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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강혁은 식은땀이 흐르는 손으로 녹슨 철문을 밀었다. 삐걱이는 소리가 폐허의 정적을 깨고 먼지를 흩뿌렸다. 한때 찬란했을 백화점의 입구는 이제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와 덩굴로 뒤덮인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다. 칙칙한 공기가 습하고 차가웠다. 썩은 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찔렀다. 그의 손에 쥐인 개량형 강철 파이프는 묵직했지만, 이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그를 얼마나 지켜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젠장, 또 여기냐.”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식량은 바닥났고, 물도 간당간당했다. 어제 밤, 쥐새끼 같은 그림자들이 캠프 주변을 맴돌았고, 그는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곳, ‘검은 백화점’이라 불리는 폐허는 위험하기로 악명 높았지만, 동시에 아직 건질 만한 것이 남아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죽음과 생존이 종이 한 장 차이로 공존하는, 지긋지긋한 이 세계의 축소판 같은 곳이었다.

    강혁은 낡은 손전등을 켜 어둠을 갈랐다. 빛줄기가 닿는 곳마다 부서진 쇼윈도와 뒤집힌 진열대가 기괴한 형상으로 드러났다. 마네킹 팔 조각이 바닥에 나뒹굴고, 찢어진 옷가지들이 곰팡이와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한때 번영을 자랑했을 이 공간은 이제 모든 생명이 사라진 망자의 도시처럼 고요했다. 그는 바닥에 깔린 유리 조각들을 피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조차 주변의 침묵을 더욱 강조하는 듯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완전히 붕괴되어 거대한 시소처럼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다. 강혁은 벽에 박힌 철근을 잡고 조심스럽게 몸을 내렸다. 발아래 콘크리트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소리가 불안하게 울렸다. 그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었다. 이곳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상 긴장해야 했다. 단 한순간의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지하 1층에 도착하자 습기와 썩은 냄새가 더욱 강해졌다.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의 시야를 집어삼키려 했다. 손전등 빛이 닿는 곳 너머는 아득한 암흑뿐이었다. 이곳은 식품 코너였다는 것을 짐작게 하는 낡은 간판 조각이 희미하게 보였다. 강혁의 눈이 날카롭게 주변을 훑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먹을 것. 썩지 않은 통조림이나, 어쩌면 폐기된 비상식량 창고 같은 곳에 남았을지도 모를 보급품이었다.

    복도를 따라 걷던 강혁의 발걸음이 문득 멈췄다. 흙먼지가 쌓인 바닥에 희미한 자국이 보였다. 마치 무언가가 끌려간 듯한 흔적이었다. 그리고 그 흔적은 얼마 되지 않은, 비교적 선명한 것이었다.

    ‘젠장, 선객이 있었나?’

    그의 손에 쥔 파이프가 저절로 꽉 쥐어졌다. 이 폐허에 남아있는 것은 대부분 돌연변이 괴물들이나, 그 괴물들과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었다. 어느 쪽이든 반가울 리 없었다. 그는 숨소리마저 죽이고 발소리를 최소화하며 흔적을 따라갔다. 코너를 돌자, 어둠 속에 거대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림자. 그것은 폐쇄된 냉동 창고의 문틈이었다. 녹슨 철문은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그 틈새로 음산한 기운이 새어 나왔다. 강혁은 망설였다. 위험한 냄새가 진동했지만, 동시에 그의 본능이 그곳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속삭였다. 식량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 심한 위험일 수도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그는 문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안은 칠흑 같았다. 손전등 빛이 겨우 닿는 곳에는 선반이 무너져 있고, 곰팡이 핀 박스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희망이 사그라지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는 실망감에 한숨을 내쉬려는 순간, 바닥에 굴러다니는 캔 하나를 발견했다.

    빛을 비추자, 통조림이었다. 비록 찌그러지고 먼지가 가득했지만, 아직 개봉되지 않은 상태였다. 강혁은 떨리는 손으로 캔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크으으…’

    등 뒤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강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촤악!’ 하고 살을 찢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의 등 뒤 벽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강혁은 숨을 죽였다. 바닥에 뒹구는 부서진 쇼윈도 조각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형상을 흉내 낸 듯했지만, 뼈마디가 기괴하게 뒤틀리고 피부는 시커멓게 말라붙은 괴물이었다. 눈 대신 박힌 두 개의 붉은 점이 섬뜩하게 빛났다. 아귀(餓鬼). 이 폐허의 가장 흔한 주민 중 하나였다. 배고픔에 미쳐버린 인간의 잔해,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였다.

    “크으으…”

    목구멍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아귀가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왔다. 날카로운 손톱이 강혁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강혁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젖히며 공격을 피했다. ‘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그는 곧장 파이프를 휘둘렀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아귀의 팔이 꺾이는 느낌이 전해졌다. 괴물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금세 다시 자세를 잡았다. 폐허에서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는 질겼다.

    아귀는 한쪽 팔을 축 늘어뜨린 채,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고 기어오듯 달려들었다.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다. 강혁은 겨우 몸을 돌려 피했지만, 아귀의 발톱이 그의 왼쪽 어깨를 스쳤다. ‘찍!’ 살점이 찢기는 고통이 온몸을 강타했다. 뜨거운 피가 솟구쳤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참았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끝이었다.

    “꺼져, 빌어먹을!”

    그는 있는 힘껏 파이프를 휘둘러 아귀의 머리를 강타했다. ‘꽈직!’ 하는 소리와 함께 괴물의 붉은 눈이 잠시 흐려지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잠시뿐, 아귀는 여전히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려는 듯 몸부림쳤다. 강혁은 망설이지 않았다. 쓰러진 아귀의 몸 위로 올라타 파이프를 들고 다시 내려찍었다. ‘우두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침내 아귀의 움직임이 멎었다.

    강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어깨에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아귀는 이제 축 늘어진 그림자처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싸움이 끝나자 주변의 침묵이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는 파이프를 짚고 일어섰다. 몸의 모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앞에는 아귀가 숨어있던 곳, 즉 냉동 창고의 가장 안쪽 벽이 보였다. 아귀는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일까. 빛을 비추자, 무너진 벽 뒤에 숨겨진 작은 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누군가 급히 피난하며 버리고 간 듯한 작은 상자가 보였다. 기대 반, 절망 반으로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녹슬지 않은 통조림 몇 개와 깨끗한 물통, 그리고 낡았지만 쓸 만한 나이프가 들어 있었다. 가장 귀한 것은, 손바닥만 한 태양열 충전식 손전등이었다. 이 지옥 같은 밤에 밝게 빛날 한 줄기 희망이었다.

    “젠장… 고맙다.”

    그는 피식 웃었다. 한숨 돌릴 수 있는 생존의 파편들. 이것으로 그는 또 하루를, 어쩌면 이틀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어깨의 고통은 여전했지만, 마음속의 무게는 조금이나마 가벼워졌다. 그는 상자를 품에 안고 밖으로 향했다. 폐허의 어둠은 여전했지만, 그의 발걸음은 조금 더 가벼워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처절한 생존 게임에서, 그는 오늘도 잠시나마 승리했다. 내일은 또 다른 어둠이 기다리고 있겠지만, 그래도 살아남아야 했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오늘도 그는 다시 한번, 이 잔인한 세상에 존재를 증명했다.

  • 던전 탐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지배하는 던전의 심장부, ‘별의 잔해 광산’. 그곳은 이름처럼 밤하늘의 조각들이 땅속 깊이 박혀 수정이 되어 빛을 내는 기이한 곳이었다. 강현은 낡았지만 튼튼한 방패와 한 손 검을 쥐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등 뒤의 배낭은 이미 텅 비어 있었고, 몸은 온통 땀과 먼지로 뒤덮인 지 오래였다. 며칠째 이 미로 같은 광산을 헤매며 희귀한 ‘월광석’을 찾아다녔지만, 소득은 없었다. 대신 죽음의 문턱만 여러 번 오갔을 뿐.

    “젠장, 이쯤 되면 귀환해야 하는데…”

    낮게 중얼거리는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목마름은 차라리 익숙했고, 온몸의 근육은 비명을 질러댔다. 차가운 수정 벽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푸른빛, 보랏빛, 은빛… 온갖 색깔의 수정들이 발하는 빛이 눈꺼풀 안쪽까지 파고들어 환영을 만들어냈다. 눈을 뜨자 다시 현실의 차가운 빛이 그를 맞았다.

    그때였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섬뜩한 소리. 날카로운 발톱이 바닥을 긁는 소리, 낮게 으르렁거리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동굴 안을 진동시켰다.

    “…또야?”

    강현은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어둠살이 늑대’ 무리였다. 광산의 가장 깊은 곳, 수정의 기운에 오염되어 더욱 흉포해진 존재들. 그는 이미 두 마리를 겨우 상대해 보급품을 바닥냈었다. 지금은… 어둠살이 늑대 세 마리가 그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몸집은 거대한 짐승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온몸이 검은 수정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눈은 붉게 번뜩였다.

    “하… 망할.”

    강현은 흐릿해지는 정신을 다잡고 검을 고쳐 쥐었다. 한 마리가 먼저 돌진했다. 맹렬하게 휘두르는 발톱을 방패로 막아냈지만, 충격은 그의 어깨를 강타했다. 뼈가 울리는 고통. 다른 두 마리가 양옆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강현은 재빨리 몸을 돌려 한 마리의 옆구리에 검을 꽂아 넣었다. 검은 수정 조각들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늑대는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 잠깐의 틈에, 남은 한 마리의 발톱이 그의 옆구리를 깊게 베었다.

    “크윽!”

    날카로운 고통이 전신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갑옷마저 찢고 살을 파고든 발톱의 감각이 생생했다. 피가 철철 흘러내려 바닥의 수정 조각들을 붉게 물들였다. 강현은 무릎을 꿇었다. 검을 든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이대로 끝인가. 수많은 던전에서 살아남았지만, 결국 이렇게 이름 없는 늑대 무리에게 잡아먹히는 건가.

    피투성이 시야 속에서, 마지막 어둠살이 늑대가 그의 목덜미를 노리고 뛰어드는 것이 보였다. 그의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때, 허공에서 찬란한 푸른빛이 번쩍였다.

    ‘콰앙!’

    늑대를 덮쳤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는 새까맣게 재가 된 늑대의 형체만 남았다. 나머지 한 마리 역시 공포에 질린 듯 뒷걸음질 치다, 마찬가지로 푸른 섬광에 휩싸여 사라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강현은 숨을 헐떡이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그곳에, 그가 잊을 수 없는 존재가 서 있었다.

    어둠과 수정의 기운이 뒤섞인 공간 속에서, 그녀는 마치 별빛이 흩어져 만들어진 듯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다. 투명한 푸른 날개가 등 뒤에서 아른거렸고, 에메랄드빛 머리칼은 허리까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피부는 희고 창백했으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는 마치 이 별의 잔해 광산의 모든 신비를 담고 있는 듯했다. 수정의 요정, 리아.

    “…리아.”

    강현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가까웠다. 그의 눈에 비친 그녀는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차가운 던전의 공기마저 온기를 띠는 듯했다.

    리아는 아무 말 없이 강현의 옆구리 상처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푸른 눈빛에 불안과 걱정의 그림자가 스쳤다.

    “또, 다쳤군요.”

    나직하지만, 맑고 청량한 목소리. 수정이 부딪히는 소리 같기도, 숲의 바람 소리 같기도 했다. 강현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모든 고통이 잊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너… 네가 구해준 건가?”

    강현의 물음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한 푸른빛이 피어올랐다. 그녀가 손을 뻗어 강현의 상처 위에 가져다 대자, 차가운 감각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상처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다…”

    강현은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푸른빛이 감도는 그녀의 얼굴은 더없이 경이로웠다. 그리고 동시에, 금지된 감정이 다시금 심장을 옥죄어왔다.

    인간과 요정. 특히 이 별의 잔해 광산의 수정 요정은 인간에게 알려진 가장 신비롭고, 동시에 가장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인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법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고, 한때 이 광산에 발을 들였던 수많은 탐험대가 그들에게 스러져갔다. 그런 요정이, 인간을 구하다니. 심지어 그와 이렇게 대화하고 그의 상처를 치유해주다니.

    이 모든 것은, 두 달 전 시작되었다.

    월광석을 찾아 광산의 미개척지를 헤매던 강현이 함정에 빠져 죽어가던 그 순간, 리아가 나타나 그를 구해줬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고 사라졌다. 강현은 그것이 그저 환영이었거나, 죽기 직전의 꿈이었다고 치부하려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여러 번, 위험에 처할 때마다 그녀는 홀연히 나타나 강현을 도왔다. 직접적인 개입은 아니었다. 몬스터들의 주의를 돌리거나, 길을 안내하거나, 상처를 치유해주는 방식으로.

    그리고 강현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종족을 초월한, 금지된 사랑. 인간과 요정. 그들의 세상에서 용납될 수 없는 관계.

    “이곳은… 인간이 머무를 곳이 아니에요.”

    리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푸른 눈은 걱정과 함께 어떤 슬픔을 담고 있는 듯했다.

    “알아… 하지만…”

    강현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너를 보고 싶었어. 그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뱉어낼 수 없었다. 그녀에게도, 자신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말이었다.

    리아는 천천히 강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투명한 날개가 희미하게 반짝였다. 그녀의 손이 조심스럽게 강현의 뺨을 어루만졌다. 차가웠지만, 그 어떤 온기보다 따뜻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야 해요.”

    “난…”

    강현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차가운 수정 같은 감촉.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줄 수가 없었다.

    “나는… 너와 함께 있고 싶어, 리아.”

    어리석은 고백이었다. 그들의 운명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안에는 고통과 연민, 그리고 강현이 감히 짐작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은… 안 돼요.”

    리아는 겨우 그 말을 내뱉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우리 둘 모두… 파멸할 거예요.”

    그녀의 손이 그의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섰다. 푸른 날개가 다시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녀가 떠나려 한다는 것을 직감한 강현은 다급하게 손을 뻗었다.

    “기다려! 리아!”

    하지만 리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푸른빛은 점점 더 강해지더니, 마침내 눈부신 섬광과 함께 그녀의 모습은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녀가 서 있던 자리에는 차가운 수정 바닥만이 남아있었다.

    강현은 텅 빈 공간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옆구리의 상처는 이미 아물어 더 이상 통증이 없었다. 하지만 심장에는 그녀가 떠난 빈자리가 너무도 생생하게 느껴져, 칼로 벤 듯 아려왔다.

    파멸이라니.
    이 광산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잔혹한 진실을 품고 있었다. 그와 리아의 사랑은 이 어둠의 심장 던전의 수정처럼, 아름다웠으나 깨지기 쉬웠고, 치명적인 금기를 담고 있었다.

    강현은 다시 일어서서 그녀가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위험천만한 광산에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어쩌면 그는 정말 파멸을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가 있는 곳이 곧 그의 세상이었으므로.

    그는 어둠이 짙게 깔린 던전 속으로, 또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달빛을 닮은 수정들이 그의 가는 길을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치 미래의 금지된 조각들을 예언하듯이.

  • 가상현실 게임 (VRMMO)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 이계의 그림자 수사록: 첫 번째 밀실

    선율이 흐르는 듯한 바람이 나뭇가지 사이를 스쳤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다. 섬세한 잎맥 하나하나까지 선명하게 구현된 숲, 저 멀리 반짝이는 호수의 물결, 그리고 코끝을 간지럽히는 흙과 풀의 향기까지. 이곳은 가상현실 게임, ‘아르카나’였다.

    나는 ‘아르젠’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계를 유랑하고 있었다. 직업은 명탐정. 물론 게임 시스템이 부여한 공식 직업은 아니었다. 그저 흥미와 취미로 온갖 미스터리를 파헤치고 다녔을 뿐인데, 어느새 게임 내에서 입소문이 자자해졌다. 내 주특기는 ‘밀실’.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공간에서 벌어진 범죄의 트릭을 깨부수는 것이었다.

    오늘도 한적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따스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길섶에는 이름 모를 들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 그러나 나의 본능은 언제나처럼 기묘한 전조를 감지하고 있었다. 이 완벽한 평화 속에는 언제나 잔혹한 이면이 숨어있기 마련이었다.

    그때, 귓가에 다급한 시스템 알림음이 울렸다.

    [긴급 요청: 대저택 ‘그림자 관’에서 살인 사건 발생! 현재 현장은 봉쇄되었습니다. 상세 내용은 첨부된 좌표를 확인하십시오.]

    나는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올 것이 왔다. 평화는 역시 잠시간의 환상일 뿐이었다. 알림창에 뜬 좌표를 확인하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숲을 벗어났다. ‘그림자 관’이라니, 이름부터 범상치 않았다. 아마 고위 귀족이나 유력 상인의 저택일 터. 그런 곳에서 살인 사건이라. 그것도 ‘현장 봉쇄’라는 단서까지 붙은 걸 보면, 백이면 백, 밀실 살인이었다. 나의 무대가 열렸다.

    ***

    그림자 관은 이름 그대로 거대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짙은 회색의 석조 건물은 웅장하면서도 어딘가 음침한 기운을 풍겼다. 대저택의 정문 앞에는 이미 수많은 유저들과 NPC 경비병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빗발쳤다.

    “말도 안 돼! 가레스 경이 살해당했다고?”
    “게다가 밀실 살인이라던데? 어떻게 이런 일이…!”
    “저택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도 다 안에서 걸어 잠겨 있었다고 하던데?”

    나는 경비병들의 제지를 뚫고 앞으로 나섰다. 내 게임 ID, ‘아르젠’을 본 경비병들이 잠시 수군거렸지만, 이내 길을 열어주었다. 나의 명성은 때때로 이런 식으로 힘을 발휘하곤 했다.

    저택의 안뜰에 들어서자, 한 중년의 NPC 경비대장이 이마를 짚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한숨과 절망감이 가득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나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아르젠 님, 이 어려운 사건에 직접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로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아….”
    “상황 설명을 듣고 싶군요. 가레스 경은 누구이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발견되었습니까?” 나는 그의 말을 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감상적인 대화는 시간을 지체시킬 뿐이었다.
    경비대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가레스 경은 이 지역 최고의 보석상입니다. 어젯밤, 서재에서 홀로 마지막 장부를 정리하겠다며 사람들을 모두 물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 그의 집사가 서재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어…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발견 당시의 상황은?”
    “가레스 경은 서재 한가운데 쓰러져 있었습니다. 가슴에 깊은 칼자국이 있었고… 이미 숨을 거둔 뒤였습니다. 그리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고, 모든 창문도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창살도 단단히 박혀있어 밖에서 침입할 여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설명을 되짚었다. ‘안에서 잠긴 문’, ‘닫힌 창문’, ‘외부 침입 불가’. 전형적인 밀실이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한.

    “서재로 안내해주시죠.”

    경비대장의 안내를 받아 저택 내부로 들어섰다. 복도는 고풍스러운 카펫으로 깔려 있었고, 벽에는 값비싼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모든 것이 부유함과 품격을 말해주었지만, 지금은 그저 흉흉한 살인의 흔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서재 앞에는 이미 몇 명의 유저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 있었다. 그들은 내게 눈길을 주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굳게 닫힌 서재 문은 마치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했다.

    문이 열리고,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서재 내부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벽을 가득 채운 책장, 앤티크한 가구들, 그리고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시체. 가레스 경이었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는 고통보다는 놀라움이 더 진하게 배어 있었다. 가슴에 박힌 단검은 섬뜩할 정도로 빛났다.

    나는 현장을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의 시선은 마치 레이더처럼 모든 것을 훑었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 한 장, 흐트러진 책들, 창문 틈새로 비치는 희미한 햇빛, 심지어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 하나까지도.

    “현장을 발견한 집사는 어디에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경비대장이 서재 한쪽에서 넋을 잃고 앉아있는 노인을 가리켰다. “저쪽에…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는 노인에게 다가가 짧게 물었다. “가레스 경과 마지막으로 대화한 것은 언제입니까?”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어젯밤… 늦게까지 서재에 계신다고 하셔서… 저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차를 한 잔 가져다 드렸습니다. 그때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차를 드렸을 때, 서재 문은 어떻게 되어 있었습니까?”
    “열려 있었습니다. 제가 드리고 나오면서 닫았고… 경비병이 문을 잠그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경비병이요…!” 노인이 갑자기 눈을 번뜩이며 옆에 서 있던 경비대장을 가리켰다. “아침에 저희가 문을 부술 때, 분명 안에서 잠겨 있었다고…!”

    경비대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가 부수고 들어갔을 때,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습니다. 저희는… 범인이 아직 안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서재 안에는 가레스 경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시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가레스 경은 바닥에 엎드린 채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경비병들이 조심스럽게 시신을 바로 눕혀놓은 상태였다. 가슴에 박힌 단검은 한눈에 봐도 치명적이었다. 문제는 범인이 어떻게 사라졌느냐였다.

    나는 서재의 창문을 향해 걸어갔다. 창문은 두꺼운 나무 프레임으로 되어 있었고, 안쪽에는 튼튼한 빗장이 걸려 있었다. 빗장은 녹슬지도, 파손되지도 않은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물론, 내부에서 빠져나간 흔적도 없었다. 창밖으로는 꽤 높은 절벽이 아득히 내려다보였다. 이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완벽한 밀실. 허술한 곳이 단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완벽함은 오히려 나의 흥미를 돋우었다.

    그때, 내 발밑에 무언가 걸렸다. 작은 금속 조각이었다. 나는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정교하게 세공된 나사였다. 분명 어딘가에서 떨어진 것이리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나사가 떨어질 만한 곳은 어디였을까?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천장으로 향했다. 앤티크한 문양으로 장식된 거대한 천장. 그 가운데에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샹들리에를 지탱하는 쇠사슬 중 하나가 미세하게 덜렁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육안으로는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의 예민한 눈은 그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손안의 나사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샹들리에의 덜렁거리는 쇠사슬을 번갈아 응시했다. 무언가 머릿속에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경비대장은 내 옆에서 초조하게 서 있었다. “아르젠 님, 혹시… 단서라도 찾으셨습니까?”
    나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샹들리에를 올려다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밀실… 완벽해 보이지만, 완벽한 밀실은 존재하지 않지.”

    나는 시선을 내리깔아 가레스 경의 시체를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았다. 가슴에 박힌 단검의 손잡이 부분에 미세한 흠집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은… 죽는 순간 무엇인가를 강하게 움켜쥐려 했던 듯, 굳게 쥐어져 있었다. 무언가를 놓쳤다는 듯한, 혹은 무언가를 잡으려 했던 듯한…

    내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가설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밀실 살인의 트릭은 언제나 상식을 비트는 데 있었다. 범인이 어떻게 이 완벽한 공간에서 사라졌을까? 그리고 가레스 경의 마지막 몸짓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서재의 모든 벽을 짚어보았다. 책장 뒤의 숨겨진 문? 아니, 그런 조작된 흔적은 없었다. 바닥이나 천장의 비밀 통로? 역시 그런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시선은 다시 한번 샹들리에로 향했다. 그 작은 나사. 그리고 덜렁거리는 쇠사슬.
    문득, 나는 가레스 경의 시체를 둘러싼 바닥에서 아주 희미한, 마치 액체가 마른 듯한 얼룩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피의 얼룩과는 달랐다. 투명에 가까운,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그것.

    나는 무릎을 굽혀 얼룩을 자세히 살폈다. 그것은 액체가 스며들었다 마른 흔적이었다. 만약 이 얼룩이 살인과 관련이 있다면?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경비대장과 집사는 여전히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범인은 이 서재를 나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입을 열었다.
    경비대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하지만… 범인은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아니, 범인은 이 안에 있었고… 여전히 이 안에 있습니다.”

    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샹들리에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짝 흐트러진, 어딘가에 걸려 있는 듯한 샹들리에의 쇠사슬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것은 밀실 살인이 아니었습니다. 혹은… 밀실 살인이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방식의 밀실 살인은 아니었죠.”
    내 말에 모두의 시선이 혼란스럽게 샹들리에로 향했다. 아무도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확신했다.
    범인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챕터 1. 끝.

  • 스팀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칙칙한 녹물이 흐르는 낡은 증기 파이프 사이로, 엘라라는 작은 금속 조각을 톡톡 건드리며 앞으로 나섰다. 퀴퀴한 기름 냄새와 먼지, 그리고 희미하게 풍겨오는 철 썩는 냄새가 온 폐허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 고정된 황동 고글 렌즈 너머로, 녹슬고 뒤틀린 철골들이 거대한 유령처럼 그림자를 드리웠다.

    “톱니, 주변은?”

    엘라라의 속삭임에 맞춰, 그녀의 발치에 바싹 붙어 걷던 작은 증기 동력 로봇 ‘톱니’가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톱니의 몸체는 온통 긁히고 찌그러져 있었지만, 중앙에 박힌 거대한 황동 시계추는 여전히 정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톱니는 두 개의 작은 기계 팔을 들어올려 공중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삑, 삑, 삑 하는 경고음과 함께 한쪽 팔을 폐허 속 깊은 곳으로 가리켰다.

    “젠장, 또 저놈들인가.”

    엘라라는 낡은 가죽 재킷 속에서 자동 태엽식 권총을 꺼내 들었다. 방아쇠를 당기자 딸깍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부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총구에서 희미하게 증기가 새어 나왔다. 이런 폐쇄된 공간에서 총성은 피하는 게 상책이었지만, 때로는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목표는 이 거대한 고철 더미, ‘강철 심장 폐허’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다는 ‘광휘의 코일’이었다. 도시 외곽에 자리한 그들의 이동식 은신처, ‘방랑자 호’의 동력원이 완전히 맛이 가버린 지금, 코일을 찾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방랑자 호는 그들의 마지막 보루이자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었다.

    “톱니, 북동쪽 굴착 통로를 확인해. 난 이쪽으로 갈게.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마.”

    톱니는 엘라라의 말에 따라 작은 바퀴를 굴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손목에 찬 작은 압력계의 수치를 확인했다. 지하로 내려갈수록 기압은 높아지고, 공기는 더욱 탁해졌다. 폐허의 공기는 늘 그랬다. 거친 숨을 내쉬며 엘라라는 좁고 비좁은 통로를 기어 들어갔다.

    갑자기, 등 뒤에서 으스스한 금속 마찰음이 들려왔다.
    크르륵… 찌이익…
    그 소리는 마치 낡은 기계가 서서히 움직임을 시작하는 듯했다. 엘라라는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고글 너머로 보이는 시야가 흔들렸다.

    “망할…”

    폐허에 서식하는 ‘고철 사냥꾼’들. 버려진 자동 기계들이 오염된 에너지로 살아 움직이며, 침입자를 발견하면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괴물들이었다. 놈들은 인간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온몸이 녹슨 철판과 증기 파이프로 이루어져 있었다.

    엘라라는 숨죽인 채 총구를 벽 너머로 겨눴다.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쿵쾅거렸다. 저들은 수적으로 우세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한 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고철 사냥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최소 셋. 거칠게 숨을 쉬는 소리가 들릴 듯했다. 그들의 관절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크르르르…”

    가장 앞선 놈이 고개를 비틀어 엘라라가 숨어있는 곳을 향해 느리게 시선을 돌렸다. 놈의 철제 손가락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소름 끼치게 울렸다. 놈의 몸통에 박힌 거대한 증기 보일러에서는 주기적으로 거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이대로는 안 된다.

    엘라라는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머리 위에는 오래된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바닥에는 굴러다니는 고철 조각들이 가득했다. 그녀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작은 금속 구슬 몇 개를 꺼냈다. ‘소음 유인탄’. 그녀가 직접 개조한 간이 폭발물이었다.
    하나를 핀으로 조심스럽게 건드린 뒤, 멀리 떨어진 반대편 통로로 던졌다.

    탁! 팅그르르… 콰앙!

    작은 폭발음이 폐허 전체에 울려 퍼졌다. 고철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순간 멈칫했다. 그리고는 일제히 폭발음이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들의 거친 발걸음 소리가 폭발음이 난 곳으로 향했다.

    엘라라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 고철 사냥꾼들의 반대 방향, 즉 폐허의 가장 깊은 곳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폐가 타오르는 듯 아팠지만, 멈출 수 없었다.

    끼이이익!

    그녀의 등 뒤에서 놈들이 추격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다른 놈보다 빨랐다. 팔다리가 기형적으로 길고, 등에 증기 추진기가 달려있었다. ‘추격자’였다.

    “젠장, 이런 빌어먹을…”

    엘라라는 속도를 냈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광휘의 코일’이 있을 법한 곳을 향했다. 눈앞에 거대한 금속 문이 보였다. 낡았지만 여전히 견고해 보이는 문이었다. 문에는 증기 동력으로 작동하는 복잡한 잠금장치가 달려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만능 해제 도구를 꺼냈다. 작은 렌치와 스프링, 기어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장치였다. 능숙하게 잠금장치에 도구를 밀어 넣고 돌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추격자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금속이 바닥을 긁는 소리, 거친 증기 분출음이 그녀의 목덜미를 스치는 듯했다.

    딸깍! 딸깍!

    수많은 기어가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묵직한 ‘철컥!’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엘라라는 문을 힘껏 밀었다. 녹슨 경첩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문 뒤편의 어둠 속에서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그녀는 안으로 몸을 던졌다. 거의 동시에 추격자의 거대한 금속 팔이 문이 닫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엘라라는 몸을 날려 문을 닫으려 했지만, 추격자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금속 팔이 문틈을 점점 더 벌렸다.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때였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작은 광선이 번뜩였다. 삑! 삑! 삑!
    톱니였다! 톱니가 고철 사냥꾼들의 발을 묶고 있었다. 톱니의 작은 몸체에 달린 레이저 포가 고철 사냥꾼들의 취약 지점인 관절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었다.

    그 틈에 엘라라는 마지막 힘을 짜내 문을 닫았다. 쾅!
    강철 문이 닫히며 묵직한 진동이 폐허를 울렸다.
    엘라라는 문에 등을 기대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에는 아직도 총이 쥐어져 있었다.

    “톱니… 너 이 자식… 고마워.”

    잠시 후, 톱니가 문 틈으로 작은 몸을 비집고 들어왔다. 온몸이 긁히고 한쪽 팔이 너덜거렸다. 하지만 톱니는 여전히 삑삑거리며 엘라라의 다리를 비볐다.

    엘라라는 톱니의 망가진 팔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폐허의 핵이었다. 거대한 기계 장치들이 엉켜 있었고, 천장에서는 녹슨 파이프들이 거대한 혈관처럼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 푸르스름한 빛을 희미하게 내뿜는 거대한 코일이 보였다.
    광휘의 코일.

    “찾았다… 톱니, 드디어 찾았어!”

    엘라라의 목소리에 희미한 환희가 서렸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코일 주변의 바닥이 균열된 것을 발견했다.
    코일의 아랫부분에서 섬뜩한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균열 아래, 끝없는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틈새에서 알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르르르르… 콰아앙…!

    그것은 방금까지 그들을 쫓던 고철 사냥꾼들의 소리가 아니었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지축을 뒤흔드는 진동이었다.
    엘라라의 고글 렌즈 너머로, 그녀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겨우 고철 사냥꾼들로부터 도망쳤을 뿐이었다.
    이 폐허는, 아직 그들의 존재를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더 깊은 어둠을 품고 있었다.

  • 오컬트 호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당신은 천재적인 한국인 작가이며, 저의 필력이 이 이야기의 심연까지 독자들을 끌어들일 것이라 확신합니다.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제1화: 심연의 속삭임**

    **[장면 시작]**

    **#1. 미지의 입구, 어둠 속으로의 낙하**

    * **배경:** 폭풍우가 지나간 뒤, 산비탈이 무너져 내린 곳에 거대한 싱크홀이 뻥 뚫려 있다. 입구 주변은 험준한 바위와 흙더미로 어지럽고, 그 틈새로 음침한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 팀원들은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싱크홀 가장자리에 모여 서 있다. 희미한 랜턴 불빛이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 **효과음:** 휘이잉- (바람 소리), 쏴아아… (아직 마르지 않은 빗물 떨어지는 소리), 철컥, 철컥 (장비 부딪히는 소리)

    **지혁 (남, 30대 중반, 탐사대 리더. 무뚝뚝하지만 강인한 인상.)**
    “이게 그 ‘잊혀진 입구’라는 건가.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군.”

    **수아 (여, 20대 후반, 고고학자. 차분하고 지적인 분위기. 살짝 긴장한 표정.)**
    “고문서에는 ‘세상의 밑바닥으로 통하는 길목이자, 영겁의 잠에 빠진 존재가 숨 쉬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어요. 단순한 전설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현실로 마주하니 소름 돋네요.”

    **태준 (남, 20대 후반, 장비 담당 및 드론 조작. 호기심 많고 약간 겁이 많은 편.)**
    “와… 진짜 블랙홀 같아요. 저 아래 뭐가 있을지 상상도 안 가요. 드론이라도 먼저 내려보낼까요?”

    **지혁**
    “아니, 무선 신호 방해가 심할 거야. 일단 직접 내려간다. 수아, 문헌에 다른 주의사항은 없었나?”

    **수아**
    (고서의 복사본을 펼쳐 보이며)
    “몇몇 금기들이 명시되어 있어요. ‘세 개의 눈동자가 새겨진 돌을 만지지 마라’, ‘사악한 노래를 부르는 조각상의 눈을 마주치지 마라’, 그리고… ‘심연의 속삭임에 답하지 마라’…”

    **태준**
    “심연의 속삭임이라니… 누가 농담으로 적어 놓은 거 아니에요?”

    **지혁**
    “태준, 긴장 풀지 마. 이런 곳에선 사소한 미신도 무시할 수 없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
    (안전모의 랜턴을 켜고 로프를 잡는다)
    “자, 이제 슬슬 내려갈 준비 해. 내가 먼저 내려갈 테니, 장비 확인하고 천천히 따라와. 혹시 이상한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알려.”

    * **컷:** 지혁이 싱크홀 입구 가장자리에 매달린 로프를 잡고, 발로 벽을 짚으며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 랜턴 불빛이 점점 작아진다.

    **효과음:** 휙- (로프 스치는 소리), 슈우우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소리)

    **수아**
    (작은 목소리로)
    “부디, 별일 없기를…”

    **#2. 지하 깊숙이, 섬뜩한 통로**

    * **배경:** 지혁과 태준, 수아가 좁고 축축한 통로를 걷고 있다. 통로 벽면은 거친 바위로 이루어져 있지만, 군데군데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흔적과 함께 알 수 없는 고대 문자들이 새겨져 있다. 공기는 차갑고 습하며, 오래된 흙과 암석의 냄새가 뒤섞여 있다.
    * **효과음:** 뚝, 뚝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사박, 사박 (발소리), 웅… (아주 낮게 울리는 듯한 공간의 진동)

    **지혁**
    “계속 지하로 이어지는군. 이 깊은 곳에 이런 규모의 통로를 만들었다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력을 동원했을까.”

    **수아**
    (벽면에 새겨진 문자를 살피며)
    “이건… 제가 연구하던 고대 부족의 문자와 흡사해요. 하지만 형태가 훨씬 더 기괴하고… 공격적이에요. 일반적인 숭배의 대상이 아닌, 공포의 대상을 묘사하는 듯한 느낌이 강해요.”

    * **컷:** 수아의 손가락이 벽면의 문자를 따라 움직인다. 뾰족하고 뒤틀린 형태의 문자들은 마치 울부짖는 얼굴 같기도 하다.

    **태준**
    “으악! 여기 보세요! 벽에서 뭔가 기어 나와요!”

    * **컷:** 태준이 비추는 랜턴 불빛 아래, 벽 틈새에서 거무튀튀한 촉수 같은 것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오는 모습. 그 끝에는 수많은 작은 눈들이 박혀 있는 듯하다.

    **지혁**
    (빠르게 경계하며)
    “뭐야 저건?! 곤충인가? 아니, 저렇게 생길 수가 있나?”

    **수아**
    (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
    “이끼류나 균류가 변형된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적인 건 아니에요. 빛을 싫어하고… 움직임이 기괴해요.”

    촉수들은 랜턴 불빛을 피하듯 빠르게 벽 틈새로 다시 사라진다.

    **태준**
    “으으… 기분 나빠. 저런 게 우글거리는 곳을 계속 가야 한다니…”

    **지혁**
    “멈출 순 없어. 여기까지 왔으니 끝을 봐야지. 조심해. 저런 게 전부는 아닐 거다.”

    **#3. 거대한 공동, 빛이 닿지 않는 어둠**

    * **배경:** 통로의 끝에서, 팀원들은 발을 멈춘다.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거대한 지하 공동이다. 천장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고, 바닥은 희미한 어둠 속에 잠겨 있다. 공동의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구조물이 우뚝 솟아 있는데, 그 형태가 마치 거대한 심장이나 괴물의 핵처럼 불규칙하면서도 위압적이다.
    * **효과음:** 웅… 우우우웅… (낮고 묵직한 진동), 스산한 공기의 흐름, 숨 막히는 정적.

    **태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이… 이건 대체… 뭐예요? 지구가 만들어낸 건 아니잖아요!”

    **지혁**
    (랜턴을 최대한 멀리 비춰 보지만, 빛은 어둠에 흡수될 뿐이다)
    “말도 안 돼… 이런 규모의 구조물이 지하에 존재했다고? 대체 누가… 언제 이걸 만들었단 말인가.”

    **수아**
    (몸을 떨며 구조물을 응시한다)
    “이건… 유적이 아니에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저 형태, 저 진동…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것 같아요.”

    * **컷:** 중앙 구조물의 클로즈업. 검은 표면에 희미하게 붉은색 맥박 같은 것이 뛰는 듯한 환영이 보인다. 표면은 매끄럽지 않고, 무수한 홈과 돌기들로 뒤덮여 있다.

    **지혁**
    “수아, 진정해. 흥분해서 그래. 저건 그냥 거대한 암석 구조물일 뿐이다.”

    **수아**
    “아뇨… 저 안에… 뭔가 있어요. 고문서에 언급된 ‘영겁의 잠에 빠진 존재’가 바로 저 안에 잠들어 있는 걸지도 몰라요.”

    **태준**
    (중앙 구조물을 향해 드론을 띄우려 준비한다)
    “일단 드론으로 내부를 스캔해볼게요! 혹시 모르니까… 카메라 배율 최대로…”

    **효과음:** 위이이잉- (드론 프로펠러 소리)

    하지만 드론이 공동으로 진입하려 하자마자, 거대한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휘청거린다. 드론의 카메라 화면이 지직거리며 불안정해진다.

    **태준**
    “어? 뭐야? 신호 방해가 너무 심해요! 드론이 통제 불능이에요!”

    **지혁**
    “태준! 드론 회수해! 위험해!”

    **#4. 어둠 속의 눈동자, 깨어나는 존재**

    * **배경:** 드론은 태준의 통제를 벗어나 중앙 구조물을 향해 돌진한다. 구조물에 충돌하는 순간, 엄청난 섬광과 함께 드론이 폭발한다. 그와 동시에 공동 전체를 뒤흔드는 듯한 진동이 시작되고, 거대한 구조물의 검은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한다.
    * **효과음:** 콰아아앙! (드론 폭발음), 쩌저적! 쩌저적! (거대한 균열음), 우우우웅- (점점 커지는 진동)

    **태준**
    “흐아악! 내 드론! 대체 무슨 일이…!”

    **지혁**
    “젠장! 봉인이 풀리는 건가?! 수아! 고문서에 다른 내용은 없어?!”

    **수아**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치다 넘어지고 만다)
    “봉인… 봉인이 아니라… 봉인을 깨우지 말라고 했어요! 저건… 저건 문이 아니에요! 저건… 저 안에 있는 존재의 껍질이에요!”

    갈라진 틈 사이로 시커먼 액체가 끈적하게 흘러나오며, 그 안에서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인다. 그 빛은 마치 거대한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떠오르는 듯하다.

    * **컷:** 갈라진 틈새로 보이는 거대한 푸른 눈동자 클로즈업. 동공은 수직으로 길게 찢어져 있으며, 섬뜩할 정도로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다.

    **지혁**
    “젠장! 도망쳐! 여기서 나가야 해!”

    **태준**
    “으으으윽… 다리가 움직이질 않아요…”

    거대한 눈동자가 그들을 응시하자, 공동 전체가 섬뜩한 침묵에 휩싸인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깊은 곳에서부터 알 수 없는 언어로 된 속삭임이 그들의 귀를 파고든다. 수십, 수백 개의 목소리가 겹쳐져 들리는 듯한, 끔찍하고 기괴한 소리.

    **효과음:** (낮고 끈적이며 귓가를 파고드는 속삭임.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나, 공포와 광기를 담고 있음)
    “***…깨어나라… 나를 부르는 자들이여…***”

    수아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르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눈동자는 이제 하나가 아니었다. 공동의 모든 벽면, 갈라진 틈새마다 수많은 푸른 눈동자들이 차례로 떠오르고 있었다.

    **수아**
    (몸부림치며, 눈동자들이 가득한 허공을 응시하며)
    “아니야… 안 돼… 봉인이 아니었어… 우리가… 우리가 그들을… 깨웠어…”

    **지혁**
    “수아! 정신 차려! 저건 환상이야!”

    **태준**
    (눈동자들에 홀린 듯 넋을 잃고 중얼거린다)
    “아름다워… 저 빛… 끝없이 깊은 어둠 속의… 진실…”

    **#5. 심연의 포옹, 어둠 속으로의 소멸**

    * **배경:** 공동 전체가 수많은 푸른 눈동자들로 가득 찬다. 눈동자들은 섬뜩하게 깜빡이며 공간을 압도한다. 중앙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던 검은 액체가 촉수처럼 뻗어 나와 태준을 향해 빠르게 휘감긴다.
    * **효과음:** 쉬이이이이익… (촉수 움직이는 소리), 끄으으으윽… (고통스러운 신음)

    **지혁**
    “태준! 안 돼! 거기서 떨어져!”

    지혁은 태준을 구하기 위해 달려들지만, 이미 늦었다. 검은 촉수는 태준의 몸을 완전히 휘감아 올리고,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천천히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랜턴 불빛이 마지막으로 깜빡이며 사라진다.

    **효과음:** 콰직!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푹!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듯한 침묵.

    수아는 그 광경을 보고 공포에 질려 실성한 듯 웃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허공을 향해 손을 뻗으며 중얼거린다.

    **수아**
    (비틀린 웃음소리와 함께)
    “그래… 답해야 해… 우리를 부르는 목소리에… 우리는… 이미… 그분의 일부… 였던 거야…”

    **지혁**
    (눈앞에서 동료를 잃은 충격과 공포로 얼어붙어 있다. 랜턴 불빛이 그의 떨리는 손에 의해 심하게 흔들린다.)
    “…수아? 수아!”

    이제 지혁의 뒤편에서도 검은 촉수들이 꿈틀거리며 솟아오르고 있었다. 눈동자들이 그를 응시하고, 귓가에는 섬뜩한 속삭임이 다시 들려온다.

    **효과음:** (점점 더 크고 명확해지는, 수천 개의 목소리가 합쳐진 속삭임)
    “***…환영한다, 새로운 육신이여… 우리의 오랜 배고픔을… 채워줄… 먹잇감이여…***”

    지혁은 필사적으로 로프를 찾아 뒤로 물러서려 하지만, 그의 발은 이미 끈적이는 검은 액체에 잠겨 있었다. 눈앞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눈동자들이 그를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지혁**
    (마지막으로 절규하듯이)
    “안 돼…! 젠장… 안 돼!!!”

    **#6. 암전 (블랙아웃)**

    * **배경:** 모든 빛이 사라지고, 지혁의 비명마저 어둠 속에 묻힌다. 마지막으로 들리는 것은 끈적이는 액체가 무언가를 삼키는 듯한 소리, 그리고 낮고 길게 이어지는 섬뜩한 만족감에 찬 듯한 ‘웅’ 소리뿐.
    * **효과음:** 철퍽! 철퍽! (끈적이는 액체 소리), 웅… 흐음… (깊은 곳에서 만족한 듯한 소리)

    **[장면 종료]**

    **[다음 화 예고]**
    (검은 배경에 핏빛 붉은 글씨로)
    **제2화: 그림자의 포식자**

  • 이세계 전생 (Isekai)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두운 심연은 침묵했다. 아니, 정확히는 침묵하는 듯 보였다. 거대한 원형 공간의 중앙에 선 진우는 귀를 기울였다. 미세하게, 아주 미세하게, 잊힌 문명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거대한 돔형 천장은 별빛 하나 없는 심해처럼 검었고, 벽면은 한때는 빛났을 고대 문자의 잔해로 가득했다. 그의 손에 든 마력등만이 간신히 그 모든 것을 비추고 있었다.

    “진우 씨, 괜찮아요? 너무 깊이 들어온 것 같아요.”

    뒤에서 셀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에도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푸른빛 마법 지팡이 끝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였지만, 이 거대한 공간의 어둠을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직은요.” 진우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의 눈은 벽면의 문양들을 훑고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해요. 이 모든 것이 그냥 폐허가 아니에요. 살아있는 것 같아요.”

    카일이 큼지막한 방패를 든 채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은 주변의 그림자 속을 경계하고 있었다. “살아있다니, 또 어떤 잠자는 괴물을 말하는 겁니까?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런 건 매번 적응이 안 되는군요.”

    “아뇨, 괴물이 아니에요. 이 유적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의지를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진우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중앙으로 옮겼다. 그곳에는 거대한 원형 제단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단은 검은 현무암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표면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기하학적 무늬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조심해요, 진우 씨.” 셀리나가 경고했다. “저런 제단은 보통 끔찍한 함정이나 봉인된 재앙을 위한 장치인 경우가 많아요.”

    진우는 개의치 않았다. 그의 눈은 제단 중앙에 파인 움푹한 홈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끼워 넣어야 할 것 같은 모양새였다.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표면을 쓸어보자,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차가움 속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순간, 벽면을 가득 채웠던 고대 문양들이 푸른빛으로 깜빡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마치 멈춰있던 회로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 잠겨있던 모든 문양들이 일제히 깨어났다.

    “이게 무슨…!” 카일이 놀라 외쳤다. 그의 방패가 저절로 앞으로 향했다.

    셀리나는 급히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마력 활성화! 비상 보호막!”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푸른 보호막이 솟아올라 일행을 감쌌다.

    벽면에 새겨진 문양들은 단순히 빛나는 것을 넘어, 그 형상을 바꾸기 시작했다. 일렁이는 빛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입체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그것은 고대의 역사를 담은 거대한 벽화였다. 한때 번성했던 문명이 하늘을 향해 탑을 쌓고, 별의 힘을 다루는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하지만 곧이어 하늘이 갈라지고, 거대한 운석이 떨어지는 듯한 파멸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저건… 설마 저거에요?” 셀리나가 숨을 들이켰다.

    진우의 시선이 고정된 곳은, 파멸 이후의 벽화였다. 폐허가 된 도시,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 거대한 지하 통로를 개척하는 알 수 없는 존재들의 모습. 그들은 마치 이 거대한 유적을 건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지하 통로의 끝에는, 방금 진우가 만졌던 제단과 똑같은 형태의 장치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제단 위에는, 무언가 반짝이는 수정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저게 이 유적의 핵심 장치였군요.” 진우는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걸 파괴한 게 아닌, 봉인한 거였어.”

    콰아앙!

    갑자기 거대한 진동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천장의 일부에서 먼지가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벽면의 빛나는 문양들이 더욱 격렬하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단 중앙의 움푹한 홈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함정이야! 진우 씨, 물러나요!” 카일이 소리쳤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섬광이 걷히자, 제단 위에 기묘한 형태의 물체가 떠올랐다. 그것은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섞인 불규칙한 결정체였다. 마치 수억 년 동안 땅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난 심장처럼, 불길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미약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벽면의 벽화에서 그려졌던 알 수 없는 존재들이, 마치 그림자처럼 벽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형태는 인간과 비슷했지만, 온몸이 고대의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고 눈은 붉은 섬광을 뿜어냈다. 셋. 모두 세 마리의 그림자 존재들이 거대한 방패와 날카로운 창을 들고 진우 일행을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고대 수호자!” 셀리나가 경악했다. “이 유적의 파수꾼이에요! 마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고 들었어요!”

    “빌어먹을! 그럼 어떻게 막아요!” 카일이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포효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진우의 시선은 그림자 수호자들을 잠시 스쳤다가, 다시 제단 위로 떠오른 불길한 결정체로 향했다. 결정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수호자들이 내뿜는 기운이 미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 보였다.

    “이 결정체가 본체에요! 저걸 파괴해야 해요!” 진우가 외쳤다. “카일 씨, 수호자들을 최대한 묶어주세요! 셀리나 씨, 저 결정체를 집중 공격하세요! 가장 강한 마법으로!”

    “제 말은 안 통할 거라고요!” 셀리나가 소리쳤지만, 이미 그녀의 지팡이는 붉은 화염 마법을 응축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 결정체는 아직 완전히 활성화된 게 아니에요! 벽화에 보면, 저 결정체를 봉인할 때 특정한 주파수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어요!” 진우는 벽화의 가장자리에 그려진 작은 문양들을 빠르게 훑었다. “맞아! 저건 단순한 장치가 아니야, 저건… 일종의 ‘메모리 결정’ 같은 거라고!”

    콰아앙!

    카일이 첫 번째 그림자 수호자와 충돌했다. 금속성 소리와 함께 강렬한 충격파가 울렸다. 카일의 방패가 겨우 수호자의 창격을 막아냈지만, 그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수호자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너무 강해! 이걸 어떻게 전부 막아요!” 카일이 이를 악물었다.

    셀리나가 응축된 화염구를 날렸다. 맹렬한 불덩이가 제단 위의 결정체를 향해 날아갔지만, 결정체 주변에 알 수 없는 보호막이 형성되며 화염구를 튕겨냈다.

    “보호막이 있어요! 제 마법이 먹히지 않아요!” 셀리나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진우는 벽화의 문양들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서 고대의 언어가 빠르게 재조합되고 있었다. ‘기억의 조각’, ‘존재의 핵’, ‘순환의 고리’…

    “아니야! 단순한 보호막이 아니에요!” 진우가 소리쳤다. “저건… 저건 공명이에요! 수호자들의 존재가 저 결정체를 강화하고 있어! 수호자들이 사라지거나, 무력화되지 않으면 저 결정체는 공격할 수 없어요!”

    “그럼 수호자를 먼저 처리해야 한다는 겁니까?” 카일이 두 번째 수호자의 공격을 간신히 피하며 물었다. 그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아뇨! 그렇게 되면 너무 늦어요!” 진우는 다시 제단을 응시했다. ‘기억의 조각’… ‘봉인된 존재’… 그의 눈이 벽화의 가장자리, 파멸의 장면 바로 옆에 그려진 작고 희미한 문양에 닿았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파동, 혹은 음파를 형상화한 듯한 문양이었다.

    “셀리나 씨! 저 결정체는 물리적인 파괴가 아니라, 내부의 파동을 교란해야 해요! 저건 어떤 주파수에 반응하는 결정체야!” 진우가 외쳤다. “저 문양을 보세요! 고대 문명의 ‘음파 마법’이었어! 가장 강력한 마법이 아니라, 가장 정밀한 마법이 필요해요!”

    셀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진우가 가리킨 문양을 보고는 잠시 혼란스러워했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빠르게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팡이 끝에서 화염이나 번개 같은 파괴적인 에너지 대신, 투명하고 미세한 파동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카일은 세 명의 수호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의 방패는 이미 여러 번 금이 갔고, 그의 팔뚝에는 깊은 상처가 생겼다. “빨리! 셀리나! 더는 못 버텨!”

    “조금만 더요! 거의 다 됐어요!” 셀리나의 얼굴은 땀범벅이 되었지만, 그녀의 눈은 고도로 집중되어 있었다. 미세한 파동은 점점 더 복잡한 형태를 띠기 시작했고, 이윽고 공명음처럼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가 공간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마치 수백 개의 수정 잔이 동시에 깨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영혼을 위로하는 자장가처럼 묘한 여운을 남겼다. 투명한 파동이 제단 위의 검붉은 결정체에 닿자, 결정체는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불규칙하게 깜빡이던 빛이 점차 안정적인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키이이잉…!

    결정체에서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빛은 강렬했지만, 더 이상 불길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동시에 세 마리의 그림자 수호자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산산조각 나며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자마자, 카일은 숨을 헐떡이며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살았군요….”

    진우는 셀리나에게 다가갔다. “잘했어요, 셀리나 씨. 완벽했어요.”

    셀리나는 마법을 해제하자마자 휘청거렸다. 진우가 그녀를 부축했다. “이런 마법은… 처음이에요. 감각만으로 파동을 조절하는 건… 제 마력의 절반을 소모했어요.”

    제단 위의 결정체는 이제 고요하게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처음의 불길한 기운은 사라지고, 마치 밤하늘의 별을 응축해 놓은 듯한 영롱한 아름다움만이 남아 있었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결정체에 손을 뻗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손끝을 통해, 수억 년의 역사가 흐르는 듯한 아득한 감각이 밀려들어왔다.

    동시에, 제단 중앙의 움푹한 홈이 스르륵 열렸다. 그 안에는 어둠 속에 잠겨 있던 또 다른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단순한 통로가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움직이는 듯한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저 안에는… 또 뭐가 있는 거죠?” 셀리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우는 결정체를 움켜쥔 채, 열린 홈 안을 응시했다. 벽면에 그려졌던 벽화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다. 폐허 속에서 지하 통로를 개척하던 존재들. 그리고 그들이 만들고 있던 거대한, 알 수 없는 ‘장치’.

    “이건 시작일 뿐이에요.” 진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위험을 즐기는 듯한, 혹은 거대한 진실 앞에서 환희하는 듯한 미소였다. “이 아래에… 이 유적의 진짜 심장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아요. 저 기억 결정은… 그 심장으로 가는 열쇠였던 거구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철컥거리는 금속음과 함께 거대한 기계 장치가 움직이는 듯한 진동이 다시금 공간을 뒤흔들었다. 그 진동은 단순한 기계음이 아니었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살아있는 울림이었다.

    “젠장, 설마 또 다른 수호자가 있는 건 아니겠죠?” 카일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아뇨.” 진우는 낮게 읊조렸다. 그의 시선은 이미 어둠 속 저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저건… 수호자가 아니에요. 저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거대한 붉은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그 빛 사이로, 이 거대한 공간마저 압도할 듯한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대의 유적이 품고 있던 진짜 ‘심장’이 깨어나고 있었다.

    “저건… 고대의 재앙 그 자체에요.” 셀리나의 목소리는 공포로 떨렸다.

    진우는 결정체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길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유적은 단순한 폐허가 아니었다. 인류가 잊었던, 거대한 존재가 잠들어 있던 봉인 그 자체였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봉인을 풀어버린 것이다.

    진우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심장도 덩달아 거대한 그림자의 움직임에 맞춰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번 모험은,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 가상현실 게임 (VRMMO)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작품명: 잿빛 봉기 (Ash-Grey Uprising)**
    **에피소드: 핏빛 서약**

    [장면 전환: 어둠이 짙게 깔린 ‘카란 제국’의 변경 지역. 울부짖는 바람 소리만이 황량한 대지를 휩쓸고 있다. 폐허가 된 옛 광산 마을, 그 깊숙한 지하 은신처.]

    [1컷: 촛불 하나가 희미하게 타오르는 좁은 공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앙상하게 마른 손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모습. 화면은 그들의 배고픔과 절망을 보여주듯 어둡고 칙칙하다.]

    [2컷: 강율의 얼굴 클로즈업. 거친 수염과 찢어진 옷, 하지만 그의 눈동자만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린다. 그의 앞에 놓인 낡은 지도에는 제국의 ‘제17 곡물 창고’ 위치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강율: (낮고 단호한 목소리)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사흘. 단 사흘치 식량밖에 남지 않았어.”

    [3컷: 강율의 말을 듣는 은하. 날렵하고 예리한 인상이다. 그녀의 손은 활시위를 당기듯 늘 무언가를 잡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 (차가운 목소리) “제국 놈들은 곡창고를 요새보다 더 철저하게 지키고 있어. 게다가 ‘칼날 요새’ 바로 옆이잖아. 미친 짓이야.”

    [4컷: 두칠의 굵고 투박한 손이 벽에 기댄 채 묵묵히 강율을 바라본다. 그의 어깨에는 낡은 철퇴가 걸려 있다. 그는 배고픔에 헐떡이는 어린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두칠: (묵직한 한숨) “미친 짓이라도 해야지… 저 아이들 얼굴 좀 봐, 은하. 벌써 뼈밖에 안 남았어. 우리만이라도 싸워야 해.”

    [5컷: 어린아이 하나가 엄마의 품에 안겨 끙끙 앓는 모습. 그들의 얼굴에는 영양실조로 인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6컷: 강율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모두를 둘러본다. 그의 시선은 절망에 잠긴 사람들의 눈과 마주친다.]

    강율: “알아. 나도 알아,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제국 놈들이 진창에 처박은 우리의 목숨을, 우리가 직접 꺼내야 해.”

    [7컷: 강율이 지도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제17 곡물 창고’ 주변을 확대하여 보여준다.]

    강율: “정찰 결과, 창고 동쪽 외벽에 균열이 생겼어. 매일 밤 순찰병들이 두 시간마다 지나가지만, 그 사이에 10분 정도의 빈틈이 있어.”

    은하: “10분? 그걸로 뭘 해? 곡창고 문은 철벽이야.”

    강율: “문을 부술 필요는 없어. 우리가 필요한 건 문이 아니라, 제국의 탐욕을 증명할 ‘무언가’와 당장 배를 채울 ‘곡식’이니까.”

    [장면 전환: 밤하늘 아래, 제17 곡물 창고의 거대한 실루엣이 달빛을 받아 검게 우뚝 서 있다. 높은 벽과 감시탑, 촘촘하게 배치된 제국 병사들의 순찰로.]

    [8컷: 강율과 은하, 두칠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창고를 주시한다. 그들의 모습은 그림자 그 자체다.]

    은하: (속삭이는 목소리) “북쪽 감시탑 병사, 교대 시간 5분 전. 동쪽 순찰병, 방금 지나갔어. 이제부터 7분 40초.”

    [9컷: 강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손짓에 따라 두칠이 무거운 배낭을 어깨에 고쳐 맨다.]

    두칠: “옛날에 내가 저기서 일했었지. 곡식 운반하던 놈들이 순찰병보다 힘이 더 좋았는데, 젠장.”

    강율: “좋은 기억은 아니겠지만, 오늘의 작전에는 도움이 될 거야. 두칠, 동쪽 벽으로 접근해.”

    [10컷: 두칠이 거대한 몸을 숙여 벽 그림자처럼 이동한다. 그의 발걸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다. [스윽, 스윽]]

    [11컷: 은하가 작은 돌멩이를 던진다. [탁!]. 돌멩이는 창고 외곽에 있는 다른 방향의 흙바닥에 떨어진다.]

    제국 병사 1: (짜증 섞인 목소리) “뭐야? 쥐새끼들인가?”

    제국 병사 2: “신경 쓰지 마. 바람 소리겠지.”

    [12컷: 병사들의 시선이 돌멩이가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사이, 강율이 재빨리 은하에게 수신호를 보낸다. 은하가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긴다. [쉬익-]]

    [13컷: 날카로운 화살이 감시탑 병사의 목에 정확히 박힌다. [푹!] 병사는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다. [털썩!]]

    [14컷: 강율과 은하가 동쪽 벽 균열 부분으로 접근한다. 두칠이 이미 균열 사이로 조심스럽게 안을 살피고 있다.]

    두칠: (낮은 목소리) “안은 조용해. 창고지기들이 야간 점검을 잘 안 했었거든. 내가 있을 때도 그랬어.”

    강율: “좋아. 은하, 위를 맡아. 두칠, 나와 함께 들어가자.”

    [장면 전환: 창고 내부. 어둠 속에 거대한 곡물 자루들이 산처럼 쌓여 있다. 곰팡이 냄새와 묵직한 곡식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른다.]

    [15컷: 강율과 두칠이 조심스럽게 내부로 들어선다. 먼지 쌓인 통로를 따라 걷는 두 사람. [사락, 사락] 발밑에서 쥐들이 도망치는 소리가 들린다.]

    두칠: “여기가 제국 놈들이 굶주린 백성들을 위해 보관한다는 곡물입니까? 내가 보던 곡식보다 훨씬 더 좋은데요. 윤기도 흐르고, 쌀알도 꽉 차 있고.”

    강율: “그럼. 이 곡식은 애초에 우리 몫이 아니었으니까. 제국 고위 관리들과 귀족들의 몫, 그리고 병사들의 군량미겠지.”

    [16컷: 강율의 눈에 익숙지 않은 작은 창고 문이 들어온다. ‘군수품 보관실’이라고 적힌 낡은 팻말. 옆에는 봉인된 자물쇠가 걸려 있다.]

    강율: “이건 뭐지? 예전엔 없던 곳인데.”

    [17컷: 강율이 자물쇠를 만져본다. [철컥, 철컥]. 낡아 보이지만 튼튼하게 잠겨 있다.]

    두칠: “내가 옛날에 들었어. 여긴 제국 놈들이 뭘 숨기는 곳이라고. 곡식보다 더 귀한 걸 보관한다던데.”

    [18컷: 강율의 눈이 번뜩인다. 직감적으로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은 예감. 그는 주머니에서 가느다란 철사를 꺼낸다.]

    강율: “시간이 없지만, 이건 봐야겠어.”

    [19컷: 강율의 손이 자물쇠 위에서 민첩하게 움직인다. [딸깍!] 낡은 자물쇠가 힘없이 열린다.]

    [20컷: 문이 열리자마자 퀘퀘한 먼지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가 흘러나온다. 안쪽에는 낡은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다. 강율이 상자 하나를 열자, 수많은 문서뭉치와 지도가 쏟아져 나온다.]

    [21컷: 강율이 문서 하나를 집어 든다. 그의 눈이 글자를 훑어 내려가는 순간,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다. ‘제국 확장 계획’, ‘제7광산 자원 징발령’, 그리고… ‘이민족 강제 이주 및 징병 계획’.]

    강율: (낮은 신음) “이런… 젠장.”

    두칠: “뭐야, 강율? 무슨 일이야?”

    [22컷: 강율이 문서를 두칠에게 건넨다. 두칠의 얼굴 역시 경악으로 물든다.]

    두칠: “이… 이건…! 우리 마을 사람들이 또 끌려간다고? 그것도 광산으로?”

    [23컷: [콰앙!] 갑자기 멀리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한 경고음이 울린다. [삐이이이익-!] 제국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제국 병사 3: (밖에서 소리치는 목소리) “누구냐! 침입자다! 모두 잡아라!”

    은하: (무전기로 다급하게) “강율! 들켰어! 서둘러! 동문 쪽으로 병력 집결 중이야!”

    [24컷: 강율이 굳은 얼굴로 문서를 품에 넣는다. 그의 눈은 분노와 결단으로 이글거린다.]

    강율: “두칠! 곡식 자루부터!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저놈들 손에 놀아나게 둘 순 없어!”

    두칠: “알겠습니다!”

    [장면 전환: 곡물 창고 중앙 통로. 수십 명의 제국 병사들이 검을 뽑아 들고 진입하고 있다. 그들의 갑옷은 서늘한 금속음을 낸다.]

    [25컷: 강율이 빠르게 달려가 곡식 자루 더미 사이에 숨겨둔 폭약을 꺼낸다. [쉬이익, 쉬이익] 화약 타는 소리가 들린다.]

    강율: “은하! 서쪽 벽 통로를 열어줘!”

    은하: (멀리서) “알았어! 하지만 오래는 못 버텨!”

    [26컷: 두칠이 거대한 곡식 자루 두 개를 양손에 들고 미친 듯이 달려 나간다. 그의 뒤로 제국 병사들이 쫓아온다.]

    제국 병사 4: “저놈들을 잡아라! 곡식은 한 톨도 내줄 수 없다!”

    [27컷: 강율이 폭약에 불을 붙인다. [치이익-] 짧은 심지가 타들어 가는 모습. 그의 얼굴에 비장한 결의가 스쳐 지나간다.]

    강율: “이 곡식은 빼앗긴 게 아니라, 우리가 되찾아 가는 거다! 그리고 너희는…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28컷: [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곡창고 동쪽 벽이 무너져 내린다. 거대한 곡식 자루들이 쏟아져 나오며 병사들을 덮친다. [우르르르-]]

    [29컷: 혼란 속에서 강율이 무사히 탈출하는 모습. 은하가 이미 서쪽 통로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녀의 활은 아직 따뜻하다.]

    은하: “빨리!”

    [30컷: 강율과 은하가 서쪽 통로를 통해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두칠은 이미 곡식 자루를 짊어진 채 저 멀리 달리고 있다.]

    두칠: (헐떡이며) “이… 이걸로… 버틸 수 있겠지…?”

    강율: (뒤를 돌아보며) “그래, 버텨야 해. 그리고… 우리가 이 문서를 들고 왔으니, 더 많은 걸 알아내야 해.”

    [31컷: 무너진 곡물 창고와 그 위로 떠오르는 핏빛 새벽. 불길과 먼지가 뒤섞인 폐허 속에서 제국 병사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강율의 손에는 구겨진 문서가 단단히 쥐여 있다.]

    강율: (독백) ‘제국 놈들은 우리가 굶주려 죽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움직일 차례다.’

    [32컷: 강율, 은하, 두칠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황량한 대지를 달린다. 그들의 등 뒤로 붉게 타오르는 불길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들의 어두운 실루엣 위로 떠오르는 새벽노을은 핏빛처럼 섬뜩하고도 희망적인 빛을 발한다.]

    [에피소드 종료]

  • 다크 판타지 독립적인 단편 소설

    은빛 탑 학원의 첨탑은 언제나 하늘을 찔렀다. 맑은 날이면 마력의 은은한 광휘를 머금고 빛났고, 흐린 날에는 구름 속에 잠겨 신비로운 실루엣을 자랑했다. 그 아름다움 아래, 카이와 레나는 마법의 심연을 탐험하는 어린 마법사였다. 하지만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빛이 닿지 않는 은밀한 심연이었다.

    “이번 주에만 벌써 세 번째야.”

    레나가 중얼거렸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마법 도서관의 열람 기록지가 들려 있었다. 카이의 시선은 텅 빈, 하지만 마력이 잔뜩 서린 강당 구석에 박혀 있었다.

    “사라진 이들의 이름만 늘어나는군. 저번 달에는 루카스가, 지난주에는 엘리나 선배가…”

    카이는 엘리나를 기억했다. 그녀는 늘 기이하고 난해한 마법에 매달리는, 천재적이지만 어딘가 불안정한 마법사였다. 며칠 전, 그녀가 고급 소환 마법 실험 중 실종되었다는 소문이 퍼졌다. 학원 측은 ‘마력 폭주로 인한 차원 이동’이라는 모호한 공식 발표를 했지만, 카이의 직감은 다른 것을 속삭였다.

    “차원 이동? 웃기지 마. 엘리나 선배는 그런 실수를 할 사람이 아니야.” 레나가 기록지를 탁 소리 나게 덮었다. “게다가 사라진 이들은 하나같이, 학원의 마력 흐름에 유난히 민감하거나, 혹은 너무나 특출난 재능을 가졌던 이들이야.”

    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학원 전체를 지탱하는 거대한 마력의 흐름은 늘 존재했지만, 요즘 들어 미묘한 불협화음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기계가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며 내는 낮은 굉음처럼, 불안정한 진동이 그의 마력 감각을 자극했다.

    “그럼, 학원이 그들을 제거했다는 말인가?” 카이가 묻자 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제거가 아니라… 활용이라고 봐야 할지도 모르지.”

    그녀는 책장의 구석을 짚었다. “내가 찾아낸 오래된 학원 설계도에는, 현재의 마력 공급원 외에 ‘지하 안정화 구역’이라는 곳이 존재해. 하지만 지금 지도에는 그 어떤 기록도 없어.”

    “지하 안정화 구역…?” 카이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은빛 탑 학원의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비밀스러운 곳으로 알려진 ‘기원 마법의 회랑’을 떠올렸다. 그곳은 학원 건립 초기의 마법 기록들과 유물들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특정 교수와 상급 학생들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가장 깊은 곳에는 언제나 강력한 마력 장벽이 쳐져 있었다.

    “어쩌면, 그곳에 답이 있을지도 몰라.” 카이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막 피어난 결의가 서려 있었다.

    그날 밤, 카이와 레나는 기원 마법의 회랑으로 잠입했다. 낡은 복도에는 시간이 빚어낸 먼지가 희미한 마법 등불 아래 반짝였다. 서늘한 공기가 피부를 스쳤고, 어디선가 불분명한 마력의 흐름이 맥동했다.

    “여기는… 정말 아무도 안 오는 곳인가 봐.” 레나가 속삭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탐지 마법구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카이는 강력한 마력 장벽이 드리워진 회랑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했다. 그 장벽은 단순한 봉인이 아니었다.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기묘한 파동을 내뿜고 있었다. 카이는 손을 뻗어 장벽에 닿았다. 차가운 기운과 함께, 낯선 마력의 잔류가 손끝을 타고 흘렀다. 슬픔과 절규가 뒤섞인, 잊혀진 존재들의 흔적이었다.

    “젠장, 뚫을 수가 없어.” 카이가 말했다. “이건 우리 수준의 마법으로는….”

    그때, 레나가 바닥의 오래된 룬 문양을 발견했다. “카이, 이리 와봐. 이건… 봉인 마법이 아니야. 일종의 ‘수확’ 문양이야. 이 문양은, 안쪽에 있는 무언가를 바깥으로 ‘뽑아내는’ 역할을 해.”

    그녀는 문양의 일부를 해독하려 애썼다. “여기에… ‘생명 에너지’와 ‘마법 정수’라는 단어가 반복돼.”

    수확. 생명 에너지. 마법 정수. 섬뜩한 단어들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이봐, 저기 봐.” 카이가 장벽 옆의 벽돌 중 하나를 가리켰다. 다른 벽돌과는 달리 미묘하게 마력이 약했다. 카이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에서 마력을 집중시켰고, 작은 충격파를 발사했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벽돌 하나가 안쪽으로 밀려 들어갔다.

    그 뒤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함께, 미약한 마력의 잔향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장벽 너머에서 느껴졌던 것과 똑같은, 슬픔과 절규의 마력이었다.

    “이게…” 레나가 숨을 들이켰다.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딛자, 좁고 구불구불한 통로가 나타났다. 통로는 완만하게 아래로 이어져 있었고, 이따금 벽에 새겨진 낡은 룬 문양들이 희미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축축한 공기가 피부에 닿았고, 어딘가에서 불분명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통로가 끝나고, 거대한 지하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굴의 중앙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장치가 자리 잡고 있었다. 금속과 크리스탈, 그리고 정체 모를 유기체 조직이 뒤섞여 만들어진 그 장치는, 마치 살아있는 괴물처럼 규칙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뭐야?” 카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장치의 중심부에는 수많은 투명한 원통들이 수직으로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원통 안에는… 인간의 형태를 한 무언가들이 부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발가벗겨진 채,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었다. 그들의 피부는 창백했고, 몸에서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뿜어져 나와 장치 전체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력, 순수한 마법 정수였다.

    카이의 시선이 한 원통에 고정되었다. 그곳에 부유하는 여인은 분명 엘리나 선배였다. 그녀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고, 입은 열려 있었지만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은 장치를 따라 흐르며 지하 동굴 전체를 미묘한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말도 안 돼…!” 레나가 경악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때, 동굴 깊은 곳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차분하고도 위엄 있는 발소리였다. 카이와 레나는 황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탑 학원의 학장, 벨라트릭스였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 고고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거대한 장치 앞에 멈춰 서서, 그 안의 존재들을 마치 보물처럼 응시했다.

    “아직 안정화가 덜 된 모양이군.” 벨라트릭스 학장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온하여, 이 끔찍한 현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엘리나는 재능은 뛰어났지만, 그릇이 너무 작았다. 감당하지 못할 마력을 억지로 밀어 넣었으니, 몸이 버틸 리가 있나. 하지만, 그 남은 잔재는 훌륭한 재료가 되어줄 테지.”

    그녀는 장치의 한 부분을 쓰다듬었다. “은빛 탑 학원의 번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너희 같은 어린 마법사들이 안전하게 마법을 배울 수 있는 것도, 이 심연의 희생 덕분이지. 실패한 자들의 절규와 생명을 연료 삼아, 학원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카이의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들의 마법, 그들이 배우고 익히는 모든 것들이 이 지하 감옥의 비명과 고통 위에 세워져 있었다는 사실에 온몸이 전율했다.

    “벨라트릭스… 학장님…!”

    카이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은 너무나도 작았지만, 고요한 지하 동굴에서는 메아리처럼 울렸다. 벨라트릭스 학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은 차갑고 깊은 호수와 같았다.

    “거기 있었군, 카이. 그리고 레나.”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호기심이 너무 지나치면, 이렇게 위험한 진실을 보게 되지.”

    그녀의 손에서 푸른 마력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걱정 마라. 너희의 재능은 아깝지. 학원은 너희를,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테니.”

    카이의 머릿속에 공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이제 장치 속의 엘리나 선배처럼 될 운명이었다. 희생되고, 활용되고, 결국에는 학원의 마력 공급원이 될 존재들.

    “도망쳐, 카이!” 레나가 소리쳤다. 그녀는 온몸의 마력을 끌어모아 벨라트릭스 학장에게 광범위한 마법 폭풍을 날렸다.

    폭풍은 벨라트릭스 학장의 주변에서 산산조각 났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카이는 레나의 손을 잡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벨라트릭스 학장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 심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카이는 미친 듯이 달렸다. 지하 통로를 거슬러 오르고, 낡은 벽돌 틈새를 기어 나왔다. 레나의 손은 여전히 그의 손에 꽉 잡혀 있었다. 그들은 기원 마법의 회랑을 벗어나, 학원의 익숙한 복도로 도망쳤다.

    어둠 속에서 빠져나온 카이와 레나는 숨을 헐떡이며 학원 뒤편 숲으로 달아났다. 은빛 탑은 여전히 밤하늘 아래 우뚝 솟아 있었고, 그 꼭대기에서는 변함없이 마력의 광휘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우리… 우리 뭘 본 거야…?” 레나의 목소리는 극도의 충격과 공포로 갈라져 있었다.

    카이는 숲의 차가운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들었다. 은빛 탑 학원. 마법사들의 꿈이 자라는 곳. 그곳의 마력이 이제는 그에게 소름 끼치는 살덩어리처럼 느껴졌다. 그가 지금껏 배운 모든 마법이, 이 지하의 비명 위에서 피어난 것이었다.

    “우리는…” 카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눈에 비친 은빛 탑은 더 이상 찬란한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먹이 사슬의 최상단에 앉아, 아래의 희생자들을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괴물의 이빨처럼 보였다.

    그들은 진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 진실은 너무나도 거대하고 끔찍하여, 그들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심연의 비명은 영원히 은빛 탑의 마력을 지탱할 것이고, 그들의 마법은 영원히 그 희생 위에 세워질 것이다. 카이와 레나는 이제 그 저주받은 진실을 짊어진 채, 스스로도 심연의 일부가 되어버린 존재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은빛 탑의 그림자는 그들의 영혼까지 집어삼키고 있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깊었고, 아파트 23층 지후의 거실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아니, 침묵이어야만 했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 냉장고의 미약한 진동음, 창밖으로 멀리 들려오는 도시의 숨통 같은 소음까지, 모든 것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귀를 파고들었다. 며칠 전부터 시작된 기이한 현상들은 지후의 신경을 실처럼 가늘게 찢어 놓았다.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았지만, 뇌리에는 어제 저녁 컵이 혼자 떨어져 깨졌던 잔상, 그저께 새벽 현관문이 삐걱이며 열렸던 끔찍한 기억들이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착각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보려 애썼지만, 이미 심장은 규칙적인 박동을 잊은 지 오래였다.

    “젠장… 불면증이라니.”

    지후는 거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잠시 후, 거실 테이블 위에 놓인 리모컨이 스르륵,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고작 1밀리미터도 안 되는 움직임이었지만, 그는 확신했다. 분명 움직였다.

    “…또 시작이군.”

    그는 이를 악물었다. 이번엔 반드시, 기필코 그 움직임의 원인을 밝혀낼 생각이었다. 어둠 속에서 손을 뻗어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차가웠다. 마치 오랫동안 한기도는 곳에 방치되어 있던 것처럼.

    그때였다. 벽 안에서 긁는 소리가 들렸다. 드드득, 드드득. 마치 손톱으로 석고보드를 긁는 듯한, 섬뜩하고 불쾌한 소리였다. 지후는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벽 쪽으로 다가갔다. 귀를 기울이자, 소리는 더욱 명확해졌다. 벽 속에 무언가 갇혀서 필사적으로 빠져나가려 애쓰는 것 같았다.

    “거기 누구야?”

    지후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대답은 없었다. 긁는 소리만 계속될 뿐이었다. 그의 등줄기를 따라 차가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손을 들어 벽에 대자, 안쪽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살아있는 무언가가 거기 있었다.

    쾅!

    그 순간, 주방 쪽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후는 화들짝 놀라 주방으로 달려갔다. 식탁 위에는 그가 몇 시간 전 물을 마시려 꺼내두었던 유리컵이 없었다. 대신, 바닥에는 산산조각 난 유리 파편들이 햇빛 한 줄기 없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건… 내가 떨어뜨린 게 아니야.”

    그는 분명히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단 한 번도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깨지는 소리가 날 때 자신은 거실 벽 앞에 있었다.

    등 뒤에서 섬뜩한 한기가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바로 뒤에 서서 차가운 숨을 내쉬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감각. 지후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주방과 거실을 잇는 통로,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무언가가 흔들리는 듯했다. 분명 아무것도 없어야 할 공간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는 급히 거실등 스위치를 찾아 손을 뻗었다. 찰칵! 스위치를 올리자 거실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등 스위치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마치 누군가 그를 비웃는 것처럼, 아니, 가지고 노는 것처럼.

    지후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이 빌어먹을 장난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셈인가? 그는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누구야! 대체 누구냐고!”

    그의 목소리가 아파트 안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대답은 오지 않았다. 대신,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작은 서랍장에서 드르륵, 하고 서랍이 스스로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후의 시선은 서랍장으로 향했다. 서랍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가 아는’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서랍이 반쯤 열린 채 그를 노려보는 듯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보고 싶어…

    지후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한, 축축하고 불쾌한 속삭임이었다. 마치 그의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드는 듯한 섬뜩함이 전신을 마비시켰다. 그는 한 발자국 물러섰다. 두 발자국.

    바로 그때였다.

    휘이이잉—

    갑작스러운 강풍이 아파트 안에 휘몰아쳤다. 닫혀있던 모든 창문이 흔들리고, 거실의 커튼이 미친 듯이 펄럭였다. 쾅! 안방 문이 엄청난 소리와 함께 활짝 열렸다. 그리고 순간, 아파트 전체가 암흑에 잠겼다. 거실등은 물론, 복도등, 주방등까지 모든 불이 동시에 꺼졌다. 완벽한 어둠이었다.

    지후의 심장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더듬거려 휴대폰을 찾았다. 떨리는 손으로 플래시를 켰다. 빛이 닿는 곳은 희미한 어둠뿐이었다.

    그때, 등 뒤에서 육중한 무언가가 바닥을 긁으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마치 거대한 짐승이 발톱으로 바닥을 긁는 듯한, 끔찍하고 질척거리는 마찰음이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그가 방금까지 앉아있던 소파가 있던 자리였다.

    지후는 플래시를 그쪽으로 향했다.

    소파가, 거실 한가운데로 밀려나 있었다. 그가 앉아있던 그 푹신한 소파가,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에 의해 끌려온 것처럼, 원래 있던 벽 쪽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소파가 있던 자리, 벽면에 바짝 붙어있던 마룻바닥에는… 검붉은 얼룩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그것은 피였다.

    아니, 정확히는 피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마치 붉은 물감을 쏟아놓은 듯한, 그러나 미묘하게 다른, 불쾌한 점성의 액체였다. 지후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때, 귀에 다시 속삭임이 들려왔다.

    — 이제, 너도 우리와 함께…

    속삭임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듯했다. 벽에서, 천장에서, 바닥에서, 심지어 그의 몸 안에서까지. 지후는 비명을 지르려 했으나,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플래시를 소파 쪽으로 돌렸다.

    소파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플래시 불빛이 스치는 순간, 소파의 푹신한 등받이가 아주 미세하게, 아래로 푹 꺼지는 것을 지후는 분명히 보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그곳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 순간, 지후는 깨달았다. 자신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이 아파트 안에, 자신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의 눈은 공포로 가득 찼다. 플래시가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며 소파와 바닥의 얼룩을 번갈아 비췄다.

    쿵. 쿵. 쿵.

    심장이 발악하듯 뛰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아파트에 머물 수 없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차가운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낡은 창문 틈으로 스며든 겨울바람이 뼈 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김현우는 쭈그려 앉아 식어버린 컵라면을 뜨지 않은 채 그저 창밖을 응시했다. 해질녘의 서울은 수많은 불빛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그 빛은 그의 낡고 초라한 옥탑방까지는 닿지 않았다. 아니, 닿을 수 없었다. 마치 세상의 모든 빛이 그를 피해 가는 것처럼.

    거울 속 제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한때 번뜩이던 눈빛은 어둠에 잠식되어 탁해졌고, 단단했던 어깨는 구부정하게 꺾여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자란 머리카락과 거뭇하게 내려앉은 수염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세상을 등지고 살아왔는지를 말해주었다.

    “젠장….”

    현우는 낮게 읊조렸다. 쉰 목소리가 비에 젖은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손가락 끝은 닳아빠진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만지작거렸다. 배경 화면은 빛바랜 사진이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두 젊은이. 한 명은 자신,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이준호.

    ‘이준호.’

    그 이름이 혀끝에 닿자마자, 텅 비어 있던 현우의 심장 깊은 곳에서 날카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상처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그때는 모든 것이 찬란했다. 두 사람은 그림자처럼 함께였다. 세상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탐구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힘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 현우와 준호는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우리가 세상을 바꿀 거야, 현우!” 준호의 눈은 별처럼 빛났고, 현우는 그 빛을 믿었다. 그들이 찾은 ‘힘의 정수’를 함께 나누고, 새로운 시대를 열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준호는 그 약속을 깨뜨렸다. 현우가 눈치채지 못하게, 아주 치밀하고 잔인하게 모든 것을 훔쳐갔다. 현우의 자격, 그의 운명, 그리고 그가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그가 가진 전부를 빼앗아 가면서, 준호는 섬뜩하리만치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현우. 하지만 이건 오직 나만이 가질 수 있는 거였어. 넌… 너무 물러.”*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현우는 한밤중의 숲속에 버려졌다. 힘의 정수가 그의 몸에서 뿌리째 뽑혀 나가는 순간, 온몸의 세포가 불타는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죽은 듯 쓰러져 있었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을 때, 세상은 이미 준호를 새로운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었다. 현우는 폐허가 된 그림자 속에 버려진 채, 단 한 걸음도 세상으로 나설 수 없었다. 그의 모든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몸은 본능적으로 ‘힘의 정수’가 준호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고 반응했다. 준호의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장막이 쳐져 있었다.

    그 후 3년.

    현우는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연명했다. 가끔 환각처럼 과거의 영광이 스쳐 지나갈 때면, 비참한 현실이 더욱 그를 옥죄었다. 살아남는 것이 복수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그날도 다르지 않았다. 빈속에 찬물을 들이켜고, 낡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을 청하려던 순간이었다. 낡은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오늘, 이준호 회장은 도심 재건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기념하며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서막을 열 것’이라며….”

    ‘이준호 회장.’

    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스크린 속 준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3년 전과 변함없는, 아니 오히려 더욱 세련되고 당당해진 미소. 그는 이제 성공한 사업가이자, 국가가 인정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자들의 연합, ‘수호회’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으리으리한 신축 빌딩의 전경이 펼쳐졌다. 현우가 꿈꿨던 이상적인 미래를 준호는 혼자서 이루어내고 있었다. 현우가 바닥에서 뒹구는 동안.

    가슴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현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끓어오르는 분노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바로 그때였다.

    옥탑방 바닥의 갈라진 틈새 사이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약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빛을 내뿜었다. 현우는 숨을 멈추었다. 그의 시선은 그 빛에 못 박혔다. 잊고 지냈던, 그러나 그의 혈관 속에 깊이 새겨져 있던 미약한 힘의 파동.

    ‘이것은…!’

    그것은 그가 준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후에도, 그의 몸속에 남아있던 최후의 조각이었다. 너무나 미약해서 존재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마치 먼지 같은 조각. 그러나 지금, 준호의 모습을 본 순간, 그 조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비록 본래의 힘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조각이었지만, 그것은 현우에게 아직 모든 것이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복수의 맹세.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빼앗긴 것을 되찾고,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자에게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할, 피와 살을 찢는 듯한 갈증이었다.

    현우는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낡은 옥탑방은 여전히 차가웠고, 밖에서는 비가 그치지 않고 내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더 이상 어둠에 잠식되지 않았다. 탁했던 눈동자 속에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컵라면을 버리고, 방 한구석에 널브러져 있던 낡은 배낭을 집어 들었다. 그 안에는 녹슨 칼날 하나와, 찢어진 지도 조각 몇 개가 전부였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폐허 속에서, 현우는 처음으로 ‘시작’을 느꼈다.

    “이준호… 네가 훔쳐간 모든 것을, 기필코 되찾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네 목숨으로도 부족할 거야.”

    그의 낮은 목소리는 더 이상 절망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것은 굶주린 맹수의 으르렁거림과 같았다. 도시의 불빛 속으로 스며드는 어둠처럼, 현우는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날 밤,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한 남자의 처절한 복수극이 시작되고 있었다.