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Original Stories

  • 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목마름은 사막의 모래처럼 목구멍을 긁었다. 사흘째였다. 지친 발걸음은 잿빛으로 변해버린 도시의 잔해 위를 힘없이 내디뎠다. 강민은 굳은 표정으로 흐릿한 시야를 멀리 던졌다. 부서진 건물들 사이로 솟아오른 으스스한 실루엣, 폐허 속 깊이 파인 검은 입구. 오늘의 사냥터였다.

    “오빠, 여기 맞죠? 지난번 지도에 표시된… 폐기물 처리장 던전?”

    유나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였지만, 이 쥐죽은 듯 고요한 폐허에서는 쩌렁쩌렁 울리는 듯했다. 불안감이 역력한 두 눈은 강민의 등을 번갈아 보며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허리춤에 찬 낡은 권총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탄창에는 겨우 세 발만이 남아있었다.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젠 다른 선택지가 없어. 정화 장치 부품을 찾지 못하면… 다음 비는 언제 올지도 모르고.”

    그의 시선은 마르다 못해 균열이 간 손바닥에 닿았다. 마지막 남은 식수마저도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 솟아난 ‘균열’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시작한 이후, 깨끗한 물은 금보다 귀한 존재가 되었다. 지하수가 오염되고, 하늘에서는 독성 비가 내리는 세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균열이 만들어낸 던전 속으로 뛰어드는 수밖에 없었다.

    폐기물 처리장 입구는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들이 무너져 내린 틈새에 숨겨져 있었다. 찌그러진 철제 문짝은 녹슬어 있었고, 그 안쪽은 영원한 밤처럼 어둡기만 했다. 강민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낡은 손전등은 간신히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자, 유나. 정신 바짝 차려. 여긴 다른 던전보다 더 지독할 거야. 과거의 오물과 균열의 오염이 뒤섞인 곳이니.”

    유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공포와 결의가 뒤섞여 있었다. 강민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한 발짝, 한 발짝. 발밑에서 부서지는 잔해들이 삭막한 소리를 냈다.

    차갑고 습한 공기가 폐부를 찔렀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알 수 없는 금속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자극했다. 좁은 통로는 지하 깊숙이 뻗어 있었고, 손전등 빛이 닿지 않는 곳은 암흑 그 자체였다. 천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끊임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딸깍, 딸깍’ 하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불규칙하게 울렸다.

    벽면에 달라붙은 녹슨 배관에서 끈적한 액체가 주기적으로 흘러나왔다. 바닥에는 정체 모를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유나가 바닥을 조심스레 밟았다. “흐읍… 오빠, 이거, 혹시 지난번 그 독성 점액인가요?”

    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식칼은 이미 허리춤에서 뽑혀 손에 쥐어져 있었다. 무딘 칼날이었지만, 그에게는 생명줄과 같았다.
    “맞을 거야. 조심해. 닿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수도 있어.”
    그는 손전등을 휘둘러 통로 구석구석을 비췄다. 오래된 폐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거미줄처럼 끈끈한 덩어리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마치 던전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저벅거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강민은 본능적으로 유나를 뒤로 밀치고 식칼을 움켜쥐었다. 컹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끔찍한 형상의 그림자가 전등 불빛에 잡혔다. 거대한 쥐였다. 하지만 일반적인 쥐가 아니었다. 덩치는 소형견만 했고, 피부는 녹색의 점액으로 뒤덮여 있었으며, 핏발 선 눈은 살기에 번뜩였다. 이빨은 날카로운 송곳니처럼 길게 튀어나와 있었다.

    ‘하수도 변이체!’ 강민은 이를 악물었다. 한때는 그저 하찮은 해충이었을 뿐. 하지만 균열 이후, 이놈들은 맹독과 함께 인간을 사냥하는 존재로 변모했다. 놈의 몸에서 풍기는 지독한 악취는 코를 찌르는 듯했다.

    “유나, 뒤로! 독액 조심해!”

    강민은 짧게 외치며 쥐의 돌진을 옆으로 피했다. 놈이 지나간 벽면에서는 산성액이 튀어 오르는 소리가 들렸다. 위험했다. 한 방이라도 맞으면 피부가 녹아내릴 것이다. 놈은 강민을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혔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벽 일부가 움푹 들어갔다. 그 충격으로 천장에서 또 다른 잔해들이 떨어져 내렸다.

    “망할!”

    강민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놈이 몸을 돌리는 순간, 그는 낡은 식칼을 쥐고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강민의 목표는 놈의 목덜미였다. 한 번에 끝내야 했다. 놈의 독액은 칼날마저도 부식시킬 수 있었다. 깊숙이 찔러 넣었지만, 변이체의 피부는 생각보다 질겼다.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그 과정에서 독액을 사방으로 뿌렸다. 강민은 간신히 피했지만, 옷자락 일부에 액체가 튀어 ‘치지직’ 소리와 함께 타들어갔다.

    결국, 강민은 칼을 비틀어 놈의 경동맥을 끊어냈다. 거대한 쥐는 몇 번 경련하더니 이내 축 늘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녹색 점액이 흥건하게 흘러나와 썩은 내를 더욱 진하게 풍겼다.

    강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쓰러진 변이체를 내려다봤다. 이미 식칼은 엉겨 붙은 독액 때문에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겨우 버틴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에 든 식칼은 이제 언제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약해져 있었다.

    “오빠… 괜찮아요?” 유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강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더 깊이 들어가야 해.”

    그는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놈이 뛰쳐나온 곳은 더 깊은 곳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그곳에서는 뭔가 기계적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했다. 어쩌면 정화 장치의 잔해일 수도 있었다.

    수색을 마친 강민은 통로 구석에 놓인 낡은 작업대를 발견했다. 먼지에 덮인 탁자 위에는 부식된 공구들이 널려 있었고, 그 옆에는 찢겨나간 문서 조각이 있었다.

    “오빠, 여기 뭐 있어요!” 유나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작은 희망에도 금세 생기를 되찾는 아이 같았다.

    강민이 다가가 종이를 주워 들었다. 낡아서 바스라질 것 같은 종이에는 알아보기 힘든 글씨와 함께, 회로도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하 3층… 중앙 제어실… 정화 장치… 마지막 동력원…’

    글씨는 드문드문 이어졌지만, 강민의 눈은 번뜩였다. 이건 분명 우리가 찾는 정화 장치 부품, 아니면 그와 관련된 핵심 정보일 터였다. 이 폐기물 처리장이 과거에 거대한 지하수로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정화 장치가 있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찾았어, 유나. 희망이 보여.”

    강민은 드물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피로와 절망감이 잠시나마 걷히는 듯했다. 유나 역시 그의 미소를 보며 살짝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곧 사라졌다. 강민이 종이를 뒤집자, 뒷면에는 누군가 급하게 쓴 듯한 경고 문구가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경고… 지하 3층… 변이체 강화… 절대… 접근 금지… 연구원… 생존 불능…’

    강민의 심장이 다시금 날카롭게 조여 들었다. 희망의 불씨가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곧장 더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변이체 강화’라는 문구는 아까 만났던 하수도 변이체와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존재를 암시하고 있었다. 게다가 ‘생존 불능’이라니.

    하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뒤에는 유나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생존이 걸려 있었다.
    물을 찾지 못하면, 이대로 말라 죽을 뿐이었다.
    강민은 손에 든 식칼을 더욱 굳게 쥐었다. 녹아내리는 칼날이 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아픔마저도 무감각해진 채, 그는 오직 나아가야만 했다.

    “가자, 유나. 3층으로.”

    미지의 어둠 속으로. 그곳에 어떤 끔찍한 괴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강민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의 발걸음은 굳건했다. 죽음이 기다리든, 생존이 기다리든, 그 끝을 봐야만 했다.

  • 선협 (신선)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챕터 1: 심연의 메아리**

    여명호는 칠흑 같은 심우주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인류의 항성 지도를 아득히 벗어난 미지의 영역, 오직 광활한 어둠과 가끔 스쳐 지나가는 이름 없는 성운만이 이들의 유일한 동반자였다. 초광속 항해 엔진의 묵직한 진동이 함선 전체를 미세하게 떨게 했지만, 2년째 이어지는 탐사 임무에 승무원들은 그 진동마저도 일상의 배경음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함교는 고요했다. 함장 이한결은 홀로 함장석에 앉아 전방의 푸른빛 홀로그램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많은 별들이 점멸하는 이미지 속에서, 그는 늘 인류의 한계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를 상상했다. 그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복잡한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항해사 서유진이 있었다. 깡마른 체구에 커다란 안경을 쓴 그녀는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지만, 가끔 엉뚱한 말로 주변을 당황시키곤 했다.

    “함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서유진의 나직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한결은 미간을 찌푸렸다. 유진이 ‘이상하다’고 말할 때는, 보통 정말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데이터 분석 능력은 함선의 주 컴퓨터를 능가할 때가 많았다.

    “무슨 일인가, 유진 박사?”

    “함선 센서가 잡을 수 없는,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 신호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초광속 항해 중에는 이런 간섭이 있을 수 없어요. 마치… 누군가 저희를 향해 손짓하는 것 같습니다.”

    한결은 스크린을 응시했다. 시각 정보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광막한 우주의 그림자뿐.

    “손짓이라니. 어디서 감지되는 거지?”

    “정확한 위치 파악은 어렵습니다. 너무 희미하고, 너무… 오래된 신호 같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여명호의 경로상에 존재합니다.”

    한결은 잠시 고민했다. 이 미지의 영역에서 알 수 없는 신호를 따라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은 바로 이 미지의 것을 찾아 우주 끝까지 온 사람들이었다.

    “초광속 항해를 중단하고, 일반 항해 모드로 전환한다. 해당 신호의 발원지로 이동해. 속도는 최대치로.”

    “네, 함장님!” 유진의 목소리에 미묘한 흥분이 섞였다. 그녀는 천생 탐험가였다.

    함선 전체에 둔탁한 감속 충격이 전해졌다. 초광속 항해장이 해제되자, 여명호는 다시금 별빛이 쏟아지는 현실 우주로 돌아왔다. 수십 개의 보조 엔진이 불을 뿜으며 거대한 함체를 신호가 감지되는 방향으로 밀어냈다.

    몇 시간 후, 여명호의 전방 스크린에 희미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단순히 먼지구름이나 소행성 정도로 여겨졌으나, 함선이 가까워질수록 그 형체는 점점 더 뚜렷하고, 점점 더 거대해졌다.

    “이건… 대체 뭡니까?”

    함교로 달려온 보안팀장 강태산이 굵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 그의 근육질 몸이 일순간 경직되는 것이 느껴졌다. 박지훈 기관장 또한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스크린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했다. 수백 킬로미터에 달하는 검은색 오벨리스크였다. 흡사 태초의 어둠을 깎아 만든 듯,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완벽한 흑색 표면은 놀랍도록 매끄러웠다. 그러나 단순히 검은색만은 아니었다. 그 흑요석 같은 표면 곳곳에는 마치 은하수를 압축해 놓은 듯한 미세한 푸른빛과 보랏빛이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정지해 있는 듯하면서도, 끊임없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생명체 같았다.

    가장 경이로운 것은, 그 거대한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였다. 함선 센서가 비명을 지르듯 경고음을 냈다. 측정 불가의 에너지 수치, 알 수 없는 진동 주파수.

    “함장님! 에너지 필드가 너무 강합니다. 함선 방어막에 심각한 무리가 가고 있습니다!” 박지훈 기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방어막을 최대치로 올려! 그리고… 대체 이 에너지는 뭡니까, 유진 박사?” 한결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역력했다.

    유진은 스크린에 바싹 다가서서 데이터 값을 읽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마치 황홀경에 빠진 듯 빛나고 있었다.

    “이건… 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물질적인 에너지가 아닙니다. 제 모든 지식 체계를 벗어납니다. 마치… 살아있는, 아니, 살아있었던 ‘무언가’의 잔영 같습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과 연결된 듯한… 경전에서나 나올 법한… 영적 에너지, 혹은… 선력(仙力)에 가까운….”

    그녀의 혼잣말 같은 중얼거림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선력이라니. 동양의 고대 신화에서나 등장하는 초월적인 힘. 설마, 저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그런 것과 관계가 있단 말인가.

    여명호는 조심스럽게 오벨리스크 주위를 선회했다. 가까워질수록, 그 기묘한 힘은 더욱 강렬해졌다. 함선 내 모든 전자 기기가 오작동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승무원들은 알 수 없는 압력감과 함께 머리가 지끈거리는 고통을 느꼈다.

    “함장님, 더 이상 접근하면 위험합니다!” 강태산이 경고했다. 그의 표정은 이전의 호기심이 사라지고 순수한 경계로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한결은 무언가에 홀린 듯 오벨리스크를 응시했다. 그의 눈에도 어렴풋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그 순간,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표면에서, 은하수를 담았던 푸른빛과 보랏빛이 마치 심장이 박동하듯 강력하게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함선 전체를 뒤흔드는 깊고 웅장한, 그러나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단순한 음파가 아니었다. 뇌리를 파고드는, 영혼을 울리는 듯한 소리였다. 마치 수십억 년의 역사를 품은 고대의 존재가 깨어나, 온 우주에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는 듯했다.

    승무원들은 고통과 경외감에 휩싸여 휘청거렸다. 가장 먼저 쓰러진 것은 서유진이었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신음했다.

    “안 돼… 이걸… 느껴선 안 돼… 너무… 너무 강력해…!”

    그녀의 몸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맥동하는 빛은 그녀의 피부 아래를 흐르는 혈관처럼 보였고, 그 빛은 마치 오벨리스크의 에너지와 공명하는 듯했다. 그녀의 눈이 번쩍 뜨였다. 평소의 흐릿한 안경 너머의 눈이 아니었다. 수정처럼 맑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심연을 담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유진 박사!” 한결이 외쳤다.

    그러나 유진은 이미 다른 세계에 있는 듯했다. 그녀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이것은… 시작의 문… 창조의 숨결… 그리고… 종말의 예언….”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묘한 울림을 띠고 있었다. 마치 여러 명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혹은 아주 먼 곳에서부터 들려오는 메아리 같은 목소리였다. 그녀의 손이 허공을 향해 뻗어졌다. 손끝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오벨리스크를 향해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오벨리스크의 표면에, 은하수를 담고 있던 미세한 빛들이 일제히 서유진의 푸른빛과 합쳐졌다. 오벨리스크의 중심에서 거대한 균열이 시작되었다. 콰아아앙! 하는 폭발음과 함께, 수억 개의 별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가는 듯한 맹렬한 빛이 여명호 전체를 집어삼켰다.

    “전원, 충격에 대비해! 방어막 최대치! 무슨 일이 있어도 함선을 지켜!” 한결의 외침이 빛 속으로 사라졌다.

    눈앞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다. 강렬한 빛과 함께, 온몸을 찢어발기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한결은 섬광처럼 스쳐 지나가는 환영을 보았다.

    아득한 옛날, 검은 우주 속에서 거대한 용들이 춤추고, 신비로운 존재들이 별들을 낚아채는 광경. 무수한 영혼들이 거대한 빛의 기둥을 따라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모습.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듯한, 오벨리스크와 똑같은 검은 눈동자 하나.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인류가 우주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주의 심연에 잠들어 있던, 태초의 선력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선력은, 여명호의 승무원들을, 미지의 운명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서유진은, 그 운명의 첫 번째 희생자이자… 혹은, 첫 번째 계승자가 될 터였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빛은, 이제 오벨리스크의 균열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태초의 혼돈과 질서가 교차하는, 거대한 문이 열리고 있었다.
    여명호의 운명은, 그리고 인류의 운명은, 이 거대한 문 앞에서, 새로운 장을 맞이하게 될 터였다.

    (계속)

  • 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검푸른 하늘 아래, 아레스 제국의 강철 거신들이 내뿜는 엔진의 굉음은 언제나처럼 민초들의 삶을 짓눌렀다. 잿빛 먼지가 휘날리는 거리에는 굶주림과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국은 드넓은 대륙을 지배하며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지만, 그 빛은 오직 소수의 귀족과 부유층에게만 허락된 것이었다. 나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대한 기계 문명의 톱니바퀴처럼 소모될 뿐이었다.

    “카이, 또 저거 보고 있었냐?”

    낡은 작업실의 거친 나무 문이 삐걱이며 열리고, 세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한 손에는 기름때 묻은 공구 상자를, 다른 손에는 흙먼지 묻은 빵 조각을 들고 있었다. 카이는 창밖으로 보이는 저 멀리, 제국 수도의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황금빛 첨탑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탐욕과 오만함이 응축되어 있었다.

    “저 지랄 같은 빛을 볼 때마다 속이 뒤집혀.” 카이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고통과 분노가 새겨져 있었다. “우린 여기서 하루 벌어 하루 살기도 버거운데, 놈들은 저 위에서 대체 얼마나 더 뜯어먹을 셈이지?”

    세라는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우리가 이걸 만드는 거 아니겠어?” 그녀의 시선은 작업실 한가운데 놓인, 아직 미완성인 거대한 기계 덩어리에 닿았다. 앙상한 뼈대와 덕지덕지 붙은 장갑판, 드러난 전선들이 난잡하게 얽혀 있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돌풍’이라 불리는, 반란군 ‘여명의 불꽃’이 제국의 강철 거신에 맞서기 위해 만든 첫 번째 기체였다. 깡통 로봇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카이의 손을 거쳐 탄생한 이 기체는 제국의 기술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조립되고 개조된 것이었다. 버려진 광산용 장비의 팔, 폐기된 운송선의 엔진, 심지어 제국군 강철 거신에서 탈취한 일부 부품까지, 모든 것이 카이의 천재적인 기술력과 집념으로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카이는 과거 제국군 소속의 정비병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무자비한 상부의 명령에 반기를 들었다가 가족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지하 세계로 숨어들어 평범한 정비공으로 살아가려 했으나, 제국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결국 그는 다시 기계와 마주했다. 이번에는 제국을 파괴하기 위해서였다.

    “엔진 출력은 거의 최대로 끌어올렸어. 추진기는 제국 해체장에서 몰래 빼돌린 고성능 부품으로 바꿨고. 문제는 장갑이야.” 카이가 돌풍의 다리 부분을 발로 툭 찼다. “강철 거신의 포격을 정면으로 버티긴 힘들 거야. 최대한 회피 기동에 의존해야 할 텐데…”

    세라는 그의 옆에 서서 돌풍을 올려다봤다. “그건 파일럿의 실력에 달렸지. 그리고 카이, 누가 이걸 조종할 것 같아?”

    카이는 묵묵히 세라를 바라봤다. 그들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네가 말려도, 난 이걸 탈 거야.” 카이의 목소리에는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었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밤이 깊어지고, 제국의 감시망이 느슨해진 틈을 타 ‘여명의 불꽃’ 대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들은 낡은 옷을 입고, 굶주림에 지쳤지만,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수도 외곽에 위치한 이 낡은 정비창은 반란의 심장이었다.

    “상황 보고!” 세라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녀는 여명의 불꽃을 이끄는 리더였다. 비록 전투 경험은 적었지만, 탁월한 지략과 통솔력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고 있었다.

    “제국군 제7기갑사단 소속 ‘강철 거신’ 3기가 내일 새벽, 이곳을 지나는 운송로를 따라 이동할 예정입니다.” 한 대원이 무릎 꿇고 앉아 지도를 펼쳤다. “식량과 광물을 수도로 운반하는 수송대 호위입니다. 교역은 이틀 뒤인데, 놈들이 이례적으로 일찍 움직이는군요.”

    “뭔가 수상해.” 세라가 턱을 괴고 생각했다. “이틀 먼저? 감시 병력이 추가 배치된 건 없어?”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카이는 자신의 ‘돌풍’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좁고 답답했지만, 이곳에서 그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느꼈다. 어둠 속에서 조종간을 만지작거리는 그의 손끝이 떨렸다.

    “놈들이 이상하게 움직인다면,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어.” 세라가 단호하게 말했다. “예상치 못한 움직임은 곧 틈을 의미하니까.”

    작전 회의가 끝난 후, 대원들은 각자 맡은 자리로 돌아갔다. 일부는 무기를 점검하고, 일부는 통신 장비를 설치했으며, 또 다른 일부는 돌풍의 마지막 점검에 매달렸다.

    새벽이 동터올 무렵, 카이는 돌풍을 이끌고 정비창을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 몇몇 대원들이 바이크에 올라타 호위했다. 그들의 목표는 제국군 수송대가 지나는 협곡이었다.

    협곡은 거친 바위와 덤불로 뒤덮여 있었다. 카이는 돌풍을 바위 뒤에 숨기고 대기했다. 엔진 소리, 주변의 희미한 바람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제국과의 첫 전면전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서 거대한 강철 발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위압적인 발소리는 땅을 울렸다. 곧이어 세 대의 강철 거신이 협곡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제국군 특유의 검고 번쩍이는 장갑을 자랑하며, 어깨에는 거대한 포문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 옆에는 수많은 보병과 대형 수송 차량들이 줄지어 따랐다.

    “세라, 목표 확인. 총 3기. 계획대로 진행한다.” 카이가 통신기로 속삭였다.

    “카이, 절대 무리하지 마! 네가 우리의 희망이야!” 세라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이내 단호해졌다. “놈들의 후미를 노려! 수송대를 먼저 공격해서 혼란을 일으켜!”

    카이는 조종간을 굳게 잡았다. 푸른색 조종석 화면에는 강철 거신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돌풍의 엔진 출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간다!”

    돌풍이 맹렬한 엔진음을 토하며 바위 뒤에서 튀어나왔다. 낡은 장갑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그 움직임은 놀라울 만큼 민첩했다. 목표는 제국군 수송대 최후미에 있는 보급 차량이었다.

    “적기 출현!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제국군 보병들이 혼란에 빠졌다.

    강철 거신 한 대가 돌풍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거대한 포신을 돌렸다. 붉은 조준점이 카이의 돌풍을 향했다.

    “젠장, 빠르군!” 카이는 즉시 회피 기동을 시작했다. 돌풍은 민첩하게 몸을 틀었고, 강철 거신이 발사한 에너지 포탄은 돌풍이 방금까지 있던 자리를 갈랐다. 협곡의 바위가 폭발하며 파편이 튀었다.

    카이는 강철 거신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며 수송 차량들을 향해 돌진했다. 돌풍의 팔에 장착된 낡은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따다다닥! 보급품을 싣고 가던 차량들이 폭발하고 전복되었다. 제국군 보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놈들이 수송대를 노린다! 전원 대응 사격!” 제국군 지휘관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강철 거신 두 대가 돌풍을 향해 달려들었다. 육중한 발걸음이 땅을 뒤흔들었다. 카이는 조종석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두 대의 거신을 동시에 상대하기는 버거웠다.

    “세라, 증원병력은?”

    “놈들이 예상보다 많아! 다른 곳에서 시간을 벌고 있어! 카이, 너 혼자다!”

    카이는 이를 악물었다. 돌풍은 강철 거신 사이를 헤집으며 질주했다. 마치 거대한 짐승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는 작은 새 같았다. 강철 거신 한 대가 거대한 팔을 휘둘러 돌풍을 쳐냈다. 콰앙! 돌풍의 한쪽 팔에 장착된 기관총이 박살 나며 스파크가 튀었다.

    “크윽!” 카이는 비명을 지르며 조종석에 몸을 부딪쳤다. 경고음이 울렸다.

    “파일럿, 긴급 탈출 권고!”

    “닥쳐! 아직 안 끝났어!” 카이는 부서진 팔을 부여잡고 남은 한쪽 팔에 장착된 에너지 블레이드를 활성화했다. 푸른빛이 번쩍였다.

    “돌풍, 저 녀석의 약점은 어디지? 내가 만든 걸음을 잊었나?!” 카이가 강철 거신의 움직임을 분석했다. 제국군의 강철 거신은 방어력이 튼튼했지만, 관절 부위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 특히 팔꿈치와 무릎 관절은 급소였다.

    카이는 재빨리 회피 기동으로 강철 거신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육중한 다리가 내려찍으려 했지만, 돌풍은 그보다 빨랐다. 휘청이는 몸체로 강철 거신의 무릎 관절에 매달렸다.

    “받아라, 이 쓰레기들아!” 카이는 에너지 블레이드를 최대 출력으로 끌어올려 무릎 관절을 꿰뚫었다. 지지직! 엄청난 마찰음과 함께 강철 관절이 파열되었다.

    “제1기 추락한다!” 제국군 지휘관의 목소리가 공포에 질려 있었다.

    강철 거신이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거대한 강철 덩어리가 땅에 처박히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흙먼지가 사방으로 솟구쳤다.

    남은 두 대의 강철 거신이 분노에 찬 포격을 퍼부었다. 카이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회피했다. 그의 돌풍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한쪽 팔은 부러졌고, 장갑판은 너덜너덜했으며, 여기저기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카이의 눈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제국에 대한 증오, 그리고 동료들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그를 움직였다. 그는 남은 두 대의 거신 중 한 대를 향해 돌진했다. 그의 목적은 명확했다. 한 대씩 각개격파하는 것.

    그는 또다시 강철 거신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강철 거신의 움직임이 둔해진 틈을 타, 그는 기체의 어깨 부분에 남아있는 보조 추진기를 이용해 도약했다. 낡은 기체는 삐걱거렸지만, 카이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이게… 우리의 희망이다!” 카이가 절규했다.

    그는 부러진 팔 대신 남은 한쪽 팔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둘러 강철 거신의 머리 부분을 겨냥했다. 제국군 파일럿은 당황한 듯 머리 보호막을 올렸지만, 돌풍의 공격은 예측 불허였다. 블레이드가 정확히 강철 거신의 눈 부분, 즉 조종석의 취약 부위를 강타했다.

    쿠과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강철 거신의 머리가 산산조각 났다. 연기와 불꽃이 치솟았다.

    두 번째 강철 거신이 쓰러지자, 남은 한 대는 공포에 질린 듯 뒷걸음질 쳤다. 수많은 보병들은 이미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

    “후퇴! 후퇴하라!” 제국군 지휘관의 절규가 통신을 통해 들려왔다.

    남은 강철 거신은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은 채, 방향을 돌려 쏜살같이 도망쳤다. 카이는 돌풍을 멈췄다. 그의 기체는 엉망진창이었지만, 그는 해냈다. 두 대의 강철 거신을 파괴하고, 수송대를 혼란에 빠뜨렸다.

    “카이! 들리냐? 카이!” 세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 성공했어, 세라. 두 대를… 쓰러뜨렸어.” 카이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승리의 희열이 담겨 있었다.

    협곡에는 강철 거신들의 잔해가 연기를 뿜고 있었고, 흩어진 제국군 보병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다. 비록 작은 승리였지만, 이는 거대한 제국에 맞서는 민초들의 반란이 결코 헛된 몸부림이 아님을 증명하는 첫걸음이었다.

    먼지 낀 조종석에서 카이는 창밖을 바라봤다. 어둠이 걷히고, 저 멀리 동쪽 지평선에서 희미한 여명의 빛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 빛은 비록 미약했지만, 제국의 어둠을 가르고 새로운 새벽을 알리는 불꽃처럼 보였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카이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진정한 새벽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명의 불꽃은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겠지만, 그들은 더 이상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강철의 새벽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 스페이스 오페라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야의 주파수

    도시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 수많은 불빛과 소음으로 가득했다. 김현우는 스물다섯 해 인생의 대부분을 이런 회색빛 콘크리트 숲에서 보냈다. 그의 낡았지만 익숙한 아파트 13층 거실은, 자정 가까운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노트북 화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으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잔잔한 일렉트로니카 음악은 그의 집중을 돕는 오랜 친구였다.

    “젠장, 또 틀렸잖아.”

    현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화면 가득한 복잡한 코드는 좀처럼 그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한숨을 쉬며 차가운 머그잔을 들었다. 한 모금 마신 미지근한 커피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그때였다.

    *지잉…*

    귀가 아닌, 몸으로 느껴지는 희미한 진동이 발끝에서부터 전해졌다. 이어폰을 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실 조명이 아주 짧게, 마치 전압이 불안정한 것처럼 깜빡였다. 현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파트도 이제 슬슬 한계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옆 동에서 재개발이니 뭐니 시끄럽게 굴 때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때마다 전등이 저렇게 불안정하게 흔들리곤 했으니까. 다시 코드를 들여다보는 현우의 눈은 곧바로 화면에 박혔다. 하지만 불과 몇 초 뒤, 진동은 더 선명해졌다.

    *우우웅…*

    이번에는 소리까지 동반했다. 낮게 깔리는 기계음 같은 것이 바닥을 타고 올라왔다. 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펜꽂이의 펜들이 서로 부딪히며 *짤그랑* 소리를 냈다. 현우는 무심코 이어폰을 벗었다. 고요해진 순간, 그 낮고 불길한 진동은 더욱 분명하게 느껴졌다.

    “뭐지? 보일러실?”

    투덜거리며 의자에서 일어섰다. 복도로 나서자, 현우의 발걸음에 맞춰 거실 조명이 또다시 *팟!* 하고 짧게 꺼졌다 켜졌다. 기분이 묘했다. 보일러실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쿵!* 하고 현관문 쪽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현우는 몸을 움찔 떨었다.

    “누구세요?”

    말하는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렸다. 이 시간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옆집 아저씨는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서 밤늦게 들어오는 분이었고, 위층은 신혼부부가 사는데 이렇게 늦게 소란을 피울 리 없었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택배도, 방문 판매도 아닌데…”

    다시 거실로 돌아왔다. 그의 노트북은 여전히 화면을 밝히고 있었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노이즈가 화면 가장자리를 타고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현우는 다시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톡톡 건드려봤다.

    *철컥!*

    순간, 부엌 쪽에서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명확했다. 식탁 위에 놓여 있던 도자기 컵이 바닥으로 떨어진 소리였다. 현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뭐야, 진짜… 누가 들어온 건가?”

    숨을 죽이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 밑에는 산산조각 난 컵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분명 자신이 놓아둔 자리였다. 바람이 불어 떨어질 리도 없고,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는 것도 아니었다. 현우는 순간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늦은 밤, 적막한 아파트에서 이런 현상은 그에게 섬뜩한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조각들을 치우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손을 뻗어 가장 큰 조각을 집으려는 순간, 식탁 위 다른 컵이 *스윽* 하고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쨍그랑!*

    현우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눈앞에서, 아무런 외부의 힘도 없이, 컵이 스스로 움직여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이건 대체…”

    그의 눈은 불안하게 부엌 곳곳을 훑었다. 설거지통에 담겨 있던 수저들이 *달그락*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냉장고 문이 *덜컥* 하고 짧게 열렸다 닫혔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기현상이었다.

    현우는 뒷걸음질 쳤다. 공포에 질린 얼굴로 거실로 향했다. 거실의 작은 액자가 벽에서 떨어져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박혔다. 액자 속 현우의 사진이 일그러졌다.

    “귀신… 인가?”

    식상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러나 등골을 타고 흐르는 냉기는 일반적인 귀신의 그것과는 달랐다. 무언가, 더 기묘하고, 더 강력하고, 그리고… 비물질적인 존재감이 공기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었다. 마치 정체 모를 강력한 전자기장이 그의 아파트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쉬이이익…*

    창문 틈새로 바람이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거실 커튼이 춤을 추듯 흔들렸다. 그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손이 커튼을 휘젓는 것 같았다. 현우는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다리는 마치 납덩이라도 매달린 듯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노트북으로 향했다. 노트북 화면이 격렬하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파란 화면과 검은 화면이 번갈아 나타나더니, 곧이어 모래 폭풍이 몰아치는 듯한 심한 노이즈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노이즈 사이로, 섬광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각형과 삼각형, 원형이 기하학적으로 뒤섞인, 알 수 없는 상형문자들이 번개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다. 이어서, 마치 먼 우주에서 들려오는 듯한 낮고 둔탁한 *삐이이익-* 하는 신호음이 노트북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인간의 언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하고 반복적인 패턴의 소리였다.

    “흐읍… 흐읍…”

    현우는 숨을 헐떡였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의 이성이 이 모든 것을 ‘환영’이나 ‘꿈’으로 치부하려 했지만, 눈앞의 광경과 귀에 박히는 소리는 너무나도 생생했다.

    *콰아앙!*

    갑자기, 거실 한쪽에 놓여 있던 거대한 책장이 통째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수십 권의 책들이 바닥에 쏟아져 내리며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냈다. 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는 와중에, 현우는 책장 아래 깔린 그의 소중한 LP 플레이어를 발견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찌그러져 있었다.

    그 순간, 아파트 전체가 *우르릉!* 하고 한 번 크게 울렸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바닥이 들썩이고 천장에서 먼지가 떨어져 내렸다. 현우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불안정한 노트북 화면에서, 기이한 상형문자들이 일제히 합쳐지더니 거대한 눈동자 같은 형상으로 변했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 선으로 이루어진 그 눈동자는 마치 현우를 꿰뚫어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눈동자에서, 다시 한번, 그 불길한 외계의 주파수가 *삐이이익- 삐이이익-* 하고 증폭되어 울려 퍼졌다.

    현우는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하지만 소리는 그의 고막을 넘어, 뇌 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마치 그의 존재 자체가 그 기이한 주파수에 맞춰 재조정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거실 중앙에 놓여 있던 커피 테이블이 서서히, 아주 천천히, 바닥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들어 올리는 것처럼, 테이블은 바닥과 멀어져 현우의 눈높이까지 떠올랐다.

    “아… 안 돼…”

    현우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눈은 테이블 아래, 그의 발밑에 꽂혀 있었다. 그의 그림자가, 빛이 없는 곳에서 마치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그의 그림자 끝에서, 칠흑 같은 어둠이 서서히 기어 올라오는 것을 현우는 공포에 질려 바라보았다.

    어둠은 형체가 없었지만,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현우의 발목을 휘감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스르륵…*

    차가운 것이 피부를 파고드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에, 현우는 마침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은 기이한 주파수와 어둠 속에서 묻혀버렸다. 어둠은 순식간에 그의 몸을 휘감았고, 현우는 거대한 눈동자가 빛나는 노트북 화면을 마지막으로 본 채, 의식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아파트는, 여전히 도시의 불빛 속에서 고요하게 서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하지만 내부는, 이미 미지의 주파수에 의해 완전히 뒤틀려버린 상태였다.

  • 오컬트 호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거대한 돌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우리 셋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천 년은 족히 넘었을 법한 묵은 흙먼지가 폐부에 와 닿는 순간, 강한 부패향과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런 불쾌함조차 감히 불평할 수 없을 만큼,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압도적이었다.

    “세상에….”

    학자 특유의 냉철함을 항상 유지하던 서윤아 박사의 입에서도 나지막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성능 랜턴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을 비췄다. 마치 심해 속 거대한 괴물의 피부를 뜯어내 벽에 붙여놓은 듯한, 검은색에 가까운 암석들이 거대한 방을 이루고 있었다. 그 암석의 표면에는 난해하고 기괴한 형상의 상형문자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었는데, 어떤 규칙성도 없이 무작위로 뒤얽혀 기분 나쁜 생명력을 뿜어내는 듯했다.

    “이건… 우리가 여태껏 봤던 양식과는 완전히 달라.” 윤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벽으로 다가갔다. “지하 300미터에서 이런 유적이 발견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것도 문헌에 단 한 줄도 기록되지 않은, 완전히 잊혀진 문명이라니….”

    그녀의 목소리에는 학자로서의 흥분과 더불어, 알 수 없는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내가 손전등을 들어 천장을 비추자, 방의 규모가 더욱 명확히 드러났다. 족히 50미터는 될 법한 높이의 돔형 천장, 그리고 그 중앙에는 기이한 형상의 거대한 돌덩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제단인지, 아니면 다른 용도의 건축물인지 알 수 없는 그것은 마치 거대한 동물이 사지를 접고 웅크린 모습과 흡사했다. 돌의 표면에도 역시 기괴한 상형문자들이 번개처럼 새겨져 있었다.

    “강하준 씨, 이봐요. 느낌이 싸합니다.”

    뒤에서 최민혁이 거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전직 특수부대 출신인 그는 항상 냉정하고 침착했지만,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민혁은 주위를 경계하며 허리에 찬 단검의 손잡이를 매만졌다.

    “나도 그래, 민혁 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유적은… 다른 유적들과는 달랐다. 처음 탐사를 시작한 날부터 어렴풋이 느껴졌던 ‘불길한 기운’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실체가 되어 온몸을 짓누르는 듯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윤아는 벌써 벽에 코를 박고 상형문자를 해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거친 벽면을 스치며 희미한 글자들을 더듬었다.

    “이게 무슨… 신을 찬양하는 내용은 아니야. 희생… 저주… 봉인… 그리고… ‘그림자 속의 눈’?”

    윤아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윤아 박사, 무슨 뜻이죠?” 내가 물었다.

    “정확히 알 수 없어요. 너무나 파편적이고… 게다가 언어의 형태도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고대어와도 일치하지 않아요. 하지만… 부정적인 단어들만 가득해요. 이 문명을 건설한 자들은 무언가를 봉인하려 했던 것 같아요. 아주 거대하고… 끔찍한 것을.”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랜턴 불빛이 일제히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급격히 어두워졌다. 민혁이 손전등을 세차게 흔들었지만, 전등은 이내 완전히 꺼져버렸다.

    “이런 젠장! 배터리는 만충이었는데!”

    완벽한 어둠.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정적.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평소라면 당황하지 않았을 상황이었지만, 이곳에서의 어둠은 차원이 달랐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쉬이이…*

    귓가에 뱀이 기어가는 듯한 섬뜩한 소리가 들렸다. 환청인가? 아니, 내 양 옆에 선 윤아와 민혁의 몸이 동시에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들도 들었다는 증거였다.

    “누구… 누구야!” 민혁이 초조하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으로 메아리쳤다.

    그때였다. 돔형 천장의 중앙에 자리 잡은 거대한 돌덩이, 즉 ‘제단’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섬뜩한 붉은색을 띠는 그 빛은 마치 거대한 짐승의 동공처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빛이 강해질수록, 돌덩이에 새겨진 기괴한 상형문자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콰앙!*

    갑작스런 충격과 함께 땅이 요동쳤다. 우리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돌과 흙먼지가 천장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지진인가?!” 민혁이 소리쳤다.

    “아니… 지진과는 달라!” 윤아의 목소리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건… 무언가가 움직이는 소리야!”

    붉은 빛이 더욱 짙어졌다. 이제 제단 전체가 거대한 심장처럼 맥동하는 듯했다. 그 빛은 벽면의 상형문자들에도 옮겨붙어, 방 전체가 기이한 붉은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거대한 존재의 핏속에 잠겨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고대어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직접적이었다. 마치 그 소리가 나의 뇌 속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잊혀진 자들의 잠을 깨우지 마라….*
    *―그림자가 다시 눈을 뜰 것이다….*

    소리는 점점 더 거세지며 고통스러운 두통을 유발했다. 나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하준 씨! 괜찮아요?” 윤아가 나를 흔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소리에 집중할 수 없었다. 붉은 빛이 일렁이는 방의 한구석에서, 그림자가 일렁였다. 단순히 어둠이 아니었다. 그림자 자체가 살아있는 듯, 흐느적거리며 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형체가 없었지만, 끔찍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젠장, 도망쳐야 해!” 민혁이 외치며 나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그림자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림자는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촉수처럼 뻗어 나오더니, 이내 수많은 눈동자가 박힌 끔찍한 형상으로 변해갔다. 그것은 온갖 고통과 절망이 뒤섞인 듯한 존재였다.

    그리고 그 존재의 중심에서, 하나의 거대한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했다. 무감하고 냉정한,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눈은 나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너희는 이미 늦었다….*
    *―봉인은 깨어났고… 어둠은 다시 돌아왔다.*

    숨이 턱 막혔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다. 나는 이곳이 단지 유적이 아님을 직감했다. 이곳은… 봉인된 재앙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앞에서, 그림자 속의 눈이 번뜩이며, 고대 유적의 비밀은 잔혹한 실체로 우리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 포스트 아포칼립스 생존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1: 균열**

    **[장면 1] 폐허 속 일상**

    **# 배경:** 잿빛 하늘 아래, 앙상한 철근과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이빨처럼 솟아있는 도시의 잔해. 썩어가는 냄새와 먼지가 공기 중에 떠돈다. 지표면에는 녹슨 자동차들과 이름 모를 잡초들이 뒤엉켜 있다. 한때 번화했을 거리는 이제 침묵만이 지배하는 황무지다.

    **# 시간:** 황량한 오후. 해는 구름에 가려 희미한 빛만을 흘린다.

    **# 인물:** 윤슬 (20대 초반. 낡았지만 몸에 꼭 맞는 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다. 등에 맨 배낭은 내용물로 빵빵하고, 땀과 먼지로 얼룩진 얼굴은 피로하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숨기지 않는다. 한 손에는 언제든 휘두를 수 있게 단단히 잡은 쇠파이프가 들려 있다).

    **1. 내레이션 (윤슬):**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곧 투쟁이다.
    무너진 세상에서 살아남는다는 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늘 움직여야 했고, 찾아야 했고, 싸워야 했다.
    그리고 절대, 멈춰서는 안 됐다.

    **2. 컷:** 윤슬이 조심스럽게 무너진 건물 잔해를 밟고 지나간다. 그녀의 시선은 끊임없이 주변을 탐색한다. 발밑에서 부서지는 잔해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3. 윤슬 (독백):**
    이 지독한 고요함 속에 숨어있는 것들.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뒤, 녹슨 버스 안,
    어둠이 스며든 지하.
    어디에나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하지만 더 지독한 건… 외로움이었다.
    내가 이곳에서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단 하나도 없다는 것.

    **4. 컷:** 윤슬이 낡은 건물의 균열 사이로 조심스럽게 몸을 밀어 넣는다. 내부의 어둠이 그녀를 집어삼킬 듯하다. 먼지 섞인 햇빛 한 줄기가 천장의 구멍을 통해 희미하게 비친다.

    **5. 윤슬 (독백):**
    오늘도 수확은 신통치 않았다.
    식량은 언제나 부족하고, 쓸만한 부품은 씨가 말랐다.
    이대로 가다가는…

    **6. 컷:** 윤슬이 무너진 선반 사이를 뒤지다가 작은 통조림 캔 하나를 발견한다. 그녀의 눈에 실낱같은 희망이 스쳐 지나간다.

    **7. 윤슬 (작게 중얼거린다):**
    하나라도… 다행이야.

    **[장면 2] 예기치 않은 위험**

    **# 배경:** 붕괴 직전의 대형 마트 건물 내부. 천장은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상품 진열대는 쓰러져 잔해와 먼지로 뒤덮여 있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고, 습하고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 시간:** 오후 늦게. 해가 기울면서 내부가 더욱 어두워진다.

    **# 인물:** 윤슬, 그리고 거대한 돌연변이 쥐 떼.

    **8. 컷:** 윤슬이 마트의 식품 코너였을 공간을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그녀의 발자국 소리만 희미하게 울린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9. 윤슬 (독백):**
    여긴 꽤 오랫동안 아무도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좋은 징조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나쁜 징조일 수도 있었다.
    이런 곳일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미끼가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치워버린 채,
    무엇인가가 둥지를 틀었을 가능성.

    **10. 컷:** 윤슬이 웅크린 채 바닥에 흩어진 깨진 유리 조각들을 피해 걷는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찍-찍-‘ 소리가 들린다. 윤슬의 눈이 순간적으로 날카로워진다. 그녀는 쇠파이프를 고쳐 잡는다.

    **11. 윤슬 (독백):**
    젠장.

    **12. 컷:**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윤슬을 향한다. 작게는 개의 크기, 크게는 송아지만 한 쥐들이 바닥에서부터 기어 올라와 주변의 기둥과 잔해 위에 우글거린다. 그들의 털은 듬성듬성 빠져 있고, 이빨은 비정상적으로 길게 튀어나와 있다. 맹렬한 찍찍거리는 소리가 마트를 가득 채운다.

    **13. 윤슬 (내면의 비명):**
    이런, 젠장! 쥐 떼라니! 이 정도 규모는…!

    **14. 컷:** 쥐 떼가 사방에서 윤슬을 향해 달려든다. 그들의 날카로운 발톱이 콘크리트 바닥을 긁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린다.

    **15. 윤슬 (대사, 이를 악물고):**
    크으으…!

    **16. 컷:** 윤슬이 쇠파이프를 휘둘러 가장 먼저 달려드는 쥐의 머리를 강타한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쥐가 바닥에 나뒹군다. 하지만 쥐 떼는 멈추지 않고 파도처럼 밀려온다.

    **17. 윤슬 (내레이션):**
    정신없이 휘둘렀다.
    한 마리, 두 마리…
    하지만 끝없이 몰려드는 것들 앞에서는
    나의 필사적인 저항도 무의미했다.
    벽에 등이라도 기댈 수 있다면…!
    그러나 사방이 탁 트인 이곳에서,
    나는 그저 고립된 먹잇감일 뿐이었다.

    **18. 컷:** 윤슬의 다리에 쥐 한 마리가 매달려 살을 뜯으려 한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쥐를 걷어차지만, 그 사이 또 다른 쥐들이 그녀의 몸을 기어오른다. 그녀의 팔과 다리에 붉은 핏자국이 선명하게 번진다.

    **19. 윤슬 (대사, 고통에 찬 신음):**
    하아… 으윽…!

    **20. 컷:** 윤슬의 시야가 흐릿해진다. 숨이 가빠오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간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절망감이 그녀를 덮친다. 쥐 떼는 그녀의 주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내며 최후의 순간을 기다린다.

    **21. 윤슬 (독백):**
    이대로… 끝인가…?

    **[장면 3] 어둠 속의 그림자**

    **# 배경:** 마트 건물 내부, 아비규환의 순간.

    **# 시간:** 순식간.

    **# 인물:** 윤슬, 돌연변이 쥐 떼, 그리고 카론 (심연족.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형. 날렵하고 단단한 근육질의 몸. 피부색은 일반적인 인간보다 창백하고,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듯한 기묘한 푸른빛을 띤다. 검은색 계열의 낡았지만 기능적인 옷차림. 맨손).

    **22. 컷:** 윤슬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하고, 의식이 희미해진다. 그때, 공기 중에 섬뜩한 정적이 흐른다. 쥐 떼의 맹렬한 찍찍거림이 순간적으로 멎는다. 모든 쥐들이 한 곳을 향해 고개를 든다.

    **23. 컷:** 마트 천장의 붕괴된 틈새로 한 줄기 희미한 달빛이 스며든다. 그 빛 아래, 한 남자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그는 마치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내려선다.

    **24. 윤슬 (독백, 희미한 의식 속에서):**
    뭐지…? 이 기척은…?

    **25. 컷:** 카론이 착지하자마자, 주변의 쥐들이 미친 듯이 경련하며 비명을 지른다. 그들의 날카로운 이빨이 서로를 향해 부딪치고, 몇몇은 공포에 질린 채 달아나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제압당한 듯 바닥에 쓰러진다.

    **26. 컷:** 카론의 푸른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섬뜩하게 빛난다. 그의 시선이 윤슬에게 닿는 순간, 윤슬의 몸이 본능적으로 얼어붙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듯한, 차갑고도 날카로운 기운이 그녀를 짓누른다.

    **27. 내레이션 (윤슬):**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보다도 더 본능적인 공포였다.
    인간이라면 절대 가질 수 없는,
    지독하게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감.
    어둠 그 자체가 형상화된 듯한… 심연족.
    그들의 이야기는 어릴 적부터 공포의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인간을 사냥하고, 피를 탐하며,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들.

    **28. 컷:** 카론이 윤슬을 둘러싼 쥐 떼를 향해 천천히 걸어간다. 그의 움직임은 유연하고 거침없다. 쥐 떼는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면서도, 거대한 먹잇감을 향한 본능적인 욕구와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한다.

    **29. 컷:** 카론이 손을 뻗자, 마치 보이지 않는 칼날이 휘둘러진 것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쥐 몇 마리의 몸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난다. 피가 튀고, 끔찍한 비명 소리가 마트를 가득 채운다. 그의 동작은 너무나 빠르고 정확해서, 윤슬은 그가 어떻게 공격했는지조차 인지할 수 없다.

    **30. 컷:** 쥐 떼가 공포에 질려 사방으로 흩어진다. 카론은 그들을 쫓지 않고, 여유롭게 걸어 윤슬에게 다가온다. 그의 푸른 눈동자는 여전히 윤슬에게 고정되어 있다.

    **31. 윤슬 (독백,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나를… 죽이러 오는 건가…?
    쥐 떼를 처리한 건… 먹잇감을 독점하기 위해서…!
    그래, 당연한 일이야…!
    내 몸은… 이미 끝장났어… 도망칠 수도 없어…

    **32. 컷:** 카론이 윤슬의 바로 앞에 멈춰 선다. 그의 그림자가 그녀를 완전히 덮는다. 윤슬은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그녀는 고통과 공포,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질적인 매혹이 뒤섞인 눈으로 그를 올려다본다. 그의 얼굴은 차갑고 무감각해 보이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그 푸른 눈동자 속에 희미하게 감돌았다.

    **[장면 4] 첫 만남의 잔상**

    **# 배경:** 마트 건물 주변의 으슥한 골목. 폐기물 더미와 부서진 상자들이 쌓여 있다.

    **# 시간:** 해 질 녘.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한다.

    **# 인물:** 윤슬, 그리고 카론.

    **33. 컷:** 카론이 아무 말 없이 윤슬을 응시한다. 그의 손이 천천히 올라와 그녀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스치듯 닦아낸다. 그의 손길은 놀랍도록 부드럽고 차가웠다. 윤슬은 충격과 혼란 속에서 몸을 굳힌다.

    **34. 윤슬 (독백):**
    이건… 뭐지…?
    왜… 나를 해치지 않는 거지…?
    이게… 심연족의 방식인가…?
    아니, 그들은… 이렇게 상냥할 리가 없어.
    그들은… 괴물이야…

    **35. 카론 (대사, 낮은 목소리, 마치 오래된 돌이 부서지는 듯한 소리):**
    …살아남아라.

    **36. 컷:** 카론의 눈빛이 흔들린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윤슬은 그 안에서 언뜻 연민 같은 것을 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작 세 글자였다. ‘살아남아라.’ 그의 목소리는 거칠고 낮았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엄청났다. 윤슬은 눈을 깜빡인다.

    **37. 윤슬 (독백):**
    …뭐라고?

    **38. 컷:** 카론이 윤슬의 어깨에 메고 있던 배낭을 자신의 손으로 넘겨받아 열더니, 안에 있던 작은 통조림 캔과 낡은 물통을 꺼낸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배낭 안에 집어넣는다. 그것은 윤슬이 본 적 없는,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수정 조각이었다.

    **39. 카론 (대사, 무표정하게):**
    …이것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피해라.

    **40. 컷:** 카론이 배낭을 다시 윤슬의 어깨에 걸어주고는, 아무런 미련 없이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의 움직임은 그림자처럼 자연스럽고 조용했다. 순식간에 그는 윤슬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41. 컷:** 윤슬은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본다.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는다. 그녀는 자신의 팔과 다리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본다. 쥐 떼의 잔혹한 공격보다, 지금 이 순간의 혼란이 더 그녀를 지치게 만들었다.

    **42. 윤슬 (독백):**
    심연족이… 나를 살려줬다…?
    그리고… 저 수정은 뭐지…?
    날 지켜준다고? 말도 안 돼…
    그들은 인간을 증오한다고 했어…
    그렇다면… 그는 왜…?

    **[장면 5] 떨림과 의문**

    **# 배경:** 윤슬의 임시 은신처. 낡은 상가 건물의 옥상. 허물어진 콘크리트 구조물 뒤에 간이 천막을 쳐 두었다. 밤하늘에는 별들이 무수히 쏟아져 내린다.

    **# 시간:** 깊은 밤.

    **# 인물:** 윤슬.

    **43. 컷:** 윤슬이 은신처에 도착해 조용히 몸을 눕힌다. 아까의 싸움으로 지쳐있던 몸은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지만, 그녀의 정신은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깨어 있다.

    **44. 윤슬 (독백):**
    오늘 겪은 일은…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았다.
    악몽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의 눈빛… 그 차가운 손길…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세 마디.
    ‘살아남아라. 이것이 너를 지켜줄 것이다. 피해라.’
    마치… 경고 같았다.

    **45. 컷:** 윤슬이 배낭 안에서 카론이 넣어준 수정 조각을 꺼낸다. 그것은 그녀의 손바닥 위에서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46. 윤슬 (독백):**
    이게… 날 지켜준다고?
    어떻게? 이 작은 돌멩이가?
    하지만… 왠지 버릴 수가 없었다.
    버려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마치… 그가 남긴 유일한 흔적처럼…

    **47. 컷:** 윤슬이 수정 조각을 꽉 쥐고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압도적인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눈물이 맺힌다.

    **48. 윤슬 (독백):**
    나는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다.
    배워왔고, 들었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오늘, 그는 나의 적이 아니었다.
    나를 구해준… 기묘한 존재였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는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걸까?
    그에게서 느꼈던… 그 미묘한 감정은 또 무엇일까?
    이 금지된 만남이…
    내 삶을 어떻게 뒤흔들지…
    나는 아직 알지 못했다.

    **49. 컷:** 윤슬이 수정 조각을 가슴에 품고 눈을 감는다. 푸른빛이 그녀의 뺨을 은은하게 비춘다.

    **50. [에피소드 끝]**

  • 마법소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피소드 1: 별똥별 아래, 춤추는 소녀

    **장면 1**

    어둠이 세상에 스며들었다.
    하늘에는 별들이 희미하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고, 땅은 메마른 갈증에 신음했다. 한때 생명력으로 넘실대던 강물은 이제 잔해처럼 갈라진 바닥을 드러냈고, 울창했던 숲은 앙상한 가지들만을 흔들며 스산한 바람 소리를 내뱉었다. 영혼을 채우던 ‘생기’가 점점 고갈되어 가는 세상. 사람들은 희망 대신 체념을 배웠고, 눈빛에는 생기 없는 그림자만이 맴돌았다.

    **나레이션:**
    이곳은 우리가 아는 세계가 아니다. 아니, 우리가 알던 세계가 더 이상 아니게 된 곳이다. 생명의 근원인 ‘영혼의 샘’이 고갈되면서, 모든 것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절망의 땅.

    **장면 2**

    어둡고 거대한 동굴 안. 낡은 두루마리가 펼쳐져 있다. 촛불의 희미한 빛 아래, 고색창연한 글자들이 일렁인다. 그 글자들 사이로, 한 줄의 예언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레이션:**
    하지만 절망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은 존재했다. 수천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예언.

    **예언문 (판넬 중앙에 고풍스러운 글씨체):**
    **”세상의 생기가 다할 때, 별똥별 아래 태어난 ‘빛의 인도자’가 나타나리니. 그는 천하제일 무도대회에서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고갈된 샘을 다시 채워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을 것이다.”**

    **나레이션:**
    천하의 운명이 걸린 ‘천하제일 무도대회’. 전설 속 무림 고수들의 피와 땀이 어린 전장. 하지만 과연, 절망에 빠진 세상에서 누가 그 예언 속 ‘빛의 인도자’가 될 수 있을까?

    **장면 3**

    **배경:** 낡았지만 아늑한 은하의 방. 그림 도구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벽에는 직접 그린 그림들이 가득하다. 은하는 창가에 앉아 스케치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창밖은 어스름이 짙게 깔려 있다.

    **은하 (내면의 목소리):**
    요즘 세상은 왜 이렇게… 색깔이 바랬을까. 그림을 그려도 예전처럼 활기찬 색이 나오질 않아.

    **은하:**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듯)
    별들도 예전 같지 않고… 빛을 잃은 것 같아.

    그녀의 스케치북에는 한때 푸르렀을 법한 숲의 풍경이 흐릿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림 속 숲도 활력을 잃은 듯,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장면 4**

    그때, 창밖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은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은하:**
    (놀라서)
    응? 저건… 별똥별인가?

    하늘을 가로지르던 작은 빛이, 그녀의 집 마당으로 뚝 떨어졌다.

    **장면 5**

    **배경:** 은하의 집 마당. 작은 연못 옆,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들도 이제는 시들어 고개를 떨구고 있다. 그 시든 꽃잎들 사이로,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생명체가 떨어져 있다. 몸은 투명하게 빛나고, 작은 날개가 반짝인다.

    **별똥 (끙끙대는 소리):**
    으으… 아파라… 드디어… 드디어 찾았다!

    은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작은 생명체는 마치 유리 조각처럼 빛을 내고 있었고, 은하의 눈과 마주치자 더 밝게 반짝였다.

    **은하:**
    (눈을 깜빡이며)
    너… 너는 뭐니? 말하는 별똥별?

    **별똥:**
    (기침을 콜록이며)
    콜록! 별똥별은 맞지만… 말을 할 줄 아는 별똥별! 나는 세상을 지키는 고대의 정령, 별똥이라고 해!

    **은하:**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
    정령…? 세상…을 지켜?

    **장면 6**

    별똥은 은하의 어깨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은하는 간지러운 듯 어깨를 으쓱였다.

    **별똥:**
    맞아! 그리고 너는… 너는 바로 예언 속에 나타날 ‘빛의 인도자’야!

    **은하:**
    (피식 웃으며)
    빛의 인도자요? 제가요? 농담 마세요. 전 그냥 평범한 고등학생 은하인데요.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특별한 것도 없어요.

    **별똥:**
    (작은 눈을 부릅뜨고)
    네가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 너뿐이야! 너의 내면에 잠든 빛은 우주를 밝힐 만큼 강력해!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별똥:**
    시간이 없어! 세상은 지금… 죽어가고 있어. ‘영혼의 샘’이 말라버렸고, 이를 막으려면 오직 너만이 ‘천하제일 무도대회’에서 승리해야 해!

    **은하:**
    (동공 지진)
    무… 무도대회요? 제가요? 저… 전 싸움 같은 거 전혀 못해요! 개미 한 마리도 못 죽이는걸요!

    **별똥:**
    (은하의 뺨을 작은 날개로 톡톡 두드리며)
    네가 가진 건 주먹이 아니야. 마음속 깊이 잠든 빛의 힘,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너의 무술이 될 거야!

    **장면 7**

    은하는 혼란스러웠다. 평생을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세상의 운명’이라니. 하지만 별똥의 진지한 눈빛과, 창밖으로 보이는 점점 더 어두워지는 세상이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은하 (내면의 목소리):**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녀의 눈에, 빛을 잃어가던 숲과 강물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녀가 스케치북에 그렸던, 활기 넘치던 세상의 모습이 떠올랐다.

    **은하:**
    (입술을 꽉 깨물고)
    알았어… 해볼게. 내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

    그녀의 작은 손이 저절로 주먹을 쥐었다. 그 순간, 주먹 끝에서 희미한 빛이 스며 나오기 시작했다.

    **별똥:**
    (기뻐서 깡충깡충 뛰며)
    그래! 그 빛이야! 너는 해낼 수 있어, 은하! 내가 널 도울게!

    **장면 8**

    **배경:** 어느 한적한 숲속 공터.
    낮에는 별똥의 지도로 몸을 움직이는 훈련을, 밤에는 밤하늘의 별빛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명상을 거듭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은하의 몸은 점차 빛의 흐름을 익혀나갔다.

    **별똥:**
    (은하 주변을 맴돌며)
    좋아, 그 자세야! 빛을 모아! 심장의 온기와 대지의 기운을 네 몸 안으로!

    **은하:**
    (숨을 고르며 자세를 잡는다. 온몸에서 은은한 빛이 피어난다.)
    흐읍… 하앗…

    **장면 9**

    어느 날 밤. 별빛이 가장 강렬하던 순간.

    **별똥:**
    지금이야, 은하! 네 안에 잠든 ‘별의 각인’을 깨워봐!

    은하가 두 손을 모으자, 손바닥에서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그녀의 몸을 휘감았고, 마치 옷을 입듯이 변신하기 시작했다. 짧은 순간, 그녀의 평범한 옷은 마치 별들의 파편으로 엮인 듯 반짝이는 전투복으로 바뀌었다. 머리에는 작은 별 모양의 장식이 달렸고, 눈빛은 더욱 강렬하고 깊어졌다.

    **은하 (변신 후):**
    (주먹을 꽉 쥐고 온몸에서 빛을 발한다)
    이것이… 나의 힘…!

    **나레이션:**
    그녀의 이름은 은하. 평범한 소녀의 모습 뒤에 숨겨진, 별똥별 아래 태어난 ‘빛의 인도자’. 그녀는 이제, 세상의 운명을 짊어지고 전장으로 향한다.

    **장면 10**

    **배경:** 거대한 원형 경기장. 웅장한 건축물은 수천 년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하고, 경기장 중앙에는 결투를 위한 넓은 대련장이 펼쳐져 있다. 이미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모여들어 각자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며 서로를 견제하고 있었다.

    **군중 1:**
    크으, 저것이 바로 ‘철권문’의 후계자, 맹호! 기백이 하늘을 찌르는군!

    **군중 2:**
    아니, 저기 보이는 이는 ‘천검산’의 검성, 무영사부 아닌가! 이번 대회는 역대급이라더니 정말이군!

    그들 사이에서, 은하는 작고 왜소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녀의 화려한 변신복은 주변의 묵직한 무복이나 갑옷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술렁거렸다.

    **군중 3:**
    저… 저 꼬맹이는 뭐야? 설마… 선수인가?

    **군중 4:**
    무도대회가 장난인 줄 아나? 어린아이가 길을 잘못 들었군.

    **장면 11**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묵직한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들 중 가장 앞에 선 자는 우뚝 솟은 키에 단단한 근육, 그리고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중년의 사내였다. 그의 등 뒤에는 거대한 호랑이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펄럭였다. 그는 ‘백호’라 불리는, 전설적인 무공 ‘백호권’의 계승자였다.

    **백호:**
    (은하를 지나치며 싸늘한 시선으로 힐끗 본다. 미간을 찌푸리며 낮게 중얼거린다.)
    어린아이가… 장난칠 곳을 잘못 찾아왔군.

    은하는 그의 강렬한 기운에 몸이 얼어붙는 듯했지만, 이내 주먹을 꽉 쥐었다.

    **은하 (내면의 목소리):**
    그래,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를 잊지 마. 세상을 구해야 해…!

    **장면 12**

    경기장 중앙에 우뚝 선 심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심판:**
    자, 이제 대망의 천하제일 무도대회, 그 첫 번째 대결을 시작한다! 동방파 용호권의 ‘철웅’ 대…

    심판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은하를 향해 손짓했다.

    **심판:**
    …빛의 인도자, ‘은하’!

    경기장의 모든 시선이 은하에게로 쏠렸다. 은하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그녀의 심장이 발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냈다. 눈앞의 상대는 거대한 체구에 팔뚝만 한 주먹을 가진, 보기만 해도 위압적인 사내였다.

    **철웅:**
    (비웃듯이 팔짱을 끼며)
    흐음, 저런 애송이가 첫 상대라니. 하품만 나오겠군.

    **은하:**
    (두려웠지만, 눈빛만은 강렬하게 빛났다. 마음속으로 되뇌인다.)
    할 수 있어… 반드시 해낼 거야…!

    그녀의 몸에서, 희미하지만 강렬한 빛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 작은 소녀의 싸움이, 천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서막을 열고 있었다.

    **- 1화 끝 -**

  • 스팀펑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챕터 1: 별의 심장에서 깨어난 균열

    별무리마저 아득히 멀어 별의 바다라기보다는 검은 심연에 더 가까운 곳. ‘유성호(流星號)’는 묵직한 강철의 몸체를 덜컹이며 나아가고 있었다. 선실 내부를 가득 채운 증기압 조절기의 칙칙거리는 소리, 거대한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적인 굉음, 그리고 그 모든 소음을 뚫고 들려오는 ‘에테르 증기 기관’의 고동 소리가 낡은 선체를 진동시켰다. 벽면에 박힌 황동색 리벳들이 금빛으로 반짝였고, 유리창 너머의 우주는 숨 막힐 듯한 침묵 속에 검고 깊게 펼쳐져 있었다.

    선장 카이는 지휘석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증기가 가득 찬 기관실의 열기가 조종석까지 스며드는 듯했다. 땀으로 젖은 손으로 캡틴 모자를 살짝 밀어 올리자, 기름때 묻은 갈색 이마가 드러났다. 벌써 몇 주째, 그들은 우주 개척 연합이 정한 ‘미개척 구역’의 경계를 넘어 탐사를 진행 중이었다. 목적은 단 하나, 인류가 아직 발 딛지 못한 새로운 자원과 문명의 흔적을 찾는 것. 하지만 지금껏 그들이 발견한 것은 광활한 허무와 지루한 고독뿐이었다.

    “항해사 박지환, 특별한 사항 없나?”

    카이의 목소리는 스피커를 통해 지직거리는 잡음을 뚫고 항해사의 좌석에 전달되었다. 박지환은 안경을 치켜올리며 코앞의 거대한 황동제 항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수많은 톱니바퀴와 다이얼, 그리고 얇은 금속 바늘들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그 복잡한 장치는, 이 시대의 인공지능보다도 정확하다고 칭송받는 정교한 기계 계산기였다.

    “아직까지는… 아니, 잠깐만요, 선장님.”

    지환의 목소리에 미세한 긴장감이 실렸다. 그의 가늘고 긴 손가락이 항해판 위에 놓인 광학식 조준경을 조심스럽게 돌렸다. 빛바랜 가죽 장갑 위로 번들거리는 땀방울이 맺혔다.

    “알 수 없는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이전에 관측된 적 없는 패턴입니다.”

    “에너지 파동? 어느 방향이지?”

    카이의 몸이 등받이에서 떨어졌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메인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고정되었다. 우주의 광대한 지도가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의 정면에 가깝습니다. 약 3광년 지점… 어, 잠깐. 파동 강도가 급격히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뮬레이션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던 수치입니다!”

    갑작스러운 경고음이 선내에 울려 퍼졌다. 붉은 비상등이 깜빡이며 강철 벽면에 섬뜩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유성호의 낡은 선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에테르 증기 기관의 고동 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거칠게 울렸다. 칙칙거리던 증기음은 마치 거친 숨소리처럼 들렸다.

    “김나율 정비장! 기관실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카이가 통신기에 대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잠시 후, 투박한 쇳소리가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닙니다, 선장님! 기관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격렬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외부의 어떤 힘이 우리 기관에 과부하를 주고 있습니다!”

    나율은 기계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과 투박한 손길을 동시에 지닌 인물이었다. 그녀의 말은 곧 유성호가 처한 상황이 외부의 미확인 존재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의미했다.

    “박지환! 그 파동의 정체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환은 초조하게 손가락을 움직여 여러 개의 다이얼을 돌렸다. 금속 바늘이 빠르게 오르내리며 알 수 없는 수치들을 표시했다.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선장님. 하지만… 이 파동, 유기적인 생명체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대한 기계 장치에서 발생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니, 훨씬 더 오래되고… 거대하고… 복잡한.”

    유성호가 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조종석의 선반에 놓여 있던 낡은 도구들이 와르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카이는 중심을 잡기 위해 팔걸이를 꽉 붙잡았다.

    “항로를 변경해서 피할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선장님. 파동의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미지의 중력장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지환의 목소리에 명백한 공포가 깃들었다. 우주선 내부의 모든 나침반이 미친 듯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유성호는 마치 거대한 손에 붙들린 장난감처럼 무력하게 끌려가고 있었다. 창밖의 별들이 춤을 추는 듯 일그러져 보였다.

    “젠장! 전 대원, 비상 착륙 태세! 충격에 대비하라!”

    카이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선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삐걱거리는 의자들이 고정되고, 안전벨트가 단단히 채워졌다. 김나율 정비장은 통신기를 통해 “최대 출력으로 버티겠습니다, 선장님!” 하고 외쳤다.

    유성호는 빠르게 미지의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빛이 사라지고, 사방은 짙은 어둠에 잠겼다. 이따금씩 기이한 푸른 섬광이 창밖을 스쳐 지나갔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선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금속음과 함께 격렬하게 흔들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끔찍한 진동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몇 초인지, 몇 분인지 분간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시간 끝에, 갑작스러운 고요가 찾아왔다. 굉음과 진동이 뚝 끊기고, 마치 세상의 모든 소리가 빨려 들어간 듯한 정적이 찾아왔다.

    카이는 겨우 눈을 떴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지만, 다행히 몸은 무사했다. 희미한 비상등 아래로, 지환과 나율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 역시 충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시스템… 체크.”

    카이는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기관… 간신히 버티고 있습니다. 과부하가 너무 심해서 당장 움직이기는 힘듭니다.” 나율의 목소리가 통신기를 통해 들려왔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항해 시스템… 전면 먹통입니다, 선장님. 외부와의 통신도 완전히 두절되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자기장은 처음 봅니다.” 지환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안경은 한쪽 렌즈가 깨져 있었다.

    카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눈은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그들은 미지의 공간에 있었다.
    창밖은 더 이상 검은 우주가 아니었다. 옅은 안개처럼 떠다니는 푸른 빛과, 그 빛 사이로 거대하게 솟아오른 불규칙한 형상의 구조물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했다.

    “저것은… 대체…”

    카이의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류의 어떠한 과학적 상상력으로도 그려낼 수 없는 것이었다. 거대한 황금빛 금속 구조물이, 마치 수십억 년 동안 우주의 먼지와 시간의 흐름을 견뎌낸 유물처럼, 그곳에 떠 있었다. 그것은 행성만큼 거대했지만, 행성처럼 둥글지도 않았다. 복잡한 톱니바퀴와 연결된 거대한 레버,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진 거대한 석판들이 그 불규칙한 표면에 박혀 있었다. 거대한 시계의 내부를 확대한 것처럼 보였지만, 그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푸른 안개 속에서, 황금빛 유물은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그 회전 속에서, 유물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들이 희미한 빛을 내뿜었다. 그것은 마치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가, 유성호의 등장을 감지하고 서서히 깨어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선장님… 저것은…” 지환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는 공포와 경외감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저것이… 아까 그 에너지 파동의 근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형태의 에너지원을 본 적이 없습니다.”

    카이는 조종석을 벗어나 메인 창으로 다가섰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유물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이곳은… 어디지? 우리는 대체 무엇을 발견한 거지?”

    그때였다.
    유물의 가장 거대한 톱니바퀴 하나가, 마치 수억 년 만에 움직이는 것처럼, 지긋이 한 칸을 움직였다.
    정적만이 가득했던 공간에,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웅장한 기계음이 퍼져나갔다. 이어서, 유물 표면의 복잡한 문양들이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황금빛과 푸른빛이 뒤섞이며 주변 공간을 물들였다.

    그리고, 유물 한가운데, 그 거대한 기계 장치의 심장부처럼 보이는 곳에서,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들이 천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문이 열리는 것처럼, 내부의 검은 심연을 드러내며.

    유성호의 선체가 다시 한 번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번에는 파동 때문이 아니었다.
    열린 문틈으로, 알 수 없는 힘이 유성호를 향해 뻗어오는 듯한 강력한 끌림이 느껴졌다.

    카이의 눈은 그 열린 틈새에 고정되었다. 그곳에서 무엇이 튀어나올지, 혹은 그곳이 어디로 연결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인류는 지금, 우주의 심장에서,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미지의 문을 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문 너머에는, 그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 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벙커에선 낡은 형광등이 간헐적으로 깜빡이며 거친 기계음과 낮은 목소리들을 비췄다. 눅진한 흙먼지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낡은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한쪽에서는 땜질하는 스파크가 튀었고, 다른 쪽에서는 쇠붙이 긁는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강산 대장! 4호기 연료계통 누유가 심합니다. 수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두터운 장갑을 낀 손으로 거대한 철제 다리를 쓰다듬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기름때로 얼룩져 있었지만, 두 눈만은 형광등 빛 아래서 강렬하게 빛났다. 강산이었다. 한때 제국 최고의 기갑 정비사로 이름을 날렸으나, 지금은 이 지하 공동체 ‘새벽별’의 대장으로 불리는 남자.

    “시간이 없는데… 다른 방법은 없나?”

    강산은 한숨을 쉬며 옆에 놓인 설계도를 집어 들었다. 제국 수도 ‘아이언 가드’ 외곽의 에테르 정제소. 그곳은 제국의 심장부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과도 같았다. 정제소를 점거해야만, 그들의 존재를 제국에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대장. 억지로 움직였다간 폭발할 수도……”

    “젠장.”

    강산은 짧게 욕설을 뱉었다. 부패한 아레스 제국은 대지에 묻힌 고대 에너지원, 에테르를 독점하여 천상에 닿을 듯한 첨탑 도시들을 건설했다. 반면, 에테르를 캐내는 땅의 사람들에게는 유독성 찌꺼기와 죽음만이 남았다. 강산의 가족도, 친구들도 그렇게 사라져갔다. 더 이상 숨어 지낼 수는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흙먼지 속에서 죽어가는 그림자가 아니었다.

    “내가 직접 나간다.”

    강산의 말에 주위가 순간 정지했다.

    “대장?! 위험합니다! 대장은 우리 모두의 기둥입니다!”

    “그래, 기둥이 쓰러지기 전에 직접 싸워야지. 4호기 부품을 내 기체, ‘돌풍’에 달아. 그리고 출격 준비해. 오늘 밤, 우리는 제국의 심장을 찌른다.”

    강산의 눈에 흔들림은 없었다. 그의 확고한 의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새벽 직전, 가장 어두운 시간. 잿빛 하늘 아래, 거대한 실루엣들이 조용히 움직였다. 낡은 공업용 메카들을 개조한 ‘쇠말벌’ 부대였다. 제국제 타이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투박하고 작은 크기였지만, 그들의 기체 곳곳에는 평민들의 피땀과 기지가 서려 있었다.

    “돌풍, 출격 준비 완료.”

    강산은 자신의 애기(愛機) ‘돌풍’의 조종석에 앉았다. 거친 철판 냄새와 엔진 오일 냄새가 그를 감쌌다. 전면 스크린에는 목표인 에테르 정제소가 보였다. 거대한 파이프라인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수십 개의 감시탑이 어둠 속에 날카로운 눈을 번득였다.

    “모두 들리나? 작전명 ‘새벽별’. 목표, 제1 에테르 정제소. 우리의 존재를 잊은 제국에게, 평민들의 분노를 보여줄 시간이다. 움직인다!”

    강산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퍼져 나갔다. ‘쇠말벌’ 부대원들의 심장 박동이 일제히 고동쳤다.

    “돌풍, 선두!”

    강산은 스로틀을 최대로 밀어붙였다. 낡은 엔진이 으르렁거리며 붉은 불꽃을 토해냈다. ‘돌풍’은 묵직한 발걸음으로 땅을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쇠말벌들이 거친 쇳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정제소 외곽 경비선에 접근하자, 적의 감지 시스템이 그들을 포착했다.

    “경고! 미확인 비행체 접근! 즉시 격추하라!”

    경비탑에서 섬광이 터지며 레이저 포대가 불을 뿜었다. ‘위이이잉!’ 굉음과 함께 붉은 광선이 밤하늘을 갈랐다.

    “흩어져! 3번, 5번, 측면으로 우회! 나머지는 정면 돌파!”

    강산은 민첩하게 기체를 조종하며 레이저 세례를 피했다. ‘돌풍’은 옆구리에 거대한 드릴을 달고 있었는데, 평소에는 채광용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강력한 관통 무기였다. 강산은 그대로 경비탑 하나를 향해 돌진했다.

    “크아아악!”

    철판 긁는 소리가 귓가를 찢을 듯 울렸다. ‘돌풍’의 드릴이 경비탑의 강철 기둥을 뚫고 지나가자, 탑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좋아! 후속 부대, 진입!”

    하지만 그들의 진입을 막아서는 거대한 그림자가 있었다. 제국 최정예 기동부대 ‘철갑기사단’의 대장, ‘칼날’ 장군이 탑승한 타이탄 ‘제노스’였다. 제노스는 거대한 양손에 플라즈마 검을 쥐고 있었다. 번쩍이는 푸른 빛이 어둠을 가르고 강산을 노려봤다.

    “미천한 벌레들이 감히… 이 아레스 제국의 위용을 더럽히려는가!”

    칼날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기지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제노스는 거대한 발걸음으로 땅을 울리며 다가왔다. 타이탄의 중장갑은 쇠말벌의 공격으론 흠집도 내기 어려웠다.

    “각개 격파는 피한다! 전원, 칼날의 제노스를 집중 공격해라! 취약 부위는 무릎 관절과 후방 냉각 장치다!”

    강산은 냉정하게 지시했다. 쇠말벌들은 일제히 제노스를 향해 돌진했다. 몇몇 기체가 미끼가 되어 타이탄의 시선을 끄는 사이, 강산은 ‘돌풍’을 제노스의 다리 사이로 쑤셔 넣었다.

    “감히 내 발밑으로 기어들어 오다니!”

    제노스의 플라즈마 검이 땅을 찍었지만, ‘돌풍’은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거대한 무릎 관절을 향해 드릴을 발사했다. ‘쉬이이이익! 쾅!’ 드릴이 강철판에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을 냈다. 흠집은 미미했지만, 타이탄의 동작이 잠시 멈칫했다.

    “지금이다! 7번! 전방 보조 로켓 발사!”

    미리 대기하고 있던 쇠말벌 7호기가 기체에 매달린 투박한 로켓을 제노스의 냉각 장치에 발사했다. ‘콰아앙!’ 폭발음과 함께 제노스의 등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런 젠장! 감히! 감히 내 기체에 흠집을 내다니!”

    칼날 장군은 분노했다. 제노스의 플라즈마 검이 난폭하게 휘둘러지며 쇠말벌 몇 대를 순식간에 고철 덩어리로 만들었다. ‘비이이이이익!’ 비명과 함께 통신이 끊어졌다.

    강산의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뒤돌아볼 시간은 없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성공해야만 했다.

    “전원, 흩어져! 정제소 내부 진입조는 서둘러라! 제노스 교란조는 계속해서 어그로를 끌어!”

    강산은 다시 한번 제노스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돌풍’의 드릴이 이번에는 어깨 관절을 노렸다. ‘지지직!’ 고대 에테르 제어 장치에서 떼어낸 고출력 에너지 충격기가 강산의 드릴에 장착되어 있었다. 드릴이 철판에 닿자마자 강력한 전기가 흘러들며 제노스의 시스템에 과부하를 일으켰다.

    “크으으윽! 이 무슨 조잡한 기술이!”

    칼날은 비명을 질렀다. 제노스의 움직임이 잠시 마비되었다. 그 틈을 타 정제소 내부 진입조가 보안 게이트를 부수고 안으로 침투했다.

    “핵심 제어실 점거 성공! 모든 에테르 흐름을 변경 중입니다!”

    환호성이 통신망을 타고 울려 퍼졌다.

    “잘했다! 이제 철수다! 쇠말벌, 후퇴!”

    강산은 서둘러 제노스에게서 떨어졌다. 타이탄의 시스템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감히 나의 제국을 농락하고 무사히 돌아가려 하다니! 어림없다!”

    칼날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산을 쫓았다. 제노스의 팔에 달린 대구경 레이저 캐논이 ‘파아아앙!’ 하는 굉음과 함께 붉은 광선을 발사했다. 강산은 간발의 차이로 피했지만, ‘돌풍’의 왼쪽 어깨 부위가 녹아내렸다.

    “크윽!”

    강산은 이를 악물었다. 정제소는 이미 그들의 손아귀에 들어왔다. 이제 할 일은 최대한 많은 기체를 살려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쇠말벌 부대는 필사적으로 도주했다. 제국의 증원군이 곧 도착할 터였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쇠말벌들의 실루엣을 보며 칼날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에테르 정제소는 멈췄고, 제국의 심장이 잠시 멈췄다. 미천한 벌레들이 일으킨 작은 반란이, 제국의 견고한 성벽에 균열을 낸 것이다.

    강산은 피로에 젖은 몸으로 ‘돌풍’의 조종석에 기대어 앉았다. 스크린 너머로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붉게 물든 새벽 하늘이, 마치 오늘 밤 그들이 일으킨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우리는… 해냈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지만,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들은 비록 작은 불씨였지만, 이제 그 불씨는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를 향해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평민들의 반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다.

  • 스팀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속삭임

    어둠 속을 헤치며, 강철과 황동으로 주조된 거대한 심장, ‘천공의 방랑자호’는 유성우의 먼지를 가르며 나아갔다. 수억 년 전 폭발했던 거대 항성의 잔해들이 미세한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황혼의 띠’를 횡단하는 지루하고도 위험한 항해는 벌써 3개월째 접어들고 있었다. 함교는 낮게 울리는 에테르 엔진의 맥동과 수많은 태엽장치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적인 웅웅거림으로 가득했다. 번뜩이는 증기압계와 섬세한 압력 밸브들이 정교한 춤을 추듯 끊임없이 움직였고, 굵은 동관을 따라 흐르는 에테르 증기는 창문 너머의 무한한 암흑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선장님, 6분 후 황혼의 띠를 이탈합니다. 경로는 이상 없음.”

    항해사 박다솜 준위의 맑은 목소리가 적막을 깨트렸다. 그녀는 거대한 황동제 항해판 위에 꽂힌 수많은 지침들을 능숙하게 조작하며 복잡한 별들의 지도를 훑고 있었다.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우주를 향한 순수한 열망이 가득했다.

    “수고했어요, 다솜 준위.”

    이지혜 선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조타석 앞, 거대한 진공관 디스플레이에 펼쳐진 푸른빛 성운 너머에 닿아 있었다. 30년 가까이 우주를 유랑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위험과 경이로움을 목도해 온 베테랑의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지만, 강철 같은 의지는 여전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수석 엔지니어 강우진은 습관처럼 증기압계를 한 번 더 확인하며 턱수염을 쓸어내렸다. 그의 굵은 손에는 기름때가 지워지지 않는 공구 자국이 선명했다.

    “젠장, 지겨워 죽겠군. 이 황혼의 띠만 벗어나면 잠시 정비라도 할 수 있으려나.”

    강우진이 투덜거렸다. 거친 외모와는 달리, 그는 누구보다 함선에 대한 애정이 깊은 인물이었다. ‘천공의 방랑자호’의 모든 나사와 기어, 밸브 하나하나가 그의 손을 거쳐야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걱정 마세요, 강 엔지니어님. 보급 기지에 도착하면 넉넉히 휴가를 신청해 드릴 테니까요.” 이지혜 선장이 작게 웃었다. “그때까진 이 지루함도 즐겨야 할 겁니다.”

    그 순간, 함교 한쪽 구석에 자리한 과학 분석실에서 ‘삐빅’ 하는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복잡한 에테르 동력 분석 장치들과 천체 망원경, 그리고 수많은 증기 컴퓨터 단말기로 가득 찬 그곳에서, 김민준 박사가 벌떡 일어섰다. 그의 안경 너머 눈동자가 경이와 혼란으로 번뜩였다.

    “선장님! 저… 뭔가 이상합니다!”

    김민준 박사의 목소리는 평소의 차분함을 잃고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섬세한 태엽장치로 연결된 분석 패널을 두드리며 데이터를 확인했다.

    “무슨 일이죠, 김 박사?” 이지혜 선장이 그의 쪽으로 몸을 돌렸다. 강우진과 박다솜의 시선도 일제히 김 박사에게 향했다.

    “제 에테르 스펙트럼 분석 장치가… 아주 미세하지만, 지금까지 저희가 발견했던 어떤 물질과도 다른 특이한 에너지 서명을 감지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먼 곳에서요. 이 황혼의 띠 너머, 미지의 영역에서.”

    김민준 박사는 빠르게 진공관 디스플레이의 이미지를 전환했다. 희미한 점 하나가 검은 우주 공간에 떠 있었다. 너무나 작고 흐릿해서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우주 먼지처럼 보였다.

    “그게 전부입니까? 단순한 운석이나 미탐사된 소행성일 수도 있지 않나요?” 강우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닙니다! 이건… 이건 달라요. 스펙트럼이 매우 특이합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물질에서는 나올 수 없는 패턴이에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시간 동안 정지해 있었던 것처럼 보이는 모순된 신호입니다. 게다가…” 김민준 박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공간 왜곡 현상도 함께 감지되고 있습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중력 렌즈 효과와 유사한 것이 주변에 감지돼요.”

    이지혜 선장의 표정이 진지하게 굳어졌다. 공간 왜곡은 쉬이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질량이나, 혹은 이해할 수 없는 에너지가 개입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다솜 준위, 항해 경로를 확인해 보세요. 방금 감지된 신호가 있는 곳까지의 최단 거리를 계산하고, 주변의 위험 요소를 파악합니다.”

    “네, 선장님!” 박다솜은 재빨리 태엽식 항해 장치를 조작했다.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며 지도가 빠르게 재계산되고, 붉은색 점선이 미지의 지점을 향해 뻗어나갔다.

    “선장님, 저 지점까지는 현재 속도로 약 32시간이 소요됩니다. 주변에 알려진 위험은 없습니다만, 항성 지도에 등록되지 않은 미개척 지역입니다.”

    “32시간이라… 그 정도면 그리 길지 않은 거리군.” 이지혜 선장이 턱을 쓰다듬었다. “김 박사, 그 신호의 강도가 얼마나 되죠?”

    “아주 미약합니다. 저희 탐지 범위의 거의 한계 지점이에요. 하지만 꾸준히 감지되고 있습니다.”

    강우진이 한숨을 쉬었다. “미지의 영역에서, 미약한 신호? 이건 우리 ‘천공의 방랑자호’에 고철 덩어리 하나 더 얹히게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입니다. 괜히 기름만 낭비하는 거 아닙니까?”

    “새로운 발견은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는 법입니다, 강 엔지니어님.” 이지혜 선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 신호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든, 우리는 확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한 화물선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경로를 수정합니다. 목표 지점은 김 박사가 감지한 신호의 발원지. 최대 항해 속도로 접근합니다.”

    “네, 선장님!” 박다솜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복명하며 조타 키를 틀었다. 거대한 함선이 둔중한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서서히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에테르 엔진의 맥동이 더욱 강해지고, 함교 전체에 진동이 느껴졌다.

    ***

    밤과 낮이 없는 우주에서 32시간은 인내의 연속이었다. ‘천공의 방랑자호’는 미지의 영역을 향해 맹렬히 나아갔고, 그들의 앞에는 오직 어둠만이 가로놓여 있었다. 김민준 박사는 쉬지 않고 신호를 분석하며 함선이 목표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데이터를 이지혜 선장에게 보고했다.

    “선장님, 신호의 강도가 급격히 증폭되고 있습니다! 공간 왜곡 현상도 더욱 뚜렷해졌어요. 단순한 운석 따위가 아닙니다!” 김민준 박사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역력했다.

    이지혜 선장은 조타석에 앉아 직접 조타 키를 잡았다. 수십 년간 그녀의 손에 익숙한 키는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거대한 함선을 미세하게 조정했다.

    “속도 감속, 최종 접근 모드. 모든 시스템 이상 여부 확인.”

    “주 엔진 출력 70%로 감속, 보조 스팀 추진기 가동 중. 모든 에테르 동력 시스템 정상입니다.” 강우진이 침착하게 보고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까의 불만이 사라지고, 대신 베테랑 엔지니어 특유의 진지함이 깃들어 있었다.

    함교 전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다솜은 거대한 황동제 천체 망원경의 렌즈를 조작하며 전방의 미지를 응시했다. 진공관 디스플레이는 여전히 어둠만을 비추고 있었지만, 김민준 박사의 분석 패널에서는 강렬한 붉은색 파동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다솜의 입에서 억눌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선장님! 전방 1만 킬로미터 지점… 육안으로 확인됩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진공관 디스플레이와 전면의 관측창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검은 우주에 떠 있는 거대한 그림자 같았다. 하지만 ‘천공의 방랑자호’가 더욱 가까이 다가가자, 그 형체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지구상의 어떤 건축물과도 달랐다. 거대한 고대 도시의 잔해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마치 거대한 생명체의 유골처럼 보이기도 했다. 표면은 칠흑 같은 암흑 물질로 뒤덮여 있었는데, 간간이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빛이 맥동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크기는 ‘천공의 방랑자호’의 수십 배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였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함교 안의 모든 승무원들은 숨을 죽였다.

    “이게… 대체… 뭐지?” 강우진의 목소리가 넋을 잃은 듯 흘러나왔다.

    김민준 박사는 감탄과 경외심이 뒤섞인 표정으로 자신의 분석 패널을 응시했다. “에너지 서명이…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거대한 물체에서는 인공적인 추진력이나 통신 신호가 전혀 감지되지 않아요. 마치…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죽어 있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이지혜 선장은 굳은 표정으로 거대한 미지의 유물을 바라봤다. 그 칠흑 같은 표면은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했다. 형태는 기괴하고 불규칙적이었으나,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웅장하고 아름다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 마치 우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시간을 초월한 듯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더 접근합니다. 최대한 근접해서 외형을 상세히 분석할 수 있도록.” 이지혜 선장이 명령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호기심과 함께 미지의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스며 있었다.

    ‘천공의 방랑자호’는 조심스럽게 거대한 유물에 다가갔다. 함선의 육중한 금속성 선체가 유물의 그림자에 완전히 잠식되자, 그들의 앞에는 오직 검은 벽만이 펼쳐지는 듯했다. 유물의 표면에는 톱니바퀴나 레버, 혹은 다른 어떤 기계적인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암석 같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정교하게 조각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칠흑 같은 표면을 따라 흐르는 푸른빛 맥동은 마치 심장 박동처럼 느리고 불규칙했다.

    그때, 김민준 박사가 경악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선장님! 방금… 방금 제 감지기가 강력한 정신파 에너지를 감지했습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저희 함선을 향해 직접적으로 발사되고 있어요!”

    “정신파라고요? 김 박사, 그게 무슨 말이죠?” 이지혜 선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그런 종류의 에너지를 탐지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고 알고 있었다.

    “저도 이런 현상은 처음입니다! 하지만 분명해요! 제 특수 에테르 파동 분석 장치가 뚜렷한 패턴을 읽고 있습니다! 이 유물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공의 방랑자호’ 전체가 격렬하게 요동쳤다. 거대한 진공관 디스플레이가 일순간 지지직거리며 정지했고, 함교의 조명들이 깜빡였다. 에테르 엔진의 맥동이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수많은 증기압 밸브에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젠장! 무슨 일이야!?” 강우진이 급히 계기판을 확인했다. “에테르 반응이 불안정합니다! 주 동력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어요!”

    “다솜 준위, 통제권을 되찾으세요! 함선을 유물에서 멀어지게 해요!” 이지혜 선장이 소리쳤다.

    하지만 박다솜의 손은 조타 키 위에서 굳어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공포에 질려 있었고,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허공을 바라보는 듯했지만, 동시에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다솜 준위! 듣고 있습니까!” 이지혜 선장이 그녀를 흔들었다.

    그 순간, 거대한 관측창 너머의 칠흑 같은 유물에서, 수많은 푸른빛 맥동들이 일제히 강렬하게 번쩍였다. 동시에 ‘천공의 방랑자호’의 모든 승무원들의 머릿속에, 차갑고도 섬뜩한, 수억 년 된 듯한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울려 퍼졌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태엽들… 환영한다.—*

    그것은 어떤 언어로도 정의할 수 없는, 의식 그 자체에 직접적으로 각인되는 듯한 음성이었다. 목소리는 고통스러운 저음으로 시작했지만, 곧 수천 개의 다른 주파수로 나뉘어 모든 이의 정신을 동시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지혜 선장의 눈앞에는, 난생 처음 보는 환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거대한 태엽장치들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무한한 공간, 그 안에서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장대한 광경…

    그것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이 우주의 모든 지식이 그녀의 머릿속으로 폭풍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압도적인 경험이었다.

    “선장님…!” 김민준 박사의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강우진 역시 주저앉아 신음하고 있었다. 박다솜은 여전히 멍하니 유물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뺨에는 소리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지혜 선장은 필사적으로 의식을 붙잡으려 했다. 그녀의 정신은 거대한 정보의 파도에 휩쓸려 휘청거렸지만, 그녀의 의지만큼은 굳건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눈앞에 펼쳐지는 환상 속에서 한 줄기 의문을 찾았다.

    **저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정신 속에서, 칠흑 같은 유물의 심연으로부터, 하나의 단어가 천천히, 그리고 명확하게 떠올랐다.

    *—기억의 수집가.—*

    동시에, ‘천공의 방랑자호’의 모든 진공관 디스플레이에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붉은색 섬광처럼 번쩍이며 나타났다. 그리고 그 문자들이 모두 사라진 후, 오직 하나의 기호만이 남았다.

    **거대한 톱니바퀴 모양의 기호.**

    그 기호는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고, 그 중심부에서 섬뜩할 정도로 아름다운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지혜 선장은 고통과 혼란 속에서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이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그리고 너무나도 거대한, 어떤 존재다.

    그녀의 심장이, 에테르 엔진의 맥동처럼 격렬하게 울렸다. 미지의 존재가 던진 환영과 정보의 파도 속에서, 이지혜 선장은 다음 순간 무엇이 일어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천공의 방랑자호’와 그 승무원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미지의 심연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는 사실뿐이었다.

    ***

    **다음 챕터 미리보기:**

    혼란스러운 환상에서 깨어난 승무원들. ‘기억의 수집가’라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갑자기 습득하게 된 ‘지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천공의 방랑자호’는 이 미지의 유물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유물 내부로 향하는 문이 열리고, 그들은 새로운 위험과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