지만 놈들은 끝없이 튀어나오는 듯했다. 이곳은 마물들의 소굴이었다. 제국의 탐욕이 평민들을 밀어 넣은 지옥이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진호의 눈에, 불현듯 굴 한쪽에 박혀 빛나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희미한 푸른빛이 주변 어둠을 가르고 있었다. 어둠의 심장 수정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발견했던 것보다 훨씬 크고, 맑은. 저 정도면 이번 달 할당량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값나가는 수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울렸다. 저렇게 노출된 채로 빛나는 수정은 함정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이런 깊은 곳에서는.

    “진호 형, 저거 봐! 저거면… 저거면 우리 다 살 수 있어!” 율이 흥분해서 외쳤다.
    율은 진호의 만류를 듣지도 않고 푸른빛을 향해 달려가려 했다. 진호는 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안 돼, 율! 저건…”

    쉬이이이이익!

    그 순간, 동굴 벽의 그림자가 흔들리더니, 거대한 촉수 하나가 진호의 앞을 가로막았다. 촉수는 순식간에 진호가 베었던 거미들의 시체를 꿰뚫고 허공에서 흔들렸다. 거미들은 촉수 끝에서 경련하다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거대한 촉수의 주인은 벽의 틈새에 숨어있던 거대한 촉수괴물이었다. 녀석의 몸은 어둠에 가려져 있었지만, 촉수 끝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횃불 빛에 번뜩였다.

    촉수괴물은 어둠의 심장 수정을 지키는 수호자였다. 진호는 직감했다. 그리고 놈이 이 굴에 나타난 것은 율이 말했던 ‘깊숙한 곳에서 마물에 당한 사람들’의 희생 때문일 터였다. 무분별한 채취가 놈들의 영역을 침범하고, 결국에는 더 강한 마물들을 불러내는 셈이었다.

    “젠장, 이런 괴물까지 나타났다고?” 진호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촉수괴물은 율이 바라보던 수정을 감싸는 듯, 몸을 움직여 길을 막아섰다. 녀석은 분명 그 수정을 지키고 있었다.

    진호는 다시 단검을 고쳐 잡았다. 살기 위해선, 그리고 율을 살리기 위해선 이 괴물을 쓰러뜨려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들끓었다. 왜 자신들이 이토록 위험한 곳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 왜 제국은 그들의 피땀을 당연하게 여기며 한 줌의 자비조차 베풀지 않는가?

    그때였다. 진호의 눈에 촉수괴물 뒤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건 어둠의 심장 수정보다 훨씬 작고, 더 깊숙이 박혀 있는 돌덩이였다. 그러나 진호는 본능적으로 그게 평범한 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희미하지만, 그 돌덩이에서는 핏빛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주변의 어둠의 심장 수정들이 푸른빛을 띠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불길하고도 강렬한 붉은빛.

    **핏빛 수정.**

    진호는 과거 제국이 금지한 마물의 부산물 중 하나로, 극한의 절망과 분노를 흡수하여 그 힘을 증폭시킨다는 전설의 돌을 떠올렸다. 그건 단순한 수정이 아니었다. 강력한 마력을 품은, 금기의 물건이었다. 제국조차도 직접 채굴을 금지하고, 발견 즉시 파괴하도록 명했던 위험한 존재.

    그런데 그 핏빛 수정이 이곳에, 이 촉수괴물 뒤에 있었다. 왜?
    그 순간, 진호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 촉수괴물은 단순히 수정을 지키는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 핏빛 수정이 촉수괴물을 이렇게 강력하게 만들고 있는 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어쩌면, 제국이 이 핏빛 수정의 존재를 알면서도 쉬쉬하고 자신들을 위험한 채굴에 내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의심. 핏빛 수정은 마물을 강화하는 효과뿐 아니라, 다른 위험한 힘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었다. 제국이 탐낼 만한, 혹은 숨기려 할 만한.

    그 순간, 진호의 손에 쥐어진 단검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느껴졌다. 그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던 분노가 단순한 살기로 변모하는 것을 느꼈다.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어쩌면 저 굴속 깊은 곳, 그리고 그 위에 군림하는 제국의 심장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율, 저 놈 뒤에 있는 붉은 돌멩이를 봐!” 진호는 거의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저게 저 놈의 힘의 근원일지도 몰라. 내가 시선을 끄는 동안, 너는 저 돌멩이를 부숴!”

    율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지만, 진호의 단호한 눈빛과 명령에 무언가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형은…!”

    “잔말 말고, 목숨 걸어. 우리가 살 길은 그것뿐이다!”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더 이상 단순히 마물에 대한 공포가 아니었다. 핏빛 수정 뒤에 감춰진 제국의 추악한 진실을 향한 냉철한 분노였다.
    이 굴의 어둠은, 제국의 어둠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리고 이 어둠을 걷어낼 방법은, 결국 스스로 피를 흘리며 싸워 나가는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촉수괴물이 거대한 몸을 꿈틀거리며 진호를 향해 촉수를 휘둘렀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진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몸을 날렸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단검이 마침내 핏빛 수정을 향해 던져질 운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생존 싸움이 아니었다. 어쩌면, 오랜 시간 제국의 발아래 짓밟혀 온 평민들의 작은 반격의 서막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의 심장이 핏빛 수정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광활한 심연 속, 모든 빛을 집어삼킨 듯한 암흑 너머로 ‘아스트라호’가 유유히 미끄러져 나아가고 있었다. 텅 빈 우주를 가로지르는 은하 간 탐사선은 마치 거대한 금속 고래처럼 고요하고 장엄하게, 그러나 한없이 외로이 떠다니는 중이었다. 함내를 채우는 것은 오직 생명 유지 장치의 규칙적인 웅웅거림과, 가끔씩 들려오는 승무원들의 나직한 대화 소리뿐.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향한 여정은, 때로는 지루하리만치 평온하고, 때로는 예측 불가능한 공포로 가득했다.

    “함장님, 최 항해사입니다. 비상 사태는 아니지만, 특이 신호 감지되었습니다.”

    평온을 깨뜨린 것은 항해사 최은우의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섞인 목소리였다. 조종석에 앉아 있던 이지훈 함장은 눈을 비볐다. 그는 스크린 가득 펼쳐진 별들의 은하수를 응시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탐사 임무는 길고 지난했으며, 대부분의 시간은 예측 가능한 데이터와 지루한 관측의 연속이었다. ‘특이 신호’라는 단어는 잠들어 있던 그의 감각을 예리하게 벼려냈다.

    “최 항해사, 자세히 보고해.” 이지훈 함장의 목소리는 항상 그랬듯 침착했지만, 미묘한 긴장이 묻어났다.

    “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없는 패턴입니다. 에너지 방출량은 미미한데, 물질 구성이… 설명 불가능합니다. 마치 무(無)에 가까운 밀도인데, 동시에 막대한 질량을 가진 것처럼 감지됩니다. 위치는 현재 항로에서 약 0.5광초 지점입니다.”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보고에 함교의 분위기는 순간 얼어붙었다. 무(無)에 가까운 밀도를 가진 막대한 질량? 최은우는 스크린에 띄워진 파형을 재차 확인했다. 그녀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잡혔다.

    “수석 과학자 김미소 박사, 바로 함교로 와 주십시오.” 이지훈 함장이 통신망에 명령을 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구실 가운을 걸친 김미소 박사가 흥분과 호기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함교에 나타났다. 그녀는 스크린을 보자마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대체 뭡니까? 블랙홀도 아니고, 중성자별도 아니고… 감지되는 파장에서는 그 어떤 생명체의 흔적도 없는데, 인공적인 신호의 특성을 띠고 있어요. 하지만 저희가 아는 어떤 기술로도 구현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에너지 흐름입니다.”

    그녀는 스크린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중얼거렸다. 과학자로서의 직관이 ‘이것은 뭔가 엄청난 것’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이지훈 함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미지의 영역에서 발견된 미지의 존재. 위험할 수도 있지만, 인류의 지평을 넓힐 기회이기도 했다.

    “박 보안팀장, 무장 팀 대기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다. 최 항해사, 대상과의 거리를 좁혀.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 이지훈 함장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스트라호는 거대한 몸을 천천히 돌려 미지의 신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망원경으로 대상의 모습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함장님… 시각 정보 확인되었습니다.” 최은우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경외심과 함께 명백한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스크린에 떠오른 이미지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웠다. 그것은 어떤 행성도, 우주선도 아니었다.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하지만 어떤 공학적인 구조물과도 달랐다. 육면체도, 구도, 원통형도 아니었다. 그것은 시공간의 모든 논리를 거부하는 형태로, 보는 이의 눈에 끊임없이 다른 모습으로 각인되는 듯했다. 어떤 각도에서 보면 거대한 수정 같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복잡하게 얽힌 뿌리처럼 보였다. 표면은 끊임없이 미묘한 빛을 내뿜으며 색을 바꾸었고, 그 색들은 지구상의 어떤 색과도 달랐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날 것 같은,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이게…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겁니까…?” 박정식 보안팀장이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잔뼈 굵은 군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경외와 혼란이 가득했다.

    김미소 박사는 흥분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완벽한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결정체군요! 저것은 단순한 물질이 아니에요. 시공간 그 자체를 뒤틀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겁니다! 중력 렌즈 현상도 관측됩니다. 주변의 별빛이 저 구조물에 의해 왜곡되고 있어요!”

    이지훈 함장은 망설였다. 본능적으로 이것에 가까이 가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호기심은 인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탐사선, 준비시켜. 박 팀장, 김 박사, 나. 셋이 간다.”

    탐사 소형정은 아스트라호를 떠나 미지의 구조물로 향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묘한 진동이 소형정 내부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외부 스피커로 잡음이 지지직거렸다.

    “젠장, 노이즈가 심하군.” 박 팀장이 투덜거렸다.

    김미소 박사는 외부 센서의 수치를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놀라워요. 이 구조물 주변은 전자기파 스펙트럼 전체가 뒤틀려 있어요. 마치 이곳이 우주의 균열점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침내 소형정은 구조물에서 불과 몇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 멈춰 섰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거대함과 기이함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표면은 매끄럽고 차가워 보였지만, 동시에 내부에 뜨거운 에너지가 꿈틀거리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문이나 입구도 보이지 않았다. 완벽하게 닫힌, 그러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거대한 예술 작품 같았다.

    “접촉 시도합니다.” 김미소 박사가 장갑을 낀 손을 뻗어 탐사선 외부로 이어진 로봇 팔을 조작했다. 로봇 팔 끝에 달린 특수 센서가 구조물의 표면에 닿는 순간, 정전기처럼 ‘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소형정 내부의 모든 조명이 깜빡였다.

    “무슨 일이야!” 박 팀장이 소리쳤다.

    “미지 에너지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센서가 과부하되고 있어요!” 김미소 박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였다.
    지진이라도 난 듯 소형정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동시에 이지훈 함장과 박 팀장, 김미소 박사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강렬한 이미지가 쏟아져 들어왔다.

    수십억 개의 도시 불빛이 밤하늘을 수놓은 거대 도시의 풍경.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리는 마천루.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의 얼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꿰뚫는, 차갑고 거대한 그림자의 움직임. 그 그림자는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거렸고, 도시의 건물들을 집어삼키며 확장해 나갔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절망과 공포는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실제로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귀에서는 알 수 없는 언어의 속삭임이 맴돌았고, 피부에는 차가운 금속과 흙먼지가 닿는 듯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게… 대체 뭐야!” 박 팀장이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그의 강인한 정신력도 이 갑작스러운 침공 앞에서는 무력했다.

    김미소 박사는 눈을 감고 몸을 떨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보았다.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눈동자들을. 그것들은 도시의 불빛처럼 빛났지만, 그 빛은 따뜻함이 아니라 끝없는 어둠을 담고 있었다.

    이지훈 함장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심연의 바닥에서 올라온 듯한 끔찍한 절망을 느꼈다. 그가 보았던 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미래의 비극, 혹은 과거의 잊혀진 재앙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했다. 이 우주 구조물은 그저 죽어 있는 물질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담고 있었고, 그것은 인류의 이해를 넘어선 존재였다.

    “철수! 당장 철수하라!” 이지훈 함장이 소형정의 자동 조종 장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소형정의 모든 전원이 나갔다. 깜깜해진 조종석, 적막한 침묵 속에서 세 명의 승무원은 서로의 존재조차 희미하게 느낄 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정적을 깬 것은 김미소 박사의 나직하고 몽롱한 속삭임이었다. 그녀는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눈을 희미하게 뜨고 있었다.

    “…그림자가… 도시를… 먹어치웠어… 그들은… 돌아온 거야….”

    그녀의 눈동자는 더 이상 그녀 자신의 것이 아닌 듯, 알 수 없는 깊은 어둠을 담고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은, 방금 그들이 보았던 도시를 집어삼키던 수많은 눈동자들과 섬뜩하게 닮아 있었다.

    아스트라호 본선에서는 미지의 구조물이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마치 먹이를 삼키는 포식자처럼, 그곳은 소형정을 삼키고 그 안에 갇힌 인간들의 정신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 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의 무림: 천랑호, 잊힌 유산을 마주하다 (제12화)

    무한히 펼쳐진 심우주의 검은 장막 속, 인류 문명의 가장 먼 변방을 탐사 중이던 천랑호는 마치 죽은 심장처럼 미동도 없이 표류하고 있었다. 함교의 주 스크린에는 별 하나 없는 칠흑 같은 허공만이 가득했다. 적막은 깊었고, 그 깊은 침묵은 이따금 들려오는 함선의 미세한 기계음과 승무원들의 나직한 숨소리만이 깨뜨릴 뿐이었다.

    “함장님, 이상 신호 재확인했습니다.”

    정적을 깬 것은 과학 장교 이하율의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서린 목소리였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콘솔 위를 빠르게 스치자, 주 스크린 한쪽에 붉은색 경고 마크와 함께 정체불명의 에너지 파형이 번개처럼 깜빡였다.

    “좌표는?” 강무진 함장이 미동도 없이 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검은 우주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은 통찰과 경계심은 누구보다 강렬했다. 거친 풍파를 겪어낸 바위 같은 얼굴 위로 깊게 패인 주름은 그의 오랜 경험과 굳건한 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불과 0.5광초 이내입니다. 저희 탐사 경로에서는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미개척 영역이죠.” 하율은 말을 이었다. “에너지 파형은… 분석 불가합니다. 기존 데이터베이스에 일치하는 패턴이 전혀 없습니다. 마치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에서 방출되는 듯합니다.”

    함교 안의 모든 시선이 강무진에게로 향했다. 미지의 신호, 미개척 영역. 우주 탐사선에겐 이보다 더 흥미롭거나, 혹은 위험한 유혹은 없었다.

    강무진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내면에서는 오랜 무인의 본능이 깨어나고 있었다. ‘미지의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열거나, 혹은 치명적인 함정일 수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나지막이 명령했다.

    “접근 속도 10으로 하강. 근거리 분석 모드 전환. 박진호, 비상 경계 태세 준비.”

    “알겠습니다, 함장님!” 보안팀장 박진호는 우렁찬 목소리로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단단한 체구와 날카로운 눈빛은 언제든 닥쳐올 위협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었다. 박진호는 학창 시절부터 우주 보안 아카데미에서 최고 수준의 무술과 전투 훈련을 수료한 인재였다.

    천랑호는 거대한 검은 물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서서히 속도를 줄여나갔다. 이윽고 주 스크린에 미세한 점 하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점은 점점 커져갔고, 그 형태가 드러나는 순간, 함교 안에서는 나직한 탄성들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거대한 소행성도, 버려진 우주 정거장도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기묘하게 뒤틀리고 융합된 암석 덩어리였다. 표면은 낡고 거칠었지만,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비쳐 나오는 영롱한 푸른빛은 마치 심연 속에서 잠들어 있던 고대의 눈동자 같았다.

    “젠장… 이건 또 뭐야?” 박진호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전투병 특유의 긴장감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 교차했다.

    “외관만으로는 판별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저 푸른빛에서 아까 그 이상 에너지 파형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하율의 목소리가 떨렸다.

    강무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지만, 그 시선이 닿는 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어둠과 동시에 섬뜩한 매력이 공존하고 있었다. “원격 탐사선 발진 준비. 승무원은 최저 인원으로 유지하고, 나머지 인원은 격벽 내 대기한다.”

    수 분 후, 강무진 함장과 이하율, 그리고 박진호만이 비좁은 소형 탐사선에 몸을 실었다. 천랑호가 뿜어내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 탐사선은 미지의 암석 덩어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암석 덩어리의 규모는 더욱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표면에는 인공적으로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빼곡했고, 그것들은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핏줄처럼 푸른빛을 희미하게 띠고 있었다.

    “함장님, 전방에 인공 구조물로 추정되는 입구가 있습니다. 외부 에너지 방어막은 없습니다.” 하율의 손가락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입구는 매끄러웠다. 마치 돌을 깎아 만든 동굴 같았지만, 그 형태는 분명 자연적인 것이 아니었다. 고대에 사라진 문명이 남긴 흔적, 혹은 외계 존재가 남긴 표식. 어느 쪽이든, 인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었다.

    강무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잊힌 무공 비급에나 나올 법한 ‘고대의 힘’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는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심연 속으로 이끄는 거대한 운명의 실타래 같았다.

    “진입한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결연했다.

    탐사선이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부는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천연 동굴처럼 불규칙하게 뻗어 나가는 통로에는 사방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은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을 따라 마치 살아있는 피처럼 흐르고 있었다. 공기 속에는 흙먼지와 함께 알 수 없는 종류의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고, 귓가에는 마치 바위 틈새로 바람이 흐르는 듯한 웅웅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함장님, 이쪽입니다. 에너지 파형의 진원이 감지됩니다.” 하율이 작은 휴대용 탐지기를 들고 앞장섰다.

    통로의 끝, 거대한 원형 공간이 나타났다. 그 공간의 중앙에는, 모든 빛과 에너지의 근원처럼 보이는 것이 거대한 제단 위에 놓여 있었다.

    그것은 구형이었다. 성인 남자의 머리보다 약간 큰 크기. 표면은 매끄러웠고, 색깔은 밤하늘처럼 깊은 검정이었다. 하지만 그 검은색 안에는 은하수처럼 수없이 많은 미세한 푸른빛 점들이 박혀 있었고, 그 점들은 제각기 독립적인 생명처럼 꿈틀거리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우주를 통째로 담아낸 듯한 모습이었다.

    경외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섬뜩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박진호는 저도 모르게 검집에 손을 얹었다. 그의 등골에는 알 수 없는 한기가 흘렀지만, 동시에 주체할 수 없는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강무진은 아무 말 없이 그 구형 물체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무언가 읽을 수 없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치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어떤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한, 아득하고도 익숙한 기분이었다.

    “함장님… 저게… 저게 그 신호의 근원입니다.” 하율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빛에는 공포와 매혹이 뒤섞여 있었다.

    강무진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제단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감은 주변의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했다. 구형 물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분명 위협적이었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이 있었다. 마치 그가 오랜 시간 찾아 헤매던, 혹은 피하고 싶었던 ‘진실’이 저 안에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구형 물체 바로 앞까지 다다른 순간, 강무진은 멈춰 섰다. 그리고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마치 홀린 듯이 검은 구체 위로 뻗어 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구체에 닿는 순간…

    공간이 일그러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웅웅거리던 소리는 순식간에 폭풍처럼 증폭되었고, 푸른빛 점들은 마치 살아있는 불꽃처럼 격렬하게 요동쳤다. 구체는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제단과 바닥의 고대 문양들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함장님!” 하율과 박진호의 비명 소리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강무진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고통에 일그러졌지만, 곧이어 알 수 없는 환희와 경외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변했다. 그의 눈동자는 빛났고, 그 안에는 우주 전체가 담겨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때, 구체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강무진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단순한 충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의 근원을 뒤흔드는 거대한 흐름이었다. 강무진의 몸에서는 미세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고, 그의 주변 공기가 마치 왜곡된 거울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억겁의 세월을 뛰어넘어 전해지는 듯한, 고대의 속삭임이 울려 퍼졌다.

    *정신(精)을 벼리고… 기(氣)를 모아… 신(神)을 깨워라…*

    그 속삭임과 함께, 강무진의 몸은 허공으로 떠올랐다. 푸른빛은 더욱 강렬해졌고,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난 태고의 무신(武神)과 같았다.

    하율과 박진호는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이 우주 한가운데서, 그들은 인류의 지식을 뛰어넘는 어떤 ‘힘’의 발현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 순간, 구체에서 마지막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우주의 모든 어둠을 삼키는 듯했고, 세 사람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온 것은,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서막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됩니다.)

  • 선협 (신선)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하아, 망할. 또 잡초 뽑기라니.

    강운은 손바닥에 잡힌 거친 흙과 질긴 풀뿌리의 감촉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운각의 막내 제자이자, 사실상 잡무를 도맡아 하는 머슴이나 다름없는 신세. 다른 사형들은 아침 일찍부터 도법 수련에 열중하거나, 기의 흐름을 다스리는 명상에 잠기지만, 강운의 하루는 언제나 이런 육체노동으로 시작하고 끝났다.

    “강운아! 거기 묵은 땅도 좀 갈아엎어라! 게으름 피우지 말고!”

    멀리서 들려오는 사부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강운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사부, 아니 장로라고 불리는 저 노인은 젊은 시절 뛰어난 재능으로 한때 청운각을 이끌었으나, 지금은 고목처럼 시들어버린 문파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는 데 급급한 처지였다. 그리고 강운은 그런 청운각의 마지막 희망이자, 동시에 가장 무능한 존재로 여겨졌다.

    그에게는 영기(靈氣)를 느끼는 감각이 거의 없었다. 아무리 심법을 외고 명상을 해도, 그의 몸 안에는 마치 텅 빈 동굴처럼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손쉽게 기운을 끌어모아 작은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나뭇잎을 띄울 때, 강운은 그저 손가락을 꼼지락거릴 뿐이었다. 열 살에 청운각에 들어온 후 칠 년, 강운은 이제 어엿한 열일곱 청년이 되었지만, 그의 기해(氣海)는 여전히 메마른 사막 같았다.

    “젠장… 정말 평생 이럴 수는 없는데.”

    강운은 불평을 중얼거리며 손에 든 괭이로 땅을 힘껏 내리찍었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괭이 끝이 딱딱한 무언가에 부딪혔다. 돌인가? 싶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괭이가 닿은 지점의 흙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강운은 호기심에 괭이를 치우고 손으로 흙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장로가 시킨 잡초 제거 구역은 청운각 뒤편의 오래된 폐허와 맞닿은 곳이었다. 옛 선조들이 수행하던 제단 터였지만, 문파가 쇠락하면서 관리되지 않고 버려진 지 오래였다. 이런 곳에 무엇이 묻혀있을까.

    흙을 파낼수록 빛은 점점 선명해졌다. 푸른색과 은색이 뒤섞인 오묘한 광채였다. 그의 손이 닿은 흙은 기이하게도 따스했다. 마침내 흙더미 속에서 드러난 것은 한 손에 움켜쥘 만한 크기의 돌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돌과도 달랐다.

    정육면체의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표면은 검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그 안에서 마치 살아있는 듯 은빛의 작은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마법의 룬 문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요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존재감을 뿜어내는 듯했다. 마치 수만 년의 세월을 응축한 듯한 기운.

    강운은 홀린 듯 그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차가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손에 닿는 순간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인 미약한 진동과 함께 따뜻한 기운이 손바닥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강운의 머릿속을 벼락처럼 강렬한 메시지가 꿰뚫고 지나갔다.

    `잃어버린… 기억… 깨어나라…`

    환청인가? 아니면 뇌리에 직접 새겨진 음성인가? 혼란스러웠지만, 강운은 본능적으로 그 돌이 자신에게 무언가를 전달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따뜻한 기운은 이내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손바닥을 넘어 팔뚝을 타고 심장으로 향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니, 그의 심장이 아니라 돌멩이가 그의 심장 박동과 함께 진동하는 것 같았다.

    “으윽…!”

    갑작스러운 고통에 강운은 돌멩이를 놓칠 뻔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마치 자석에 이끌린 쇠붙이처럼 돌멩이를 놓지 못했다. 뜨거워지는 기운은 고통을 넘어선 황홀경으로 변해갔다. 메말랐던 그의 기해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강운은 걷잡을 수 없는 이미지의 홍수에 휩쓸렸다. 거대한 산맥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하늘을 가르는 푸른빛 용이 포효하며 대지를 찢는 모습, 별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장엄한 광경…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감히 그려낼 수 없는 태고의 힘과 지혜가 그의 의식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이건… 뭐야…?”

    환영 속에서 강운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의 몸은 이제 더 이상 그만의 것이 아닌 듯했다. 존재 자체가 뒤흔들리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무의식중에 돌멩이를 더욱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바닥 안의 돌멩이는 이제 더 이상 그저 빛을 내는 돌멩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박동에 맞춰 강운의 몸속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단 한 번도 꿈틀거리지 않았던 메마른 기해 속에서, 아주 미세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깨어나기 시작했다.

    환영은 빠르게 지나갔고, 고통과 황홀경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강운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 손안의 돌멩이는 아까처럼 잔잔하게 빛날 뿐이었다. 그러나 강운은 변했다.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시야였다. 늘 흐릿하게만 보이던 세상의 풍경이 마치 막을 걷어낸 듯 선명하게 다가왔다. 멀리 떨어진 나뭇잎의 떨림, 벌레들의 움직임, 심지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미세한 영기의 흐름까지도 어렴풋이 감지되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몸. 메말랐던 기해는 여전히 비어 있는 듯했지만, 그 안쪽에 아주 작은 실오라기 같은 기운이 간신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미약하기 짝이 없는 기운이었지만, 강운은 그것이 자신의 몸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했다. 칠 년간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게… 영기인가?”

    강운은 조심스럽게 돌멩이를 품속 깊이 숨겼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늘 풀 죽어 있던 시선에는 생기가 돌았고, 절망뿐이던 마음속에는 처음으로 희미한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는 잡초 뽑는 일을 마저 해치웠다. 그러나 그의 손놀림은 아까와 달랐다. 괭이를 휘두를 때마다, 그 미세한 기운이 손끝에 모여들어 더 강력하고 정확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것을 느꼈다. 힘든 육체노동도 전보다 훨씬 수월하게 느껴졌다.

    해 질 녘,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로 돌아가는 강운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문파의 다른 제자들은 그의 달라진 표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전히 잡초나 뽑는 무능한 막내 제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나 강운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오늘,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태고의 힘과 마주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힘이, 자신의 메마른 운명을 뒤흔들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품속의 돌멩이가 희미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맥동하고 있었다. 강운은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더 이상 그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제, 깨어난 고대의 힘과 함께, 미지의 길을 걷기 시작할 참이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함장님, 377구역에서 이상 신호 감지되었습니다.”

    항법사 김민준이 목소리를 살짝 높였다. 수십 년째 이어지는 심우주 탐사선 아르테미스 호의 단조로운 일상에 균열이 가는 순간이었다. 서진호 함장은 길게 하품을 뱉으며 함장석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무미건조한 보고에 그의 눈은 여전히 반쯤 감겨 있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상 신호’라는 건 대부분 잊힌 잔해물이거나, 예측 불가능한 공간 왜곡 현상에 불과했으니까.

    “김 항법사, 또 그 지겹도록 반복되는 오류 신호겠지. 시스템 재점검해.”

    “아닙니다, 함장님! 이번엔 달라요. 스캔 패턴이… 그 어떤 데이터베이스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민준의 목소리에 미묘한 흥분이 섞여 있었다. 진호는 그제야 눈을 번쩍 떴다. 움직인다? 죽은 우주에서 움직이는 건 살아있는 유기체 아니면, 아니면….

    “궤적 추적 중입니다. 속도는 광속의 0.05배, 크기는 대략 중형 구축함 정도… 하지만 모양새가 일반적인 추진체의 흔적과는 달라요. 방출 에너지도 전혀 감지되지 않고요.”

    수석 과학자 이수진이 조종석 뒤편의 메인 홀로그램 패널로 다가갔다.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패널 위를 훑었다. 푸른빛으로 빛나는 우주 지도 한켠에 작은 붉은 점이 깜빡이고 있었다. 그 점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불규칙하게 진동하는 것 같았다.

    “에너지 방출이 없다면, 어떻게 저 속도를 유지하죠? 질량 추진입니까? 아니면…” 수진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근처 천체와 중력 간섭도 없습니다. 자체적으로 움직이는 게 확실해요. 이런 건 처음 봅니다.” 민준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눈동자에 호기심과 함께 미약한 두려움이 스쳤다.

    진호는 잠시 망설였다. 임무는 명확했다. 미개척 항성계를 탐사하고 새로운 자원을 찾아내는 것. 정체불명의 위험 요소를 추적하는 것은 명백한 임무 이탈이었다. 하지만 그의 본능이 속삭였다. *이건, 달라. 이건 평범한 게 아니야.*

    “궤적을 따라가. 속도를 3분의 1로 줄이고, 모든 센서를 그 물체에 집중시켜. 수석 엔지니어 박선우, 비상 상황 대비해서 동력계 점검해.”

    “함장님!” 박선우가 굳은 표정으로 외쳤다. “미지의 물체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는 건 위험합니다. 통신도 불가능하고, 정체도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더 다가가야 하는 거야, 선우.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알려진 것만 탐사하러 온 게 아니잖아.” 진호의 눈빛에 결연함이 서렸다.

    아르테미스 호는 거대한 심해어처럼 어두운 우주를 미끄러지듯 나아갔다. 수십 시간이 흘렀을까. 홀로그램 패널의 붉은 점은 이제 육안으로도 식별 가능한 형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함장님, 전방 5천 킬로미터. 육안으로 식별됩니다.” 민준의 목소리가 떨렸다.

    메인 스크린에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다.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지금까지 인류가 상상하고 만들어냈던 어떤 우주선과도 달랐다. 표면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은은한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매끄럽고 유기적인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거대한 생명체가 심연에서 잠들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떤 연결부도, 창문도, 추진 기관의 흔적도 없었다. 완벽한 하나의 조각상 같았다.

    “세상에… 저게 도대체 뭐지?” 수진이 스크린에 손을 뻗을 듯이 다가섰다. 그녀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했다. “어떤 금속으로도 보이지 않아. 살아있는 유기체 같기도 하고, 아니면… 전혀 다른 존재인가?”

    선우는 기함했다. “저렇게 거대한 물체가 아무런 에너지 방출 없이 우주를 떠돈다고요? 말도 안 돼!”

    진호는 침묵 속에서 스크린을 응시했다. 거대한 정체불명의 유물은 어둠 속에서 고요히 존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유물 주변의 어둠이 일렁이는 것을 진호는 보았다. 마치 대기 중의 아지랑이처럼 공간 자체가 일그러지는 듯한 착시 현상이었다.

    “전자기장 이상! 모든 센서에 노이즈 발생합니다!” 민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스크린의 영상이 일순간 지지직거렸다.

    “함장님, 유물에서… 미약한 진동이 감지됩니다. 주파수가… 아, 아니, 이건 진동이 아니에요.” 수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건… 어떤 언어 같아요. 너무나 오래되고… 너무나 원초적인.”

    진호는 심장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스크린 속 유물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의 귓가에는 마치 웅웅거리는 낮은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했다. *너희는, 이 침묵을 깨러 왔구나.*

    “모든 동력 기관을 정지시켜! 지금 당장!” 진호의 목소리가 함교를 울렸다.
    늦었다. 유물은 이제 더 이상 침묵하고 있지 않았다.
    아르테미스 호의 모든 조명이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절대적인 어둠 속에서, 저편의 유물이 더욱 선명한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은 아르테미스 호의 내부로, 승무원들의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그것은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고, 꿈이었으며, 아득한 과거의 절규였다.
    아르테미스 호의 모든 승무원들이 동시에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이 미지의 존재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었다.
    심연에서 깨어난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의 잠을 깨웠다.

    어둠 속에서 진호는 자신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들었다.
    *환영한다, 새로운 손님들이여.*
    그 목소리는 너무나 생생해서, 마치 자신의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들은 이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우주의 깊은 곳에서, 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세계의 문을 열어버렸다.
    그리고 그 문은, 도시의 거리에서 속삭이던 모든 환상과 악몽의 시작일지도 몰랐다.

  • 크툴루 신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불협화음의 공명

    지훈은 익숙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텅 빈 복도가 굳은 심장처럼 삐걱거렸다. 도시의 소음이 희미하게 스며드는 창문 너머로, 그는 자신의 낡은 오피스텔에 발을 디뎠다. 퇴근 후의 이 고요한 순간이 유일한 안식처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몸을 던지자, 푹신한 쿠션이 그의 무게를 받아내며 낮게 신음했다.

    “젠장, 오늘도 죽는 줄 알았네.”

    중얼거리는 목소리마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에어컨 리모컨을 찾아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하는 순간, 리모컨이 ‘슥’ 하고 미끄러졌다. 그의 손가락이 미처 닿기도 전에, 리모컨은 소파 팔걸이를 따라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뭐야, 오늘따라 미끄럽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중얼거리며 몸을 숙여 리모컨을 주웠다. 낡은 원룸이라 바닥이 고르지 않은가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에어컨을 켰다. 시원한 바람이 금세 방 안을 채웠지만, 왠지 모르게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며칠이 더 흘렀다. 이상한 일들은 점점 빈번해졌다.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분명 가지런히 놓아두었던 음료수 캔들이 제멋대로 굴러다녔다. 컵라면을 끓이려 물을 끓이던 중, 가스레인지 불이 ‘픽’ 하고 혼자 꺼지는 일도 있었다. 처음에는 가스 공급이 불안정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휴대폰 충전기가 제멋대로 뽑혀 있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오면 거울에 습기가 가득한데도 희미하게 손자국이 찍혀 있는 날도 있었다.

    지훈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그는 깔끔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결코 엉망으로 사는 편도 아니었다. 특히 매일 쓰는 물건의 위치는 뇌리에 박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모든 것이 제자리를 벗어나 삐걱거렸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탁, 틱, 탁’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는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소리는 부엌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처음엔 쥐라도 나타난 건가 싶어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소리는 규칙적이었다. 마치 작은 물체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무언가를 긁는 소리 같기도 했다. 지훈은 불안한 마음에 손전등을 들고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누구세요…?”

    허공에 대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다만 ‘탁, 틱, 탁’ 하는 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지훈의 눈에, 식탁 위 도마가 들어왔다. 도마 위에 놓여 있던 칼이, 제멋대로 ‘까딱까딱’ 흔들리고 있었다. 칼끝이 도마에 부딪히며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지훈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손에 든 손전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숨을 멈추고 칼을 응시했다. 칼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손으로 흔드는 것처럼, 일정하고 기괴한 리듬으로 흔들렸다.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일 때마다, 지훈은 자신의 눈이 착각하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칼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자신을 응시하는 것을 알아챘다는 듯, ‘따당!’ 하고 좀 더 강하게 도마를 찍더니, 이내 ‘촤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흐읍!”

    지훈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칼이 떨어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쥐라거나, 낡은 건물의 진동이라거나, 그런 합리적인 설명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부리나케 다시 침실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썼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불 속에서 휴대폰을 꺼내 ‘폴터가이스트 현상’, ‘귀신 아파트’, ‘유령’ 같은 검색어를 입력했다. 온갖 괴담과 도시 전설이 쏟아져 나왔다. 하나같이 그의 현재 상황과 소름 끼치도록 유사했다.

    다음 날, 지훈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했다. 친구는 피곤해서 헛것을 본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야, 김지훈. 너 요즘 야근에 시달려서 번아웃 온 거야. 내가 보약을 한재 지어줄까?”
    “아니, 진짜라니까? 칼이 혼자 움직였다고!”
    “하하, 영화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네 원룸이 무슨 강령술 현장도 아니고.”

    친구는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지훈은 더 이상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일상은 기묘한 일들로 점철되어갔다. 욕실에 걸어둔 수건이 엉뚱한 곳에 떨어져 있거나, 냉장고 문이 자꾸만 열려 있었다. 현관문의 디지털 도어락이 ‘삐빅’ 소리를 내며 저절로 열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밤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소리나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분명히 그는 혼자였다.

    어느 저녁, 지훈은 거실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드라마가 흘러나왔다. 그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언제 어디서 또 무엇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때, 갑자기 ‘덜컹!’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근원지는 옷장. 지훈은 젓가락을 든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 옷장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옷장 안에 갇혀서 안간힘을 쓰며 문을 흔드는 것처럼.

    ‘설마… 설마 진짜 누가 들어와 있나?’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그 생각마저도 기이하게 느껴졌다. 도어락은 분명히 닫혀 있었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옷장 문은 ‘덜컹! 덜컹!’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쿵!’ 하는 굉음과 함께 활짝 열렸다.

    옷장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의 낡은 옷가지 몇 벌이 옷걸이에 걸려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낯선 기운이 훅 끼쳐 나오는 것을 지훈은 분명히 느꼈다. 차갑고 끈적이며, 동시에 코를 찌르는 듯한 비릿한 냄새. 마치 아주 오래된 무덤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은 냄새였다.

    지훈은 벌떡 일어섰다. 식탁 위 밥그릇이 ‘덜그럭’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옷장 안 벽면에 희미하게 새겨진 문양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낙서가 아니었다. 뾰족한 각도로 꺾이고 휘어진 선들.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세상 어떤 기하학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불가능한 형상이었다. 그 선들이 교차하는 지점마다, 검붉은 얼룩이 희미하게 퍼져 있었다. 마치 핏자국처럼.

    문양을 보는 순간, 지훈의 뇌리에 차가운 칼날이 박히는 듯한 섬뜩함이 스쳤다. 온몸의 세포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이 그 기괴한 문양에 고정되는 순간, 옷장 안의 공간이 일렁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마치 옷장 벽 너머에, 전혀 다른 차원의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그때였다. 텅 비어 있던 옷장 안쪽에서, 섬뜩할 정도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는… 부르고 있다…*

    지훈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얼어붙었다. 목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웅얼거리는 듯하면서도, 겹겹이 쌓인 음성들이 뒤섞여 있었다. 찢어지는 듯한 고음과 바닥을 긁는 듯한 저음이 동시에 들렸다. 그의 귀가 그 소리의 파장을 감당하지 못하고 찢어질 듯 아파왔다.

    — *잠자는 자가… 깨어나고 있다…*

    목소리는 뇌를 직접 긁는 것처럼 울렸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으려 발버둥 쳤지만, 소리는 옷장 안 전체, 아니, 방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듯했다. 그리고 그 소리의 기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마치 수십 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듯한 역겨운 감각이 엄습했다.

    몸 안의 모든 피가 차갑게 식었다. 지훈은 등 뒤에서 오싹한 냉기가 느껴져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거실 한가운데 놓여 있던 그의 낡은 스탠드였다.

    스탠드는 분명히 전원이 꺼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스탠드의 전구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불빛이 깜빡일 때마다, 그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스탠드 그림자 속에,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상이, 아주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더 이상 단순한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이것은… 초대였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은 스탠드 그림자 속에서 꿈틀거리는, 알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공포로 가득 찼다.

    아파트의 밤은, 이제 더 이상 그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어둠이 틈을 벌려 삼키려 하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