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메카 액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자욱한 먼지가 걷히자 드러난 것은 거대한 강철 거인의 잔해였다. 굉음과 함께 바닥에 처박힌 기갑무사의 몸체는 이제 더 이상 전투용 기계가 아닌, 엉망으로 찌그러진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환호성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천하제일 기갑무예대회, 그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강휘는 다음 대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승자, 동해 문파의 흑룡신!”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방금 승리한 기갑무사, ‘흑룡신’은 거대한 강철 팔을 들어올려 관중들의 환호에 답했다. 검은색으로 도색된 기체는 용의 비늘처럼 날카로운 장갑판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움직임에는 오랜 세월 바다를 지배해온 문파의 기개가 서려 있었다. 강휘는 대기실 안쪽의 어두운 구석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제아무리 강대한 기갑무사라 할지라도, 결국 그 안에 있는 것은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의 내공과 의지가 기갑을 움직이는 진짜 힘이었다.

    그의 옆에는 낡고 볼품없는 기갑무사가 서 있었다. ‘묵철신’. 이름 그대로 검은 철로만 이루어진 듯한 투박한 모습. 날렵함도, 화려함도 없었다. 과거 그의 사부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일한 유산이었다. 모두가 비웃었다. 저런 고물로 천하제일이 되겠다고? 하지만 강휘는 알았다. 묵철신은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혼’을 지닌 기갑이라는 것을.

    이 대회는 단순한 무예대회가 아니었다. 천 년에 한 번 도래한다는 ‘대재앙’의 징조가 온 천하를 뒤덮고 있었다. 붉은 기운이 하늘을 가르고, 대지는 갈라지며, 기이한 생명체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무림의 원로들은 고심 끝에 천하제일 기갑무예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 대회의 최종 우승자만이 ‘천기진원’을 다룰 자격을 얻기 때문이었다. 천기진원. 대재앙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자, 세상을 멸망으로 이끌 수도 있는 양날의 검.

    “다음 대결! 화산파의 진천명 대 녹림맹의 강휘!”

    강휘는 눈을 떴다. 드디어 그의 차례였다. 그는 조용히 묵철신을 향해 걸어갔다. 묵직한 강철의 기운이 그를 감쌌다. 기갑 내부로 들어서자, 수많은 조작 장치와 시야 확보용 스크린이 그를 맞이했다. 강휘는 익숙하게 조종간을 잡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묵철신의 동력부가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활성화되었다. 그의 심장 박동과 기갑의 구동음이 하나가 되는 듯했다.

    “출격!”

    묵철신은 거대한 출격 게이트를 지나 경기장 중앙으로 향했다. 반대편에는 화산파의 장문인, 진천명이 조종하는 ‘화룡신’이 서 있었다. 화룡신은 붉은색과 금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기체였다. 등에는 거대한 화염 추진기가 달려 있었고, 양 팔에는 불꽃을 형상화한 듯한 날카로운 검이 장착되어 있었다. 진천명은 무림에서 ‘염왕’이라 불리는 자였다. 그의 내공은 불꽃처럼 맹렬했고, 그의 기갑술은 상대를 재로 만들었다.

    “후후, 녹림의 풋내기가 감히 화산의 불꽃에 도전하는가?” 진천명의 목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조롱이었다.

    강휘는 대답 대신 묵철신의 묵직한 강철 팔을 들어 올렸다. 묵철신은 느릿하게 움직이는 듯 보였지만, 그 안에는 강휘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시작!”

    심판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진천명이 먼저 움직였다. 화룡신은 등 뒤의 추진기를 맹렬히 뿜어내며 폭발적인 속도로 강휘에게 돌진했다. 붉은 검날이 번개처럼 번뜩이며 묵철신의 목덜미를 노렸다.
    강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묵철신의 육중한 몸을 약간 틀며 팔을 들어올렸다. ‘수라팔괘’. 사부에게 배운 팔괘장의 초식을 기갑에 응용하는 것이었다. 화룡신의 검이 묵철신의 팔갑에 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콰아앙!

    하지만 화룡신의 검은 미끄러지듯 묵철신의 방어를 비껴나갔다. 진천명의 내공이 검날에 실려 묵철신의 자세를 흐트러뜨린 것이었다. 강휘는 순간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진천명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화룡신의 왼손에서 거대한 화염구가 작렬하며 묵철신을 덮쳤다.

    “염화멸도!”

    뜨거운 불길이 묵철신의 전신을 휘감았다. 관중석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저 정도 화염이라면 내부 조종석까지 위험할 터였다.
    하지만 강휘는 당황하지 않았다. 묵철신의 강철 장갑은 불길 속에서도 붉게 달아오를 뿐, 그 형태를 잃지 않았다. 강휘는 묵철신의 내부 냉각 시스템을 최대로 가동하며 불길 속에서 침착하게 진천명의 움직임을 파악했다. 불길 너머로 보이는 화룡신의 윤곽이 춤을 추듯 움직였다.

    “강휘! 이대로 녹아버릴 셈이냐!” 진천명이 다시 한번 외쳤다.

    강휘는 내공을 끌어모아 묵철신의 팔을 움직였다. 불길을 헤치고 묵철신의 묵직한 주먹이 뻗어나갔다. 그것은 빠르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주먹에는 마치 쇠망치가 거대한 바위를 부수는 듯한 묵직한 힘이 담겨 있었다. ‘칠성귀갑권’.

    화룡신은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황한 듯 살짝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강휘는 불길 속에서 묵철신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거대한 몸체가 회오리처럼 돌며 불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불길이 걷히자 드러난 것은, 자세를 바로잡고 묵직한 기세로 진천명을 노려보는 묵철신이었다.

    “흥, 제법이군.” 진천명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미약한 감탄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나의 염화를 이길 수 없다!”

    화룡신은 양 팔의 검을 교차하며 거대한 불꽃의 폭풍을 일으켰다. 경기장 바닥이 녹아내릴 듯한 열기가 강휘를 덮쳤다. 진천명은 화룡신의 모든 추진기를 가동하며 경기장 상공으로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대기권을 뚫을 듯한 속도로 다시 강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거대한 화염 혜성이 묵철신을 향해 떨어지는 듯했다.

    “화룡강림!”

    강휘는 눈을 감았다. 사부의 가르침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 ‘가장 강한 공격은, 가장 완벽한 방어에서 나온다.’ 그는 묵철신의 모든 동력을 하체와 코어에 집중시켰다. 묵철신의 다리가 바닥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듯 박혔다. 그리고 강휘는 마지막 초식을 준비했다.

    화룡신이 묵철신의 정수리에 닿는 순간, 강휘는 묵철신의 양팔을 교차하며 위로 치켜들었다. ‘무월강철벽’. 모든 내공과 기갑의 강도를 한 점에 집중시킨 완벽한 방어. 콰콰콰콰앙!!!

    폭발음이 온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화염과 강철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엄청난 충격파가 관중석까지 전해져 왔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경기장 전체를 집어삼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 서서히 연기가 걷히기 시작했다. 관중들은 숨을 죽이고 경기장을 응시했다.
    연기 속에서 먼저 드러난 것은 화룡신의 모습이었다. 화룡신의 장갑은 여기저기 움푹 패였고, 양 팔의 화염검은 부러져 있었다. 추진기는 제 기능을 못하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진천명의 기세는 꺾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묵철신이 서 있었다. 묵철신 역시 전신의 장갑이 녹아내린 듯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팔의 방어막은 아슬아슬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묵철신은 서 있었다. 쓰러지지 않았다.

    강휘는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묵철신의 묵직한 오른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전신에 남은 모든 내공을 주먹에 실어 진천명을 향해 날렸다. 묵철신의 주먹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불꽃이나 번개처럼 화려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꿰뚫을 듯한 묵직한 기세였다. ‘파천일격’.

    진천명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묵철신의 주먹을 바라봤다. 화룡신은 이미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그 주먹을 막을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묵철신의 강철 주먹이 화룡신의 조종석에 정확히 명중했다. 콰아아앙!

    화룡신은 거대한 굉음을 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충돌한 기갑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조종석의 문이 열리고, 진천명이 간신히 기어 나왔다. 그는 강휘를 올려다봤다. 패배를 인정하는 표정이었다.

    “승자, 녹림맹의 강휘!”

    심판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번에는 이전보다 훨씬 뜨거운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명에 가까웠던 녹림맹의 강휘가 화산파의 염왕을 꺾다니! 이변이었다.

    강휘는 묵철신 안에서 깊은 숨을 내쉬었다. 전신의 내공이 바닥난 듯 온몸이 저려왔다. 하지만 그의 눈은 흔들림 없이 다음 대결을 응시하고 있었다.
    결승전.
    그의 상대는 이 천하제일 기갑무예대회에서 ‘무신’이라 불리는 자, 백무영이었다. 그리고 그의 기갑, ‘천룡신’.
    천하의 운명이, 강휘의 손에 달린 결승전이 이제 막 시작되려는 참이었다. 그는 묵철신의 낡은 조종간을 꽉 움켜쥐었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진정한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 이세계 전생 (Isekai)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웹툰 에피소드 대본: 핏빛 맹세 (血色盟誓)

    **작품명:** 핏빛 맹세
    **장르:** 이세계 전생, 복수극
    **작가:** [천재 작가 이름]

    **[에피소드 제목: 첫 번째 배신, 불꽃 속에서]**

    **[프롤로그]**

    **[컷 1]**
    [지문] 거대한 돔형 천장을 가진 마법 연구소의 내부. 수많은 고서적과 복잡한 마법 기구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 중앙에는 기묘한 빛을 내는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고, 그 위에서 한 청년이 고뇌하며 마법식의 마지막 줄을 수정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천재적인 지성과 열정이 깃들어 있다.
    [캐릭터] 류진 (20대 후반, 날카롭고 지적인 인상, 살짝 흐트러진 머리)

    **[컷 2]**
    [지문] 류진이 마법진 수정을 마치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옆에는 그와 비슷한 또래의 다른 청년, 한설이 서 있다. 한설은 류진의 어깨를 친근하게 감싸며 함께 웃고 있다. 배경의 마법진에서 빛이 더욱 강해지며 둘의 얼굴을 비춘다. 둘의 모습은 누구보다 견고한 친구이자 동료처럼 보인다.
    [캐릭터] 한설 (20대 후반, 깔끔하고 부드러운 인상, 류진과 대조되는 차분함)
    [대사] 한설: (환하게 웃으며) 역시 류진, 해냈구나! 자네라면 가능할 줄 알았어!

    **[컷 3]**
    [지문] 류진은 여전히 마법진을 바라보며 기쁨에 잠겨 있지만, 한설은 고개를 돌려 류진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다. 그의 눈빛에는 앞선 다정한 미소와는 전혀 다른, 섬뜩하고 비릿한 욕망이 서려 있다. 배경의 마법진 빛이 점차 붉은색으로 변색되기 시작한다.
    [캐릭터] 한설
    [내레이션] 류진: (과거의 회상처럼) 우리는 함께 꿈을 꾸었다.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 위대한 마법을 완성하자고… 그게 우리의 맹세였다.

    **[파트 1: 신뢰의 균열]**

    **[장면 전환] 마법 학회 발표 현장**

    **[컷 4]**
    [지문] 수백 명의 마법사들이 운집한 거대한 학회 강당. 중앙 무대에는 류진이 서서 스크린에 띄워진 복잡한 마법 도형들을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청중들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깊은 이해가 교차한다.
    [캐릭터] 류진
    [대사] 류진: (힘찬 목소리로) …그리하여, 제가 명명한 ‘차원 간섭 마법’은 이론적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와 직접적인 교류를 가능하게 합니다! 단순히 관측을 넘어, 에너지와 물질의 교환까지도…!

    **[컷 5]**
    [지문] 객석의 한설을 클로즈업. 그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박수를 치고 있지만, 그의 눈은 류진을 향해 있지 않고 류진이 설명하는 마법 도형, 특히 그 핵심 원리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집요하게 응시하고 있다. 그의 미소는 왠지 모르게 공허하고 냉정하다.
    [캐릭터] 한설
    [내레이션] 류진: (내면) 모두가 내 연구를 칭송했지만, 가장 가까이서 나를 응원했던 건 한설이었다. 그는 항상 내 재능을 인정하고, 내가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해 주었다.

    **[컷 6]**
    [지문] 발표가 끝난 후, 류진에게 수많은 마법사들이 몰려들어 질문을 쏟아내고 찬사를 보낸다. 류진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밝게 웃으며 그들의 질문에 답한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한설은 류진의 뒤편에서 조용히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다.

    **[장면 전환] 연구실에서의 대화**

    **[컷 7]**
    [지문] 늦은 밤, 연구실. 류진은 지쳐서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고, 한설은 그의 옆에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류진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연구실의 유일한 불빛인 마나 램프가 그의 얼굴 절반을 그림자로 가린다.
    [캐릭터] 한설
    [대사] 한설: (작게 혼잣말처럼) …결국, 자네는 모든 것을 이뤘군. 내가 열망했던 그 모든 것을…

    **[컷 8]**
    [지문] 잠시 후 류진이 깨어나 기지개를 켠다. 한설은 재빨리 표정을 바꾸어 걱정스러운 얼굴로 류진을 마주 본다.
    [캐릭터] 류진, 한설
    [대사] 류진: 으음… 벌써 아침인가? 설마 밤새 여기 있었어?
    [대사] 한설: (부드럽게) 발표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잖아. 자네 혼자 잠든 채 두고 갈 수가 없었네. 이제 좀 쉬지 그래?
    [대사] 류진: (환하게 웃으며) 하하, 걱정 마. 드디어 ‘차원 간섭 마법’의 실증 실험을 할 수 있게 됐잖아! 이 정도 피로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우리가 그토록 꿈꿨던 새로운 세계와의 연결!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컷 9]**
    [지문] 류진이 들뜬 표정으로 거대한 마법진 설계도를 펼쳐 보이며 차원 간섭 마법의 핵심인 ‘공간 왜곡 이론’과 ‘에테르 에너지 증폭’에 대해 설명한다. 한설은 류진의 설명을 경청하는 척하며, 그의 손이 설계도의 가장 중요한 부분—차원 연결점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역방향 마법진—을 짚어가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다.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난다.
    [캐릭터] 류진, 한설
    [대사] 류진: 봐봐,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해. 안정적인 차원 연결을 위해선 이 에테르 공진점을 완벽하게 제어해야 해. 하지만 만약… 만약 이 공진점이 반대로 작동한다면…
    [대사] 한설: (미소를 지으며) 상상조차 하기 싫군. 끔찍한 재앙이겠지. 하지만 자네라면 문제없을 거야.

    **[파트 2: 배신의 칼날]**

    **[장면 전환] 차원 간섭 마법 실험실**

    **[컷 10]**
    [지문] 거대한 원형 실험실. 중앙의 마법진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으며, 그 주위를 수많은 마법 증폭 장치들이 둘러싸고 있다. 류진은 최종 점검을 하며 마법진 위에 서 있고, 한설은 조작반에서 마나 흐름을 조절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둘의 얼굴에 긴장감과 기대감이 감돈다.
    [캐릭터] 류진, 한설
    [대사] 류진: 자, 한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예상 마나 출력은?
    [대사] 한설: (조작반을 조작하며) 완벽해, 류진! 모든 수치가 이론값과 일치! 이제 자네의 사인만 있으면 돼!

    **[컷 11]**
    [지문] 류진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후, 마법진 위에 손을 얹는다. 마법진이 푸른빛을 내뿜으며 강력한 마나 파동이 공간을 진동시킨다. 한설은 조작반을 응시하며 손을 움직이지만, 그의 손놀림은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친다.
    [캐릭터] 류진, 한설
    [대사] 류진: (온몸으로 마나를 느끼며) 좋아… 에테르 흐름… 차원 문이 열리고 있어…!
    [내레이션] 류진: 나는 내 평생의 역작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가장 소중한 친구가 그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컷 12]**
    [지문] 갑자기 마법진의 푸른빛이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공간이 일그러지고, 마법 증폭 장치들이 비명을 지르며 균열이 생긴다. 류진은 당황한 얼굴로 마법진을 바라본다.
    [캐릭터] 류진
    [대사] 류진: (경악하며) 뭐지? 마나 흐름이… 역전되고 있어?! 한설! 무슨 짓을 한 거야?!

    **[컷 13]**
    [지문] 한설이 조작반에서 손을 떼고 유유히 류진을 향해 돌아선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친구의 온정이 없다. 차갑고 잔인한 미소가 입가에 걸려 있다. 실험실 전체가 불안정한 마나로 뒤덮여 폭발 직전의 아우성을 토해낸다.
    [캐릭터] 한설
    [대사] 한설: (섬뜩하게 웃으며) 자네의 ‘차원 간섭 마법’은 정말 대단해, 류진. 단지… 자네가 아니라 내가 완성해야 할 마법이었지.

    **[컷 14]**
    [지문] 류진이 한설의 배신에 충격받아 말을 잇지 못한다. 그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붉게 폭주하는 마법진의 빛이 류진의 얼굴을 비추고, 그의 등 뒤로는 시공간이 뒤틀리는 현상이 극대화된다.
    [캐릭터] 류진
    [대사] 류진: (떨리는 목소리로) 한설… 어떻게… 네가…!
    [대사] 한설: (조소하듯) 어떻게? 간단해. 자네는 너무 순진했어. 그 모든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재능을 탐내는 자들에게 이용당할 뿐이지. 내가 모든 것을 가질 거야. 자네의 명예, 자네의 업적… 모두 내가 차지할 거다!

    **[컷 15]**
    [지문] 실험실 전체가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붉은 마나의 불꽃과 시공간이 찢어지는 섬광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류진의 몸이 그 폭발의 중심에서 형태를 잃어가고, 마지막으로 그가 본 것은 냉정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 한설의 모습이었다. 류진의 눈에서 한 방울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캐릭터] 류진, 한설 (점점 멀어지는 실루엣)
    [대사] 류진: (절규) 한설… 내가… 너를…!
    [내레이션] 류진: 그 순간,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내가 모든 것을 바쳤던 마법 속에서, 내가 가장 믿었던 친구의 손에 의해.

    **[파트 3: 낯선 세상, 새로운 몸]**

    **[장면 전환] 숲속의 깨어남**

    **[컷 16]**
    [지문] 어둡고 축축한 숲 속. 이름 모를 거대한 나무들이 하늘을 덮어 어스름한 빛만 간신히 새어 들어온다. 낯선 새들의 울음소리가 음산하게 들린다. 진흙과 낙엽 위에 작은 아이의 몸이 쓰러져 있다.
    [내레이션] 류진: (내면) 나는 죽었다. 분명히, 죽었어. 내 몸은 찢겨나갔고, 내 영혼은 불꽃 속에서 소멸했을 터였다. 하지만…

    **[컷 17]**
    [지문] 아이의 눈이 번쩍 뜨인다. 놀라움과 혼란, 그리고 깊은 공포가 어린 눈동자에 가득하다. 아이는 작고 여린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만져본다. 낯선 감촉, 낯선 몸이다.
    [캐릭터] 어린 류진 (5~7세 정도의 어린아이)
    [대사] 어린 류진: (어눌하게, 작게) 으… 으윽…? 여긴… 어디지? 내… 몸이…?

    **[컷 18]**
    [지문] 어린 류진이 겨우 몸을 일으킨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숲과 기이한 식물들,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낯선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힘이 그의 몸 안에 흐르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캐릭터] 어린 류진
    [내레이션] 류진: (내면) 차원 간섭 마법의 역류가 나를 죽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다른 세계로 내던진 것이었다. 육신은 파괴되었으나, 영혼은… 이 작은 몸에 깃들어 있었다.

    **[파트 4: 핏빛 서약]**

    **[컷 19]**
    [지문] 어린 류진의 눈빛이 점차 변해간다. 처음의 혼란과 공포 대신,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서린다. 지난날의 기억, 한설의 비릿한 미소와 배신의 순간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의 작은 주먹이 힘없이 떨린다.
    [캐릭터] 어린 류진
    [내레이션] 류진: (내면) 배신…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그 비열한 칼날. 내가 이룬 모든 것을 짓밟고, 나를 파괴한 그 증오스러운 얼굴!

    **[컷 20]**
    [지문] 어린 류진이 이를 악물고 일어선다. 그의 작은 몸에서 폭발적인 의지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그의 눈은 더 이상 어린아이의 것이 아니다. 복수심으로 불타는, 냉혹한 전사의 눈빛이다.
    [캐릭터] 어린 류진
    [대사] 어린 류진: (떨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한설… 네 이름… 이 몸이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을 것이다.
    [내레이션] 류진: 나는 살아야 한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 간 그자에게…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짓밟아 줄 때까지.

    **[컷 21]**
    [지문] 어린 류진이 하늘을 향해 작은 손을 뻗는다. 숲의 어둠 속에서, 그의 손끝에서 희미하지만 선명한 푸른빛이 발산된다. 그 빛은 이 세계의 마나와는 다른, 이질적이면서도 강력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강렬한 의지와 함께, 알 수 없는 힘에 대한 미약한 감각이 스쳐 지나간다.
    [캐릭터] 어린 류진
    [대사] 어린 류진: (깊은 맹세처럼) 설아… 내가 반드시 돌아간다. 네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네 모든 것을 부수고… 네 심장을 꿰뚫어 줄 것이다. 이것은… 핏빛 맹세다.

    **[컷 22]**
    [지문] 어린 류진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그가 서 있던 자리에서 푸른 마나의 잔광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그리고 아주 멀리, 숲의 그림자 속에서 두 개의 붉은 눈이 섬광처럼 반짝이며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미지의 존재가 류진을 주목하기 시작했음을 암시한다.

    **[에피소드 끝]**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독립적인 단편 소설

    잿빛 하늘은 늘 그랬듯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유이는 눈을 떴다. 흐린 햇살이 창문 없는 벽의 틈새로 겨우 스며들어, 낡은 방 안을 희미하게 밝혔다. 폐허 속에서 찾아낸 천 조각들로 꾸며진 작은 공간. 삐걱이는 나무 침대에서 내려서자, 흙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맨발을 감쌌다.

    벽에 기대어 놓은 녹슨 양철 물통에는 어제 받아온 빗물이 희미한 물소리를 내며 고여 있었다. 유이는 작은 컵에 물을 따랐다. 투명하고 깨끗한 물.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 중 하나였다. 천천히 목을 축였다. 몸속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기운이 잠들었던 정신을 깨웠다.

    낡은 천 조각 위, 어둠 속에서 웅크린 작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솔’이었다. 이젠 세상에 몇 안 남은 생명체 중 하나인 작은 고양이. 유이가 다가가자 솔은 천천히 눈을 떴다. 호박색 눈동자가 졸린 듯 깜빡였다.

    “좋은 아침.”
    유이가 낮게 읊조리자 솔은 먀옹, 하고 짧게 울었다. 둘만의 언어였다. 솔은 털을 한 번 쓱 정리하고는, 유이의 발치에 몸을 비볐다. 유이는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었다. 이 작은 온기가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많은 이유 중 하나였다.

    오늘은 뭘 해야 할까. 식량 탐색, 아니면 물길 확인? 어제의 비로 물줄기가 바뀌었을 수도 있었다. 생존의 매일은 새로운 변수와의 싸움이었다.

    유이는 낡은 배낭을 메고 나섰다. 솔은 익숙하게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걸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조각과 금이 간 아스팔트가 밟혔다. 높게 솟아 있던 건물들은 이제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 사이로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듯 이름 모를 풀들이 돋아나 있었다.

    고요함.
    새소리조차 허락되지 않은 듯한, 고요만이 맴도는 세계였다. 오직 유이의 발걸음만이 그 견고한 고요를 조심스럽게 깨뜨릴 뿐이었다.

    “오늘은 운이 좋았으면 좋겠어, 솔.”
    솔은 대답 대신 앞서 걷는 유이의 발목에 꼬리를 살랑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옛 상점가 쪽으로 향했다. 어쩌면 낡은 통조림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하지만 대부분은 빈 껍데기뿐이었다. 햇살이 구름 사이로 잠시 모습을 드러냈다. 따스한 온기가 폐허 위로 내려앉았다. 유이는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어 잠시 쉬었다. 솔은 그녀의 무릎 위로 뛰어올라 앉았다.

    저 멀리, 한때 번화했을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그 시절이 아득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조차 그 모습은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때가 어땠을까.”
    솔은 그저 눈을 감고 그녀의 품에 파고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기억은 사치가 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유이는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익숙한 길을 벗어나, 유이는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어쩌면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면,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

    빽빽하게 우거진 숲처럼 변해버린 건물 잔해들을 헤치고 나아가자, 뜻밖의 풍경이 나타났다.

    작은 연못이었다. 고인 물이 아니라,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맑은 샘물이었다. 주변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세상의 모든 찬란한 색이 이곳에 응축된 듯했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솔은 쪼르르 달려가 연못가에 앉아 물을 핥았다. 유이는 천천히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투명한 물에 손을 담갔다. 차가우면서도 생생한 기운이 손끝을 타고 올라왔다. 그리고 물가에 핀 꽃들을 보았다. 연약해 보이지만, 이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끈질긴 생명이었다.

    메마른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액체가 아스라이 맺혔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희망이라는 이름의 감각이었다.

    “솔, 여기야. 우리가 찾던 곳.”
    솔은 고개를 들어 유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작은 눈빛 속에도 알 수 없는 평화가 잔잔히 일렁이는 듯했다.

    유이는 조심스럽게 작은 병에 샘물을 담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연못은 그녀의 새로운 비밀 장소가 될 터였다. 주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몇 송이를 조심스럽게 꺾어 배낭 한쪽에 꽂았다.

    돌아오는 길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어느새 머리 위를 뒤덮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고, 옅은 노을이 잿빛 하늘을 은은하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잿빛 세상에 드리운 붉은색이 마치 작은 희망 같았다.

    거처에 도착하자, 유이는 꽃을 물병에 꽂았다. 단조로운 방 안에 작은 생기가 돌았다. 솔은 연신 유이의 곁을 맴돌다, 이내 낡은 천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유이는 창문 없는 벽에 기댔다. 고요한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따스한 확신이 그녀의 가슴을 채웠다. 손에 쥔 물병 속 꽃이 희미한 어둠 속에서 작게 반짝이는 듯했다.

    내일도, 또 살아갈 것이다.
    이 잿빛 세상 속에서, 그녀는 매일 작은 기적들을 찾아내며 끈질기게 살아갈 것이다. 솔과 함께, 그리고 작은 희망을 품고서.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챕터 14: 심해의 등불

    “함장님, 목표까지 2.7 광시(光時) 남았습니다. 에너지 패턴은 여전히 불규칙하고… 정의할 수 없습니다.”

    강 지혁 부함장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침착함 대신 미묘한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아스트라호의 브릿지, 푸른빛 홀로그램이 우주 저편의 미지 물질을 형상화하고 있었다. 숫자들이 춤추고, 알 수 없는 그래프들이 끊임없이 요동쳤다.

    선우 리아 함장은 컵에 담긴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혀끝에 감돌았지만, 흔들림 없는 눈빛은 전방의 메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정의할 수 없다라… 흥미롭군요. 서진, 외부 스캔 결과는?”

    박 서진 기술 책임자가 터치패드를 빠르게 조작했다.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파란 홀로그램 빛에 비쳐 묘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물질 구성 파악 불가. 어떤 스펙트럼에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원소 주기율표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질 같습니다. 하지만… 주변 공간의 중력 렌즈 현상이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저 자체가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왜곡하는 동시에, 미약한… 아니, 특정 주파수의 진동을 내보내고 있어요.”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진동?” 최 도윤 의료 책임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늘 인류의 안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인물이었다. “생체 신호로 오인될 만한 주파수인가요? 혹시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 미칠 가능성은…?”

    “아뇨,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닙니다. 너무 미약해서… 마치 우주 자체의 배경 노이즈처럼 느껴져요. 하지만 분명히 ‘그것’으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서진의 답변은 그 어떤 설명보다 기묘한 불확실성을 담고 있었다.

    리야 함장은 심호흡을 했다. 그녀의 시선은 홀로그램 속 희미한 점에 꽂혀 있었다. “접근 속도 유지. 탐사팀은 준비 완료했나?”

    “네, 함장님! 김 한결 대원, 탐사 로브에 탑승 대기 중입니다!” 지혁이 보고했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절제되어 있었지만,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한결은 브릿지 아래쪽 탐사 도크에서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꼈다. 데뷔 이래 첫 심우주 탐사 임무. 그것도 ‘미지의 유물’이라니. 전신을 감싸는 탐사 로브의 단단한 감촉이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동료 대원 ‘이 지민’과 함께 마지막 장비 점검을 마쳤다. “지민 씨, 산소 게이지 확인!”

    “완료! 한결 씨,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우리 팀은 뭘 발견하든 늘 살아남았잖아요?” 지민이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녀의 눈빛에는 익숙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아니, 이건 좀 다르죠. ‘정의할 수 없는 존재’라니…” 한결은 침을 꿀꺽 삼켰다. 로브의 헬멧 안에서 그의 숨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했다.

    그때, 함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왔다. “탐사팀, 현재 목표까지 1광분(光分). 시각 확인 가능 거리 진입. 메인 스크린 개방.”

    아스트라호의 전면 스크린이 거대한 우주의 장막을 걷어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고 희미한 점이 나타났다. 마치 우주가 스스로 빛을 토해낸 듯,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 같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결정의 날카로움과는 달랐다. 육면체도, 구도 아니었다. 어떤 정의도 불가능한, 비대칭적이면서도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 표면은 빛을 흡수하는 동시에, 내부에서부터 미약하게 푸른빛과 보랏빛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수억 년 전의 별빛이 그 안에 갇혀 천천히 숨 쉬는 것 같았다. 그 몽환적인 빛은 주변의 먼지와 가스에 반사되어 오색찬란한 아우라를 만들었다.

    “세상에…” 서진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스크린을 만질 듯했다.

    브릿지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이 심우주까지, 인류의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와서 발견한 이 광경은 공포보다는 경외심을 불러일으켰다. 거대한 아름다움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게… 대체 뭘까요?” 지혁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그 신비로운 물체에 홀린 듯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분석적인 시선조차도 경이로움에 압도된 듯했다.

    함장은 눈을 가늘게 뜨고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녀의 오랜 경험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존재였다. “어떤 에너지 반응도, 움직임도 없습니다. 마치… 그냥 그곳에 존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그때, 서진이 다시 한번 외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터치패드를 빠르게 오갔다. “함장님! 미약한 진동 주파수가… 감지되고 있어요. 선율 같아요! 아주 복잡하고, 부드러운… 마치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 속, 그 검은 결정체는 변함없이 고요했다. 하지만 함장 리아는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이 광막한 우주에서, 이토록 불가사의한 존재가 이렇게나 평화롭게 그 자리에 있다니. 그 모습은 마치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의 등불 같았다.

    “탐사팀, 출격 준비. 섣부른 접촉은 금지합니다. 원거리 스캔 및 시각 정보 수집에 집중하세요.” 함장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평온한 통제력을 되찾았다. “아스트라, 전방 미지 유물에 200미터까지 근접. 모든 시스템 항시 대기.”

    한결은 탐사 로브의 조종간을 꽉 쥐었다. 로브의 창 너머로 보이는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캔버스에 찍힌 한 점의 물감 같기도, 태초의 신비가 응축된 보석 같기도 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의 세포가 새로운 깨달음으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동료 지민의 음성이 들려왔다. “한결 씨, 떨고 있어요? 아니면 설레서 그래요?”

    “둘 다요, 지민 씨. 이건… 이건 우리가 꿈꿔왔던 미지의 존재가 맞아요.” 그의 목소리는 경이로움에 젖어 있었다.

    그때였다. 검은 결정체의 심연에서, 아주 미세하게, 한 줄기 빛이 섬광처럼 번쩍였다. 푸른빛과 보랏빛이 뒤섞인 그 광채는 한순간 아스트라호의 모든 창문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아스트라호의 모든 시스템이 일순간 정지했다. 스크린이 꺼지고, 브릿지는 비상등의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기계음은 멎었고, 정적이 찾아왔다.

    “이게 무슨…! 시스템 다운?! 함장님, 비상 전력 시스템도 반응이 없습니다!” 서진의 다급한 외침이 적막을 깨트렸다.

    함장 리아는 차가운 침묵 속에서 메인 패널을 내려다보았다. 우주선은 이제 미지의 존재 앞에, 무방비 상태로 정지해 있었다. 그녀의 귀에는 아까 서진이 말했던, “조용히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던 그 미약한 진동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진동은, 이제 온몸을 감싸는 듯했다.

  • 던전 탐험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제1장: 심연의 조각

    우주선 ‘아스테리아’는 검은 바다 위를 떠다니는 유리병 같았다. 주변에는 별도, 행성도, 그 어떤 우주의 장식물도 없었다. 오직 침묵과 무한한 어둠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항해 일지에는 ‘심우주 미개척 구역 – 좌표 알파-719’라는 건조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인류의 지도가 닿지 않는 곳, 문명의 빛이 미치지 못하는 진정한 심연이었다.

    “강함장님, 오늘 식단은 어떠셨습니까? 김치찌개는 역시 최고죠?”

    함장 강태오의 귀에 기관장 박준호의 넉살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통신창을 통해 준호의 푸짐한 얼굴이 씨익 웃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식사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였다.

    “자네 덕분에 늘 호강하네, 박기관장. 우주에서 이런 진수성찬이라니.”

    태오도 희미하게 웃었다. 기나긴 항해 동안 crew들의 사기를 유지하는 것은 함장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였고, 준호의 이런 소탈함은 그에 큰 도움이 되었다.

    “하하, 제가 별 거 했겠습니까. 어머니 레시피로 만든 건데. 아, 오늘 오후에 외부 방열판 점검해야 하는데, 서박사님 팀은 아직도 그 망할 ‘미지의 에너지원’ 스캔 데이터에 매달려 있겠죠?”

    준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과학 연구실 쪽을 넌지시 언급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미지의 것에 대한 약간의 경외심과, 그보다는 훨씬 큰 ‘귀찮음’이 섞여 있었다.

    “서박사는 늘 그렇지. 새로운 미지의 것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 같지 않나.”

    태오가 농담조로 답했을 때였다. 함교의 메인 스크린이 갑자기 푸른색 경고음과 함께 깜빡이기 시작했다.

    삐이이이익—! 삐이이이익—!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알람 소리에 태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함교의 자동 통신 시스템이 서지아 수석 과학자의 목소리를 연결했다.

    “함장님! 긴급 보고입니다! 방금 전 저희 고정밀 스캔 센서가… 예상치 못한 패턴을 감지했습니다!”

    지아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차분함 대신, 흥분과 긴박함이 뒤섞여 있었다. 마치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보물을 마침내 발견한 탐험가처럼.

    “자세히 보고해라, 서박사.”

    태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의 눈빛은 이미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메인 스크린 중앙에 떠오른 것은 희미한 녹색 점이었다. 주변의 모든 별과 은하가 사라진 검은 우주 한가운데, 그 점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솟아난 유령 같았다.

    “이곳은 알파-719. 주변 10만 광년 이내에 항성계는 물론, 먼지 구름조차 없는 완벽한 공허 지대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함장님. 이 녹색 점은 자연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물질이 아닙니다. 최소한… 저희가 아는 어떤 물리 법칙으로도 설명이 안 됩니다.”

    지아는 숨이 가쁜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에너지 반응은? 크기는?”

    “에너지 반응은…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물체 같습니다. 하지만 크기는… 엄청납니다. 직경이 대략 15킬로미터… 그리고 형태는… 스캔 데이터가 불완전하지만, 인공물에 가깝습니다. 완벽한 구형도 아니고, 불규칙적인 암석 덩어리도 아닙니다. 일종의… 거대한 다면체 같다고 해야 할까요?”

    15킬로미터. 아스테리아 호 전체 길이의 10배에 달하는 크기였다. 인류가 만든 구조물 중 그런 크기는 없었다. 그것도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 ‘죽은’ 물체라니.

    “박기관장, 현재 항해 속도 유지하면서 목표 지점까지 얼마나 걸리지?” 태오가 준호에게 물었다.

    “함장님! 제가 뭘 할지 아실 줄 알았습니다! 지금 최대 가속으로 계산 중입니다만… 물체가 너무 멀리 있어서요. 현재 속도에서 풀 스로틀로 밀어붙이면… 약 3시간 20분 정도 소요됩니다.”

    준호의 목소리에는 불만 대신 오히려 신이 난 기색이 역력했다. 심우주 항해의 단조로움을 깨는 사건이라면, 사소한 고장이라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3시간 20분. 좋다. 전 승무원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즉시 전원 최고 경계 태세로 전환한다. 서박사, 계속해서 스캔 데이터 분석하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고해라.”

    “예, 함장님! 이대로라면 인류 최초의 외계 인공물과의 조우가 될 겁니다!”

    지아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태오는 그녀의 감정을 이해했다. 이 불확실한 우주에서, 미지의 것이 주는 경외감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는 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미지의 것은 언제나 위협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세 시간 반의 짧고도 긴 시간이 흘렀다. 아스테리아 호는 속도를 줄이며 미지의 물체에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메인 스크린에 드디어 그 모습이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해상도로 잡히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함교에 모인 모든 승무원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혹은 욕설에 가까운 감탄사였다.

    “스캔 데이터보다 훨씬… 기묘합니다.”

    지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색 다면체였다. 완벽하게 매끄러운 표면은 마치 빛을 삼키는 듯했으며, 어떤 부분은 날카로운 각을 이루고 어떤 부분은 불가능한 곡률로 이어져 있었다. 표면에는 미세한 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는데, 그것은 마치 수십억 년 동안 거대한 힘으로 깎이고 다듬어진 것처럼 보였다. 가장 기이한 점은, 아무리 고해상도 카메라로 확대해도 그 물질의 질감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검정색이었다. 빛을 반사하지도, 흡수하지도 않는, 그저 ‘존재’하는 검정색.

    “저게… 살아있는 건가? 아니면 죽은 건가?” 준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에너지 반응은 여전히 없습니다. 완전히 정지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내부 구조는… 복잡하기 그지없습니다. 단순한 암석이 아니라는 건 확실합니다.” 지아가 답했다.

    태오는 물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직감이 경고를 울리고 있었다. 저것은 단순한 고대 유물이 아니었다. 마치 우주의 가장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거대한 존재의 ‘조각’ 같았다.

    “근접 스캔을 시작해라. 모든 센서를 총동원해서 가능한 한 모든 정보를 뽑아내. 하지만 절대 물리적인 접촉은 하지 마.”

    태오의 명령에 따라 아스테리아 호는 거대한 다면체 주위를 선회하기 시작했다. 센서들이 윙윙거리며 미지의 물체로부터 데이터를 빨아들였다.

    몇 분 후, 지아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함교를 갈랐다.

    “함장님! 믿을 수 없는 데이터입니다! 물체 표면에서… 균열이 감지됩니다. 아주 미세하지만… 분명히 인공적인 흔적입니다.”

    스크린이 확대되자, 검은 다면체의 한쪽 면에 마치 섬세한 조각처럼 새겨진 선들이 보였다. 그것은 균열이라기보다는, 어떤 문양이나 문턱 같았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희미하게, 아주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였다.

    “빛…?” 태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에너지 반응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없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는요! 이 푸른빛은… 매우 약하지만, 분명히 그곳에서 방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함장님! 저희 탐사선의 센서가 내부로 접근 가능한 틈을 발견했습니다! 아주 작지만… 출입문처럼 보이는 구조가 있습니다!”

    지아의 목소리가 절정에 달했다. 그녀의 눈은 이미 그 미지의 세계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함장님, 외부 조사팀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겁니다!”

    그녀의 간청에 태오는 잠시 망설였다. 그의 눈에는 거대한 검은 다면체의 한쪽에서 깜빡이는 푸른빛이 선명하게 박혔다. 저것은 단순한 유물이 아닐 것이다. 저것은 아마도, 인류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거나… 혹은 끝일 수도 있었다.

    “박기관장, 현재 아스테리아 호의 모든 시스템 상태 보고해.” 태오가 침묵을 깨고 명령했다.

    “모든 시스템 정상입니다, 함장님. 기관부 문제없고, 동력원도 안정적입니다.” 준호가 즉시 보고했다.

    “서박사, 외부 조사팀 인원과 장비 목록을 준비해. 하지만 함부로 접촉하지 말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탐사선을 운용한다. 박기관장, 탐사선 준비를 돕고, 혹시 모를 비상 상황에 대비해 전력 시스템을 최대한 확보해 놔.”

    “함장님… 직접 들어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준호의 얼굴에 걱정이 스쳤다.

    태오는 스크린 속 푸른빛을 응시했다. 이 미지의 존재를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함장의 의무이자, 운명이었다.

    “그래. 이 배의 함장은 나다. 그리고 나는 인류의 호기심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그의 눈에 결의가 서렸다. 이 검은 심연의 조각이 무엇이든 간에, 아스테리아 호는 이제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참이었다. 우주선을 뒤덮은 정적 속에서, 승무원들은 숨죽인 채 다가올 미지의 조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 함교의 모든 전등이 일제히 깜빡이더니, 완전히 암전되었다. 함선의 비상등만이 붉게 번쩍이며 어둠을 갈랐다.

    “뭐야?! 무슨 일이야?!” 준호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경고! 전력 시스템 불안정! 보조 전력 가동! 메인 동력원 과부하 감지!” 자동 음성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메인 스크린 속의 거대한 검은 다면체는 여전히 고요했지만, 그 안에서 깜빡이던 푸른빛은 이제 거대한 파동처럼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파동이 아스테리아 호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선체 전체가 둔탁하게 울렸다.

    “젠장! 서박사, 무슨 일이야?!” 태오가 소리쳤다.

    지아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뚫고 들려왔다. 이번에는 공포가 뒤섞여 있었다.

    “함장님! 방금 그 물체에서… 강력한 전자기파가 방출되었습니다! 저희 함선의 시스템과… 공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이상한 에너지 반응이 감지됩니다! 함선 내부에… 알 수 없는 공간 왜곡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오의 발밑에서부터 섬뜩한 진동이 시작되었다. 함교의 금속 바닥이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메인 스크린 한쪽 귀퉁이에서, 알 수 없는 기하학적 문양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함선의 시스템 자체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그것은 시작이었다. 심연의 조각이 잠에서 깨어나, 그 거대한 미지의 힘을 드러내는 첫 번째 신호였다.

  • 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네오 한성의 밤은 언제나 찬란했다. 수천, 수만 개의 빌딩을 휘감은 홀로그램 간판들은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꽃처럼 도시의 어둠을 집어삼켰고, 공중을 가로지르는 비행 택시들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똥별 무리 같았다. 그러나 오늘 밤, 이 모든 현란한 빛도 ‘천룡 아레나’에서 터져 나오는 열기 앞에서는 한낱 희미한 배경에 불과했다.

    천룡 아레나. 고층 빌딩 숲 한가운데에 고고하게 솟아선, 고대 성곽을 연상시키는 웅장한 건축물. 그 거대한 철문 위에는 용이 승천하는 형상의 디지털 문양이 끊임없이 회전하며, 아래 모인 인파들의 시선을 빨아들였다. 이곳은 평범한 격투장이 아니었다. 천룡회, 이 거대 도시의 보이지 않는 심장을 움직이는 십대 문파 연합이 주최하는 ‘천하대회’가 열리는 곳.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고수들의 마지막 전쟁터였다.

    “다음 대결! 고대 육대 무문 중 하나, ‘유성문’의 마지막 계승자, 강휘 선수! 그리고 이에 맞서는 천룡회 직속, ‘흑철단’의 묵직한 강자! 강철아귀 선수입니다!”

    아레나 중앙의 홀로그램 스크린에 두 인물의 모습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강철아귀의 얼굴에는 사이버네틱 임플란트 자국이 선명했고, 그의 오른팔은 거대한 강철 의수로 교체되어 있었다. 그의 소개가 끝나자, 아레나를 가득 메운 군중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사이버네틱스 기술과 내공 수련을 접목한 ‘강철무공’은 천룡회 직속 무인들의 전유물이었고, 그들은 언제나 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리고 강휘. 스크린 속 그의 모습은 흑철단의 강철아귀와 대조적이었다. 길지 않게 깎은 머리,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고풍스러운 검은 도복. 그의 몸에는 아무런 사이버네틱 장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낡아 보이는 도복 아래로 단단하게 다져진 육체만이 엿보일 뿐이었다. 고대의 유물을 보는 듯한 강휘의 등장에 객석은 일순간 싸늘한 침묵에 잠겼다가, 이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흥, 유성문이라고? 사라진 지 몇십 년은 되지 않았나?”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녀석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준결승까지 올라왔다는 게 더 신기하네.”
    “이번엔 강철아귀의 먹잇감이 될 게 뻔해. 저런 구식 무공이 통할 리가 없잖아.”

    수군거림 속에서도 강휘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아레나 바닥을 밟고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 발소리가 먹먹한 아레나에 퍼졌다.
    경기장 바닥은 강화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전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수많은 센서들이 박혀 있었다. 강휘는 그 모든 하이테크 장비를 꿰뚫어 보듯 허공을 응시했다. 그의 시선 끝에, 경기장 반대편에서 거대한 강철 의수를 번쩍이며 다가오는 강철아귀가 있었다.

    “흐음, ‘유성권’이라… 이름은 그럴싸하군.” 강철아귀가 비죽이 웃었다. 그의 강철 의수가 철컥이는 소리는 마치 육중한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천근쇄도’ 앞에서는 그 어떤 유성도 부스러기가 될 뿐이다.”

    강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오른손을 살짝 들어 올려 손가락을 펴 보였다. 마치 조용히 ‘덤벼라’라고 말하는 듯한 무언의 도발이었다.
    강철아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건방진 놈! 고대의 망령 따위가 어디!”

    경기 시작을 알리는 전자음이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동시에 아레나 중앙의 홀로그램 타이머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강철아귀는 기다리지 않았다. 거대한 강철 의수를 앞으로 뻗으며 강휘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그의 발걸음은 쇠망치처럼 바닥을 울렸고, 강철 의수에서는 저밀도 에너지가 발현되어 푸른 오라를 뿜어냈다. 이는 천룡회 직속 무인들이 사용하는 ‘강철내공’의 일종으로, 내공을 외부로 방출하여 물리적인 충격을 극대화하는 무시무시한 기술이었다.

    콰아아앙!

    강철아귀의 주먹이 강휘가 서 있던 자리를 강타했다. 강화 크리스털 바닥이 갈라지고 파편이 튀어 올랐다. 하지만 강휘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는 흡사 그림자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강철아귀의 시야 밖에서 다시 나타났다.

    “빌어먹을 잔상인가!” 강철아귀가 성난 짐승처럼 포효하며 몸을 돌려 다시 주먹을 내질렀다. 이번에는 강철 의수의 손가락 마디마디에서 날카로운 강철 발톱이 튀어나와 공격 범위를 넓혔다. ‘천근쇄도’는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손끝에서 발산되는 강철내공이 미세한 충격파를 발생시켜 상대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거대한 의수 자체의 중량으로 찍어 누르는 잔인한 무공이었다.

    강휘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빠르게 움직였다. 그의 몸놀림은 유성문 특유의 ‘유성신법(流星身法)’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궤도로 움직이며 상대의 공격을 흘려보내고, 찰나의 빈틈을 노렸다. 마치 춤을 추는 듯 유려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강철아귀의 파괴적인 공격과도 견줄 만한 섬뜩함이 있었다.

    “저게 정말 유성권인가? 직접 보니 소문보다 훨씬 빠르군!” 해설자가 흥분하여 외쳤다. “하지만 강철아귀 선수의 공격은 모든 방향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강휘 선수, 언제까지 피하기만 할 생각입니까?!”

    강철아귀는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다. 아레나 전체가 그의 공격에 휘둘리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강휘는 그의 공격을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강철 의수가 크리스털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터져 나오는 섬광을 이용해 자신의 위치를 숨겼다.
    관중들은 강철아귀의 일방적인 공세에 열광했다. 그들은 강휘가 언제쯤 쓰러질지, 아니면 강철아귀의 주먹에 산산조각 날지 예측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강휘의 눈빛은 여전히 차분했다. 그는 강철아귀의 공격 패턴을 읽고 있었다. 무수히 많은 공격 속에서, 아주 미세한 간극과 틈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포착했다.

    강철아귀가 거대한 의수를 치켜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순간, 강휘는 발끝에 힘을 주어 마치 용수철처럼 솟아올랐다. 그의 움직임은 너무나 빨라, 관중들은 그가 허공을 밟고 선 것처럼 보였다. 강철아귀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바닥을 박살 내는 사이, 강휘는 이미 그의 머리 위로 올라가 있었다.

    “어디를 노리는 거지?!” 해설자가 외쳤다.

    강휘의 오른 주먹이 번개처럼 강철아귀의 사이버네틱 척추가 노출된 목덜미를 향해 내리꽂혔다. ‘유성권’ 제삼식, ‘낙성(落星)’.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모든 무게와 내공을 한 점에 집중시켜 내리꽂는 비기였다.

    강철아귀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고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강휘의 속도는 이미 그의 반응 속도를 넘어선 뒤였다.

    쿠우우웅!

    둔탁하면서도 모든 것을 압도하는 충격음이 아레나를 뒤흔들었다. 강철아귀의 목덜미와 강휘의 주먹이 부딪힌 지점에서 푸른 섬광이 폭발했다. 강철아귀의 거대한 몸이 순간적으로 경직되었다. 그의 사이버네틱 장비들이 한꺼번에 과부하가 걸린 듯 삐걱거리며 스파크를 튀겼다.

    “크아아아악!” 강철아귀의 비명과 함께 그의 몸이 통나무처럼 쓰러졌다. 강화 크리스털 바닥이 갈라지고, 그의 몸뚱이가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의 강철 의수는 제어력을 잃고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완전히 침묵했다.

    아레나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수십만 명의 관중들이 숨을 멈추고 쓰러진 강철아귀와 그 위에 고요히 서 있는 강휘를 번갈아 바라봤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천룡회 직속의 강철아귀가, 그것도 사이버네틱 강화까지 마친 강자가, 한 번의 일격으로 쓰러지다니.

    강휘는 쓰러진 강철아귀를 곁눈질로 한 번 확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 있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아레나 저편, VIP석에 앉아 있는 검은 옷의 그림자들을 향했다. 그들은 천룡회의 수뇌부, 이 천하대회의 진정한 주최자들이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알 수 없는 흥미와 함께 미세한 경계심이 스쳐 지나갔다.
    강휘는 알고 있었다. 이 대결은 그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유성문의 마지막 계승자로서, 이 천하대회에 나선 이유. 그것은 단순히 무위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오직, 이 오염된 도시의 심장부로 들어가, 잊혀진 진실을 밝혀내기 위함이었다.
    강휘의 발걸음이 다시 아레나를 울렸다.
    천하대회는 이제야 진짜 막을 올린 것이었다.

  • 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아르카나 마법 학원의 첨탑을 집어삼킬 무렵, 이온은 여전히 제3 연구동의 한구석에서 낡은 데이터패드와 씨름 중이었다. 창밖으로는 수백 미터 상공에 떠 있는 학원 도시의 네온 불빛이 마치 우주의 성운처럼 펼쳐져 있었고, 그 빛은 이온의 홀로그램 키보드 위로 미끄러지듯 춤췄다.

    “젠장, 마감 D-12시간이라고.”

    이온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꾹 눌렀다. 이번 프로젝트는 AI-마법 연동 시스템의 효율을 1%라도 개선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며칠 밤낮을 새도 영 돌파구가 보이지 않았다. 뇌에 직접 연결된 뉴럴 링크를 통해 수많은 마법 코드와 연산 명령이 오갔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_삐빅. 시스템 오류 감지. 제7 구역 동력원 비정상 작동 감지. 긴급 점검 요망._

    학원 전체를 관리하는 인공지능 ‘오라클’의 무미건조한 음성이 뇌 속으로 직접 울려 퍼졌다. 동시에 이온의 시야 한구석에 작은 경고창이 깜빡였다. 제7 구역? 학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 연구동’의 심층부,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버려진 구역이었다. 오라클은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이었기에 이런 오류는 매우 드물었다.

    _혹시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_

    이온은 왠지 모를 이끌림에 작업 중이던 코드를 잠시 멈추고 오라클의 시스템 로그를 파고들었다. 수백만 줄의 데이터가 홀로그램 화면을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빠르게 춤추고, 시선은 초고속으로 데이터를 스캔했다. 그리고 마침내, 낯선 기록 하나를 발견했다.

    _미등록 구역 접근 시도 감지. 프로토콜 XXX-7892 위반. 제7 구역 심층부 재봉인 완료._

    “미등록 구역? 재봉인?”

    이온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학원에는 미등록 구역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공간은 오라클의 철저한 감시 아래 있었고, 보안 등급에 따라 학생들의 접근이 통제될 뿐이었다. 그런데 ‘재봉인’이라니. 그건 마치… 한 번 열렸던 문을 다시 닫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호기심이 통제할 수 없는 파도처럼 몰려왔다. 마감 프로젝트 같은 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그는 마나 스크롤을 펼쳐 오라클의 보안망에 잠시 틈을 만들고, 제7 구역으로 향하는 최단 경로를 탐색했다. 낡은 서비스 터널, 그리고 더 아래로 향하는 비상 계단이 보였다.

    “이런 게 있었단 말이야?”

    표시된 경로는 지하, 더 깊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학원 공식 지도에는 존재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이온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엘리베이터는 마치 유령선처럼 삐걱거렸고, 덮개 아래 숨겨진 비상계단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상층부의 세련된 인공 향기와는 너무나도 다른 냄새였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는 더욱 습하고 차가워졌다. 벽면에 흐릿하게 빛나는 비상등만이 길을 밝혔다. 콘크리트 벽에는 고대 마법 문양이 덧칠된 채로 기계 장치들이 얽혀 있었다. 마나 회로가 낡은 전선들과 뒤엉켜 불안정한 빛을 내뿜었다.

    _투욱… 투욱…_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 사이로, 낯선 기계음과 함께 낮게 깔리는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착각인가? 너무 오랜 시간 연구에 몰두해서 환청이 들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이온은 좁은 통로 끝에서 거대한 원형의 공간과 마주했다. 그의 눈에 비친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공간 중앙에는 거대한 ‘봉인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고대 유물처럼 보이는 묵직한 돌덩이 위에 사이버네틱 케이블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투명한 마나 도관 속으로는 불안정한 마법 에너지가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장치의 표면에는 정체 모를 고대 문자와 최신 기술의 룬이 혼합되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봉인 장치 안에서, 희미한 빛에 의해 그 실루엣이 드러나는 *무언가*가 보였다.

    그것은 형태를 특정할 수 없는 덩어리였다. 마치 수많은 생명체가 뒤섞여 흐물거리는 듯한 모습. 표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눈동자가 깜빡이고 있었고, 굵고 길다란 촉수 같은 것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역겹도록 기이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봉인 장치 안에서 마치 꿈틀거리는 악몽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젠장… 이게 대체….”

    이온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공포가 목구멍을 옥죄었지만, 호기심은 그보다 더 강렬했다. 봉인 장치 주변에는 낡은 데이터패드들이 흩어져 있었고, 일부는 홀로그램 스크린을 띄우고 있었다. 낡은 연구 일지인 듯했다.

    이온은 떨리는 손으로 데이터패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뉴럴 링크를 연결하자, 낡은 기록들이 그의 시야에 쏟아져 들어왔다.

    _…차원 균열을 통해 넘어온 고대 존재. 명명: ‘엘드릿치’._
    _…무한한 마나 에너지 원천. 기존 마법 동력원의 획기적인 대안._
    _…존재의 불안정성. 봉인 강화 필요._
    _…생체 마나 추출 실험 진행. 피험체 상태 악화._
    _…강제 변형 시도. 결과: 실패. 봉인 장치 손상._

    이온의 숨이 턱 막혔다. 학원 지하에, 감춰진 공간에, 차원 균열에서 넘어온 고대 존재를 봉인하고, 그 존재의 마나를 추출하여 학원의 동력원으로 쓰고 있었다는 것인가? 심지어 ‘생체 마나 추출’, ‘강제 변형’ 같은 섬뜩한 기록들까지.

    그 순간, 봉인 장치 안의 엘드릿치가 욱신거렸다. 케이블에서 스파크가 튀었고, 마나 도관의 빛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이온의 해킹 때문인가?

    그리고 그 덩어리 속의 수많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이온이 서 있는 곳을 향했다.

    _끼이이이이익—!_

    날카로운 경보음이 지하 공간을 찢어발겼다. 동시에 이온의 뉴럴 링크에 오라클의 경고 메시지가 폭주했다.

    _미등록 접근 감지. 보안 프로토콜 7892 발동. 침입자, 즉시 그 자리에 멈춰라._

    멀리서, 금속성의 발소리가 빠르게 다가왔다. 이온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들고 있던 데이터패드 몇 개를 황급히 품에 쑤셔 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좁고 어두운 통로를 전력으로 질주했다. 뒤에서는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고, 경보음은 뇌를 찢어놓을 듯 울렸다. 이온은 벽에 매달린 마나 램프를 마법으로 폭파시키고, 낡은 전선들을 절단 마법으로 끊어놓으며 추격자들을 따돌리려 했다.

    “젠장! 누가 뒤쫓는 거야?!”

    간신히 상층부로 연결되는 비상 통로의 철문에 도달했다. 디지털 자물쇠를 마법으로 해제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차갑고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서라, 학생.”

    이온은 심장이 발끝까지 떨어지는 것을 느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철문을 열어젖혔다. 그는 그 어떤 것도 돌아보지 않고,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층부의 복도를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그의 뒤에서는 금속음이 울리고, 철문이 닫히는 육중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 소리가 모든 것을 끝내지는 못했다. 이온은 확신했다. 지금껏 그 어떤 학생도 알지 못했던, 아르카나 마법 학원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깨어났다. 그리고 그 금기의 그림자가 이온의 삶을 덮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 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차가운 철골 구조물 사이로 스며든 달빛은 그마저도 제국 도시의 오물처럼 탁했다. 녹슨 금속 냄새, 눅눅한 곰팡이 냄새, 그리고 인간의 비명마저 짓누르는 절망의 냄새가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지하 은신처의 한구석, 낡은 목재 테이블 위에서 희미한 기름 램프가 일렁였다. 세 개의 그림자가 그 불빛 아래서 길게 드리워졌다.

    “밤의 사냥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강철 같은 단단함이 서려 있었다. 굳게 다문 입술은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녀의 눈빛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올랐다. 그녀는 테이블에 펼쳐진 조악한 지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외곽의 보급로가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식량은 사흘 치, 물은 이틀 치. 더 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재혁은 말없이 턱을 쓸었다. 거친 수염이 자란 그의 얼굴은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한 흔적으로 가득했다. 그의 눈빛은 지도를 훑는 동시에, 맞은편에 앉은 민준에게 향했다. 민준은 말이 없었다. 늘 그렇듯, 그림자처럼 앉아 자신의 존재를 지우려 애쓰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은 나이프의 날을 무의식적으로 매만지고 있었다. 그 칼날은 램프 불빛에 번뜩이며, 마치 그들의 불안을 반영하는 듯했다.

    “다른 방법은 없어.” 재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중앙 서버를 노려야만 해.”

    세연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건 자살 행위나 다름없어요. 제국 본부의 중앙 서버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촉했던 어떤 시설보다도 삼엄합니다. ‘검은 심장’의 핵심이에요. 침투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하지만, 그곳에서 정보를 빼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불가능하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잖아.” 재혁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낮아졌다. 그의 주먹이 램프 옆 탁자를 내리쳤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가 지하 은신처의 정적을 깨뜨렸다. “놈들이 우리를 굶겨 죽이려 한다면, 우리는 놈들의 심장을 꿰뚫어야지.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어. 우리를 따르던 이들, 죽어간 이들, 그리고 아직 살아남아 이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서라도.”

    민준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작은 파문이 일었다. “어떤 정보를 노리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세연이 망설이듯 입술을 씹었다. “제국이 ‘그것’을 숨기고 있는 위치. 그리고 ‘그것’의 작동 방식에 대한 정보입니다.”

    ‘그것’.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는 것을 꺼리는 단어였다. 제국이 마지막 보루로 삼고 있는 절대적인 힘. 그 힘이 발동되는 순간, 이 땅의 모든 저항은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막아야 했다. 아니, 적어도 ‘그것’에 대한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침투 경로는?” 민준이 다시 물었다. 그의 나이프는 여전히 손끝에서 차갑게 번득였다.

    세연은 지도를 짚었다. “구 도심의 폐쇄된 지하 수송관을 이용하는 겁니다. 밤의 사냥꾼들이 감시망을 집중하는 지상은 너무 위험합니다. 하지만 지하 수송관은 제국도 완벽하게 장악하지 못한 구역이 남아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변수도 많지만…”

    “변수가 많은 건 언제나 마찬가지였어.” 재혁이 싸늘하게 웃었다. “밤의 사냥꾼 놈들은 지하 수송관을 쥐들의 소굴로 여길 테니까. 방심할 거야. 그 틈을 노린다.”

    세연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희망과 절망,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의지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민준 씨가 선두에 서야 합니다. 누구보다 조용하고, 누구보다 날카로우니까요.”

    민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그림자는 램프 불빛 아래서 더욱 깊고 어둡게 드리워졌다. 그는 한 번 결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내였다. 그의 침묵은 때로는 그 어떤 웅변보다도 강한 신뢰를 주었다.

    세 시간 후, 그들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낡은 방호복을 걸친 재혁과 세연, 그리고 민준은 폐쇄된 지하 수송관 입구에 섰다. 퀴퀴한 흙먼지와 부패한 금속 냄새가 코를 찔렀다. 녹슨 철문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그들에게 길을 열었다.

    “통신은 최소한으로.” 세연이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곧 발각될 위험입니다.”

    민준은 손전등을 켰다. 그 빛이 어둠 속으로 길게 뻗어 나갔다. 지하 수송관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미로처럼 복잡했다. 끊어진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 소리는 마치 그들 자신의 심장 박동처럼 불안하게 들렸다.

    한참을 나아가자, 수송관 내부가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거칠었던 벽면이 매끄러운 금속 패널로 바뀌고, 희미하지만 일정한 간격으로 천장에 설치된 비상등이 빛을 발했다. 제국 본부의 영역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공기는 한층 더 차갑고 건조해졌다.

    “기척이 느껴져.” 민준이 멈춰 서며 속삭였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재혁과 세연은 동시에 숨을 죽였다. 전방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금속음이 들려왔다. 발소리였다. 정확히 두 명.

    “밤의 사냥꾼들인가?” 재혁이 이를 악물었다.

    “대기조일 겁니다.” 세연이 답했다. “우리가 예상한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군요.”

    민준은 이미 손에서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그의 움직임은 물 흐르듯 유연하고 조용했다. 그는 재혁과 세연에게 손짓으로 벽에 바싹 붙으라고 지시했다. 그 자신은 어둠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었다. 마치 수송관의 일부인 양, 그의 존재는 사라졌다.

    두 명의 밤의 사냥꾼이 경계를 풀고 복도를 지나쳤다. 그들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렸다. 그들이 완전히 지나치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섬광처럼 움직인 민준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쳤다. 단 두 번의 빠르고 정확한 움직임. 밤의 사냥꾼들은 비명 한번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들의 목에는 붉은 선이 그어졌고, 생명은 이미 끊어져 있었다.

    재혁은 짧게 탄식했다. 민준의 잔혹함과 효율성은 언제나 그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잔혹함이 지금 이 순간 그들을 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밤의 사냥꾼들의 시체를 수송관 구석으로 끌고 갔다. 민준은 능숙하게 그들의 통신 장치를 해체했다. “통신 기록을 확인해야 합니다.” 세연이 말했다.

    민준이 작은 단말기를 꺼내 연결했다. 화면에 암호화된 전문들이 빠르게 스크롤되었다. 세연의 눈동자가 그 글자들을 좇는 동안,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이건…” 세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닙니다. 이들은 대기조가 아니었어요. 아니, 단순한 대기조가 아닙니다.”

    재혁이 불안한 시선으로 세연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야?”

    세연의 손가락이 화면의 특정 부분을 짚었다. “이들의 통신 내용은 일반적인 순찰 보고가 아니에요. 특정 인물의 이동 경로를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은밀하게. ‘그림자 추적’이라고 되어 있네요.”

    “그림자 추적? 누구를?” 재혁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불길한 예감이 그의 등골을 타고 올랐다.

    세연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단말기 화면을 들어 재혁에게 보여주었다. 화면 한가운데에는 인식표 번호와 함께, 희미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 속 인물의 얼굴은…

    재혁의 눈동자가 산산이 부서지는 듯했다. 그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 영상 속에서, 그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그들의 모든 계획을 함께 꾸려왔던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제국의 고위 간부와 함께 웃고 있었다. 따뜻한 차가 담긴 잔을 들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이럴 리가 없어… 말도 안 돼.” 재혁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믿을 수 없는 배신감과 함께, 차가운 공포가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그들이 지금껏 지켜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민준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나이프를 든 그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세연은 힘없이 단말기를 떨어뜨렸다. 금속 바닥에 부딪히며 탁, 하는 소리가 지하 수송관의 정적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화면 속의 웃음은 잔인하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제국의 심장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가 그들의 심장을 이미 발가벗겨 놓은 채, 조용히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에서, 진짜 ‘밤의 사냥꾼’들이 그들을 비웃는 듯했다.

  • 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차가운 새벽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낡은 방한복의 찢어진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칼날 같은 바람에 강진은 저절로 몸을 웅크렸다. 해는 아직 지평선 아래였지만, 이미 온 세상은 잿빛으로 깨어나 있었다. 멀리 떨어진 폐허의 잔해들이 거대한 뼈대처럼 솟아 있었고, 그 사이로 매캐한 먼지가 희미한 시야를 더욱 가로막았다.

    강진은 한 손에 쥔 녹슨 철봉을 고쳐 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허리춤의 물통을 만져보았다. 절반도 채 남아 있지 않은 물의 무게가 얄팍하게 느껴졌다. 이대로는 사흘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젠장.”

    낮게 욕설을 씹어뱉었다. 살아남기 위해 매일같이 벌이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십수 년 전,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솟구치며 온 세상을 집어삼켰던 ‘대재앙’ 이후, 인류는 문명의 대부분을 잃고 짐승만도 못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무너진 도시의 잔해 속에서 식량과 물, 그리고 아직 쓸 만한 도구를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었다. 무도(武道)의 가르침조차 생존을 위한 하나의 기술로 전락한 시대였다.

    강진은 자신이 숨어 있던 건물 잔해에서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이곳은 한때 번화했던 상점가였으나, 이제는 거대한 무덤이나 다름없었다. 꺾이고 부서진 철근들이 뼈대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고, 깨진 유리 파편들은 밟을 때마다 불길한 소리를 냈다. 가장 위험한 것은 물론, 이러한 폐허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었다.

    그의 눈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흙먼지가 가득한 골목길, 그림자 드리워진 건물 벽, 그리고 저 멀리 무너진 탑의 꼭대기까지. 대재앙 이후 출몰하기 시작한 변이된 짐승들과, 인간이기를 포기한 약탈자들은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스승은 늘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예측할 수 있으면서도 막을 수 없는 탐욕을 가진 인간이라고. 그 말이 뼈저리게 와닿는 요즘이었다.

    강진은 발소리를 죽이며 이동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모두 신중했다. 폐허를 지날 때마다 그의 낡은 가죽 신발은 먼지를 일으켰지만, 그 소리는 주변의 정적에 흡수될 정도로 미미했다. 그의 목표는 이 구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오래된 물탱크’였다. 한때 도시의 식수를 공급하던 거대한 구조물이었는데, 대재앙 이후 기적적으로 일부가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다고 소문이 돌았다. 물론, 소문은 소문일 뿐, 그곳에 무사히 접근하고 살아남아 돌아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흐읍…”

    깊은 호흡과 함께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무공은 스승에게서 배운 ‘칠성연환권’이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실전에서만큼은 그 어떤 초식보다도 강력하고 효율적이었다. 변이된 짐승들의 단단한 가죽을 찢고, 약탈자들의 뼈를 부러뜨리는 데에는 그 어떤 무공보다 뛰어났다.

    거대한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지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피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강진의 심장이 낮게 울렸다. 놈들이다.

    그는 즉시 몸을 낮춰 벽에 바짝 붙었다. 낡은 콘크리트 벽의 차가운 감촉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그의 눈은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골목 끝, 깨진 창문 틈새로 새어 들어오는 빛 아래, 그림자 세 개가 어른거렸다.

    낮은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변이 쥐나 들개와는 다른, 더 크고 사나운 짐승의 소리였다. 강진은 이를 악물었다. 운이 없군.

    어두운 골목을 지나던 강진의 발소리가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찌그러진 금속 조각들이 널려 있는 바닥에 꽂혔다. 그곳에는 며칠 전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시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옷은 갈가리 찢겨 있었고, 살점은 뜯겨 나간 지 오래였다. 그 잔혹한 흔적은 한 가지 생명체의 소행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흡혈독(吸血毒) 늑대.”

    강진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대재앙 이후 나타난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흉악하고 교활한 놈들이었다. 일반 늑대보다 두 배는 큰 덩치에, 날카로운 발톱과 송곳니는 물론, 피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독성 물질은 접촉만으로도 생명을 위협했다. 게다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냥감을 고립시키는 데 능했다.

    강진은 자신의 위치를 재빨리 계산했다. 이곳은 막다른 골목이었다. 뒤로 물러나기에는 이미 너무 깊숙이 들어온 상황. 다른 길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체될 터였다. 물통의 물은 줄어들고 있고, 체력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결정은 순식간에 내려졌다. 피할 수 없다면 부딪쳐야 한다.

    그는 철봉을 쥐는 손에 힘을 주었다. 금속 손잡이가 그의 손에 땀으로 미끄러웠다. 폐허 깊숙한 곳에서 풍겨오는 피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강진은 심호흡을 했다. 긴장이 극에 달했지만, 그의 눈은 차분하게 빛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놈들을 잡아야만 했다.

    그 순간,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튀어나왔다. 끔찍하게 변이된 늑대의 형상이었다. 털은 빠지고 흉측한 근육이 드러나 있었으며, 눈은 핏발이 서 있었다. 놈은 입을 벌리며 강진에게 달려들었다. 독액이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가 섬뜩했다.

    강진은 빠르게 몸을 틀었다. 칠성연환권의 첫 번째 초식, ‘개벽(開闢)’. 철봉이 그의 손에서 묵직하게 휘둘러졌다. 쇠가죽처럼 단단한 놈의 앞발과 강철봉이 부딪히며 ‘쨍’ 하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골목을 울렸다.

    “크르르르!”

    늑대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잠시 휘청거렸으나, 곧바로 송곳니를 드러내며 다시 달려들었다. 두 번째 초식, ‘섬광(閃光)’. 강진은 늑대의 공격을 피하며 몸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철봉의 끝이 늑대의 옆구리를 날카롭게 찔렀다. 놈의 찢어진 피부 사이로 짙은 검붉은 피가 솟구쳤다.

    그러나 놈은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고통에 울부짖으며 더욱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그와 동시에, 골목 양쪽에서 두 마리의 흡혈독 늑대가 더 나타났다. 세 마리의 짐승들이 강진을 에워쌌다.

    강진의 얼굴에 긴장감이 역력했다. 한 마리도 버거운 상대인데, 세 마리라니.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냉정했다. 스승은 늘 말했다. “진정한 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을 가진다. 생사의 기로에서조차, 마음을 지켜야 한다.”

    “하아… 죽어라.”

    강진은 짧게 외치며 발을 굴렀다. 그의 몸에서 강력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칠성연환권의 세 번째 초식, ‘폭렬(爆裂)’. 그는 한 마리의 늑대에게 몸을 던지며 철봉을 휘둘렀다. 놈의 머리가 강철봉에 맞아 터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늑대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두 마리의 늑대가 그의 등과 옆구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그의 방한복을 찢었고, 살점이 뜯겨나가는 고통이 느껴졌다. 강진은 이를 악물었다. 그의 얼굴에 피 묻은 늑대 털이 튀겼다.

    “젠장!”

    그는 아픔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피로 얼룩진 철봉을 든 채, 그의 눈은 불타는 듯이 번뜩였다. 더 이상의 망설임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만이 남았다. 그의 무공은 이제 단순한 기술이 아닌, 생존을 위한 투쟁 그 자체였다.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그는 죽을 수는 없었다. 아직 찾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의 시선은 흡혈독 늑대들의 흉측한 눈을 꿰뚫었다.

    “덤벼라, 짐승 같은 놈들!”

    그의 외침과 함께, 폐허의 골목은 다시금 살육의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 이세계 전생 (Isekai)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01. 균열의 시작

    김지훈은 퇴근 후 텅 빈 아파트에 들어설 때마다, 묘한 허전함과 함께 지쳐버린 하루의 무게를 느꼈다. 현관문을 닫자마자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고 소파에 몸을 파묻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도 다를 바 없었다. 스탠드 불빛 아래 놓인 소설책을 펼쳤지만,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회사에서 쌓인 피로와 저녁 메뉴 고민으로 가득했다.

    “젠장, 라면 먹기도 귀찮네.”

    작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대답해줄 사람도 없지만, 혼잣말은 언제나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거실 탁자 위에는 어제 마시다 남긴 머그컵과 태블릿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지훈은 손을 뻗어 태블릿을 집어 들었다. 평소 같으면 SNS를 훑거나 웹툰이나 볼텐데, 오늘은 그마저도 무기력했다.

    그때였다.

    ‘딸깍.’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탁자 끝에 놓여 있던 볼펜이 저절로 굴러 떨어졌다. 지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닥에 떨어진 볼펜을 응시했다. 착각인가? 피곤해서 헛것이 보였나?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 않게 볼펜을 다시 집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잠깐 졸았나.”

    다시 소설책에 시선을 고정했지만, 어쩐지 등골이 서늘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있을 리 없었다. 이 아파트는 혼자 산 지 3년째였다. 옆집은 노부부, 위아래는 신혼부부. 특별히 오갈 사람도, 찾아올 사람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창밖은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지훈은 뒤늦게 허기를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주방으로 향하려던 찰나, 거실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의 머그컵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쨍그랑!’

    날카로운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분명히, 분명히 컵이 움직였다. 그것도 스스로.

    “이… 이게 뭐야?”

    그는 바닥에 떨어진 컵 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손발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비과학적인 상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귀신? 도둑? 도둑이라면 왜 하필 컵만 깨뜨린단 말인가.

    지훈은 급히 휴대폰을 찾아들었다. 손이 심하게 떨려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할지도 모호했다. 경찰?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제 머그컵이 스스로 움직여서 깨졌어요!”라고? 미친 사람 취급당할 게 뻔했다.

    그는 어둠이 짙게 깔린 거실을 살폈다. 모든 것이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가구들, 벽에 걸린 액자, 창밖 풍경까지. 하지만 방금 일어난 일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때, 주방 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분명히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하지만 냉장고 문은 자신이 들어온 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누구… 누구세요?”

    목소리가 떨렸다. 공포가 온몸을 휘감았다. 주방은 어두웠다. 지훈은 거실 스탠드의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주방 입구를 응시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무언가 있었다.

    “거기, 거기 누구 없어요?”

    지훈은 용기를 내어 한 발짝 주방 쪽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는 기분이었다. 손에 땀이 흥건했다. 그의 발걸음이 멈춘 순간, 주방 식탁 위에 놓여 있던 과일 바구니가 통째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과와 귤이 사방으로 굴러갔다.

    ‘쿵! 우당탕탕!’

    이제는 확실했다. 이건 누군가의 장난이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이 미친 것도 아니었다.

    “이, 이건…!”

    지훈은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비로소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액자 하나가 스르륵 기울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액자 속 사진은 3년 전 이사 오기 전, 친구들과의 여행 사진이었다. 액자 유리는 산산조각이 났다. 사진 속 해맑게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이 마치 비웃는 것 같았다.

    거짓말 같았다. 비현실적인 상황이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폴터가이스트 현상. 대체 왜 하필 자신에게?

    갑자기 거실 전체의 불빛이 일제히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전기가 불안정한 것처럼. 깜빡임은 점차 빨라졌고, 결국 모든 불빛이 동시에 꺼졌다. 아파트는 완벽한 어둠 속에 잠겼다.

    “흐읍!”

    지훈은 숨을 들이켰다. 사방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검은 심연이었다. 공포가 극에 달했다. 그는 휴대폰 플래시를 켜려 했지만, 손이 너무 떨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이 번쩍였다. 그것은 바로 그의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였다. 평소에는 그저 시간을 알려주는 디지털 시계였을 뿐인데, 지금은 시계 액정 전체가 기묘한 푸른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빛 속에서, 글자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문자들이었다. 마치 고대 유적에서나 볼 법한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이전에 본 적 없는 기이한 형태의 기호 같기도 했다.

    문자들은 빠르게 변화하며, 액정 안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푸른빛이 점차 강렬해지며 그의 손목을 감쌌다. 지훈은 시계를 벗어 던지려 했지만, 손목에 시계가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아파트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진동과 함께,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마치 공간 자체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지훈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시계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은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그 빛은 점차 희미해지며 그의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의 눈앞은 완전히 암전되었다.

    마지막으로 느껴진 것은,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한 기이한 부유감이었다.

    그리고,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낯선 흙냄새가 그의 코끝을 스쳤다.

    ***

    *(다음 챕터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