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스페이스 오페라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에피소드 제목: 잿빛 하늘 아래, 첫 불씨】**

    **[SCENE: 행성 켈레스 – 제2 채굴 구역. 황량하고 거대한 기계 도시의 잔해. 낡은 금속 구조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그 사이로 희미한 태양빛이 비스듬히 스며든다. 공기는 텁텁하고 무거우며, 멀리서 들려오는 채굴 기계의 둔탁한 소리가 도시의 숨통을 조이는 듯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작업복을 입고 고개를 숙인 채 이동한다. 삶의 의욕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들.]**

    **내레이션 (시아):**
    언제부터였을까. 켈레스의 하늘이 잿빛으로 물든 건.
    저 거대한 철골 구조물들이 우리가 ‘제국’이라 부르는 그림자의 심장부를 가리기 시작한 건.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태양의 온기가 어떤 색이었는지, 공기가 얼마나 맑았는지.
    그저, 살아남는 법을 알 뿐이다. 매일, 매 순간, 이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아래에서.
    이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SCENE: 제2 채굴 구역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버려진 주거지. 녹슨 철판과 폐기된 부품들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초라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중 한 집의 지붕 위, 10대 후반의 소녀 시아(SIA)가 작은 공구를 들고 폐기된 통신 장치에서 부품을 떼어내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름때가 묻어 있지만, 눈빛은 날카롭고 민첩하다. 등 뒤에는 직접 만든 듯한 낡은 배낭이 메어져 있다.]**

    **시아 (혼잣말):**
    젠장, 또 헛수고잖아. 이젠 하다하다 고철 부스러기까지 씨가 말랐군.
    (장치 안을 들여다보며 작은 한숨을 쉰다. 마른 입술을 깨문다.)
    리아 병세가 더 깊어지고 있는데… 이번 달 식량 배급도 줄었다 했고. 이대로는 정말…

    **[SCENE: 멀리서 굉음과 함께 붉은색 제국 함선 한 대가 상공을 가로지른다. 함선은 지상의 건물들을 거침없이 스쳐 지나가며 위압적인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고개를 숙이고, 몇몇은 하던 일을 멈추고 불안하게 함선을 올려다본다.]**

    **행인 1:**
    젠장, 또 시찰단인가? 뭘 또 뜯어가려고!

    **행인 2:**
    쉿! 들키면 죽어! 제국 병사들은 눈 깜짝 안 해!

    **[SCENE: 함선에서 내려온 수십 명의 제국 병사들이 거친 발걸음으로 도시를 활보한다. 그들의 갑옷은 번쩍이고, 들고 있는 무기는 위협적이다. 한 명의 장교가 앞장서서 걸으며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경멸하듯 훑어본다. 병사들은 무작위로 집들을 수색하고, 사람들을 잡아세워 짐을 뒤진다. 항의하는 자는 가차 없이 무릎을 꿇린다.]**

    **제국 장교 (거만하고 냉혹한 목소리):**
    켈레스 주민들은 들어라! 제국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너희는 그저 소모품일 뿐!
    오늘부로 제2 채굴 구역의 모든 에너지 정화 필터는 제국으로 회수한다!
    반항하는 자는 반역으로 간주하여 즉결 처형할 것이다!

    **[SCENE: 시아는 지붕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눈이 분노로 번들거린다. 에너지 정화 필터는 켈레스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과 최소한의 전기를 공급하는 필수 장치다. 그것마저 빼앗긴다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을 것이 자명하다.]**

    **시아 (이를 악물고):**
    미쳤어… 이제 물까지 끊겠다고? 리아 약도… 필터로 정수한 물이 필요한데…
    (멀리서 병사들이 그녀의 집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보고 몸이 굳는다.)
    안 돼… 리아…!

    **[SCENE: 병사들이 시아의 집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리아는 집에 혼자 있다. 시아는 급하게 지붕에서 내려와 집으로 향한다. 그녀가 도착했을 때, 이미 병사들이 집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시아 (폐허가 된 문을 보고 멈칫했다가, 곧바로 뛰어 들어가며):**
    안 돼! 멈춰!

    **[SCENE: 병사들이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작은 침대에 누워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리아(RIA)의 모습이 보인다. 리아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하고, 마른기침을 쉴 새 없이 토해낸다. 병사들은 리아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침대 옆에 놓인 작은 휴대용 에너지 정화 필터를 발견한다.]**

    **제국 병사 1:**
    여기 있다! 이놈들, 몰래 숨겨놨군!

    **시아:**
    (병사 앞을 가로막으며)
    안 돼! 그건 안 돼! 내 동생이 아파! 그걸로 물을 정수해야 한단 말이야!

    **제국 병사 2:**
    닥쳐라! 제국의 명령에 거역하는 건가? 네 동생 목숨보다 제국의 자원이 더 귀하다!

    **[SCENE: 병사 1이 시아를 거칠게 밀쳐낸다. 시아는 바닥에 나뒹군다. 머리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들은 리아의 필터를 뜯어내려 한다. 리아는 옅게 신음하며 시아를 바라본다. 시아의 눈에는 절망과 분노가 가득 찬다. 무력감에 손끝이 떨린다.]**

    **시아 (몸을 일으키려 애쓰며, 목이 쉬어버린 듯한 목소리로):**
    놔! 놓으라고! 이 빌어먹을…!

    **[SCENE: 그때, 갑자기 섬광이 터지며 병사들이 휘청거린다. 그들의 시야를 잠시 교란시킨 것이다. 혼란스러운 틈을 타, 낡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 인물이 나타나 병사들의 뒤를 노린다. 그는 능숙하게 손에 든 소형 전자 교란기로 병사들의 무전을 마비시키고, 그들이 잠시 당황하는 사이 빠르게 리아의 필터를 건드려 일시적으로 작동 불능 상태로 만든다.]**

    **카이론 (Kairon) (낮고 침착한 목소리):**
    (시아를 보며)
    더 이상은 무리다. 여기서 이러다간 둘 다 위험해진다. 필터는 못 뺏겼어.

    **[SCENE: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고 그들을 향해 달려든다. 카이론은 시아의 손목을 잡고 지붕 위로 재빨리 도약한다. 시아는 필터를 뺏기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혼란스러워한다. 병사들이 뒤쫓아오지만, 카이론은 익숙한 듯 좁은 골목과 폐건물 사이를 오가며 그들을 따돌린다.]**

    **제국 병사 1:**
    도망쳐? 잡아! 절대로 놓치지 마라!

    **[SCENE: 카이론은 시아를 이끌고 미로 같은 뒷골목을 질주한다. 시아는 쫓아오는 병사들의 시선을 피하며 카이론의 움직임을 따른다. 그들은 어느새 도시의 가장 깊은 곳, 버려진 지하 통로로 이어진 폐쇄된 구역에 도착한다. 어둡고 축축한 공기, 오래된 기계 냄새가 진동한다. 녹슨 파이프들 사이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이 들릴 뿐이다.]**

    **카이론:**
    (거친 숨을 몰아쉬며, 벽에 기대선다)
    하아… 겨우 따돌렸군. 미안하다. 네 동생 물품은 완전히 뺏기지 않았지만… 이제 당분간은 못 쓸 거야. 수리해야 해.

    **시아 (정신을 차리며 카이론을 노려본다. 경계심이 잔뜩 깃든 눈빛):**
    당신… 대체 뭐야? 그리고 왜 나타난 거야? 당신 때문에 병사들이 더 날뛸 거라고! 우리 집은…!

    **카이론 (로브를 살짝 벗어 얼굴을 드러낸다. 그의 얼굴은 깊은 주름과 굳은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난다):**
    그 병사들은 네가 있든 없든 항상 날뛰지.
    나는… 너처럼 제국의 횡포에 질려버린 자들을 돕는 자다.
    너는… ‘별의 그림자’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시아 (경계심 가득한 눈빛):**
    별의 그림자? 그건… 제국에서 말하는 반란군… 테러리스트…

    **카이론 (피식 웃으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테러리스트? 제국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더군.
    하지만 우리는 그저… 이 잿빛 하늘 아래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아 싸우는 자들일 뿐이다.
    너도 오늘 봤지? 제국은 너희에게 숨 쉴 공기조차 허락하지 않아.
    네 동생처럼 아픈 자들마저 버리는 쓰레기로 취급한다고.
    너희를 보호할 자원은 없지만, 너희가 가진 자원은 무조건 빼앗아가지.

    **시아 (시선을 피하며 낡은 벽을 내려다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무력감이 묻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데? 저 거대한 제국에 맞서서?
    우리는… 너무 작고, 약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카이론 (시아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의 손은 거칠지만 따뜻하다):**
    별은 하나하나가 작지만, 밤하늘을 수놓으면 거대한 은하를 이룬다.
    작은 불씨가 모여 거대한 화염이 되는 것처럼.
    너의 그 분노, 그 절망… 그걸 그냥 두지 마라.
    그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나는 네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봤다. 폐기된 기계들 속에서 살아남고, 쓸모를 찾는 너의 능력.
    우리에겐… 너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제국의 심장부를 꿰뚫을, 날카로운 눈을 가진 사람이.

    **[SCENE: 시아는 카이론의 눈을 응시한다. 그의 눈 속에서 그녀는 자신이 느꼈던 것과 같은,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읽어낸다. 리아의 희미한 신음 소리, 병사들에게 밀쳐졌던 순간의 치욕, 그리고 빼앗긴 필터에 대한 분노가 그녀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친다.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격렬한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시아 (작은 떨림이 섞인 목소리. 주먹을 꽉 쥔다):**
    내가… 내가 뭘 해야 하는데요?
    내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카이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며):**
    아직은 작은 일부터다. 켈레스 행성의 지하 폐쇄 구역에 제국이 숨겨놓은 비밀 통신망이 있다.
    오래된 코드를 해독하고, 숨겨진 정보망을 찾아야 해.
    너의 그 뛰어난 탐색 능력이라면… 분명 해낼 수 있을 거다.
    그것이 우리 ‘별의 그림자’의 첫 불씨가 될 거야.
    이 잿빛 하늘을 찢고, 새로운 새벽을 가져올.

    **[SCENE: 시아는 낡은 필터를 든 채 허공을 응시한다. 그녀의 눈은 불안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결심으로 불타오른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리아의 얼굴과 켈레스 주민들의 고통받는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는 더 이상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잿빛 하늘을 향해, 처음으로 똑바로 시선을 맞춘다. 이제 그녀의 눈빛에는 두려움보다 뜨거운 의지가 서려 있다.]**

    **시아 (결의에 찬, 단호한 목소리):**
    좋아요. 할게요.
    더 이상… 당하고만 있지 않을 거예요.
    리아를 위해서라도… 모두를 위해서라도.

    **[SCENE: 카이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는 시아의 어깨를 다시 한번 툭 치고는, 지하 통로 안쪽의 어둠을 가리킨다. 그 어둠 속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와 함께, 거대한 제국에 맞설 첫 발걸음이 기다리고 있다.]**

    **카이론:**
    그럼, 가자. 시아.
    우리의 별이 다시 빛날 때까지.

    **[SCENE: 시아는 카이론을 따라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그녀의 그림자가 서서히 어둠에 잠긴다. 낡은 지하 통로의 입구에는 차가운 바람만이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그 바람 속에는, 작은 불씨의 온기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실루엣이 점점 멀어져 사라진다.]**

    **내레이션 (시아):**
    나는 몰랐다. 그날, 내가 어둠 속으로 내딛는 한 걸음이,
    수많은 별들의 그림자를 깨우고, 제국의 심장에 비수를 꽂을 거대한 반란의 시작이 될 줄은.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나약한 고철 수집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는, 잿빛 하늘 아래에서 피어날, 첫 불씨가 되었다.

    **[END OF EPISODE 1]**

  • 크툴루 신화 상세한 애니메이션 대본 및 스토리보드

    ## 크툴루 신화: 심우주의 유물

    **장르:** 코스믹 호러, SF 미스터리
    **로그라인:**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심우주에서 정체불명의 외계 유물을 발견한 탐사선 승무원들. 그들은 미지의 존재가 드리운 광기의 그림자 속에서 점차 자신들의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 EPISODE 1: 심연의 부름

    **SCENE 1. 우주선 ‘아틀라스’ 함교 – 내부 – 밤하늘처럼 검고 고요한 우주 공간**

    **[음향 효과: 고요한 우주선의 배경음, 주기적으로 울리는 항해 시스템 알림음, 잔잔한 컴퓨터 팬 소리]**

    **화면:**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우주, 그 가운데 조용히 떠 있는 거대한 탐사선 ‘아틀라스’ 호. 표면에는 미지의 별빛들이 반사되어 은은하게 빛난다. 함교 내부, 푸른빛 모니터들이 가득한 공간. 조종석에는 **김지훈 (30대 후반, 조종사, 수염이 덥수룩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인상, 차분하고 현실적인 성격)**이 앉아 자동 항해 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그의 옆, 더 넓은 사령관 의자에는 **최연우 (40대 초반, 선장,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냉철하고 결단력 있는 리더)**가 앉아 우주 공간을 응시하고 있다. 함교 저편, 복잡한 분석 장비들 앞에 선 **박서준 (30대 중반, 과학 장교, 지적이고 예민한 인상, 호기심 많고 탐구적인 성격)**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띄워놓고 뭔가에 몰두해 있다.

    **김지훈:** (하품하며) 선장님, 이 속도라면 72시간 후에 목표 지점에 도달합니다. 현 항로 이탈률 0.001%, 우주 먼지 밀도 극히 낮음. 에너지 소비 효율 최고치 유지 중입니다.

    **최연우:** (눈을 감았다 뜨며) 좋아, 지훈. 잠시 눈이라도 붙이게. 이런 항해는 지루함과의 싸움이지.

    **김지훈:** (쓴웃음) 지루함이요? 선장님이야말로 휴식 좀 취하셔야 합니다. 저희가 쉬는 동안에도 이 아틀라스 호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갈 겁니다.

    **최연우:** (피식 웃으며) 자네가 없으면 불안해서 못 쉬겠군.

    **[삐이이이이익-! 경고음이 함교를 가득 채운다. 모든 모니터가 일제히 붉은색 경고 표시로 변한다.]**

    **김지훈:** (순간 몸이 경직되며) 젠장, 무슨 일이지?!

    **박서준:** (재빨리 자신의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며)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 감지! 규모가… 상상 이상입니다!

    **화면:**
    김지훈의 모니터에 알 수 없는 거대한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포착된다. 단순한 운석이 아니다.

    **최연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며) 전 함대 비상! 탐지 범위 내 모든 에너지 시그니처 분석, 즉시 항로 이탈 준비!

    **김지훈:** (손이 빠르게 키보드를 오간다) 항로 이탈 준비 중! 이 시그니처… 행성급입니다, 선장님! 그것도 미지의 물질로 이루어진!

    **박서준:** (경악에 찬 목소리) 아니, 행성이 아닙니다! 저것은… 인위적인 구조물입니다! 거대하지만, 그 형성 방식이… 저희의 모든 물리 법칙을 거스릅니다!

    **화면:**
    메인 모니터에 거대한 물체의 이미지가 확대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불규칙하면서도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마치 수많은 촉수들이 뒤엉킨 거대한 결정체 같기도, 혹은 불완전하게 형성된 거대한 거미줄 같기도 하다.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고, 가끔씩 푸른빛과 보라색이 뒤섞인 불길한 섬광이 번뜩인다. 그 크기는 소행성대 하나를 삼키고도 남을 만큼 거대하다.

    **최연우:** (숨을 들이켜며) 말도 안 돼… 저게 대체… 뭐지? 우리가 가진 어떤 기록에도 없는 물체다.

    **박서준:**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연신 조작하며) 에너지 잔류량, 구성 물질 분석 불가… 스캔 파형이 계속 왜곡됩니다. 기존의 어떤 우주 현상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김지훈:** (식은땀을 흘리며) 선장님, 저 물체가 저희 항로로 직접 다가오고 있습니다. 회피 기동 준비하겠습니다!

    **최연우:** (단호하게) 잠깐! 회피하지 마. 저것이 우리를 인지했다면, 도망가는 건 무의미하다. 속도를 늦추고, 최대한 근접해서 관측한다. 박서준, 모든 장비를 동원해서 저것의 정체를 밝혀내. 지훈, 비상 사태 돌입! 전원 전투 대기!

    **김지훈:** (당황한 얼굴로) 전투… 대기요? 선장님, 저건… 무기가 통할 것 같지 않습니다.

    **최연우:** (차갑게) 최소한 우리의 마지막을 기록할 준비라도 해야지.

    **[음향 효과: 경고음이 계속 울리는 가운데, 알 수 없는 낮은 주파수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섞여 들어온다. 불안감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악.]**

    **화면:**
    아틀라스 호가 거대한 미지의 물체에 천천히 다가간다. 물체는 점점 더 거대하고 불길하게 화면을 가득 채운다. 카메라가 물체의 표면을 확대한다. 표면 곳곳에 기이한 문양들이 새겨진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들은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는 착시를 일으킨다.

    **FADE OUT.**

    **SCENE 2. 아틀라스 호 착륙선 격납고 – 내부 – 긴장감이 흐르는 공간**

    **[음향 효과: 착륙선 점검 소리, 금속 울림, 낮은 긴장감의 앰비언스 사운드]**

    **화면:**
    착륙선 ‘헤르메스’ 앞. **최연우, 박서준, 이하나 (20대 후반, 보안 장교, 날렵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상, 냉정하고 침착한 전투 전문가)**가 완전 무장한 채 서 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뒤섞여 있다. 이하나의 어깨에는 중장비 소총이, 허리에는 섬광탄과 연막탄이 매달려 있다.

    **이하나:** (무기 점검을 마치며) 선장님, 아무리 생각해도 위험합니다. 저 물체는 지금까지 인류가 접촉한 어떤 것과도 다릅니다. 원격 탐사로 충분합니다.

    **최연우:** (방호 헬멧을 착용하며) 원격 탐사로는 한계가 있다. 표면에서 직접 샘플을 채취하고, 에너지 방출원을 찾아야 해. 만약 저것이 지성체의 소산이라면… 우리가 먼저 접근해야 다음 수를 예측할 수 있다.

    **박서준:** (들뜬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이하나 중위님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과학적 가치는 상상 이상입니다. 이런 기회는 인류의 역사상 전례가 없습니다. 인류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도 있는 발견입니다!

    **이하나:** (싸늘하게) 인류의 존재를 끝낼 수도 있는 발견일 수도 있겠죠. 저게 만약 전투 병기라면요? 아니면 전염병을 품고 있다면?

    **최연우:** (마지막으로 장비를 점검하며) 그래서 자네와 내가 동행하는 거다. 우리는 탐사 임무를 띠고 왔고, 후퇴는 없다. 지훈은 함교에서 대기하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착륙선을 원격으로 제어할 준비를 해라.

    **[음성 송신: 김지훈의 목소리]**
    **김지훈:** (무전음 섞인 목소리) 알겠습니다, 선장님. 헤르메스 통신 채널 연결 상태 양호. 언제든 복귀 준비 완료.

    **최연우:** 좋다. 출발한다.

    **화면:**
    세 사람은 착륙선에 탑승한다. 헤르메스 호는 격납고에서 분리되어 서서히 거대한 미지의 유물로 향한다. 유물의 표면이 점점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이하고 불규칙한 돌기들과 균열,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알 수 없는 액체 같은 물질들이 보인다. 빛을 반사하는 대신, 마치 공간을 빨아들이는 듯한 어둠이 유물 전체를 감싸고 있다.

    **SCENE 2-1. 착륙선 ‘헤르메스’ 조종석 – 내부**

    **[음향 효과: 착륙선 엔진 소리, 기계음, 점점 커지는 웅웅거리는 저주파 음향]**

    **화면:**
    착륙선 조종석. 조종간을 잡은 최연우의 얼굴은 헬멧에 가려져 있지만, 굳게 다문 입술에서 긴장감이 느껴진다. 박서준은 연신 모니터를 확인하며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이하나는 소총을 굳게 쥐고 외부 화면을 주시하고 있다.

    **박서준:** (감탄에 가까운 목소리) 믿을 수 없습니다. 표면 중력이 극도로 낮습니다. 마치… 속이 비어 있는 듯합니다. 물질 구성은 여전히 미확인… 하지만 이 기이한 기하학적 형태는 어떤 알려진 법칙으로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하나:** (밖을 응시하며) 저 문양들은 뭔가요?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겠죠.

    **화면:**
    착륙선 외부 카메라가 유물의 표면을 비춘다. 기괴한 나선형의 문양들이 표면을 뒤덮고 있다. 그것은 어떤 문자인 것 같기도, 생명체의 세포 구조 같기도 하다. 보는 이의 시선이 오래 머무르면 어지럼증을 유발할 듯한 복잡함이다.

    **박서준:** (떨리는 목소리) 분석 장비가 과부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에너지는… 이성적으로 인지할 수 없는 파동입니다. 감각 기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최연우:** (조종간을 미세하게 조정하며) 정신 집중해, 박서준. 감각 이상 증상이 있나?

    **박서준:** (머리를 흔들며) 아닙니다. 다만… 마치… 누군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주 낮은 주파수로…

    **이하나:** (미간을 찌푸리며) 저도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낍니다. 춥지도 않은데 몸이 으스스합니다.

    **화면:**
    유물 표면의 한 부분에 빛이 바래고 갈라진 틈이 보인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풍화된 동굴 입구처럼 생겼다. 그 안쪽은 보이지 않는 심연이다.

    **최연우:** 저기다. 저 틈으로 진입한다.

    **이하나:** (걱정스러운 목소리) 선장님, 내부로 진입하는 건… 너무 무모합니다.

    **최연우:** (단호하게) 저것의 정체를 밝히려면, 그 근원에 닿아야 한다. 지훈, 내 말을 듣고 있다면, 우리의 신호를 계속 추적해라.

    **[음성 송신: 김지훈의 목소리]**
    **김지훈:** (약간의 잡음이 섞여 들어오며) …알겠습니다… 신호 추적 중…

    **[음향 효과: 웅웅거리는 저주파 음향이 점점 더 커지며, 이제는 귀를 찌르는 듯한 고통을 유발한다. 알 수 없는 불협화음이 섞인다.]**

    **화면:**
    착륙선이 거대한 유물의 틈새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진입한다. 바깥의 어둠보다 더 짙은, 압도적인 어둠이 그들을 맞이한다.

    **FADE TO BLACK.**

    **SCENE 3. 미지의 유물 내부 – 복도/통로 – 어둡고 기괴한 공간**

    **[음향 효과: 발소리가 울리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울림, 축축한 공기 소리, 낮고 불안정한 배경음악]**

    **화면:**
    착륙선에서 내린 최연우, 박서준, 이하나가 손전등을 비추며 걷고 있다. 내부의 공간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처럼 불규칙하고 축축하다. 벽은 매끈하면서도 미끈거리는 검붉은 물질로 되어 있고, 여기저기에는 형언할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들이 부조처럼 튀어나와 있다. 공기는 무겁고, 알 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하나:** (주변을 경계하며) 이런 공간은 처음 봅니다. 모든 센서가 먹통입니다.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박서준:** (벽에 손을 대보려다 멈칫하며) 물질 분석이… 계속 실패합니다. 유기물과 무기물의 중간 형태… 혹은 그 이상의 어떤 것. 이 벽 자체가 마치… 사고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최연우:** (전등을 이리저리 비추며)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라. 서준, 저 문양들을 기록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화면:**
    박서준이 홀로그램 스캐너로 벽면의 문양들을 촬영한다. 문양들은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마치 복잡한 유기체의 신경망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고, 보는 사람의 눈을 현혹시킨다.

    **박서준:** (문양을 스캔하며) 이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정보입니다. 거대한 양의… 의식 같은 정보가… 이 문양들을 통해 흐르고 있습니다.

    **이하나:** (등골이 오싹해지는 듯) 의식이라뇨? 누가요?

    **박서준:** (말을 잇지 못하며)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정보가… 직접 제 의식에 닿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삐이이이익-! 무전기에서 심한 잡음이 들려온다.]**

    **최연우:** (무전기를 확인하며) 지훈? 김지훈! 응답해라!

    **김지훈:** (잡음 속에서 겨우 들리는 목소리) …선장님… 잡음이… 너무 심합니다… 이쪽도… 이상합니다… 함선… 시스템… 오류…

    **최연우:** (긴급하게) 무슨 오류! 정확히 보고해!

    **김지훈:** (점점 더 불안정한 목소리) …아닙니다… 제 착각인 것 같습니다… 뭔가…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우주… 너무 고요합니다… 선장님… 여기…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최연우:** (단호하게) 김지훈! 정신 차려! 상황 보고해!

    **[김지훈의 무전에서 ‘치이익-‘ 하는 잡음이 길게 이어지더니 완전히 끊어진다.]**

    **최연우:** (무전기를 내려다보며) 지훈! 응답해라!

    **이하나:** (소총을 단단히 쥐며) 통신이 끊겼습니다.

    **박서준:** (온몸을 떨며) 벽의 문양들이… 빛나고 있습니다.

    **화면:**
    박서준이 스캔하던 벽면의 기하학적 문양들이 희미하게 보라색과 푸른색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빛은 미약하지만, 그 자체로 섬뜩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하다. 벽면의 표면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최연우:** (총을 꺼내 들며) 물러서, 서준!

    **박서준:** (눈을 깜빡이며) 안 됩니다… 저것은…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박서준의 눈이 순간적으로 보라색으로 섬광처럼 빛난다. 그의 얼굴에 알 수 없는 황홀감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스쳐 지나간다.]**

    **이하나:** (경악하며) 박서준 박사님! 제정신이 아니십니다!

    **화면:**
    박서준이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벽으로 한 발짝 다가간다. 그의 손이 벽의 문양을 향해 뻗어진다.

    **최연우:** (급히 박서준을 잡아끌며) 서준! 그만둬!

    **박서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최연우를 바라보며) …선장님… 우리는… 이전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보게 될 겁니다… 시작과 끝… 그 모든 것을…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음향 효과: 박서준의 목소리에 알 수 없는 낮은 주파수의 웅웅거리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유물 내부에서 멀리서 들려오던 울림이 이제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듯 커진다. 불쾌하고 비정상적인 정신적 충격을 주는 소리.]**

    **화면:**
    박서준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의 얼굴은 피가 빠져나간 듯 창백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여전히 광기 어린 집착이 서려 있다. 벽의 문양들은 더욱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하고, 유물 내부 전체가 알 수 없는 에너지로 뒤덮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하나:** (총을 겨누며) 저게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최연우:** (박서준을 붙잡은 채 흔들며) 박서준! 제정신으로 돌아와!

    **[갑자기 유물 내부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한다. 천장에서 미세한 돌 조각들이 떨어져 내린다.]**

    **박서준:** (손을 뻗어 벽에 닿으려 하며) 보세요… 모든 진리가… 여기에…!

    **화면:**
    박서준의 손가락이 벽의 빛나는 문양에 닿으려는 찰나, 벽면에서 검고 끈적한 액체가 스며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은 마치 피처럼 보이기도 하고, 끈적한 기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액체는 문양을 따라 흐르며 더욱 기이한 형태로 변해간다.

    **최연우:** (경악하며) 이하나, 후퇴한다! 당장 착륙선으로 돌아가!

    **이하나:** (뒤를 돌아보며) 착륙선까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면:**
    방금 자신들이 걸어왔던 통로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형태를 바꾸고, 벽면이 서로 엉겨 붙으며 길을 막아버린 모습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던 거대한 촉수 같은 것들이 천장에서 내려오기 시작한다. 그 촉수들은 꿈틀거리며 주변의 빛을 흡수하는 듯 검붉은 색을 띤다.

    **최연우:** (총을 쏘며) 젠장!

    **[총성이 울리지만, 촉수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빠르게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박서준:** (웃음을 터뜨리며) 이제… 보게 될 겁니다…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 우주의 진정한 주인이… 잠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화면:**
    박서준의 얼굴이 극도의 공포와 희열로 일그러진다. 그의 눈동자는 완전히 검게 변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등 뒤로 거대한 촉수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FADE OUT.**

    **SCENE 4. 아틀라스 호 함교 – 내부 – 절망적인 침묵**

    **[음향 효과: 고요하지만 불길한 배경음악, 통신 끊김의 ‘치이이익’ 하는 잡음이 주기적으로 들려온다]**

    **화면:**
    함교. 김지훈이 초점 없는 눈으로 메인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모니터에는 착륙선 ‘헤르메스’의 신호가 완전히 끊긴 ‘SIGNAL LOST’ 문구가 깜빡이고 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하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는 무언가에 홀린 듯 자꾸만 창밖의 거대한 유물을 바라본다.

    **[음성 송신: 최연우의 비명 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괴물 소리가 짧게 스쳐 지나간다. 다시 잡음.]**

    **김지훈:**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선장님… 이하나 중위님… 박서준 박사님…

    **화면:**
    김지훈의 손이 천천히 통신 콘솔로 향한다. 그의 손은 떨리고 있다. 그는 다시 한번 최연우를 부르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흐릿하다.

    **[삐이이이이익-! 갑자기 함교 전체의 조명이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알 수 없는 불협화음이 함교 내부를 가득 채운다.]**

    **화면:**
    김지훈이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본다. 그의 시선이 메인 모니터로 향한다. ‘SIGNAL LOST’ 문구가 사라지고, 대신 정체불명의 기하학적 문양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마치 유물의 내부에서 박서준이 보았던 그 문양들과 흡사하다. 문양들이 꿈틀거리며 화면에서 튀어나올 듯 생생하게 움직인다.

    **김지훈:** (떨리는 목소리로) 안 돼… 안 돼…

    **화면:**
    김지훈의 뒤로, 함교의 거대한 통유리창 너머, 유물의 표면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 빛은 점점 강렬해지더니, 유물 전체가 살아있는 거대한 눈처럼 번뜩인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마치 심연 속에서 깨어난 무언가의 그림자가, 흐릿하게 형언할 수 없는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거대하고, 비인간적이며, 끝없는 어둠을 품고 있는 듯한 존재의 윤곽이…

    **김지훈:** (절규한다) 흐아아아아아악!!!

    **[음향 효과: 김지훈의 절규가 기괴한 불협화음과 웅웅거리는 저주파음에 섞여 들린다. 모든 소리가 정점을 찍으며, 듣는 이의 이성을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비명으로 변모한다.]**

    **화면:**
    카메라가 김지훈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의 눈은 공포와 절망, 그리고 서서히 물드는 광기로 가득 차 있다. 그의 눈동자에 거대한 유물의 섬광이 비친다.

    **FADE TO BLACK.**

  • 가상현실 게임 (VRMMO)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고요한 밤이었다. 적어도 이진우의 머리 위, 낡은 층수 숫자 폰트가 박힌 복도 너머의 세상은 그러했다. 하지만 그의 귓속엔 광활한 초원의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마수의 포효, 그리고 손에 쥔 고대의 검이 공기를 가르는 섬뜩한 파열음이 가득했다. ‘넥서스 월드’. 지금껏 나온 어떤 게임보다도 현실 같고, 또 현실보다 자유로운, 그의 유일한 낙원이자 생존 공간이었다.

    “크아아악!”

    VR 헤드셋 안, 거대한 트롤이 둔탁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진우는 허리를 숙여 간신히 피하며, 검날에 마나를 응축시켰다. 푸른 빛이 칼날을 따라 번뜩였다.

    “이제 끝이다, 이 고철덩어리야!”

    외치며 힘껏 검을 휘둘렀다. 쩌저적! 트롤의 단단한 피부가 갈라지며 경쾌한 사운드 이펙트와 함께 붉은 숫자들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이내 거대한 몸체가 무너지며 콰앙, 하는 진동이 진우의 전신을 울렸다. 승리. 짜릿한 쾌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휴우…”

    무의식적으로 깊은 숨을 내쉬었다. 가상현실 속에서도 전투는 언제나 전신을 소모시키는 일이었다.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묘한 기분이었다. 그의 시선은 가상현실 속에서 드넓게 펼쳐진 대초원을 따라 흘렀다. 저 멀리, 빛나는 도시 ‘아크로폴리스’의 첨탑들이 보였다. 그곳은 온갖 종류의 모험과 기회가 넘쳐나는 곳이었다. 반면, 현실의 그의 아파트는…

    “젠장, 또야?”

    진우는 헤드셋 너머로 낡은 방 안을 힐끗 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에너지 음료 캔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내용물이 반쯤 남아있어 바닥에 축축한 얼룩을 만들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가 발로 찼나? 아니면… 고양이가 있었나?’ 하지만 진우는 고양이를 키우지 않았다. 게다가 발로 찰 리도 없었다. VR 플레이 중에는 의자에 꼼짝없이 앉아 허공에 손짓하는 게 전부였다.

    “피곤한가 보네, 진우야.”

    스스로에게 중얼거렸다. 밤샘 플레이가 흔한 일상이었다. 그저 피로가 만들어낸 환각, 혹은 잠결의 실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시 헤드셋을 고쳐 쓰고 미니맵을 열었다. 길드원들과 함께 사냥해야 할 다음 목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몇 시간 후, 게임 내 시간으로는 이미 해가 져 어둠이 깔린 숲을 헤치고 있었다. 길드원 중 한 명인 ‘스텔라’가 대화창에 메시지를 띄웠다.

    [스텔라: 진우 오빠, 오늘따라 뭔가 집중 못 하는 거 같아요? 방금 뒤따라오다가 몬스터한테 맞을 뻔했잖아요.]
    [진우: 아, 미안. 좀 피곤해서.]
    [스텔라: 혹시 어제 야근했어요? 요즘 얼굴이 많이 상해 보여요.]
    [진우: 아냐, 그냥… 며칠 밤샘 플레이가 좀 무리였나 봐.]

    그는 거짓말을 했다. 어젯밤 일어났던 일 때문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분명 닫아두었던 부엌 창문이 새벽에 스르륵 열려 있었다. 겨울바람이 차갑게 불어와 온몸을 얼렸다. 단순히 닫는 걸 깜빡했으리라 애써 생각했지만, 어딘가 찝찝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아침,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욕실 거울에 김이 서린 채로 누군가 손가락으로 그린 듯한 알 수 없는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순간 섬뜩했지만, 곧 아침 안개 때문에 착각한 거라고 애써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윽… 이러다 진짜 현실이 피폐해지겠네.”

    현실의 아파트였다. VR 헤드셋을 잠시 벗었다. 목덜미가 뻐근했다. 스트레칭을 하려 몸을 일으키는 순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유리컵 하나가 스르륵 움직였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밀어낸 것처럼, 테이블 가장자리로 천천히 미끄러져 떨어지려 했다.

    “뭐야?”

    진우는 눈을 비볐다.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컵은 계속해서 미끄러졌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놀라서 손을 뻗는 순간, 컵은 테이블 끄트머리에서 툭,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부딪히며 ‘쨍그랑!’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진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등골을 타고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이, 온몸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이… 이건 아니야.”

    그는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누군가 장난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혹시… CCTV라도 달렸나? 아니, 이 낡은 아파트에? 그리고 누가 이런 장난을 친단 말인가? 도어락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겁에 질린 진우는 부서진 유리 조각들을 애써 무시하며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헤드셋을 다시 쓸 엄두도 나지 않았다. 대신, 침대 밑에 넣어두었던 먼지 쌓인 야구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무게감이 주는 미미한 안정감에 의지하며 방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창문도 단단히 닫혀 있었고, 옷장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누구야?!”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공포가 온몸을 조여 왔다. 침묵. 깊은 침묵만이 되돌아왔다. 그러나 진우는 확신했다. 뭔가 ‘있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스윽…’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우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돌렸다. 옷장 문이 열려 있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아주 천천히, 안쪽으로 스르륵 열려 있었다. 그 안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어둠 속에서… 뭔가 희미하게 빛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가상현실 속에서 미지의 던전을 탐험할 때 느껴지는 서늘한 기시감이었다.

    “뭐… 뭐야…”

    진우의 입술이 바싹 말랐다. 야구방망이를 든 손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한 발짝, 한 발짝, 뒷걸음질 쳤다. 옷장 안의 어둠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안에서 뭔가가 그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옷장 문이 활짝 열리며 안쪽에 걸려있던 그의 낡은 코트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이어서 안에 쌓여 있던 오래된 박스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요란한 소음이 진우의 고막을 때렸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왔다. 거실의 깨진 유리 조각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도망쳐야 해!’

    현관문을 향해 달려가 손잡이를 잡았다. 손잡이는 차갑고 끈적거리는 감촉이었다. 놀라서 손을 떼려 했지만,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손잡이에 접착제라도 발라져 있는 것처럼 끈덕지게 달라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그는 힘껏 손을 비틀었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지 마…”

    낮고 쉰 목소리였다. 진우는 얼어붙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감히 뒤를 돌아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가지 마… 아직은…”

    목소리는 더욱 가깝게 들려왔다. 마치 바로 그의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차가운 숨결이 그의 목덜미를 스치는 것이 느껴졌다. 소름이 쫙 돋았다.

    그 순간, 진우의 눈앞에 펼쳐진 거실 풍경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벽지가 너울거리고, 천장의 조명이 깜빡였다. 마치 VR 게임 속에서 랙이 걸린 것처럼, 공간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시야가 흐려지고, 그의 발아래 마룻바닥이 흐물흐물 물결쳤다.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아는 현실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랐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가 본 것은…

    거실 한가운데, 깨져 흩어진 유리 조각들 위로, 그의 VR 헤드셋이 마치 제단을 장식하는 의식용 물건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이었다. 헤드셋의 검은 화면은, 마치 깊은 심연처럼 그의 모든 것을 빨아들일 듯이 어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그 헤드셋 너머, 어둠이 가득한 그의 방 안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형태만 어렴풋이 보이는 존재였다. 그것이 다가올수록, 아파트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진우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어서… 들어와…”

    이번에는 목소리가 두 개, 세 개, 혹은 그 이상으로 겹쳐 들려왔다. 마치 수십 명의 영혼이 동시에 속삭이는 듯한 섬뜩함이었다.

    진우는 공포에 질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VR 헤드셋은 마치 그를 유혹하는 지옥문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그는 도망칠 수 없는 무언가와 마주해야 할 것만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마주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의 눈앞, 헤드셋 바로 위 공중에서, 아파트 창문으로 들어온 달빛이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나는 먼지 입자들이, 마치 작은 유령들처럼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먼지 입자들이 모여, 스르륵, 아주 천천히,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손가락이었다. 가늘고 창백한 손가락이, 허공에 대고 아주 천천히,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김 서린 욕실 거울에 새겨져 있던, 바로 그 알 수 없는 문양을.

    진우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그의 삶, 그의 유일한 탈출구였던 VR 게임이, 이제 현실의 공포와 뒤섞여 알 수 없는 악몽으로 변질되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양이 허공에서 완성되는 순간, 아파트 전체가 다시 한번 거세게 흔들렸다. 천장의 조명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암흑 속에서, 헤드셋의 검은 화면이 기이하게 번쩍였다.

    그의 아파트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의 현실은 시작되고 있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제목: 새벽별 아래, 어둠을 뚫고**

    [어둡고 낡은 지하 도시의 전경.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빌딩들이 하늘을 찌르고, 그 사이를 낡은 금속 다리 위로는 제국의 순찰 드론들이 무심하게 불빛을 뿜으며 떠다닌다. 지상의 화려한 신제국의 수도와는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화면은 이내 좁은 골목으로 줌인된다. 후미진 벽에 기대어 그림자처럼 숨어 있는 한 인물이 보인다.]

    **나레이션 (세라):**
    이 거대한 도시의 심장부엔 심장이 없다. 오직 제국의 차가운 기계 장치와, 그 아래서 신음하는 수많은 이들의 그림자뿐.
    우리는 그림자 속에 사는 존재. 하지만 오늘은, 그 그림자 속에서 한 줄기 빛을 훔쳐낼 것이다.

    [세라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후드 아래로 보이는 날카로운 눈매와 굳게 다문 입술. 그녀의 귀엔 소형 통신 장치가 달려있다.]

    **혁 (통신):**
    세라. 현재 시간 22시 03분. 제국 통신탑 외곽 보안망, 5분 후 일시 해제된다. 준비 완료됐나?

    **세라 (낮고 침착하게):**
    항상. 위치 확인해라, 혁.

    [세라의 시선이 저 멀리, 밤하늘을 뚫고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통신탑을 향한다. 통신탑 꼭대기에는 붉고 푸른 감시등이 번쩍이며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혁 (통신):**
    (전자음 섞인 목소리) 확인. 탑 외곽 3구역, 레이더망 2초간 정지. 그때다, 세라.

    [세라,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쓰고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긴다. 그녀의 몸놀림은 경이로울 정도로 민첩하고 조용하다. 낡은 벽을 박차고 뛰어오르며, 폐쇄된 상점의 간판을 밟고 다음 건물로 넘어간다. 밤의 장막이 그녀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감춘다.]

    [효과음: 휘익-! (바람 가르는 소리), 스윽- (착지)]

    **지아 (통신, 살짝 긴장한 목소리):**
    세라 언니, 제가 맡은 서쪽 구역은 아직 특이 사항 없어요. 제국 순찰대, 정기 코스 돌고 있고요.

    **세라:**
    방심하지 마, 지아. 제국은 그림자조차 감시하는 눈을 가졌다. 놈들의 눈은 쉴 틈 없이 우리를 쫓고 있어.

    [세라, 통신탑 외곽의 콘크리트 벽에 다다른다. 벽에는 제국 문양이 새겨져 있고, 곳곳에 감시 센서들이 박혀있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얇은 갈고리를 꺼내 무음으로 벽에 고정시킨다.]

    **혁 (통신):**
    지금이다!

    [효과음: 삑-! (전자음), 웅- (잠시 정지하는 소리)]

    [감시 센서들이 일제히 붉은 빛을 잃고 암흑으로 변한다. 세라,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갈고리를 타고 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움직임은 마치 거미와 같다.]

    [효과음: 슈슉- 슈슉- (로프 오르는 소리)]

    **세라:**
    (숨 가쁜 목소리) 해킹은… 서버룸까지 연결되나?

    **혁 (통신):**
    목표는 중앙 제어 서버다. 그곳의 시스템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켜야 해. 제국이 우리 ‘미궁’ 구역에 심어놓은 모든 감시망을 마비시킬 수 있을 거야. 놈들이 평민들의 삶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그 지긋지긋한 눈을 잠깐이라도 감겨야 해!

    **세라:**
    (힘겹게 숨을 고르며) 지긋지긋한 정도가 아니지. 놈들은 우리의 숨통을 조이고 있어. 모든 일상을 통제하고, 모든 희망을 꺾으려 하지.

    [세라, 통신탑 상층부의 환기구 철망에 도착한다. 철망은 낡았지만 제국 문양이 새겨진 볼트들로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그녀는 소형 스패너를 꺼내 순식간에 볼트들을 풀어낸다.]

    [효과음: 드르륵- (볼트 풀리는 소리), 틱- (철망 분리)]

    [환기구 안으로 몸을 던지는 세라. 어둡고 좁은 통로가 그녀를 삼킨다.]

    [장면 전환: 통신탑 내부, 서버룸 입구]

    [어둠 속에 잠긴 복도. 제국 병사들이 정기 순찰을 돌고 있다. 그들의 갑옷은 은빛으로 번쩍이며, 손에 든 에너지 라이플은 푸른빛을 뿜어낸다. 세라는 천장의 환기구 틈새로 그들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혁 (통신):**
    경비병 3명, 2분 후 우회전. 그 틈에 진입해.

    **세라:**
    확인.

    [병사들이 복도 모퉁이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세라. 그녀는 환기구에서 유령처럼 내려와, 발소리 하나 없이 서버룸 입구에 다다른다. 잠금장치를 해킹하는 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효과음: 삐비빅- (해킹음), 철컥- (문 열리는 소리)]

    [서버룸 내부. 수많은 서버 랙들이 푸른빛을 내며 웅웅거린다. 중앙에는 거대한 원형 홀로그램 콘솔이 떠 있고, 제국의 문양이 쉴 새 없이 회전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제국 권력의 상징이다.]

    **세라:**
    (중얼거림) 드디어…

    [세라는 곧바로 콘솔 앞에 선다. 그녀의 손에서 빛나는 장치가 꺼내지고, 콘솔에 연결된다.]

    **혁 (통신):**
    좋아, 세라! 이제 내 차례다. 제국 시스템, 방어벽이 상상을 초월한다.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세라:**
    (콘솔 화면을 보며) 놈들은 우리가 눈을 뜨는 것을 두려워해. 이 작은 균열 하나가,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릴 불씨가 될 수 있어. 새벽별은 그렇게 뜨는 거야.

    [세라의 시선은 콘솔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많은 코드들이 빠르게 스크롤 되고, 혁의 해킹 프로그램이 제국의 방어 시스템을 뚫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시각화되어 나타난다.]

    [효과음: 띠리리릭- (해킹 진행음), 웅-웅- (서버 구동음)]

    **혁 (통신):**
    젠장, 놈들 AI 방어 시스템이 예상보다 훨씬 강력해! 이거… 자칫하면 역추적당할 수도 있다!

    **세라:**
    (날카로운 목소리) 버텨, 혁! 우리는 여기까지 오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걸었어.

    [콘솔 화면에 갑자기 붉은 경고창이 번쩍인다.]

    **혁 (통신):**
    크악! 젠장! 발각됐다! 제국 보안망에 침입 경보가 울렸어! 병사들이 몰려올 거야!

    [효과음: 삐비비빅-! (경보음! 굉음을 내며 울리기 시작한다)]

    [서버룸 천장의 붉은 경광등이 회전하며 섬광을 뿜어낸다. 복도 저편에서 병사들의 발소리가 점점 커진다.]

    **세라:**
    (이를 악물고) 얼마나 남았어?!

    **혁 (통신):**
    최종 단계! 마지막 방어벽이다! 10… 9…

    [쾅-! (문이 부서지는 소리)]

    [서버룸 문이 산산조각 나며 제국 병사들이 들이닥친다. 그들의 에너지 라이플이 세라를 향해 겨눠진다.]

    **제국 병사 1:**
    정지해라! 반란군 놈!

    **세라:**
    (절박하게) 혁! 빨리!

    **혁 (통신):**
    7… 6… 5… !

    [효과음: 퓨슈슈슈-! (에너지탄 발사 소리)]

    [세라, 몸을 날려 에너지탄을 피한다. 동시에 허리춤에서 단검을 뽑아 던져 병사의 어깨를 맞춘다.]

    [효과음: 퍽-! (단검 박히는 소리)]

    **제국 병사 1:**
    크아악!

    [세라, 쓰러진 병사의 라이플을 뺏어들고 반격한다. 그녀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하며 빠르다. 좁은 서버룸 안에서 병사들과 격렬하게 교전한다.]

    [효과음: 퓨슈슈슈-! 챙강-! 퍽-! (전투음)]

    **혁 (통신):**
    3… 2… 1… ! 성공이다! 시스템 교란 성공! 미궁 구역 감시망, 일시 정지!

    [세라의 콘솔 화면에 ‘COMPLETE’라는 글자와 함께 푸른빛이 번쩍인다. 동시에 통신탑 전체의 붉은 경보등이 잠시 깜빡이더니, 모든 화면이 암전된다. 그리고 이내 다시 켜지지만, 전과는 다른, 혼란스러운 정보들이 뒤섞여 출력된다.]

    **제국 병사 2:**
    이, 이게 무슨… 시스템이… 마비됐습니다!

    **제국 병사 3:**
    감시망이… 작동하지 않아!

    [세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그녀는 재빨리 콘솔에서 장치를 분리하고, 부서진 문을 향해 질주한다.]

    **세라:**
    (숨 가쁘게) 퇴각한다!

    **혁 (통신):**
    빨리 도망쳐! 제국 본부에서 병력 증원을 요청한 모양이야! 탑 상층부에서 감지된다!

    [세라, 복도를 따라 뛰쳐나간다. 뒤에서는 병사들의 추격이 이어진다.]

    **제국 병사 1 (회복한 듯):**
    놓치지 마라!

    [효과음: 쿵! 쿵! 쿵! (병사들의 발소리)]

    [세라,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제국 병사들이 설치해 놓은 레이저 트랩을 피한다. 그녀의 탈출 경로는 이미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져 있었다.]

    [장면 전환: 통신탑 외벽. 세라가 아슬아슬하게 벽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 그녀의 손발은 거칠게 움직인다. 멀리서 지아가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낸다.]

    **지아 (통신):**
    세라 언니! 이쪽이에요! 착지 지점 확보했어요!

    **세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간다!

    [그 순간, 통신탑 꼭대기에서 굉음과 함께 붉은 섬광이 터져 나온다. 거대한 홀로그램 스크린이 허공에 펼쳐지고, 그 안에는 신제국의 사령관, 벨론의 냉혹한 얼굴이 떠오른다.]

    **벨론 사령관 (홀로그램, 비웃는 듯):**
    하찮은 쥐새끼들이 감히 제국의 심장을 건드렸군. 잠시 혼란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결국 너희의 숨통을 끊을 뿐이다. 그 하찮은 자유는 불꽃처럼 스러질 것이다.

    [홀로그램 벨론의 뒤로, 수십 대의 제국 드론 전투기가 굉음을 내며 출격한다. 통신탑 주변을 순식간에 에워싸기 시작한다. 드론 전투기들의 푸른색 조명등이 어둠을 찢고 세라를 비춘다.]

    [효과음: 윙- 윙- 윙-! (드론 전투기 출격음)]

    **혁 (통신):**
    젠장! 벨론이 직접 움직인다! 세라! 위험해!

    **세라:**
    (하늘의 드론들을 노려본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지만, 상황은 절망적이다.)
    …하지만… 이 순간, 미궁 구역의 모두가… 자유를 느꼈을 거야. 단 1분이라도…
    그 1분이, 놈들의 영원한 통제를 산산조각 낼 거다.

    [세라, 드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그녀의 아래에는 깊은 어둠이 펼쳐져 있고, 위로는 수많은 드론들이 그녀를 노리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비장한 결의가 스친다.]

    **나레이션 (세라):**
    자유의 맛을 본 자들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놈들은 감히, 우리에게 희망을 심었다.

    [세라, 드론들을 향해 단검을 꽉 쥐고 비장하게 하늘을 올려다본다.]

    [효과음: 쐐액-! (날아드는 드론 전투기의 위협적인 소리)]

    **혁 (통신, 다급하게):**
    세라! 안 돼!

    [클로즈업: 세라의 결연한 눈빛. 그녀의 손에 든 단검 끝에 도시의 불빛이 반사되어 번쩍인다. 이제 그녀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 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삭풍이 불어왔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앙상한 뼈대만 남은 빌딩 숲 사이를 헤치고 지나는 바람은, 메마른 비명처럼 스산하게 귓가를 스쳤다. 강철은 오래된 철골 더미 위에 웅크리고 앉아 황혼이 짙게 깔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노을은 언제나처럼 이 망가진 세상에 기괴한 아름다움을 덧씌웠다. 마치 피를 토한 대지의 마지막 한숨처럼.

    “젠장, 아무것도 없어.”

    건조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에서 겨우 새어 나왔다. 이틀째, 제대로 된 먹을거리는 고사하고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다. 등 뒤의 낡은 배낭은 텅 비어 있었고, 허리춤에 찬 녹슨 단도만이 그의 유일한 벗이었다. 발아래 펼쳐진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폐허, 한때는 ‘도시’라 불렸던 거대한 묘지였다.

    강철은 온몸을 덮은 누더기 옷을 여몄다. 체온은 자꾸만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야 했다. 겨울은 이 대재앙 이후,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통을 조이는 가장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낡은 작업화가 발아래 부스러진 콘크리트 조각들을 으스러뜨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쁜 짐승 울음소리가 그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이 망가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변이된 짐승들도, 무너진 건물더미도 아니었다. 바로 인간이었다.

    사흘 전, 그는 한 무리의 약탈자들에게 쫓기다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그때 얻은 상처는 아직도 옆구리에서 지끈거렸다. 강철은 한때 무림의 정파 문파에서 검을 배웠던 자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진 지금, 그의 검술은 그저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도구일 뿐이었다. 화려한 초식도, 거창한 명분도 없었다. 오직 베고, 찌르고, 막아내는 본능적인 움직임만이 남았다.

    그는 눈앞에 우뚝 솟은, 간신히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낡은 공장 건물을 바라보았다. 저곳이라면 혹시, 하는 희망이 실낱처럼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하지만 동시에 불길한 예감이 똬리를 틀었다. 저런 곳은 분명 다른 이들의 눈에도 띄었을 터.

    “그래도 가봐야지.”

    강철은 마른침을 삼켰다. 한 걸음, 한 걸음, 지독한 허기와 싸우며 발걸음을 옮겼다. 공장 내부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코를 찔렀다. 널브러진 기계 잔해들과 먼지가 수북이 쌓인 선반들이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둠 속을 더듬어 들어가던 그의 눈에 한 줄기 빛이 스쳤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 아래, 오래된 작업대 위에 놓인 것이 보였다. 작은 캔 하나. 통조림이었다.

    강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믿을 수 없었다. 이 폐허에서, 그것도 통조림이라니. 그는 망설일 틈도 없이 그것을 향해 달려갔다. 캔을 움켜쥐는 순간, 그의 손끝에 단단한 감촉이 전해졌다. 녹슬었지만, 아직 찌그러지지는 않은 멀쩡한 통조림이었다. 고기 통조림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음식의 향기가 환각처럼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캔을 따서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싶었지만,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얻은 경고음이 그의 뇌리에서 울렸다.

    *경계해라. 너무 쉽게 얻는 것은 언제나 더 큰 대가를 요구한다.*

    강철은 주변을 경계하며 캔을 품에 안았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철컥 소리.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렸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형체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허름한 옷차림에 얼굴에는 온통 흙먼지가 뒤덮여 있었고, 앙상한 손에는 녹슨 쇠꼬챙이와 날카로운 조각칼이 들려 있었다. 약탈자들이었다.

    “흐흐, 제법이잖아? 그렇게 귀한 걸 찾다니.”

    앞쪽에 선 자가 비틀린 웃음을 흘렸다. 그의 눈동자는 굶주린 짐승처럼 번뜩였다.

    “그거, 우리 거야. 곱게 내놔.”

    강철은 통조림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이 자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굶주림과 광기를 직감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자들이었다.

    “이건 내가 찾은 거다.” 강철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다. “탐내지 마라.”

    “오호라? 배짱도 두둑하군.”

    뒤편의 약탈자가 비웃으며 한 걸음 다가섰다. 그는 쇠꼬챙이를 바닥에 찍으며 위협적으로 몸을 흔들었다.

    “어차피 혼자선 다 못 먹을 거 아니냐? 우리랑 나눠 먹자고.”

    “나눠 먹을 생각이라면 애초에 이런 식으로 튀어나오지 않았겠지.”

    강철은 품속에서 단도를 꺼내 들었다. 금속이 부딪히는 긁힌 소리가 공장 안에 날카롭게 울렸다. 낡은 단도였지만, 그의 손에 들리자마자 마치 살아있는 독사처럼 번뜩였다.

    “흥, 그까짓 녹슨 칼로 뭘 하겠다는 거야?”

    앞선 약탈자가 쇠꼬챙이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강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그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의 시야는 지극히 좁은 하나의 점에 집중되었다. 상대의 움직임, 호흡, 미세한 근육의 떨림까지.

    *휘익!*

    쇠꼬챙이가 그의 머리를 노리고 맹렬하게 날아왔다. 강철은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여 간발의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동시에 그의 단도가 섬광처럼 움직였다. 약탈자의 팔뚝을 노린 정확하고 빠른 찌르기.

    “크악!”

    약탈자가 비명을 지르며 팔을 움켜쥐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강철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그는 망설임 없이 다음 움직임을 준비했다. 이 세상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이었다.

    뒤편의 약탈자가 눈이 휘둥그레져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이, 이놈이!”

    그가 들고 있던 조각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달려들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앞선 약탈자보다도 훨씬 엉성하고 느렸다. 강철은 재빠르게 몸을 숙여 칼날을 피하고는 그대로 약탈자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그의 팔목을 붙잡아 비틀자, 약탈자의 손에서 조각칼이 떨어져 나갔다.

    “이, 이거 놔!”

    강철은 비틀린 팔목을 한 번 더 비틀어 약탈자를 바닥에 무릎 꿇렸다. 그리고는 단도를 그의 목에 겨눴다. 차가운 쇠붙이의 감촉이 피부에 닿자 약탈자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만해! 항복, 항복이다!”

    피를 흘리며 주춤거리고 있던 첫 번째 약탈자도 다급하게 외쳤다. 그의 눈빛은 이미 투쟁심을 잃고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강철은 그들을 번갈아 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굶주림과 비굴함, 그리고 생존을 위한 처절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쩌면 그들 역시 자신과 다르지 않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가련한 존재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강철은 어떤 자비도 베풀 여유가 없었다. 자비는 이 폐허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꺼져.”

    강철의 입에서 짧고도 단호한 말이 튀어나왔다.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띄지 마라. 다음번엔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테니.”

    두 약탈자는 기침을 컥컥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철이 칼을 거두자마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부상당한 팔도 잊은 채 폐허의 어둠 속으로 도망쳐 사라졌다. 그들의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강철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는 다시 작업대 위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그곳에 놓인 고기 통조림. 캔을 다시 움켜쥐자, 이번에는 안도감과 함께 깊은 허기가 물밀듯이 밀려왔다.

    강철은 폐허가 된 공장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캔을 열자,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가 후각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숟가락도 없이 손가락으로 통조림을 파먹기 시작했다. 차갑고 뻑뻑한 고기였지만, 그에게는 세상 그 무엇보다 진수성찬이었다.

    한 입, 두 입. 굶주렸던 위장이 서서히 채워지는 것을 느끼자, 그의 온몸에 힘이 돌아오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홀로 먹는 통조림은 처절한 생존의 증거이자, 내일을 살아갈 작은 희망이었다.

    텅 빈 캔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서야 강철은 몸을 기댔다. 차가운 벽이 그의 등골을 파고들었지만, 통조림 하나로 얻은 온기는 그 모든 것을 잊게 할 만큼 값졌다.

    창밖의 달빛은 더욱 창백해졌다. 잿빛 폐허는 밤의 장막 아래 잠들어 있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이 그림자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강철은 잠시나마 평화를 느꼈다. 이 밤이 지나면 또다시 굶주림과 싸우고, 위험과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내일도, 그는 살아남을 것이다.

    강철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에는 지쳐 보이는 피로와 함께, 어떤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이곳이 바로, 대재앙이 휩쓸고 간 세상의 새벽이었다.
    생존은 가장 원초적인 무협이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 무협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 로맨틱 코미디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우주의 뜻밖의 선물

    “삐비빅! 삐비빅!”

    별똥별호의 브릿지에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체는 거대한 검은 우주 속을 마치 솜털처럼 부유하고 있었지만, 함교 안의 분위기만은 일촉즉발의 전쟁터 같았다. 엉망진창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한 이시아 연구원이 미친 듯이 콘솔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커져 있었고, 입술은 흥분으로 바싹 말라 있었다.

    “함장님! 이거 보세요! 믿을 수 없어요! 이런 파장은 처음이에요!”

    시아의 목소리는 음역대 최고치를 찍으며 쨍하게 울렸다. 늘 그렇듯 그녀의 천재적인 두뇌는 위험보다 호기심에 먼저 반응했다.

    강선우 함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끔한 제복만큼이나 정리된 그의 정신은, 지금 시아의 혼돈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시아의 콘솔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 가득 기괴한 패턴의 에너지 파형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시아 연구원, 흥분을 가라앉히고 정확히 보고하세요. 대체 ‘처음’이라는 게 뭘 말하는 겁니까?”

    선우의 낮은 목소리는 브릿지의 소란스러운 경고음마저 잠재우는 듯했다. 시아는 제자리에서 콩콩 뛰며 말했다.

    “아니, 그러니까, 기존의 어떤 우주 현상과도 일치하지 않는 파장이에요! 자연 발생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위적인… 아니, 그러니까 외계 문명의 흔적일 가능성이 99.9%라는 말입니다!”

    “0.1%의 오류도 항상 고려해야 하는 게 우리 임무 아니었나?” 박준 부함장이 능글맞게 웃으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마요네즈가 살짝 묻어 있었다. “우주선이 갑자기 노래라도 부르는 건 아니겠지?”

    “박준 부함장, 지금은 간식 시간 아닙니다.” 선우가 싸늘하게 말했다. 박준은 어깨를 으쓱하며 샌드위치를 도로 제복 주머니에 넣었다.

    오유진 통신 담당관은 검퓨터를 보며 무심하게 덧붙였다. “경고음은 계속 울리는데, 어떤 통신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이건… 존재 자체가 이상한데요.”

    “그렇죠? 유진 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시아가 유진 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유진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선우는 콘솔 화면을 노려보았다. 외계 문명? 심우주에서 이런 예상치 못한 조우라니. 그의 이성은 경고음을 울렸지만, 그의 본능은 이미 깊은 곳에서 끌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항로 변경. 파장의 중심 지점으로 접근합니다. 속도 0.5 광년. 모든 통신망을 개방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방어막을 최대로 올립니다.”

    “함장님!” 시아가 눈을 반짝이며 선우를 바라봤다. 그 눈에는 존경과 환희, 그리고 ‘역시 내 생각과 같을 줄 알았어!’라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선우는 그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애써 무시했다.

    별똥별호는 마치 거대한 심해어가 어둠 속을 유영하듯 조심스럽게 미지의 존재를 향해 나아갔다. 수천, 수만 년을 떠돌았을지 모를 그 미지의 존재에게.

    ***

    그것은 거대했다. 마치 우주가 수억 년에 걸쳐 빚어낸 거대한 수정처럼, 검은 심연 속에서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형태는 다면체였는데, 각 면은 놀랍도록 매끄럽고 완벽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으며,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떤 광물로 만들어진 것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우와…” 시아는 무의식중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요동쳤다. 평생을 이런 순간을 꿈꿔왔지만, 실제로 마주하니 온몸의 세포가 전율하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뭐지?” 박준은 입을 쩍 벌린 채 중얼거렸다. 샌드위치는 이미 잊은 지 오래였다.

    “어떤 데이터베이스와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진이 냉정하게 보고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미묘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선우는 함장 의자에 앉아 홀로그램으로 띄워진 유물을 응시했다. 그의 표정은 좀처럼 읽을 수 없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접근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정지. 원격 스캔 시작.”

    수많은 스캔 파장이 유물을 향해 쏘아졌지만, 대부분은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 채 반사되어 돌아왔다. 마치 유물 자체가 모든 과학적인 접근을 거부하는 듯했다.

    “이거 보세요, 함장님! 스캔 데이터가… 말 그대로 텅 비어 있어요!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시아가 다시 흥분하며 말했다.

    “존재하는데 존재하지 않는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선우가 되물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 물질의 구성 원소, 밀도, 나이, 심지어 에너지 반응까지!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마치 유령 같아요! 하지만 저기 엄연히 저렇게 거대하게 떠 있잖아요!”

    시아의 설명은 두서없었지만, 그만큼 이 상황이 얼마나 비상식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정도 거리에서의 스캔은 무의미합니다. 직접 접근한다.”

    “네? 직접이요?” 박준이 되물었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함장님.”

    “위험을 무릅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습니다.” 선우는 단호했다. “이시아 연구원, 저와 함께 갑니다. 박준 부함장, 함선 방어와 비상 상황 대비를 철저히 해주십시오. 오유진 담당, 통신망은 계속 확보하고, 제 생체 신호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세요.”

    “함장님… 저도 가고 싶은데…” 박준이 툴툴거렸다.

    “다음에 더 큰 발견이 있으면 기회를 주겠습니다.” 선우는 가볍게 응수하고 시아를 돌아보았다. “이시아 연구원, 준비.”

    시아는 이미 들떠서 우주복 착용 준비를 하고 있었다. “네! 함장님!”

    ***

    별똥별호에서 분리된 소형 탐사선은 정체불명의 유물을 향해 느릿느릿 나아갔다. 시아는 탐사선 안에서 밖의 거대한 유물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더욱 비현실적이었다. 몽환적이면서도, 동시에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함장님, 혹시 모르니 유물에 직접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시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녀의 흥분은 여전했지만, 코앞에 닥친 미지의 존재 앞에서는 긴장감도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근접 스캔만 진행하죠.” 선우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은 유물에 고정되어 있었다.

    탐사선이 유물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멈췄다. 유물의 표면은 마치 살아있는 듯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근접 스캔 시작합니다.” 시아가 탐사선 내부의 콘솔을 조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유물 표면에 새겨진 기하학적 문양들이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일제히 박동하기 시작했다. 푸른색, 보라색, 금색 등 다채로운 빛이 번쩍이며 유물 전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 빛은 탐사선 내부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함장님! 이게… 대체…?” 시아가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탐사선 내부가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으로 가득 찼다. 마치 거대한 프리즘 안에 갇힌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모든 시스템이 정지… 전원이… 불안정합니다!” 선우가 다급하게 외쳤다. 탐사선 내부의 경고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유물에서 섬세하고도 강력한 파동이 탐사선을 관통했다. 그것은 물리적인 충격이 아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혹은 뇌를 간지럽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으윽…!” 시아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몸에 이상한 열기가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뜨거웠지만 불쾌하지 않았고, 오히려 간질거리는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바로 옆에 앉아있는 강선우 함장의 옆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언제나 냉철하고 단호했던 그의 표정은, 지금 유물의 빛을 받아 경이로움과 미묘한 혼란이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이 갑자기 너무나도… 멋있어 보였다.

    ‘함장님… 왜 이렇게… 잘생겼지?’ 시아는 속으로 외쳤다. 평소라면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감정이었다. 그녀의 뺨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렸다. 이 유물 때문일까? 아니면… 이 기분은 대체 뭐지?

    선우 역시 알 수 없는 감각에 휩싸여 있었다. 그의 심장이 평소보다 빠르고 불규칙하게 뛰고 있었다. 옆을 돌아보니 이시아 연구원이 자신의 옆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눈은 마치 우주를 처음 본 어린아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라면 그저 ‘또 흥분했군’ 하고 넘겼을 터였다. 그런데 지금은…

    ‘저렇게… 빛나는 사람이었나?’

    선우의 머릿속에는 평소라면 절대 떠오르지 않을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나 천방지축에 시끄럽기만 한 연구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이 순간 유물의 신비로운 빛을 받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신화 속 여신 같았다. 아니, 여신은 좀 오버고, 음… 뭐랄까, 평소보다 한 백 배는 예뻐 보인달까. 아니, 이게 무슨 생각이야, 강선우! 정신 차려!

    그러나 그의 이성이 외치는 경고는 유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묘한 파동에 의해 희미해지는 듯했다. 그의 심장이 계속해서 쿵쾅거렸다. 그리고 이 모든 감정의 근원처럼 느껴지는 이시아 연구원의 존재가,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함장님…” 시아가 나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선우의 입술에 꽂혀 있었다.

    선우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이, 이시아 연구원. 지금… 뭔가 이상합니다. 심박수가… 비정상적입니다.”

    “함장님도요… 저, 함장님이 너무…” 시아가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려 했다.

    바로 그때, 탐사선 내부의 조명이 갑자기 번쩍! 하며 꺼졌다. 완벽한 암흑 속에서 유물의 빛만이 더욱 강렬하게 그들을 감쌌다. 그리고 선우는, 어둠 속에서 문득 손을 뻗는 시아의 손길을 느꼈다. 그의 심장은 이제 통제 불능 상태였다.

    “함장님… 저… 저 지금 심장이… 터질 것 같아요!”

    그 애절한 비명은, 오직 광활한 우주에서만 들렸다.

  • 심리 스릴러 독립적인 단편 소설

    지은은 퇴근 후 텅 빈 아파트에 발을 들일 때마다 희미한 안도감과 함께 깊은 고독을 느꼈다. 15층, 초고층 아파트의 깔끔한 스튜디오는 그녀에게 완벽한 은신처였다. 도시의 소음은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멀어졌고, 실내는 언제나 정갈하고 조용했다. 오늘 밤도 마찬가지였다. 현관문을 닫고, 열쇠를 홀더에 걸자 ‘딸깍’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아…”

    작게 한숨을 쉬며 가방을 소파에 던졌다. 식탁 위에는 어제 저녁 먹다 남긴 와인 잔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분명 어제 밤에는 깨끗하게 씻어 식기 건조대에 걸어두었던 잔이었다. 잠시 착각했나? 지은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잔을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들려온, 금속이 바닥에 부딪히는 쨍한 소리.

    “뭐야?”

    돌아보니, 현관문 옆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열쇠 홀더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그녀가 방금 걸어두었던 열쇠는 온데간데없었다. 심장이 순간적으로 쿵, 하고 떨어졌다. ‘내가 제대로 안 걸었나? 아니, 분명 제대로 걸었는데….’

    열쇠는 현관문 바로 아래, 차가운 타일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홀더를 툭 쳐서 떨어뜨린 것처럼. 지은은 찝찝한 기분을 애써 무시하며 열쇠를 주워 다시 걸었다. 별것 아닐 거야. 그저 피곤해서 헛것이 보이고 들리는 걸 거야.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지은은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침묵 속에서 모든 소리가 증폭되는 듯했다. 저 멀리 도시의 웅웅거리는 소리, 에어컨의 미세한 팬 소리, 그리고… 톡, 톡, 톡.

    침대 머리맡 벽에서 들려오는 규칙적인 소리였다. 처음엔 위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톡, 톡, 톡. 그 소리는 정확히 그녀의 귀가 향하는 방향, 베개 바로 옆 벽에서 들려왔다. 마치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리는 듯한 소리.

    지은은 숨을 멈췄다. 소리가 멎었다. 다시 숨을 고르자, 톡, 톡, 톡. 이번에는 조금 더 빠르고 경쾌하게. 마치 그녀를 놀리는 듯이.

    “누구… 없지?”

    작게 중얼거렸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녀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켰다. 환하게 밝아진 방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은 밋밋한 벽지 그대로였다. 그녀는 벽에 귀를 대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착각이었던 걸까.

    다음 날 아침, 지은은 늦잠을 잤다. 샤워를 서둘러 하고 나왔을 때였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려는데, 세면대 위에 놓여있던 칫솔꽂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내용물인 칫솔 두 개는 멀쩡했지만, 꽂이가 산산조각 나 있었다. 어제 밤 그녀가 잠들기 전 분명 멀쩡했던 것이었다.

    “이게 대체….”

    지은은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어제 열쇠, 밤에 들린 톡톡거리는 소리, 그리고 이제 칫솔꽂이.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기이한 일들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었다.

    점점 더 기이한 일들이 이어졌다. 아무도 건드리지 않은 채로 갑자기 텔레비전이 켜졌다 꺼지고, 주방 찬장 문이 삐걱거리며 열려 있었다.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는 동안에는 거실에서 책장이 넘어지는 굉음이 들렸다. 황급히 뛰쳐나가 보면, 책들은 바닥에 흐트러져 있었고 책장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마치 투명한 손이 순식간에 책을 뽑아 던져버린 것처럼.

    밤에는 더 심했다. 거실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문득 코끝을 스치는 싸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속삭임. ‘지은… 지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분명히. 귓가에 스치는 듯한, 존재하지 않는 목소리.

    “누구세요?”

    지은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아파트 안에, 그녀와 함께, 무언가가 있었다.

    지은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잠을 잘 수 없었고,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웠다.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들은 지은이 스트레스 때문에 헛것을 보는 것이라고 치부했다.

    “지은아, 요새 일이 많아서 그래.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진짜라니까! 누가 내 물건을 막 옮기고, 내 이름도 불렀어…”
    “진정해, 지은아. 네가 너무 피곤해서 현실이랑 꿈이랑 헷갈리는 걸 수도 있어. 우리 어제 너무 과음했잖아.”

    그들의 무심한 위로는 오히려 지은을 더 깊은 고립감으로 밀어 넣었다. 아무도 그녀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혼자였다. 이 기괴한 현상들과 오롯이 혼자 맞서야 했다.

    어느 날 밤, 지은은 거실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불은 모두 켜져 있었지만, 아무것도 그녀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때, 침실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은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겨우 참아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몸이 굳어버렸다. 침실 문이 천천히, 삐걱거리며 열렸다. 어둠 속에서 문이 열리는 모습은 마치 심연의 입이 벌어지는 듯했다.

    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을 움켜쥐었다. 혹시라도 녹화라도 해야 할까 봐.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려 제대로 조작할 수 없었다. 그때, 침실 안에서 뭔가 묵직한 것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소리와 함께 침실의 불이 빠르게 깜빡이기 시작했다. 지은은 숨을 헐떡였다.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외면할 수도 없었다. 이대로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용기를 쥐어짜 침실로 향했다.

    문틈으로 보이는 침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옷장 문은 활짝 열려 속옷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고, 화장대 위에 놓여있던 화장품들은 모조리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고 있었다. 거울은 깨져 있었고, 침대 시트는 구겨진 채 바닥으로 끌려 내려와 있었다. 마치 격렬한 싸움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그때, 침대 위, 베개 위에서 무언가가 지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어릴 적 사진이었다. 웃고 있는 어린 지은의 모습이 담긴 액자. 그것은 평소 거실 선반에 놓여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베개 위에 거꾸로 놓여 있었다. 액자의 유리는 산산조각 나 있었다.

    지은은 털썩 주저앉았다. 입에서는 작은 비명 소리만 터져 나왔다. 이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건… 이건 분명히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자신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지은의 머리 위, 천장에서 ‘투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차가운 액체가 그녀의 얼굴로 떨어졌다.
    ‘으윽…!’
    끈적하고 비릿한 액체. 그녀는 급히 손으로 얼굴을 닦았다. 손바닥에는 검붉은 피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아니, 피였다. 분명 피였다.

    ‘콰앙!’

    닫혀 있던 침실 문이 갑자기 맹렬한 기세로 닫혔다. 지은은 비명을 지르며 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닫힌 문을 두드리며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나가! 당장 내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답은 없었다. 하지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소름 끼치는, 어린아이의 웃음소리 같기도 한, 섬뜩한 소리였다.

    지은은 문고리를 잡고 잡아당겼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려는 그녀의 필사적인 몸부림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공포는 이제 그녀의 이성을 완전히 잠식했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문을 걷어차고 두드렸다. “열어! 열어줘!”

    그때, 침실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느껴졌다. 바닥이 울리고, 천장의 조명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벽에 걸려 있던 그림들이 우수수 떨어지고, 화장대 서랍들이 제멋대로 열렸다 닫혔다. 방 안의 모든 물건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지은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등 뒤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온기.

    ‘지은아…’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 마치 썩은 물에 잠긴 듯, 왜곡되고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온몸의 피가 식는 듯했다. 그녀는 감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그 존재가 자신의 바로 뒤에 서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기어가는 자세로 침실 문으로 기어갔다.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는 순간, 문이 ‘스르륵’ 하고 열렸다.

    지은은 미친 듯이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현관으로 향했다. 발 밑에 굴러다니는 물건들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오직 이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현관문에 다다르자, 그녀는 손이 떨리는 와중에도 간신히 손잡이를 돌렸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복도 공기가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살았다. 살았어!

    그녀는 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문이 ‘쾅!’ 하고 닫혔다.

    지은은 숨을 헐떡이며 복도에 주저앉았다. 미친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의 아파트 문을 노려봤다. 그때였다. 닫힌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명확하고 또렷한 목소리.

    ‘가지 마… 지은아….’

    그녀의 이름이, 차갑고 섬뜩하게, 닫힌 문 너머에서 울렸다. 지은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문을 응시할 뿐이었다.

    15층. 고요한 복도. 그리고 그녀의 눈앞에 선명하게 박힌, 굳게 닫힌 아파트 문.
    그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그녀를 여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영원히, 그 문 안으로 다시 들어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도시의 불빛이 창밖에서 아스라이 빛나고 있었지만, 지은에게는 더 이상 어떤 위안도 되지 못했다.
    그녀의 아파트는 더 이상 그녀의 안전한 은신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제, 그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차가운 지옥이었다.

  • 스팀펑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고요한 서재에는 죽음의 눅진한 공기와 희미한 증기 냄새가 뒤섞여 떠다녔다. 톱니바퀴의 섬세한 째깍거림만이 간간이 정적을 깨뜨릴 뿐, 시간이란 개념마저 이 방 안에서는 멈춰버린 듯했다. 황동과 증기로 빚어진, 거대한 태엽 시계 같은 도시 ‘아르칸티아’의 심장부, 기계공작 폰 제피르의 서재가 바로 그곳이었다.

    케일런은 바닥에 쓰러진 공작의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백금발 머리칼이 흐트러진 채,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의 발명품, ‘천둥구름’이라 불리는 고압 증기 권총이었다. 흉갑 사이로 검게 타들어 간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누가 보아도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듯한 자세였다.

    “공작님의 유언장이 발견되었습니다.” 한솔 경감이 초조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혼란이 역력했다. “자살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증거가… 그렇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케일런은 대답 없이 붉은색 벨벳 카펫 위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발걸음은 조용했지만, 그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서재 안의 기압마저 미묘하게 바뀌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의 검은 코트 자락이 발목을 스치며 희미하게 흔들렸다.

    “문은?” 케일런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칼날 같은 명징함이 담겨 있었다.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육중한 강철 문이었죠. 저희가 도착했을 때, 문고리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었습니다.” 한솔이 설명했다. “강제로 파손된 흔적은 일절 없습니다. 창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황동 프레임의 특수 자물쇠가 걸려 있었고, 그것도 모두 안쪽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유리창에도 어떤 파손이나 훼손도 없습니다.”

    케일런은 창문으로 다가갔다. 바깥으로는 아르칸티아의 복잡한 톱니바퀴와 증기 파이프들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얽혀 있었다. 수백 미터 상공이라 인간이 접근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는 창문 틈새에 손가락을 대고 미세한 먼지를 쓸어 올렸다.

    “증기 파이프는 어떻습니까?” 케일런이 물었다.

    “이 방으로 연결된 증기 파이프는 난방용과 공작님 작업대 쪽의 실험 기구용입니다. 모두 벽 안쪽으로 매립되어 있으며, 지름이 사람 몸이 통과할 수준은 아닙니다.” 한솔은 고개를 저었다. “환기구도 미세한 격자가 쳐져 있어 사람이 드나들 수 없습니다. 모든 경로가 봉쇄되어 있습니다, 선생님.”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군요.” 케일런이 몸을 돌려 시신 쪽으로 향했다. “공작은 왜 자신의 서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만 했을까요? 그에게 유서는 자살을 택한 이유가 아닌, 자살을 위장하기 위한 장치처럼 느껴집니다.”

    “위장이라니요?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만.” 한솔이 의아해했다.

    “그렇습니까? 자살을 한다면,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권총을 꽉 쥐고 있을 힘이 남아있었을까요? 공작의 손은 총을 꽉 쥐고 있기보다는, 마치 총이 그 손에 얹혀진 것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케일런은 허리를 굽혀 시신의 옆에 쪼그려 앉았다. 그의 눈동자는 공작의 손가락 마디마디, 그리고 권총의 섬세한 각인을 훑었다. 권총 표면에 희미한 얼룩이 있었다.

    “이건…” 한솔은 케일런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숨을 들이켰다.

    케일런은 손끝으로 권총 손잡이의 미세한 부분을 만져보았다. “이 얼룩은 공작의 피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특유의 광택… 기름이지요.”

    “기름이요? 권총 관리에 사용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총은 발사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표면에 남아있는 기름은 완전히 굳어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기름은… 희미하게 단맛이 납니다.” 케일런은 손끝을 코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미세하게 점성이 높군요.”

    한솔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단맛이 나는 기름이라니요? 그런 것이 살인과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케일런은 대답 대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시선은 바닥, 벽, 그리고 천장의 모든 이음매를 훑었다. 특히 천장 중앙에 매달린 거대한 황동 샹들리에에 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샹들리에는 복잡한 기어와 증기 파이프로 연결되어 있었고, 그 끝에는 섬세하게 조각된 기계 새들이 매달려 있었다.

    “공작의 서재는 완벽하게 봉쇄되어 있었습니다. 살인범이 드나들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죠.” 케일런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살인범은… 이 방을 떠나지 않고도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다는 가설이 성립합니다.”

    “말도 안 됩니다!” 한솔이 소리쳤다. “그럼 살인범은 지금도 이 방에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케일런은 미소를 지었다. 싸늘하면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미소였다. “살인범은 이 방에 없지만, 살인 도구는 아직 이 방에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살인 도구가 이 방을 나갈 필요조차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시신을 등지고 서재의 중앙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정확하게 샹들리에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지점에 멈춰 섰다. 케일런은 고개를 들어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황동 프레임 사이로 가늘고 투명한 선이 눈에 띄었다. 너무나 가늘어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실 같은 것이었다.

    “살인범은 공작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 현장을 자살로 위장했죠. 그 후 그는 유유히 방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문을 열고 나가지 않았습니다.” 케일런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리켰다.

    “하지만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그렇습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문을 잠근 것은 살인범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케일런의 눈이 섬뜩할 정도로 빛났다. “그는 이 방 안에서 살인을 저질렀고, 그 살인 도구는… 정확히 저기 있습니다.”

    그의 시선은 샹들리에의 가장 높은 곳, 거대한 태엽 장치 속으로 사라지는 투명한 실의 끝을 가리키고 있었다.

    “공작은 이 총에 남은 달콤한 기름 냄새를 맡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게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겠죠.” 케일런은 낮게 읊조렸다. “그리고 이 투명한 실은 단순히 샹들리에를 매단 줄이 아닙니다. 이것은… 살인범이 남긴 마지막 흔적입니다. 밀실의 트릭을 풀어낼 열쇠.”

    한솔은 케일런의 말을 따라 샹들리에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그저 평범한 장식용 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케일런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이 줄은… 이 투명한 줄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 걸까요? 도대체 어떻게 살인범이 이 밀실을 떠날 수 있었단 말입니까?” 한솔의 목소리가 떨렸다.

    케일런은 샹들리에 아래에서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은 모든 소리를 삼키는 듯했으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서재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이윽고 케일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마치 복잡한 시계 장치의 마지막 톱니바퀴가 정확히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발견한 자의 희열과도 같았다.

    “한솔 경감.” 케일런이 나지막이 불렀다. 그의 시선은 샹들리에를 꿰뚫고 저 멀리, 서재 바깥의 아르칸티아 상공을 향하고 있는 듯했다. “이 모든 트릭은 바로 ‘시간’을 이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란 녀석은… 때때로 가장 잔혹한 살인 무기가 되기도 하죠.”

    그의 말이 끝나자, 서재 안의 작은 톱니바퀴 하나가 짧게 ‘딸깍’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마치 그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이. 밀실 살인의 베일이 서서히 걷히는 순간이었다.

  • 대체 역사물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차가운 심연의 끝에서

    철컹, 철컹.

    쇠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축축한 어둠 속을 갈랐다. 이진은 차가운 돌바닥에 몸을 웅크린 채 미동도 없었다. 며칠째인지, 몇 달째인지도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찢어진 기억의 조각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감옥의 공기는 썩은 흙냄새와 피비린내, 그리고 희미한 절망의 냄새로 가득했다. 한때 제국 대하(大河)를 수호하는 용맹한 장군이라 불렸던 그의 몸은 이제 뼈와 가죽만 남은 앙상한 몰골이 되어 있었다.

    “흐읍…”

    갈라진 목에서 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른 입술을 혀로 축여 보려 했지만, 이미 감각조차 무뎌진 지 오래였다.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쇠고랑은 살을 파고들어 시커멓게 변색되어 있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고문과 굶주림은 그의 정신마저 서서히 잠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한 것은 육신의 아픔이 아니었다.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 것은 한순간도 잊히지 않는 배신감과 지독한 억울함이었다.

    강휘. 그 이름 세 글자가 떠오르자 이진의 핏발 선 눈동자에 걷잡을 수 없는 증오가 불타올랐다.

    강휘. 그는 이진의 유일한 벗이자,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전우였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 나누었던 형제 같은 사이. 이진이 장군이 되자 그는 기꺼이 부관이 되어 그림자처럼 따랐다. 변방의 오랑캐를 무찌르고, 반역 세력을 진압하며 수많은 전장을 함께 피로 물들였다. 승리의 밤, 땀과 피로 얼룩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나눴던 그 뜨거운 눈빛과 굳건한 맹세들은 모두 거짓이었단 말인가.

    “하… 하하…”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광기 어린 웃음이었다.

    그날은 제국이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던 북방 오랑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던 날이었다. 백성들의 환호와 병사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이진은 승리의 여신이 안겨준 월계관을 쓰고 당당히 황궁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황제의 칭찬도, 백성들의 축하도 아니었다.

    **”이진, 네 이놈! 감히 역심을 품고 제국의 근간을 흔들려 하였는가!”**

    황제의 진노 어린 목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진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때,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던 강휘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의 손에는 이진이 은밀히 주고받았던 서신 몇 통이 들려 있었다. 하지만 그 서신은 황제의 명이 담긴 비밀 지령이었고, 다른 내용은 없었다.

    “이진 장군이 역적들과 내통하여 황제를 폐위하고 스스로 황위에 오르려 했습니다! 여기 그 증좌가 있습니다!”

    강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확신에 차 있었다. 그 서신들은 정교하게 위조되어 있었다. 이진의 필체와 인장이 완벽하게 모방되어, 역모를 꾸미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진은 반박하려 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준비된 함정이었다. 강휘는 그의 모든 행적을 꿰뚫고 있었고, 그 정보들을 교묘하게 짜깁기하여 완벽한 역모의 증거를 만들어냈다.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그는 이진에게 이토록 잔혹한 칼날을 들이밀었는가. 이진은 반항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세운 제국의 병사들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모습에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강휘는 그에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죽음은 너무나 쉬운 도피처가 아니겠는가? 네놈은 살아남아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강휘가 자신에게 속삭이던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눈빛은 뱀처럼 차가웠고, 비릿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었다. 그 순간, 이진은 깨달았다. 강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해왔음을. 그의 모든 미소와 칭찬은 껍데기에 불과했으며, 그 속에는 독이 든 칼날이 숨겨져 있었음을.

    철컥.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익숙한 발소리였다. 간수였다.
    “자, 역적 놈아. 오늘 너에게 줄 마지막 선물이다.”

    간수는 흙이 뒤섞인 죽 한 그릇을 이진 앞에 던졌다. 질퍽한 소리를 내며 그릇이 바닥에 놓였다.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김조차 더럽게 느껴졌다. 이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더 이상 배고픔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이 감옥의 어둠 속으로 영원히 잠식되어버릴 것 같은 무력감만이 그를 지배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웅크린 몸을 들어 올리려던 이진의 시야에 바닥에 놓인 죽 그릇의 놋쇠 부분이 언뜻 스쳤다. 얼핏 비친 흐릿한 형상. 그것은 오랜 시간 굶주려 앙상하게 변한 자신의 얼굴이었다. 초점 잃은 눈동자와 푹 파인 뺨, 푸르죽죽한 입술.

    그 형상 속에서 이진은 문득 강휘의 얼굴을 떠올렸다. 오만하게 비웃던 그 비릿한 미소를. 강휘는 분명 이진이 이대로 비참하게 죽어가기를 바랄 것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명예가 모두 짓밟히고, 모든 것을 잃은 채 감옥의 어둠 속에서 스러져 가기를.

    *…과연 그럴까?*

    피폐해진 이진의 뇌리 속에서 한 줄기 섬광이 번뜩였다. 강휘는 그에게 죽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살아남아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 말은 곧, 강휘 자신 또한 이진이 끝까지 고통받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진은 죽어서는 안 되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진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흐릿했던 초점이 맞춰지고, 그의 동공은 마치 심연의 밑바닥에서 피어나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손목을 짓누르는 쇠사슬의 무게가 다시 느껴졌다. 뼈마디가 쑤시고 근육이 당기는 고통이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이진은 힘겹게 손을 뻗어 죽 그릇을 움켜쥐었다. 더러운 죽을 한 숟가락 퍼서 입에 넣었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기계적으로 움직일 뿐이었다.

    강휘. 네가 내 모든 것을 빼앗아갔으니.

    이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지하 감옥의 좁은 창살 너머로 희미한 달빛 한 조각이 스며들고 있었다. 그 빛은 너무나 약해서 감옥의 어둠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이진의 눈빛은 그 달빛을 삼키고도 남을 만큼 강렬하게 타올랐다.

    *강휘… 네가 내 모든 것을 앗아갔으니, 나는 네 모든 것을 부술 것이다.*

    그의 입술 사이에서 으스러지는 듯한 맹세가 터져 나왔다. 피를 토하듯 처절하고, 심장을 찢는 듯한 고통이 실린 맹세였다. 더 이상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 않으리라.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힌 초라한 역적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이 지옥에서 벗어나리라.

    그리고 그에게 이 모든 고통을 안겨준 자에게, 백 배 천 배로 되갚아주리라.

    이진의 눈빛은 복수심으로 번들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절망이나 무기력함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차가운 살의만이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차가운 심연의 끝에서, 한 마리 굶주린 짐승이 깨어났다.

  • 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도시의 핏줄 같은 네온사인 강물 아래, 카인은 검은 후드 모자를 더 깊이 눌러썼다. 미간에 드리운 그림자가 늘 그랬듯 그의 눈을 숨겼다. 손안의 낡은 데이터 칩이 희미하게 열을 뿜고 있었다. 스크린 위로 지직거리는 노이즈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카인, 이거 물건이야. 아니, 물건 중에서도 특급 물건.”

    호기심 가득한 리리의 목소리였다. 언제나처럼 장난기 넘치지만, 그 속엔 칼날 같은 정보가 숨어 있었다. 카인은 칩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특급이라… 네 특급은 늘 내 등을 땀으로 적시더군.”

    “이번엔 좀 달라. 진짜야. 어쩌면 네 평생의 숙제를 풀어줄지도 모른다고.”

    리리가 보내온 좌표는 도시의 가장 깊은 심층부, 지도에도 없는 미등록 구역을 가리켰다. 그곳은 메가코프의 데이터베이스에서조차 ‘접근 제한’을 넘어 ‘정보 없음’으로 분류된 금지된 공간이었다.

    “잊혀진 고대 유적. 농담이지?”

    카인의 비웃음 섞인 질문에 리리는 쾌활하게 웃었다.

    “농담 같지? 나도 처음엔 그랬어. 그런데 이 칩에서 발견된 암호 조각들을 조합해보니, 이 도시에 대한 오래된 전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고. 도시가 세워지기 전부터 존재했던… 어떤 문명의 흔적.”

    도시의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낡은 모노레일의 흔들림이 카인의 심장을 울리는 것 같았다. 지상 위, 수천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신도시는 빛과 데이터로 번뜩였지만, 그 아래는 버려진 산업 단지와 폐기된 거주 구역들이 거대한 미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미궁의 더 아래에, 리리가 말하는 ‘고대’가 잠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도착했어.”

    모노레일이 멈춰 선 곳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잠긴 폐쇄된 플랫폼이었다. 공기는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카인은 나노 코팅된 손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녹슨 철골 구조물과 파괴된 보안 드론들의 잔해가 널브러져 있었다.

    “리리, 나만 여기 있는 것 같군.”

    “아니, 네 뒤에 인기척이… 있을 리가 없지. 그 구역은 이미 수십 년 전에 봉인됐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야. 보안 시스템도 진작에 마비됐을 거고.”

    그때, 카인의 귀에 연결된 이어폰에서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들렸다. 리리의 목소리가 일그러졌다.

    “잠깐, 이상해. 내 신호가 자꾸 끊겨. 이 구역에… 뭔가 방해 전파가 도는 것 같아.”

    카인은 경계하며 한 손으로 총을 쥐었다. 이곳은 폐허였지만, 폐허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방문객들을 품기 마련이었다. 그의 발걸음은 삐걱거리는 금속 바닥을 딛고 더 깊은 어둠 속으로 향했다. 리리가 보내준 좌표를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무너진 콘크리트 벽 너머로 묘한 빛이 감지됐다. 푸르스름하고, 마치 생물체처럼 일렁이는 빛이었다.

    “리리, 이 빛은… 뭐지?”

    “내 스캐너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해! 단순한 누전은 아닌 것 같아. 에너지 서명 자체가… 이 시대의 기술이 아니야.”

    카인은 조심스럽게 빛의 근원으로 다가갔다. 폐허가 끝나는 지점, 거대한 바위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바위벽 한가운데에, 푸른빛을 뿜어내는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현대적인 스캐너로는 파악할 수 없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문양들이었다. 기하학적이고, 동시에 유기적인 곡선들이 서로 얽혀 마치 살아있는 심장처럼 뛰고 있었다.

    “고대… 문명이라더니, 진짜였나.”

    카인은 문양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는 순간, 바위벽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지며 그의 눈을 압도했다. 주변의 폐허가 흔들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젠장!”

    카인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거대한 바위벽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거인이 기지개를 켜듯, 육중한 소리를 내며 두꺼운 돌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그 틈새로 뿜어져 나오는 냉기 속에, 카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문 안쪽은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그 너머에서 거대한 공간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카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건 빛이 아니라, 수십 개의 붉은 점들이었다. 마치 누군가의… 아니, *무언가의* 감시 시스템처럼.

    “리리… 아무래도 우리가 먼저 온 것 같지는 않군.”

    카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고대의 문이 열리자마자, 잠들어 있던 미지의 존재가 깨어난 듯했다. 붉은 점들이 그의 위치를 정확히 조준하고 있음을 직감한 카인은 망설임 없이 몸을 날렸다. 폭발음이 폐쇄된 지하 공간을 뒤흔들며, 미지의 존재와의 첫 조우를 알렸다. 어쩌면 그는 도시의 심장이 아니라, 그 아래 잠들어 있던 거대한 그림자를 깨운 것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