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도시의 잔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잿빛 하늘은 언제나처럼 두터운 먼지 구름에 가려 태양의 흔적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시우는 낡은 고글 너머로 시야를 확보하며 녹슨 철골 구조물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발밑에 깔린 콘크리트 조각들이 그의 움직임에 맞춰 불쾌한 소리를 냈다. 쉬이이이잉— 바람이 폐허 사이를 스쳐 지나가며 기분 나쁜 울림을 만들었다. 이 망가진 세상의 모든 소리는 시우의 신경을 갉아먹는 듯했다.
손목에 찬 낡은 탐지기가 미세한 진동을 울렸다. 희미하지만 확실한 에너지원 반응. 녀석의 ‘생명유지장치’를 한동안 버티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이었다. 며칠째 식량도, 제대로 된 물도 구하지 못했다. 그의 육체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오직 이 탐지기가 가리키는 방향뿐이었다.
이곳은 ‘망자들의 궁전’이라 불리는 구역이었다. 붕괴 직전의 고층 빌딩들이 시커먼 이빨처럼 솟아 있었고, 언제 무너져 내릴지 모를 위태로운 잔해들이 시우의 길을 막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협적인 도박과 같았다. 시우는 몸을 웅크린 채 고글에 달린 야간 시야 모드를 켰다. 뿌옇게 변한 세상이 푸른빛으로 얼룩졌다. 바로 그때, 탐지기가 갑자기 격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 에너지원 반응이 아니라, 위험 감지 신호였다.
시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무너진 고가도로 기둥 뒤편에서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피’. 녹슨 강철 조각들이 덕지덕지 박힌 갑피에 찢겨나간 전선들이 촉수처럼 엉겨 붙어 움직이는 짐승. 육식성 기계 생명체였다. 녀석의 거대한 덩치와 달리 움직임은 놀랍도록 민첩했다.
“젠장, 이런 곳에까지 녀석들이 나타날 줄이야!”
철피는 끔찍한 기계음과 함께 시우를 향해 돌진했다. 녀석의 거대한 앞발이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며 지축을 울렸다. 시우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파편들이 비 오듯 쏟아졌다. 허리춤에 찬 낡은 레이저 권총을 뽑아 들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붉은 섬광이 터져 나갔지만, 철피의 강철 갑피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오히려 녀석의 움직임만 더욱 빠르게 만들 뿐이었다.
“빌어먹을! 에너지 셀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무의미한 소모는 피해야 했다. 시우는 주변을 살폈다. 붕괴된 건물 잔해가 산처럼 쌓인 곳. 그 위로 올라가면 잠시나마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녹슨 철골을 발판 삼아 정신없이 위로 기어 올라갔다. 철피는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았다. 녀석의 날카로운 발톱이 철골을 긁으며 끔찍한 쇳소리를 냈다. 쇳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을 듯 울렸다.
겨우 가장 높은 잔해 더미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시우는 숨을 헐떡였다. 폐에 들이찬 먼지 때문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철피는 거대한 몸으로 잔해 더미를 긁어대고 있었다. 녀석의 힘이라면 이마저도 오래 버티지 못할 터였다. 잔해 더미가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시우의 눈에 저 멀리 보이는 낡은 ‘중계기 타워’가 들어왔다. 오래전에 기능이 정지된, 뾰족한 첨탑. 저곳에선 종종 버려진 에너지 셀을 찾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저곳까지 가려면 이 끈질긴 철피를 따돌려야 했다.
시우는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낡은 케이블 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가장 굵고 단단해 보이는 케이블 하나를 잡아챘다.
“철피! 이리로 와라, 이 덩치 큰 고철 덩어리!”
시우는 일부러 소리를 질러 녀석의 주의를 끌었다. 철피는 분노한 듯 더욱 거세게 잔해를 흔들었다. 잔해 더미가 아슬아슬하게 기우뚱거렸다. 시우는 타이밍을 재다가 힘껏 케이블을 잡아당겼다.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케이블이 잔해 더미에서 떨어져 나가며 그를 아래쪽의 다른 건물 잔해 쪽으로 던지듯이 내보냈다. 철피는 그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녀석의 거대한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쿵! 거친 충격이 온몸을 때렸지만, 다행히 낙법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그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철피는 그가 착지한 지점으로 몸을 돌렸지만, 그 사이에는 무너진 잔해와 건물 파편들이 가로막고 있었다. 시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중계기 타워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폐가 터질 듯이 달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철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그의 등을 재촉했다.
중계기 타워의 기단부에 도착했을 때, 시우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낡은 철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예상대로 폐허였다. 녹슨 장비들과 부서진 콘솔들이 널려 있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철피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주변을 배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젠장, 정말 끈질긴 녀석이군. 여기서 이러다간 말라죽을지도 몰라.”
시우는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그는 탐지기를 다시 켜서 에너지원 반응을 찾기 시작했다. 녀석의 생명유지장치는 이미 붉은 경고등을 깜빡이고 있었다. 삐-삐-삐- 간헐적인 경고음이 그의 조바심을 부추겼다.
수많은 잔해 사이를 헤치고 들어가자, 탐지기의 진동이 점점 강렬해졌다. 저 깊숙한 곳 어딘가에 강력한 에너지 반응이 있었다. 이곳의 고장 난 기계들 사이에서 이런 반응을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시우는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복잡하게 얽힌 전선과 부서진 패널들을 걷어냈다. 끈적이는 기름때와 부식된 금속 가루가 그의 얼굴에 들러붙었다. 숨통이 조여 오는 듯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희미한 푸른빛을 발하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한 에너지 셀이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에너지 파동이 그에게 전해져 왔다. 그러나 그 셀의 바로 옆, 낡은 장비의 그림자 아래에서, 뭔가가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부서진 기판 사이에 묻혀 있는, 녹슬었지만 어딘가 익숙한 문양의 메탈 케이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